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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지리산 둘레길 3코스(인월-금계)
여행일 : ‘21. 10. 16(토)
소재지 : 전북 남원시 인월면·산내면, 경남 함양군 마천면 일원
여행코스 : 구인월교→중군마을(2.1km)→수성대(2.9km)→배너미재(0.8km)→장항마을(1.1km)→서진암(2.5km)→상황마을(3.5km)→등구재(1km)→창원마을(3.1km)→금계마을(3.5km)(거리 및 시간 : 20.5km/ 실제는 중군마을에서 장항마을까지를 빼고 16km를 4시간 4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대한민국 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1,915m)은 3개 도(전북·전남·경남). 5개 시·군(남원·구례·함양·산청·하동)에 걸쳐있다. 또한 아흔아홉 계곡과 500여 개의 자연마을을 품는다. 그 지리산의 둘레를 걷기 길로 이은 게 ‘지리산 둘레길(현재 20개 읍·면, 100여 개의 마을을 지난다)’이다. 오늘은 3구간인 인월-금계 구간을 걷는다. 4개 코스 46km로 이루어진 남원권역의 세 번째 구간으로 이 구간의 끄트머리에서 둘레길은 경남(함양군 마천면) 땅으로 들어선다. 구간이 긴데다 두 개의 큰 고개까지 넘어야하기 때문에 지리산둘레길 22개 구간 가운데 가장 힘든 코스로 꼽힌다. 하지만 올망졸망한 산촌마을과 계단식 다랑논, 그리고 지리산의 주능선을 바라보는 재미는 이 구간이 지닌 가장 큰 자랑거리다.
▼ 들머리는 구인월교(남원시 인월면 인월리 688-5)
광주-대구고속도로 지리산 IC에서 내려와 ‘인월장터로(나들목-구인월교)’를 타고 인월면소재지를 통과하면 ‘구인월교(24번 국도에서 시가지로 들어오는 곳에 ‘인월교’라는 새로운 다리가 놓이면서 ‘옛 구(舊)’ 자를 덧붙이지 않았나 싶다)’가 나온다. 지리산둘레길 3구간의 들머리는 다리 건너(‘달오름마을’ 방향)에서 열린다.
▼ 인월면(전북 남원시) 월평마을(인월리)에서 마천면(경남 함양군) 금계마을(의탄리)까지 지리산 자락에 들어앉은 6개의 산촌마을을 잇는 옛길로, 거리(20.5km)가 먼데다 등구재(해발 635m)와 배너미재까지 넘어야하기 때문에 종주꾼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구간이다. 그래서 산악회 대부분은 2구간에 3구간의 일부를 더해 일정을 짠다. 청마산악회에서도 지난번 2구간 때 3구간의 중군마을까지 걸었었다.
▼ 3구간(인월-금계)이 시작됨을 알리는 안내판. 곁에는 ‘인월 전통시장’에 대한 홍보판도 세워놓았다. 맞다. 화개장과 더불어 영호남 소통의 장터라니 구경삼아 한번쯤 들러보는 것도 괜찮겠다. 2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니 길을 나서기 전에 시장에 들러 뜨끈한 순댓국으로 배를 채워도 좋겠고 말이다. 끝자리 3·8일에 오일장이 열리지만 4~10월 토요일에는 풍물시장, 할머니장터, 음악공연도 열린단다.
▼ ‘구인월교’에서 활처럼 휘어진 람천(濫川)의 둑길을 따라 걸으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벚나무가 터널을 만들어내는 멋진 길이다. 하지만 내게는 ‘이곳이 일본 땅도 아닐진대’로 치부해버리는 풍경이기도 하다. 물론 과거 일본인이 제주도에 있는 왕벚나무를 일본으로 가져간 것이 ‘일본 벚나무’의 시초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그게 뭐 대수란 말인가. 왕벚나무를 가져가서 개량해서 그네들의 국화를 만들었고, 실제 우리가 아름답다며 사방에 심고 있는 벚나무들이 왕벚나무가 아닌 그네들이 개량해 놓은 종자라는 게 더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 구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지리산둘레길 인월센터’은 람천의 건너편에 있다. 다리(구인월교)를 건너자마자 오른편으로 100m만 가면 나오니 길의 상태나 기상 상황 등을 센터에서 확인하고 나서는 게 좋겠다(월요일은 휴관). 구간지도와 숙박정보, 주변관광지 안내 리플릿 등도 얻어 볼 수 있다. 일을 보고 난 다음 센터 앞의 물막이(堡)를 건너면 둘레길에 합류된다.
