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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와 회복을 꿈꾸는 영혼들에게 띄우는 편지(통권 79호) 예 수 사 랑 ․ 가 족 사 랑 13권 2호 2012. 2. 1. Daum cafe: 가족치유상담연구원
나의 연약함과 실패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연약함과 힘든 이야기를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몇몇 분들은 짤막한 유언을 남기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마디 이야기도 남기지 않고 황급히 세상을 떠납니다. 욕을 먹고 사는 것보다 구차한 인생을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세상을 미련없이 떠납니다. 세상에 살아있는 것이 짐입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연약함과 실패와 모멸감을 보이는 것이 창피하고 수치스럽습니다. 자신의 실상이 알려지면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할 것 같아서 황급히 떠납니다.
물론 우리들은 압니다. 힘든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처음에는 관심을 기울이지만 곧 싫증을 냅니다. 사람들은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 놈은 멍청하게 인생을 살더니만 멍청한 일을 만들어내고 멍청한 짓만을 하는 초라한 인생이다.” 물론 우리 주변에 그렇게 욕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런 사람들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 당신의 연약한 이야기를 기꺼이 들어주고 함께 아파하고 그 문제의 해결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예수님을 감격적으로 만났던 사람들도 자랑스러운 인생은 아니었습니다. 자랑스러운 인생은 계산에 밝았던 배반자 가롯유다와 영생을 추구했던 니고데모 정도입니다. 간음한 여인(요8장), 사마리아여인(요4장), 나병환자(막1장), 38년 된 환자(요5장), 12년 혈루병환자(마9장), 거라사지방의 광인(눅8장) 이들은 감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세상 기준으로 보면 막장 인생입니다. 예수님의 관점에서 보면 막장 인생이 아닌 사람이 있을까요. 힘들지만 우리들의 아픈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과 나눕시다. 그들은 들을 귀가 있는 작은 예수입니다. 힘들지만 여러분들의 위험신호를 보내세요. 놀라운 일이 여러분을 환영할 것입니다. 김 영 근 목사<예수사랑, 가족사랑 발행인>
2012년 2월 가족치유회복중보기도
최근에 말씀을 증거하기 위해서 방문한 교회에서 선배 목사님 한 분을 만났습니다. 목사님은 힘든 목양의 여건 속에서도 아름다운 예배당을 건축했습니다. 새예배당의 4층은 식당을 겸한 다용도실입니다. 유리창이 많은 건물이었는데 추운 날씨인데도 햇볕이 너무 잘 들어와 온기가 가득했습니다. 목사님의 남은 사역에 주님의 선하신 은총과 인도하심을 간구했습니다. 내가 목사님의 입장이라면 감당하기가 어려웠을 텐데 주님의 긍휼함을 구하면서 목양자의 인생을 신실하게 살아왔습니다. 우리 주변에 힘든 상황 가운데 주님의 돌보심의 얼굴만을 구하면서 살아가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들은 이 땅의 예수님의 아름다운 그루터기이며신실한 제자들입니다. 교회와 교회지도자들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팽배하지만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과 함께 길가는 자들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야 할 것입니다. 남한 땅의 시 • 군 • 구는 268지역입니다. 내가 사는 지역의 가정과 교회와 학교의 치유와 부흥과 회복을 위해 더욱 열심히 기도의 손을 모읍시다.
1. 기도시간: 가족중보기도는 개인이나 교회별로 정해진 시간에 하루 1회 이상씩 합시다.
2. 중보기도참여자: 가정을 위해 기도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3. 기도의 대상: 내가 살고 있는 <시⦁군⦁구>에 있는 가정들이 기도의 대상입니다.
<일반기도제목>
첫째, 가족식구들의 상한 마음을 건강한 마음으로 변화시켜주옵소서!
둘째, 내가 먼저 주님의 용서를 체험하고 가족 안에 용서를 실천하게 하소서!
셋째, 하나님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건강한 자아상을 갖게 하소서!
넷째, 가족식구들의 생각이 합리적인 생각과 성경적인 생각으로 바꿔지게 하소서!
<특별기도제목>
첫째, 학교공동체에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아름다운 인격들이 많아지게 하소서!
둘째, 모든 가정이 서로의 연약함과 실패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셋째, 김정은 체제의 북한 사회가 국제사회를 향한 개방과 신앙의 자유를 허락하소서!
넷째, 계층과 지역 간의 갈등과 편가름이 사라지고 화해와 통합이 이루어지게 하소서1
김영근
“단”맛을 만드는 부모의 마음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대한 속담에 아비가 신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함은 어찜이뇨”<에스겔 18:1,2>
“무릇 속담하는 자가 네게 대하여 속담하기를 어미가 어떠하면 딸도 그렇다 하리라”<에스겔 16:44>
우리 부부는 가족치유상담연구원을 함께 섬기고 있다. 아내는 종종 이야기를 한다. 자신은 상담을 하면서 가능하면 내담자에게 긍정적인 마음과 자존감을 세워주는 일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다고 한다. 아내의 접근방법을 상담학에서 지원상담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내담자를 세워주고 격려받게 하고 가치있는 인생감각을 갖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내의 상담을 통해서 변화를 가져오는 내담자의 모습을 보면서 아내는 효과적인 상담자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물론 우리는 통찰상담의 방법을 때로는 활용해야 한다. 자신의 숨겨두었던, 혹은 숨겨져 왔던 상처와 죄성을 직면하게 한다. 이러한 과정을 겪을 때 내담자는 무척이나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 필자도 집단상담그룹을 인도하면서 평소와 달리 강하게 집단원들을 직면시켰다. 필자는 그 사람의 정곡을 찌르는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경우에는 강하게 직면하면서 집단원이 상당히 힘들어 하는 상황을 경험했다. 집단원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마음도 힘들었다. 물론 통찰의 과정을 겪으면서 내담자는 사람들이 알까봐 두려워서 꼭꼭 숨겨두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속이 후련한 감정정화를 경험할 수도 있다. 이 반대의 경우로서 때로는 깊은 것을 이야기했던 사실 때문에 더욱 힘들어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두 경우다 궁극적으로는 내담자에게 유익을 가져다준다.
통찰을 하면서도 상담자는 내담자의 입안에 단맛을 넣어주어야 한다. 신맛을 넣어주면서 내담자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고통을 만들어주는 것은 적당하지가 않다. 물론 힘든 직면을 시킬 때도 당신을 까발려서 망신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사람들이 두려워서 꼭꼭 숨겨놓았던 그 문제와 사건과 사람으로부터 당신을 자유롭게 만들어주고 싶어서 그렇게 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상담과정에서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좋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사랑하며 관심을 갖고 있다고 이야기를 한다. 이 땅위의 부모들은 어떠한가? 자녀의 입안에 단맛을 만들어주는 부모도 있고 자녀들의 입안에 신맛을 만들어주는 부모도 있다. 위에서 소개한 에스겔말씀은 자녀들에게 부모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말이 있다. “엄마가 훌륭하니 딸도 훌륭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부정적인 시각에서 “불량한 아들이 젊은 시절에 제 아버지가 했던 못된 짓을 되풀이 한다.” 하나님의 계획은 이 땅의 부모들을 통해서 하늘 아버지의 사랑이 그들의 자녀들에게 전수되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이 땅의 부모들은 때로는 하늘 아버지의 사랑의 전달을 위한 디딤돌이 되지 못하고 거침돌이 되기도 한다.
