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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12월 10일 대강절 둘째주일 낮 예배 설교 +
+ 제 목 : “예수오심(4) - 영생수를 주신 예수님!”
+ 본 문 : 요한복음 4장 10절 – 14절 (신약성경 147쪽)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아멘!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선포하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인 / 성경을 읽고 듣고 지켜 행하여 /
100배의 복을 받으리라. / 아멘! 아멘!
“인사만 잘 해도 먹고 산다.” - 사고행축 /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행복하세요. 축복합니다.”
오늘은 예수님 오심을 기념하며,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강절 둘째 주일,
“예수 오심(4) : 영생수를 주신 예수님!”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선포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나는 / 예수님이 주신 / 영생수를 마시리라. / 아멘!”
어느 나라엔 생수가 휘발유보다 더 비싸고, 포도주보다 생수가 더 비쌉니다.
예전에 우리나라는 그냥 땅을 파서 마실 수 있는 생수를 쉽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생활 폐수, 공장 폐수, 축산 폐수 등을 마구 버려 하천이 오염되고,
강이 오염되고, 바다가 오염되는 환경파괴가 진짜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폐수로 지상의 물이 오염되니, 땅속의 지하수까지 오염되어 마실 수 없게 됩니다.
물은 생명을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입니다. 우리 사람 몸의 8할이 물이기 때문에,
물이 나빠지면 우리 생명에 치명적인 해를 끼칩니다. 그래서 물의 오염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평양 만경대에 있는 작은 옹달샘 옆에는, 이런 시구가 적혀져 있다고 합니다.
‘목마른 자들아, 다 이리 오너라. 이 곳에 좋은 샘이 흐르도다. 힘쓰고 애씀이 없어도,
이 샘에 오면 다 마시게 되니‘ - 성경을 표절해서 그들의 지도자를 우상화하기 위해서,
그런 글을 새겨 놓았다고 합니다. 그 옹달샘이 있는 만경대가 김일성의 생가가 있거든요.
그런가 하면 똑같은 환경에서도 다르게 표현하는 이도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셔킬 강은,
필라델피아 사람들이 모두 먹는 수원입니다. 거기 세디 그레이 언덕에는 높은 산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분출하는 장관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셔킬 강의 근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솟아나는 물을 보면서 몹시 감동하고, 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식수원인 댐을 만들면서, 필라델피아 시 의회가 이런 비를 세웠습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를 것이다.” - 졸졸졸 흘러나오는 옹달샘 물을 마시면서,
‘이 속에서 나오는 물을 먹으면 영생한다.’ 는 헛소리를 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를 것이라.‘ 고 겸손하게 가르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세상 것들을 소유함으로 ‘나는 참 만족하다.’ 고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것은 낙원이라는 에덴동산에서 살았던, 아담과 하와를 보아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후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에덴동산에서도, 아담과 하와는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되려는 교만으로, 선악과를 따먹는 무서운 죄를 짓고 만 것입니다.
사람들은 영혼의 목마름을 감추려고 술을 마시지만, 그것은 목마름을 더할 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영혼의 목마름을 잊기 위해, 도박에 자기 인생을 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영혼의 목마름을 잊기 위해 마약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영혼의 목마름을 잊기 위해, 육신의 쾌락을 위해 더러운 정욕에 빠집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위대한 업적을 쌓고, 물질과 권력과 명예를 가지면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물질과 권력과 명예를 얻으려 합니다.
그러나 술, 도박, 마약, 쾌락은 물론, 위대한 업적, 물질과 권력과 명예를 다 가졌어도,
결코 그러한 것들이, 우리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결코 없습니다.
그 누구도 이러한 것들 때문에 ‘나는 만족합니다.’ 하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것에 대한 우리 사람들의 욕망과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크리소스톰이 1700년 전, 감옥에서 쓴 ‘감옥 이야기’ 라는 짤막한 우화가 있습니다.
한 죄수가 “만약 내가 자유를 얻을 수 있다면, 원이 없겠다.' 하고 간절히 원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런데 얼마 있다가 이 사람에게 그토록 원하는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그러자 그는 내가 먹고 살 돈이 있다면 하고 바랐습니다. 그것도 그 사람에게 주어졌습니다.
