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매화 피는 집
수년 전부터 상범이 기로를 이 집에 데려올 때부터도, 듣기는 했던 것 같았다.
집 뒤에 있는 나무가 매화라고.
그렇지만 기로에게는 통나무 집 쪽에 있는 커다란 감나무와, 그 앞의 은행나무만 기억하고 있었을 뿐,
나머지 나무들은 그저 나무들이었을 뿐이다.
더구나 봄에 온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매화를 직접 대한 기억도 없었고, 꽃을 볼 기회도 없었다.
그런데 직접 와서 살아 보니, 봄이 되자 매화가 첫 신호를 보냈던 것인데......
a,새식구
b,봇물 터진 듯...
c,인생은 아름다워
d, 짙은 그림자
a, 새 식구
기로가 '둔터니' 마을에 이사한지 한 달 남짓 되면서, 개 한 마리가 생기는 일이 생겼다.
이미 두어 번 '夢想?'에 와봤던 기로의 군산 형이, '그런 시골에 살려면 개라도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해 누누이 강조를 하더니, 결국 기로에게 개 한 마리를 가져왔던 것이다.
그럼, 일단 그 날의 일기를 살펴보기로 하자.
*
아침이 되면서 비는 그쳤다.
은행에도 들를 겸 전주에 갈 일이 있어서 가는데, 차창 밖으로 보이는 길목의 나무들은 물이 오른 모습이었다.
'여기가 우리 마을보다 북쪽인데, 여기는 벌써 나무들이 새싹을 피우려고 준비 중이네?' 그런 생각을 했다.
확실히 내가 사는 호숫가가 춥기는 한가 보다......
은행에 들러 일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려고 전주 시내에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군산의 형이었는데, 지금 '夢想?'에 오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왜, 집 전화는 안 받냐?"고 묻기에,
내가 전주에서 볼 일을 보고 돌아가려는 중이라고 하니까,
그럼 같이 들어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처음엔 시내버스를 타고 나 먼저 돌아오려고 했다.
그런데, 버스가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형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전주에서 기다릴 테니, 나를 태우고 같이 들어가자고 번복했다.
어차피 '막은댐'에서 내려도, 걸어가다 보면 형이 '夢想?'에 도착하는 시간은 엇비슷할 터여서, 괜스레 교통비 들여서 차를 타고 갈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계산에서였던 것이다.
비는 개었는데, 하늘엔 구름이 많고 바람도 셌다.
그래서 조금은 심란한 날이었다.
생각보다 오래 기다려서야 형이 도착하여 차를 타고 돌아오는데,
트렁크에 검은 강아지가 태워져있다는 것이었다.
'쯧쯧... 불쌍한 것..... 나 땜에, 지 어미와도 헤어져 차에 태워져 고통을 당하고 있단 말이지?'
그 말을 들으면서부터 나는, 아직 개를 보지도 않은 상탠데도 개가 가여운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어쨌거나 빨리 개를 보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夢想?'에 돌아오자마자 형이 뒷문을 열고 꺼낸 개는,
거의 초죽음이 되어있었다.
똥에, 오줌에, 구토까지......
온갖 멀미를 다 했나 보았다.
그러니까, 태어난지 약 3개월이 되었다는 강아지는 처음으로 차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한 호된 댓가를 치른 뒤였다.
형은,
"우선 물을 먹여라!"고 했고,
앞으로 주인이 될 내가 물을 줬다.
물을 먹으면서도 개는 비실비실대는 것이었다.
'불쌍한 것......'
바람이 을씨년스럽게 부니, 기분도 심란했다.
그렇지만 형이 바쁘다기에. 부랴부랴 함께 점심을 해 먹고,
안방에 들어와(이미 보일러를 켜 놓았었다.) 얘기를 조금하다가 형은 서둘러 돌아갔다.
저녁 무렵이 되자 역시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오늘따라 웬 바람이 이리 세다지?'
저녁을 해 먹어야 하는데, 걱정스럽기만 했다.
