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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면서
지난 4월 8일 저녁, 퇴근 인파가 밀려들어오는 서울 시청역 입구에 작은 책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무슨 캠페인을 위한 팸플릿 같은데, 지하철 앞의 무료신문처럼 너도나도 한 권씩 집어 들기에 하나 챙겼다. 뒷면에 “정가 700원”이라고 표시된 “한반도 대운하” 홍보책자였다. 사진과 만화를 곁들인 책자는 선동 투의 언어로 일관하는데, 출판사와 출판 시기는 아리송하다. 다만 저자는 서울시 중구 장충동1가에 사무실을 둔 ‘선진한국을 위한 정책캠페인’으로 보인다. 제목이 《대운하 바로 알기》인 책자를 잡아든 누구도 700원을 내지 않았고, 받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현재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홍보기획을 담당하는 추부길 비서관이 올 1월에 내놓은 《운하야 놀자》를 상당 부분 인용 언급 없이 발췌한 《대운하 바로 알기》는 ‘한반도 대운하’가 무엇인지 정의하며 페이지를 연다.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경부운하, 영산강과 새만금을 잇는 호남운하 및 새만금운하, 금강을 중심으로 한 충청운하 등 12개의 남한 운하와 평양과 개성을 잇는 평개운하, 평양과 원산을 잇는 평원운하 등 5개의 북한 운하 전체를 망라하는 3100킬로미터의 17개 운하를 합한 것”이라는 것이다.
사실 경부운하는 이명박 정부가 최초로 주장한 건 아니다. 세종대학교 산하 세종연구원의 주명건 전 이사장과 관련 연구자들이 1995년부터 경부운하를 주장해왔으며 경부운하와 더불어 시화호와 한강을 잇는 경안운하도 촉구한 바 있다.1) 준설한 수로와 터널로 운하를 건설하고 건설비는 골재 판매로 충당할 수 있으며 운하가 건설되면 물류비가 획기적으로 줄고 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은 이명박 정부가 현재 내세우는 한반도 대운하와 내용이 아주 비슷하다. 다만 다른 것은 당시 주명건 이사장의 주장에 대해 실현 불가능하다고 코웃음 쳤던 많은 지식인들이 시방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병욱 환경부차관은 지난 4월 1일, 출입기자들과 만나 “대운하의 물동량이 적을 것이라고 지적하는데 경영학적 측면에서 보아, 적으면 많게 만들면 되는 것”으로 말해 구설수에 올랐다. 문제는 그런 지식인이 갑자기 많아졌다는 거다. 유력한 정치인이 나서자 경부운하가 지구온난화를 극복하는 환경 친화적 물류 수단으로 갑자기 개과천선한 이유는 무엇일까. 해바라기처럼 권력을 향해 도열하는 지식인을 보고 사회적 약자를 위해 행동하라고 사르트르는 당부했지만, 선비정신을 잊은 우리의 지식인을 보면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2) 경부운하를 들어다 볼수록 느닷없이 경인운하에 경제성 있다며 보고서를 고쳐 쓴 당시 건설교통부 산하 연구소의 속사정이 새삼스레 궁금해진다.
강은 생명을 이어주는 길
강은 단순한 물길이 아니다. 좌우와 바닥까지 콘크리트로 처리해 단장한 청계천과 같은 배수로는 더욱 아니다. 강은 생명이다. 대지에 영양을 제공하는 혈관과 같은 존재다. 산을 넘지 못하는 강은 대지를 굽이쳐 흐르며 상류에서 하류, 좌에서 우, 바닥에서 땅속, 그리고 역사와 문화를 연결하며 생태계를 이어준다. 굽이치며 만들어낸 모래와 자갈밭, 폭포와 깊은 소, 바위 사이에서 휘몰아치는 여울과 수면이 넓은 잔잔한 강에 이르기까지, 그 안에 깃든 다양한 생물들이 오랜 세월 어우러졌다. 그 덕분에 생태계의 일원인 사람도 생명과 문화와 역사를 건강하게 이어올 수 있었다.
