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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DOORS HISTORY -
'The Beatles'와 'The Rolling Stones'를 앞세운 'The British Invation'이 한창 미국을 휩쓸
던 1960년대 중반,미국록음악의 자존심을지킨 네명의 젊은이들이 있었으니,그들이 바로 지
금 소개하 는 'The Doors'이다.
1943년 12월8일 플로리다주 멜버른에서 해군제독의 아들로 태어난 짐모리슨( James
Duglas Morrison )은 UCLA에서 영화와 연극를 공부하던 중 레이 멘자렉 ( Raymond
Manzarek : 1935년 2월12일 시카고 출생 ) 을 만나게되어 1965년 남 켈리포니아에서 밴드결
성을 하기로한다.
어려서부터 클레식 피아노를 배웠고 UCLA에서 블루스밴드인 'Rick And The Ravens'의 멤
버로 연주했던 멘자렉은 모리슨을 만나면서 그의 시에 가사를 붙여 데뷔싱글 'Moonlight
Drive'를 발표하였다.
멘자렉은 모리슨과 밴드결성을 결의하고 밴드 '샤이키델릭 레인져스' ( The Psychedelic
Rangers )의 멤버였던 기타리스트 라비 크리거 ( Robby Krieger : 1946년 1월 8일 출생 )와
재즈 드러머인 존 덴스모어 ( John Densmore : 1945년 12월 1일출생 )를 맞이하여,당시 볼
레이크, 랭보, 케로우악 등에 심취해있던 짐의 제안으로 윌리암 블레이크 ( William Blake )의
시 한귀절( If Doors of were cleansed, All Things Would Appear Infinite-만일 지각의 문
이 깨끗이 청소되면 모든 것이 진실된 모습으로, 사물 그대로나타날것' )과 허슬리의 환각제
실험에 관한 저서 'The Doors Of Perception'에서 그 이름을 따온 'The Doors'는 66년초에
드디어 그운명의 문을 열게된다.
몇 개월간의 연습기간을 거치고난 후 그들은 주로 클럽라이브를 통하여 소수 청중들에게 알
려지기 시작한다. 또한 그들은 'Whisky-a-gogo' 에서 하우스밴드로 출연하면서 데모테잎을
레코딩하기도 하였다.
그후 'The End'를 비롯한 여러곡이 완성되었고, 일렉트라 레코드사의 잭 홀츠먼 ( Jac
Holzman )과 계약을 채결하였고, 크리거의 곡 ( Light My Fire ) 가 수록된 데뷔앨범 'The
Doors'는 67년 발표되어 정상을 차지하였으며, 프로그레시브라는 음악스타일로 라디오에 소
개되었다.
클럽활동으로 언더 그라운드 팬들에게 지지를 받은후, 동년말 그들의 명곡중 하나인 'When
The Music's Over'가 실린 두 번째앨범 'Strange Days'를 발표하여 동명타이틀곡을 3위에
올려놓았고, 68년 3집 'Waiting For The Sun'을 발표하며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앨범에는 특히 모리슨의 서사시 'The Celebration Of The Lizard'가 인상적으로 인쇄 되었
으며, 랙타임 스타일의 'Hello I Love You'와 'Unknown Soldier' 그리고 모리슨의 무정부주
의적인 내용의 'Five To One'등에서 뛰어난 음악성을 보여주었다.
그후 수많은 공연을 다니며 69년7월에는 앨범 'Soft Parade'를 발표하며 크리거의 소년시절
같은 시를 가사로한 'Touch Me'가 히트하였다.
70년 3월에 'Morrison Hotel / Hard Rock Cafe'를 발표하여 흥겨운 'Roadhouse Blus'와
'You Make Me Real'을 히트시켜 록팬들을 즐겁게 하였다.
그후 순회공연의 실황을 모은 라이브앨범 'Absolutly Live'를 71년초에 내놓았으며 'The
Celebration Of The Lizard' 의 전곡을 생생하게 연주하였다.
