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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평화의길 9코스
율곡습지공원-두포천-전진교-두포교차로-
두포삼거리-소계-박석고개-파평면사무소-
파평삼거리-금파교-리비사거리-리비교앞
20250212
1.코스 소개 : 두루누비
1)코스개요
- 율곡습지공원에서 리비교 거점센터까지 이어지는 코스다.
- 조용한 마을과 농로를 따라 걷는 길이다.
- 임진강을 따라 철책길이 이어진다.
- 주요 경로 : 율곡습지공원 2.0Km 두포교차로 2.8Km 파평면사무소 3.7Km 리비교거점센터
- 길이 8.5km 소요시간 3시간 난이도 쉬움
- 시점 :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장승배기로 290
대중교통) 문산역에서 92번 버스 이용, 율곡1리 하차
- 종점 :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진동로 22
대중교통) 문산역에서 92번 버스 승차, 장파1리 하차
2)관광포인트
- 6ㆍ25전쟁 당시 미군이 건설한 유일한 교량, 리비교
- 임진강 경관을 바라볼 수 있는 율곡습지공원
- 조선시대 대표적인 명의 허준과 부인 안동김씨의 쌍분 무덤인 허준 묘
3)여행정보(주의사항)
- 코스 중간 지점에 일부 갓길 없는 왕복 2차선 도로가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 임진강을 따라 조성된 철책길은 군시설이므로 훼손이나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2.순결과 진실의 새하얀 금파리(金坡里) 들녘
DMZ 평화의길 8-1코스 탐방을 율곡습지공원에서 마치고 곧바로 DMZ 평화의길 9코스 탐방을 출발한다. 9코스 탐방길은 파평면 율곡리에서 출발하여 두포리와 금파리를 거쳐 파평면 장파리 리비교 앞에서 마친다. 9코스 탐방길은 파주시 명칭의 근원 지역인 파평산이 솟은 파평면 지역을 온전히 지나며 파평면 면소재인 금파리 지역을 통과한다. 파평(坡平)은 파주시 지명을 유래한 정희왕후 윤씨의 관향(貫鄕)이며, 금파리 옆 눌노리에 파평 윤씨의 시조 윤신달의 탄강설화와 관련된 '파평용연'이 있다.
파주(坡州)는 ‘둑 위의 마을, 둑과 제방이 많은 마을 또는 둑, 제방 역할을 하는 마을’이란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한다. 파주시(坡州市)의 역사와 지명을 파주시청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를 통해 개략한다. "파주는 본래 고조선의 땅이었다가 삼한시대에 마한에 속했다. 삼국시대에 최초로 파주에 자리 잡은 나라는 백제였으나 고구려와의 계속된 영토싸움으로 475년에는 파주 땅 전체가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 그 뒤 신라 진흥왕이 파주를 차지했다. 파주는 조선시대에 지금의 명칭을 얻었다. 세조는 이곳이 왕비 정희왕후 윤씨의 관향이기 때문에 그전까지 원평도호부로 불리던 이 지역을 ‘파주목’으로 승격시켰다."(파주시청 참조) "조선 초 1398년(태조 7)년에 파평현(坡平縣)과 서원군(瑞原郡)이 합해져 원평군(原平郡)으로 개편되었다. 1415년(태종 15)에 원평도호부(原平都護府)로 승격되었다. 1460년(세조 6)에 왕비 정희왕후(貞熹王后) 윤씨의 관향이라 하여 파주목(坡州牧)으로 승격되었다. 1895년(고종 32) 부군제 실시에 따라 파주군으로 고쳐져 한성부 관할이 되었으며, 다음해 13도가 설치되면서 경기도 관할로 바뀌었다. 1996년 3월 1일 금촌읍 전체가 동(洞)으로 되고 군(郡) 자체가 시(市)로 승격되었다. 2002년 4월 1일 교하면과 조리면이 각각 읍으로 승격되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파주시 전체를 개략하였으니, 파주시 파평면에 대하여 파평면사무소와 두산백과를 통해 알아본다. "파평면(坡平面)은 본래부터 파주군 지역으로 옛날에 파평현이 있었으므로 붙은 이름이다. 파평면 지역은 475년(장수왕 63)경 파해평사현(坡害平史縣)이라 하였고,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파평현(坡平縣)으로 개칭되었다. 눌노리에 위치한 파평산 명칭에서 연유하여 파평면으로 호칭되고 있다. 전 지역이 평평한 언덕이다."(파평면사무소) "파평면(坡平面)은 금파리(金坡里), 눌노리(訥老里), 덕천리(德泉里), 두포리(斗浦里), 마산리(麻山里), 율곡리(栗谷里), 장파리(長坡里) 등 7개의 법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면 행정복지센터는 금파리에 소재한다. 동쪽에 위치한 파평산(495m)은 파주의 주산(主山)으로 알려져 있으며 주변으로 산지가 분포한다. 파평면은 파평윤씨(坡平尹氏)의 본관으로 눌노리에는 천연연못인 파평용연(龍淵)이 있는데 이곳에서 파평윤씨의 시조인 윤신달(尹莘達, 893~973)이 탄강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국가유산으로는 조선중기의 대학자인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가 제자들과 함께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던 정자인 화석정(花石亭), 조선중기 학자인 청송(聽松) 성수침(成守琛, 1493∼1564) 등을 제향하고 후학을 양성하던 파산서원(坡山書院), 파평윤씨의 발상지인 파평용연 등이 있다."(두산백과)
