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 내성 파지요법으로 극복한다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에세이]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에세이 (82)
2014.06.10 09:27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박테리아 세포 표면을 덮고 있는 박테리오파지의 모습을 담은 전자현미경 사진. 파지는 박테리아 세포벽 표면의 구조를 인식해 달라붙은 뒤 게놈을 세포 안으로 주입해 번식한다. ⓒ 위키피디아
항생제 관련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알수록 더 심각한 일이라는 게 분명해지고 있다. 즉 항생제 내성 병원균에 감염돼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뿐 아니라 멀쩡한 것 같은 사람들도 항생제 남용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게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항생제가 병원균뿐 아니라 유익균도 죽임으로써 장내미생물의 균형이 무너져 염증성 장질환이나 알레르기는 물론 비만, 당뇨병 같은 대사질환도 크게 늘어났다는 것이다.
학술지 ‘네이처’ 5월 1일자는 17쪽에 걸쳐 ‘항생제’를 특집으로 다뤘는데 모두 여덟 편의 글이 실렸다. 그 가운데 ‘파지의 시대(The age of the phage)’라는 제목의 글이 눈길을 끈다. 일본의 미생물학자들이 기고한 글로 항생제 문제를 해결할 대안 가운데 하나로 ‘파지요법(phage therapy)’를 소개하고 있다.
파지는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의 줄임말로 박테리아에 감염하는 바이러스다. 중고교 생물시간에 다들 봤겠지만 전자현미경에서 보면 아폴로11호의 달착륙선을 꼭 닮았다. 박테리아 세포벽에 ‘착륙’한 파지는 벽을 뚫고 자신의 게놈을(DNA 또는 RNA)을 주입한다. 이 파지 게놈이 숙주의 ‘설비와 재료’를 이용해 복제한 파지 수백 마리는 만신창이가 된 박테리아를 뒤로 하고 다른 먹잇감을 향해 떠난다. 박테리아로서는 파지가 저승사자인 셈이다.
비운의 파지 연구가 조지 엘리아바
파지는 거의 100년 전인 1915년 영국의 미생물학자 프레데릭 트워트가 처음 발견했다. 포도상구균을 키우던 어느 날 트워트는 균이 제대로 못자라는 걸 보고 그 부분을 다른 배양액에 옮겼더니 역시 못자라는 걸 발견해 여기에 박테리아를 죽이는 뭔가가 있다고 확신한 것. 그는 이 미지의 생명체에 ‘박테리아를 먹는다’는 뜻의 박테리오파지라는 이름을 붙였다. 2년 뒤인 1917년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의 미생물학자 펠릭스 데렐 역시 비슷한 현상을 발견했다. 참고로 박테리아파지의 실체는 전자현미경이 발명된 1930년대에야 확인됐다.
트워트가 다른 데로 관심을 돌린 반면 데렐은 파지 연구를 계속했고 특정 파지는 특정 박테리아 균주에만 작용한다는 걸 밝혔다. 데렐은 병원균을 죽이는데 파지를 이용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1919년 사람을 대상으로 첫 임상을 실시했다. 파지요법으로 알려진 이 새로운 치료법은 곧 유럽에서 화제가 됐다.
