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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트레일 9구간 제2부
용봉사-용봉사입구회전교차로-하산마을회관-
용봉보건진료소-상산마을회관-용봉초등학교-
동막마을입구-홍천마을-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
20260507
1. 고암 이응노 생가 기념관
평화통일과 인류화해의 염원, 이응노 예술혼이 함께하는 곳
올해 1월 15일부터 안내 도보여행팀을 따라 동서트레일을 탐방하고 있다. 1구간부터 시작하여 지난 4월 16일 7구간까지 탐방을 마쳤다. 그런데 8구간을 건너뛰어 9구간부터 탐방한다고 한다. 그대로 진행하면 좋을텐데, 주최측에서 결정한 일이니 따를 수밖에 없다. 5월 7일 동서트레일 9구간 탐방을 위해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윤봉길 의사 유적' 주차장에 도착하여 9구간을 탐방하였다. 동서트레일 9구간은 내포문화숲길의 내포역사인물길 1코스와 동일하다. 내포문화숲길 사이트에서는 내포역사인물길 1코스를 다음과 같이 개략한다.
"충의사~이응노생가기념관 11.1km, 우리나라 대표 독립운동가 윤봉길의사 사당인 충의사에서 출발하여 예산과 홍성의 경계인 뫼넘이고개를 지나 용봉산에 오르면 충남도청과 내포신도시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내포전망대와 작은 금강산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용바위, 병풍바위 등 수많은 기암괴석을 지나가게 된다. 특히나 홍성 신경리 마애여래입상의 섬세한 아름다움과 용봉사 마애불의 투박한 미소도 만나게 되며 이후 용봉산 아래 마을길을 따라가면 대한민국 미술사에 큰 업적을 남긴 고암 이응노 화백의 생가 기념관에 도달하게 된다."
위의 설명에서 뫼넘이고개를 예산과 홍성의 경계라고 하였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고 뫼넘이고개는 예산군 덕산면 둔리와 예산군 삽교읍 목리의 경계이다. 그리고 내포전망대는 용봉산전망대라고, 내포문화숲길·동서트레일 종합안내판에 분명히 적혀 있고, 이정목에도 그렇게 적혀 있다. 동서트레일 9구간 탐방 체험을 홍성군 홍북읍 신경리 용봉사를 경계하여 2부로 나누어 정리한다.
제2부(용봉사~이응노생가기념관) : 충남 홍성군 홍북읍 신경리 용봉사에서 동서트레일 9구간 남은 지역을 이어간다. 남은 지역은 홍성군 홍북읍 신경리와 상하리, 중계리 등 3개 지역이다. 용봉사에서 내려가 용봉산 입구의 홍북읍 신경리 상가 지역과 회전교차로를 지나 홍북읍 상하리 지역으로 넘어가 용봉산3길을 따라 홍북읍 상하리 하산마을을 지나간다.
상하리는 상산마을과 하산마을이 중심 지역인데, 하산마을은 용봉산3길에 자리하고, 상산마을은 용봉산3길이 이응노로와 만나는 곳에 자리하며, 용봉초등학교가 상산마을의 자존심처럼 반짝인다. 용봉초등학교 교가는 차령산맥과 용봉산, 홍주성을 숭앙한다. 차령산맥의 덕숭산, 상하리 북쪽의 용봉산, 남쪽에 솟은 백월산의 동쪽 홍주성을 용봉초등학교의 기상으로 받들고 있다. "차령의 정기 어려 하늘 열린 곳/ 영광과 번영의 터전을 닦아/ 슬기로운 건아 모인 우리 용봉교(1절 중에서)// 용봉산 봉우리에 구름 이는 곳/ 홍주성 뒷마을 향기가 높다/ 정의와 진리 닦는 우리 용봉교(2절 중에서)"
'이응노로'는 홍성군 홍북읍 중계리 홍천마을 출신의 고암 이응노 화가를 기리는 도로명이다. 동서트레일은 용봉초등학교 앞에서부터 용봉천 둑방길을 따라 이응노로와 동행하여 홍북읍 상하리 지역을 지나 중계리 지역으로 넘어간다. 용봉천 둑방길을 따라 용봉천을 거슬러 넓은 들녘의 평화로움에 젖어 중계리 동막마을과 홍천마을을 지나 이응노생가기념관에 이른다. 홍북읍 중계리는 북쪽의 용봉산과 서북쪽의 홍동산 능선을 경계하여 예산군 덕산면과 이웃하고, 남쪽의 백월산을 경계하여 홍성읍·구항면·갈산면과 이웃한다. 이응노생가기념관은 용봉산과 백월산 사이에 자리하며 북서쪽으로 넓은 들녘이 펼쳐진다. 용봉천은 그 들녘을 적시며 동진하여 삽교천에 합수한다.
