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맛과 섬] [119] 삼척 도루묵구이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섬발전지원연구센터장
입력 2022.11.23
우리의 동해 바다에서 사라진 명태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대신 겨울철이면 그 자리를 놓고 미거지(곰치), 도치, 도루묵 등이 군웅할거하고 있다. 시원한 국물은 미거지와 도치가 탐내고, 조림이나 탕은 도루묵이 엿보고 있다. 그중 도루묵은 어민들은 물론 지역 관광에 효자 노릇을 제대로 하는 생선이다.
김준 제공</figcaption>
삼척에서는 도루묵을 도루메기라 한다. 한자로 ‘都路木魚’ 표기하기도 했다. 11월 말부터 12월까지 제철이다. 어떤 생선이든 제철은 3개월을 넘기지 않는다. 1월로 넘어가면 늦다. 도루묵은 일찍부터 양반들 입살에 많이 올랐다. 조선 최고의 미식가 허균의 ‘도문대작(屠門大嚼)’이나 이식의 ‘환목어(還木魚)’에 소개된 ‘도루묵설화’가 대표적이다.
도루묵잡이 어선의 입항. /김준 제공</figcaption>
본래 도루묵은 목어였는데, 난을 피해 온 임금이 너무 좋아해 품격 있게 은어라 불렀다. 서유구는 ‘난호어목지’에 ‘배와 옆구리는 운모 가루를 발라 놓은 듯 하얘서 토박이들이 은어라 부른다’고 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함경도 길주 지역의 특산물로 은어가 확인된다. 설화에 따르면, 상했는지 아니면 너무 많이 드셔서 물렸는지 임금은 은어를 멀리했다. 그러자 다시 목어라 해서 ‘환목어’라 불렀다. ‘도루메기’에서 메기를 한자로 목어로, 도루는 돌아오다는 환으로 풀었다고 해석한다.
위판 중인 도루묵. /김준 제공</figcaption>
함경도 사람들의 처지가 그러했다. 조선 건국에 큰 역할을 해 대접을 받았던 지역이었지만 ‘이시애의 난’이 발생하면서 다시 변방 신세가 되었다. ‘말짱도루묵’이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도루묵은 영동 이북에서 잡히는 한류성 어종이다. 평소에 동해 깊은 바다에 머물다 산란을 위해 삼척 일대 바위나 해초가 있는 연안으로 몰려온다. 이때 자망 그물을 내려 잡는다.
도루묵잡이 어선들이 조업 중인 바다. /김준 제공</figcaption>
이때 잡은 암컷 도루묵알 구이가 인기다. 조금 늦어도 질기다. 알을 적게 낳기에 부드럽고 먹기 좋았다면 진즉 멸종되었을지 모른다. 도루묵알은 종종 파도에 밀려 해안 도로로 넘어오는데 워낙 질겨서 “자동차에 밟혀도 터지지 않을 정도”란 말까지 나온다. 이제 질긴 도루묵알 구이를 즐기는 것이 식객들의 겨울 탐식으로 자리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