그래도 군불은 지펴야만 해서 나가니까, 그제야 강아지는 다소 정신을 차렸는지... 아주 반가워하며 나에게 꼬리까지 치는 것이었다.
"그래, 이제 너와 나는 친해져야만 한단다......"
사실 나는, 이미 개의 이름까지를 지어놓은 상태다.
형 집에는 개가 많다 보니, 일일이 개 한 마리마다 이름을 지어주지 못한 상황이라고도 해서... 그 강아지는 여태까지 이름도 없이 커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이름이 '격'이다.
"격!"
녀석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가 한 번 쓰다듬어 주고, 나는 발을 씻고 방으로 들어왔다.
'저 녀것이 춥지 않을까? 형의 말로는, 개는 추위를 안 탄다고 하던데...... 아무튼, 조금 있다가 형에게 전활 걸어서, 어떻게 잠자리를 해줘야하는지, 그리고 밥은 어떻게 해 줘야하는지 자세하게 물어봐야겠다.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저렇게 을씨년스런 바람이 부는 곳에, 뎅그러니 놓아두기가 안쓰럽다.'
3 . 27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날 기로는 옆집 할머니를 안과에 모셔다 드렸는데 그 얘기는 한 마디도 적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은행에도 들를 겸 전주에 갈 일이 있어서 '라고만 썼을 뿐,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그 전날 편지글(이쯤에서 그만 두어야 할 이야기 )에 명시를 해두었던 일을 실행에 옮겼던 것이긴 한데,
그렇게 '옆집 할머니와의 얘기'는, 그의 홈페이지 '화가의 일기'에서는 거의 사라져버린 모양새로, 이따금... 평범하게 남 얘기하듯 넘어가는 식으로 변해가게 된다.
그에 비해, 이제는 강아지에 대한 얘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 새 식구
요즘엔 날마다 뭔가 새로운 일이 생기는 것 같더니,
오늘은 새 식구까지 생겼습니다.
이것 역시 혼자 사는 내 생활 중에 매우 중요한 일이기도 한데요,
얼마 전 군산 형 집에 가서 보다가, 내 마음에 들어,
'한 번, 키워볼까?' 하고 마음먹었던 검은 강아지를 형이 차로 실어온 겁니다.
태어난지 3개월이라지만 아직은 어린 티가 나는, 그리고 진돗개라 그 크기도 그리 큰 편이 아니지만... 그래도 웬만큼 개의 모습이 갖춰진 암놈입니다.
형도 아끼던 갠데, 내가 혼자 사는 걸 아는 터라... 1 년 임대해준다는(?) 조건으로 나에게 보낸 건데요,
어차피 형이 시간이 나야 차로 실어 올 것이었기에,
'언제 데리고 올까?' 하고,
아무튼 나는, 모처럼 개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며칠을 보내왔던 겁니다.
난생 처음으로 장거리 차 여행을 한 녀석은 놀라고 힘들어서,
그럴 줄 알고 준비해 깔아놓았다는 차안의 신문지에다, 똥에 오줌에 또 구토까지 해놓는 고통을 당하면서 실려왔드라구요. 그렇게 처음에 차에서 꺼내놓으니,
어지러운지 제대로 몸도 가누지 못하더군요.
얼마나 안타깝고, 또 측은하던지......
순하디 순한 녀석이 찍소리 않고 차안에서 시달렸을 걸 생각하니,
정말, 안됐더라구요.
더구나 태어난 뒤, 줄곧 어미와( 어미도 검은 진돗개) 한집에서 지냈는데, 오늘부턴 혼자 지내야 하는 것 역시 안 돼 보이더라구요. 그러다 보니,
'저 녀석을 어떻게 회복시켜주나?' 하는 생각이 드는 나는, 이미 그 녀석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내 온 마음이 그 검은 개에게 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녀석의 배설물을 치우는 데도, 더럽다거나 하는 생각이 없드라구요.
다른 땐(유럽에서), 공원이거나 길에서 개의 똥을 치우는 사람들을 보면(비닐봉지에 개똥을 주워 들고 가는 모습),
'왜 저런 짓을 하는지......'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보면서도, 그들의 그런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었던 나였거든요.