돈이 많아진 다음 주위를 살펴보니, 자기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자, 관직을 원합니다.
그에게 관직도 주어졌습니다. 그는 그것으로도 만족하지 않고, 한 고을을 다스리는,
영주가 되기를 원하여 영주가 됩니다. 그러다가 나라를 얻고 싶었고, 나라도 주어졌습니다.
나중에는 세계 정복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것도 이루어져 그는 세계 정복자가 됩니다.
그러자 그가 슬피 웁니다. 사람들이 ‘왜 슬피 우느냐?’ 고 묻자, 그는 울면서 말합니다.
‘이제는 내가 더 바랄 것이 없어졌으니, 나는 이제 무슨 재미로 사느냐?‘ 며 절망하더랍니다.
우리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바랄 소망이 없으면 삶의 의미도 없다는 우화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의 인생살이에 만족하십니까?
생각해 보면, 깊은 외로움,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텅 빈 가슴, 눈을 뜨고 나면,
아무도 내게 없는 것 같은 절망감, 그래서 늘 불행하다 생각하는 이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우리 인생은 태어나 살아가면서, 신기루 같이 저 산 너머 어딘가에,
행복이 있는 것 같아 좇아가다가, 거기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알고, 다시 되돌아와서,
절망하며 나는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며, 슬픈 눈물을 흘리는 존재‘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이런 우리 인생들에게 ‘참된 만족과 온전한 기쁨과,
빼앗길 수 없는 참 평화를 주시는 생수와 같은 분이 계시다.‘ 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 안에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시는 분, 바로 그분은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 요한복음 4장은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소개합니다.
이 세상 우리에게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시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아래는 유다, 가운데는 사마리아, 그 위로는 갈릴리로 나뉘어졌습니다.
그런데 한 가운데에 위치한 사마리아 사람들은, 앗수르라는 나라에 정복을 당한 후,
앗수르의 정책에 의해 인종적으로 피가 섞이고, 종교적으로도 다른 이방 종교와 혼합된,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정통 유대인들에게 굉장히 멸시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북쪽 갈릴리로 갈 때에는, 사마리아 사람을 만날까 봐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하지 않고, 멀리 서쪽으로 돌아서 올라가거나 배를 타고 지중해를 통해 갔습니다.
그렇게 조심했는데도 혹 사마리아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 반대편으로 얼굴을 돌리고,
재수 없다면서 침을 뱉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런 모든 편견을 버리고,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 새,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 유대에서,
바로 사마리아를 통과해서, 갈릴리로 가시기로 마음을 먹고 떠나게 되었습니다.(요4:3-4)
우리 예수님은 갈릴리 사람, 예루살렘 사람, 사마리아 사람, 다 똑같다 생각했습니다.
편견이 없으셨습니다. 누구나 다 사랑하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그 누구도 다 용납하십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 부자와 가난한 사람,
잘 생긴 사람과 못 생긴 사람, 남자와 여자, 노인과 젊은이, 다 똑같이 사랑하십니다.
사람들은 겉모습만을 보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속 중심을 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의 편견의 강을 넘어, 지금 사마리아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1700년 전, 야곱이 우물을 파서 그 아들 요셉에게 준 사마리아 수가 성,
거기 우물가에서 잠시 쉬고 계셨고, 제자들을 모두 시내로 먹을 것을 사러 갔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뜨거운 대낮이었지만, 물을 길러올 한 여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보통 기온이 40 - 45도이며, 그러다가 지열이 반사되어 땅이 뜨거워지는,
정오가 지나면 체감 온도가 50-60'c 가 되기 때문에, 너무 뜨거워 집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한 여인이 그렇게 뜨거운 대낮에 물을 길러 수가성 우물가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이 여인에게는 과거에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으나 모두 헤어졌고,
지금 동거하고 있는 남자가 있는데, 정혼이 아니라 그 남자의 첩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수가 성 동네 사람들은, 이 여인을 몹시도 멸시하고, 미워하였습니다.
