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만스님 가르침 하나
見과 觀의 차이.
훈으로는 둘 다 '보다'이다. 볼견, 볼관이다. 훈에는 드러나지 않으나 둘에는 다른 것 즉 차이가 있단다. 이게 무얼까?
보만은 이걸 깨우치기 위해 예를 든다.
개에게 돌을 던지면 굴러가는 돌 쫒아가 본다(見). 사람에게 돌을 던지면
그 사람은 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던진 사람을 쳐다 본다(觀). 왜 던졌느냐 고 의심하고 따져보려하고 그 의미를 알아보려 한다.
이게 둘 사이의 차이란다. 하나가 즉물적인 시각적 봄이라면 다른 하나는 지성적, 지혜적, 의미적, 인과탐구적 봄이다.
사람은 왜 던졌느냐고 따진다. 왜는 던진 원인을 알아내려는 정신적 행위이다. 하나는 시각적 봄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적 봄이란다.
덧: 물음의 답은 즉각적으로 나온다.
개는 돌을 보나 사람은 던진 사람을 본다.
그런데 설명을 늘여나가다 보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어지러워진다.
經은 쉬운데 論이 더 어려렵게 만든다. 이제 더 어렵게 하는 疏가 나오게 된다.
(20241124 그려)
첫댓글 疏는 '소통할 소'라는 한자로, '소통(疏通)하다', '친하지 않다'를 뜻한다.
뜻을 나타내는 疋(짝 필)과 소리를 나타내는 㐬(깃발 류)가 합쳐진 형성자이다.
문서가 따로 존재하기는 하지만 疎(성길 소)와는 사실상 같은 글자로 취급되고 있다.
그러나 관습상 疎(성길 소)를 자주 쓰는 단어와,
疏를 자주 쓰는 단어가 따로 있기 때문에 두 한자는 구분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疎 하나만 상용한자로 채택하여
疏는 동음의 한자에 의한 바꿔쓰기 규칙에 따라 疎로 바꿔 사용하고 있고,
중화권에서는 반대로 疏만 상용한자로 채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