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는 설을 안 쇤다.
설 날
1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들이고 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2 우리 언니 저고리 노랑 저고리 우리 동생 저고리 색동 저고리 아버지와 어머니 호사 하시고 우리들의 절 받기 좋아하셔요. | 3 우리 집 뒤뜰에는 널을 놓고서 상 들이고 잣 까고 호두 까면서 언니하고 정답게 널을 뛰고 나는 나는 좋아요 참말 좋아요
4 무서웠던 아버지 순해지시고 우리 우리 내 동생 울지 않아요 이 집 저 집 윷놀이 널뛰는 소리 나는 나는 설날이 참말 좋아요 |
이 동요는 1924년 일제 강점기 시절에 만들어진 윤극영 요/곡 이다. 동요 가사에 나오는 까치는 조류 까치와는 전혀 관계없다. 까치설을 ‘아찬설’이라고 했다. ‘아찬’이란 ‘작은’이란 뜻의 순우리말이다. 서울 용마산 옆에 있는 아차 산이나 홍성 오서산 옆에 있는 작은 산을 아차 산이라고 하듯이 ‘아차 산’은 ‘작은 산’이고 ‘아찬 설’은 ‘작은 설’이라는 뜻이다. 그러던 것이 ‘아찬’이란 말도 ‘아치’로 변하여 ‘아치 설’이 되었다. 그러다가 '아치 설'란 말도 사라지면서 ‘음운이 비슷한 '까치설'로 바뀐 것이라 한다. 이제는 어렸을 적부터 ’까치까치 설날은‘ 하고 부르며 살아왔으므로 까치설은 살아 있고 작은설은 뒷전으로 밀리었다. 하기야 설날 아침 일찍 까치가 많이 울기도 한다. 그래서 까치설은 더욱더 우리 곁으로 왔나 보다.
까치설과 관련된 말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작은 설빔인 까치설빔으로 입는 오색 옷감으로 지은 두루마기를 까치두루마기라고 하고, 까치설빔으로 입는 어린아이용 색동저고리를 까치저고리라 한다. 까치설빔으로 까치 옷(알록알록한 때때옷), 까치신발, 까치모자 등등이 있다. 까치가 작다는 의미로 쓰이는 말에는 까치고개, 까치다리, 까치발, 까치발 촛대, 까치선반, 까치작업대, 까치다리 빗, 까치다리 팔찌 같은 것이 있다. 식물이나 동물의 이름에서도 까치라는 접두사가 붙는 이름이 많다. 까치는 비슷하게 생기었으나 좀 작은 것들에게 붙이는 접두사이다. 예를 들면, 까치 비오리, 까치독사, 까치살모사, 까치복, 까치 돔, 까치상어, 까치고들빼기, 까치 개, 까치 다리, 까치수염, 까치밥, 까치밥나무, 까치박달, 까치 무릇, 까치콩 같은 것들이다. 까치에 대한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까치는 작지만 가능한 한 조금이라도 높이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의미로 ‘까치발’이라는 것이 있다. 앞에 키 큰 사람이 있어 앞을 보고자 할 때 뒤꿈치를 들어보는 까치발, 빨리 달릴 때 뒤꿈치를 들고 달리는 까치발, 뒤꿈치를 들고 걷는 까치걸음, 닭이 싸움할 때처럼 높이 뛰어 오르려 할 때는 까치발을 딛는다.
이와 비슷한 말로는 시렁이나 선반을 좀 높게 고정하려 할 때에 보조 품을 ‘까치다리’라고 한다. 까치다리는 선반이나 탁자 따위의 널빤지를 버티어 받치기 위하여 수직면에 대는 직각 삼각형 모양의 나무나 쇠, 빗변이 널빤지에서 누르는 힘을 받게 되어 있는 장식 자재이다. 이것도 ‘까치발’이라고도 한다. 까치발 지지대, 까치 꺽쇠/ㄱ자 벽걸이 대, 까치발 선반, 까치 받침대 같은 것들이다. 또 기와집에서 네 귀에 모두 추녀를 달아 지은 집 용마루의 양쪽 머리에 ‘ㅅ’ 자 모양으로 붙인 널빤지를 까치박공(牔栱)이라 한다.