홍북읍 중계리 들녘길은 평안하다. 부처님오신날의 봉축 표어 '마음은 평안으로, 세상은 화합으로'처럼 평안과 화합의 길을 따라 걷는 느낌이다. 홍성군을 대표하는, 북쪽의 용봉산과 남쪽의 백월산은 끊임없이 눈길을 끌며 걸어온 길과 나아갈 길을 보여준다. 들길의 풍경은 하천과 들녘, 산이 어우러져 넉넉하고 평안하며, 용봉산의 바위는 의지처럼 솟아 있다. 이응노 화가는 홍성의 이 풍경을 화폭에 담았을 것이다.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은 옛 홍주군과 결성군을 합한 군이다. 홍주는 본래 고려의 운주, 결성은 본래 백제의 결기현이었는데, 1018년 결성이 운주에 이속되었고, 운주가 홍주로 개칭되었다. 1914년 홍주군·결성군 및 보령군의 일부를 통합하여 홍성군이 되었는데, 이때 일제는 만해 한용운, 백야 김좌진, 홍주의병 등 홍주의 반일 분위기를 잠재우고, 같은 충남 지역에 위치한 공주와 일본어의 발음 구별이 어려워 행정적 불편을 피하기 위해 홍주군을 홍성군으로 개칭하였다고 한다."(홍성군청 참조)
홍주군(洪州郡)의 이러한 결기를 보여준 화가가 고암(顧菴) 이응노(李應魯, 1904~1989) 같다. "이응노가 살았던 시대는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의 치욕, 해방의 기쁨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던 격동기였습니다.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향한 고통도 있었습니다. 이응노는 우리 근현대사의 비극을 삶 속에서 고스란히 겪었습니다. 1960년대에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러야 했고 다시는 그리던 고국에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열일곱 나이에 상경해서 도쿄로, 다시 서울로, 또 파리로, 쉼없이 이어지는 긴 동선 속에서 예술 세계와 함께 한 인간의 의식 세계가 확장해 가는 여정 또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응노는 끊임 없이 낯선 것을 받아들여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마침내는 인종·남녀·노소·취향까지 융화시켰습니다. 안주(安住)는 감히 그의 삶과 화폭에 침범할 수 없었습니다. 그 든든한 뿌리가 되어 주었던 고향 홍성에서 이 모든 것들이 녹아 들어 오늘 우리에게 말을 건넵니다."(이응노생가기념관에서 인용)
이응노 생가터에 안채와 헛간채를 복원하고, 생가기념관, 북카페, 연밭, 창작스튜디오 등을 조성하여 '이응노의집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이 2011년 11월 8일 개관하였다. 연밭 둘레 뎈길을 걸어 복원한 생가 안채의 마루에 앉아 1989년 서울호암미술관에서 개최한 이응노 전시회를 추억했다. 그 전시회에서, 1967년 동백림 사건(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으로 수감되었을 때 옥중에서 휴지와 밥풀을 이용해서 만든 작품들과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언론을 통해 접하고 제작한 <군상> 시리즈 작품을 처음으로 만났다. 그의 뜨거운 창작열기에 얼마나 놀랐던가. 그의 대표작 '군상'은 이쾌대(李快大, 1913~1965) 화가의 '군상'과는 다른 수묵화의 선과 형상을 보여주는 독특한 그림으로 민중적 힘이 보여진다. 이응노 화가는 윤이상 음악가와 함께 과연 빨갱이일까? 빨갱이는 도대체 무슨 뜻인가? 1988년 이응노 화가의 동백림 사건 혐의는 풀렸다.
3.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13.4km
전체 소요 시간 : 4시간 52분
언덕에서 용봉사를 내려보았다. 바로 아래 지장전, 왼쪽 위에 대웅전, 왼쪽 맨 뒤에 산신각인 삼성각이 자리한다.
이곳에 용봉사 절이 있었는데, 평양 조씨 문중에서 명당에 자리한 용봉사를 폐허화시키고 묘지를 조성했다고 한다.
충의사 5.6km, 용봉사 0.1km 지점, 평양 조씨 묘지 바로 아래서 왼쪽으로 꺾어 용봉사로 내려간다.
갈림길에서 내려오면 내포문화숲길 이정목과 용봉사 설명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용봉사 :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修德寺)의 말사이다.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현존하는 유물로 볼 때 백제 말기에 창건된 사찰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용봉사에 1690년(숙종 16년)에 조성한 괘불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무렵 사찰이 존속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용봉사 영산회 괘불탱은 영산회상도로서 제작년도가 분명하고 기법도 뛰어나 199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현 사찰 서편의 조금 높은 곳에 있던 옛 절이 명당임을 안 평양 조씨(平壤趙氏)가 절을 폐허화시키고, 그 자리에 묘를 썼으며, 현존하는 사찰은 1906년에 새로 세운 것이다. 18세기 후반 무렵 폐사되었으나 1980년 무렵에 중창되었고 1982년에는 대웅전을 새로 지었다. 1988년에는 축대를 완성하고 그 뒤 극락전·산신각 등을 지어 오늘에 이른다. 옛 절터에는 1963년 보물로 지정된 홍성 신경리 마애여래입상과 절 입구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용봉사 마애불이 1985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는 등 많은 문화재들이 남아있으며, 1984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장방형 석조와 절구, 거대한 맷돌, 부도 등이 있다.
오른쪽 언덕 위 평양 조씨 묘지에서 왼쪽으로 내려와 갈림길에서 용봉사 설명안내판과 이정목 앞으로 내려왔다.
지장전 앞에 영산회 괘불탱 설명안내판이 서 있다.
영산회 괘불탱靈山會掛佛幀, 보물 1690년, 가로 5,5m, 세로 5,93m.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 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 그림이다. 용봉사 영산회 쾌불탱은 석가모니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석가모니를 화면 중앙에 배치하고 8대 보살, 10대 제자 등이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석가모니는 오른손을 무릎에, 왼손은 배의 중심에 갖다 댄 모습의 항마촉지인의 자세로 수미단의 연꽃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자세로 앉아있다. 양 옆으로 서 있는 8명의 보살 중 문수·보현보살은 연꽃 위에 각기 연꽃가지를 들고 서 있고, 관음보살은 화불化佛이 든 보관寶冠을 쓰고 있고 나머지 보살들은 각기 정병淨甁·경책警策·연꽃가지나 여의如意를 들고 있다.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격인 사천왕과 제석천, 범천이 보살들과 함께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사천왕은 석가모니의 오른편에 서·남천왕西·南天王이, 왼편에 북·동천왕北·東天王이 배치되었다. 제석천은 화관花冠을 쓰고 두 손을 모아 합장한 전형적인 보살의 형태이고, 범천은 원유관遠遊冠을 쓰고 조복朝服을 입은 제왕帝王의 모습이다. 그림의 윗부분엔 10명의 제자들이 있고 석가모니의 두광 좌우로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여래가 배치되어 있다. 주로 붉은색과 녹색을 많이 사용하였고 연녹색과 자주색 등의 중간색을 넣어 화면을 차분하고 온화한 분위기로 연출하고 있다. 이 그림은 1690년(숙종16)에 승려 화가 해숙海淑·한일漢日·처린處璘·수탁守卓 등 7명이 그렸다. 1725년(영조1)에 그림을 고쳐 그리면서 적어 놓은 글이 그림의 아랫부분에 있다. 1987년에 다시 보수하였다. 이 괘불도는 본존인 석가불의 크기가 작아진 점과 전체적으로 상·하 이단구도이나 군중들이 3열의 형식을 보이고 있어 엄격한 상·하 이단구도에서 탈피하였음을 볼 수 있다. 17~18세기 불화의 특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작품으로 회화사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여겨진다.
왼쪽의 괘불탱이 보물 '영산회 괘불탱(靈山會掛佛幀)'이 맞을까? 아니면 수장고에 보관하고 모사품을 전시하는 것인가?
용봉약수터 위 감실에 약사여래불이 봉안되어 있고, 오른쪽에 무너진 석탑 몸돌과 옥개석 등을 정리해 놓았다.
