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요사가 아니라 한국 현대사를 쓰더라도 한 줄 정도는 언급돼야 마땅한 한 시대의 거장(巨匠)남진 장로가 활짝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며 인터뷰 장소에 들어섰다. ‘생얼’의 남진 장로는 깜짝 놀랄 정도로 젊은 모습이었다
정말 40대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젊어 보이시는데요 하하, 속이 없어서 그렇죠. (웃음)
신앙생활 하신 지가 얼마나 되신 건가요 교회를 제대로 다닌 건 5년쯤 됐습니다. 오래 전부터 원로목사님은 알고 있었죠. 원로목사님이 어렵게 살고 있는 원로가수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걸 지켜봐 왔습니다.
제 삶에서 그런 분은 처음 봤습니다. 감동이랄까 감화랄까 그런 걸 느꼈어요. 당신이 참전용사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신 분이라서인지 다른 분들과 많이 달랐어요. 드라마틱하고 예술을 좋아하시고… 그분의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저런 사랑이 나올까, 인간으로서, 남자로서 저런 사랑을 나도 한번 가져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가수 분과위원장으로 있을 때 감사인사를 드리려고 교회에 처음으로 갔었어요. 그 뒤로 가끔씩 교회에‘놀러’갔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려고 간 건 아닌데 간 김에 몇 번 예배를 ‘보게’ 됐어요. 그렇게 예배를 한 번 두 번 드리다가 어느 날 성령이 오신 겁니다. 한 번 두 번 말씀을 듣다가 뭔가가 잡히더라구요, 믿음이… .
‘성령이 오셨다’, 구체적으로 어떤 체험이었나요 20-30대 한참 인기 있던 시절을 지나 나이가 들면서 슬럼프가 왔어요. 건강도 나빠졌고… 마음에 외로움이랄까 허전함이랄까 그런 게 많았죠. 생각이 많았던 때였어요.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앞으로는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하는 거죠. 인기라는 것도 한계가 있는 건데… 그럴 때였는데 교회에 한 번 두 번 가면서 처음에는 턱 괴고 무심코 말씀을 듣다가 횟수를 거듭하면서 말씀의 칼날 같은 것이 가슴에 확 꽂히는 거에요. ‘지금까지 내가 잘 해서 오늘에 이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생각이 든 거죠.
인간의 사랑은 싫어지면 돌아서고 그런 것인데 무한한 사랑, 조건 없는 사랑, 그걸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을 창조해 주셨잖아요. 저는 그런 사랑을 원로목사님에게서 본 거고, 그 목사님이 믿는 하나님을 나도 한 번 믿어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할 수 없는 저런 사랑, 세상에서 보지 못하는 사랑, 그걸 나도 가질 수도 있고, 할 수도 있고, 믿고 싶다는 충동이 생기는 거에요.
그 전까지는 성경 말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성령의 힘이었나 봐요. 뭔가가 나를 이끌더라구요. 사실 그 전엔 성경 말씀을 들어도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얘기였어요. 동정녀 마리아가 아기를 낳았다는 것부터… 그런데 그런 것부터가 내 마음에서 바뀌더라구요. 그게 믿어지고… 성령의 힘이 나를 붙잡아 주신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뒤로는 예배에 안 빠지고 나가게 되고 말씀을 귀담아듣고 믿음을 갖게 됐어요.
그렇게 신앙을 갖게 된 뒤 구체적으로 달라진 게 있습니까 생활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졌어요. 체험이란 게 오더라구요. 뭔가 그 전의 나와는 다른 내가 나를 변화시키고 이끄는 거에요. 전에는 건강이 안 좋아도 운동하기가 싫으면 안했어요. 그런데 뭔가가 나를 운동을 하도록 만들더라구요. 건강도 좋아졌고, 집안 분위기도 좋아졌어요. 지금은 가족들 모두 찬송하고 기도하고 그럽니다. 하나님이 한 걸음 한 걸음 저를 이끌어 주셨어요. 물론 지금도 부족한 게 많지만, 믿고 바라보고 가야겠다는 방향을 잡았으니까 그것만으로도 나로선 대단한 거죠.
가족분들도 신앙생활을 같이 하고 있나요 예, 집사람과 아들, 딸 셋이 주일이면 같이 교회에 옵니다. 미국에 있는 아들 하나도 주일이면 교회에 가고요.
장로님이 가족들을 전도하신 거군요 처음부터 교회에 같이 가자고 말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집사람이 내가 달라지는 걸 옆에서 보면서느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어느 날 “교회 갈래?”했더니 가겠다고 해서 애들 다 데리고 오게 됐죠. 별 어려움이 없었어요.