▼ 인월청년회에서 조성했다는 숲길은 흥부고을에 대한 홍보까지 하고 있었다. 박을 절반으로 잘라 의자를 만들었는가 하면, 박과 제비 그리고 흥부로 여겨지는 조형물로 치장을 했다. 참고로 이곳 인월면과 어깨를 맞대고 있는 아영면 성리마을은 판소리 다섯 마당 중의 하나인 흥부전의 배경이다. 전해 내려오는 설화와 지명을 근거로 흥부가 정착하여 부자가 된 곳이라 굳게 믿는단다.
▼ 1.5km쯤 이어지던 둑길이 끝나면 탐방로는 60번 지방도로 올라선다. 그렇다고 안전에 신경 쓸 필요까지는 없다. 도로변에 따로 길은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저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나 실컷 즐기면 되겠다. 인월면의 들녘을 꾸려나가던 ‘람천’은 저곳에서 또 다시 협곡(덕두산의 동쪽) 속으로 빨려든다. 그런 다음 이번에는 산내면의 들녘을 만들어낸다.
▼ 500m쯤 더 내려가면 3구간의 첫 번째 마을인 ‘중군마을(이정표 : 금계 18.4km/ 인월 2,1km)’이 모습을 드러낸다. 길을 나선지 30분 만에 만난 이 마을의 역사도 역시 이성계로부터 시작된다. 마을 이름도 고려 말(1380년) 왜구를 토벌하러 온 이성계가 이곳에 중군(中軍)을 둔데서 유래되었다. 고려의 군대는 중·전·후·좌·우군의 오군으로 편성된다. 이 가운데 중군이 주둔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곳이 전략적 요충지라는 증거일 것이다. 하긴 고려 말이라면 람천을 따라 난 이 길이 호남의 남원과 영남의 마천을 연결하는 유일한 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 전주 한옥마을의 한쪽을 옮겨놓은 듯 까만 기와집 수십 채가 옹기종기 들어앉은 마을로 들어서면 소담한 벽화가 길손을 반긴다. 그런데 다른 지역의 벽화들과는 달리 이곳은 민화로 채워졌다. 민속마을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니 그게 다는 아니다. 잣과 호두, 다람쥐를 그려 넣음으로써 이 마을이 본업인 농사 외에도 호두와 잣이 많이 생산된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 중군마을에서 장항마을까지 4.5km 구간은 생략하기로 했다. 특별한 이야깃거리나 볼거리가 없다는 게 이유지만, 실제는 집사람의 체력을 안배한 결정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곳은 장항마을의 ‘당산소나무’. 마을 뒤 언덕에서 천왕봉을 배경으로 우뚝 서있는 한 그루의 거대한 소나무다. 그런데 수령이 400년도 넘다보니 신기(神氣)까지 띠었나보다. 마을 지켜준다고 해서 당산제까지 지내오고 있단다.
▼ 스탬프보관함이 설치되어 있는 이곳의 자랑거리는 지리산에 대한 조망이다. 천왕봉을 중심으로 좌우에 중봉과 제석봉·촛대봉을 낀 지리산의 주능선이 일목요연하게 펼쳐진다.
▼ 당산소나무보다도 더 오래 묵어 보이는 느티나무를 향해 내려서면서 오늘의 여정을 시작한다. 참! 운봉이 호수일 때 배가 넘나들었다는 ‘배넘이재’까지 올라가볼까도 생각해봤지만 그만두기로 해봤다. 고갯마루 있다는 ‘H빔’ 형상의 나무, 즉 한 뿌리에서 나온 소나무가 둘로 나뉜 뒤 다시 손을 맞잡고 나란히 하늘로 향하는 소나무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절약해야 3구간만의 매력이라는 주막에서 막걸리라도 한잔 맛볼 수 있잖겠는가.