작아서 귀엽고 낭만적인 의미로도 쓰인다. 뒤꿈치를 들고 걷거나 두발로 깡충깡충 뛰는 ‘까치걸음’, 발가락 밑에 살이 터지고 갈라져서 아프고 쓰린 곳을 ‘까치 눈’, 바닷가에 얇게 사라지는 ‘까치 노을’, 견우직녀가 만나는 칠석날 오작교를 빗대는 까치다리, 까치다리 촛대, 까치다리 빗, 까치 다리 팔찌 같은 것이 있다. 집에서 여자들이 사용하는 8각 모나 둥근 모양의 까치부채, 바닥 전체를 X 형으로 나누어 위아래는 붉은색, 왼편 누른색, 오른편 푸른색의 까치선(扇)도 있다. ‘까치 이빨’도 있다. 애기들이 젖니를 갈 때 젖니를 지붕에 던지면서 “까치야 까치야 헌 이 가져가고 새 이 달라”고 한다. 교훈적인 것으로는 까치밥이 있다. 감 같은 가을 과일처럼 나무의 맨 끝에 매달려서 따기 어려워 따지 못하거나, 또는 딸 수 있어도 양지양능(良知良能)으로 새들이나 짐승과 함께 먹기 위해 남겨놓은 것이다. 석과불식(碩果不食)이라 하듯이 씨 과실을 먹지 않고 새 농사의 씨앗으로 남기어 놓는 것을 까치밥이라 한다.
끝으로 필자는 ‘까치설’을 ‘작은 설’이라는데 대해 한번 생각해보고 싶다. 설날은 양력 24시간 체제에서는 1월 1일 자시(子時)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자시는 그믐날 11시부터 설날 1시까지이다. 12시 자정(子正)부터 설날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1시간이 그믐날에 걸쳐 있다. 그래서 1월 1일 설날은 그믐날에 1시간이 물려 있음으로 25시간이다. 설날이 24시간이 아니라 25시간이기 때문에 (큰) 설날이 되고, 그믐날 저녁 11시부터 12시까지는 작은설이 될 수 있다. 전에 부르던 아찬설, 아치설이란 말은 날이 덜 차서, 여물기를 기다려야 할 설, 아직은 더 커야 할 작은 설날이란 뜻도 된다. 또한 그믐날 저녁부터 설 준비를 하느라 집안이 설 분위기에 젖어있고 아이들도 설빔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들떠 있으니 작은 설날이기도 하다. 그믐날 저녁은 ‘일찍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무서운 말에 눈을 비비면서 설이 오기를 기다리는, 마치 설이 오는 것을 보기 위해 먼발치에서 까치발로 서서 기다리는 것 같아 ‘작은설’은 ‘까치설’이 되었다.
까치설로 부르다보면 설날 아침에 반갑게 울어주는 까치와 함께 설을 공감하고 싶은 너그러운 마음이 느껴진다. ‘까치설’로 굳어진 까닭은 ‘까치설’은 설날이란 동요가 생기면서부터이다. 동시에서 ‘까치 까치 설날’이 ‘우리 우리 설날’과 어울리는데 ‘우리 우리 설날’이 ‘우리 설날’이란 뜻으로 되듯이 ‘까치 까치 설날’도 ‘까치설(작은 설)이라 하더라도 새 소식을 전하는 길조인 까치도 설을 쇤다고 연상하여 ‘까치설’이라고 부르게 되었을 수도 있다. 작은설을 ‘까치의 설’이 ‘까치설’이란 시어(詩語)로 바뀌인 것 같다. 마치 대중가요 ‘찔레꽃’에서 찔레꽃은 하얀 꽃인데 붉게 핀다고 하고, 동요 ‘섬 집 아기’에서 ‘섬 그늘’이 어딘지는 작가만이 아는 시어이므로 더욱 신비한 궁금증이 된다. [2020 0615]
[참고자료: 심의섭, 곰곰이 생각하는 隨想錄 3, <우민화의 떡밥, 노답의 타령>, 한국문학방송, 2021.10.5.: 155~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