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 옥수수를 베어낸 자리에 무씨를 넣고 키웠다. 무시래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무도 좋고 시래기도 좋다는 백자 무씨와 시래기용 무씨를 이장님한테 추천받아서 키웠다.
절반은 여름 가뭄에 제대로 나지 않았고, 절반은 그래도 잘 되었다. 무도 실하고 시래기도 실했다. 시래기는 그늘에 겨우내 말려서 팔아야 한다. 반면 무는 바로 어딘가로 내어야 했다. 무 같이 값 싸고 무게 많이 나가는 것은 택배비 비중이 크고, 개인 소비량에 한계가 있어서 직거래가 쉽지 않은 물품이다.
유기농으로 농사지어 공판장에 내는 것이 아까워서 생각하지 않다가 별 도리가 없어 처음으로 대전청과 공판장에 무 19박스를 냈다. 종자, 모양, 포장상태 등 이유로 2,500원에 땡처리를 했다고 연락을 받았다. 한 박스당 박스값 950원, 운임료와 경매 수수료 1,210원을 떼고 나면 약 340원이 남는다. 수확하고 포장하기 위해 이틀 삼일 아내와 종일 일한 품값이 6,440원인 꼴이다. 여기에 비닐, 퇴비, 도지 등 계산하면 답이 안 나온다.
공판장에 내려면 처음부터 그들이 원하는 조건을 모두 맞추어 농사를 지어야 한다. 그렇게 맞춰서 잘 농사지어도 가격 복락하면 역시 소용없기는 마찬가지다.
직거래를 하려고 페북에 올렸다가 공판장 가격과 무 상태를 보고 생각을 접었다. 크고 좋은 무를 모아서 공판장에 모두 내어버려서 정작 직거래를 하자니 중무 밖에는 남아 있지 않은 상태로 공판장에서 이런 가격을 직거래에서 1만원씩 받고 팔고 싶지 않았다.
무를 수확하고 포장하는 내내 아내는 불편하다. 도대체 왜 이런 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어 화가 나는 모양이다. 뭐 나 역시 별 다르지는 않게 힘이 빠지고 답답하다.
그런데 그럼 땅에서 뽑아 올린 허옇게 드러난 무를 다 어찌할 것인가?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땅에다 다시 그냥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처녀 허벅다리마냥 허옇게 드러난 무가 부끄럽지 않은가?
결국은 알뜰살뜰 다 주워 모아서 트럭에 싣는다. 페북에 올린 글을 보고 사정을 안 몇 분들이 직거래를 하겠다고 연락을 준다. 마음은 받고 팔지는 않겠다고 하고 나눔을 한다. 농사지은 것을 버리지 않게 누군가 받아주겠다는 것 자체가 진정 고맙다.
혹자는 왠 신파냐 묻거나 지지리도 찌질한 진상이라고 눈살을 찌푸릴지도 모르겠다. 허나 농사를 오래 그리고 크게 지어보지 않은 나로서는 아직 내 농산물을 소주 한 잔 먹고 다 버릴 만큼 담대하지도 못하고 낙담하지도 않았다.
공판장에 내고도 무는 많이 남았다. 남은 무를 가지고 무말랭이를 해보고 싶었다. 아내는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거래처를 확보한 것도 아닌데, 하루 품값도 되지 않는 짓거리를 왜 하냐"고.
옆 동네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형과 형수가 무 자르는 기계를 빌려와 우리집 건조기를 빌려 무말랭이를 만든다. 형수는 “내가 왜 이렇게 무를 많이 심었는지 모르겠다고, 그래도 버릴 수 없으니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는 거라고" 하면서 무를 씻고 자르고 말린다. 뭐 별다른 말로 대응을 하지는 않지만 그 마음씨가 참 이쁘고 고맙다. 그러면서 아내가 원망스러워진다.
나도 안다. 무말랭이 하면 씻고 말리는 작업을 해야 하고, 그렇다고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거래처를 뚫어야 하고, 직거래를 해야 할 부담이 늘어난다. 하지만 버리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버리겠다는 마음보다는 고생스럽더라도 뭔가 갈무리해서 해보고 싶은 마음인데, 아내는 그것이 다 번잡스럽고 싫은 모양이다.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슬프다.
갈무리 작업과 가공 작업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긴 하나 아내의 도움 없이 혼자서 하기엔 몸이 넘 힘들어지고 외로워진다. 그럼 마음이 힘들어지고 원망하게 되기에 접는다.
무를 수확하고 팔면서 예전 초보 편집자 시절에 내가 만드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꽂히면 파는 문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마케팅에서 할 일이니 미뤄 두는 것도 있었지만, 제대로 잘만 만들면 그냥 누구나 다 잘 알고 볼 거라고 생각했다.
편집일을 계속하면서 결국 책을 알리는 것도, 마케팅 포인트도 기획편집자의 몫이고 책을 만든 사람이 제일 잘 잡아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허나 그 뒤로도나는 그 부분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기획과 편집과 마케팅이 멀티로 돌아가지 않았다. 마감하면서 마케팅 포인트를 잡고 동시에 그걸 실행에 옮기는 것이 버거웠다. 편집에서 꼼꼼하게 편집증처럼 물고 늘어지다가도 마케팅에 와서는 성질이 급해져서 세세하게 챙기는 것이 번거롭게 느껴지고 심지어 화가 났다. 지금 상황에서 예전 그 모습을 본다.
약점은 여전히 약점이지만 여기서 다시 그런 패턴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그 당시엔 성과를 위해 스스로 강요된 마케팅에 끌려다녔고 괴로웠다. 책도 내 자식이었고, 농산물도 내 자식이다.
다만, 농사일은 햇빛과 바람과 비 그리고 땅의 보살핌으로 생명이 살아갈 수 있도록 섭리하는 우주의 작은 일 부분을 맡고 있다. 잘 모르긴 하지만 결국 인간은 그리고 생명은 자신의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을 무시하고 살아남을 수는 없다. 종내 인간은 생명 살림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이 일은 인류 공동의 책임이다.
시골에 온 지 4년째, 작년까지 터전을 잡고 집을 짓는 일에 몰두하면서 농사를 크게 벌이지는 않았다. 집을 마무리하고 올해 본격적으로 농사를 벌였다. 내 삶의 구조를 내 스스로 선택해 거기서 소모되지 않고 선순환하는 구조를 만들겠다고 약속했고, 그 첫 해가 되는 셈이다.
벌려놓은 농사가 이제 마무리되면서 이것저것 농산물을 수확하는데 알리고 판매하는 것이 버겁다. 농사 마냥 들러붙어서 마케팅을 해야 하는데, 자꾸만 번거롭게만 느껴져 자꾸만 피하고 싶어진다. 그럴수록 힘들게 생산한 농산물은 갈 곳 몰라 한다.
가을이 되어 추수하는 소중함과 기쁨, 뿌듯함만으로는 겨울이 춥다. 겨울을 좀 따뜻하게 보내려면 그리고 봄을 준비하려면 쌓아놓았다가 다시금 비워나가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