적묵당(寂默堂)의 종무소 벽에 '희망의 빛'이 적혀 있다.
언제부터인가 형체도 없는 공간에/ 나의 빛을 밝혀 왔다네// 어느 순간 그 공간에 한 줄기 빛이 내려와/ 희망의 빛이 되었다네// 그 빛은 보이지 않아도 빛나고 있다네/ 그 빛은 생각지 않아도 빛나고 있다네/ 그 빛은 느끼지 않아도 빛나고 있다네// 그 빛은 어떠한 그림자도 막을 수 없다네/ 그 빛은 어떠한 태풍도 근접을 못한다네/ 그 빛은 우리의 영혼을 밝혀주는 빛이라네
용봉사지 석조[龍鳳寺址 石造(석조石槽, 석구石臼, 마애磨磑)]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석조 장축 2,9m, 단축 1,36m, 높이 1,36m/ 석구 직경 0.68m, 높이 0.75m/ 마애 높이 0.75m. 용봉산의 남쪽 골짜기에 용봉사가 있다. 이 절의 서쪽 능선에는 고려시대 용봉사 터가 위치하고 있었다고 전한다. 이곳에 있던 석조石造를 현재의 위치로 옮겨놓았다. 석조石槽는 스님들이 물을 담아쓰던 용기로 직사각형 모양인데, 한쪽 모서리에는 배수구排水溝가 있어 넘치는 물이 흘러내릴 수 있도록 하였다. 석구石臼는 돌의 속을 파내어 그 구멍에 곡식을 넣고 찧던 돌절구로 네모난 모양으로 가공된 몸체에 팽이 모양의 둥그런 홈이 파여 있다. 마애磨磑는 일명 마대磨碓 또는 磨硸마학이라고도 하는데, 곡식을 가는 데 쓰는 맷돌로 네모난 모양으로 되어있다. 제작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사찰의 창건과 함께 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용봉사지석조(龍鳳寺址石造)에서 용봉사 적묵당(寂默堂)을 올려보았다. 스님들의 생활공간인 요사채와 종무소로 사용된다.
용봉사龍鳳寺,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의 말사로 절의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으나 사찰의 주변에서 발견되는 기와편으로 보아 백제 말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평양 조씨 가문에서 옛 용봉사 터에 묘를 조성하기 위해 용봉사를 폐사시켰다고 하는데, 평양 조씨의 묘비명으로 보아 1906년(광무10) 전후로 추정된다. 이에 주민들과 신도들이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면서 본래의 위치에서 약간 동쪽 아래로 옮겨진 상태이다. 용봉사의 가람배치는 남동향으로 3단의 대지를 조성하고 있는데, 최상단에는 60cm 정도의 높이로 축대를 쌓고 정·측면 각 3칸의 맞배지붕, 주심포 양식의 대웅전을 마련하였다. 그 아랫단에는 동편에 치우쳐 요사채가 있고, 서편에는 우물이 있다. 우물의 앞에는 탑재석과 목부분을 수리한 약사여래좌상 1구가 있다. 최하단에는 평탄대지와 구분하여 1단의 축대를 쌓고 동편에는 사지 주변에 있던 석조·맷돌·절구 등의 석제품을 옮겨놓았다. 현재 용봉사에는 대웅전, 지장전, 삼성각, 적묵당, 일주문 등의 건물이 있으며 주변에는 홍성 신경리 마애여래입상(보물 제355호), 영산회 괘불탱(보물 제1262호), 마애불(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18호) 용봉사지석조(석조, 석구, 마애.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62호), 부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68호)가 있다.
용봉산 용봉사 일주문으로 내려가는 동쪽 길 왼쪽에 병풍바위0.3km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일주문으로 내려가는 길 왼쪽에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높이 1m의 부도(浮屠)와 설명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부도란 승려의 유골을 안장한 묘탑墓塔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통일 신라시대 9세기 초에 처음으로 나타났다. 이 부도는 서쪽 능선의 옛 용봉사 터에 있던 것인데, 1906년경 평양 조씨 가문에서 문중의 선조묘先祖墓를 조성하면서 옮겼다고 한다. 3매의 화강암으로 조성된 부도는 대석臺石·탑신塔身·옥개석屋蓋石으로 구성되었다. 기단부인 대석은 6각형의 받침돌 형태로 만들었는데, 각 면에는 2엽葉의 복연複蓮을 조각하였다. 탑신은 구형球形으로 대석의 윗면 중앙에 놓여 있다. 옥개석은 6모 지붕으로 내림마루를 두면서 추녀 끝은 약간 반전反轉시켰으나, 마멸이 심하여 원래의 모습을 많이 잃었다. 상륜부相輪部의 장식이 남아있지 않으며, 둥그렇게 처리된 형태로 되어 있다. 원래의 모습을 많이 잃어 제작된 시기는 알 수 없다. - 설명안내판
부도를 살피고 일주문으로 내려가면, 길 오른쪽 바위면에 새겨진 마애불과 설명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용봉사 마애불(龍鳳寺 磨崖佛),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용봉사 마애불은 용봉산 자락에 병풍처럼 펼쳐진 바위에 돋을새김으로 새겨진 입상이다. 불상의 오른쪽 어깨에 정원(貞元) 15년이란 글이 있어 799년(신라 소성왕 원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마애불 중 제작 시기와 관련된 인물 정보가 남아 있는 매우 드문 사례로 통일신라 말기 불상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머리와 얼굴 부분이 뚜렷하게 돌출되었으며, 몸과 옷 주름은 얕게 조각되어 있다. 머리에는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가 있고, 귀는 어깨에 닿을 만큼 길다. 비교적 큰 얼굴과 가는 눈, 움푹 들어간 볼에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다. *육계 :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부 모양이 된 것.
마애불을 살피고 내려와 마애불을 뒤돌아보았다. 오른쪽 위에 부도(浮屠)가 있다.
용봉산 용봉사 일주문을 지나와서 걸어온 길과 용봉사 일주문을 뒤돌아보았다.
올해 불기 2570년 부처님오신날 봉축 표어 '마음은 평안으로, 세상은 화합으로' 알림막이 용봉사주차장에 걸려 있다.
내포사색길 출입구에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동서트레일은 구룡대안내소와 공영주차장 방향으로 내려간다.
