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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떤 종류의 악(선의 결핍, 제한, 왜곡)을 경함할 때마다 고통을 겪는다.
개인이나 집단이 스스로 그 고통의 원인이 된다.
예를 들면 도덕적 범죄, 유대인 학살, 아프리카 흑인 노예 대학살, 각종 전쟁 등이다.
또한 자연의 힘이 고통의 원인이 된다. 즉 지진, 화산폭발, 태풍, 홍수, 기근, 전염병 등이다.
그러나 인간은 모든 감정을 다하여 하느님께 "왜?"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그런데 인간 고통의 뿌리에는 죄와 복합적 연루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고통의 "왜"에 대한 참된 대답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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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존재하는 모든 것의 의미가 흘러나오는 궁극 원천인
하느님의 사랑에 그 답이 있다.
외아들을 주시기까지 하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이 마다
모두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요한 3, 16)
이 말대로 하느님은
고통당하는 인간과 연대하시는 증거로 친히히 인간편에 서신다.
그것을 설명하시려고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이 고통을 수단으로 하여
인간이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신다.
즉 십자가를 수단으로
인류 역사와 인간 영혼에 뻗어 내려있는 고통(악)의 뿌리를 쳐부수신다.
고통으로써 사랑과 선을 창조하신다
하느님이 사랑이시며 전능하시다는 진리가 설 자리가 없었을 것이다.
세계의 구원이라는 최고 선(善)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끌어 내어지며
거기에서 끊임없이 새삼 새출발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생명수가 흐르는 강이 시작되는 샘이다.
하느님이 착한 이에게도
고통을 묵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원의 뜻이 있고
새로운 인간이 되게 하며
육신을 능가하는 영(靈)의 위대함을 깨닫게 된다
인간 자신을 넘어서 나아가도록 운명지어져 있는데
고통이 바로 인간의 이 초월성을 가르쳐 준다.
감옥에서 온갖 고초를 겪은 시인 보에티우스가 말했다.
고통은
사람이 지혜를 배울 수 있는 훌륭한 학교이다.
눈물이
눈 속에 끼여 있던 먼지를 씻어 주듯이
한 번도 눈물(고통) 너머로
세상을 보지 못한 사람은
이 세상이 참으로 어떻다는 것을 알기 힘들다.
어려움 가운데서 사람이 된다'는 말도
인간이 높이 불렸음을 밝혀 준다.
초자연적이다.
또한 그 안에서
인간이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의 인간성을,
자기 자신의 존엄성을,
자기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므로
또한 깊이 인간적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고통과 죽음의 수수께끼가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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