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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절,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2025.04.27 설교)
지닌주에는 솔로몬의 혼인의 청혼의 노래가 있었다면, 이제는 술람미 여인의 반응입니다. 청혼의 승낙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술람미 여인이 바로 “결혼 좋아요”가 아니라 여우를 잡아 달라고 요청합니다.
여우는 사랑의 방해꾼입니다. 신랑이 신부를 취하고자 할 때 다가오는 놈들이니다. 작은 여우인 것입니다. 그래서 대수롭게 않게 여길 수 있습니다. 여우는 사자처럼 한방에 물어 죽이기 보다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히 조금씩 갉아 먹어 서서히 죽게 만들게 합니다. 그래서 포도나무를 말라 죽게 만들어 포도원을 허는 것입니다.
→ 마찬가지로 우리 주님이 우리를 신부로 취하기 위하여 다가오실 때에도 여우와 같은 것들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헤롯을 “여우”라고 표현했습니다. ※ 세례요한을 죽인 헤롯 안티파스
[누가복음 13:31] 31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32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 헤롯과 같은 여우가 활동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대제사장, 빌라도도 모두 여우같은 자들입니다.
▶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빼앗고자 다가오는 애굽의 바로와 블레셋의 아비멜렉과 같은 자도 여우와 같은 자들인 것입니다. 이삭에게도 그런 위험이 있었습니다 (창 12:15, 창 20:2,창 26:7-10), 이들은 다른 신랑들이며, 또한 가정을 파괴하는 여우와 같은 자들입니다.
▶ 15절의 술람미 여인의 노래는 14절의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의 응답인 것입니다. 솔로몬의 청혼의 고백의 노래를 듣고 마음의 문을 열고 얼굴을 보이고 목소리를 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 솔로몬에게 먼저 여우를 잡아야 한다고 노래하는 것은 이것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혼인을 방해하는 세력을 먼저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잡혀지지 않으면 혼인을 해도 어려움에 처합니다.
→ 오늘날 수없이 많은 부부가 갈등을 빚고 더 나아가 이혼을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원인은 오늘 말씀의 “여우”입니다. 두 연인이 가꾸는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인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이 포도원지기를 하면서 경험한 것입니다. 작은 여우라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땅 속에 숨어서 뿌리를 갉아 먹어 포도나무를 죽이고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여우인 것입니다.
▶ 오늘날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여우는 한 마리 수준이 아닙니다. 여러 마리이며, 다양한 종류의 여우들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 히브리어 원어도 “슈아림 슈아림”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슈알”의 복수형이므로 두 번이나 “여우들, 여우들”이라고 소리치는 것입니다.
수많은 작은 여우들이 때로는 드러나기도 하지만, 어둠 속에서 또는 땅속에 숨어서 활동하는 것입니다.그래서 여우의 할동을 본인들이 잘 모를 때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마 8:20)
그래서 가정이 자신들도 모르게 서서히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에도 이 여우를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부부 관계가 온전해지고 가정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혹시 은밀하게 행해지는 가정을 깨는 모든 행동들이 있다면, 이 숨어 있는 여우의 활동인 것입니다.
▶ 여우는 황폐한 곳에서 더 활동적입니다.
[예레미야애가 5:18] 시온 산이 황폐하여 여우가 그 안에서 노나이다
[에스겔 13:4] 이스라엘아 너의 선지자들은 황무지에 있는 여우 같으니라
마음이 황폐해지고, 가정이 황폐해져 있다면, 이미 여우가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여우는 죽은 시체도 먹습니다. 여우는 교활함+파괴+타락을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사탄의 속성인 것입니다. 이 여우를 잡아야 합니다.
▶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 아내로 맞이합니다. 그런데, 친구들에게 수수께끼를 낸 사건을 계기로 삼손이 베옷과 겉옷 삼십 벌씩을 마련하기 위하여 아스글론에서 내려가 그곳 사람 삼십 명을 쳐죽였는데, 이것을 계기로 그의 장인이 삼손의 아내를 삼손의 친구에게 내어 주게 됩니다. 그래서 삼손은 여우 삼백마리를 붙들어서 꼬리에 고리를 매고, 홰를 두 꼬리 사이에 매달고 곡식 밭으로 몰아 들입니다. 그 결과가 곡식과 포도원과 감람나무들이 다 타버리고 맙니다.
오늘 여우 말씀과 관련해서 깨달아지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 자기의 가정이 파괴되었으니, 친구로 왔던 너희 삼십 명의 가정도 삼십의 10배가 되는 300마리 여우로 그렇게 되라는 것입니다. 10배로 갚겠다는 것입니다.
