김민정 시조집, 『창과 창 사이』, 고요아침, 2020.
-김민정 아홉 번째 시조집
들었다
물소리를 읽겠다고
물가에 앉았다가
물소리를 쓰겠다고
절벽 아래 귀를 열고
사무쳐 와글거리는
내 소리만 들었다
<문학평론가 노창수 시집 해설에서>
「들었다」는 일견, ‘메타시조’로도 읽을 수 있다. 자신의 시적 대토로 “물소리”를 읽고 “쓰겠다”고 다짐을 하는 까닭이다. 그는 “절벽 아래”로 가 “귀를 열었지만”, 정작 “내 소리만” 듣고 온 일을 생각한다. 해서, 필자는 자신의 창작 태도를 반성하는 ‘메타시조’라고 본다. 하지만 이는 겉에 드러난 창작의 반추일 뿐이다. 그 안에는 “내 소”, 즉 내심은 “물소리”를 듣지 못한데 대한 안타까운 현실을 역시 겸손해하듯 말하는 데 있다. 작품은 3단 구성으로 즉 [물소리 ‧ 읽기], [물소리 ‧ 쓰기], [물소리 ‧ 듣기]로 연속되어 있다. 이는 국어과의 ‘표현 ‧ 이해 과정’에서 가장 기초적인 [읽기, 쓰기, 듣기]의 기능 영역을 시조에 함의한 경우로도 볼 수 있다.
시작詩作
실타래
풀어가듯
엉긴 나를
풀어가며
수도 없이
일어나는
생각을
꿰고 홀쳐
정수리
한가운데로
꽂대 하나
세운다
창과 창 사이
머무는 것은 없다 시시각각 변한다
알면서도 사랑하고 알면서도 흔들리는
어쩌다
눈을 피해도
속내를 들켜버린
카페 유리문에 옆모습을 다 드러낸
한 여자의 긴 머리가 미세하게 흔들린다
누구를 기다리는 듯
양볼 더러 붉어지는
강물이 소리없이 다가왔다 멀어지고
빛나는 눈썹 위로 아슬히, 푸른 이마
한동안
마주보다가
그만 서로 무색해진
<문학평론가 노창수 시집 해설에서>
화자는 “창과 창 사이”로 비쳐 보이는 한 여자의 표정을 따라간다. 그건 시선산책視線散策의 유유함이겠다. 그러다 마주친 눈길이 “무색해”하듯 “속내를 들키”기도하고, “더러” 얼굴이 “붉어지”기도 한다. 그런 나머지 그만 서로 잠잠해져버린다. 화자(관찰자)는 “미세하게 흔들”리는 여자의 표정을 따라가는데, 예의 ‘자돌기술’로 그이 심리 상태를 전언한다. 그는 두 여자를 보며 ‘자기의식’과 ‘상대의식’의 ‘여자’를 나탄히 비교한다. 바라보는 창과 비쳐 보이는 창은 두 여자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의식 상황을 엿보는 심리적 경영鏡映에 빠진다. 화자가 보는 여자는 “시시각각 변하”고, “미세하게 흔들리”다가 “소리 없이 다가왔다”가는 다시금 “멀어”지는 것이다. 시조 속의 여자는 여류롭듯, 흔들리듯 아름다운 프로필을 지녔다. 하므로 화자가 자주 훔쳐볼만한 대한이리라.(중략) 따라서 이 작품은 “창과 창 사이”에 낀 두 여자의 의식에 대힌 심리적 경영鏡映에 터한 자동기술법으로 화자와 여자의 심리적, 암묵적 교신이 전반에 흐른다.
깨를 볶다가
고향에서 부쳐온
참깨 한 봉지를
돌과 뉘를 고른 후에
물을 부어 씻어본다
물기가
촉촉이 밴 몸
홀쭉하고 납잡하다
달궈서 뜨거워진
큰 냄비에 쏟아놓자
토도록, 살이 올라
고소함이 가득하다
시혼詩魂도
저리 볶으면,
통통하게 살 오를까
운해
구름이 서로 모여
부끄럽다 가려준다
나목과 저 골짜기,
못다 지운 절벽까지
가슴팍 엷게 펴가며
온 산을 다 덮는다
고사목
죽어도 살아 있는
나무를 아시는가
능소화 푸른 줄기
빗물에 몸을 씻고
처연히
감아 올라간
그 여름날
수채화
<이지엽 교수> 시조집 뒷면 표사
김민정 시인의 작품에는 자연과 사물, 인간에 대한 수수한 열정과 사랑이 충일하다. 시적 대상과의 동일화에 대한 믿음과 심뢰가 사뭇 진지하다. 더욱이 이번 시조집에는 “나목과 저 골짜기,/ 못다 지운 절벽까지/ 가슴팍 엷게 펴가며/ 온 산을 다 덮”고(「운해」), 나무와 바위의 모든 대자연을 “모두 좋다 받아들”이는 대지적 여성성으로 넓고 깊어지고 있다. 아울러 “죽어도 잘아 있는”(「고사목」)의 돌올한 정산과 “쓰다듬고 더듬어서 돌의 뼈를” 찾고자하는 진리에의 탐구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