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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강해(20) 2024. 11. 20
이스라엘을 향한 세 가지 축복
열왕기상 8:54-66
<지난주 요약 - 솔로몬의 청원 기도>
우리는 지난주에,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솔로몬의 청원 기도’를 4가지로 요약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범죄에 대한 증거가 없을 경우, 성전에서 맹세하면 그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시기를 청원하였습니다(공의).
둘째, 백성이 죄를 범함으로 전쟁에서 패하고, 포로로 잡혀갔을 때, 성전에 나아와 회개하고 ‘주의 이름을 인정’하면 용서해주시기를 청원하였습니다.
셋째, 이스라엘에 다양한 재앙이 임했을 때, 자신들의 범죄함을 깨닫고 성전에 나아와 용서를 빌면 죄를 사하여 주실 것을 청원하였습니다.
넷째, 이방인이 성전에서 기도할 경우 응답해 주실 것을 청원합니다(만민이 기도하는 집).
솔로몬은 이 성전은 유대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세계 열방의 구원을 위한 통로로 세워졌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솔로몬이 경험한 하나님 고백>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솔로몬의 청원 기도를 마친 솔로몬은 일어나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축복하여 주었습니다.
54~55절 “솔로몬이 무릎을 꿇고 손을 펴서 하늘을 향하여 이 기도와 간구로 여호와께 아뢰기를 마치고 여호와의 제단 앞에서 일어나/ 55 서서 큰 소리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위하여 축복하며 이르되.”
솔로몬은 단상 위에서 ‘무릎을 꿇고 손을 펴서’ 기도했었습니다. 기도를 마친 솔로몬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앞서 22절에서는 ‘온 회중과 마주 서서’ 기도했다고 나옵니다(22절 “솔로몬이 여호와의 제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과 마주 서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이는 ‘서서 기도했다’는 뜻이 아니라 회중을 마주 보고 있다는 방향을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온 회중을 향해 솔로몬은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합니다.
56절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그가 말씀하신 대로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태평을 주셨으니 그 종 모세를 통하여 무릇 말씀하신 그 모든 좋은 약속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아니함이 없도다.”
한 마디로 모세를 통해서 주신 모든 약속의 말씀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솔로몬은 이 성전이 봉헌되는 바로 이 순간이 출애굽 이후 모세에게 주신 하나님은 약속이 완전히 성취되는 순간으로 선포한 것입니다.
특히 강조된 표현이 ‘태평’입니다. 여기서 '태평'은 '안식'이란 뜻입니다. 이 안식에의 약속은 신명기 12:9~11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12:9~11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안식과 기업에 아직은 이르지 못하였거니와/ 10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 거주하게 될 때 또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너희 주위의 모든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너희에게 안식을 주사 너희를 평안히 거주하게 하실 때에/ 11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 곳으로 내가 명령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곧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가 여호와께 서원하는 모든 아름다운 서원물을 가져가고/ 12 너희와 너희의 자녀와 노비와 함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요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도 그리할지니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음이니라.”(레위기26:3-13과 신명기 28:1-14의 내용 참조)
비록 여호수아 21:44에서 이 안식이 성취되었지만, 그것은 불완전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아직 많은 가나안 족속들이 땅의 도처에 있었고, 영구한 평화의 상징인 성전도 건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 시대의 정복을 거쳐 마침내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 성전이 건축됨으로써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안식(태평)은 완전히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솔로몬은 지금, 이 순간이 모세를 통하여 주신 ‘태평’의 약속이 이제 완전히 성취되었음을 신앙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전능자요 선지자인 하나님의 말씀 또는 약속은 호리(毫釐. 할푼리모(割分釐毛)의 비율, 매우 적은 분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에 모(毛=毫)를 쓰는 것이다. 리(釐)는 비율을 나타내는 단위이다. 1리는 전체수량의 1000분의 1로 1푼(分)의 10분의 1이다.)라도 헛되이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입으로’ 약속하신 것을 ‘손으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신학자 앤드류 머레이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때 그것은 이미 이룬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습니다.
민23:19(발람의 두 번째 예언 중)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사40: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사 55:10~11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마5:18(예수님의 산상수훈)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이렇듯 솔로몬은 온 백성 앞에서 ‘지금, 이 순간’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것이 성취되는 영광스러운 순간임을 선언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솔로몬의 축복>
이어서 솔로몬은 이스라엘을 향한 세 가지 축복을 선포합니다(일종의 축사(祝辭)).
첫째, 하나님이 조상들과 함께하셨던 것처럼 앞으로도 이스라엘과 함께하시길 축복하였습니다.