하늘 아버지는 당신의 사랑의 거침돌을 제거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주셨고 오늘날에는 다수의 크리스천 상담자를 활용하신다. 따라서 상담자는 내담자의 입안에 하나님의 사랑인 단포도의 단맛을 만들어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입안에 신맛을 가득 채워가지고 상담자를 찾을 때가 있다. 이때에 상담자는 내담자의 입안에 있는 신맛을 제거하고 단맛으로 채우는데 도움을 주는 조력자들이다.
모든 면에서 부모의 삶의 모습은 자녀들의 삶속에 평생 동안 영향을 미친다. 자녀들은 성장하면 가정을 떠나지만 가정은 결코 자녀들을 떠나지 않는다. 이 말은 자녀들은 결코 부모로부터 받은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이 땅의 부모들은 자녀들을 위한 영원한 상담자로 예수님이 세워주셨다. 이 때에 나는 자녀들의 입안에 단맛을 만들어내는 신실한 예수님의 상담자로 든든히 서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좋은 성품이 세상의 부모들을 통하여 자녀들에게 올바로 전수되기를 원하신다. 부모가 맛보았던 단포도의 단 맛이 그대로 자녀들의 입안에 단 맛으로 남아있기를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고 용납받는 것은 자녀들의 입안에 단포도의 단 맛을 생기게 만든다. 이런 경우에 자녀들은 자아에 대한 긍정적인 가치감각과 자신의 인생을 의미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거절당하면 그들은 자아에 대한 부정적인 가치감각과 자아에 대한 비뚤어진 그림을 갖게 된다.
김영근의 가정행복교실 2
고통은 성장을 위한 지름길이다.
아브라함 쉬미트 부부는 말했습니다. “갈등이란 본질적으로 두 사람이 각자의 개성을 인정해 주려는 노력이며 이 개성을 그들의 관계 속에서 소멸시키기보다는 용납할 수 있기를 바라는 그들의 희망인 것이다. 갈등이란 하나의 결론이 잉태될 때의 어려움이지 병의 징후는 아니다. 마치 모든 탄생이 그렇듯이 여기에도 해산의 고통이 따른다. 성장은 고통과 함께 오는 법이다.”
상담사역을 하면서 많은 부부들을 만나게 됩니다. 상담과정을 통해서 건강하게 회복되는 가정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가정도 있습니다. 벌써 오래 전의 이야기입니다. 경기도 부천시에 있는 수녀원에서 몇몇 부부커플들과 함께 1박 2일 부부 수련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함께 이야기를 하는 동안 한 커플의 부인은 남편을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남편에게 지나치게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는 아내에게 상담자로서 직면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부인은 화를 벌컥 내면서 상담자가 피해자인 자기편을 들어주지 않고 가해자인 남편 편을 들어준다고 하면서 상담자로서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뉘앙스를 남기고서는 그 모임을 떠나갔습니다. 그 부인은 지난 번 모임 때에 왔던 상담인도자는 자신의 편을 들어주었고 남편이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부인은 떠나갔지만 남편은 부인이 남겨놓은 빈자리를 지켰습니다. 그 가정의 갈등을 보면서 마음이 무척이나 아팠습니다. 그 자매는 자신이 성장하면서 이중생활을 했던 친정 아버지에게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받으면서 성장기를 보냈습니다. 친정 아버지를 통해서 잘못된 남성상이 깊게 입력된 이 자매에게 남편이 여간 잘해서는 자신을 만족시키기가 힘들었습니다.
친정 아버지에게 보였던 부족한 모습이 남편에게 보였습니다. 실제로 남편은 아주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친정 아버지로 인한 상처로 얼룩져있던 이 자매의 상한 마음을 치유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모임 중에 나는 이 자매에게 권면했습니다. “친정 아버지를 이해하고 수용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남편과의 관계도 회복이 됩니다. 자매님의 문제는 현재 남편과 당면한 문제가 아니라 친정 아버지와의 관계의 회복입니다. 아무리 남편이 당신의 기대를 채우는 완벽한 역할을 해도 당신의 텅빈 공간을 채울 수는 없습니다. 당신을 치유하고 회복시킬 수는 없습니다.”
상담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리를 박차고 나간 부인은 그래도 상담자가 했던 권면이 귓가에 맴돌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늘 남편이 문제라고 공격했던 자신을 돌보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몇 달 후에 반가운 전화를 받았습니다. 모임을 뛰쳐나왔던 자매가 어떤 가정사역원에서 주최하는 해외 세미나에게 남편과 함께 가기로 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사건 이후로 자신들의 부부관계는 놀랍게 회복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이 자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무척이나 기뻤고 감사했습니다. 사람들은 갈등을 겪으면서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사람들도 있고 관계가 더욱 악화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갈등을 겪으면서 이 갈등의 원인은 너때문이라고 힘주면서 너를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해결되기가 참으로 힘이 듭니다. 갈등을 겪게 되면 자신을 돌아보는 자세가 지혜롭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남을 공격하고 혈기를 부리는데는 선수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예외는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영성의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를 봅니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발견하는 어두운 부분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상대방의 어두운 모습이 나의 어두운 모습이라고 인식되는 순간 너와 나가 하나되는 경험도 하게 됩니다.
갈등이 생겨나면 그 갈등을 피해서는 안됩니다. 갈등을 직면해야 합니다. 부부사이에도 부부싸움을 할 수 있고 하게 되어있습니다. 자녀문제가 생길 수 있고 생기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싸움과 갈등은 가능하면 너무 깊어지지 않게 만들어야 합니다. 깊어지면 해결하기도 어렵고 해결되더라도 큰 자국을 남깁니다.
갈등이 생겨나고 싸움이 일어날 때에 자신의 인격과 수양이 부족하다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나와 똑같은 사람이 없기에 우리는 의견차이가 생겨나고 다툼이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도 우리는 머리를 굴려서 관념적인 관계나 피상적인 관계로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가족은 서로가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감정의 표현은 희노애락(喜怒哀樂)의 표현입니다. 가까운 사이에 나의 기쁨, 성남, 슬픔, 즐거움을 잘 표현해야 합니다. 그러면 싸움이 성숙으로 가는 길이 됩니다.
우리 시대의 유능한 상담자였던 폴 투르니에도 부부싸움을 했고 심지어 아내를 구타하기도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의 가정의 회복처럼 우리 가정도 회복됩니다.
김영근의 예수님과 떠나는 치유여행 3 - 참생명을 받고, 보존하며, 나누기 -
나의 꿈 이야기
어린 시절에 꾸었던 꿈 중에 잊혀지지 않는 꿈이 있다. 나의 고향 마을에는 경사진 큰 밭이 하나 있고 그 밭 위쪽의 가장자리에는 큰 밤나무가 있는데 이곳에서 어떤 어른이 꿈 속에서 나를 번쩍 들어서 공중으로 날려버렸다. 나는 마치 비행기가 날아가는 것처럼 하늘을 향해 날았는데 조금은 무서웠지만 기분은 괜찮았다.