▼ 느티나무에서 오른편으로 내려서니 ‘장항마을(獐項里)’이 발아래다. 덕두산 줄기의 산자락에 위치한 마을로 산세가 노루목과 같은 형국이라 하여 ‘노루 장(獐)’자, ‘목 항(項)’자를 써서 장항리라 했단다. 하지만 주민들에게는 노루목이 더 익숙하다나?
▼ 장항마을 앞 도로(이정표 : 금계 13.5㎞/ 인월 7.0㎞)에는 ‘신선둘레길’이 나뉜다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반대편에 종합안내도까지 세워놓고 신선처럼 마음을 비우고 편안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걸어볼 것을 권한다. 이곳 장항마을을 출발해 원천마을과 팔랑마을, 팔랑치를 거쳐 바래봉에서 끝을 맺는 길이 9.5km의 1코스와 이곳에서 내령과 뱀사골을 거쳐 달궁마을로 이어지는 2코스(15.8km)가 있단다.
▼ 잠시 후 만나게 되는 ‘장항교’ 아래로는 ‘람천’이 흐른다. 산내면의 들녘에서 만수천의 물줄기를 보탠 냇물은 전라북도와 경상남도의 도계에서 다시 협곡을 통과하면서 ‘임천(林川)’이 된다. 이 임천은 남강, 남강은 본류인 낙동강이 되어 남해로 흐른다.
▼ 다리(장항교)를 건너자 나타나는 60번 지방도(이정표 : 금계 13.2㎞/ 인월 7.3㎞). 그런데 도로 표지판이 사람을 헷갈리게 만든다. 둘레길은 이곳에서 오른쪽 함양 방향으로 길을 잡는데, 산내면이 마치 함양군에 속해있는 것처럼 표기해 놓았다.
▼ 도로변을 200m쯤 걸었을까 산내우체국(이정표 : 금계 13.0㎞/ 인월 7.5㎞)이 나오는가 싶더니 둘레길은 또 다시 도로와 이별을 고한다. 그리곤 감식초공장 방향으로 난 임도를 따라 올라간다. 참! 길이 나뉘는 곳에는 둘레길 순례자들을 위한 편의시설인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었다.
▼ 집사람에게도 가을을 수확의 계절이다. 텅 빈 논밭과는 달리 둘레길 주변의 가을은 도리어 푸르디푸르렀기 때문이다. 냉이와 민들레가 봄나물 못잖게 푸른데 집사람이 그걸 놓칠 리가 있겠는가. 씨앗에서 자라난 가을 냉이가 진미라면서 채취에 여념이 없다. 저 냉이는 다음 주 내내 우리 집 밥상을 즐겁게 해줄 것이다.
▼ 저녁노을보다 더 붉게 물든 고추, 다랑논에서 황금빛으로 춤추는 벼로 대변되는 가을 풍경이지만 한로(寒露)를 떠나보낸 지금은 온 들녘이 텅 비었다. 하지만 일손이 바쁜 농부는 과일밭 가을걷이까지는 마치지 못했나보다. 용광로보다 뜨거운 여름을 온몸으로 견뎌낸 열매가 흙을 떠날 채비를 마치고 농부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 임도(천왕봉로)로 올라선지 20분 남짓. 둘레길은 매동(梅洞) 마을에서 올라오는 또 다른 임도(매동길)를 보탠(이정표 : 금계 11.8㎞/ 인월 8.7㎞) 다음 실상사의 부속암자인 ‘서진암’으로 향한다. 이어서 10분쯤 더 걷자 서진암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뉘는데, 길가에 놓인 지게가 눈길을 끈다. 이곳에서 암자까지는 걸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일 것이다.
▼ 잠시 후 둘레길은 오솔길로 변한다. 그리고는 산비탈을 횡으로 째며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한다. 하지만 울창한 소나무 숲속을 헤집는 덕분에 지루하거나 힘들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코끝을 스쳐가는 솔향기가 이렇게 짙은데 그런 생각이 파고들 틈새가 어디 있겠는가.
▼ 이 길은 남원과 함양 사람들이 오가던 옛길이다. 그 연륜이 죽은 나무까지도 변화시키나 보다. 쓰러지기 직전인 고사목이 저렇게 아름답게 보이는 걸 보면 말이다.
