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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죽칼럼
카페 안부 게시판 (2009년 9월)
▢ 9월 1일 : 풀섶 교향악단의 선율이 온 누리에 퍼질 9월입니다. 단 며칠사이에 날씨가 서늘해 졌네요. 한여름 떠들썩했던 매미 소리는 잦아들고 이젠 온갖 풀벌레들이 제 세상을 만난 듯 요란합니다. 모두가 짝을 얻으려고 그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귀뚜라미, 방울벌레, 여치, 베짱이, 철써기 등 가을을 노래하는 벌레들의 향연은 기온의 하강과 함께 더욱 명징해 지는 것 같습니다. 그 작은 몸짓에서 그렇게 큰 울림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롭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미물들의 노랫소리가 가을을 한껏 더 사랑하게 될 것 같습니다. 사랑함으로 주어지고 맡겨진 몫(使命)을 다하며 더 가까이 다가가는 새달을 만들고 싶습니다.
▢ 9월 2일 : 암 투병 끝에 지난 5월 세상을 떠난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의 전 서강대 장영희 교수의 유족들이 고인의 뜻이라며 학교에 5억 원을 내놓았다 합니다. 그 돈을 기부하는데 가장 적극적인 사람은 딸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낸 어머니 이길자 씨(82)였다고 하네요. 장 교수는 제가 평생 동안 좋아했고 존경했던 영혼이 참 맑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가족들 또한 아름다운 사람들이고요. 앞으로 그 돈을 받아 공부할 수혜자들의 따뜻한 가슴을 생각하니 세상이 한껏 맑아집니다. 있다고 내놓지 않지요. 어머니와 형제들의 마음이 하나 돼 전해옵니다. 세상은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하늘에서 흐뭇해하실 교수님의 얼굴이 떠오르네요.
▢ 9월 3일 : 회자정리(會者定離) We meet only to part. or We never meet but we part. 생이란 어떻게 생각해 보면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인 듯합니다. 모든 만남이 다 신선할 순 없다하더라도 늘 그런 만남을 위해 노력하지요. 그렇지만 어떻게 그렇게만 만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은 만남도 숱하게 많지요. 생각해 보면 만남과 헤어짐이 있기에 생이란 그만큼 더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이별은 아픔을 동반하기도 하지만 그 아픔 때문에 또 다른 만남을 낳기도 하는 것이 인생사 이치인 듯싶네요. 회자정리의 이치를 생각하다 보면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분들인가를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 9월 4일 : 인문학자이자 문학비평가인 불문학자 김화영(68) 고려대 명예교수는 제가 태어나던 57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의 방대한 저작 20권을 23년 만에 우리말로 모두 번역한 최고의 전문가입니다. 프랑스 프로방스 대에서 카뮈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지요. 그는 오랫동안 프랑스 문학을 우리나라에 소개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특히 카뮈를 비롯한 장 그르니에 작품 등은 널리 알려져 있지요. 그는 지난 64년 시인으로 등단하기도 했던 그분의 책들을 오랫동안 읽어왔는데, 인문학적 소양이 대단하단 생각을 늘 갖고 있지요. 이번 23회 인촌(仁村)상 수상을 축하드리며!!!
▢ 9월 5일 : 지난 7월 한 조사에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작가’ 3인 중의 한 사람으로 뽑힌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 1961~)는 1991년 처음 나왔던『개미』를 비롯해 『뇌』『나무』『파피용』『천사들의 제국』『신』등의 작품을 썼지요. 소설 『신』이 100만부를 돌파하자 그는 한국을 ‘자신을 발견해준 나라’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는 “승리자들의 역사가 아닌, ‘정직한 역사’를 담고 싶었다”고 했네요. 차기작『카산드라의 거울』엔 한국인 남자 주인공 ‘김예빈’이 나온다고 하네요. 참고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작가’ 3인은 톨스토이, 헤밍웨이입니다.