탐방길은 국도 제37호선 율곡로 아래 도보&자전거길을 따라 임진강을 북쪽에 두고 두포천이 임진강에 합수하는 두포나루까지 이어간다. 현재 전진교가 있는 이곳을 두포나루라고 부르는데 원래는 장포(長浦)나루, 또는 장개나루라고 불렸다고 한다. "장포(長浦)는 긴 포구라는 이름으로 파평면 두포리 구간의 임진강 개펄로 추정된다. 지명 유래를 보면 지금의 파평면 두포리 앞 임진강을 장깨(장개)라 하여 긴 개펄이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곳에 성담수 선생이 몽구정(夢鷗亭)을 세웠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이윤희. 파주민보 참조) "두포리에 살았던 조선 전기의 문신 성담수(成聃壽, ?~?)는 본관 창녕(昌寧), 자 미수(眉叟), 호 문두(文斗), 성삼문(成三問)의 6촌,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이다. 1456년(세조 2) 성삼문 등의 단종복위운동(端宗復位運動) 때 그의 아버지 희(熺)도 관련되어 국문을 받고 김해(金海)로 귀양갔다가 3년 후 풀려났으나 곧 세상을 떠났다. 이에 충격을 받은 그는 그 뒤 벼슬을 단념하고, 파주(坡州) 문두리(文斗里)에 은거, 독서와 낚시질로 소일하였다."(두산백과)
두포천을 건너며 성담수(成聃壽) 선생이 지었다는 몽구정(夢鷗亭)을 상상한다. 지금은 사라진 몽구정(夢鷗亭)은 어디에 있었을까? 몽구정의 위치를, 향토사학자들은 두포천이 임진강에 합수하는 두포천 언덕으로, 문헌기록을 중시하는 연구자들은 두포천 북쪽의 눌노천이 임진강에 합수하는 눌노천 언덕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두포천으로부터 그 위쪽 눌노천에 이르는 임진강변은 개펄이 길게 이어져 있어 장포(長浦, 장개)라고 불렸으며,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다. 몽구정의 정확한 위치는 연구자들이 더 고증해야 할 것이고, 탐방객은 바로 이곳이 임진팔경의 제4경에 해당하는 '장포(長浦, 장개)' 지역이라는 것에 관심이 쏠린다. 임진팔경은 조선 숙종 때 문신인 호곡(壺谷) 남용익(南龍翼, 1628~1692) 선생이 '래소정(來蘇亭)'에 올라서 임진강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읊은 칠언절구 8수이다. 래소정은 임진나루 남쪽, 문산읍 장산리 임진강변에 위치했던 정자(亭子)인데 지금은 사라졌다. 임진팔경 중 제4경 '장포세우(長浦細雨, 장포의 가랑비)를 음미한다. 지금은 한겨울, 장포(장개)에는 눈이 쌓여 있지만, 봄날이나 여름날의 장포를 상상하며 음미해 본다. "장개의 더운 비 맑았다 흐렸다/ 백로가 장개를 가로질러 날으니 풀빛도 날아가는 듯/ 어부는 풍랑을 근심치 않고/ 배에 기대어 녹사의(綠蓑衣)를 부르네. 長洲細雨晴霏霏(장주세우청비비) 白鷺橫分草色飛(백로횡분초색비) 漁子不愁風浪起(어자불수풍랑기) 倚船遙喚綠蓑衣(의선요환녹사의)"
율곡로의 두포삼거리에서 평화의 길은 눌노천으로 올라가지 않고, 율곡로와 헤어져 오른쪽 청송로를 따라 소계 방향으로 올라가 두포리와 금파리를 경계하는 낮은 산의 박석고개를 넘어 금파리 청송로로 내려간다. 금파리는 파평면의 면소재지로 파평면 행정복지센터를 비롯한 관공서가 자리하고 있다. 금파리의 중심지인 금파1리 금곡마을의 연원은 세종의 18자이며 신빈 김씨(愼嬪金氏)의 소생인 담양군(潭陽君) 이거(李璖, 1439~1450)의 묘가 이곳에 잡았을 때부터라고 한다. 대전차 방호벽을 지나 파평삼거리에서 장마루로를 따라 금파리 들녘으로 나갔다. 금파리 들판은 벼 그루터기들이 줄을 맞추어 늘어서고 하얀 눈이 내려 순결하게 정화되어 있다. 드넓은 새 세상의 금파리 들녘에서 거짓들이 벼 그루터기 아래로 사라진다. 금파리(金坡里) 들은 순결과 진실의 새하얀 빛이 반짝인다.
눌노천의 금파교를 경계로 금파1리와 금파2리 아래장마루마을이 나뉜다. 장마루로를 계속 따라가면 금파2리 아래장마루마을을 거쳐 장파리의 윗장마루마을로 이어진다. 눌노천의 금파교를 건넌다. 동쪽의 눌노리 지역에서 흘러내리는 눌노천은 금파리 들녘을 가로질러 서남쪽으로 흘러 임진강에 합수한다. 금파교 북단에서 눌노천 둑방길을 따라 눌노천을 따라간다. 금파2리 북쪽 들에는 구석기시대부터 인간이 살았음을 증거하는 구석기유적지가 있다. 구석기유적지는 국도 제37호선 율곡로 아포삼거리 도로변 금파리 동산에 있다고 한다.
눌노천 둑방길에서 눌노천이 임진강이 합수하는 곳을 어림한다. 눌노천 하구의 임진강 언덕에는 궁예가 철원에서 패배하고 이곳으로 옮겨와 지은 대궐이 있었다는 궁예성터라고 불리는 금파리성지(金坡里城址)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은 조선 세조 때 단종복위운동이 실패로 끝나자 성담수(成聃壽) 선생이 이곳에 은거하여 몽구정(夢鷗亭)이란 정자를 짓고, 애처로운 단종을 사모하며 세월을 보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다. 이곳은 경치가 아름다워 중국의 소선적벽(蘚仙赤壁)과 비교되었으며 장단적벽(長湍赤壁) 중에서도 이 정자가 위치한 파주적벽(坡州赤壁)이 그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눌노천 둑방길을 계속 따라 내려가면 그 언덕에 이를텐데, 평화의 길은 둑방길에서 율곡로 지하통로를 통하여 임진강변으로 나가서 북진한다.