꿈에는 자신의 미래를 암시하는 내용이 있기도 하다. 또한 꿈은 현재의 자신의 내면의 상태를 의식이 잠들어 있는 수면시간에 보여준다. 그래서 어떤 분은 꿈을 가르켜서 무의식 가운데 들려지는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꿈꾸는 시간은 우리의 정신(혼)이 쉬고 있는 동안 우리의 영에게 하나님의 영이 말씀하시는 시간이다. 그래서 모든 꿈은 소중하다.
어린 시절에 시골에서 자라면서 나는 늘 비행기가 떠다니는 모습을 동경했다. 비행기는 하늘에서 흰 자국을 남기면서 먼 하늘로 날아가면서 시야에 사라졌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말이 되기 전까지는 한 번도 20리(8km) 밖을 여행해보지 못했다. 6학년 말에 중학교 입학시험을 보기위해 충북 청주로 갔던 경험이 전부다.
나의 역마살 인생은 어린 시절의 꿈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나의 사역은 이룩하는 비행기처럼 떠남의 사역이었다. 인생은 한 곳에 머물러서 한 우물을 깊이 파야 풍성한 물이 나오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목회자의 길에 들어서도 여러 가지 다양한 사역을 하고 싶었다. 농촌목회, 어촌목회, 광산촌목회, 도시목회, 선교사역, 교수사역, 상담사역 등 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았다. 2011년 5월에 장로회신학대학교 79기가 졸업 후 25주년이 되는 홈커밍데이를 가졌다. 졸업 후에 오랜만에 만나는 동기생들이 서로의 사역을 소개할 때 나는 나의 역마살인생과 역마살 목회를 이야기했다. 졸업 후 벌써 25년이 지나갔고 이제는 사역을 내려 놀 준비를 서서히 해야 할 때다. 나는 동기회모임에서 한 교회에서 안정된 목회를 하는 동기생들이 부러웠다.
참 생명 받아들이기
사람들은 생명을 어떻게 받는 것일까 ? 이 질문에 대해서 송봉모는 자신의 책 『생명을 돌보는 인간』(바오로딸, 1998)에서 세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아들인다. 둘째는 자연을 통해서 생명을 받아들인다. 셋째는 꿈을 통해서 생명을 받아들인다. 송봉모의 견해에 근거해서 살펴보자.
첫째, 우리는 존재의 근거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이 일을 위해서는 우리는 조용히 머물러서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육신의 부모로부터 육신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참 생명을 받아들인다. 하나님 앞에서 고요하게 머물면서 기도할 때에 기도의 사람은 참 생명을 받아 몸이 정돈되고 생기가 넘친다.
둘째는 자연을 통해서 생명을 받아들인다. 우리들은 대자연의 웅장함과 화려함 가운데서 하나님의 생명을 경험한 적이 있다. 언젠가 대학시절에 몇몇 친구들과 함께 강원도 인제군 원통을 거쳐 백담사를 지나 내설악을 등반했었다. 그 때 등반하면서 내설악의 풍경에 넋이 나간 채 창조주 하나님의 생명으로 풍성해졌었다. 부산 태종대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태종대의 깎아지른 절벽과 멀리 대마도에 이르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창조의 생명력에 깊이 잠겼었다. 사람들은 이러한 큰 자연에만 감동하는 것은 아니다. 진해에서 목회할 때에 가까운 곳에 무궁화공원이 있었다. 무궁화꽃은 6월 말부터 9월말까지 거의 4개월 동안 피는 꽃이다. 무궁화 꽃은 화려한 꽃은 아니지만 피었다 지는 끈질긴 생명력에 탄복했던 적이 있다.
세 번째는 꿈을 통해서 생명력을 받는다. 내 영혼이 잠든 사이에 하나님은 꿈을 통해서 당신의 계획을 알려주기도 하고 현재의 나의 진면목을 말씀하신다. 그래서 꿈은 하나님의 생명과 나의 생명이 만나는 최전선인 것이다.
나의 역마살사역을 나는 나의 꿈을 통해서 수용했지만 이러한 나의 사역을 모두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존경하는 선배 목회자 한 분은 경남 산청군 단성면에서 장신대 신대원 2학년 시절에 개척(1984년)해서 지금까지(2012년 1월) 그곳에서 27년째 목회를 하고 있다. 이 분은 나와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내지만 나의 역마살 목회를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나에게 다시 한 번 목양의 기회가 주어지면 이 선배 목사님처럼 한 곳에 머물면서 깊이 있는 목양의 삶을 살고 싶다. .
그렇다고 역마살목회가 나쁜 것 만은 아니다. 좋은 의미로 역마살 목회는 순례자의 목회이다. 아브라함처럼, 사도바울처럼 사역하는 것이다. 이들도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들였고 그들의 사역을 풍성하게 했다. 꿈은 예언의 의미를 알려주고 동시에 하나님의 생명으로 풍성하지 못한 자신의 내면의 상태를 알려준다.
얼마 전에 꿈을 꾸었다. 내가 사는 집에 불이 붙었다. 막 불이 붙은 상태에서 지붕 속으로 불이 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가까운 곳에 물이 있었지만 꿈속인지라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 지붕은 두꺼운 초가지붕이어서 불이 지붕 속으로 들어가면 끄기가 무척이나 힘든 상황이었다. 불을 끄려고 동분서주 하다가 잠이 깨었다. 꿈속의 집은 사람을 상징한다. ‘나’라는 인간에게 불이 붙은 것이다.
과거 같으면 이 꿈은 불길한 꿈이라서 기분이 상했고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주님이 나의 내면상태를 가르쳐주는 것이라고 믿으면서 나의 내면생활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해 7월부터 서울 종로5가에 가족치유상담연구원을 개원하면서 분주해졌다. 상담연구원을 운영하면서 나는 이 연구원이 잘 운영될 것인가에 대한 염려도 많았고 강의계획과 상담계획 등으로 마음이 분주했다. 내가 예수님께 덜 집중했을 때 주님은 나의 헝클어진 내면을 꿈을 통해 보여주셨다.
나는 꿈을 통한 계시를 듣고서 더욱 예수님에게 집중하기 위해 힘을 모았다. 잠을 자기 전에 찬송을 많이 했고 새벽제단을 좀 더 열심히 쌓기 시작했다. 나의 불길한 꿈은 내가 예수님의 생명을 풍성히 받도록 권면하시는 주님의 음성이었다.
참 생명 보존하기
진정한 예수님의 사람들은 이미 받은 하나님의 생명을 잘 보존하면서 살아야 한다. 조상의 유산을 잘 지켜야만 훌륭한 후손이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생명을 잘 지켜야만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간다(요한10:9). 하나님의 생명을 잘 지키지 못하면 사람들은 피곤하고 짜증스럽게 살아가면서 불행한 삶을 산다. 하나님의 생명을 잘 지키려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가?
첫째, 자족하면서 살아야 한다. 자족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욕심을 버리고 현재에 만족하는 삶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다. 지나친 것은 부족한 것과 마찬가지로 좋지 않다는 것이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결국은 망해버린다.