그해4월 마지막앨범 'L.A Woman'을 내놓아 'Love Her Madly' 와 은은한 키보드 연주가 뛰
어난 'Riders On The Storm', 흥겹고 관능적인 'L.A Woman' 등이 히트를 기록했다.
항상 드라마와 시의 세계를 동경했던 짐모리슨은 법정문제와 약물과용으로 71년 3월에 파리
로 은둔의 생활을 하게되는데, 문학을 탐구하여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했던 그는 많은 작가들
이 그랬던 것처럼 우울증과 마약, 알콜에 빠져 1971년 7월 3일 심장마비로 Jimi Hendrix,
Janis Joplin의 뒤를 따르고 말았다.
그의 지친 영혼은 쇼팽과 로시니, Edith Piaf가 잠든 파리의 한 공동묘지에 뭍혀 지금도 추모
의 꽃이 끊이지 않는 히피들의 순례지가 되었다.
도어스의 남은멤버들은 'Other Voices ( 1971,11 )'과 'Full Circle ( 1972 )' 을 발표하면서
명맥을 유지하려 하였으나, 결국 73년에 해체되고말았다. 해산후 레이멘자랙은 75년에 머큐
리레코드사에서 두장의 솔로앨범 'The Golden Scarab', 'The Whole Thing Started'를 발
표하고 76년에 보컬리스트 노우어 제임스와 함께 밴드 '나이트 시티( Night City )' 를 결성하
였으며, 로비와 존은 '밴드 부츠 ( The Butts Band )' 를 결성하여 블루덤 레이블에서 두장의
앨범을 발표하였으나, 77년에 크리거가 솔로로 나서자 해산하였다.
한편 78년에 일렉트라 레코드사는 짐모리슨이 지난 1970년 12월 8일 녹음했던 작품을 모으
고, 나머지 멤버들의 도움을얻어 'An American Prayer' 라는 타이틀로 짐모리슨의 시낭송집
을 발매하여 화재를모았다.
그후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이 제작한 영화 '지옥의 묵시록 ( Apocalypse Now )'에 도어스의
'The End'가 주제곡으로 사용되면서 그들의 열기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어 데니슈거맨과 제리홉킨스의 베스트셀러소설 'No One Here Gets Out Alive'가 호평을
받아 80년 8월에 공개된 베스트앨범이 플레티넘을 수상하는 결과를 낳았다.
계속해서 그들의 공연실황을 담은 뮤직비디오가 세종류로 소개되었고, 급기야는 91년에 올
리버 스톤 감독이 '도어스'라는 영화를 발표하여 짐모리슨의 생애를 다큐멘타리 형식으로 소
개한 사운드트랙도 등장하여 최대의 호평을 받았다.
미국이란 거대전함에 온몸으로 달려든 반항아 - 도어즈
도어즈란 그룹 혹은 짐 모리슨이란 한 아티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올리버 스톤 감독이
그의 영화 <더 도어즈>에서 던지는 것과 같이 미국의 60년대와 당시 미국 젊은이들이 느끼고
있던 절망감에 대해서 먼저 공감해야 할 것이다.(물론 그런 것 전혀 몰라도 도어즈의 음악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의 음악은 너무나 단순한 것이기 때문이다. 단, 단순하다는 말을
나쁜 의미로만 해석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도어즈의 음악은 문학적이지만 내용은 간결하고
무서울 정도로 원초적이다.) 도어즈의 유명한 곡인 <The End> 등이 롤링 스톤즈의 <Paint it
black>과 함께 월남전 영화나 혹은 월남전 당시의 미국 사회를 읽는 키워드 역할을 한다고 많
은 이들이 느끼게 된 배경에는 그들의 곡들이 그런 시대 배경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The End>란 곡을 살펴보면 이 노래는 오이디푸스적인 사랑(?)을 담고 있다. 규율과 억압의