평화의 길은 임진강 남안에 조성된 보도&자전거길을 따라 국도 제37호선 율곡로와 나란히 북진한다. 임진강은 얼어붙어 있고 건너편은 파주시 진동면 하포리 지역이다. 예전에 탐방한 하포리 지역의 허준 묘를 가늠하지만 분명치 않다. 금파취수장을 지나면 임진강을 가로지르는 리비교(북진교)가 눈앞에 가까이 나타나지만 눈안개와 미세먼지 때문에 흐릿하게 보인다. 삼국시대 임진강은 격전지였으며, 6.25전쟁 때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임진강은 백제에서 고구려를 거쳐 신라 땅이 되었고, 6.25 전쟁 중에는 임진강을 북한군에 빼앗기지 않고 우리 국군이 지켜냈다. 임진강은 전략적 요충지로서, 파평면에서 임진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전진교와 리비교 두 곳이며 리비교 일원에 리비교역사문화공원을 조성 중에 있다. 임진강 리비교와 민통초소 앞은 경계가 삼엄하다. 리비교 표석을 보러갈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탐방객은 평화의 길에서 겁을 잔뜩 먹고 긴장하게 된다. DMZ 평화의 길 안내판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후다닥 리비교 앞을 빠져나왔다.
3.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9.07km
전체 소요 시간 : 2시간 12분
DMZ 평화의 길 8코스는 임진나루와 임진강 철책을 거쳐 평화누리길 문주로 나온다.
평화의 길 8&8-1코스 종점이며 9코스 시점에 DMZ 평화의 길 안내판, 경기둘레길과 평화누리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DMZ 평화의 길 안내판에 DMZ 평화의 길 8코스가 소개되어 있다.
평화의 길 8코스 : 10.15km, 2시간 10분 소요. ●과거 민간인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된 임진강변철책 순찰로 구간으로 파주시와 경기도가 안보와 생태탐방을 태마로 '임진강 생태탐방로'로 조성·운영 중인 구간입니다.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는 난이도를 보유하고 있으며, 임진강변에 설치된 철책을 따라 임진강, 초평도 습지, 임진나루를 거쳐 물과 습지까지 이어집니다. ●현재 1일 1회, 150명 내외의 인원이 예약을 거쳐 이용할 수 있으며, 추후 1일 2회 정도로 확대가 가능할 것으로 검토되는 구간입니다. ●생태탐방로에서 재두루미, 독수리, 쇠기러기 등 겨울 철새가 월동하는 '초평도'를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으며 봄에는 유채, 가을에는 코스모스 정취를 맘껏 느낄 수 있는 율곡습지공원과 율곡수목원이 있습니다.
DMZ 평화의 길 9코스를 출발하며 DMZ 평화의 길 안내판과 함께 기념한다.
DMZ 평화의 길 9코스 출발 지점을 돌아본다. 평화의 길 8코스는 오른쪽 평화누리길 문주를 통하여 와서, 8-1코스는 왼쪽 율곡습지공원을 통하여 와서 DMZ 평화의 길 안내판 앞에서 만난다. 전신주 오른쪽 뒤에 화석정이 가늠된다.
학자의 숲 : 율곡 이이는 1548년(명종 3) 13세 때 진사 초시에 급제한다. 이후 아홉 차례의 과거에 모두 장원해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 이라 일컬어졌다. 1558년 23세 봄 예안(禮安)의 도산(陶山)으로 이황(李滉)을 방문했고, 그 해 겨울의 별시(문과 초시)에서 「천도책(天道策)」을 지어 장원급제하였다. 율곡이이의 장원급제 답안지 「천도책(天道策)」의 첫 문장 "竊謂萬化之本 一陰陽而已是氣 動則爲陽 靜則爲陰 一動一靜者氣也 動之靜之者理也 개인적으로 생각하건대 만가지 변화의 근본은 하나의 음양일 따름입니다. 이 기(氣)가 움직이면 양(陽)이 되고, 고요하면 음(陰)이 됩니다. 한번 움직이고 한번 고요한 것은 곧 기(氣)이고, 움직이게 하고 고요하게 하는 것은 이(理)인 것입니다." <율곡전서 권14>
율곡습지공원 정문을 나가 율곡1리 버스정류소 앞으로 이어간다.
율곡습지공원 안내도, 파주시 관광안내도, 대북전단 살포 중단 알림막 등이 설치되어 있다.
평화의 길은 율곡습지공원 앞에서 율곡1리 버스정류소 앞을 거쳐 국도 제37호선 율곡로 북쪽 아래 도로를 따라간다.
율곡1리 버스정류소 옆에 평화누리길 이정목과 평화누리길 게스트하우스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파주게스트하우스 쉼표 : "인생은 여름방학처럼"이라는 가훈 아래 요리하는 남편과 정원 가꾸는 아내가 운영하는 가정식 민박입니다. 텃밭에서 직접 기른 재료로 아침상을 짓고, 게스트가 추천한 인생책을 헌책방에 비치합니다. 매주 금요일밤에는 1층 로비에서 함께 영화를 보고, 매달 선룸과 마당에서 맥주담기, 북콘서트, 사진전시회 등의 행사가 열립니다. 쉼표 앞마당에서 임진강으로 떨어지는 일몰을 당신과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파주게스트하우스 쉼표로 놀러오세요.
율곡1리 버스정류소에서 율곡로 북쪽 아래 율곡습지공원 방향 일방통행로를 따라 동북진한다.
율곡습지공원에서 나와 율곡1리 버스정류소를 지나왔다. 율곡로의 도로표지판을 보며 문산읍 선유리 지역을 가늠한다.
향나무 버스정류소는 율곡1리와 율곡2리 사이에 있다. 이곳에 유명한 향나무 보호수가 있는 듯.
언덕에서 율곡로와 그 북쪽 아래의 일방통행을 내려본다. 왼쪽에 임진강과 철책, 오른쪽 뒤에 율곡수목원이 있다.
율곡수목원은 1960년대 파주시에서 산림녹화사업을 통해 보호림으로 가꾸어온 시유림을 수목원으로 리모델링하여 식물자원으로 보존하기 위한 목적으로 재탄생시킨 곳이다. 가파른 경사면에 위치하며 수목원 내에는 21개 테마별 식물 주제원이 있다. 8만여 그루의 나무와 22만여 포기의 초본류 등 총 1,300여 종 30만여 본의 식물이 식재되어 있다.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는데 길이는 약 5km에 이르며 전망대에 오르면 임진강 물줄기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 두산백과
버스정류소 왼쪽 뒤에 카페 '강변살자'가 있고, 오른쪽에 율곡수목원 가는 지하통로가 있다.