강의 폭은 넓다. 하지만 평상시 물이 흐르는 면적은 좁다. 물이 흐르는 지점에서 강둑까지 넓게 이어지는 추이대(推移帶)에는 강변의 습지에서 초원으로, 초원에서 강둑 너머 관목 숲으로 생태계를 이어주며 강변은 자연스럽게 주변 산록의 교목 숲과 연결된다. 자갈에 붙은 이끼를 먹는 수서곤충은 개구리나 새의 먹이가 되고, 습지에서 먹이를 찾던 새가 낳은 알은 추이대를 지나다니던 누룩뱀이 즐겨 먹는다. 뱀은 족제비나 오소리의 먹이가 되고, 오소리 새끼는 말똥가리가 낚아챌 것이다. 이렇듯 습지에 사는 동식물은 추이대를 사이로 깊은 산의 동식물 생장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물이 흐르는 강이 있으므로 좌우의 생태계는 언제나 건강하다.
산록을 적신 빗물은 바위틈과 낙엽 사이를 고였다 흐르며 옆새우와 도롱뇽의 서식처를 제공하고, 커다란 바위를 휘도는 계곡에서 만나 소로 모여든다. 거기는 버들치와 열목어의 터전이다. 좁은 계곡의 갯버들에 앉아 버들치를 노리는 물총새와 물까마귀는 모래와 자갈이 깔려 탁 트인 중류에 모습을 쉬 드러내지 않고, 쉬리와 모래무지, 쏘가리와 대농갱이는 강 중류를 서성이는 수달을 밤에, 해오라기를 낮에 조심해야 한다. 중류와 부드럽게 이어지는 하류에도 다양한 생물이 어우러진다. 얼음이 풀리기 무섭게 왜가리와 백로는 강어귀에 자리를 잡고 긴 발로 강 가장자리를 성큼성큼 걷는다. 무리지어 다니는 붕어와 잉어를 순간 낚아챈다. 바다로 이어지는 하구는 겨울에 오리 떼와 봄과 가을로 도요새 물떼새가 모여들어 게나 갯지렁이를 연실 집어삼키는 곳이다. 봄이면 뱀장어 암컷, 가을이면 연어 떼를 만날 수 있다. 산꼭대기에서 멀지 않은 샘에서 기원하는 강은 그렇게 수많은 생물을 거느리며 바다로 바다로 이어진다.
강물은 주변의 습지와 항상 연결돼 있다. 강으로 들어온 물이 모두 바다로 나가는 건 아니다. 일부는 증발하지만 많은 물은 땅속으로 들어간다. 강물의 높이는 인근 마을 우물의 물 높이에 영향을 주고 논에 물이 배어나오게 한다. 극심한 가뭄으로 강물이 바싹 마르면 우물도 마르고 논도 타들어간다. 물고기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비가 내려 강물이 다시 흐르면 강바닥 축축한 곳에 숨죽이던 물고기가 나타나 강이 땅속과 연결되었다는 걸 잘 증명한다. 만일 강바닥에 비닐을 깔아 방수 처리한다면? 강의 생태계는 그만큼 손상될 것이다. 생물이 사라진 만큼 자정능력도 무너질 것이다.
강은 시간과 연결돼 있다. 봄에 올라온 실뱀장어 암컷은 중상류로 올라 몇 년을 보내다 길이와 대가리가 커질 만큼 커진 가을에 강어귀로 내려간다. 기다리던 수컷과 만나 알을 낳으러 먼 바다에 가야 한다. 낙엽이 아름다운 가을에 무리지어 올라오는 연어는 제 몸보다 낮은 강바닥에 알을 낳고 쓰러져 죽지만 부화한 어린 연어는 이듬해 봄이면 일제히 바다로 나간다. 삼사년이 지나면 알을 낳으러 어미의 체취가 어린 모천을 다시 찾을 것이다. 이른 봄마다 계곡 바위틈에 붙었던 수백 개의 알에서 올챙이로 깨어난 계곡산개구리는 흐름이 느린 곳에서 낙엽과 물이끼를 뜯으며 성장하다 이른 여름에 작은 개구리로 변태, 비가 내리는 날이면 기를 쓰고 산으로 오른다. 산에서 홀로서기를 하다 가을이 깊어지면 동면을 위해 계곡 돌 아래 몸을 숨길 것이다. 알 낳을 내년의 이른 봄을 기다리며. 강이 풀리면 임이 탄 배를 기다리고 여름에 미역을 감으며 가을에 천렵 즐기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마을의 문화와 역사를 연결하는 강은 그렇게 생태계의 사계절을 이어준다.