기존 사회질서에 역행한다는 의미에서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는 살부의식을 극명하게 드러내
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곡은 당시의 미국 사회를 극명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68년이 되자 미국 사회는 점점 더 양극을 향해 치닫기 시작했다. 60년대 초반부터 존재했던
사회의 모든 갈등이 이제는 한꺼번에 불거져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극단으로 미국을
몰아 가고 있었다. 그 중심축은 물론 월남전으로 상징되는 세대 갈등이었다. 젊은이와 기성
세대는 모든 문제에서 사사건건 첨예하게 맞붙었다. 나라 전체가 이들의 싸움으로 상처 투성
이었다. 젊은이들은 이제 기성 세대를 타도와 일소의 대상으로 생각했다. 히피와 블랙 팬더는
이러한 극단을 가장 잘 상징했다.그러나 이제는 기성세대들도 만만치 않았다.기성 세대는 '사
랑의 여름(Summer of Love)' 이후 히피로 대표되는 체제 반항적인 청년 세력 전체를 잠재우
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고 보다 고도의 방식으로 젊은이들을 억누르려 하고 있었다. 그러자 한
때 완전 우위를 점할 듯 보였던 젊은이들은 조금씩 힘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기존의 벽은 생
각만큼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이들은 그 속에서 분노와 절망이라는 두 개의 감정을 함께 느
껴야 했다. 이들은 상황을 타계할 강한 자극과 돌파구를 원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1967
년 1월 벽두에 발표된 그들의 데뷔 앨범 <The Doors>는 하늘에서 내려준 만나보다도 더 중
요한 것이었을 것이다. 도어즈는 히피들의 대축제인 이른 바 '사랑의 여름'을 대변하는 그룹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아버지, 난 당신을 죽이고 싶어.
어머니 난 당신을 밤새도록 사랑하고 싶어.
그건 가슴시리도록 당신을 자유롭게 하지. <The end 중에서>
규율과 억압의 질서를 죽임으로써 이들이 얻고자 한 것은 자유였다. 이 곡이 발표된 직후 사
회적으로 쏟아진 기성세대의 비난은 엄청난 것이었지만, 당시 프로듀서를 맡았던 폴 로스차
일드는 "녹음할 당시 짐 모리슨은 마치 무당이 된 듯한 분위기에 휩싸였으며 몰아의 경지로
빠져 들어갔다"고 회상한다. 실제로 이 앨범을 녹음할 당시 분위기를 북돋우기 위해 촛불을
켰고 향을 피웠다고 한다. 따라서 이 음반은 음향기술에 의한 여과가 거의 없는 순수한 의식
의 산물과도 같은 것이었다.
도어즈의 음악은 라이브 공연에서 더욱 그 진가를 발휘했으며 거기에는 그룹 구성원인 네
명의 음악적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었으며 그 중에서도 짐 모리슨의 야수와
같은 보컬과 레이 만자렉의 단단한 구성으로 꾸며진 신서사이저 연주 실력이 뒷받침하고 있
었다. 짐 모리슨은 라이브 공연에서 샤머니즘의 제의와 같은 의식을 진행했는데 그 의식들은
오만하고 광기가 넘쳐 흘렀다. (물론 거기에는 아직 라이브 공연의 상업적 기술들이 현재와
같이 고도로 발전되지 못한 상태에서 그들만이 지닌 특별한 노우하우가 작용했을 것이다. 가
령 사이키델릭한 약간의 조명만으로도 그들은 관중을 흥분시킬 수 있었다.)