왼쪽에 율곡수목원 가는 지하통로가 있고, 오른쪽에 율곡수목원 버스정류소와 카페 '강변살자'가 있다.
왼쪽 북쪽에는 임진강 철책, 오른쪽 남쪽에는 율곡로가 있다. 율곡로 북쪽 아랫길을 따라간다.
평화누리길 쉼터정자를 지나 평화누리길 문주를 통과한다.
왼쪽에 임진강이 흐르고 임진강 북쪽에 일월봉이 솟아 있으며, 중앙 뒤에 전진교가 임진강을 가로지른다.
일월봉(日月峰)은 경기도 파주시의 진동면 남부의 임진강변에 위치한 산이다(고도:191m). 『장단읍지』에 따르면 일봉산(日峰山)과 월봉산(月峰山)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두 산의 위치정보는 현의 동쪽 진동면(津東面) 15리로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1872년지방지도』에는 일봉산과 월봉산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인접하게 표기되어 있다. 즉 두 개의 산으로 인식하던 것을 하나로 합치면서 두 산의 첫 글자를 따서 일월봉이라 이름붙였다고 전한다. -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지명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에서 두포리로 넘어와 두포천의 두포교를 건넌다.
국도 제37호선 율곡로의 두포교가 두포천 위를 가로지른다. 평화의 길은 두포교를 건너 왼쪽 길로 이어간다.
두포천(斗浦川)이 임진강에 합수하고 있다. 전진교가 임진강을 가로지르고 중앙에 일월봉이 솟아 있다. 두포천 하구 오른쪽에 장개(長浦)나루가 있었으며, 언덕에 성담수가 지은 몽구정이 있었다고 한다.
두포천(斗浦川)은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금곡리에서 시작하여 북서방향으로 흘러 파평면 두포리 임진강으로 유입되는 지방하천이다. 한강수계의 지방하천으로 임진강의 제1지류이다. 하천연장은 7.05km, 유로연장 9.6km, 유역면적 17.5㎢이다. 유역 내 토지 대부분은 임야와 농경지로 구성되어 있다. 하천의 동서방향으로 비학산과 사방산, 광평산 등의 산지가 형성되어 있다. 임진강 합류 지점 인근에는 율곡수목원과 율곡생태캠핑장이 위치한다. 하천 하류부에는 367번 지방도로가, 상류부에는 37번 국도가 하천을 가로지르며 지난다. - 두산백과
두포교를 건너서 임진강을 가로지르는 전진교 남단을 바라보았다. 성담수(成聃壽)선생이 단종복위운동이 실패한 뒤 파주에 은거, '몽구정(夢鷗亭)' 정자에서, 시와 낚시로 소일하며 애처로운 단종을 사모하였다고 하는데, 향토사학자들은 두포천이 임진강에 합수하는 이 언덕에 몽구정(夢鷗亭)이 있었을 것이라 추정한다.
성담수(成聃壽, ?~?)는 본관 창녕(昌寧), 자 미수(眉叟), 호 문두(文斗)이다. 성삼문(成三問)의 6촌.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 1456년(세조 2) 성삼문 등의 단종복위운동(端宗復位運動) 때 그의 아버지 희(熺)도 관련되어 국문을 받고 김해(金海)로 귀양갔다가 3년 후 풀려났으나 곧 세상을 떠났다. 이에 충격을 받은 그는 그 뒤 벼슬을 단념하고, 파주 문두리(文斗里)에 은거, 독서와 낚시질로 소일하였다. 1782년(정조 6) 이조판서가 추증되었으며, 함안(咸安)의 서산서원(西山書院), 창녕의 물계서원(勿溪書院)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정숙(靖肅)이다. - 두산백과
전진교 남단 입구에서 파평산로를 따라 오른쪽 율곡로 두포1교 아래를 통과한다. 건너편에 나루카페가 있고, 중앙 율곡로 뒤에 두포3리 마을이 보인다.
왼쪽 뒤 언덕길에서 전진교 남단 앞으로 나와 파평산로를 따라 율곡로 두포1교 아래로 나가다 뒤돌아보았다. 뒤쪽 전진교 아래로부터 오른쪽 위 임진강에는 긴 개펄이 펼쳐져 있어 장포(長浦, 장개)라 불렸다고 한다.
파평산로를 따라 율곡로의 두포1교 아래를 통과하여 두포교차로로 나왔다. 왼쪽으로 이어간다.
두포교차로에서 오른쪽 두포3리 장포동 표석이 세워져 있는 오른쪽 길을 따라간다. 왼쪽 길은 율곡로 진입로이다.
율곡로 남쪽 보도&자전거길을 두포삼거리 방향으로 이어간다.
맨 오른쪽에 두포3리 마을회관이 있으며, 평화의 길은 율곡로 남쪽 보도를 따라 두포삼거리 방향으로 이어간다.
파주시 파평면 두포리(斗浦里)는 마을 서쪽으로 임진강(臨津江)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있으며, 주변으로 소규모 농경지가 길게 발달하였다. 동쪽은 산지이다. 두포리는 두문리(斗文里)와 장포리(長浦里)를 병합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두문리는 장닥말과 마산리의 방구지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인 성담수(成聃壽)가 살았다 하여 문두리라고도 한다. 장깨는 두포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임진강가에 포구가 늘어섰고 마을도 함께 길게 형성되었다 하여 유래되었다. 이곳에 성담수가 세운 몽구정(夢鷗亭)이 있었고 파평현과 장단을 잇는 교통의 요지였다. 장포리라고도 한다. - 두산백과
두포삼거리에서 오른쪽 청송로를 따라간다. 이 두포삼거리 위쪽에 눌노천이 임진강에 합수하는 곳이 있다.
율곡로의 두포삼거리에서 오른쪽 청송로를 따라 올라간다. 청송로 건너편에 '파평'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다.