57절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함께 계시던 것 같이 우리와 함께 계시옵고 우리를 떠나지 마시오며 버리지 마시옵고.”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비극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버림을 받는 것'입니다.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은 어린아이들의 슬픔도 그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없는 고통입니다(해외 입양아들의 설움).
사랑했던 연인에게서 버림을 받는 비극은 너무 큰 슬픔입니다. 실연을 당한 슬픔을 노래로 만들어 부른 것도 수없이 많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요즘에는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자식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부모들의 비극과 불행이 있습니다.
또한, 평생 헌신한 직장에서 너무도 쉽게 버림받는 이들의 아픔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이 버림받고 잊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영원히 버리시지 않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49:15~16a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포기하시지 않습니다. 아무리 우리에게 많은 문제가 있고, 도저히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고하실 때, 천사를 통하여 주신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임마누엘’입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와 더욱 함께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승천 이후에는 ‘성령님’을 통해 그 역사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마28:20).
이처럼 솔로몬은 하나님이 조상들과 함께하셨던 것처럼, 앞으로도 이스라엘과 함께하시길 축복하였습니다.
그런데 꼭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버리시는 경우는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돌아서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두 번째 내용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게 해 달라고 축복하였습니다.
58절 “우리의 마음을 주께로 향하여 그의 모든 길로 행하게 하시오며 우리 조상들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키게 하시기를 원하오며.”
솔로몬은 ‘우리의 마음을 주께로 향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래서 주께서 지시하신 그 길을 걷게 하시며, 주께서 우리 조상에게 내리신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키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래되면 무엇이든지 상합니다. 우리의 마음도 부패합니다.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날마다 갱신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방부제의 역할을 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말씀’을 가까이 두고 늘 은혜를 되새기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켜야 할 것은 ‘돈’도, ‘명예’도, ‘권력’도 아닙니다. ‘마음’입니다.
잠언 4:23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실까 염려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과 멀어질까를 염려해야 합니다.
셋째, 이스라엘 백성에게 날마다 필요를 따라 돌보아 달라고 축복하였습니다.
59절 “여호와 앞에서 내가 간구한 이 말씀이 주야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있게 하시옵고 또 주의 종의 일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일을 날마다 필요한 대로 돌아보사”
자신이 드린 간구와 기도가 하나님께 가까이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이는 자신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낮이나 밤이나 늘 기억해 주시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기도대로 이스라엘에게, 날마다 그 형편과 필요에 맞게 채워달라는 기도를 드립니다[만나 - 출 16:4, 주기도문(일용할 양식 - 마 6:11)].
그런데, 어떤 때는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지 않는 것 같이 느낄 때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기도하고 간청한 후 응답을 기다리지 못하고 낙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별히 우리 한국 사람들은 다른 나라의 사람들에 비해, 더 큰 조급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빨리빨리”라는 말이랍니다.
장점으로 보자면, 맡은 일을 금방 해냅니다(밥도 빨리 먹습니다). 그래서 고도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단점으로 작용할 때도 있습니다. ‘조급증’이라는 병에 걸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안절부절못합니다. 신앙도 빨리빨리 병에 걸린 듯합니다. 믿음이 빨리 자리기를 바랍니다. 기다려주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들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혀 있었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강제노역하고, 그러다가 병들어 약해지는 사람들은, 가스실로 가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아우슈비츠 수용소 안에서는 그들이 부르는 소망의 노래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아니마민’입니다. 히브리어인데, 그 뜻은 ‘나는 믿는다’라는 뜻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구세주가 오리란 걸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금 늦게 오십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 가사는 절망에 섞인 내용으로 바뀌게 됩니다. “우리는 구세주가 오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너무 늦게 오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고, 절망 앞에 부딪힙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도 신경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이라는 청년은 이 노래를 이렇게 부릅니다.
“우리는 구세주가 오리란 걸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늦게 오신다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가 너무 조급해할 따름입니다.” 이처럼 프랭클은 노래 가사를 긍정적인 내용으로 바꾼 것입니다. 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그렇게 힘든 중노동을 하면서도, 절망하거나, 석방될 것을 포기하지 않고 수용소 생활을 하였습니다. 건강검진을 하는 날은, 유리 조각으로, 깨끗하게 면도를 하고 면접을 봤습니다. 그래서 다른 유대인들보다, 더 깨끗하고, 건강해 보여서, 가스실로 끌려가지 않을 수가 있었고, 결국 끝까지 살아남아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해방을 맞이하게 됩니다. 전쟁이 끝나고, 석방도 되어 ‘빅터 프랭클’은 스웨덴으로 가서 병원을 개업했습니다. 그의 믿음은 포기하지 않는 믿음이었습니다.