self-interview
나는 인터뷰가 새로운 예술의 형태라 생각한다. 나는 셀프 인터뷰가 창작의 근본이라 생각한
다. 당신에 게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아내려 해보라. 작가는 단지 말도 안되는 연쇄적인 질
문에 답할뿐이다. 이것은 증인석에서 답변하는것과 유사하다. 이는 당신이 과거에 일어난 일
들을 고정시키고 무엇을 하려고 했었는가를 정직하게 기억하고자 시도하는 그런 낯선 장소이
다. 잔인한 정신활동이지. 인터뷰는 당신의 정신이 문제와 맞닥뜨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이것이 내게는 예술에 관한 모든것이었다. 인터뷰는 또 한 공간을 채워주는 모든것들을 시도
해보고 재조명할수 있는 기회를 준다. 당신은 명확하고, 정연하고, 정확하여야 한다. 지랄하
지 말고. 인터뷰는 고해와 토론, 반대심문의 형태보다 먼저 존재했다. 당신이 무언가 말했다
면, 철회할수 없다. 그러기엔 너무 늦다. 이것이 바로 존재의 순간이기 때문이다.나의 영웅들
은 예술가들과 작가들이고 그러기에 난 예술과 문학이란 게임에 코를 꾀인 사람이다. 나는 언
제나 무언가 쓰고 싶었지만 손이 펜을 잡고 자동기술마냥 내가 아무 것도 할 필요없이 스스로
움직 여지기 전까지는 쓰지 않는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았지. 물
론 나는 얼마간의 시를 썼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내가 쓴 저질의 시는 "포니 익스프레스"였는
데 이것이 기억할수 있는 첫번째 것이고 아마도 발라드풍의 시였을것이다. 그러나 보관해 놓
을 수 없었다.
"말의 태도"는 내가 고등학생일때 쓴 시이다. 나는 고등학교와 대학때까지 많은 습작노트들을
보관했지만 내가 학교를 떠나면서, 웃기는 이유때문에 - 아마도 지혜로운 행동이었겠지만 -
모두 버렸다.... 밤을 새워가며 썼었는데. 그러나 그것들을 버리지 않았다면 난 나만의 것을
쓸수는 없었을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내가 읽고 듣고 책에서 인용한 것들의 축적물이니
까. 그것들을 버리지 않았다면 난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진정한 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것이다. 다만 가능성을 타진할 뿐이지. 모든 문을 열어놓으라. 당신은 어느것이든 자신에
게 어울리는 문으로 나갈 수 있으니까. … 그리고 이것이 시가 내게 크게 어필하는 이유이다.
영원하기 때문이지. 인류가 존재하는한 그들은 단어를 기억하고 조합할 수 있다. 시와 노래를
빼곤 아무것도 대학살속에서 살아남을수 없지. 인류가 존재하고 노래와 시가 계속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영화나 조각이나 그림을 묘사할수는 없는노릇이다. 만일 나의 시가 무엇인가 이
룩하자 한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보고 느끼는 한계로부터 그들을 이끌어내려는 것이다.
<짐 모리슨> -. 로스 앤젤레스, 1969 - 71
1939-1946
레이 만잘렉, 1939년 2월 12일에 Chicago, Illinois에서 태어나다.
짐 모리슨, 1943년 12월 8일에 Melbourne Florida에서 태어나다.
존 덴스모어, 1944년 12월 1일에 Santa Monica, California에서 태어나다.
로비 크리거 1946년 1월 8일에 Los Angeles, California에서 태어나다.
1965
July 8
짐 모리슨과 레이 만잘렉 Venice 해변에서 만나서 그들의 밴드를 구상하기 시작하다..
짐은 레이에게 몇곡의 노래(Moonlight Drive를 포함해서)를 불러주었고 그룹명이 될 윌리엄 블레이크의 "doors of perception"에 관해 이야기 해준다. 그리하여 짐과 레이는 레이의 형제들(Rick and Jim Manzarek)들과 밴드를 결성한다.
August 20
친구 로비 크리거와 함께 싸이키델릭 레인저스에 활동하던 드러머 존 덴스모어가 The Doors band에 합류하다.
Late September
Rick and Jim Manzarek형제가 그만두고 존은 그의 친구 로비 크리거가 The Doors에 합류하기를 권유한다.
Late October
The Doors는 콜롬비아 레코드사와 5년간 계약에 싸인한다. (가채용 6개월기간을 기본으로하였다.)
1966
January
도어즈는 선셋대로에 있는 클럽에 오디션을 보기 시작한다.
March
짐은 파멜라 커슨을 만나고 그들은 급속도로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가 된다.
Late April
콜롬비아 레코드사와 아무런 실질적인 것이 없자 도어즈는 그들의 계약을 파기하기를 요청한다.