거대한 배가 산을 오르는 현재의 운하는 강의 모든 연결을 차단한다. 홍수로 쏟아져 들어오는 물이 둑을 넘지 않아야 하는 까닭에 강 좌우의 연결을, 화물선의 이동을 확보하기 위해 댐과 보로 물길을 계단처럼 나누면서 상류와 하류의 연결을, 모래와 자갈을 긁고 암반까지 들어내면서 바닥과 땅속의 연결을, 생태계가 파괴되어 더욱 오염된 강물에 화물과 사람을 실은 배만 오르내리면서 계절의 연결을 차단한다. 강을 중심으로 유구하게 이어진 우리네 마을의 문화와 역사도 차단되고 말 것이다.
전체주의를 연상시키는 선동
아직 한반도 대운하의 정확한 노선과 그 개발계획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경부운하는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혀 있다. 하지만 논란되는 부분은 여전히 소문만 무성하다. 그 과정에서 법적 절차상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타당성 조사나 환경성평가를 시행하려는 정부의 모습은 파악되지 않으며 주민의 의견청취는 물론, 문제를 제기하는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려는 자세마저 읽을 수 없다. 이에 지난 1월 31일, 서울대학교를 시작으로 교수들이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3월 25일에는 전국 115개 대학교에서 2500명 가까운 교수들이 모여 ‘한반도 대운하를 반대하는 전국교수모임’을 결성하면서 “교육과 연구에 전념해야 할 교수들이 한반도 대운하 문제로 서명과 기자회견을 가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생태와 토목과 경제학 분야가 운하와 관련된 배타적인 전공일 수 없다. 국가 전체의 지리와 역사와 문화에 영향력이 지대한 만큼, 관련 분야를 두루 망라하는 인문사회 분야도 마땅히 고려되어야 옳다. 서명에 참여한 교수들은 그를 반영했다. 이공계는 물론 다양한 인문사회 전공 교수 수천 명이 반대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그러자 국가정보원과 경찰에서 반대서명을 한 교수의 동향을 파악하려 움직였다. 누구의 의지가 작용했는지 알 수 없지만, 군사독재 정권이 진저리나게 보여주었던 구태가 재현되는 순간이었다.
군사독재에서 신자유주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더욱 얌전해졌던 교수들이 한꺼번에 움직이자 당황했는지, 운하를 추진하는 측(이하 추진측)의 대표적 인사인 추부길 비서관은 어처구니없게도 교수들을 비전공이라며 몰아붙였고 ‘운하정책자문단’ 단장을 맡은 이화여자대학교 환경공학과 박석순 교수는 서명 교수들을 정치적이라고 비난했다. 운하반대를 내세우며 서울시 은평구에서 출마한 문국현 국회의원 후보를 지원하려는 의도라고 왜곡한 것이다. 사실 박석순 교수는 문국현 후보와 경쟁하는 이재오 여당 후보를 지원하려 했는지 모른다. 당시 운하 전도사를 자처하는 여당의 실세, 이재오 후보는 지지율이 열세로 나타나고 있었다.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였던 청와대 유우익 비서실장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서명 교수들을 열거하며 비난하는데 한 몫을 거들었다.
정부 권력을 등에 업은 추진측은 서명 교수를 비롯하여 침묵을 지키는 대다수 교수들을 길들이고 싶을지 모른다. 연구비 액수의 높낮이에 따라 능력이 평가되고 처우를 달리하는 대학에서 교수들은 연구비 제공자의 입김에 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가. 대부분의 연구비가 정부에서 나오는 상황에서 추진측의 압박은 효과를 즉각 발하고 있다. ‘한반도 대운하를 반대하는 전국교수모임’에 참여하는 인원이 정체하고 있는 게 그 증거다.