▼ 콧노래 흥얼거리며 걷길 10분 남짓. 길이 둘로 나뉜다. 벅수(금계 10.5㎞/ 인월 10.0㎞)야 둘레길의 방향만 표시하고 있지만 오른편은 중기마을(산내면 대정리)로 연결된다.
▼ 갈림길에는 ‘지리산 길섶’이라는 갤러리의 홍보용 팻말도 세워져 있었다. 사진작가인 강병구씨가 운영하는 카페 겸 갤러리인데, 숙박은 물론이고 아침저녁 식사까지 제공된단다. 조금 우회는 하지만 둘레길과 연결되니 순례길 나그네들에게 잠시 쉬었다가라는 얘기일 것이다.
▼ 울창한 솔숲을 헤집으며 난 둘레길은 걷는 맛이 일품이다. 경사가 완만하고 길 정비가 잘 돼 있어 어린 자녀와 함께 걸어도 좋을 것 같다. 맞다. 이 길은 옛날 마천과 인월을 잇는 가장 빠른 길로 불과 30년 전까지만 해도 마천 주민들이 인월장을 오갈 때 이용하던 ‘지리산 옛길’이다.
▼ ‘사람의 손이 떠났다’는 안내판의 문구가 눈길을 끌어 카메라에 담아봤다. 한때 고추가 익고 벼가 고개를 숙이던 논밭은 농부의 발길이 끊기자 묵밭이 되었고, 그 빈자리에 나무가 들어서면서 숲으로 다시 태어났단다.
▼ 산이 크니 골짜기 또한 클 것은 당연. 그래선지 우천시 통행이 제한되는 곳도 두어 번 만날 수 있었다. 안내판은 이런 사정을 적고 그려놓은 지도를 따라 우회할 것을 권한다.
▼ 산비탈을 따란 난 길은 작은 고갯마루(이정표 : 금계 9.9㎞/ 인월 10.6㎞)를 넘는다. 이어서 임도를 따라 중황마을로 들어선다. 유원지 느낌이 들 정도로 민박과 쉼터가 많이 들어선 마을인데, 그 첫 번째 만남은 ‘머루랑다래랑’이라는 펜션 겸 쉼터이다. 담쟁이로 뒤덮인 돌담을 끼고 있는데, 천왕봉과 주능선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는 문구로 나그네를 유혹하고 있었다.
▼ 등구재로 향하는 둘레길은 이제 중황마을과 상황마을을 차례로 지난다. 지리산둘레길은 이렇듯 둑길과 농로, 숲길, 산길, 임도, 차도 등 길이라는 길은 모두 만난다. 마을의 관통도 수시로 한다. 그러다보니 시도 때도 없이 갈림길을 만나게 되고,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의심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행여 갈림길이라도 나올라치면 어김없이 이정표를 세워두었고, 그 간격이 길 경우에는 곳곳에 둘레길 특유의 리본을 매달아놓았다.
▼ 천석꾼이 살았다는 상황마을 주변은 온통 다랑논 일색이다. 다랑논은 산골짜기 비탈진 곳에 층층으로 된 좁고 긴 논을 말한다. 지리산 자락 완만한 비탈을 따라 조성된 다랑논은 무수히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된 풍경이다.
▼ 탐방로 주변에는 반듯하게 지어진 주택들이 의외로 많았다. 주인은 외지에서 들어온 이들이 대부분인데 주로 펜션으로 운영된다. 들리는 얘기로는 심심산골인데도 불구하고 계곡이나 물가의 좋은 자리는 이미 웬만한 중소도시의 부동산 가격 못지않게 올랐다고 했다. 웰빙이나 힐링에서 행복을 찾는 세태가 불러온 변화일 것이다.
▼ 오늘도 집사람과 함께 걷는다. 집은 물론이고 밖에서까지 내 곁을 지켜주는 든든한 동반자이다. 아니 내 여행기를 마무리까지 지어주니 도반(道伴)이랄 수도 있겠다. 그녀와 함께 들어선 곳은 중황마을(이정표 : 금계 8.9㎞/ 인월 11.6㎞)의 ‘상순이 쉼터’. 눈에 익은 메뉴가 구미를 당기는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민물새우 파전(1만5천원)을 안주삼아 막걸리를 두 병(만원)이나 비우고서야 일어설 수 있었다. 지역경제를 살려야한다는 핑계 삼은 집사람이 채 썰어 말린 산밤 한 봉지(2만원)를 챙겨들었음은 물론이다.