산 전체를 뒤덮고 있는 기암괴석이 금강산과 비슷하다 하여 소금강이라고도 하는 용봉산(龍鳳山)! 고려시대에는 북산(北山), 조선시대에는 용봉산(龍鳳山)과 팔봉산(八峯山)으로 불렸다. 용과 봉황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용봉산에는 보물 '홍성 신경리 마애여래입상'을 비롯한 많은 문화유산이 곳곳에 남아있다. "용봉산의 빼어난 경관은 마치 먹으로 그린 산수화와 같다."(홍주목사 이안눌의 글 중에서) "팔봉산에 기묘한 바위들이 우뚝 솟아있으니, 그 풍경이 금강산을 닮아 작은 금강산이라 부를 만하다."(홍주목사 이수광의 글 중에서)
용봉산자연휴양림 표석 앞에서 구룡대교로 내려간다. 왼쪽에 용봉산 등산로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용봉산 등산로와 자연휴양림 안내도가 상세하다. "산세가 운무 사이를 휘도는 용의 형상과 달빛을 감아올리는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고 하여 용봉산이라 부른다. 홍성읍에서 4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차령산맥과 연결된 홍성의 북방을 막아주는 화강편마암의 돌산으로 해발 381m로 천년고찰 용봉사와 마애석불 등 문화유산이 산재되어 있다. 기암괴석마다 각양각색(병풍, 거북, 장군 등)의 형상을 하고 있어 제2의 금강산이라 부른다. 수려한 자연 경관과 함께 타오르는 듯한 일출 광경이 장관을 이루어 사시사철 등산객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구룡대교 출입구에 용봉산 시비가 서 있다.
"어디있나 금수강산/ 묻고물어 찾아왔네/ 한쌍거북 병풍지고/ 용바위에 올라서서/ 삿갓바위 벗어놓고/ 무릎아래 내려보니/ 그림같은 풍경들이/ 아름답게 펼쳐지네/ 기어올라 악귀봉에/ 땀흘리며 당도하니/ 노적봉에 하나가득/ 후한인심 담겨있고/ 오천군사 거느리며/ 앞서가는 장군 바위/ 백마타고 시위당겨/ 높은기상 으뜸일세" 一石 김현기 짓고 長江 변수길 쓰다
구룡대교를 건너서 걸어온 길과 구룡대교(九龍臺橋)를 돌아보았다.
용봉산1길을 따라 용봉산 입구 교차로 방향으로 내려간다.
용봉산자동차극장 넓은 터에서 용봉산 능선을 조망하였다.
앞쪽에 용봉산1길의 용봉산입구 교차로가 있고, 그 뒤에 도청대로의 용봉산사거리가 있다. 교차로에서 오른쪽으로 이어간다.
이응노생가기념관 4.2km, 용봉사 1.2km 지점의 용봉산입구 회전교차로에서 남쪽 방향으로 이어간다.
용봉산입구 회전교차로에서 도청대로의 용봉산사거리를 뒤돌아보았다. 홍북읍 신경리(新耕里) 내포신도시 방향이다. "홍북읍 신경리(新耕里)는 본래 홍주(홍성)군 치사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리와 자경리, 석교리, 갈산리, 택리, 대지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신리와 자경리의 두 음을 따서 신경리라 하여 홍북읍에 편입하였다."(홍성군청)
용봉산입구 회전교차로를 지나 주차장 옆 용봉산입구 버스정류장 앞에서 오른쪽 길로 이어간다.
진미면메밀막국수 앞을지나 앞쪽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이어간다. 정면에 악귀봉, 노적봉, 용봉산 정상과 투석봉이 보인다.
이응노생가기념관 4.0km, 용봉사 1.4km 지점의 사거리에서 왼쪽 용봉산3길을 따라간다.
용봉산3길에서 뒤돌아서 중앙 뒤의 용바위를 어림한다. 맨 왼쪽은 악귀봉인 듯.
용봉산2길은 홍성한우프라자를 돌아 왼쪽으로 올라가고, 용봉산3길은 사거리에서 서남쪽으로 이어진다.
홍성군 홍북읍 상하리 지역으로 넘어와 용봉산3길을 따라 내포성현교회를 지난다. "상하리(上下里)는 본래 홍주(홍성)군 홍천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하산리와 상산리 일부를 병합하여 상하리라 해서 홍북읍에 편입되었다."(홍성군청)
용봉산3길을 따라 홍북읍 상하리 들녘의 노랗게 핀 유채꽃밭을 지나간다.
용봉사 2.2km, 이응노생가 기념관 3.2km 지점, 홍북읍 상하리 지역의 카페 소리를 지나간다.
홍성군 홍북읍 상하리 하산마을회관 옆에 농산물 집하장이 있다.
용봉산3길을 따라 홍북읍 상하리 지역의 '카페 소리', '하산마을 농산물집하장', '하산마을회관&경로당'을 지나왔다.
용봉산3길을 따라 숲안농원을 지나간다. 오른쪽 앞에 용봉보건진료소가 보이고, 정면 중앙 뒤에 백월산이 솟아 있다.
용봉산 능선 동남쪽 홍북읍 상하리 지역에 용봉보건진료소가 자리한다.
용봉산3길을 따라 홍북읍 상하리 들녘을 지나 '이응노로'로 이어간다. 중앙 뒤에 백월산이 솟아 있다.
용봉산3길에서 용봉초등학교를 살폈다. 1949년 10월 홍북초등학교 상하분교 인가, 1957년 5월 용봉초등학교로 개교하였다고 한다.
홍성군 홍북읍 상하리 용봉초등학교 뒤쪽 용봉산3길에서 용봉산 능선을 뒤돌아보았다.
홍북읍 상하리 들녘의 밭에서 호밀을 베어 농기계를 이용해 소먹이풀 곤포사일리지를 만드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용봉산3길에서 '이응노로'로 나가 오른쪽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 방향으로 이어간다. 용봉천 건너편에 주차장이 있다.
이응노생가기념관 2.3km 지점, '이응노로'의 용봉산3길 출입구에 이정목이 서 있고, 바로 앞에 상산마을회관이 자리한다.
홍성군 홍북읍 상하리에는 상산마을과 하산마을이 자리한다.
이응노로를 따라 홍북읍 상하리 상산마을회관 앞을 지나 왼쪽 용봉천의 용봉교 앞으로 이어간다.
용봉천의 용봉교 북단에 이정목이 서 있고, 건너편에 주차장이 넓게 설치되어 있다.
용봉교 북단에서 용봉천 상류 방향과 이응노로를 바라본다. 이응노로 건너편에 용봉초등학교가 있다.
