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풍한설'이라는 말이 어울릴듯한 날씨였다. 매운 바람에 풍경<風磬>소리가 기분좋게 귀청을 때렸다>
‘명상산책길’. 참 근사한 이름이다.
웬지 길이름에 사연이 있는것 같다.
마곡사(麻谷寺)를 품에 안은 태화산의 적송을 사열하듯 걸으면 저절로 명상이 될듯하다.
하지만 명상길 초입에서 잠시 명상대신 고민에 빠졌다.
명상산책길의 시작지점인 백련암 뒤편에 ‘한가지 소원을 꼭 들어주시는
마애불 기도처’라는 팻말이 서있었기 때문이다.
소원이 어디 한두가지인가.
하필 왜 한가지만 들어주신다는 말인가.
누군들 마애불 앞에서 소원이 반드시 성취될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다. 웬지 간절히 기도하면 잘될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더 마음속에선 세속적인 갈등이 생겼다.
하지만 막상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부처님(마애불)앞에 서서 내가 마음속으로 간절히 원한것은
‘아들이 꼭 원하는 대학에 합격되게 해주십사’하는 것이었다. 당면한 과제였기 때문이다.
마곡사 명상산책길 트레킹은 이렇게 소원을 빌면서 시작됐다.
<백련사 뒷길로 올라가면 마애불이 나온다. 미끄러운 길을 올라가며 어떤 소원을 빌까 고민했다>
우리는 오전 10시 청주를 출발하기로 했지만
너무 추워서 트레킹이 가능할지 의문스러웠다.
출발을 전후해 가볍게 눈보라도 일었다.
하지만 드라이브하는 마음으로 마곡사로 향했다.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태화산 중턱에 자리잡은 마곡사는 규모가 큰 사찰이었다.
사찰을 관통해 맑고 투명한 태화천이 굽이치고 있었다.
적송이 우거진 태화산을 병풍처럼 드리우고 계곡이 S자형으로 사찰을 휘감아
흐르는 곳이라면 대충 그림이 나올 것이다.
‘탁리지’나 ‘정감록’에서 마곡사가 삼재(三災-전쟁 질병 기근)와
팔난(八難-배고픔 목마름 추위 더위 물 불 칼 병란 )이 들지 않으며
몸을 지키기 좋고 오래 살 수 있는 '보신의 땅'으로 기록된 것은 빼어난 입지 때문이다.
청주에서 1시간30분만에 도착한 마곡사는 칼바람이 몰아치는 ‘엄동설한’에도 불구하고 등산객들이 의외로 많았다.
우리가 선택한 길은 2코스 명상산책길이었다.
이곳은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였던 백범 김구선생의 흔적이 있는 길이다.
길 초입인 백련암은 백범이 수행했던 곳이다.
22세때인 1898년 명성황후의 시해에 울분이 끓어오른 백범은 황해도에서 일본장교를 살해한뒤
인천교도소를 탈옥해 마곡사에서 승려돼가 돼 백련암에서 6개월간 물도 긷고
장작도 패며 천수심경을 외우며 지냈다고 한다.
아마 하루에 한번은 암자 뒤편의 오솔길을 통해 태화산을 한바퀴돌며 명상을 하면서
나라를 빼앗긴 백성으로서 울분을 토해내고 마음을 다스렸을 것이다.
<적송이 우거진 산등성이에 다다르면 솔향기와 바람소리가 상념에 잠기게 한다>
우리는 백범이 114년전 걷던길을 걸었다.
그리고 그길에서 가장 처음 만난곳이 마애불이었다.
그곳에서 우리 일행은 각각 한가지씩 소원을 빌었다.
태화산 명상산책길은 트레킹코스로는 다소 가파랐다.
산길이 부드러운 흙길로 돼있고 노송이 빽빽하게 들어서 짙은 솔향기를
내뽐는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산등성이까지 오르는 것은
적어도 눈으로 덮힌 겨울에는 쉽지않았다.
‘아이젠’을 가져간것이 다행이었다.
우린 정상인 활인봉 부근의 지금은 철시한 간이매점에서 라면을 끓여먹었다.
후식으로 따뜻한 커피도 맛보았다.
체감온도 영하 10도인 산에서 먹는 라면과 커피는 일품이었다.
올라갈땐 매우 숨찰만큼 가파랐던 길이지만 내려올땐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등산화에 찬 아이젠이 적응이 되면서 살짝 눈과 얼음으로 덮힌 길을 쏟살같이 내려왔다.
<백범 김구선생이 22살때 머물렀던 거처. 사진중에는 좌우명이 쓰인 족자도 보인다>
사찰 주차장에서 배낭과 아이젠을 벗어 차에 실은 우리는 편안한 마음으로 마곡사를 둘러보았다.
마곡사는 백제의 최후를 맞았던 의자왕 3년 자장율사가 창건했다.
절이 고풍스러운 것은 천년의 역사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강추위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마곡사를 찾았다.
‘春麻谷秋甲寺(춘마곡추갑사)’라는 말이 있다.
‘봄에는 마곡사, 가을엔 갑사’라는 말이다.
하지만 겨울 마곡사도 운치가 있었다.
절이 고색창연한데다 바위사이로 담담하게 흐르는 태화천이 절의 풍경과 썩 어울리기 때문인 것 같다.
여기에 ‘백범’이 수양을 했다는 ‘스토리텔링’도 한몫 한것 같았다.
백범은 ‘민족의 지도자’반열에 오른 1946년 다시한번 마곡사를 찾아
절 인근 주민들과 기념촬영을 한뒤 사진옆에 평생의 좌우명인 다음과 같은 서산대사의 글을 써놓았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 눈덮힌 들판을 걸어갈 때
不須湖亂行(부수호란행) / 어지럽게 함부로 걷지마라
今日我行蹟(금일아행적) / 오늘 내가 가는 이 발자취가
邃作後人程(가작후인정) /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
누구나 마음에 새겨둘만한 좋은 글이지만 정치한다는 사람들이 더욱 눈여겨 읽어야 할 글인것 같다.
<스님들 참 부지런하다. 눈이 많이 왔지만 사찰안과 암자로 가는길엔 빗자루로 깨끗하게 치웠다>
우리 일행은 내년 봄에 ‘마이 힐링로드’ 정기트레킹으로 마곡사를 다시 오기로 했다.
그리고 이번엔 ‘솔바람길’을 걷기로 했다.
마곡사의 ‘風磬(풍경/처마 끝에 단 작은종)’소리를 들으며 송림숲으로 들어가면
한줄기 바람과 신선한 솔향기가 오감을 자극할 것 같다.
그 길을 걷노라면 적어도 그 순간만은 解脫(해탈)의 경지를 맛볼수 있지 않을까...
<마곡사 부근 귀빈식당에서 산채정식을 시키니 빈대떡이 에피타이저로 나왔다. 두접시를 비웠다>
<객단가 1만2천원짜리 산채정식. 음식문화전문가인 신송희 회원으로 부터 비교적 후한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