▼ 앗! 이런 심심산골에서 중국음식점을 만나다니... 전화번호까지 적혀있는 걸 보면 ‘짜장면 시키신 분!!!’이라는 외침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 연화사 갈림길을 지난 둘레길은 물레방아로 치장된 ‘산그늘 민박’ 앞에서 숲속으로 파고든다. 이어서 제법 가파른 오름길이 나타나기에 이쯤에서 등구령이 나오겠지 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등구령은 한참을 더 진행하고서야 만날 수 있었다. 맞다. 등구재를 향하는 길은 수평으로 걷다가 잠시 오르막이 이어지고 또다시 마을쪽으로 내리막을 그리는 길이다.
▼ 숲길이 끝나자 이번에는 ‘논들길 쉼터’가 길손을 맞는다. 이름 그대로 둘레길은 이곳에서 밭두렁 논두렁을 지난다. 수양버들이 운치를 더하는 작은 저수지(상황소류지)도 만날 수 있었다. 저수지 앞에는 전망대까지 만들어 놓았다. 시야가 툭 터진다는 증거일 것이다.
▼ 맞다. 전망대에서의 조망은 일품이었다. 중황리(상황·중황·하황마을)의 다랑논이 계단처럼 아래로 향하는데, 그 너머에는 달궁계곡이 들어앉았다. 지리산의 주능선과 서북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짐은 물론이다.
▼ 둘레길은 등구재를 향해 막바지 힘을 쏟는데, 주변은 아직도 다랑논 일색이다. 다랑논을 만들기 위해 돌을 쌓아 만든 축대가 마치 돌담처럼 정겨운데, 개중에는 어른 키로 두길 이상이나 되는 높다란 것도 보인다.
▼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굽이굽이 다랑이 논이 반갑게 모습을 드러낸다. 황금빛 다랑논을 기대했지만 산골 농부는 이미 추수를 마쳐버렸다. 아쉽기는 하지만 어쩌겠는가. 한 평의 땅이라도 더 만들기 위해 수직으로 쌓아 올린 논 축대가 이곳 민초들의 삶을 대변하는 듯 해 가슴이 찡하다.
▼ 진행방향 저만큼에 등구재가 나타날 즈음 ‘등구령쉼터’가 반긴다. KBS2TV 인기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이 다녀가면서 더 유명해진 쉼터다. 그런 유명세를 그냥 지나치는 게 어디 그리 쉽겠는가. 가파른 오르막길은 눈으로 확인한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시원한 막걸리로 목을 축이며 힘을 비축하고 있었다.
▼ 쉼터부터는 가파른 오르막길의 연속이다. 고갯길은 가파르게 일어서고 내쉬는 숨결도 덩달아 가팔라진다. 하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걷는 내내 시원스런 조망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 산내우체국 앞에서 임도로 들어선지 2시간 10분 만에 ‘등구재(이정표 : 금계 6.6㎞/ 인월 13.9㎞)’에 올라섰다. 삼봉산에서 금대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가로지르는 고갯마루로 ‘거북이가 기어 올라가는 지형’과 닮았다 해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이 고개를 기준으로 걸어온 길은 남원시 산내면 땅이고, 가야 할 길은 경남 함양군 마천면 땅이다. 참고로 등구재 외에도 경상도와 전라도를 연결하는 고개로는 오도(吾道)재, 제안재, 팔량치(八良峙) 등이 있다.
▼ 남원과 함양의 경계인 등구재는 전라도와 경상도를 나누고 또 이어주는 길목이다. 남원의 목기가 등구재를 넘어 함양 어느 집 제사상에 올랐고, 함양의 어느 색시는 등구재를 넘어 남원으로 시집을 갔다. 또한 이 길은 창원마을 사람들이 인월장을 보기 위해 넘었던 곳이며 도로가 개설되기 전까지 마천면으로 통하는 유일한 고개였다. 팔 물건을 이고 지고 가서 산 물건을 또 이고 지고 넘던 고개가 이 등구재이다.