이응노로 북쪽에 용봉초등학교가 자리하며, 뒤에는 용봉산 능선이 이어진다. 용봉초등학교는 1957년 5월 개교하였다고 한다.
용봉초등학교 맞은편 용봉천 둑방에 공중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으며, 동서트레일은 용봉천 둑방길을 따라 이응노로와 동행한다.
공중화장실 옆에 등산객 먼지털이기가 설치되어 있고, 동서트레일은 용봉천 둑방길을 따라 올라간다.
공중화장실 위쪽의 등벤치가 설치된 쉼터로 걸어와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한다. 12:49~13:08
홍성군 홍북읍 상하리 용봉천 둑방의 공원에 쉼터정자가 조성되어 있다.
이응노생가기념관 1.8km 지점, 용봉천 둑방공원 서단(西端)의 '이응노로'로 나가는 갈림길에서 둑방길을 계속 따라간다.
홍북읍 상하리 용봉천 둑방의 비닐하우스밭에서 용봉산 능선을 다시 바라보았다.
용봉천 둑방길을 따라 용봉천 징검다리가 놓여 있는 곳을 지나 '이응노로'로 나간다.
이응노로 옆 용봉천 둑방의 나무뎈길을 잠시 따라가다가 이응노로와 헤어져 용봉천 둑방길로 이어간다.
이응노로와 헤어져 용봉천 둑방길에서 서북쪽으로 예산군 덕산면과 경계를 이루는 홍동산 산줄기를 어림한다.
홍북읍 상하리에서 중계리로 넘어와 용봉천 둑방길을 따라간다. 왼쪽에 백월산이 솟아 있고, 오른쪽 위에 중계교가 보인다.
용봉천 둑방길에서 이응노로의 중계교 앞에서 이응노로를 가로질러 동막마을 입구로 이어간다.
이응노로의 중계교가 용봉천 위를 가로지르고 정면에 백월산이 솟아 있으며, 오른쪽 이응노로183번길을 따라간다.
이응노로183번길을 따라 홍북읍 중계리 동막마을로 이어간다. "중계리(中溪里)는 본래 홍주(홍성)군 홍천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상동막리, 중동막리, 하동막리, 동계리와 중리, 상산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중리와 동계의 이름을 따서 중계리라 하여 홍북읍에 편입하였다."(홍성군청)
홍성군 홍북읍 중계리 동막마을 입구에 동막마을 표석과 목장승 두쌍이 서 있다.
오른쪽은 홍북읍 중계리 동막마을로 올라가는 이응노로183번길이고, 동서트레일은 왼쪽 용봉천 둑방길을 따라간다.
위쪽은 중계리 동막마을을 흘러내려와 용봉천에 합수하는 지류이며, 나무뎈다리를 건너 용봉천 왼쪽 둑방길로 건너간다.
용봉사 4.5km, 이응노생가기념관 0.9km 지점의 나무뎈다리 북단(北端)에서 중계리 들녘과 용봉산을 다시 바라본다.
용봉천 지류의 나무뎈다리를 건너 용봉천 둑방길을 따라간다. 왼쪽 건너편은 중계리 홍천마을이며, 중앙 뒤에 백월산이 솟아 있다.
해발 397m 일월산(日月山)은 충남 홍성군의 홍성읍과 구항면의 경계부에 위치한 산이다. 이 산줄기는 북으로 뻗어 군의 흥북면을 비롯하여 예산군 덕산면과 경계를 형성한다. 일월산은 백월산(白月山)이라고도, 또 월산(月山)으로도 불린다. 이 산은 홍성읍에서 서쪽 방향으로 4㎞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홍성의 진산이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 "월산(月山)은 결성현 동북쪽 23리, 홍주 서쪽 3리에 위치하며 홍주의 진산에 해당한다. 남포현의 북쪽을 흐르는 용골천(龍骨川)의 발원지 두 곳 가운데 한 곳이 홍주 월산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법화사(法華寺)와 서방사(西方寺) 모두 월산에 있다는 기록과 고려시대 석성 월산성(月山城)의 둘레가 9,700척이며 안에 우물 1곳이 있다는 기록도 같은 책에 수록되어 있다.『여지도서』에는 월산과 백월산(白月山)이 병기되어 있으며, 남쪽의 오서산(烏棲山) 줄기가 북으로 이어진 홍주읍의 주산(主山)이라고 기록하였다.『해동지도』(홍주)와『1872년지방지도』에서는 '백월산(白月山)'으로 표기하였으나,『해동지도』(결성)에서는 월산으로 표기하여 지방에 따라 표기가 다르다. 『구한말지형도』에서도 월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홍성읍 월산리는 이 산에서 유래한 마을 이름이다. - [네이버 지식백과]
용봉천 건너편에 이응노로가 지나고 길 옆에 홍천감리교회가 자리한다. 정면 뒤에 백월산이 솟아 있다.
정면의 백월산을 바라보며 홍북읍 중계리 용봉천 둑방길을 따라 올라간다. 비닐하우스 밭 오른쪽 뒤에 '이응노의 집 창작스튜디오', 그 왼쪽 뒤에 이응노생가기념관이 보이며, 정면에 백월산이 솟아 있다.
'이응노의 집 창작스튜디오'는 기념관 근처에 쓰임을 다하고 버려진 낡은 축사(우사)를 리모델링하여 2017년 컨테이너형 창작스튜디오로 재구성했습니다. '이응노의 집 창작스튜디오'의 미션은 ‘고암의 예술 정신’을 계승하여 입주 작가의 작업 세계를 확장시키고, 예술을 매개체로 ‘이응노마을’과 소통하는 것입니다. 이응노의 집은 여러 해의 연구와 준비를 거쳐 2017년부터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입주 예술가에게 안정적인 개인 창작 공간과 생활 공간 및 창작 지원비를 지원하여 창작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합니다. 축사 구조를 살린 공간이 이 지역 농촌 마을의 옛 생태를 간직하듯, 작가와 지역 주민의 소통을 위한 연계 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써 주민의 예술 문화 향유 기회를 넓히고 예술 문화 지역 특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 이응노생가기념관 https://www.hongseong.go.kr/leeungno
고암 이응노 생가 앞에 넓은 연밭이 조성되어 있다. 연빝을 오른쪽으로 돌아 이응노 생가로 이어간다.