▢ 9월 6일 : 얼굴 없는 작가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오로지 ‘소통은 작품으로’로 얘기하겠다는 뜻인지는 잘 알 수 없으나 참 특이하고 독특하단 생각이 드네요. 일본의 마루야마 겐지, 프랑스의 노벨문학상도 거부한 『향수』의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엔 『태평양 횡단 특급』의 듀나, 『그림자 자국』의 이영도, 『키메라의 아침』의 조하형, 『목화밭 엽기전』의 백민석, 『헤르메스의 기둥』의 송대방 등등도 같은 유의 작가들이라고 할 수 있지요. 유명해 지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 예술가의 까탈만일까 싶습니다.
▢ 9월 7일 : 인문학(人文學)은 만학의 기초이며 초석입니다. 주춧돌이지요. 인문학적 토대위에서만 그 어떤 학문이라도 만개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인문학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할 것인데도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학마다 인문학 강의 숫자가 줄어들고 어느 대학에선 급기야는 폐강의 위기를 겪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연세대 특별초빙교수인 박이문(1930~)교수의 『통합의 인문학』은 철학과 문학을 두루 섭렵한 노학자의 안타까운 심정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인간은 동물이 아니다.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인 존재가 아니다.”라고 일갈합니다. 그의 ‘둥지 철학’이 더욱 크게 울립니다.
▢ 9월 8일 : 영어가 현대인의 화두(話頭)가 된 것은 이미 오래입니다. 그만큼 영어에 대한 관심이 많고 거스를 수 없는 시류(時流)의 흐름이기도 하지요. 영어뿐이겠습니까 만 젊었을 때 한자라도 더 배웠어야 했다는 생각을 내내 하네요. 입시를 앞둔 제자를 보면 속으로 탄식과 감탄이 함께 나올 때가 많습니다. 일일 공부 치에 모르는 단어가 30여개 나와도 그것을 소화시킵니다. 저는 벌써 하루에 다섯 개 암기하기도 쉽잖거든요. 평생을 해 온 공부지만 나이는 속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모든 것이 내일이면 늦습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은 바로 오늘 해야 합니다. 특히 사랑의 빚은 꼭 오늘 갚아야!!!
▢ 9월 9일 :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전3권)은 지난 1993년 첫 권이 나왔지요.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의 저서인 이 책이 얼마 전 통합 200쇄를 돌파했습니다. 판매부수도 230만부에 이른다고 하네요. 유 교수는 경기, 제주, 충북, 경남, 서울 등의 문화유산을 앞으로 4,5권에 나눠 담을 예정이라 합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인문서 최초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던 책이 기도하지요. 자라나는 세대의 책꽂이에 이윤기의『그리스 로마신화』(전4권)와 함께 꼭 꽂아주고 싶은 책 중의 하나입니다. 그가 다뤘던 거의 모든 곳들은 잠을 깨는 듯 살아난다고들 하지요. 귀한 일입니다
▢ 9월 10일 : 문태준 시인의 『느림보 마음』이라는 산문집을 새벽까지 읽었습니다. 시인의 글이어서만은 아니겠지만, 잔잔하네요. 평화롭고 물이 그냥 그렇게 흐르듯 시인의 단상들이 전해옵니다. 그동안 문 시인의 시집은 몇 권 읽었지만 산문집은 처음인데 시인의 삶이 보이는 듯합니다. 시인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사람이란 말이 떠올라요. 내 맘 속에 잠자고 있던 무수한 세포들을 깨웁니다. 그러면서 하찮은 것 같은 일상이 어떻게 보면 세상에서 제일 위대한 일이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밥하고 설거지 하고 빨래하고 하는 일들 말예요. 오늘도 당일(當日)이 공일(空日)이 되지 않게 살아보렵니다.
▢ 9월 11일 :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구월에는 배가 부르고, 아무리 모진 사람도 구월에는 시를 읽고, 아무리 외로운 사람도 구월에는 사귈 친구들이 많다.”라고 이어령은 구월을 노래했네요. 가을이 오면 R.M.릴케의 「가을날」이라는 시가 늘 떠오릅니다. “주여 어느덧 가을입니다. 지나간 여름은 위대했습니다.”라는 구절이지요. 또 다음 싯구도 생각나요. “일년의 마지막 과실이 열리도록 따뜻한 남국의 햇볕을 이틀만 더 베풀어 주십시오. 과실이 익을 대로 잘 익어 마지막 감미가 향긋한 포도주에 깃들 것입니다.…….” 오늘 하루 햇살이 천상의 사랑입니다. 가을은 ‘여름이 타고 남은 것’이란 표현도 좋습니다. 초토(焦土)란 뜻이지요.