May 9
도어즈는 위스키어고고에 오디션을 보고 그곳의 하우스밴드가 된다. 그들은 1966년 5월 23일부터 8월 21일까지 일했고 아더 리가 리더였던 러브(엘렉트라 레코드와 처음 계약했던 밴드)나 반 모리슨이 있던 뎀, 더 터틀즈와 같은 그룹의 오프닝 밴드가 되었다.
August 15
엘렉트라 레코드의 프로듀서였던 폴 로스차일드가 도어즈의 연주를 듣기 위해 위스키어 고고에 오다.
August 18
엘렉트라와 계약.
August 21
짐없이 위스키어고고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하다.
August 24
선셋 사운드 레코드 스튜디오에서 그들의 첫 음반을 녹음하다. 녹음은 단 6일만에 완성.
November
온다인 클럽에서 뉴욕 데뷔를 하다.
November 15
엘렉트라 레코드와 공식적 계약
December
뉴욕 씨티에서 돌아오자 짐과 파멜라는 1812 Rothdell Trail in Laurel Canyon California에 있는 집으로 이사. 존과 로비는 또한 Laurel Canyon에 집을 얻다.
1967
January 1
Shebang(produced by Dick Clark and hosted by Casey Kasem)이라는 생방송 프로그램에서 첫 티비방송에 출연. 그들의 첫 싱글 "Break on through"를 립싱크.
January 4
첫 앨범 "The Doors"이 발매. ("Break On Through" 은 첫 싱글).
February 21
짐, 팜의 친구였던 열정적인 배우 탐 베이커를 만나다. 그도 짐과 같이 빠른 삶을 즐겼기 때문에 둘은 아주 빨리 친한 관계가 되다.
Late April
두 번째 싱글 "Light My Fire" 발매
Early May
두 번째 앨범 "Strange Days"의 작업에 들어 가다.
May 16
엘렉트라와 계약한 이후 첨으로 LA의 위스키어고고에서 공연.1967년 5월 21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위스키에서 공연하지 않음.
September 25
두 번째 앨범 "Strange Days" 발매
1968
February 1
유니버셜 스투디오로부터의 영화출연 제의 거부.
February 19-20
"Waiting for the Sun"앨범 작업 시작.
Early March
Paul Rothchild와 갈등이 빚어지게 되다. 짐은 더욱 함께 일하기 힘들어지다. 존은 그만두지만 바로 돌아오다.
April
Bill Siddons 이 매니저로 고용됨.
May 3 - 9
"Waiting For The Sun"작업이 계속 됨
June
싱글 "Hello, I Love You"/"Love Street" 이 발매
July 12
세 번재 앨범"Waiting for the Sun" 발매
September 2
European tour에 들어감.
September 15
콘서트로 암스테르담에 있을 때 Jim은 폭음으로 맛이 가서 나머지 멤버들은 그없이 rave reviews를 진행하다. 짐은 그없이 그룹이 계속될 수 없음을 깨닫다.
October
휴식 후 "Waiting for the Sun."의 리허설에 들어가다.
December 4
The Smothers Brothers Comedy Hour에서 "Touch Me"/"Wild Child"를 녹화하다.-- 12.15.68에 방송됨.
1969
March 1
짐,마이애미 콘서트에서 풍기문란죄로 구속되다.
July
네 번째앨범 "The Soft Parade" 발매.
1970
June
다섯 번째 앨범"Morrison Hotel" 발매.
December 8
짐, 저녁에 엘렉트라 스튜디오에서 그의 시 몇 곡을 녹음하면서 그의 27번째 생일을 장식하다.
1971
March
짐, 그룹을 떠나 파리로 가다.
April
여섯 번째 앨범"L.A. Woman" 발매
Mid-June
짐의 마지막 레코딩 세션이 파리에서 있었다.
July 3
짐 모리슨. 급작스런 심장마비로 파리에서 요절하다. 그의 나이 27세였다.
October
짐이 없는 첫 번째 앨범"Other Voices"이 발배.