이응노의 집 곳곳을 이어 주는 산책로와 밭두렁길에는 유유히 걷다 쉬어갈 수 있도록 쉼터와 테크를 마련했습니다. 어린 날 이응노를 품어주었던 그 자연 속으로 한 걸음 더 내딛어 보세요. 곳곳의 이름 있는 나무들은 고암이 손자에게 보내는 글에서 마당에 심어 놓으라고 당부했던 나무들이랍니다. 용봉산과 월산, 그리고 하늘을 담은 연밭은 한 해 내내 낮은 곳에서 물의 덕을 가르치고, 한여름에는 만개하는 연꽃이 장관을 이룹니다. 해마다 연밭에서 거두어 마을 주민들이 직접 덖은 별미 연잎차는 북 카페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 이응노생가기념관 https://www.hongseong.go.kr/leeungno
이응노 생가는 안채와 헛간채로 복원되었다. 왼쪽 앞에 이응노 생가터 설명안내판, 헛간채 벽에 알림막이 설치되어 있다.
●화가의 꿈이 시작된 곳. 희망과 열정으로 꿈을 키우고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간 자리. 평화통일과 인류화해의 염원, 그의 예술혼이 함께하는 곳.(생가터 설명안내판)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말했지만, 나는 남몰래 가벼운 마음으로 줄곧 그리고 또 그렸다. 땅 위에, 담벼락에, 눈 위에, 검게 그을린 내 살갗에, 손가락으로, 나뭇가지로, 혹은 조약돌로. - 고암 이응노, 1971년.(헛간채 벽의 알림막)
이응노 생가터 안채 앞에 전통체험 프로그램 지승제조 교육 알림막이 세워져 있다. 지승제조(紙繩製造)는 한지를 끈으로 만들어 그릇 등의 물건을 만드는 일이라고 한다.
이응노 생가터 마당에서 북쪽으로 용봉산을 바라보았다.
이응노 생가터에 복원된 고암 이응노 생가를 다시 돌아보았다. "이응노 생가 그림 속에서 살려낸 고향의 초가집 : 월산과 용봉산 사이 중계리 홍천마을에 고암의 생가지가 있습니다. 이응노는 1940년대에 고향집 스케치를 여러 장 남겼습니다. 그 고향집 그림들과, 자신의 옛집에 대해 “수양버들이 늘어진 사이로 옛집의 기역자 모습이 보이고”(「우짖는 솔바람/시원한 내 고장 충남 덕숭산」1958년)라고 서술한 글 등을 참고하여 2010년에 현재의 안채와 헛간채를 새로 지었습니다." - 이응노생가기념관 https://www.hongseong.go.kr/leeungno
20세기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고암 이응노는 1904년 홍성에서 태어나 열일곱 살까지 살았다. 이후 예산과 서울을 거쳐 일본에서 공부한 그는 미대 교수가 되어 일찌감치 한국의 주요 작가로 떠올랐다. 프랑스로 건너가 당시 한국인으로선 실로 드물게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던 그는 환갑을 지난 60대에 접어들며 전혀 예상 못한 운명과 마주치게 된다. 분단국가의 예술인으로 태어난 까닭에 자기 나라에서 추방당하는 비극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고암은 1967년 한국은 물론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에 휘말려 한국에 도착하자마다 끌려갔다. 수많은 문화예술인, 학자와 유학생들에게 간첩과 만났다는 혐의가 씌워졌다. 작곡가 윤이상은 무기징역, 이응노는 징역 3년을 선고받는 등 모두 34명이 유죄 선고를 받았지만, 이후 대법원에서 간첩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시 영구 집권을 노리던 박정희 정권이 간첩 사건을 조작해 여론몰이 정치 공작을 하려던 것이 아니냐는 평가를 받는 이 사건은 지금까지 그 진상은 제대로 밝혀진 것은 없고, 그 피해자들은 ‘빨갱이’란 낙인이 찍혀 가혹한 가시밭길을 걸어야만 했다. 이응노 화백은 이후 영원히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1989년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응노 화백은 개인의 인생이 곧 한국 현대사였고, 냉전 시대의 질곡을 그대로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이런 개인적 고초를 극복해가면서 한국적인 정서를 담아 세계인들이 공감하는 미술 세계를 일궜다는 점에서 한국 문화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가 타계한 뒤 고국에는 그를 기리는 두 건축물이 들어섰다. 대전에 2007년 이응노미술관이 문을 열었고, 고향 홍성에는 2011년 그의 생가 기념관인 ‘이응노의 집’이 완공됐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응노의 집 - 돌아온 혼백을 맞이하는 고향집 (한국의 현대 건축, 구본준)
이응노생가 기념관 앞의 북카페와 자료실을 살폈다.
이응노의 집에 들르면 햇볕이 잘 드는 남향의 북 카페에 않아 보세요. 너른 들판 풍경을 마주하며 고암이 그리던 풍경과 전시의 여운을 더 느끼는 시간입니다. 북 카페에는 기념관 전시도록을 비롯해 다양한 예술 관련 서적들과 어린이를 위한 책도 갖추어져 있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직접 덖은 따뜻한 차와 함께 고요함을 드리고 싶습니다. - 이응노생가기념관 https://www.hongseong.go.kr/leeungno
이응노생가 기념관으로 들어가 전시실을 관람한다.