파평면(坡平面)은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면(面) 단위 행정구역으로, 금파리(金坡里), 눌노리(訥老里), 덕천리(德泉里), 두포리(斗浦里), 마산리(麻山里), 율곡리(栗谷里), 장파리(長坡里) 등 7개의 법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면 행정복지센터는 금파리에 소재한다. 북쪽으로는 적성면, 동쪽으로는 법원읍, 서쪽으로는 진동면, 남쪽으로는 문산읍과 접한다. 눌노리에 위치한 파평산에서 파평이라는 지명이 유래하였다. - 두산백과
청송로를 따라 앞의 소계 버스정류소를 지나 언덕으로 올라간다.
청송로는 파주시 파평면 두포삼거리에서 파주시 적성면 적성교차로를 잇는 도로이다. 청송로는 파주시 파평면 눌노리에 있는 파산서원(坡山書院)에서 배향하는 조선중기 학자인 청송(聽松) 성수침(成守琛 1493∼1564)을 기리기 위한 도로명인 듯.
청송로 건너편 언덕의 단양 우씨 망향제단 입구에서 왼쪽 길로 이어간다.
청송로 북쪽 보도에 실향민인 단양 우씨 망향제단 입구를 알리는 표석이 서 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슬픔이 솟아난다.
평화의 길은 청송로 북쪽 보도의 단양 우씨 망향제단 출입문 앞에서 북쪽 길을 따라간다.
단양 우씨 망향제단 출입문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다가 오른쪽 등산로 출입구로 올라간다.
등산로 비탈길이 나무계단으로 조성되어 있다.
가파른 고갯길을 오르고 평탄한 길을 돌아오르면 고개에 평화누리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고, '박석고개'가 적혀 있다.
가파른 고갯길을 오른 뒤 돌아온 평탄한 길을 박석고개에서 돌아본다.
박석고개를 넘어 파평면 두포리에서 금파리로 넘어와 산길을 따라 청송로로 내려간다.
청송로의 박석고개 등산로 출입구에 평화누리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청송로를 따라 내려간다.
박석고개 등산로 출입구에서 청송로의 박석고개를 올려본다.
청송로와 헤어져 금파리 산자락길로 들어와 산자락길을 따라간다.
산자락길을 따라가며 파평면 금파리 지역을 내려보는데, 눈안개가 자욱하여 위치를 가늠할 수 없다.
왼쪽 길은 산으로 올라가는 길, 오른쪽 길을 따라 파평면 행정복지센터로 내려간다.
파평면 행정복지센터로 내려가면서 금파리 들녘을 조망하지만 풍경은 눈안개 때문에 부옇다.
산길에서 오른쪽 파평면 행정복지센터 방향으로 이어가면서 왼쪽 뒤의 금파일반산업단지를 가늠한다.
북파주농협 농산물 저온유통시설을 지나면 북파주농협과 파평도서관, 그 오른쪽에 파평면 행정복지센터가 있다.
파평면 행정복지센터 입구에 멋진 소나무 한 그루가 식재되어 있다. 금파1리 금곡동 마을 뒤쪽 산자락에 세종의 아들 담양군의 묘가 있다고 한다.
금파리(金坡里)는 근래에 조성된 금파산업단지를 제외하면 전형적인 농촌마을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금파1리에 해당하는 금곡동(金谷洞) 마을은 양짓말, 응당말, 윗새말로 구성되어 있다. 마을이 처음 형성된 것은 세종의 아들 담양군의 묘를 이곳에 잡았을 때부터이다. 지금의 아랫새말 뒷산에서 두 길 정도만 땅을 파도 철광석이 나온다 하여 쇠말이라 불렀으나 한일병탄 이후 새말로 바뀌어 윗골은 윗새말, 아랫골은 아랫새말로 불려왔다. 윗새말 산골짜기를 따라 들어가면 담양군(潭陽君) 이거(李璖)의 묘가 있는데 이거(李璖, 1439~1450)는 조선 초기 왕족으로 세종의 18자이며 신빈김씨(愼嬪金氏)의 소생이다. 담양군(潭陽君)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이애(夷哀)이다. 마을사람들은 묘역이 있는 이곳을 ‘애기능’으로 부르고 있다. 묘역으로 들어가는 마을 입구에 표석이 세워져 있으며 표석을 따라 마을길로 들어가면 담양군 사당인 경덕사(慶德祠)가 위치해 있다. - 이윤희. 파주민보 2023.08.31.
파평면 행정복지센터 입구에 공적비&송덕비가 세워져 있으며, 앞쪽 청송로의 행정복지센터 입구로 나간다.
뒤쪽의 산자락길을 따라 내려와 중앙의 북파주농협과 파평도서관 옆을 거쳐 파평면 행정복지센터 앞으로 나왔다. 오른쪽 공적비 뒤에 파평119의용소방대, 그 뒤에 파평보건지소가 있다.
금파리(金坡里)는 본래 파평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장포리, 금곡리, 눌노리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금곡(金谷)의 ‘金‘자와 장파(長坡)의 ’坡‘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파평면은 1896년 조선말(고종 3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파평면'으로 개칭한 이래 1899년 파평면 두포리 장포동에 파평면 청사를 신축하였으나 1951년 6.25사변으로 면청사가 소실되었다. 이후 두포리에 임시청사를 짓고 면정을 수행하던 중 1959년 율곡리에 파평면 청사를 신축하였다.(현재 율곡리 파평면사무소 건물은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다가 1979년 율곡리에서 금파리 현재의 행정복지센터 자리에 면 청사를 신축하고 이전하면서 금파리는 파평면의 행정중심지가 되었다. 기존의 파평면사무소 건물은 사라지고 지난 2019년 새롭게 파평면행정복지센터 건물이 신축되었으며 행정복지센터와 함께 파평도서관, 북파주농협 파평지점, 파평면보건지소, 파평119구조대 등 주요 기관들이 한 울타리 안에 자리잡고 있다. - 이윤희. 파주민보 2023.08.31
청송로의 파평면 행정복지센터 앞 교차로에서 왼쪽 방향으로 청송로를 따라간다.