Doors의 음악세계-
우리는 도어스의 음악을 이야기할 때 짐모리슨의 도어스냐,아니면 레이 멘자렉의 도어스냐
하는 문제로 약간의 고민을 하게된다. 만약 레이의 환상적인 키보드 연주와, 짐의 카리스마적
인 흡인력중 하나만 빠졌더라도 우리가 지금 듣고 있는 도어스의 음악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
이다. 그렇다고해서 나머지멤버인 라비와 존이 들러리였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도어스의 음악을 논할 때 짐모리슨과 레이 멘자렉의 능력을 저울질해왔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고, 어쨌거나 부유한 가정 출신의 짐과 노동자계급 출신의 레이, 이둘은
상반되는 부조화 속에서 완벽한 조화를 연출해냈다.
섹스와 죽음, 초현실주의 등에 심취해있던 짐모리슨을 주축으로 샤이키델릭 사운드의 이정
표를 세운 도어스는 60 연대말 히피사조의 상징적인 밴드였다.
세기말적인 우울한 광기, 그리고 최면적인 나른함등이 종합되어 젊음의 고뇌와 사회적 모순
을 약물과 음악으로 해결해 보려한 도어스는 록을 미학적인 예술의경지로 끌어올린 초기 락
밴드중의 하나이기도하다.
도어스의 음악적전계는 3단계의 변화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첫 단계는 데뷔앨범 'The Doors'부터 68년의 'Waiting For The Sun'까지로, 이때에는 'The
End', 'Light My Fire', 'When The Music's Over', 'Break On Through'의 대표곡에서 알
수 있듯이 샤이키델릭 사운드를 줄기차게 추구하였다.
두 번째 단계는 69년의 앨범 'The Soft Parade'에서 보여주는 재즈적 색채로의 변화인데, 여
기에선 종전보다 순해진 도어스의 사운드를 들려주어 골수팬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세 번째단계는 70년의 'Morrison Hotel'에서와같이 본격 블루스록 및 로큰롤밴드로서도 한
몫 보여주었는데, 'Roadhouse Blues', 'The Sky', 'Maggie M' Gill'을 들어보면 잘 알 수 있
다. ( 이앨범 수록곡 'You Make Me Real' 에선 척베리풍의 '더블노트 : Double Note' 프레
이즈 주법 솔로도 들을 수 있다. )
한편 71년에 발표된 도어스의 마지막앨범 'L.A Woman'은 이들 본래의 음악적스타일로 돌아
가 사이키델릭의 강렬한 음악을통한 환각탐구를 보여주었다.
그들의 음악은 환각에 잠긴 60년대 미국 젊은이들의 불안한 정신세계를 대변하는 것이었고,
동물적 카리스마의 소유자 짐모리슨은 한마디로 어둠의 메시아였다.
그는 두려움에 빠진 젊은 세대에게 거짓된 희망이나 도덕관과 반대되는 공포, 포력, 용서받지
못한죄악, 깨어진사랑, 그리고 죽음을 전파하는 설교자였다.
도어스는 불안과 초조에 빠진 젊은세대의 고민을 적나라하게 전달했던 메신저 들이었다.
또한 그들은 1960연대 물밀 듯이 밀려오던 영국 록밴드들에 대항, 짧은 기간이었지만 용감히
대항했던 유일한 미국밴드이기도 하다.
<The Doors discography>
The Doors (67.1)
Strange Days (67.11)
Waiting for the Sun (68.8)
The Soft Parade (69.8)
Morisson Hotel (70.3)
Absolutely Live (70.8)
13(Best Of) (71.12)
LA Woman (71.5)
Other Voices (72.11)
Weird Scenes Inside the Gold Mine(best of) (72.2)
Full Circle (72.8)
The Best of the Doors (73.9)
An American Prayer(짐 모리슨 자작시 낭송음반) (78.12)
***처음 올리는 글이라 많이 어수선하네요... 앞으로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 보여드릴께여..
긴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첫댓글 크...역쉬..Doors...글이..무지 짧넹@@?
첨이라 미숙해여~~~앞으로는 좋아지겠져~~~읽어주셔서 감사~~꾸벅
ㅋㅋ
진짜로 짧네~~ ^^
좋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