자족하는 삶을 위해서 탈착하면서 살아야 한다. 탈착은 글자 그대로 집착에서 벗어나서 살아가는 삶이다. 탈착훈련은 생명을 보존하는데 특별한 훈련이다.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 망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이스라엘 초대왕이 사울왕이다. 사울왕은 요즘 말로 하면 유능한 왕이었다. 그런데 전쟁에서 돌아오는 길에 몇몇 여인들이 했던 말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결국은 복수심에 불타 다윗을 죽이려고 하다가 결국 본인이 죽고 만다. 욕심에 집착하면 하나님의 생명에서 떨어진다.
둘째, 소망을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소망을 갖고 살아야 한다. 소망을 품고 살아갈 때 생명이 보존된다. 소망은 생기와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소망이 없는 이들은 나이에 관계없이 생기가 없으며 작은 어려움 앞에서도 힘겨워한다. 한편 소망을 갖고 늘 생기가 넘쳐흐르면 큰 어려움이 닥친다 해도 잘 견디어 낸다. 소망으로 충만해 있는 사람은 사소한 일로 흔들리지 않으며 큰 일 앞에서도 적극적인 태도로 살아간다.
셋째, 감사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하루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 갈 때 우리는 생명력 넘치는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나 걱정과 불만으로 가득차 있으면 우리의 정신과 영혼의 생명은 시들게 된다. 감사하는 사람은 생에 어떤 어려움이 닥쳐온다 해도 감사가 예방역할을 하기에 그 어려움에 압도되지 않는다.
참 생명 나누기 운동
필자의 가정에서 설날에 가족들이 모여서 추도예배를 드렸다. 제사문제로 갈등을 겪는 많은 가정처럼 우리 가정도 모든 형제들이 기꺼이 추도예배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설날에 차례를 지내는 일에 익숙한 형제들도 있었다. 아버님도 예수님믿고 하늘 나라의 부름을 받았고 먼저 떠난 동생도 예수믿고 천국에 소천했지만 권사님이신 어머니의 뜻도 추도예배를 원했지만 마지못해서 움직이는 동생도 있었다. 추도예배를 드린 후에 서로를 위해서 껴안아주기(hug)를 했다. 예수님 안에서 서로를 향한 사랑의 표현이었고 일 년 동안 가족, 형제들끼리 사랑하면서 살자는 다짐이었다. 예배 가운데 받은 생명을 나누는 너무나 감동적인 시간이었다.
형제로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서 성장했지만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고 이해관계가 얽히다보면 관계가 멀어지고 금이 갈 때도 있다. 이 때 서로를 향한 포응은 나의 자랑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그 모습 그 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아름다운 다짐이다.
1920년에 미국에서 버려진 유아(幼兒) 들이 영아원에 수용되자 마자 대다수가 죽어가는 점을 안타까워한 탈보츠박사는 버려진 유아들을 살리려하면 따뜻한 사랑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 보모들이 아기의 몸을 사랑으로 쓰다듬어 주는 스킨십이 필요하다고 했다. 뉴욕의 벨레트 병원이 탈보트 박사의 의견을 받아들여 보모들이 아기를 자주 안아주고 우유를 먹인 뒤부터 유아 치사율이 10% 미만으로 떨어졌다. 어린 아이들은 피부접촉이라는 사랑의 체험을 통해 생명력을 부여받았다. 이렇게 따스한 안아줌이 주는 생명의 효과가 크다.
버지니아 세터는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 네 번의 안아줌이 필요하며 그럭저럭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서는 하루에 여덟 번의 안아줌이 필요하고 풍요로운 삶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하루 열두 번의 안아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서로를 향한 아름다운 사랑의 나눔인 껴안기를 통한 스킨십은 상처치유의 특효약이다.
정광일
기다림의 영성 - 길 닦음의 영성
영성은 기다림이다. 영성은 하나님을 기다리는 영혼의 갈급함이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듯이(시 42:1),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듯이(시 130:6) 그렇게 애를 태우며 주님을 기다리는 그 기다림이 때로는 갈망으로 때로는 부르짖음으로 때로는 눈물 되어 흐르다가 골짜기를 메우고 또 흘러가면서 시편이라는 노래가 되었다. 이렇게 하나님을 찾는 마음은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일까? 일반적으로 사람이 자연(nature)을 본성(nature)으로 존재감을 찾는다면, 하나님의 사람들은 영혼(soul)을 그 본성으로 삼는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태초의 시공간에 하나님과 함께 있었던 아름다운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곧 동산의 추억이다. 에덴이라는 동산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한 삶을 잠시나마 누려본 경험을 우리 모두는 함께 공유하고 있다. 영혼이란 그 당시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이어 주었던 탯줄을 일컫는 말이 아닐까싶다. 그 탯줄을 통해 아담은 하나님과 마음껏 호흡했다. 아기가 자궁에서 탯줄을 통해 엄마의 생명을 공급 받듯이 아담과 하와는 <영혼의 탯줄>로 하나님의 숨과 생명을 공급 받았을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아있는 배꼽의 흔적처럼 끊겨진 자국을 보며 기억을 되살리는 일 그리고 그때의 아담처럼 한껏 하나님의 숨과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영혼의 탯줄을 복원하는 일, 곧 기다림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다린다고 말을 하지만 사실 기다림의 근거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린다기보다 나를 향해 다가온 것이라고 해야 맞는 말이 될 것이다. 밤하늘의 별을 본다고 하자. 눈에 보이는 그 별빛은 이미 수 천 년, 수 만 년 또는 수 억 만 년 전부터 엄청나게 빠른 빛의 속도로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는 어느 신학자의 표현대로 <기다리는 아버지>로 봄이 타당할 것이다. 집을 떠나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며 사는 아들이 어떻게 다시 돌아올 수 있었을까? 그 근거는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에게 있었다. “그는 일어나서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서, 달려가...” 표준 새 번역 15장 17절의 기록이다. 아버지는 다가오는 아들을 멀리에서부터 보고 계셨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았으면 어찌 아직 집으로부터 먼 거리에 있는 아들을 향해 달려갈 수 있었겠는가! 천리향의 풀 향기가 다가오듯 별 빛이 다가오듯 아버지의 사랑하는 그 애틋한 기다림은 향기 되고 빛이 되어 아들에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그렇다. 영성의 삶은 나를 기다리는 그 하나님을 나도 기다리는 그런 삶이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특별히 하나님을 기다려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영적 탯줄이 끊겨진 채로 살아가는데 익숙해져버렸기에 그렇다. 하나님 없이 산다는 것은 무신론적 실존의 삶을 뜻한다. 