청송로를 따라 왼쪽의 파주석재, 오른쪽의 에쓰오일주유소, 그 오른쪽의 파평파출소 앞을 지나간다. 오른쪽 뒤에 금파일반산업단지가 보인다.
오른쪽은 금파일반산업단지 출입로, 평화의 길은 청송로를 따라 대전차 방호벽을 통과한다.
대전차 방호벽 남쪽 벽에 파평면의 유명한 인물들 그림이 그려져 있다.
파평면 행정복지센터 입구에서 청송로를 따라 파주석재와 파평파출소 앞을 거쳐 대전차 방호벽을 통과했다. 방호벽 북쪽 벽에 이율곡과 화석정 정자가 그려져 있고, '화석정' 시가 적혀 있다.
건너편에 금파삼거리 버스정류소가 있다. 예전에 이곳은 금파삼거리라 명명했으나 지금은 파평삼거리라 이른다. 오른쪽 청송로는 파평면 눌노리 방향으로, 파평 윤씨의 시조 윤신달의 탄생 설화와 관련된 파평용연(坡平龍淵), 성수침과 그의 아들 성혼 및 백인걸의 위패를 봉안하고 후학을 향성하던 파산서원(坡山書院)으로 이어진다. 평화의 길은 왼쪽 장마루로를 따라간다.
장마루로에서 동쪽으로 금파리 들녘을 바라본다. 오른쪽은 청송로, 중앙 뒤에 눌노천이 왼쪽으로 흐른다.
파평면 장파리(長坡里)를 '장마루'라 이르는 듯. 장마루 마을을 통과하는 도로여서 '장마루로'라고 명명한 듯.
장마루로를 따라 눌노천의 금파교를 건너 금파2리 마을로 넘어간다.
눌노천의 금파교 북단에서 평화의 길은 왼쪽 눌노천 둑방길을 따라간다.
금파교 북쪽에 금파2리 아래장마루 마을이 자리한다. 윗장마루 마을은 파평면 장파리 지역을 이른다고 한다.
금파2리에는 초당골로 불리는 마을이 있었는데 마을 뒷산에 눌노천과 임진강이 바라다보이는 초당이 있어 선비들이 학문을 갈고 닦던 곳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지금은 마을이 없어졌다. 또 금파2리 장마루 마을은 원래 윗장마루와 아랫장마루로 되어 있는데 아랫장마루는 금파2리, 윗장마루는 적성면 장파리였다. 지금은 둘 다 파평면 장파리가 되었다. - 이윤희. 파주민보 2023.08.31
금파교 서쪽 보도 북단에서 눌노천 둑방길을 따라 눌노천을 따라 내려간다.
눌노천 둑방길에서 임진강으로 흘러내리는 눌노천과 금파1리 지역 파평면 행정복지센터 뒤쪽 산을 조망한다.
눌노천(訥老川)은 파주시 법원읍 직천리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흐르다 중류지역에서 서쪽으로 흘러 임진강으로 유입되는 지방하천이다. 한강수계의 지방하천으로 임진강의 지류이다. 하천연장은 15.1km, 유로연장 21km, 유역면적 67.63㎢이다. 유역 인근의 토지 대부분은 임야와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다. 하천 상류지역은 산지하천의 성격을 보이며 농경지가 협소한 편이나, 중하류지역에는 비교적 넓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유역 상류부에는 파평 윤씨의 시조가 태어나 '윤씨 연못'으로도 불리는 파평용연이 위치한다. 하천 중하류부를 따라 367번 지방도로가 있으며, 임진강 합류지점에는 37번 국도가 하천을 가로지른다. - 두산백과
눌노천 둑방길을 따라가며 눌노천 하류 임진강변 언덕의 '금파리성지(金坡里城址)'(일명 ‘궁예성터’)와 몽구정터를 가늠한다.
금파리를 지나는 37번 국도와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금파리성지(金坡里城址) 일명 ‘궁예성터’가 남아 있다. 이곳은 “후고구려 궁예왕이 철원에서 피신하여 이곳에 거주하면서 쌓은 토성이라는 전설이 있으며 길이 1,500m정도, 높이 6m정도 되었으나 현재는 모두 없어졌다고 한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 이윤희. 파주민보 2023.08.31.
서북쪽으로 임진강변을 달리는 국도 제37호선 율곡로가 보인다. "금파교를 건너면 마을이 보이는데 이 마을 어귀의 조그만 동산에 금파리유적이 있다."고 하면 아마도 맨 오른쪽에 금파리 구석기 유적지가 있을 것이다.
파주(坡州) 금파리유적( 金坡里遺蹟)은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에 있는 석기시대 구석기의 주먹도끼·긁개·석핵 등이 출토되 생활유적이다. 임진강 남안에 있으며 전곡리 유적과 유사한 석기를 반출하였다. 1989년 처음으로 발견되어 문화재연구소(현, 국립문화유산연구원)에 의해 1992년까지 4차례의 발굴이 이루어졌다. 발굴된 2개의 지점들은 임진강 남안에 연결된 현무암대지 남단의 구릉 위에 있으며, 금파리마을에서 장파리로 통하는 도로변에 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눌노천 둑방길을 계속 따라 궁예성터와 몽구정터로 가지 않고,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율곡로 지하통로를 통과한다.
국도 제37호선 율곡로 지하통로를 통과하여 임진강 방향으로 넘어가 율곡로 북쪽 보도를 따라 올라간다.
국도 제37호선 율곡로 북쪽 아래의 보도&자전거길을 따라 리비교 방향으로 올라간다.
율곡로 북쪽 보도에서 율곡로의 아포삼거리 도로표지판을 바라본다. 저 오른쪽 뒤에 금파리 구석기 유적지가 있을 것이다.
금파리 구석기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는 1989년과 1991년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조사결과 이곳에서는 고인류의 생활상을 복원할 중요자료인 수혈식 주거지를 비롯하여 주먹도끼, 찍개, 긁개 등 500여 점의 석기가 출토되어 인근 전곡리를 위시한 임진강과 한탄강 유역 구석기 문화의 전체상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 이윤희. 파주민보 2023.08.31.