1892년 조지아(그루지아)에서 태어난 조지 엘리아바는 의대를 졸업한 뒤 수도인 트빌리시에서 미생물을 연구했다. 1918년 엘리아바는 파스퇴르연구소에서 연수할 기회를 얻었고 3년간 머물렀다. 이때 데렐을 만났고 파지요법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1923년 엘리아바는 트빌리시연구소를 세워 조지아의 미생물연구를 이끌었다. 1926년 다시 파스퇴르연구소에 체류하게 된 엘리아바는 제대로 파지요법을 배웠고 이듬해 귀국한 뒤 본격적으로 파지요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조지아와 러시아 같은 동구권에서 파지요법이 활발히 행해지고 있다. 1917년 파지를 발견해 1919년 파지요법을 처음 실시한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의 펠릭스 데렐은 연구소를 찾은 조지아 트빌리시연구소의 조지 엘리아바에게 비법을 전수해준다. 1934년 트빌리시연구소를 방문한 데렐은 정착할 결심까지 하지만 엘리아바가 ‘인민의 적’으로 몰려 체포되면서 급히 탈출한다. 엘리아바는 1937년 처형됐는데, 훗날 권력자의 여자를 건드린 게 ‘죄목’이었음이 밝혀졌다. ⓒ 강석기
1934년 데델은 엘리아바의 초청으로 트빌리시연구소를 방문해 머물면서 파지요법에 대한 책도 쓰고 정착할 결심까지 한다. 그러나 이듬해 엘리아바가 ‘인민의 적’으로 몰려 전격 체포되면서 놀란 데델은 허겁지겁 파리로 도망쳤다. 엘리아바는 1937년 아내와 함께 처형됐다. 훗날 진상이 밝혀졌는데, 엘리아바가 바람을 피웠는데 하필 그 여자가 당시 스탈린의 오른팔로 비밀경찰의 수장 출신인 라브란티 베리야(둘 다 조지아 출신이다)가 찍어 둔 여자였던 것.
엘리아바는 45살 한창 나이에 이처럼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지만, 트빌리시연구소에서는 파지요법 연구를 계속했고 오늘날 세계 최고의 파지요법 연구소가 됐다. 1988년 연구소는 창립자인 불운한 과학자를 기려 ‘조지엘리아바연구소’로 개명했다.
파지요법 받으러 해외원정 가기도
엘리아바연구소가 파지요법을 대표하게 된 건 1940년대 항생제가 개발되면서 서구에서 파지요법이 잊혔기 때문이다. 반면 냉전체제로 항생제요법에서 소외된 동구권은 파지요법을 계속 추구했다. 그 결과 오늘날 서구 의료계에서는 파지요법을 아직 허용하고 있지 않지만 조지아와 러시아, 폴란드 등에서는 널리 쓰이고 있다.
파지요법은 박테이오파지가 들어 있는 용액을 먹거나 환부에 뿌려주면 되는 간단한 치료법이다. ⓒ 조지엘리아바연구소
그런데 항생제 내성이 갈수록 심해지고 내성균으로 죽는 사람들이 속출하면서 파지요법을 받으려고 조지아로 가는 유럽 환자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러다보니 서구 의학계에서도 파지요법을 본격적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스위스 로잔대 그레고리 레쉬 교수와 동료 연구자들는 유럽연합(EU)으로부터 380만 유로(약 50억 원)의 지원을 받아 ‘파고번(phagoburn)’으로 부르는 임상시험을 올 9월부터 실시할 예정이다. 화상(burn) 부위의 세균 감염을 파지로 치료한다는 의미가 내포된 이름으로, 환자 2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다.
파지요법이 주목받는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먼저 엄청난 다양성을 들 수 있다. 즉 우리 주변 어디서나 파지가 널려있기 때문에 웬만한 병원균은 천적이 되는 파지를 찾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물론 박테리아가 변이를 일으켜 내성을 가질 수도 있지만 파지도 그에 맞춰 변이를 일으킬 수 있고 또 여러 종류를 쓰는 파지칵테일요법도 가능하다는 것.
다음으로 파지의 숙주 특이성을 꼽을 수 있다. 파지는 특정 균주에만 감염할 수 있기 때문에 무차별적으로 폭격하는 항생제에 비해 인체의 유익균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리고 박테리아가 아닌 진핵생물(사람을 포함해)은 건드리지 않기 때문에 안전하다.
거의 100년 전인 1919년 파스퇴르연구소에서 처음 시도된 파지요법은 오랫동안 항생제에 밀려 최근까지 주로 동구권에서만 연구가 되다 뒤늦게 다시 빛을 보고 있다. 돌고 도는 유행은 패션계에만 한정된 게 아닌 것 같다.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저작권자 2014.06.10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