지식인의 정치적 주장을 모두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인데, 교수들이 진정 정치적 동기로 운하 반대 서명에 돌입했을까. 일반적으로 자기의 논리에 확신이 없는 정치인은 자신과 뜻을 달리하는 이의 주장에 밀려 궁지에 몰리면 상대를 정치적이라며 역공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 모양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홍보 역할을 담당했던 추부길 비서관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박석순 교수의 행보와 발언이야말로 정치적이 아닐까. 목사인 추부길 비서관을 운하 전공자로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고, 환경공학 전공의 박석순 교수가 운하 전공자라는 데 동의하려는 전문가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3)
시민단체의 반대에 이어 교수들이 대규모로 움직이자 운하를 추진하려는 정치권에서 대응하는 발언이 나왔다. 반대 의견은 청취하겠지만 반드시 운하를 건설하겠다는 의지로, 몇 차례나 비슷한 내용을 언론에 흘리는 성의를 표출했다. 여론을 호도하려는 의도로 보이는 그와 같은 자세는 반대 의견을 듣지 않겠다는 고집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그와는 별도로, 연일 보도되는 운하 관련 여론은 반대하는 시민의 비율이 점점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고, 과반을 지나 3분의2가 넘어서자 추진측은 운하 개발 여부를 시민의 의견에 맞길 수 없다는 주장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이 결정할 사항이라는 거다. 하지만 그럴까. 시민사회와 생태계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예상되는 운하 개발에 대한 의사결정을 전적으로 전문가에게 맡겨도 되는 것일까. 권력과 자본에 유난히 약한 전문가는 시민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데.
정부를 포함하여 추진측은 시민을 홍보대상으로 여기는 태도로 일관한다. 운하를 홍보하는 책도 펴냈다. 서명에 나선 대학교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전문가가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운하 전문가를 자처하는 학자들이 자신의 논거를 책으로 엮은 걸 탓할 이유는 없다. 홍보 전문가가 반대하는 전문가(이하 반대측)를 근거 없이 폄훼하면서 경부운하의 타당성을 옹호하는 책을 잇달아 내놓아도 그러려니 할 수 있다. 문제는 독자에 대한 결례다. 내용은 부실하며 무책임할 뿐 아니라 오만하다. 자신에게 불리한 자료를 왜곡하거나 고의적으로 빠뜨리고, 사실과 거리가 먼 가능성을 당장 실현될 듯 분칠하면서 현혹하려 할 뿐, 시민을 논의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4)
한반도 대운하든 경부운하든, 찬성이든 반대든, 제시되는 계획과 실효성, 그리고 그에 제기되는 다양한 문제들을 알고자 하는 시민은 던져주는 떡이나 집어먹는 구경꾼이 아니다. 한반도에서 삶을 이어받은 시민은 사탕발림 같은 섣부른 홍보를 원하는 게 아니다. 운하에 얽힌 전후사정과 그 맥락과 내막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치우치지 않는 자료를 제시하며 쉽게 설명하길 바라는 것이다. 정확한 자료를 제시하지 않은 채 전문가가 결정할 일이라면서 본질을 흐리고, 여론 호도를 위해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를 가공 편집해 뿌리는 행위는 자식과 내 땅을 지키려는 시민의 동의를 구하기 어려울 것이다.