▢ 9월 12일 : 뇌력이란 뇌의 힘을 말합니다. 일본의 뇌 전문가인 이시우라 쇼이치 박사의 ‘뇌건강 10계명’을 소개합니다. “1.주 2~3회 이상, 1회 30분 이상 반드시 운동을 한다. 2.과식은 금물, 균형 잡힌 식사를 한다. 3.스트레스는 가능하면 피하자. 4.매일 대화를 많이 하자. 5.호기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도전하라. 6.세 살 공부 여든까지 하자. 7.마감 기한과 목표를 정하자. 8.자신에게 성공 보수를 주자. 9.독서는 뇌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10.의식적인 생활로 뇌에 부담을 주자.” 등입니다. 머리는 쓰면 쓸수록 좋아진다고 합니다. 평생공부를 할 수밖에 없네요. 책과 씨름하는 공부가 행복합니다.
▢ 9월 13일 :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에 위기를 느낀 몇몇의 대학들이 ‘독학’(독서하는 학생)을 권하는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시작했다는 반가운 소식이군요. 독서곤들벨(한양대), 오거서(五車書)운동(성균관대), 주제로 읽는 고전(서울대), 독서특성화대학(숭실대), 명저읽기(연세대)등등이 그 예입니다. 정말 좋은 아이디어 인 것 같군요. 책을 읽지 않고 어떻게 지성의 반열에 설 수 있을까요. 좋은 책을 만나면 첫눈에 반하는 연인을 만나는 것처럼 가슴이 떨리는 경험을 죽기까지 하고 싶습니다.
▢ 9월 14일 : “영어공부는 왕도(王道)가 없습니다.” 영어를 어떻게 공부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제가 하는 대답이지요. 다만 “다양한 활동(activity)을 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단원의 핵심 표현(대화 지문)과 기본 문법을 익혀야 하지요. 중학생이라면 1학년은 시제, 동명사, to부정사를, 2학년이라면 부정사의 용법, 비교법, 빈도부사, 사역동사, 3학년이라면 현재완료시제, 관계부사와 관계대명사의 개념 및 가주어, 강조 구문 등을 정리해야지요. 참고로 사전을 활용하는 것도 요령이 필요합니다. 2천단어정도인 고2수준의 실력만 쌓으면 영영사전을 봐야합니다. 초보시절엔 영한사전을 보고 나중엔 영영사전이 훨씬 좋지요.
▢ 9월 15일 : 가을이 영글어 가고 있네요. 풍요롭습니다. 내 것이 아니어도 풍요로움은 한결같네요. 남의 것이지만 좋은 것을 보면 내 것과 다름없이 좋습니다. 이만큼의 결실에 흘린 땀과 수고로움이 보이는 듯하지요. 자연과 호흡한 순간들이 얼마나 아름다웠던가를 그대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인간사 순리(順理)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어요. 거짓 없는 삶의 순결함이랄까요.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몫의 일을 하면서 물이 흐르듯 그렇게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것인가를 이 갈에 다시 배우게 됩니다. 순환할 수 있기에 세상은 한껏 더 아름답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오늘도 다만 열심히 살 뿐이네요.
▢ 9월 16일 : ‘디지털 재림’이라는 옷을 입고 영원한 팝의 전설 비틀스가 세계의 팬들을 취하게 하고 있습니다. 지난 9일 영국의 음반사 EMI에서 전 세계에서 동시에 발매에 들어간 것이지요. 리마스터 시디라 불리는 이 음반들은 기존의 음원을 현대의 기술력으로 더욱 풍성하고 선명하게 만드는 음향 작업을 뜻한다고 합니다. 벌써 판매량이 엄청난 모양이에요. 폴 매카트니, 링고스타, 존 레넌, 조지 해리슨 등은 영원한 팝의 전설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그들의 노래 중에 Hey Jude, Imagine등 몇 곡을 엄청 좋아합니다. 시대를 초월해서 사랑 받는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하여튼 대단합니다.
