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85] 우리는 모두 ‘모래 알갱이’
장유정 단국대 자유교양대학 교수·대중음악사학자
입력 2023.06.15. 03:00
0615 여론2
임영웅이 신곡 ‘모래 알갱이’를 발표했다. ‘런던 보이’에 이어 작사와 작곡에 참여한 두 번째 곡이다. 부드러운 모던 록 형식의 ‘런던 보이’ 뮤직비디오에서 양복을 입은 그는 뽀글뽀글한 머리에 운동화를 신어 편안하고도 귀여운 모습을 연출했다. 진성(眞聲)과 가성(假聲)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세상 누구보다 널 사랑해. 모든 힘 다해 너를 불러”라며 사랑을 예찬했던 그가, 발라드풍의 ‘모래 알갱이’에서는 그 특유의 감성적 창법으로 위로하는 마음을 우리에게 따뜻이 건넨다.
‘모래 알갱이’의 뮤직비디오는 공개 일주일 만에 조회수 390만을 훌쩍 넘기면서 유튜브 인기 급상승 음악 1위에 올랐다. 음원 서비스 ‘멜론’에서 이 노래는 6월 11일 기준으로 ‘(여자)아이들’의 ‘퀸카(Queencard)’에 이어 2위를 차지하였다. 사용자가 직접 평점을 매기는 ‘아이돌 차트’에서 임영웅은 115주 연속 평점 순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수치는 그의 높은 위상뿐 아니라 ‘모래 알갱이’의 흥행 성공도 보여준다.
‘첫 소절 장인’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전주 없이 곧바로 울려 퍼지는 그의 목소리는 청중을 단박에 사로잡아 노래에 빠져들게 한다. 감미로운 선율이 내내 흐르는 가운데 파도 소리와 임영웅의 휘파람 소리가 어우러진 간주는 이 노래에 포근함을 더해준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노랫말이다. 그의 공식 팬 카페 ‘영웅시대’의 회원은 20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나날이 늘어만 간다. 데뷔 6년 만에 이루어낸 대단한 성과지만 그는 우쭐대기는커녕 초심을 유지하며 우리 곁에 있다. 오히려 “나는 작은 바람에도 흩어질 나는 가벼운 모래 알갱이”라며 자신을 더 낮춘다.
노랫말에서 그의 진심이 느껴진다. 돋보이고 싶어 안달 난 사람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자신을 모래 알갱이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고,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을 만큼 “가볍게 작은 발자국”으로 의미 있는 흔적을 남기자는 것은 인생을 통달한 자에게 들을 수 있는 지혜로운 말이다. 광활한 우주에서 인간은 티끌만도 못한 미미한 존재다. 이러한 인식을 갖출 때 비로소 나를 내려놓고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오롯이 영위할 수 있다. “그대 바람이 불거든 그 바람에 실려 홀연히 따라 걸어가요”라는 대목에서 순리에 맞춰 살다가 표연히 사라지는 자유인의 기품이 느껴지는 이유다.
임영웅은 자신의 이름처럼 ‘영웅’이 되었다. 하지만 과거의 용맹한 영웅이 아니라 배려심 깊고 겸손한 영웅이다. 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영웅상이다. 그가 우리에게 그런 것처럼, 우리도 위로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다정하게 말 건네기로 한다. “언제든 내 곁에 쉬어가요. 언제든 내 맘에 쉬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