그 안에 살면서 그분의 존재와 그분의 임재를 거부하고자 하는 또 다른 힘이 내 안에 도사리고 있음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로마서 3장10절의 말씀대로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본래적 죄성(罪性)이다. 이 죄성에 대한 진지한 통찰 없이 하나님을 운운하는 것은 한낱 신성(神性) 콤플렉스(god-complex)의 발현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그분의 현존을 실감하며 그의 품에 안겨 그 사랑에 한 없이 감격스러워 하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따르겠다는 무릎 꿇는 자세로서의 기다림이 아니라면 그 같은 일은 종교적 자기만족이나 영적 도취로 그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죄인인 우리가 감히 하나님을 왜 뵙겠다는 것인가. 알현하여 무엇을 얻겠다는 말인가. 한낱 자랑거리를 위해서인가. 자기만족인가. 아니면 이기적 욕구충족? 하나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나의 의지를 그분께 드리겠다는 말이다. 나를 비우겠다는 것이다. 당신의 손으로 나를 다시 빚으라는 자기 포기의 선언이며 그분의 손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맡김이다. 곧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라는 선언이다. 하나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하늘에서 이루어진 그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그런 기다림이다. 세례 요한은 기다림의 새로운 차원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즉 메시아의 도래를 구체적으로 예비하라는 요청이다. 광야의 사람 세례 요한은 이사야의 글로 빈들에서 외쳤다.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길을 곧게 하여라”(마태 3:3). 길을 닦기 위해 깎아 내려야 할 언덕, 메워야 할 계곡, 거친 길, 험한 곳은 어디인가? 예루살렘 언덕인가 아니면 힌놈 골짜기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골짜기와 언덕은 모두 내 안에 있다. 닦아야 할 큰 길은 내 마음의 길이다. 두뇌의 쭈굴 쭈굴한 모양만큼이나 엄청나게 많은 높고 낮음의 굴곡, 사람의 마음도 꼭 같이 그렇게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한 시대의 객관적 가치나 자신의 주관적 가치가 기준이 되어 설정 된 높낮이다. 높은 것은 그만큼의 높은 가격으로 책정되어 삶을 지배하고 낮은 것은 그만큼 낮은 가격으로 책정되어 삶을 지배한다. 그것은 백화점의 가격표만큼이나 영향력 있게 우리의 살아가는 방향을 좌지우지 한다. 주어진 그 가치 그대로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새로운 길이 필요치 않다. 가던 길을 그대로 가는 것이 행복이고 성공이다. 다른 길을 가라는 이야기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의 말이 될 수도 있다. 새 길을 위해서는 깎아지고 메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봉우리를 깎아내려라, 골짜기를 메워라”는 요청이야말로 광야의 외침이다. 따뜻한 위로가 아니다. 세련된 설교가 아니다. 세상 잘 살아가도록 돕는 지혜의 설득도 아니다. 거칠고 쓴 소리이다. 듣기 싫은 소리 그래서 귀를 막아야 직성이 풀릴 그런 된 소리이다. 그 소리를 듣고 내가 죽든지 아니면 저를 죽이든지 해야 하는 무서운 소리가 바로 빈들의 올 곧은 소리 곧 야성(野聲)이다. 영성 수련을 하면서 느끼는 점은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초 작업을 단단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튀어나온 부분은 깎고 움푹 들어간 부분은 돋우는 작업이 만만치 않다. 교만의 자랑거리는 깎아주고 주눅 들어 제대로 피지 못한 부분은 기(氣)살려주어야 한다. 상처 입은 자리는 다시 살펴 같은 일에 상처를 또 받지 않도록 완치가 필요하다. 외부의 상처는 딱지가 떨어져 나감으로 치료되지만 마음의 상처는 같은 자리에 덧나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길을 잘 닦아 놓으면 우리 주님이 탄 기차는 씽씽 잘 달려 갈 수 있을 것이다. 영성 수련은 길 닦기이다. 그러나 길 닦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길은 다니기 위한 것, 이러저런 차들이 막힘없이 잘 다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문제제기, 비판, 충고, 지적(指摘) 등의 듣기 싫은 소리라 할지라도 이를 잘 수용하고 자신의 양식으로 삼는 이라면 그의 영성은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시절을 따라 과실을 잘 맺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로부터 처음 전해들은 <가락재>라는 곳을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으로 알고 거기에 사람이 살만한 집을 지으려 했을 때 가장 시급한 일은 길을 내는 일이었다. 아랫마을 사람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오래 전부터 경운기 한 대 겨우 지나 갈만한 길은 만들어져 있었다. 그러나 서넛의 개울을 지나가야 했기에 여름 장마에 소나기 몇 번 오면 쉽게 망가져버리곤 하였다. 길을 닦아야 했다. 집지을 자재를 나를 트럭이 다닐 수 있도록 큰 길을 만들어야 했다. 좁고 험한 길을 넓히고 포장된 대로를 만들기까지는 10여년의 세월이 걸렸다. 집을 안칠 터를 닦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가파른 계곡은 좀처럼 사람 살기에 적당한 품을 내놓지 않았다. 위의 흙은 긁어내려야 했고 개울가로는 돌로 축대를 쌓아 올리고는 그 안에 많은 양의 흙을 퍼부어야 했다. 야생의 땅에 길을 내고 집을 지어보니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집을 짓는 일 보다 토목공사가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일인지를. 세례 요한의 <길 닦음의 영성>은 토목공사에 대한 것이다. 멋진 집에 예쁜 실내 장식에 앞서 튼튼하고 오래 갈 집을 위해서 필요한 ‘뒤집어엎음’에 대한 것이다. 길을 새로 내고 집을 새로 짓기 위해서는 이 엄청난 작업이 선행 되어야 한다. 내가 몸담고 있는 <가락재 영성원> 주위를 아름답게 꾸며주고 있는 꽤 많은 돌들은 이 ‘뒤집어엎기’의 작업 그 결과물들이다. 수 백 년, 수 천 년 아니 그 이상의 세월동안 땅에 깊이 묻힌 것들을 파헤치는 일이 어찌 쉽겠는가? 골짜기를 흐르는 물에, 진흙 밭에, 돌에, 너무 힘들다고 일하던 사람들이 모두 가버리기도 했다. 포크레인이 망가지기도 했으니까. 그래도 어려웠지만 파 놓은 돌들은 효자 노릇 단단히 한다. 어떤 이는 값으로 매겨가며 어찌나 탐을 내던지 “아니 ‘최영 장군은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 고 했는데 돌을 황금같이 여기시다니요” 주위 사람으로부터 한 마디 들었다. 주님을 만나고 그분을 영접해 드리고 그분이 쌩쌩 다닐 수 있도록 철로를 깔기 위해서는 먼저 세례 요한의 <길 닦음의 영성>이 필요하다. 내 마음이 그렇게 시원하게 뚫리기 위해서는 수 십 년의 세월동안 이렇게 또 저렇게 응어리져 돌처럼 딱딱해져버린 덩어리들이 몸 밖으로 나와 푸른 하늘 아래서 햇살을 쪼여야 한다. 가장 간단한 암 치료법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높은 온도의 열만 쬐여도 암 세포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다. 암(癌)은 암(暗)적 존재이기에 그렇다. 우리의 마음 안에, 우리의 영혼 안에 오랜 세월 어두운 곳에서 자라 돌덩이만큼 딱딱하게 굳은 이 암(癌,暗)덩어리들로 치료의 광선을 받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뒤집어엎는 일이다. 영성은 <뒤집어엎기>이다.