▼ ‘서쪽 만복대에 노을이 깔릴 때, 동쪽 법화산 마루엔 달이 떠올라 노을과 달빛이 어우러지는 고갯길(등구재 안내판에 적힌 글)’로 포장된 등구재를 넘으면 길은 숲을 따라 이어진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갑자기 고도를 뚝 떨어뜨린다.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침목계단을 그것도 나선형으로 만들어 멋까지 잔뜩 부려놓았다.
▼ 그렇게 10분쯤 내려섰을까 오두막 같은 쉼터(이정표 : 금계 5.9㎞/ 인월 14.6㎞)’를 만난다. 삼거리인 이곳에서 둘레길은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하지만 창원마을로 향하는 빠른 길은 오른쪽이다. 그런데도 안내판은 왼쪽으로 에둘러가라고 적고 있었다.
▼ 위에서 얘기한 안내판이다. 창원마을로 곧장 내려갈 수 있는 오른편 임도를 이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민원발생 사유지’라니 소유주가 둘레길 순례자들의 통행을 반대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으니 뭐라 하겠는가마는 김삿갓의 ‘네 절 인심 고약타! 지옥가기 꼭좋타!’라는 싯구가 떠오르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는 노릇이다.
▼ 지름길을 빼앗긴 둘레길은 빙 에둘러 간다. 가슴에 담아둘만한 볼거리가 없는 그저 그렇고 그런 시멘트포장길이 지루하게 이어진다.
▼ 막바지에 이를 즈음 하늘금을 눈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지리산 주능선이 그야말로 활짝 피어나는 것이다. 지리산을 좋아하는 이라면 감탄할 수밖에 없는 멋진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이다. 그리운 이를 갑자기 어는 길목에서 만나는 기분이랄까?
▼ 길가 오두막은 순례자들의 멋진 포토죤이 되기도 한다. 하긴 TV에서 아무 이유 없이 이 구간을 소개해 주었겠는가. 이 구간은 TV 프로그램 ‘1박 2일’에서 강호동과 이승기가 걷던 길이자, ‘미운 오리 새끼’에서는 이상민과 김준호, 박군이 걸었다. 그만큼 보여줄게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맞다. 논두렁밭두렁에 산길, 마을길을 넘나들며 걷다보면 아련한 기억 속 고향을 떠올리고, 지리산 주능선이 바라보이는 탁 트인 전망에 호연지기를 느끼게 된다.
▼ 목마른 나그네들에게 꼭 필요한 샘물도 만날 수 있었다.
▼ 산촌의 농부는 쉴 겨를이 없나보다. 다랑논의 가을걷이를 끝낸 게 엊그제이련만 농부는 벌써부터 내년 농사를 준비한다.
▼ 둘레길은 김해김씨(횡성현감공파) 제각 앞(이정표 : 금계 3.6㎞/ 인월 16.9㎞)에서 마을을 피해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 이어서 잠시 후에는 창원마을을 지켜주는 보호수의 품속으로 파고든다. 마을의 수문장을 자처하는 당산나무는 진초록을 넘어 이젠 짙은 묵빛으로 향하고 있다. 조금 더 있으면 저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만 남길 것이다. 하지만 변해버린 외모에 관계없이 오가는 길손의 안녕을 빌어줄 것이다. 참! 벅수(이정표 : 금계 3.5㎞/ 인월 17.0㎞)는 이곳을 ‘창원당산’으로 적고 있었다. 마을주민들이 당산제를 모셔오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 당산에는 3구간의 두 번째 스탬프보관함이 설치되어 있었다. ‘사진 찍기 좋은 곳’이라는 안내판과 함께 전망데크도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사진의 배경이 될 만한 조망은 결코 아니다.
▼ 마을로 내려서자 창원마을의 산촌생태휴양관이 잠시 들렀다가란다. 산촌체험을 위해 찾아온 이들이 머무는 숙소로 이용된다. 참고로 이곳 창원마을은 ‘천왕봉이 가장 잘 보이는 마을’로 대변되는 하늘 아래 첫 동네이다. 지난 2008년 11월 故노무현 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금계마을까지 둘레길을 걷는 중에 들러 반홍시를 먹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꼭 다시 한 번 오겠다’고 주민들과 약속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못했다.
