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글자 한 자의 위력
심 영 희
문자는 일상에서 말만큼 많이 쓰인다. 강사라는 직업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말을 많이 해야 하는 반면 문인들은 말보다 글을 더 많이 쓰거나 말과 글을 비슷하게 사용한다. 화가와 그림을 그리는 사람, 서예가와 붓글씨를 쓰는 사람, 문인 또는 글을 쓰는 사람,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지만 따지고 보면 큰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예술계에는 작가란 명칭이 있다. 문인들을 예를 든다면 어떠한 경로를 통하든지 등단이란 절차를 밟아야 비로소 작가가 된다. 더러는 등단이란 절차 없이 책을 출간하면 그 분야의 작가로 인정을 해주기도 한다. 또 그림이나 서예 공예와 같은 예술은 공모전을 통해 정해진 점수를 획득해야만 비로서 작가란 명칭을 얻게 된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작’자 한자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수필을 쓰던 사람이 어느 날 수필작가가 되고 시를 쓰던 이가 ‘시인’이 되고 소설을 쓰던 사람이 멋진 소설작가로 변모해 있다. 서예작가가 되기 위해 밤낮 묵향에 취해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화가가 되기 위해 수없이 풀어버린 그림물감이 강물을 만들고도 남을 것이다. ‘작’자 한자를 얻기 위해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사람들 틈에 나도 한몫하고 있다. 학창시절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던 터라 별로 힘들이지 않고 중년에 수필작가란 직함을 얻었지만 거기에 만족할 수는 없었다.
또 수필작가라고 해서 매일 수필만 쓸 수도 없는 일이다. 사람이 매일 쌀밥만 먹으면 질리기 때문에 잡곡밥도 해먹고 콩밥 팥밥도 해먹으면서 쌀밥에 더 큰 비중을 두듯이 문인들도 다른 장르의 문학이나 다른 분야의 예술을 즐기되 자기 전공분야에 큰 비중을 둘뿐이다. 문인이라고 해서 매일 글을 쓰고 읽는다는 것이 쉽지도 않지만 재미도 없을 것이다. 가끔씩 주위에 심심하다고 말하는 문인이 있을 때 나는 서슴없이 무엇이든 한가지만 더 하라고 권한다.
나 자신도 취미로 그림도 그리고 붓글씨도 쓰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취미에 머물러있다. 이렇게 취미로 서예와 그림을 그리다 버리는 화선지가 아까워 그 종이와 밀가루 풀을 이용하여 여러 가지 작품을 만들다 보니 한지공예 매력에 흠뻑 빠져 춘천에서 서울을 오가며 한지공예를 배워 사범자격증을 취득하였다. 그 후 한지공예가가 되었다고 정말 열심히 작품을 만들었다. 재미 또한 대단했다. 그러나 문학회를 위해 일거리 많은 사무국장도 하고 책임감 있는 회장도 하다 보니 시간은 거의 문학회에 할애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작’자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작’자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나는 그래 한지공예가 보다는 한지공예작가가 더 좋으니 도전해 보기로 마음먹고 회갑을 넘긴 나이에 ‘작’자에 도전하고 있다. 언제 한지공예작가가 될지는 모르지만 계속 도전할 생각이다. 작품 가지고 다닐 일을 생각해 전국공모전이지만 강원도에서 개최하는 두 곳에만 작품을 내기로 정하고 지난해와 올해 약간의 성과를 거두었다.
강릉에서 열리는 ‘대한민국강릉단오서화대전’과 원주에서 열리는’대한민국한지대전’인데 두 곳 모두 만만치 않다. 전국 공모전인데다 강릉은 말 그대로 서화대전이라 그림과 서예가 우선이고 공예는 그 뒤이다 게다가 다른 공예부문은 크기도 1m이내인데 비해 한지공예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크기도 고작 60cm이내니 큰 작품은 낼 수도 없다. 똑 같은 작품이라면 큰 작품이 훨씬 좋아 보인다. 또 원주에서 열리는 한지대전에는 그 동안 작가가 된 사람을 빼고는 한지공예전문가들이 불을 켜고 덤벼들기 때문에 좋은 상을 타기는 정말 힘들다.
다행히 수필작가라는 타이틀이 있으니 한지공예작가는 서둘지 않고 즐기며 참여하고 있다. 늘 행사에서 사진을 잘 찍어주는 문학회 회원이 동인지 표지사진도 제공해 주었다. 그것도 문학회 어려운 재정을 생각해 무료로 제공해 주었으니 정말 고맙고 감사한 마음에 책 날개에다 『표지 사진 : 이름을 쓰고 수필가, 사진작가』하고 써넣었는데 교정을 보려고 펼치자 ‘수필가, 사진가’이렇게 나와있기에 당연히 출판사에서 잘못한 줄 알고 또 사진작가라 썼는데 두 번째 교정지를 보니 다시 ‘사진가’로 되어있었다.
그때서야 아차 하고 생각이 났다. 공모전에 사진을 내서 점수를 딴 작가가 아니고 그냥 사진을 즐겨 찍고 그룹 전을 하는 사진가라는 것을 같이 교정을 보면서 말없이 슬그머니 본인이 ‘작’자를 빼냈던 것이다. 이처럼 ‘작’자는 아무데나 붙이는 게 아니구나 하는 것을 다시 느끼게 했다. 그런데 ‘사진가’라는 말 자체는 좀 생소했다. 흔히 듣던 수필가 소설가 화가 서예가 공예가가 아닌 사진가 어색했지만 자꾸 떠올려보았다. 수필가처럼 부드럽지는 않아도 사진가도 말은 되었다.
사진작가에서 슬며시 작자를 뺐듯이 한지공예작가에서 ‘작’자를 슬그머니 빼는 일이 없도록 “작’자 한자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작’자 한자가 주는 의미는 전문가냐 비전문가냐 하는 크나큰 차이를 말해주고 있으니 ‘작’자의 위력을 다시 한번 느끼며 한지공예 작품을 부지런히 만들어 내년에도 ‘작’자에 도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