치유목회칼럼 6 나의 치유목회 한영수목사
참으로 속상한 일
몇 해 전 신문에 이런 내용이 보도된 일이 있다. 자신의 부인을 처벌해달라는 어느 남편의 이야기이다. 동갑인 줄 알고 만나 7년이나 함께 살면서 아들을 두 명이나 낳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부인의 이름은 가명이었고, 나이는 12살이나 많았고, 최근에 자신도 모르게 카드로 2억 4천만원을 사용하고 잠적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기가 막힌 사연이다. 우리 모두는 지금까지 세상을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에게 속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때 기분이 어떠했는가? 속이 몹시 상하고 분개했을 것이다.
저에게도 속고 마음이 상한 경험이 있다. 특별히 목회하면서 여러 번 있었는데, 그 중에 생각나는 사건이 있다. 평일인 어느 날 인상도 좋고 말쑥한 차림의 젊은 부부가 찾아와서 교회에 등록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속으로 내심 좋게 생각했다. 그런데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더니 자신들이 겪은 이야기를 쭉 했다. 부인이 주로 이야기를 했는데, 남편이 운영하던 사업이 부도가 나서 객지인 부산에 오게 된 이야기, 그 과정에서 겪었던 인간적인 수모, 어려운 바닥 생활 이야기, 그리고 자신은 지금 임신 중인데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힘들었던 이야기 등도 이야기 했다. 그러면서 고향에 있는 친정집을 다녀와야 하는데 차비가 없다고 하면서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했다. 남편이 지금 일을 시작했는데 곧 월급을 받으면 갚겠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순진하게 저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선뜻 돈을 건네주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 그 젊은 부부는 나타나지 않았다. 제 앞에서 완전히 연기를 한 것이다. 그때 제 마음은 참으로 씁쓸했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달리 보게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속고 사는 것 보다는 자신에게 속고 사는 일이 훨씬 많다는 사실이다. 속는 문제 하면 다른 사람이 나를 속이는 것만 생각하는데, 아니다. 사실은 내가 나에게 속고 사는 경우가 훨씬 많다. 생각하면 이것은 참으로 속상한 일이다. 우리가 이 점을 까맣게 모르고 살아서 그렇지, 실제는 그렇다. 우리의 불행은 상당부분 내가 나 자신에게 속는데서 오는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일 나 자신에게 속고 사는 일이 줄어든다면 우리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풍요로울 것이다.
우리 중에 어떤 사람들은 문제가 생겼다 하면 남에게 탓을 돌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경우가 바로 자신에게 속고 사는 경우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 툭하면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사실 내 안에 그런 기질이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쉽게 화를 내고 분노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내면에 미해결된 상처와 분노가 많기 때문에 남을 탓하고 쉽게 화를 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 속에 있는 가득한 화와 분노가 겉으로 나온 것에 불과한 것이다.
예수님의 경우는 어떤가?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을 보면서 흥분하고 화를 내고 원망하지 아니했다. 오히려 하나님께 저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셨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다른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한다고 다 화를 내고 분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얼마든지 넉넉한 방법으로 대처하고 화를 내지 않을 수도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한 해가 가고 새해가 밝았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정작 나 자신에게 속고 사는 일은 없는지 돌아보고 새해를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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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버지가 훌륭한 교육자가 될 필요는 없다. 중요한 일은 아이에게 삶의 행로를 제대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 떳떳하게 산 인생임을 보여주면 족하다.
<레오 버스카글리아>
평범한 스승은 말하고 , 좋은 스승은 설명하고, 뛰어난 스승은 모범을 보이고, 위대한 스승은 감화를 준다. <중용>
만약 눈없이 햇빛을 본다면 눈부심보다는 먼저 따뜻함을, 꽃을 보면 아름다움보다 먼저 향기를 얼굴을 보면 인상보다 먼저 마음을 느낄 것입니다. 세상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권대웅>
문형욱
2012년이 힘차게 시작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청년들이 2012년 목표가 '결혼하기' 라고 말합니다. 결혼은 인생에서의 터닝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소중한 일입니다. 나이가 되어서… 남들이 하니까… 결혼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결혼을 허락하신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께 영광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2012년, 여러분들도 결혼이 가장 중요한 목표이신가요? 진실로 행복한 결혼을 원하십니까?
행복한 결혼을 위해 여러분들이 준비해야 할 '결혼의 사칙연산'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 - 빼기” 입니다. 내가 지금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 빼야 할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셔야 합니다. 자존심, 교만함, 게으름, 이기적인 사고, 세상적인 생각, 등.. 내가 먼저 빼야 할 것을 찾고 한 가지씩 내려놓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 + 더하기” 입니다. 행복한 결혼을 위해 갖추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부족한 부분으로서 보완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살피고 노력하셔야 합니다. 자존감, 긍휼함, 생활력, 긍정적 생각, 건강, 이성을 보는 관점 등을 보완하셔야 합니다.
세 번째는 “ x 곱하기” 입니다.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내 마음에 사랑을 곱하기로 키워 놓으셔야 합니다. 사랑은 따뜻한 마음, 열정, 헌신을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곱하기를 할 때 예수님의 마음으로 배우자를 볼 수 있습니다.
네 번째는 “ / 나누기” 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나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마음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을 때 우리는 친밀감을 느끼며 더욱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물질로도 나눌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며, 나의 달란트도 함께 나눌 수 있을 때 하나님의 아름다운 가정이 더욱 확장 되지 않을까요? 배우자를 위해 어떤 누군가와의 만남을 중요시 하는 것 보다는 내가 훈련 받는다는 생각으로 준비하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한동안 인터넷에 많이 나오던 축구선수 박지성의 발과 발레리나 강수지씨의 발의 모양을 기억하시는 지요? 성공한 사람일수록 많은 훈련을 합니다.
아름다운 결혼생활로 골인하기 위해 지금부터 여러분들은 훈련을 하셔야 합니다.
훈련을 게을리 한다면 운이 좋아 반짝 스타가 될 수는 있지만 거의 모두가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2012년 크리스천 청년분들!! 실전을 준비할 수 있는 귀한 시간 되기를 기도합니다.