▢ 9월 17일 : 생을 지독히 사랑하는 사람들한테서는 언제나 향기가 납니다. 분초를 다퉈 자신을 가꿔나가는 모습을 볼 때면 세상이 참으로 아름답다 싶지요. 제가 지도하는 복지관의 영어교실엔 장애인들이 많습니다. 발음을 한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분들도 계신데 함에도 거의 빠지지 않고 출석을 하지요. 어느 분은 지능이 좀 떨어져서 남들만큼 성과를 거두진 못하지만 쉼 없이 책과 씨름을 합니다. 세상 적으로는 비교할 수 없지만 수업을 진행하다보면 언제나 잔잔한 천상의 평화와 행복을 봅니다. 일견 일그러지고 문드러지고 찌그러졌더라도 그것은 다만 우리의 기준일 뿐 신의 관점은 아니란 걸 배웁니다. 함께 사는 세상이 이뻐요.
▢ 9월 18일 :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1~2』(시공사 간)를 읽고 있습니다. 지난달에 『박종호에게 오페라를 묻다』란 책을 읽었었는데 그의 또 다른 책이네요. 저자는 정신과 전문의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그의 클래식 음악에 대한 열정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가 설립한 국내 최초의 클래식 전문 음반매장인 ‘풍월당'은 국내 클래식 문화의 새로운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저도 한 30여년 넘게 클래식을 들어왔기에 낯선 이름들은 없었지만 여전히 무슨 곡 하면 잘 떠오르지 질 않으니 저는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수많은 작곡가와 지휘자 연주가들의 이름이 낯설지 않다는 것에 감사하며!!!
▢ 9월 19일 : 『다빈치 코드(The Da Vinci Code)』라는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미국의 소설가 댄 브라운(Dan Brown-1964~)이 최근에 『로스트 심벌(Lost Symbol)』이라는 책을 새로 냈습니다. 놀라운 것은 발매 첫날 밀리언셀러 대열에 들어섰다는 것이지요. 지난 15일 처음 판매를 시작했는데 매국 캐나다 영국에서 하루 만에 100만부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놀랍네요. 지난 14일 우리나라 신경숙(46)의 『엄마를 부탁해』가 100쇄 100만부를 10개월 만에 돌파한 기록과 비교하면 실로 놀라운 기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밀결사조직 ‘프리메이슨’의 역사를 다뤘다는 이 소설에 열광하는 이유가 뭘까 궁금해집니다.
▢ 9월 20일 : 지난 18일로 어머니의 투병생활이 만 1년이 됐습니다. 지난해 대학병원에서 대장암 3기말 판정을 받으시고 수술을 포기한 체 일주일 만에 퇴원하셔서 여태껏 집에서 투병을 계속해 오고 계십니다. 어렵고 힘든 날들이었지만, 주말마다 찾아주는 형제들과 친척들 그리고 교우를 비롯한 지인들의 관심과 사랑 속에 일 년이라는 세월을 견딜 수 있었지 않나 싶네요. 그동안 어머니를 중심으로 형제들의 우애는 훨씬 더 깊어졌고, 세상을 더 힘껏 안을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사랑의 고리가 한결 더 든든해 진 것 같습니다. 잡숫지 못하고 통증과 붓기가 계속될 때마다 옆에서 지켜보기가 힘들지만 또 한 번의 명절을 함께 셀 수 있겠단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 9월 21일 : 『만인보』라는 대작을 쓰신 시인 고은의 작품 중에 “가을 편지”는 일찍이 노래로 만들어져 갈이 깊어갈수록 생각나는 시입니다. 이렇게 시작되지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저만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하얀 편지지 위에 편지를 언제 썼나 싶습니다. 그것도 자필로요. 예전엔 참 많이도 썼었는데, 시류 탓인지 저부터 까맣게 잊고 삽니다. 요즘처럼 메일이나 문자가 없었고 전화가 흔치않던 시대의 산물이라고 하기엔 아쉬움이 너무 큽니다. 자필 편지! 정말 그리운 이름이군요. 편지는 못써도 깊어가는 갈의 맘을 담아 뜻밖의 문자 한통 쓰고 싶습니다.