근데요,
나는 그 녀석을 키우기로 마음먹은 뒤 바로, 이름까지 지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격'.
온 몸은 검은데, 반달곰 같이 가슴에 흰털이 조금 있는 개라,
처음엔, '반달곰'이라고 하고 싶었는데,
이름이 너무 길어서, 그냥 '곰'으로 부르려다가,
그것도 이상해서,
그러면 '곰'의 첫 자음인 '기역'으로 하리라고 마음먹었었거든요.
그런데 ‘기역’ ‘기역’... 하기는 좀 어색했고, 그래서 간단하게 '격'으로 부르는 게 더 멋질 것 같다는 결론으로... 그렇게 지었답니다.
'격'.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내가 ‘ㄱ(기역)’에서 따 온 이름이라는 걸 모르고,
'이름도 참 이상하다?'고 들 할 것 같습니다만......
오늘, 새벽에 내린 비가 개더니 몹시 센바람이 부는 날입니다.
'격'은 아직 낯이 선지 나를 보면 꼬리를 내리고 숨는 기색입니다.
엊그제 처음 봤을 때도 정신없이 꼬리를 치던 녀석이었는데 말입니다.
갑작스런 여행에다 환경이 확 바뀌니, 딴에는 정신이 없나 봅니다.
그래서,
"이리 온! 이제 너랑 나랑은 가족이란다." 하고 불렀더니,
잔뜩 겁에 질린 눈으로도... 나에게 기어오듯 바짝 엎드려서 오는 녀석을,
한 번 쓰다듬어주고는 방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서도 이따금 문틈으로 녀석의 동태를 살펴보니,
바람은 불지만 햇볕은 있어서 검은 털을 가진 녀석은 땅에 누워있기도 했습니다.
'어디 아픈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그러나 바람은 쌀쌀했지만, 검은개라 햇볕을 몸에 받으면 따뜻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다 다시 내다보니, 자는 게 분명했습니다.
'개 팔자가 상팔자'라더니,
그렇게 턱 누워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고 있는 녀석이 신기하기도 귀엽기도 했지요.
그리고 그 녀석이 누워 있는 마당의 흙은 이미 많이 말라 있던 상태였거든요.
오늘도 오후에도 마당 고르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가끔씩 녀석을 살펴보았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적응을 하는 건지, 조금은 편한 몸짓이어서 다행이었는데......
방으로 들어왔다가 또 다시 문틈으로 보니,
엊그제 친구가 일하다 마당에 떨어트려 놓은 전기 콘센트를 가지고 혼자 장난을 치며 놀고 있었습니다.
반가웠습니다.
그래서 내가 밖에 나가니,
이제 아무도 없고 지와 내가 단둘이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꼬리를 치는 거 아니겠습니까?
본능적이었을까요, 아니면 밥을 준 사람이라서 주인인 것을 아는 것일까요......
어쨌거나 아직, 잘은 모르지만... 녀석은 매우 순합니다.
너무 순해서 오히려 애처롭기 까지 할 정도로요......
차로 실어 온 형도 그런 말을 했었거든요.
'짖을 줄도 모르는 거 아냐?' 할 정도로 아무 소리도 없는 개입니다.
최소한 낯선 사람이 오면, 으르렁대기라도 해야 하는데,
저녁 무렵에 군불을 때느라 정신없을 때, 웬 낯선 한 부부가 마당으로 들어 와서... 내가 깜짝 놀랐는데도(그들은 이곳 경치가 좋아서, 혹시 빈집이라도 있으면 사고 싶어... 그런 걸 알아보러 돌아다닌다고 했습니다),
녀석은 찍 소리도 없더라구요.
최소한 경계거나 방어의 소리라도 내야 하는데......
적어도 그 정도 큰 개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텐데 말입니다......
그렇게, 내, 순하디 순한 새 가족이 하나 생겼습니다.
1 년간 계약을 맺은, 한시적인(?) 가족으로요.
어차피 내가 여기서 1 년을 살다 돌아가게 되면(?), 개를 데리고 갈 수가 없을 거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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