엘림상담실 이야기 5
상담기술훈련을 공부하면서 -- 이정이 목사
2012년, 새해,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기를 원하던 중, “마음치유 가족치유” 책을 집필하신 김영근 목사님 생각이 났다. 약 10년 전, 신대원 수업에서 이 책을 교재로 매 주마다 한 단원씩 읽고 A4용지에 반면은 책을 요약하고, 반면은 이 책의 내용을 자신에게 접목시켜 리포트를 쓰면서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고 지냈던 나에 대한 많은 것을 알도록 도움을 준 책이었다. 새해를 시작하며 이제 막 결혼생활을 시작한 자매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어서 서점에 갔더니 이 책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책을 구입할 수 있을까 하며, 혹시나 하고 검색창에 김영근 목사님이라고 썼더니 ❛가족치유 상담연구원❜이 뜨면서 1월 3일-6일(화-금)오전10-4시 ❛집단4기 주제 감수성계발 프로그램❜을 발견하게 되었다. 프로그램에 대해 알고 싶어 목사님께 전화를 했더니 목사님께서 인원에 관계없이 프로그램을 진행하실 것이라고 하셨다. 본래 이 코스는 일주일에 한번, 8회에 걸쳐서 실시하는 2개월 코스인데, 지방에 있는 사람으로서 이번 기회가 찬스인 것 같아서 모든 걸림돌들을 뒤로 하고 종로5가 기독교회관을 찾아갔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이 편안함으로 대해주시는 목사님께 안도하며 상담기술훈련. 감수성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마침 지난 학기에 사회복지 대학원 수업에서 가족치료 이론 공부를 하였는데 감수성 계발 훈련을 통해 이론을 실제적으로 적용하여 상담실습을 하는 기회가 되었다. 관심기울이기에서 경청의 방법, 경청의 연습, 공감하기 훈련, 공감적 반응의 연습, 자기노출반응의 연습, 피이드백 주고받기, 맞닥뜨림 반응연습, 내담자의 말 속에 깔려있는 혼동되고 갈등적인 느낌을 가려내어 분명하게 하는 기술인 명료화하기, 요약하기, 해석하기, 질문하기 등 그동안 실습의 기회는 별로 없었던 나에게 이번 기회는 나의 내면도 들여다보고 상담기술도 배우고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하여 명료화하고 내담자의 말을 듣고 요약하는 기술을 연습, 질문하기를 훈련하는 시간이 되었으며 실제적으로 집단상담 인도자로서 훈련받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특히 훈련 중에 목사님께서 요즘 학교폭력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이들의 문제에 대해 각 가정의 아이들이 좋은 이야기는 부모에게 말하기 어려워하지 않는데 좋지 않은 이야기는 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하시면서 만일 자살한 친구의 부모가 아이로부터 그 문제에 대해 알았다면 도움을 줄 수 있었을 문제였는데 아이들이 부모에게 좋지 않은 말을 하는 것이 평소에 훈련되지 않았음으로 끝내 부모에게 말하지 못하고 참고 참다가 끝내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하셨다.
부모는 아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성장기에 친구들 간에 왕따를 당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조롱을 당하더라도 ❛너는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하는 아들이고 딸❜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자녀들에게 주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가족 간에는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으면 따돌림을 받는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가족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공감이 되었다.
수년간 여러 대학에서 학생들을 교육하시고 책을 집필하시고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람들도 상처난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의 내면의 특성과 오늘 우리의 모습을 비교하며 스스로에게 용기를 가지도록 도우시는 목사님의 다음 프로그램을 기대하며 가족치유상담연구원이 더욱 많은 이들의 마음을 치유하여 문제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는 기관이 되기를 소망한다.
김은섭
포대에서 보내는 글
"이곳이 내 집이다~! 내 목숨 건 곳~! 끝없이 펼쳐지는 보라매의 꿈~!" 동기들과 함께 좌우 반동을 주면서 군가를 부르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군대에서도 눈물의 원칙이 있다. 부모님의 편지를 받고 울거나 교회 예배 때 우는 건 용납이 되지만, 군가를 부르면서 눈물을 보이는 것은 왠지 쪽팔리는 일이다. 그래서 억지로 힘들게 눈물을 삼켰다. 주님의 예기치 못한 은혜는 가끔 그분의 자녀들을 당황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이전의 삶이 행복했던 사람이 삭막한 군대라는 조직에서의 생활을 시작할 때는 더 할 것이다. 왠지 걱정되기도 하고 삼년의 시간이 막막하기도 하다. 이전의 삶과 사람들이 그립고, 미련이 남는다. 그리고 그저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든다. 이런 나에게 주님은 다른 마음을 주셨다. 나의 본향은 내가 4년 간 뜨겁게 주님을 만났던 선교단체가 아니며, 24년 간 나를 사랑으로 키워주신 부모님도 아니라는 것이다. 내 본향은 하늘이며, 나의 소원도 그 곳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금 어디에 어떤 사람들과 무엇을 하고 있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이런 묵상을 하고 있는데, 함께 부르는 군가가 마치 찬송가 같았다. 주님께서 이제는 여기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여기 군대에서 아버지를 사랑하고, 영혼들을 사랑하라고 하시는 것처럼 군가가 들렸다. 나의 목적과 삶의 이유가 분명해졌다. 나는 주님께서 부르신 이곳에 내 열정과 눈물을 쏟아야 한다. 다른 곳이 아니다. 주님께서 나의 마음을 바꿔주신 뒤로는 평안이 찾아왔다. 의욕이 생기고, 새까만 군인 동기들이 왠지 사랑스럽다. 그리고 내가 놓치고 있던 행복들과 감사의 제목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는 시간에 사랑하는 삶에 많은 문제의 해결이 있는 것 같다. "주님 여기가 내 집이네요. 이곳에서 이전 보다 더욱 뜨겁게 주님과 사랑하기를 소원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김하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수십 가지나 된다. 호모사피엔스, 호모이렉투스, 호모파브리스(Homo fabris 도구적 인간), 호모루덴스(Homo ludens, 유희적 인간) 등등. 그런데 최근에는 호모 리시오(Homo risio, 웃는 인간)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박사 개그맨인 이윤석은 ‘이윤석의 웃기지 않는 과학책’이라는 책에서 ‘웃음은 불안 뒤의 안심에서 나왔다’고 주장한다. 인류 최초의 웃음은 인간이 포식자를 만났을 때 불안으로 안면근육을 잔뜩 긴장시켰다가 알고 보니 그것이 사소한 것임을 깨닫고 근육을 누그러뜨리는 순간, 폭발적으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것이 웃음의 빅뱅(big bang)이다. 인간의 웃음이 불안의 공포에서 긴장된 근육을 펴는 과정에서 탄생했다는 것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마치 아름다운 진주가 조갯살을 찢는 아픔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탄생하듯, 진정한 웃음은 불안과 고통 속에서 탄생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웃음 종류는 다양하다. 거짓 웃음인 가소(假笑)와 애교 있는 웃음인 교소(巧笑)가 있고, 쌀쌀한 웃음인 냉소(冷笑)가 있는가 하면, 큰 소리를 내는 웃음인 홍소(哄笑)가 있다. 그렇다면 웃음 중에 가장 아름다운 웃음은 무엇일까? 