(서울=연합뉴스) 김태식기자 = 78년 경기 연천 전곡리 유적 이래 구석기시대 유적지로는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평가되는 경기 파주시 파평면 금파리 임진강 유역 구석기시대 유적의 발굴성과를 정리한 「금파리 구석기유적」 보고서가 최근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소유전)에서 나왔다. 이 유적에서는 지난 89년부터 92년까지 4차에 걸쳐 발굴결과 전기 구석기시대의 석기제작장으로 보이는 수혈형유구를 비롯해 2천400여점에 달하는 각종 석기가 나왔다. 금파리는 규모 면에서 연천 전곡리 유적에 버금가는 것으로 한탄강, 임진강 유역의 주먹도끼 문화를 대표하는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어 이번 보고서는 우리나라 구석기문화연구와 동북아시아 구석기문화의 계보를 밝히는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연합뉴스 1999.05.25.
임진강 건너편은 파주시 진동면 하포리 지역이다. 율곡로 북쪽 아래 보도&자전거길을 따라 리비교 방향으로 올라간다.
임진강이 얼었다. 임진강 건너편은 민통선 지역 파주시 진동면 하포리 지역이다.
예로부터 임진강 유역은 고구려·백제·신라 3국의 국경이 되어 역사적인 격전지이기도 하였다. 삼국 시대에는 임진강을 칠중하(七重河)라 하였고 연천군에는 고구려 칠중현의 치소인 칠중성(七重城)이 있었다. 고구려의 광개토왕은 이 강에서 백제군을 대파시킨 일이 있고, 신라진흥왕은 이 강의 남쪽을 점령하여 고구려와 경계한 적이 있었다. 신라가 당나라와 더불어 고구려를 정복하였을 때에는 칠중성(積城 : 지금의 파주시 적성면) 부근에서 이 강을 건너 평양으로 진격한 일이 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임진강변 동쪽 언덕의 보도&자전거길을 계속 따라간다.
파주시 파평면 금파리 임진강변 동쪽 언덕길에서 금파취수장 앞으로 나간다.
임진강은 경기북부지역 주민의 생명줄로, 임진강 하류의 파주시 파평면 금파리에는 시설용량 100,800㎥/일의 금파취수장(’90년 준공)이 위치하고 있으며, 1일 평균 69,731㎥이 취수되어 파주시 주민 약 15만 명에게 식수로 공급되고 있습니다. 임진강유역 및 금파취수장의 수질보호를 위해 「수도법」에 따른 상수원보호구역, 「임진강유역 폐수배출시설 설치제한을 위한 대상 지역 및 시설 지정」에 따른 배출시설 설치제한지역이 입지규제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 [경기연구원 연구]
금파취수장 앞을 지나 율곡로 출구로 옆에서 왼쪽 임진강변 보도&자전거길로 다시 이어간다.
율곡로 출구로 옆에서 임진강 동쪽 언덕길로 들어와 보도&자전거길을 따라간다. 임진강은 얼어 있다.
임진강은 함경남도 덕원군 두류산에서 발원하여 남서방향으로 흐른 후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에서 한강과 합류하는 한강의 제1지류로, 총 유로연장은 273.5㎞입니다. 임진강유역에 포함되는 남한의 행정구역은 경기도 동두천시, 파주시, 양주시, 포천시, 강원도 철원군 등 2개 도 6개 시⋅군이며, 북한지역은 개성직할시 1개 시 3개군, 황해북도 1개 군, 강원도 8개 군 등 총 1개시 12군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처] 임진강 유역여건 변화에 따른 합리적 물관리 방안 [경기연구원 연구]
파평면 금파리에서 장파리로 넘어와서 체력단련장&쉼터정자 앞을 지나간다. 임진강 왼쪽 위에 리비교가 보인다.
임진강은 꽁꽁 얼어 붙었고, 파주시 파평면 장파리와 진동면 용산리를 잇는 리비교가 임진강 위를 가로지른다.
임진강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리비교가 7년 만에 다시 개통했다. 리비교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이 건설한 다리로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 인근 임진강에 위치하고 있다. 파주시는 리비교 재가설공사를 마치는 대로 이달 말 정식 개통할 예정이라고 3일 밝혔다. 리비교는 정전협정 체결 직전인 1953년 7월 4일 만들어졌다. 리비교라는 이름은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대전지구 전투에서 전사해 사후 훈장을 받은 미군 조지 리비 중사를 기리기 위해 붙여졌다. 전진교, 통일대교와 함께 파주시에서 임진강을 건너 민통선 북방지역으로 진입할 수 있는 3개의 교량 중 하나다. 파주시는 리비교에 유리 바닥으로 된 스카이워크 등을 설치해 관광명소로 탈바꿈시킨다는 계획이다. 임진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도 설치할 예정이다. 인근 민통선 일대와 비무장지대(DMZ) 내에 있는 덕진산성과 허준 묘, 임진각, 도라전망대를 연계한 관광상품도 선보일 방침이다. 김경일 파주시장은 “이번 리비교 개통을 통해 민북지역 주민들과 영농인들의 불편이 해소되기를 기대한다.”며 “관할부대와 협의해 주민이 편하게 통행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관광 명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전익진 기자. 중앙일보 2023.10.03.
오른쪽에 국도 제37호선 율곡로가 달리고, 왼쪽 리비교 일원에 역사문화공원을 조성하고 있다.
국도 제37호선 율곡로에 리비사거리 도로표지판이 보인다. 왼쪽에 조성 중인 리비교역사문화공원이 있다.
리비교역사문화공원은 평화의 길 10코스 출발지 위쪽(중앙 뒤)의 리비교거점센터와 함께 조성 중이라고 한다. 역사문화공원은 리비교 아래까지 이어진다. 왼쪽 임진강에 리비교와 입구에 민통선 초소가 있다.
오른쪽에 국도 제37호선 율곡로 지하통로가 있고, 중앙 위에 북진교 민통초소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왼쪽 북진교(리비교) 민통초소 방향으로 이어간다.