자기들도 떳떳하지 못해 멸시를 당하면서, 불행한 여인을 이해하지 못하고 멸시한 것입니다.
참 이상한 것은 열등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자기보다 더 못한 사람을 더 미워하고, 괴롭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본문의 여인이 남편 다섯을 두고 싶어서 그랬겠습니까?
남의 첩으로 살고 싶어서 그렇게 불행한 삶을 살았겠습니까? 그도 싫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불행한 여인을 위로해주지는 못할망정, 사마리아 사람들- 자기 자신들도,
불행한 과거 역사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그토록 멸시 천대를 받으면서, 자기들보다도,
더 못하다고 유대인들에게 받았던 모든 멸시와 미움과 증오로 그녀를 미워하면 안 되지요.
어떻든 불행한 이 여인은 주변 사람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대낮에 물길러 온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없는 뜨거운 대낮에, 물을 빨리 떠가겠다고 서두르고 있을 때에,
그 여인의 모든 것을 다 아시고, 기다리신 예수님께서 그 여인 곁에 다가가 말을 거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그 여인의 모든 것을 아실뿐만 아니라, 그 여인에게 참으로 필요한 참된,
만족을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기쁨을, 흔들리지 않는 평화를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물을 좀 주시오.” 하고 말을 걸어오자, 그 여인이 깜짝 놀랍니다.
그 여인이 유대인인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인 자신을 멸시하지 않고, 물을 달라고 하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래서 여인은 말합니다. "유대인인 당신이 내게 말을 하십니까?"
예수님은 이 불쌍한 여인에게, 잃어버린 한 영혼을 향해서 낮은 모습으로 찾아주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10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군인 줄 알았더면, 내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아멘!
이 말씀은 우리,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지금도 친히 찾아와 주시고 계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노력해 쌓아 놓은 돈과 경력은 믿으면서도,
우리를 친히 찾아와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영생수를 주시는 예수님은 믿지 않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것은 교회를 다닌 사람들도, 예수님 말씀보다 세상소리를 더 신뢰합니다.
분명 입으로는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문제를 십자가 밑에 내려놓으면,
주님이 해결해 주신다고 설교하면 분명 아멘이라고 외칩니다만, 교회 밖을 나서는 순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식대로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에게 지금 물 좀 달라하는 이가 누군인 줄 알았다면, 너는 나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러면 예수 내가 너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믿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예수님을 알려하지도 않고, 알면서도 예수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나아오지를 않으므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도록 하는,
영적 목마름을 해결하는 영생수를 마시지 못하고, 육신의 문제도 해결을 못합니다.
수가성 여인도 영적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는, 참된 생수이신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향하여 "주여, 물을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하고 물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영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이 여인은,
세상적인 지식을 가지고 예수님께 묻고 있습니다. 야곱의 우물은 그 깊이가 깊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이 야곱의 우물보다,
더 깊은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 샘에서, 보혈의 생수로 우리에게 마시게 하십니다. 믿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십자가 샘에서 흘러나오는 보혈의 생수를 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야곱의 우물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예수 내가 주는 십자가 샘에서,
흘러나오는 보혈의 생수를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아멘! 아멘! - 이 세상의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소금물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 영적, 육적 갈증만 더 심해집니다.
그러므로 가진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이 갖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 이 세상의 것들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을 가져도 더 가지고 싶은 욕망 때문에 다시 목마를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수가 성 우물가의 여인은 비로소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고, 예수님께 구합니다.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주시기 전에, 여인의 문제를 해결하기 원하셨습니다.
이 여인에게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을 주기 위해, 먼저 여인의 죄가 해결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주님께서 그 여인에게 “네 남편을 데려 오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여인이 “주여, 내가 보니 당신은 선지자입니다.“ 하면서 질문을 피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유대 사람들과 사마리아 사람들의 견해가 다른 예배 문제를 꺼냅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기 원하면서도, 엉뚱한 문제로 핑계를 대며 피합니다.
