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오리골 옥수수와 메맠 하이볼
엊그제 평소 가까이 지내는 동네 이웃 한 분이 직접 농사지은 옥수수 한 박스를 가져오셨다.
이 무더위에 직접 수확한 것임을 잘 아는지라, 황송한 마음으로 고맙게 받아두었다.
옥수수는 재배 면적도 제법 넓어야 하고, 수확철 또한 이처럼 한여름 찜통더위 속이다. 그래서 내 텃밭 작물 목록에는 애초부터 들어 있지 않다. 필요하면 동네 농가에 부탁해 사 먹는 정도다.
옥수수는 역시 갓 딴 것을 바로 삶아야 제맛이다. 시간이 지나면 당분이 전분으로 변해 단맛이 떨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어제는 아내를 도와 마당에 걸어둔 양은솥에 한솥 가득 삶았다. 장작불 연기에 눈물 콧물까지 질금거리면서 말이다.
오늘도 한낮 기온이 35~6도를 오르내리는 찜통더위인지라, 나는 책둥지에 틀어박혀 방콕 중이다. 어제 쪄둔 옥수수를 하모니카 불 듯 한 알 한 알 뜯어 먹으며 빈둥거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그러고 보니 버번 위스키가 옥수수로 만든 술이지!”
하여 구석배기 장 속에 장기간 고이 모셔둔(?) 각종 양주들 틈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버번위스키인 메이커스 마크(Maker’s Mark), 이른바 ‘메맠’을 용케 찾아냈다.
버번은 미국을 대표하는 위스키로, 곡물 원료 가운데 옥수수가 51% 이상 들어가야 한다. 내가 찾아낸 메이커스 마크는 알코올 도수가 45%. 내게는 결코 만만한 도수가 아니다.
일단 스트레이트로 한 모금 맛을 보았다.
“음… 역시 나는 서부극에 나오는 현상금 사냥꾼은 못 되겠구나.”
곧바로 토닉워터를 1 대 3으로 붓고 아이스 큐브 몇 조각을 띄웠다. 이렇게 내 방식의 ‘메맠 하이볼’이 만들어졌다다.
내 오랜 절친들 가운데에는 주류 근본주의자(?)들이 몇몇 있다. 이들은 위스키나 버번은 그 순수한 맛과 향을 보존한 채 마셔야 한다며, 술을 다른 무엇과 섞는 행위 자체에 강한 거부감을 보인다.
그 마음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선천적으로 술에 약하다.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인 ALDH2가 부족한 체질이라 독한 술을 그대로 마시면 금세 부담이 온다. 그러니 나는 섞는다. 소주도 원조 두꺼비는 독해서 콜라라도 타서 마신다.
술은 무엇보다 자신의 몸과 취향에 맞게 즐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오늘의 메맠 하이볼은 뜻밖에도 삶은 옥수수와 아주 잘 어울렸다.
사실 나는 그동안 버번에 별 관심이 없었다. 미국 유학 시절에도 마트에 가면 포도주나 포도주를 증류한 브랜디 쪽에 눈길이 갔지, 짐빔 같은 버번은 왠지 싸구려 술처럼 여겨져 별로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오후, 지오리골에서 갓 수확한 옥수수와 미국 켄터키산 버번위스키가 만났다.
이 조합, 과연 환상이었다.
그러다 문득 ‘메맠’이 어쩌다 내 주류 보관장에 들어와 있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여러 해 전 미국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참석했을 때였다. 메이커스 마크는 병목에 빨간 왁스를 흘려 봉인한 독특한 병 모양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촛농이 흘러내린 듯한 그 모습이 근사해서, 사실은 술보다 병이 마음에 들어 하나 사온 것이었다.
그 뒤로 여러 해 동안 마시지 않고 고이 모셔두었던 술이 오늘에야 비로소 화려하게 등판한 셈이다.^^
연일 35~6도를 오르내리는 삼복더위.
나는 오늘 오후 지오리골에서 이 역대급 더위를 나름대로 희롱하고 있다.
뒷산 잣나무 숲을 스쳐 내려오는 한 줄기 서늘한 바람, 그 바람에 실려오는 쓰르라미의 청량한 합창소리, 그리고 넓고 시원한 합죽선을 연상시키며 한들거리는 칸나의 푸른 잎.
그 풍경을 바라보며 손에는 아이스 큐브가 동동 떠 있는 메맠 하이볼 한 잔을 들고 있다.
이 정도면 더위와 한판 겨뤄볼 만하지 않은가.
적당한 반주는 하느님도 장려하신다는데…….
그러니 이 무더위에 기죽지 마시고 모두 함께 건배합시다.
“적당한 반주는 하느님도 장려하신다!”
적반하장!!! 😄🥃🌽
첫댓글 "갓 삶은 옥수수에 메맠 하이볼이라니 정말 최고의 조합이네요! 시원하고 멋진 여름날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