북진교(리비교) 민통초소 앞에서 진동로를 따라 왼쪽 군사시설 담벽 앞에 있는 DMZ 평화의 길 안내판 앞으로 이어간다.
왼쪽에 DMZ 평화의 길 9코스 안내판, 오른쪽에 DMZ 평화의 길 파주 코스 안내판이 세워져 있으며, 뒤쪽은 율곡로와 진동로가 교차하는 리비사거리이다.
평화의 길 9코스 : 8.17km, 1시간 30분 소요 : •파주 9코스는 율곡습지공원~리비교 거점센터까지 이르는 구간으로 평화누리길 9코스 율곡길을 활용하는 구간입니다. •조용한 마을 길과 농로 등을 따라 노선이 형성되어 물리적 난이도는 보통입니다. •단, 율곡습지공원으로 향하는 구간에 일부 갓길 없는 왕복 2차선 도로가 있어 이용자의 유의가 필요합니다. •가을철 코스모스가 장관을 이루는 율곡습지 공원의 아름다운 전경을 볼 수 있습니다. •시·종점 구간인 리비교 일원은 리비교 관광 자원화가 추진 중이며, 행정안전부가 'DMZ 평화의 길' 거점센터를 조성 예정인 구간으로 향후 이용자들에게 다양한 정보제공 및 프로그램 운영 등이 가능할 것으로 검토됩니다.
DMZ 평화의 길 안내판과 함께 DMZ 평화의 길 9코스 탐방 완주를 기념한다.
평화의 길 파주코스 : •파주시는 주노선 5개 코스와 지역 테마 노선 1개 코스가 설정됩니다. •주노선 5개 코스 중 임진각 관광지에서 율곡습지공원 구간은 개방 중인 임진강 생태탐방로 구간으로 예약 이용 주노선입니다. -임진강 생태탐방로 구간은 현재 1일 1회, 150명 내외 인원이 이용할 수 있으나 추후 1일 2회로 탐방 횟수 및 탐방 규모 확대가 계획 중인 구간입니다. -그 외 4개 코스는 상시 이용 주노선으로 조성된 걷기 여행길인 평화누리길을 중심으로 노선이 설정됩니다. •파주시의 지역 테마 노선은 개방된 시범사업 구간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단, 현 시범사업 구간은 임진강 생태탐방로 중 임진각관광지~통일대교 남단 일부를 도보로 이동하고, 그 외 구간은 차량으로 이동하는 구간으로 추후 도보로 이동 구간을 추가 확대하는 방안 마련을 요구됩니다.
리비사거리의 율곡로 횡단보도를 건너 뒤돌아 본다. 장마루 먹거리촌 홍보물이 가림벽에 걸려 있고, 진동로 뒤에 북진교(리비교)와 민통초소가 있다.
파평면 장파리 마을 입구에 매운탕촌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다. 진동로를 따라 장파1리 마을로 들어간다.
파평면 장파리 진동로 북쪽 보도에 라스트찬스 건물이 있다.
파주 라스트찬스(경기도 등록문화유산) : 한국전쟁 후에 만들어진 미군 장교 클럽으로, 임진강 건너 비무장 지대(DMZ) 지역에 주둔하던 미군을 위한 편의시설, 위락시설들이 세워질 때 만들어졌다. 건립 당시에 쉽게 제작하고 구할 수 있었던 시멘트 블록으로 외벽을 만들고, 지봉은 목조 트러스*에 슬레이트를 이었다. 도로변 출입구 쪽에 베란다가 설치돼 있으며 상부의 캐노피를 받치기 위한 브이(V) 자 모양 기둥이 가운데에 있고 양 끝에 수직으로 기둥이 세워져 있다. 베란다 외벽에는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조약돌을 이용해 모자이크로 장식해 놓았다. 한편 건물 내부 벽면에는 그리스신화의 아폴로 신과 헤라클레스, 한국 전통 사물놀이, 농촌 풍경 벽화 등 부조 벽화 10여 점이 남아 있다. '라스트찬스'는 인근의 '럭키 바', '재건중학교', '적성병원', '디엠지(DMZ)바', '퀸다방', '장풍정미소' 등과 더불어 한국전쟁 직후 미군 기지와 관련하여 만들어졌던 장파리 마을의 변천사를 담고 있는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목조 트러스 : 수평재 및 경사재를 삼각형으로 짜서 지붕을 지지하는 나무 지붕틀
라스트찬스 앞에서 리비사거리와 그 뒤 리비교로 이어지는 진동로를 바라본다.
장파1리 버스정류소 앞에서, 장파1리 마을에서 장파2리 마을로 이어지는 '장마루로' 남쪽을 살핀다.
장파리(長坡里)는 마을 서쪽에 임진강(臨津江)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있다. 동쪽의 낮은 구릉지를 제외하면, 마을에 전체적으로 농경지가 조성되어 있다. 자연마을로는 도장골, 버선거리, 봉우재, 붉은재, 송굿말, 안골, 양능굴, 양역골, 여음포, 장마루, 적성말, 주막거리, 천석굴 등이 있다. 봉우재는 마을 뒤에 봉화를 올리던 산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붉은재는 마을 뒷고갯길에 붉은 흙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양역골은 파발마와 군마를 사육하던 곳으로, 마을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이고 수양버들이 많았으며 역원이 있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여음포는 장단면 서포나루로 건너다니던 나루이다. 파평 윤(尹)씨 시조 윤신달이 파평산 밑 금강동에 살면서 개성을 오고갈 때 이곳에서 말에게 물을 먹였다 하여, 또는 말이 이곳에 도착하면 물이 말랐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적성말은 마을 주위에 성이 있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그러나 지금은 성의 흔적은 없고 주위 야산들이 첩첩이 드리워져 있어 마치 성으로 둘러싸인 듯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 두산백과
장파2리 마을회관에 정월대보름 장파2리 윷놀이대회를 알리는 알림막이 걸려 있다.
지난 시절의 추억을 일깨우는 연탄재가 장파2리 마을회관 맞은편 담벽 앞에 쌓여 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