예를 들면 '꼭 교회 가야 구원 받는가?' '세례가 좋은가, 침례가 좋은가?' '안식일인가,
주일인가?' '왜 그처럼 교회는 파가 많은가?' '교회 다닌 사람들이 더 못 되먹었더라!‘
‘제사 지내는 것이 뭐가 나쁜가?’ ‘담배와 술은 왜 못하게 하는가?’ - 하는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오늘 본문의 여인처럼, 사실은 예수님에게 관심이 있고,
교회에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래서 피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여인도 자신의 죄 문제 해결보다는 엉뚱한데로 말꼬리를 돌려,
예수님과 논쟁하려 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예배는 예배드리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이신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마음이 중요하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놀란 것은 그 여인이 오실 메시야, 곧 예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25절)
그래서 예수님은 “네가 믿고 기다리는 메시야 구원자가 바로 나” 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에 영의 눈을 뜬 여인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게 되자,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만나고, 믿음으로 영접한 여인은 더 이상 죄인도, 불행한 여인도 아니었습니다.
다시 목마른 야곱의 우물 물도, 그 물을 담을 물동이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여인은 자신을 멸시하고 천대했던 사람들을 만나러, 동네로 들어가 예수님을 전합니다.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담대히 외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생애를 바꾸시는 주님이십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도록, 십자가의 보혈과 성령의 생수인 영생수를 마시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예수님은 내 마음의 이런 상처, 저런 아픔을, 편견이 쌓여 열등감 많은,
내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나는 해남중앙교회 성도입니다.”
“나는 이제부터 예수님을 믿는 사람답게 살겠다. 그리고 예배 성공자로 살겠노라.” 고,
당당하게 선포하고 고백하는 예수쟁이로, 우리를 바꾸어 놓으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목마르십니까?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목마르십니까?
먹어도 먹어도, 가져도 가져도, 누려도 누려도 한 구석에 텅빈 것이 채워지지 않으십니까?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그리하면 네 속에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생수가 강처럼 흘러넘치리라!“ 아멘!
우리가 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생수를 주신 예수님을 만나러 어디로 가야 합니까?
골고다 언덕의, 예수 보혈의 생수가 영원히 솟아나는 십자가 샘으로 나아와야 합니다.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 보혈의 샘에는, 우리의 생각으로 지은 죄 때문에, 살을 파고 들어간,
가시 면류관에서 그 얼굴을 타고 내려오는, 예수님의 보혈의 생수가 흐르고 있습니다.
골고다 언덕의 예수 십자가 보혈의 샘에는, 우리의 손과 발로 지은 모든 죄 때문에,
쇠못에 박힌 손과 발목에서 흘러 내리는, 예수님의 보혈의 생수가 흐르고 있습니다.
골고다 언덕의 예수 십자가 보혈의 샘에는, 우리의 마음속으로 지은 모든 죄 때문에,
예리한 창에 찔린 옆구리에서 흘러내리는, 예수님의 보혈의 생수가 흐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와 허물의 문제, 죽음의 문제,
모든 삶의 고통스러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보혈의 생수 다 흘리신,
예수님께서 “아, 내가 목마르다"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의탁합니다.” 그리고 “다 이루었다.” 외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 것에 대한 갈증을 호소합니다.
대통령과 정치 지도자들의 지도력과 경제정책은, 수가 성 야곱의 우물과 같습니다.
야곱의 우물과 같은 지도력과 경제정책으로는, 세상의 그 어떤 갈증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다시 목마르려니와” 아멘입니까?
문제는 이 세상의 것의 부족함으로 온 갈증보다, 영혼의 갈증인 영적 목마름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지금 저와 여러분에게 우리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 것들의 갈증,
야곱의 우물 물과 같은 이 세상 것으로, 채우고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널 위해 가시면류관을 쓴 머리에서, 못 박힌 손과 발에서, 창에 찔린 옆구리에서 흘러내린,
보혈의 생수가 흐르는 십자가 샘에 와서 보혈의 생수를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보혈의 생수는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도록 영원한 생수를 주러 오신,
예수님 앞에 나와 십자가 샘에서 보혈의 생수를 마시므로,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쳐,
이 세상의 모든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죄 사함을 받아 구원 얻고, 삶의 문제도 해결되고,
영원히 사는 영생과 천국의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