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합기도 1971년 9월호 /총 3호로 그침. 이 글은 27년전 월간 합기도 잡지에 게재되었던 된 글로서 해방후 최용술옹의 귀국과 대구에 서 본격적으로 합기도를 보급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소설식으로 기술하고 있다. 특히 서복섭씨가 최용술옹의 술기를 처음 목격한 장면이 구체적으로 묘사 되어있다.
1. 해방되던 해
도주 최용술선생께서는 일본 사람들 세계에서도 극비리에 연수했던 합기술 을 일본의 심심산중에서 수련했고 일제말기에는 궁성(일본 왕이 거처하던 궁궐)안의 황족들을 교습하기 위해 무상으로 출입하고 있었다. 일본 사람들 도 황족이나 귀족이 아니면 교습을 받을 수 없는 그 비술을 우리 최도주께 서는 이미 산상 수련 9년을 마치고 스승을 대신하여 전국각처의 도장을 돌 아보고 계셨다. 이름은 '요시다 아사오(일본 한자명: 길전조남). 그러나 선 생의 가슴속에
는 언제나 한국의 피가 끓고 있었다. 당시의 스승 '다께다 소 오가꾸' 선생 문하에서 이 '요시다'는 수족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중 2차대전이 끝났다. 일본은 망하고 조국은 일어선 것이다. 해방된 조국을 향하여 귀환 동포의 대열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연일 계속되었다.
2. 손목을 끊어라
이럴 때 선생은 일본 유술계의 중심인물들을 모아놓고 엄숙한 대화를 주고 받고 있었다. 방안에는 일부의 유술계 중진들이 둘러앉아 있고 서로들 이 중대한 안건 앞에서 말대신불이 번득이 는 눈길만 조용히 굴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사람이 무거운 입을 떼었다.
「그래 가야겠소」
「……」
「……」
「당신은 이 나라의 명인임을 알고 있소?」 두 번째 질문이다.
「……알고 있소」
다시 일동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으나 입을 열기를 주저 했다. 한참만에 야 한 친구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 나왔다.
「꼭, 당신이 가야한다면 …, 그 손목을 맡겨놓고 가시오.」
말하자면 손목을 끊어버리겠다는 뜻이었다. 선생은 이 말을 듣자 분연히 대 답했다.
「좋소! 여러분의 원이라면 좋소, 그러나 해방된 조국을 나는 외면할 수는 없소」
결연한 이 말에 일동은 더 말리지 못했다. 일본 유술계의 큰별 하나를 딴 나라에 빼앗기는 것이 몹시 안타깝기도 했지만 그러나 조국으로 가는 길 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모았다.
「가보시오, 독립된 조국에 돌아가서 보람된 일을 많이 하시오」
모두 손을 맞잡으며 눈물이 글썽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