▢ 9월 22일 : “귀가 멍해지는 소음 속에도 완전히 정지된 내면의 시간이 있다. 그리고 나는 뼛속까지 내가 혼자인 것을 느낀다. 정말로 가을은 모든 것의 정리의 달인 것 같다. 옷에 달린 레이스 장식을 떼듯이 생활과 마음에서 불필요한 것을 모두 떼어 버려야겠다.”《전혜린/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을이 깊어 가면 늘 생각나는 구절입니다. 어느 계절도 마찬가지겠지만 자신이 느낄 수 있는 만큼 계절은 자신의 것이 되는 것 같네요. 알 수는 있으나 표현을 못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가을은 한껏 표현하고 싶은 계절중의 계절입니다. 아름다운 가을을 살 수 있어 행복합니다.
▢ 9월 23일 : 지난 8월 활짝웃는 독서회가 만들어진 이후 처음으로 독서회를 하지 못했습니다. 마침 제가 아파 수술을 해야 했기 때문이지요. 앉아있기가 불편했던 저는 퇴원한 후에도 회지를 얼마간 만들 수 없었습니다. 결국 한회를 거르고 말았지요. 이후 회지는 만들었으나 4주년 기념을 기대했던 회원들의 실망이 컸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하게 되네요. 어떤 조직이던 ‘내가 없어도 되는”조직이 건강한 단체라는 것을요. 회사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고 소규모의 단체들도 다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없어도 정상적으로 일이 처리되도록 이끌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가슴을 치네요. 한사람에게 너무 많은 비중이 주어진 모임은 결코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배웁니다. 앞으로 더욱 건강한 독서회를 만들겠습니다.
▢ 9월 24일 : 추석이 코앞에 다가오네요. 명절 때 마다 주부들의 스트레스가 심하단 얘긴 익히 들어 알고 있는데, 최근 한 조사에서 명절기간 가장 얄미운 사람으로 ‘남편’이 뽑혔다고 합니다. 남편들이 도와주지는 않고 잠만 자고(34.7%) 음식장만 외 돕지 않고(26.4%) 시댁만 챙기기(22.9%) 집안 청소(36.9%) 설거지(16.4%) 음식장만(13.9%) 등을 돕길 바란다는 조사결과가 나왔습니다. 특별히 주부들의 절반은 전을 비롯한 부침이 가장 하기 싫은 품목으로 뽑혔다고 하네요. 그 중에서 75.4%는 명절 후유증을 경험했다고도 하는데 남편들이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집안의 화목과 평화는 남편들보다 아내들이 만들어 갑니다.
▢ 9월 25일 : 읽은 책을 다시 재독할 때의 기쁨이 큽니다. 서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다시 읽고 싶은 책들이 정말 많아요. 단 한 번 읽은 책은 차라리 읽지 말라는 말도 있긴 하지만 평생을 곁에 두고 다시 읽게 되는 책들이 많다는 것이 여간 행복하지 않습니다. 경전은 말 할 것도 없고 각 분야의 여러 가지 책들이 자기 좀 봐달라고 아우성입니다. 신문에 연재될 때 스크랩해가며 읽었던 안도현 시인의 시작법『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를 다시 읽고 있습니다. 이 땅의 글쟁이들과 그리고 성직자들이 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시를 다듬듯 거친 세상을 애무로 안아 삶의 향기가 더 많이 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바로 당신으로 인해서!!!
▢ 9월 26일 : 9월 30일 날 가질 예정인 제49회 독서회 회지를 편집하고 있습니다. 회원들이 보내준 글을 읽고 오탈자를 검사하며 첨삭을 하지요. 표지의 사진을 정하고 한국의 애송시 100편중의 두 편을 선택한 후 이달에 함께 읽을 시를 선택합니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시를 고른다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한 달 내내 그 한편을 고른다고 할 수 있지요. 편집을 하면서 제일 어려운 것은 가차 없이 잘라내는 것입니다. 솎아 내는 것이 진정 사는 길인데 살리고 싶어 만지작거립니다. 그러면 페이지를 넘기게 되고 줄 간격을 맞추다 보면 읽기가 어려워지기도 하지요. 좋은 사진을 찍고 고르는 것도 산고(産苦)입니다.
