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37,3-4.12-13ㄷ. 17ㄹ-28 / 시편 105,16-17. 18-1-. 20-21 / 마태 21,33-43. 45-4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3,16)
사람은 누구나 다른 이들에 비해 자신이 독특하기를 바라며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또한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이 아주 뛰어난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주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고 싶어 합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이가 자신들의 배경, 음악적 취향, 좋아하는 스포츠 팀에 따라 동아리에 가입합니다.
우리는 같은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을 찾고, 그 사람들이 우리의 가치도 인정해 주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같은 무리를 찾게 되면, 우리를 다른 무리들 위로 올리기 위해 배타적인 그룹 안에서 회원 자격을 행사합니다.
우리는 마치 일반적인 세상의 경향이나 관념 그리고 중요하지 않은 사건들보다 위에 있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종교적 신념에 관해서도 많은 이가 비슷하게 행동합니다.
우리는 잠재의식적으로 우리의 종교적 신념도 우리처럼 독특하고 필적할 만한 것이 없고 구별되기를 바랍니다.
그 결과, 어떤 사람들은 너무 많은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이유만으로 복음을 거부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앙은 받아들이지만 자신들을 교회의 일체성에서 분리시켜 살아갑니다.
복음 메시지의 단순하고 통일된 아름다움에 대한 반감이 어떤식으로든 마음 안에 솟아오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오늘 복음 구절인 요한복음 3장 16절을 백색소음으로 취급할 수도 있습니다.
이 구절은 복음 메시지의 단순성을 한 줄로 전하고 있지만, 우리는 기대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듣고 싶어 합니다.
어쩌면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성경 구절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수백만 번 들었습니다. 너무 많이 들어서 그 말에 진력이 났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실제로 성가시고 과한 일들과는 달리, 복음의 풍부하고도 심오한 깊이는 결코 완전하게 이해될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복음 전체의 깊은 뜻을 담고 있기에, 이 구절이 너무 많이 사용된다고 지나치기보다는 읽을 때마다 그 말씀이 우리에게 새로운 충격을 주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죽음에서 구원하기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우리 삶이 놀랍고도 위안이 되는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매일의 일상적인 현실에서 길을잃고 맙니다.
우리를 정말 지루하고 지겹게 하는 것들, 텔레비젼 쇼나 소셜 미디어를 통한 드라마, 뒷공론, 정치적 추문
그리고 가족이나 친구 사이의 다툼이 사로잡히고, 세속적인 혼돈 상태에 빠져 버립니다.
우리가 복음 안에 있는 보화들을 무시하는 동안 삶에서 정말 성가신 것들이 우리 마음을 빼앗습니다.
그러나 날마다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 그것을 바꿀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우리는 우리를 지루하게 하는 것들에 싫증을 내고, 생명 자체이신 분 안에서 생명을 찾는 것을 날마다 배울 수 있습니다.
하루의 성찰과 중재기도
1단계: 하느님의 현존을 인식하십시오.
눈을 감고, 셀를 통해 내 안에 머무시는 하느님 앞으로 나오십시오.
나 자신을, 모든것을 아시는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바라보고 계시는 어린아이로 상상하십시오.
사랑이신 하느님의 눈길을 통해 진실을 바라볼 수 있도록, 자기중심적인 상태에서 벗어나는 자신을 상상해 보십시오.
우리 삶에 대한 하느님의 관점만이 중요하기에, 이 단계는 성찰을 시작하는 아주 중요한 단계입니다.
2단계: 성령의 인도를 청하십시오.
하느님 은총의 빛 안에서 하루를 돌아볼 수 있도록, 성령께 도움을 청하는 짧은 기도를 바칩니다.
3단계: 하루를 되돌아보십시오.
"하느님께서 오늘 나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그리고 "나는 하느님과 내 이웃을 어떻게 사랑했는가?"화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하루의 어떤 두드러진 순간이 떠오르면 거기에 잠시 머무십시오.
그러나 이 단게는 고해성사를 준비할 때의 양심 성찰 같은 것은 아닙니다.
부정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모두에 주목하며
그것들을 감사하는 마음과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느님 앞에 내어드리십시오.
4단계: 당신의 죽음을 기억하십시오.
삶의 마지막 순간의 관점에서 하루를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의 임종 장면을 마음속에 그려보고 영원한 삶과 관련하여 이전 단계에서 떠올랐던 것들을 다시 바라보십시오.
이 단계에서는, 그날 하늘나라를 위해 나에게 준비된 모든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하십시오.
언제일지 알 수 없는 죽음의 순간을 더 잘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 필요한 은총을 청하십시오.
"내가 내일 죽는다면, 하느님께 어떤 은총을 청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5단계: 내일을 예비하십시오.
다음 날을 미리 바라보고 예비하는 것으로 마칩니다.
이 단계에서는, 또 다른 하루의 생명을 선물로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 선물은 하느님 뜻에 따른 것입니다.
다음 날 일어날 일들, 특히 특별한 은총이 필요한 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내일 맞닥뜨릴 시련이나 기쁨의 순간을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은총을 믿고 그 은총 안에서 행동하는 자신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 단계를 충실히 하면, 삶 안에서 구체적인 행동과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삶의 모든 것을 하느님의 진리에 따라 바라볼 수 있도록 자신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나 자신이 더 거룩해지도록 성모송을 바치십시오.
하느님께서 세상을 그토록 사랑하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하느님 스스로 선하심 외에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외아드님마저도 아끼지 않으셨으니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에 부끄러워하고, 그분의 넘치도록 사랑에 찬 호의에 부끄러워합시다.
그분은 우리에게 외아드님을 주셨는데, 우리는 그분을 위해 돈을 경멸하는 것조차도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우리 자신을 우해서도요. 그런데 어떻게 이런 것들이 용서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우리를 위해 고통을 당하고 죽는 것을 보면, 우리는 그를 다른 모든 사람 앞에 세우고, 우리의 최고의 친구로 여기며,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그의 손에 넘기고 그것을 우리 것이라기보다 그의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렇게 한다해도, 그가 받아야 할 보상을 다 해준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분은 우리를 위해, 마음씨가 곱거나 선하지도 않은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시고 당신의 귀한 성혈을 쏟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영적인 행복을 위해 우리의 돈도 내놓지 않고, 그분이 헐벗고 나그네였를 때,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그분을 소홀히 대합니다.
그런데 왜 돈에 대해서만 이야기합니까? 우리가 만 개의 목숨을 가졌다면 그분을 위해 그 모두를 내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 요한 크리소스코모 [요한복음 강해 27]
묵상과 기도 기록하기
* 내 삶을 영원한 생명으로 몰입시키는 것, 곧 죽음 이후를 바라보며 참되게 사는 것이 어떤 모습일지 묵상해 보십시오.
* 좋아하는 성경 구절을 필사하십시오. 그 말씀에 대해 깊이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그 구절이 지닌 여러 의미를 탐구해 보고, 하느님께서 주신 말씀에 대해 감사드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