그결과 다 불살라지고 마는데, 오늘 말씀의 포도원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곡식과 포도원과 감람나무는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입니다 (신 11:14, 12:17, 18:4, 호 2:22)
이것은 몇 차례 설교를 해드렸지만, 육, 혼, 영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육적인 복, 혼적인 복, 영적인 복 모두가 다 불타버린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여우가 활동하면, 가정의 모든 복을 불살라 버리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봄이 되어 포도원에 꽃이 피고 이제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 단계에서 여우가 활동하는 것입니다. 마치 혼인을 위하여 사랑의 꽃이 피기 시작할 때에 혼인을 방해하는 여우가 역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 청혼을 받아들이는 술람미 여인은 이제 “우리의 포도원”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각자의 포도원이 있었지만, 이제는 하나가 되기에 신랑과 함께 가꾸어야 하는 “우리의 포도원”이 된 것입니다.
포도원은 오늘날 교회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포도나무인 것입니다.
→ 이사야도 동일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1]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7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포도를 맺었다고 이사야를 통하여 책망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 혼인을 하면 이제 “우리”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마치, 머리가 되신 예수님을 중심으로 각 지체가 연결되어 하나의 몸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고린도전서 12: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모든 것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 땅의 기업도, 하늘의 기업도 우리 주님과 공유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 아직도 내가 가진 것 모두가 다 내 것입니까? 내 것이라고 주장을 합니까?
그러면 여전히 혼인이 되지 않은 자입니다.
사실 내 것이 주님의 것이 된 것은 얼마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것이 내 것 되는 것은 천국을 포함하여 엄청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작은 우리의 것을 놓지 못하여 큰 것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나에게 있는 작은 것들을 모두가 다 내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주님과 나 사이에서 “우리의 포도원”이 되어야 합니다.
→ 오늘날 부부 사이에서 각자의 호주머니를 차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 그렇까요? 서로가 매이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혼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이 생겼을 때 각자 자기 살 궁리를 하는 것입니다.
→ 어쩌면 이런 모습이 오늘날 주님과 우리들의 소원한 관계를 보여주고 있는 듯 합니다. 같이 살아도 각자 방을 따로 사용하고, 따로 침대 사용하고, 거의 따로 사는 것과 같은 영적 이혼 상태 말입니다.
▶ 아무튼 술람미 여인이 청혼 수락을 하면서 가장 먼저 요청한 것이 “포도원을 허는 여우를 잡아달라”는 요청입니다.
이 요청이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렇게 하면서 청혼을 수락한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16절에서는 이렇게 노래하는 것입니다.
16절,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는구나
“내 사랑하는 자”가 “도드”이므로 솔로몬입니다. 그러므로 노래하는 자는 술람미 여인입니다. 드디어 청혼을 승낙하므로 하나가 된 술람미 여인의 고백입니다. 이런 고백은 앞으로 자주 있어야 합니다. 하나됨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미 혼인을 했지만, 아 6:3절에서도 동일한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 우리들은 하나됨의 노래를 하기보다는 자주 “이혼의 노래”를 할 때가 많습니다. 안됩니다.
실제 우리들 부부 사이에서도 퍽 하면, 같이 못 살겠다. 헤어지자, 떠나가라, 심한 잔소리 등등 분리의 소리를 내 뱉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 식었다는 증표입니다. 여우가 역사한다는 증표입니다. 하나되지 못한 증거입니다.
▶ 사실 16절에서 “속했다”는 동사는 없습니다. “레”라는 전치사를 사용하고 있는데 원어적으로 “레”는 “안에, in”입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내 안에, 나는 솔로몬 안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도 요한복음에서 동일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주님의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그래서 15절에서 “우리의 포도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서로 속했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사랑으로 하나될 때 서로가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튼 두 연인이 서로 하나된 모습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창 2:23절에서 아담이 하와를 보고 고백한 고백도 하나임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2: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는구나
원어에는 “양 떼”라는 목적어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부 영어 성경은 양 떼인 “his flock”을 ( )안에 넣고 있거나(ASV,Darby) 아예 없습니다(NIV)
6:2,3절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먹이고 돌보고 사귀고 친구되다”는 뜻의 동분사만 있는데 (히, 라아) 의미를 생각해서 번역시 양 떼를 추가한 것입니다.
다시 번역하면, “백합화들(복수) 가운데서 먹이는구나”입니다.
누구를 먹입니까? 술람미 여인입니다. “양 떼”를 추가하다가 보니, 마치 백합화들인 신부들을 먹이는 것처럼 번역이 된 것입니다.
물론 술람미 여인도 백합화이고(아 2:1) 예루살렘 여인들도 백합화들입니다 (아 2:1,2, 4:5, 6:2,3) 그래서 신부인 교회를 푸른 초장에서 먹이십니다(시편 23편)
→ 하지만, 오늘 말씀의 초점은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의 혼인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16절을 원어적으로 자세히 살펴보면, 술람미 여인을 솔로몬이 먹이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과 하나되어 술람미 여인을 먹이고 있는 모습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과 사랑의 관계는 다수의 관계가 아니라 주님과 일대일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백합화들로 지칭되는 다수의 여인들 속에서 한 사람인 술람미 여인을 먹이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여기서 주인공은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임을 기억해야 내용의 흐름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아 6:2-3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백합화들 가운데서 술람미 여인을 먹이는 것입니다.