민주적인 행정을 원한다면 정책 최고 담당자는 시민의 판단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귀담아 들어야 옳다. 필요하면 관심을 갖는 시민을 의사결정 구조에 참여시켜야 한다. 담당 전문가는 제기되는 주장과 자료들을 시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꿔,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 참여를 지향하는 민주주의의 요체가 그렇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제까지 보여준 추진측의 행태는 참여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 지난 4월 24일자 한겨레 신문은 한반도 대운하 추진을 무기한 보류한다고 청와대가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운하를 백지화한 건 아니라고 여지를 두더니 며칠 지나자 5월 중 추진설을 유포한다. 민간 사업자의 계획이 제출되면 검토할 것이라는 정부의 발언도 언론에 흘린다. 뭐가 뭔지 모르는 시민은 청와대와 정부를 어디까지 신뢰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균형 잡힌 논의를 위해
지금까지 제기된 추진과 반대측의 주장은 나름대로 근거를 내세우지만 서로 만나 고정한 논의를 진행한 적이 없다. 현재 팽팽하게 대립돼 있다. 추진측은 계획을 자주 바꾸면서 반대측의 문제 제기에 대응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후퇴하려 하지 않는다. 양측에서 상대측을 볼 때, 일견 타당성이 있어 보이는 주장도 있지만 전혀 수긍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다. 충돌하는 것이다. 상대의 주장과 다를 경우 누가 보아도 수긍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지고 합리적으로 반박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선동에 불과하다. 논리가 충돌할 경우 공정하고 충실한 조사를 투명하게 실시한 이후에 의견을 민주적으로 조율해야 옳다. 권력을 앞세우는 선동은 전체주의를 연상하게 한다.
추진측의 자료에는 개발이 완료된 시점을 홍보하는 그림이 제공된다. 대단히 아쉽게 그 그림의 타당성은 논리적으로 뒷받침되어 있지 못하다. 선동에 가깝다. 반대측의 주장을 반박하며 제시하는 대부분의 논리 역시 과학적 타당성을 제시하지 못한다. 혹세무민을 생각하게 한다. 이제 추진측이 제시하는 주장의 부당한 부분을 지적하고자 한다. 시민이 운하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을 기회로 선동하거나 혹세무민하려는 의도로 보이는 주장을 바로 잡고자 한다. 양측의 의견이 충돌하는 지점을 펼쳐놓고 운하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취지에서 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아직 한반도 대운하의 구체적 방안은 나온 게 없다. 다만 경부운하는 추진측이 제시했고 계속 수정하면서 발표한 주장은 있다. 따라서 이 글은 경부운하에 한정한다. 추진측이 제시한 주장과 자료에 근거하면서 논의를 풀어내고자 한다.5)
1. 혹세무민하는 경우
생태 측면
운하의 첫 번째 상식은 생태계 훼손이다. 경부운하에 의한 생태계 파괴를 시민이 걱정할 때마다 추진측은 한강과 낙동강의 거의 전 구간을 그대로 사용할 것이므로 걱정할 게 없다고 주장한다. 한강과 낙동강을 한 번도 다녀본 적 없는 이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 같이 사실을 왜곡한다. 아직 어느 정도 규모의 선박이 운항할지 확정하지 않았지만, 추진측은 한강과 낙동강 본류 구간에 5000톤 급 바지선,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구간에는 2500톤 급 바지선을 띄울 것으로 예고하는 자료를 내놓았다.
5000톤 급 바지선이 다니려면 수심이 최소 9미터, 2500톤 급 바지선은 6미터의 수심이 필요하다고 한다. 컨테이너 화물을 3단으로 실었을 경우를 가정할 때 그렇다는 것이다. 추진측은 직선과 굴곡구간을 포함하는 한강과 낙동강 본류(이하 본류구간) 465킬로미터 중 2킬로미터를 굴착하거나 교량을 신축해 이동하고 나머지 구간은 자연 그대로 활용하겠다고 주장한다. 또한, 한강과 낙동강 연결 구간(이하 연결구간) 75킬로미터 중 36킬로미터는 자연 그대로 활용하고 나머지는 터널이나 교량으로 이동하겠다고 예고한다. 90퍼센트 이상의 운하 구간을 자연 그대로 활용하겠다는 것인데, 선박 운항을 위한 수심을 본류구간의 자연스런 하천에서 확보할 수 있을까.