신앙인이 되셨지만 바쁘고 화려한 삶 속에 중심 잡기가 쉽지만은 않으실 텐데요 사실 주일에 교회 못 갈 때가 많습니다. 가수라는 게 남들 노는 날 더 바쁜 직업 아닙니까? 공연이 있어서 차 타고 갈 때면 차 속에서 찬송하고 마음 속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무대에 서기 전에는 꼭 기도를 합니다.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모든 영광을 당신께 드리옵니다”하고요. 그렇게 공연을 시작하면 보통 스물다섯 곡쯤 부르는데 마지막 곡을 부르기 전에 “여러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의 가정에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하고 꼭 인사를 한 뒤 마지막 곡을 불러요. 처음에는 공연을 하다 보면 흥분해서 열 번에 다섯 번쯤은 이런 인사를 하는 걸 잊어버렸어요. 나중에 ‘아차’ 하지요. 지금은 열 번이면 한 번 정도만 잊어버립니다.
차 안에서도 찬송을 하신다는데 좋아하시는 찬송은 어떤 건가요 찬송가중에는‘내주를 가까이 하려함은’, ‘ 내영혼이 은총입어’를좋아합니다. (남진장로는즉석에서 눈을 감고 감정을 잡으며 몇 소절을 즉석에서 불렀다) 가스펠 송 중에는 ‘알았네’라는 곡을 좋아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게 의심 없이 믿어지십니까 그렇습니다.
어떤 체험이 있었나요 예를 들면 어려운 일, ‘이렇게 좀 됐으면’하는 바람은 있지만 쉽지는 않아 보이는 일이 있잖아요. 그럴 때 애절하게 간구합니다. 사실 얌체같이 아쉬울 때만 부탁하는 것 같아 죄송하지만 그래도 안할 수가 없잖아요.(웃음) “하나님 아버지, 부끄럽지만 이런 일이 있는데 신경 좀 써 주십쇼. 잘 하겠습니다. 이번 일을 거울 삼아서… ” 이렇게 기도하면 그게 이뤄지는 거예요. 이런 일이 한 번 두 번이 아니고 마음먹으면 마음먹은대로 되는 거예요.
슬럼프가 오래 가던 때가 있었어요. 가수는 히트곡이 없으면 안되잖아요. 오랫 동안 히트곡이 없었어요. 그래서 간절하게 5년 동안 준비해서 신곡을 발표하기 직전인데 우연히 무명 작곡가에게 ‘둥지’라는 곡을 받게 됐어요. 그런데 오래 준비한 곡들 대신 그 노래가 뜨게 된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코미디 같은 상황이죠.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거에요. 당시에는 운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하나님이 나를 정말 사랑하셨구나’싶어요. 운이 아니라 축복이었던 거예요. 그럴 때마다 ‘하나님이 나한테 기회를 주시는구나’생각합니다.
용기도 생기지만 한편으로는 부담도 되죠. 몰랐을 때야 그냥 넘어가지만, 사람이라는 게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웃음) 하나님이 이렇게까지 해 주시는데 저도 보답하는 게 있어야겠죠.
제가 살아온 것을 내 주위 사람들은 다 봤잖아요. 어디서 “남진이 변한 것 같아”하는 얘기가 들리면 그것이 굉장히 흐뭇해요. 내가 원로목사님을 보면서 느꼈듯이 내가 감동을 줄 수 있는 모습이 돼서 “남진이 믿는 하나님이라면 나도 한번 믿어 봐야지”할 정도가 됐으면 좋겠어요.
평강제일교회는 어떤 교회라고 생각하십니까 굉장히 가족적이에요. 저는 연예인이라 그런지 딱딱한 것이 불편해요. 너무 종교적이고 도덕 선생님처럼 그러면 불편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우리교회 목사님들, 장로님들은 참 편안했어요. 그래서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는지도 모르죠. 제가 보기보다 맹꽁이같은 데가 있는데, 가족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에서 친근감을 느낀 것 같아요. 원칙을 강요하지 않고 경건한 바탕 위에서도 정감을 느끼게 해 주셨어요.
마지막으로 ‘이런 신앙인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말씀해 주시죠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럽지 않은 신앙인이 되고 싶습니다. 아직은 부끄러운 게 많지만 열심히 말씀 생활해서 떳떳하게 설 수 있는 신앙인의 길을 가고 싶어요. 더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 속에서 살아야죠. 교회에서 자선공연이나 전도를 위한 찬송과 간증,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봉사활동도 많이 하려고 합니다.
남진 장로는 얼굴도, 생각도, 마음도 청년이었다. 소탈하고 명랑했고 허세라곤 없었다. 그 정도의 명성과 경력이면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있어도 될 법한 권위적인 냄새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순수함이 있는 분이니 하나님의 열심이 역사할 수 있었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영원한 청년인 거장(巨匠)은 취재팀을 엘리베이터까지 따라 나와 허리를 굽히며 배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