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년 겨울. 덕수궁의 국립현대미술관과 유물전을 관람한 후, 로댕갤러리로 향하기 위해서 덕수궁을 나섰다. 사진 몇컷을 더 찍은 후, 필름을 교체하기 위해 열었더니... 이런, 필름이 감겨있지 않았다. 열심히 찍었던 사진은 이미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우리들은 모두 지쳐있었고, 사진을 위해서 다시금 왔던 길을 되돌아서 반복된 행위를 할 수는 없었다.
로댕갤러리에는 1999년 여름에 간적이 있었다. 그때는 로댕과 끌로델의 작품이 동시에 전시되어 있었기때문에, 정말 볼만했었다.
몇년전의 기억을 더듬어 나는 덕수궁에서 나와 우측으로 방향을 틀었다. 조금만 걸어가면 반드시 삼성플라자가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로댕갤러리는 삼성플라자에 있다. 미술관 관람을 즐기지 않은 남편은 역정을 꾹 참고 있는 것 같았고, 아이들은 다리 아프다고 징징대기 시작했다. 할 수 없어, 번갈아 업어가며 걸었다. 그냥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아마도 그렇게 한다면 후회할 것이 틀림없겠기때문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150M면 도착해야할 로댕갤러리가 나오지 않았다. 짐작컨대 600M정도를 걸었을 것이다.(호암아트홀에서 받은 약도를 참조했을때) 불안한 마음이 들어 지나가던 사람 몇에게 물었다. 한 사람은 우리가 온 반대방향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분명 초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 더 가다가 다시 젊은 아가씨에게 물었다. 그 아가씨의 말로는 여기서 꽤 멀다고 했다. 그러면서 바로 앞의 호암갤러리를 가리키며, 그곳에 가서 물어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라며 알려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에 호암아트홀에서 셔틀버스가 있을 것이고, 그것을 타고 가면 쉽게 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길 건너에 호암아트홀이 있었다. 어떻게 할까망설이다가 일단가기로 했다. 그곳에 가면, 다리라도 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실내는 우아했고, 무엇보다도 따뜻했다. 아이들의 얼굴표정은 살아나는 듯 했다. 매표소에 가서 읽어보니, 호암갤러리에서 표를 사면, 그곳의 전시를 본 후 로댕갤러리를 무료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관람가격은 로댕갤러리에서 표를 살때와 같았다. 그렇다면 로댕갤러리에서 표를 사도 호암갤러리의 전시관을 무료로 볼 수 있는 건가? 표를 산 후, 안내하는 아가씨에게 로댕갤러리로 가는 길을 물었다. 호암갤러리에서 5분거리라고 했다.
호암갤러리에서는 설치미술들이 전시중이었다. 홍수자의 <회전하지 않는 그림자 속에서>라는 작품은 언어에 대한 신뢰 회복과 언어를 통한 안식을 표현한다고 한다. 사람의 모형이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실들이 온몸에 감기고 있었다. 이 인물상은 어머니의 상이라고 하는데, 누에에서 실이 뽑아져 나오듯 내면의 싶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생명의 언어를 상징한다고 한다. 어머니란 존재의 근원이므로. 그런데, 생명의 근원인 어머니를 표현한다고 한다면 모를까, 어째서 그것이 언어에 대한 신뢰를 표현하는 것이 될 수 있을까?
김종구의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것과 가장 작은 것을 잴 수 있을까?>라는 작품은 깍아진 쇳가루를 이용해서 새로운 조형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는 이 글씨들은 폐쇄회로를 이용해서 미시적으로 보여주었고, 수평적 시각을 통해 쇳가루로 만들어진 산맥의 흐름을 따라 비현실적인 풍경을 체험한다고 한다.
김범의 <403호 환자>는 서현이가 제일 좋아한 작품이다. 서현이는 그 작품을 보자 마자 달려갔고, 탄성을 내뱉었다.
"아~~ 따듯해" 서현이는 그 작품이 전기난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따뜻했을까? 작은 난로속에 열선이 사람모양으로 만들어져있었다.
이동기의 <록 밴드>라는 작품은 서진이가 좋아했을 것 같은 작품이었다. 서진이는 아빠와 로비에 앉아서 음료를 즐기느라 같이 들어오지 않았다. 만화의 주인공들이 록 음악을 연주하는 회화였다. 아이들용품의 포장지나 벽지로 쓰면 딱일 것 같았다. 아이들의 보조가방 그림으로도 괜찮겠다.
오민환의 <서울에서 남자가 남자를 만나는 곳>이란 작품은 특이했다. 대개의 작품들은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지만 이 작품은 후각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그는 향을 가루로 만들어 전시장 바닥에 서울의 게이바 이름(나는 그 이름들이 게이바인줄 몰랐다. 콤브리치가 전시관에서 팜플렛을 들고 관람하는 미련한 짓을 하지 않기를 충고했고, 나는 그 충고에 충실하고자 그냥 느낌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팜프렛은 집으로 가는 지하철 역에서 보았다.)을 빽빽히 써놓았는데, 그 향들은 조금씩 타들어가고 있었다. 게이바이름이라는 것을 몰랐을 때는 그 향으로 인해 기분이 좋았는데, 게이바 이름이라는 것 알고 나니, 갑자기 역겨워졌다. 이것은 내 도덕성 때문이다. 씁쓸하다.
유현미의 <우물> 은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변형시킨 작품이다. 사물들은 퍼즐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것을 통해 관람자를 무의식의 구조 안으로 초대하려고 했다는 데....
김아타의 <나르바나 시리즈>는 본듯 만듯 지나쳐왔지만, 작품의 충격때문에 가장 깊이 뇌리에 박혀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사회적고정관념이나 틀을 제거하고, 참 자유의 순간을 포착하고자 했다고한다. 그에게 있어서 예술은 인간 그 자체와 같이 '세계-내-존재'의 한 반영이며, 그것은 세계로부터 초월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아에 앞서 세계 속에 이미 존재하는 실존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뮤지엄 프로젝트(나르바나 시리즈)>는 나의 사유와 실존의 집이다"라고 말한다.
조승호의 <인식/반응>은 손가락이 스캔으로 인식하는 사물에 대한 반응을 이미지로 나타낸 것이다. 무의식의 세계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라고 설명되어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사물의 의미를 보여준 것 같다. 이때 그 사물의 의미란 기호로써의 사물을 말한다.
관람을 하고 나오니, 서진아와 남편이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벌써 다 봤어? 하는 표정. 보니 두 사람은 캔음료를 먹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