고암 이응노 생가 기념관은 한 해 중 언제 방문하더라도, 늘 고암 이응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열린 공간입니다. 고암 이응노의 예술 세계에 한층 깊고 풍성하게 다가가도록 상설 전시와 더불어 해마다 다양한 기획 전시를 개최합니다. 2012년부터 고암 이응노를 선양하고자 ‘고암미술상’을 제정해 시행합니다. 격년제로 이응노의 예술 정신을 동시대에 새로이 이어내는 한국의 현대 미술가 한 명을 시상하고, 그 이듬해 수상 작가의 작품 세계를 펼쳐 보이는 <고암미술상 수상 작가 특별전>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응노가 화가의 꿈을 키운 이 뜰에서 해마다 5월 둘째 주 토요일에 ‘전국 고암 이응노 미술대회’가 열립니다. 입상한 어린이 작품은 6월에 기념관에 전시됩니다. 가을이 깊어갈 무렵이면 한 해 동안 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해 마을에 살았던 젊은 작가들의 ‘입주 작가 개인전’이 개최되지요. 고암 이응노 생가 기념관은 자연과 어우러진 미술관이라는 특별한 장에서 일상의 경험을 재발견하는 교육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전시와 연계된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부터 미술관 관련 진로를 탐색할 수 있는 청소년 프로그램과 성인 대상의 인문 예술 기행까지, 생동감 있는 예술 현장 경험과 대상에 맞춘 눈높이 교육을 지향합니다. - 이응노생가기념관 https://www.hongseong.go.kr/leeungno
그가 타계한 뒤 고국에는 그를 기리는 두 건축물이 들어섰다. 대전에 2007년 이응노미술관이 문을 열었고, 고향 홍성에는 2011년 그의 생가 기념관인 ‘이응노의 집’이 완공됐다. 모두 한국 현대건축에서 주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두 건물은 사뭇 다르다. 프랑스 건축가 로랑 보두엥이 이응노 화백의 ‘문자 추상’에서 디자인 모티브를 얻어 설계한 이응노미술관은 대전 시내에 있는 건물답게 현대적이다. 죽죽 뻗은 수직 수평 구조체들이 교차하는 지붕이 강력하게 존재감을 만들어낸다. 반면 홍성 이응노의 집은 전원 속에 들어간 작고 소박하고 차분한 건축이다. 그럼에도 다른 건물에선 만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장면들과 이야기를 그 안에 품고 있다. 여러 가지 건축적 가치를 담아낸 점을 높게 평가받아 2013년 한국건축문화대상을 받았다. 이응노의 집은 홍성군이 고암을 기념하는 사업으로 추진하여 설계 경기로 당선작을 뽑았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미술관 등 문화시설 설계 경기는 유명 건축가들에겐 오히려 피하고 싶은 일이자, 당선되기도 어려운 뜨거운 감자다. 건축주는 시민들이어도 발주처인 지자체의 간섭이 심하고, 새롭고 문화적인 시도보다는 공무원 입맛에 맞는 엇비슷한 건물만 주로 지어지는 탓이다. 이런 실정 속에서 이응노의 집이 지역 공공건축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평을 들으며 2010년대 한국 현대건축의 주요작으로 탄생한 것은 당선자가 조성룡 건축가였던 덕분이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응노의 집 - 돌아온 혼백을 맞이하는 고향집 (한국의 현대 건축, 구본준)
이응노 생가기념관 출입문을 들어서면 벽면에 기념관과 고암 이응노(1904, 홍성~1989, 파리) 소개글과 뮤지엄맵이 그려져 있다.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이응노의 집)은 오랜 준비 끝에 2011년에 개관했습니다. 1904년 홍성에서 태어나 1989년 파리에서 생을 마감한 미술가 고암 이응노는 우리 근현대사가 지닌 굴절과 비극을 자신의 삶 속에서 고스란히 겪어낸 인물이었습니다. 열일곱 살에 상경한 이후 도쿄, 서울, 파리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이동 속에서 그는 낯선 환경과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을 융합하는 독자적인 화법을 완성해 나갔습니다.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은 예술가 이응노를 기리는 기념관이자 미술관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이후 7,000여 권의 전문 서적을 소장한 예술문화 자료실과 입주 예술가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창작스튜디오 등 다양한 시설과 프로그램을 확장시키며, 새로운 예술을 품은 마을, 마을과 소통하는 예술 공간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2013년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한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은 굽이치고 비탈진 옛 마을 길의 선형을 따라 걸으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 공간을 거닐며 고암 이응노가 살아낸 치열한 20세기의 시간과 예술가의 정신을 함께 사유해보시기 바랍니다.
◆홍성 땅에 깃든 이용노의 켜 : 고암 이응노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홍성의 땅에는 그의 예술혼이 켜처럼 깊이 스며 있습니다. 선생의 생가 터에 '고양이음노생가기념관'을 새로 짓는 과정은, 이 땅에 남아 있던 그 켜를 찾아 다시 드러내고자 하는 시도였습니다. ◆되살린 고향의 길과 풍경 : 이곳을 찾는 이들은 예부터 쌍바위골 사람들이 아침저녁 오가던 다리를 건너 시골길을 따라 자연스레 이 집에 이르게 됩니다. 숲 자락에 조용히 자리한 건물이 농촌 풍경과 어우러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오래된 지도에 나온대로 구불구불 되돌려 놓은 길을 따라 연발과 발두렁을 거닐 수도 있습니다. 선생의 고향집 그림대로 지은 초가 곁으로 대숲과 채마밭을 두어 원래 그렇게 있었던 듯 되살렸습니다. 고암 선생이 늘 보던 그 고향 풍경을 다시 보고 싶었습니다. 그 풍경은 우리 마음속 자리한 고향 풍경이기도 합니다. ◆빛과 공간이 만들어내는 전시의 결 : 전시 공간은 산기슭의 완만한 경사를 따라 길게 배치된 홀과, 그 안에 서로 다른 성격의 네 개 전시실이 이어지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시실 사이의 열린 틈으로 햇빛과 풍경이 드나들며 종일 전시홀의 곁을 드리옵니다. 기념관 외관의 부드러운 황토 질감과는 달리 내부 전시 홀에서는 절제된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이는 단순히 예술을 향해 걷는 길이 아니라,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근현대사의 굴곡 위를 따라 걷는 길이며, 그 속에서 균질된 삶을 견뎌야 했던 한 사람 고양 이응노 선생을 만나러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이 펼쳐지는 순간 : 고암 선생이 그리던 고향 마을과 그가 걸어갔던 이 길을 따라 오늘 이곳을 걷는 여러분의 마음이 서로 어우러져, 새로운 예술의 키와 새로운 역사의 키가 이 땅에서 다시 펼쳐지기를 바랍니다. - 조성룡, 2011년
'전시실1'은 고암 이응노 상설전시장으로 '톺아보기' 제목이 붙어 있다.
고암 이응노(1904~1989) 화가의 생애를 도표화한 연보가 전시실1 한쪽 벽을 차지한다.
전시실1 톺아보기에 영차영차, 추상, 군상 등의 작품, 이응노 화가 관련 사진과 편지 등이 전시된다.
《확장되는 선》을 주제로 2025년 12월 22일~2026년 7월 12일, 전시실2와 3, 4에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고암 이응노의 작품을 '선'이라는 조형 요소를 통해 바라보는 소장품 기획전시이다. 고암의 여정을 '확장되는 선'을 주제로 하여 ‘사유하는 선 - 변화하는 선 - 이루는 선’이라는 흐름으로, 각 시기 작품에 드러나는 선의 다양한 면모와 조형적 변화를 살펴보는 자리라고 한다.