▼ 마당으로 들어서자 하봉에서 천왕봉을 거쳐 칠선봉과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의 주능선이 흡사 파노라마처럼 널따랗게 펼쳐진다. 체험관에서 세워놓은 조망도와 비교해가며 조망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 창원마을을 지났으니 둘레길 3구간의 8부 능선은 이미 넘은 셈이다. 하지만 나머지 구간도 만만치가 않다. 휴양관을 빠져나온 둘레길이 마을 안길을 통과하지 않고 또 다시 산자락을 향해 뻗어나가기 때문이다.
▼ 이때 창원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원래 이름은 창말(또는 창촌). 조선시대 마천면 내 각종 세금으로 거둔 약초 등의 물품을 보관한 창고가 있었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한다. 그러다가 이웃 원정마을과 합쳐지면서 창원마을이 됐다. 창고마을이었던 유래처럼 지금도 경제적 자립도가 높은 농·산촌 마을 가운데 하나란다.
▼ 시멘트포장길이 끝나자 둘레길은 또 다시 산속으로 파고든다. 그리고는 둘레길이라기 보다 등산로에 가까운 산길(이 구간을 ‘숲터널재’라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을 한참이나 오르내리게 된다. 3구간의 또 다른 난코스라 할 수도 있겠다. 하긴 ‘순례자의 길’이라는 별칭까지 붙은 지리산둘레길을 걷는다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 대신 그에 대한 보상은 컸다. 고개를 넘자 눈에 담아도 아프지 않을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마사이 전사처럼 제 몸을 붉게 단장한 잘생긴 소나무들 사이로 뻗어나간 나무계단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데, 소나무 사이사이로 천왕봉까지 내다보이는 것이다. 잠시지만 눈의 호사가 이루어지는 구간이다.
▼ 30분 정도의 숲길이 끝나자 시야가 툭 트이면서 진행방향 저 아래로 금계마을이 나타난다. 여정의 마지막을 아쉬워하는데 앞산의 한쪽 귀퉁이가 허물어져 속살을 드러내고 있지 않겠는가. 줌으로 당겨보자 분주하고 움직이는 중장비도 보인다. 국내 유일의 검은색 화강암인 ‘마천석’을 채굴하는 채석장이라고 한다. 색깔이 검은 이유는 운모가 주를 이루기 때문이라는데, 인테리어 자재로 꽤나 유용해 가격도 제법 나간단다.
▼ 드디어 금계마을이다. 이 마을은 안국사 아래 생겨난 사하촌(寺下村)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금계라는 이름의 유래는 뒷산 이름이 금산이었고, 마을의 모양이 닭을 닮았다 해서 금계가 되었단다. 하지만 원래 이름은 노디목. 물을 건널 때 딛는 디딤돌, 즉 징검다리마을을 의미한단다. 이 마을이 본격적으로 형성된 것은 한국전쟁 때이다. 당시 군경 토벌대는 지리산 산간 지역에 흩어져 있던 마을들이 빨치산의 식량 보급처이자 은거지가 된다고 판단해 대대적인 소개 작전을 펼치게 된다. 이때 근동에 흩어져 있던 추성·의평 등의 여러 마을을 불태우고 강제로 이주시켰는데, 그들이 이주해 온 곳이 바로 이곳 금계마을인 것이다.
▼ 트레킹 날머리는 지리산둘레길 함양센터(함양군 마천면 의탄리)
마을안길을 따라 조금 더 내려오자 지리산둘레길 함양센터가 나오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폐교된 마천초등학교 의탄분교의 건물을 리모델링해 둘레길 지원시설을 만들었는데, 농산물판매장과 간이음식점, 휴게실 등 다양한 시설들이 함께 들어서 순례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한다. 그건 그렇고 오늘은 13.81km를 걸었다. 지난번 2구간 때 추가로 걸었던 중군마을까지의 거리를 합하면 16km(중군마을에서 장항마을까지는 차량으로 이동했다)쯤 걸은 셈이다. 걷는 데는 4시간 40분이 결렸다. 산길이 많은데다 집사람이 나물까지 뜯느라 서서히 걸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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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첫댓글 훌륭한 후기를 이제서야 접하게 되었습니다.
느림의 미학이란말 이번 후기에서 절실히 느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구간보담 후기가 더 기다려 집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구간에서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행복한 나날 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