기독교 영성가인 리처드 포스터는 “조급함은 마귀적인 것이 아니라 마귀 자체다”라고 말했습니다. 조급함 자체가 마귀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사람들은 대부분 하나님께서 오랜 시간 준비시켜 철저하게 훈련시킨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75세에 고향을 떠나 후손을 약속받았지만, 100세가 되기까지 기다렸습니다.
요셉은 13년 동안 종살이와 감옥살이를 한 후에, 애굽의 총리로 발탁되었으며, 모세는 광야에서 40년 동안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구원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 밑에서 40년 동안 훈련받고 난 다음에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오랜 시간 주님과 함께 다니면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참나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6년이 걸리고, 재목으로 쓰기 위해서는 무려 100년이 걸려야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급하지 않으시고 천천히 우리를 위한 축복과 응답을 준비하고 계신 것입니다.
히10:36~39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37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우리는 조급해하지 말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절대로 절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때를 묵묵히 기다릴 줄 아는 지혜와 인내가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솔로몬의 축복의 목적>
솔로몬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축복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60~61절 “이에 세상 만민에게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없는 줄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61 그런즉 너희의 마음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온전히 바쳐 완전하게 하여 오늘과 같이 그의 법도를 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킬지어다.”
솔로몬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인해, 세상의 모든 백성이, 주님만이 하나님이시고 다른 신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즉 모세에게 명하신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를 소원한 것입니다.
솔로몬은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온전히 바칠”(61) 것을 요구합니다. 그것이 주의 법도대로 행하며, 주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 시대를 사는 우리 성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통해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것을 말씀하시면서, 그 목적을 분명히 설명하여 주셨습니다.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사도 바울도 자신의 분명한 삶의 목적을 고백하였습니다.
빌1:20~21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오늘 우리도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빛과 소금’이 되어 세상을 맑게 하고, 나아가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한 하나님이심을 온 세상에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4일간의 성전 봉헌식>
마지막 단락은 14일 동안 진행된 성전 봉헌식에 대한 기록입니다.
62~66절 “이에 왕과 및 왕과 함께 한 이스라엘이 다 여호와 앞에 희생제물을 드리니라/ 63 솔로몬이 화목제의 희생제물을 드렸으니 곧 여호와께 드린 소가 이만 이천 마리요 양이 십이만 마리라 이와 같이 왕과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성전의 봉헌식을 행하였는데/ 64 그 날에 왕이 여호와의 성전 앞뜰 가운데를 거룩히 구별하고 거기서 번제와 소제와 감사제물의 기름을 드렸으니 이는 여호와의 앞 놋제단이 작으므로 번제물과 소제물과 화목제의 기름을 다 용납할 수 없음이라/ 65 그 때에 솔로몬이 칠 일과 칠 일 도합 십사 일간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로 지켰는데 하맛 어귀에서부터 애굽 강까지의 온 이스라엘의 큰 회중이 모여 그와 함께 하였더니/ 66 여덟째 날에 솔로몬이 백성을 돌려보내매 백성이 왕을 위하여 축복하고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는데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하였더라.”
사람들은 솔로몬이 기브온에서 드린 일천번제에 감탄하지만, 이날 성전 봉헌식에서 드린 제물은 그것과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번제물과 소제물과 화목제물로 드린 소가 자그마치 2만 2천 마리요 양이 12만 마리였으니 말입니다. 성전의 놋 제단으로는 그 숫자를 도무지 감당할 수 없어서 성전 앞뜰에 특별한 제단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제물의 숫자가 아닙니다. 성전 봉헌식에 참여한 사람이 그만큼 많았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역사상 이렇게 많은 백성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일은 전에도 후에도 없었습니다[하맛 어귀 - 이스라엘의 북쪽 경계, 애굽 강 - 남쪽 경계선(창 15:18)].
이 봉헌식은 초막절 절기에 맞추어, 총 14일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솔로몬의 축복은 오늘 우리의 민족을 향한 기도입니다.
우리도 솔로몬과 같이 이 민족을 위해 항상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첫째, 하나님이 우리 민족과 앞으로도 늘 함께하시길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우리 민족(특히 성도)의 마음이 늘 하나님을 향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늘 가까이 두시고, 필요를 따라 돌보아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대한민국이 이 시대의 ‘영적 제사장’으로 쓰임 받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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