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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를 손에 쥔 여인 양귀비/안희환
비록 중국의 여인이지만 대한민국 사람들도 양귀비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양귀비는 경국지색이라고 일컬어지는 중국의 대표적인 미인인데 본명은 양옥환이고 당대포주 영락인(719~756)(지금의 섬서 화음현) 출신입니다. 양옥환은 17살 때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황제 현종의 아들인 수왕의 비로 간택이 되는데 수왕의 생모는 현종이 가장 총애한 무혜비입니다. 740년 양옥환은 현종이 여산의 화청궁으로 거동할 때 왕비의 한 사람으로 수행하는데 무혜비를 잃고 낙담하던 현종은 양옥환에게 반하고 맙니다. 현종은 양옥환을 위해 화려한 욕실을 짓게 하여 목욕을 즐길 수 있도록 해주었고 자신은 그런 옥환에게 푹 빠져버립니다. 양옥환은 분명히 자신의 아들인 수왕의 비였기에 그대로 빼앗아 후궁에 들일 수 없었던 현종은 양옥환을 비구니로 만들어 수왕의 곁을 떠나게 한 후에야 그녀를 궁중의 태진궁에 넣습니다. 그 후 현종은 나라 일을 제쳐둔 채 태진궁에만 머물렀는데 아침이 되어도 조정에 나오지 않는 날이 허다하였습니다. 이때 현종의 나이는 56세이고 양옥환의 나이는 22세였으니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일이었고 더구나 자신의 며느리를 취한 것이니 그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신들은 이미 그 모든 과정에서 반대를 분명히 했지만 이미 양옥환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린 현종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현종에게 선택을 받은 후 5년째 되는 해 양옥환은 귀비의 칭호를 하사받는데, 그로부터 양귀비가 됩니다. 궁중의 법도상 귀비의 지위는 황후 다음이었으나 이때 황후가 없었으므로 사실상 양귀비가 황후의 행세를 하였고 양귀비가 현종의 총애를 한 몸에 받은 덕에 그녀의 일족들도 차례차례 고관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이미 고인이 된 양귀비의 부모에게도 각각 관직이 주어졌을 정도입니다. 양귀비가 그렇게까지 현종의 총애를 입은 것은 미모 때문만이 아닙니다. 양귀비는 매우 이지적인 여성으로 음악, 무용에도 남다른 재주가 있었습니다. 처음 현종을 만날 때도 술자리에서 현종이 작곡한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의 악보를 보자 그녀는 즉석에서 이 곡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는데 양귀비의 창의성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게다가 양귀비는 뛰어난 말솜씨와 재치를 지니고 있었는데 그런 역량들은 현종이 왜 수많은 후궁들을 제치고 양귀비에게만 빠지게 되었는지를 알게 해 줍니다. 그러나 현종의 지극한 사랑을 받는 양귀비는 현종에게 정숙한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양귀비와 현종의 형인 영왕 사이의 불미스러운 소문들이 있었으며 양귀비는 이로 인해 잠시 현종의 진노를 사기도 합니다. 더구나 양귀비는 늙어버린 현종으로 만족할 수 없게 되자 안록산을 끌어들이는데 안록산은 양귀비의 입김으로 고속 승진을 하게 됩니다. 영주 도독에 임명된 그 이듬해에 평로 절도사의 자리에 오르고, 2년 후 범양절도사를 겸임하게 되었고, 그것도 모자라 어사대부에 하동절도사 자리까지 겸직하게 되었습니다. 안록산은 야심이 많은 인물이었습니다. 755년 양국충을 친다는 명목으로 군사를 일으킨 안록산은 모반을 일으키고 장안을 수비하는 요새인 동관을 함락시켰으며 이에 현종은 양국충의 권유에 따라 장안을 버리고 피난을 떠나게 됩니다. 문제는 이런 일들이 발생하기 전 모반의 낌새를 눈치 챈 양국충이나 태자홍(후에 숙종이 됨)이 현종에게 병사를 정비하라고 간언했으나 현종이 양귀비의 말만 듣고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양귀비라는 한 여인이 일국의 황제를 손에 쥐고 흔들었던 것입니다. 피난 행렬이 함양을 지나 마외에 당도했을 때 굶주림과 피로로 지친 장병들은 양씨 일족과 양귀비에 대한 분노를 터뜨립니다. 그들은 양국충을 죽이고 양귀비의 세 자매를 찾아내서 죽였으며 현종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몰려가 양귀비를 내놓으라고 소리쳤습니다. 현종은 눈물을 머금고 양귀비를 내주었으며 양귀비는 불당 안에서 고력사의 손에 목을 졸려죽는데 이때 양귀비의 나이는 38세였습니다. 양귀비의 죽음을 본 본 병사들을 환호성을 질렀고 양귀비의 시신은 마외의 서쪽 들판에 쓸쓸하게 묻힙니다. 양귀비의 화려하면서도 비참한 일생을 보면서 그 큰 영향력을 가지고 좋은 방향으로 사용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총명하고 능력 있는 황제로 유명했던 현종을 꼬드겨 자신의 가족이나 마음에 드는 사람들을 높이는 데 사용하지 않고 제대로 된 사람을 등용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나라를 튼튼하게 세우는데 일조했다면 그처럼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지도 않았을 터이고 역사상 위대한 인물로 자리 잡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고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