“백합화들 가운데 먹이는구나”
17절, 내 사랑하는 자야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돌아와서 베데르 산의 노루와 어린 사슴 같을지라
여기서도 “내 사랑하는 자”가 “도드”이므로 솔로몬입니다. 그러므로 노래하는 자는 술람미 여인인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에게 두 개의 명령형 동사 (돌아와서, 같을지라)를 사용하여 강하게 요청하는 노래입니다.
▶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는 해지는 때에, 해지기 까지 (히, 아드)입니다.
▶ “돌아와서”(히, 사바브)는 원어적으로 ”둘러싸다, 주위를 돌다 (수 6:3), 순회하다(삼상 7:16), 감싸다“ (겔 42:15, 20 등)의 의미를 가진 단어이므로 솔로몬에게 ① 돌아오라고 요청하는 것으로만 해석할 수도 있고 (초림) ② 어두워지기 전에, 어두운 때에 ”보호해 달라, 감싸 달라“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또는 죽기까지 보호해 달라는 노래인 것입니다.
에스겔 성전에서도 ”사비브, 사비브“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거룩함과 보호를 위한 ”둘어쌓인“구조를 말하고 있습니다 (겔 42:15, 20 등)
→ 빨리 달리는 노루와 어린 사슴의 비유도 있으므로, 두 해석을 함께 적용하면, 여우가 활동하는 어두운 때에, 또는 어두울 때까지 노루와 들사슴처럼 빨리 와서 나를 보호해 달라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술람미 여인이 자신의 순결과 거룩을 지키기 위한 요청인 것입니다.
▶ 그런데, 술람미 여인은 “베데르 산의 노루와 어린사슴 같아라” 라고 요청하고 있는데, “베데르 산”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① 이것은 먼저, 원어적으로 “쪼개다. 가르다“의 의미가 있으므로 거친 산일 것입니다. 좁은 곳, 나무와 숲을 헤치며 달려와야 하는 거친 산의 이미지인 것입니다.
구원의 문과 길은 좁고 협착한 것과 같습니다(마 7:4), 이런 길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시는 주님의 길이요, 신부를 얻기 위한 솔로몬의 길인 것입니다.
아가서 3:6절에도 실제로 솔로몬은 혼인을 위하여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가 3:6] 몰약과 유향과 상인의 여러 가지 향품으로 향내 풍기며 연기 기둥처럼 거친 들에서 오는 자가 누구인가
② 이것은 또한 2:2절의 가시나무 가운데 있는 백합화 같이 향기를 풍기는 술람미 여인의 모습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해야하는 것과 같은 이미지인 것입니다.
베데르 산에서, 전치사 에서는 히브리어 ”알“인데, ”위에서, 곁에서“의 뜻입니다. 고난 가운데 있는 술람미 여인 ”곁에서, 위에서“ 솔로몬에게 감싸 보호해 달라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기도가 아닙니까? 저의 기도이기도 합니다.
③ 참고로, 일부 학자들은 베데르산의 쪼개진 이미지가 언약을 맺을 때 동물을 쪼개어 놓고 언약을 맺는 것을 고려한 상징적 표현으로 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제 두 연인은 혼인언약을 맺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 아 2:8-17절을 요약하면, 술람미 여인은 창과 창틈 사이로 들여다보며 사랑의 계절인 봄이 온 것을 근거로 청혼의 노래를 하고 있는 솔로몬에게 / 마음의 문을 열어주고 / 청혼 승낙으로 얼굴을 보여주며, 목소리를 발하는데, 사랑의 방해꾼이 여우를 잡아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 그리고 밤이 되면 더 위험하므로 날이 저물기 전에 자신을 여우로부터 거룩함, 순결함을 지키도록 노루처럼, 어린 사슴처럼 빨리 달려와 감싸 달라, 보호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15절-17절은 3장에서 이루어지는 혼인을 위한 사랑의 승낙인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의 청혼과 술람미 여인의 승낙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가 된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포도원이 된 것입니다. 요한복은 15:5절에서 말씀처럼 포도나무 줄기에 가지가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이제는 들포도가 아니라 좋은 포도를 맺게 될 것입니다.
이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의 청혼과 승낙의 노래가 우리들의 노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죽이고자 하는 여우와 같은 사탄, 귀신을 몰아내 달라는 요청과 속히 오셔서 보호해달라는 기도 말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신부가 되고자 하는 자들의 기도인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백합화들과 같은 많은 신부들도 있지만, 사랑을 하게 되면 인격적으로 1:1관계로 다가오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1;1의 사랑관계 속에 들어가 좋은 구원의 열매가 맺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