그것은 안면근육을 부드럽게 움직여 웃는 미소(微笑)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이 미소조차도 고통 속에서 피어날 때 가장 아름답다. 구로공단의 입구에 뇌성마비로 휠체어를 타고 살아야 하는 한 소녀가 살고 있었다. 소녀는 자신의 일그러진 모습 때문에 밖으로 일절 출입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소녀는 휠체어를 타고 집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근로자들이 공단으로 물밀듯이 밀려오는 출근시간 한 시간 동안 소녀는 사람들에게 미소를 머금고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소녀는 미소만이 자신이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사람들은 소녀의 미소를 의아하게 생각했으나 차츰 소녀의 친절한 마음을 이해하고, 미소에 미소로 화답했고, 출근길의 근로자들은 소녀와 인사를 주고받는 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소녀는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사람들은 소녀의 무덤을 찾아 다음과 같은 글귀를 새긴 작은 묘비를 하나 세웠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 여기에 잠들다.’ 또 하나의 아름다운 미소를 소개하면, 제28회 아테네 올림픽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라톤경기에서 피어난 웃음을 잊을 수 없다. 브라질의 반데를레이 리마 선수는 처음부터 30km 후반까지 줄곧 선두로 달리고 있어, 가장 강력한 금메달 후보였다. 그런데 결승점을 5km 정도 남겨둔 지점에서 갑자기 리마는 스페인 전통 복장을 입은 한 괴한에게 습격당해 도로 밖으로 나뒹굴어지고 말았다. 이 황당한 사건으로 리마의 페이스가 급격히 흐트러지면서 뒤따라오던 이탈리아 선수와 미국선수에게 잇달아 추월을 허용하고 말았다. 불의의 피습을 당해 다 이긴 자리를 내준 리마는 달리면서도 굉장히 화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 결승점을 통과할 때 두 팔을 벌리며 환한 미소로 들어와 수많은 관중들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분노와 통한의 눈물로 땅을 칠 상황에서 오히려 웃음으로 화답한 리마의 미소는 자칫 오점으로 얼룩질 수 있는 올림픽을 살리고, 전 세계에 감동을 줌으로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로 기억됐다. 요즘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웃을 일이 콩알 반쪽 만큼도 없다. 자고 일어나면 연이어 터지는 특대형 부패사건, 치솟는 물가, 이익집단 간의 이전투구의 싸움이 우리의 안면 근육을 뒤틀리게 만든다. 그러나 진정 아름다운 웃음은 진흙탕에서 피어난 연꽃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피워 올리는 웃음일 것이다. 최재천 교수에 따르면 인생 80년에서 잠자는 데 26년, 일하는 데 21년, 밥 먹고 사람을 기다리는 데 각각 6년씩 보내지만, 웃는 데에는 고작 22시간 3분을 보낸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 오늘 한번 나의 것으로 만들어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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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 마라톤치유집단상담>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일시: 3월 23일(금)저녁 7시-24일(토) 저녁 7시, 장소;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
주제: <더 깊은 샘파기> 인도자: 김영근 원장과 김희라 상담실장
회비: 15만원 등록: 농협121015-52-049140 김영근
참가대상: 관심있는 모든 크리스천, 교회섬김이, 상담실습생 및 집단상담전공자
가족치유상담연구원 상담 • 교육프로그램 안내
<상담교육>
상담전문가로 임상을 경험하고 유능한 상담자로서 훈련받는 상담교육과정이다.
* 상담아카데미 4기 • 주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MBTI, 자기발견, 타인수용>
• 일시: 3월6일-4월24일(매주 화, 8회) 오전10:30-12:30.
* 상담아카데미5기 • 주제: 하나님의 다림줄<건강한 크리스천인격계발>
• 일시: 3월6일-4월24일(매주 화, 8회) 오후2시-4시.
<개인상담>
사전전화예약한 후에 상담을 진행합니다. 지역교회의 위탁상담을 환영합니다. * 개인상담예약 02-3675-7368, 010-3290-1007, 유료상담. 상담원: 3명
<집단상담>
만남과 나눔을 통해 함께 치유와 회복을 찾아가는 소그룹 치유공동체모임
* 집단5기, 주제: 하나님의다림줄, 일시: 3월8일-4월26일(목,8회) 오전10:30-12:30.
* 집단6기, 주제: 하나님의다림줄 일시: 3월7일-4월25일(수,8회) 오전10:30-12:30.
<목민독서교실>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 저녁에 읽은 책을 함께 나누는 식사를 겸한 독서치유모임
* 2월 모임: 2월 23일 저녁7시-9시 도서: 헨리 나우웬 •『영적인 발돋움』
* 3월 모임: 3월 29일 저녁7시-9시 도서: 송인규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서』
<국내세미나>
* 용천노회 청지기대학: 2012. 2월13일, <주제: 청지기자가치유>·창동염광교회
<해외교육선교>
* 중국가정지도자상담교육 2012년 2월 6일-11일(월-토) 중국 온주지역.
<교회초청 세미나 • 집회인도를 실시합니다.>
* 구역장(목자)• 교회학교교사 세미나: 상담기술훈련, 대화법훈련, 감수성훈련
* 교회집회: 쓴뿌리치유, 전인치유, 가정사역부흥회, 부부행복학교
아름다운 인생을 위한
가족치유상담연구원
구정 명절은 잘 보내셨는지요? 가족들과의 만남은 소중한 것 같습니다. 1월 초에 실시한 상담기술훈련에 관한 집중강의에 참석했던 목사님 한 분은 부산 장신대 신대원에서 저에게 배웠던 제자분인데 특별한 만남이었습니다. 제가 상담기술훈련은 가르쳤지만 깊은 인생을 배우는 기회였습니다. 12월 말에 처음 시작한 독서치유모임은 1월 26일(목) 저녁에 송봉모의 책『상처와 용서』를 가지고 했습니다. 너무나 좋은 책나눔 모임이 되었고 2월 23일(목)의 2월 모임도 기대가 됩니다.
3월 셋째 주 3월 23일(금) 저녁부터 24일(토)까지 1박 2일로 한국교회백주년 기념관에서 제 1회 마라톤치유상담모임을 갖습니다. 이 모임은 연속 10회기(1회 70분)로 진행되는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는 <깊은 샘파기>영성치유모임입니다. 가족치유상담연구원을 다녀가신 모든 분들이 행복하고 감사한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우리들의 겉사람은 낡아지지만 낡아지지 않는 것은 사람들끼리의 사랑과 나눔입니다. 저희 쪽지인 <예수사랑, 가족사랑> 2월호에도 여러분들의 글들을 실었는데 이 공간이 아름다운 소통과 사랑의 공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러 교회와 개인들이 저희 연구원의 후원자로 참여해서 감사합니다. 저희 상담연구원은 여러분의 좋은 협력기관으로 돕는 자로서 신실하게 섬김을 감당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를 사랑 하며 예수님과 함께 길가는 자의 행복을 빕니다. <김영근>
I 가족치유상담 연구원의 사역 I
► 가정회복중보기도(기도사역) ► 엘림상담실(개인상담•집단상담)
► 지역교회위탁상담(협력사역) ► 치유상담아카데미(상담교육)
► 다문화가정상담(긍휼사역) ► 중국교회지도자상담교육(교육선교)
► 목민독서교실(독서치료) ► 월간쪽지<예수사랑•가족사랑>발행(문서사역)
► 구역장•교사상담기술훈련(훈련사역) ► 교회집회•세미나인도(쓴뿌리치유, 전인치유)
주소: 종로구 연지동 136-46 기독교회관 504호 / 02-3675-7368, (fax)7369
원장: 김영근목사: 010-3290-1007 상담실장: 010-3219-1097
Cafe.Daum.net/familytherapy0191(daum 다음 카페→가족치유상담연구원)
메일 noksanlove@hanmail.net/ 후원계좌: 농협351-0355-2650-43 김영근
찾아오는 길: 종로5가역 2번출구 대학로 방향 200M⟶ 한국기독교회관 5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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