▢ 9월 27일 : 가끔씩 지난 일기장을 들여다 볼 때가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것은 지난 1971년 11월 부모님 품을 떠나면서 쓴 것인데 제가 열다섯 때였지요. 그 이후에도 꾸준히 썼으니 솔찮게 됩니다. 옛 사진을 보는 것 같이 제 사유의 언저리를 겸연쩍게 들여다 볼 수 있어 혼자만의 킥킥거림의 행복을 주기도 하지요. 일기를 포함한 내가 쓴 글이란 언제 읽어봐도 감추고만 싶은 치부 같은 느낌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의 소품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훨씬 더 소중합니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쓴 글이 아니기에 순도 100%의 순수함이 있는 듯합니다.
▢ 9월 28일 : 어제는 독서회원들과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에서 있었던 ‘2009 가을 독서회문화축전’에 다녀왔습니다.「책과의 유쾌한 대화 -작가와의 만남」에 얼마 전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엄마를 부탁해』의 신경숙 작가를 만나 작가에게 밀리언셀러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했었습니다. 작가는 잘 모르겠다고 운을 뗀 후 소통에 대한 얘길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믿으라고도요. 특히 젊은이들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누구나 서른 이후에는 집중하는 자가 자신을 만든다고도 했습니다. 자기는 작가로서 끊임없이 쓰는 것 외에 뭣이 있겠냐고요. “나를 믿는 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 9월 29일 : 성장소설하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맨 먼저 떠오르고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가 생각나지요. 최근 ‘권장도서목록연구모임’이란 곳에서 몇 권의 작품을 선정했네요.『꽃섬고개 친구들』『깨지기 쉬운, 깨지지 않을』『목요일, 사이프러tm에서』『산다는 것의 의미』『구라짱』『열혈수탉 분투기』『아빠와 함께 수호천사가 되다』『벼랑』『라일락 피면』『닌자걸스』것들이 그것이며 최근에는 유행하고 있는 『완득이』『개밥바라기 별』『워저드 베이커리』등과 함께 추천할 만 한 청소년 성장작품들입니다.
▢ 9월 30일 : 성근 가을을 우리 곁에 남기고 또 한 달이 훌쩍 가네요. 정말 빠릅니다. 올해는 플루다 뭐다 해서 가을 행사들이 많이 연기 또는 축소됐고 어딜 가나 그 영향으로 모임 또한 쉽지 않네요. 이런 와중에도 오늘 제 49회 독서회를 방화 근린공원에서 엽니다. 늘 그렇지만 한 달 동안 정성들여 쓴 글을 읽고 토론하며 노래하는 시간을 가질 것입니다. 남이 쓴 글을 읽기는 쉬우나 내가 한편을 쓰기는 정말로 어렵고 힘든 회원들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회지입니다. 글은 쉽게 쓰지 못하지만 회지를 받으시면 꼼꼼히 읽어주십사는 부탁의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솔직히 혼자서 한 달에 한 권의 회지를 만든다는 것이 쉽지는 않거든요. 여러분들이 읽어주시는 것 만으로도 큰 힘이 되지요. 앞으로 한 달 후면 대망의 50호가 발간되네요. 지난 2005년 8월 처음으로 세상에 나왔던 우리 독서회 회지는 50호를 발간하는 기념으로 1호부터 50호까지를 묶어 한권의 책으로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1호부터 몇 분이 지난 호 모두를 꼼꼼히 읽고 타자를 친 후 편집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비사회복지사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또한 여러 모양으로 도움 주신 방화11종합사회복지관에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토너값도 많이 올라서 부담이 컸는데 몇 개를 지원해 주셔서 인쇄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어요. 두루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이제 갈이 깊어가네요. 풍요 속에 빈곤을 느끼지 않도록 많은 책을 접하는 가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정신이 메마르면 가을이 얼마나 삭막할까요. 넉넉한 마음 밭을 유지 또는 업시키려면 책 만한 것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하네요. 이 아름다운 계절에 망설이지 마시고 책을 손에 잡으십시오. 우리 독서회가 책의 선정 및 대여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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