확장되는 선 : 고암 이응노의 예술세계는 한 사람의 생애를 넘어 시대와 사유를 관통하는 ‘선(線)’의 여정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선은 그에게 단순한 출발점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었으며 삶과 예술을 잇는 하나의 정신이었습니다. 이번 전시《확장되는 선》은 고암의 작업이 전통에서 현대로, 개인의 표현에서 공동의 움직임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따라가며 예술가가 탐구한 선의 의미를 다시 마주하는 자리입니다. 초기 작업은 전통 회화의 재료인 종이와 먹, 붓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이 시기의 핵심은 재료 자체보다 세상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법으로서 '선'을 익혀 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연필을 사용한 드로잉 또한 이러한 조형 감각을 다져가는 기초적 연습으로 이후 수묵화에서 문자 형태의 변형으로 이어지는 실험을 준비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 안내문
전시실2, 사유하는 선 : 이번 공간에서 만나는 작품들은 대상의 형태를 충실히 관찰하면서도 그 속의 움직임과 리듬을 함께 담아내려는 작가의 시도를 보여줍니다. 반복되는 선의 흐름 속에서 고암은 형태를 단순화하고 여백을 사유하며, 자신만의 시선과 호흡을 구축해 갔습니다. 초기는 고암 예술세계의 기초가 다져지는 시기이자, 선이 단순한 묘시에서 벗어나 작가의 정신과 감각을 드러내는 표현의 주체가 되는 순간입니다. 담백한 선의 결을 따라가며 한 예술가의 조형세계가 어떻게 처음 열리기 시작했는지 느긋하게 마주하시길 바랍니다. - 안내문
전시실3과 4에서는 '변화하는 선'과 '이루는 선'을 주제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실 3, 변화하는 선. 1950년대 이후 고암 이응노의 작업은 전통적 표현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조형적 가능성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 시기의 작품에서는 선이 더 이상 대상을 따라가는 윤곽선에 머물지 않고, 면과 질감, 문자 형태가 조형적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화면 구조를 만들어냅니다. 문자 형태를 단순화하고 변형하는 시도, 서로 다른 종이를 겹쳐 붙이는 실험적 작업은 고암이 화면의 구성과 표현 방식을 새롭게 탐구하던 전환점을 보여줍니다. - 안내문
전시실 4, 이루는 선. 시간이 흐르며 응축된 형태로 발전하게 된 작품을 보여줍니다. 1960년대 후반 이후 등장하는 <군상(群像)>은 무수한 선들이 모여 인간의 몸짓과 움직임을 이루는, 고암 예술세계의 중요한 정점입니다. 반복되고 흐르는 선들은 서로 연결되고 흩어지며, 한 사람의 형상을 넘어 여러 존재가 함께 만들어내는 리듬과 관계를 드러냅니다. 군상은 고암이 오랫동안 탐구해 온 선의 가능성이 집약된 결과이자 개인의 표현에서 출발한 조형 언어가 공동의 움직임으로 확장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선이 화면의 구성 요소를 넘어 삶의 움직임과 인간의 연대까지 포착하는 표현으로 발전해 가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고암의 선은 조용하면서도 끊임없이 흐르며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세계를 그려냅니다. 작품과 함께 선이 만들어내는 관계의 흐름과 조형적 울림을 천천히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 안내문
기획전시실에서 2026년 4월 28일~ 2026년 7월 12일,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을 탐구하는《같이, 다르게》전시를 하고 있다.
우리는 작품 앞에 서서 작품을 바라봅니다. 하지만 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사람마다 다른 것을 발견합니다. 누군가는 색을 먼저보고, 누군가는 형태를 따라가며,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안에서 이야기를 떠올립니다.《같이, 다르게》는 작품을 감상하는 다양한 방법을 탐구해보는 전시입니다. 작품을 이해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 먼저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바라보는 위치와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감상의 경험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멀리서 바라보거나 가까이에서 자세히 살펴보고, 작품의 한 부분에 집중해 보는 과정 속에서 작품은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이 공간에서 여러분은 하나의 작품을 여러 방법으로 감상하고, 그 경험을 기록하며 다른 사람들과 나누게 됩니다. 같은 작품 앞에 서 있지만 우리가 발견한 장면은 서로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술관은 정답을 찾는 곳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선과 생각을 발견하는 공간입니다. 이제, 당신만의 방식으로 작품을 바라보아 주세요. - 안내문
작품의 제목을 가리고 <같이 다르게> 감상해 보기를 권유한다. 134x57.5cm, 한지에 수묵담채, 1982년, '기러기 떼' 작품이다.
이응노생가기념관을 대충 살피고, 기념관 남쪽 출입구에 있는 동서트레일 9·10 시종점으로 이어간다.
고암 이응노 생가기념관 남쪽 출입구 용봉천 둑방에 동서트레일 9·10 시종점이 있다.
이응노생가기념관 남쪽 출입구 동서트레일 9·10 시종점에 내포문화숲길 이정목 등이 설치되어 있다.
고암 이응노 생가기념관은 이응노가 탄생하고 유년을 보냈다는 충남 홍성군 홍북읍 중계리의 낮은 산자락 끝에 자리잡고 있다. 고암 이응노 생가기념관은 대지 면적 2만여㎡, 건축 면적 1천여㎡로 전시 홀, 북 카페, 다목적실 등 전시 시설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과 초가로 지은 생가, 연밭, 산책로 등을 갖춘 기념관이자 미술관이다. 이응노 개인을 기리고자 마련된 이 생가기념관은 그 자신이 미술가였기에 기능면에서 전시와 수장 공간이 반드시 필요한 미술관의 성격이 한층 더 강하다. 이런 의미에서 '고암 이응노 생가기념관'은 기념관은 물론, 미술관의 측면에서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 설명안내판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 설명안내판 옆에 동서트레일 9·10구간&내포역사인물길 1·2코스 안내판이 서 있다.
동서트레일 10구간은 동서트레일 9·10 시종점에서 정면에 보이는 백월산을 넘어 홍성군 구항면 황곡리로 내려간다.
용봉천에 기념관을 출입하는 징검다리가 놓여 있고, 오른쪽에 기념관주차장, 정면 뒤에 용봉산이 솟아 있다.
이응노생가기념관 출입구 남쪽에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고, 그 앞에 이응노생가기념관 안내도와 전시회 알림막이 설치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