추진측은 본류구간 14곳에 수중보를 신설, 기존 댐을 합해 모두 19곳의 수중보나 댐으로 구간 별 수심을 유지하겠다고 주장한다. 그럴 경우, 본류구간의 물 흐름은 심각하게 정체될 수밖에 없다. 5배 이상 흐름이 느려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중력을 받는 모든 액체는 수평을 유지하려 아래로 흐른다. 상류의 수심을 확보하려면 하류의 수심은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결과, 본류구간의 하천은 매우 길고 거대한 호수로 계단처럼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물은 흐름을 멈추면 썩는다. 추진측은 모래와 자갈을 퍼내 수심을 확보하고 퍼낸 골재를 팔아 공사비를 충당하겠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모래와 자갈은 건축자재이기 이전에 하천 동물의 산란장이요 터전이며 생태계의 기반이다. 게다가 오염된 물을 정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모래와 자갈 틈에 다양한 생물종이 분포하는 까닭이다. 본류구간의 생태계는 보전될 수 있을까.
추진측은 본류구간의 생물들은 공사 기간 중에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공사 종료 후 다시 찾아올 것이므로 문제없다고 주장한다. 어떨까. 하천의 생물은 뉴타운 공사 시 다른 동네로 이사 갔다 돌아오는 사람과 처지가 다르다. 하천에는 동물만 서식하는 게 아니다. 식물 생태계가 안정되어야 동물 생태계가 깃들 수 있다. 그들의 생태계는 예민하다. 모래와 자갈이 사라진 하천에 떠난 동물이 돌아올 수 없다. 물 흐름이 느려지면 플랑크톤과 조류와 분포가 달라지니 그물코처럼 얽힌 생태계는 크게 교란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은 생태계의 변화를 예측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으니 대안을 모색할 수 없다.
추진측은 넓은 하천 부지의 일부만 굴착해 수심을 마련하고 나머지 부지는 그대로 놔두므로 강변 생태계는 유지된다고 주장하지만 어처구니없다. 우리나라의 지형과 강우의 특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국토의 65퍼센트 이상 산지이고 비가 여름 한철 60퍼센트 이상 쏟아지는 우리나라에서, 홍수는 일부가 굴착된 강바닥을 그냥 놔두지 않을 것이다. 해마다 반복하는 수해를 보라. 밀려든 토사로 굴착한 구간은 당장 메워질 것이다. 운하는 자주 멈출 수 없는 교통시설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수시로 준설할 수 없다. 물류이동이 자주 중단되면 비용이 늘어 경제성을 맞추기 어려울 것이다. 손해배상 청구에 지친 화주가 경부운하를 외면할 수 있지만 문제는 오염이다. 지금도 점원 비점원 오폐수의 불법 방류를 단속하지 못하는데, 비올 때 더욱 극성인 불법 방류를 뿌리 뽑을 수 있겠는가. 오폐수에 의한 오염만이 아니다. 흐름이 정체된 강에서 여름철마다 발생하는 녹조와 그로 인한 오염은 경부운하라고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외국 사례로 보아 오히려 심화될 것이 틀림없다.
굽이쳐 흐르는 본류구간은 강폭이 좁다. 운하를 위해 추진측에서 제시한 200에서 300미터 폭의 물길을 본류구간 내내 확보하기 어렵다. 운하의 폭과 수심을 확보하기 위해 좌우와 강바닥의 암반을 광범위하게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될 텐데, 생태계가 온전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노도와 같이 흐르는 홍수가 강둑을 적시며 무너뜨리면 운하의 기능은 즉시 중단된다. 운하가 유지될 수 있도록 강둑 양쪽을 반드시 방수 처리해야 할 텐데, 습기가 스미지 않는 강변의 생태계는 괴멸되지 않을 수 없다. 좌우의 생태계는 차단될 것이다. 그 뿐이 아니다. 강은 언다. 우리나라의 강은 겨울에 얼어야 정상이다. 그래야 생태계가 유지된다. 당연하지만 물이 얼면 운하는 불가능하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강물이 얼지 않도록 화학처리하면 본류구간의 생태계는 종말을 맞을 것이다.
추진측은 본류와 연결구간만 운하로 활용되므로 건드리지 않을 지천의 생태계는 훼손되지 않을 것으로 짐작한다. 생태계는 부품만 교환하면 수리가 가능한 기계가 아니다. 한강은 3만4천여 평방킬로미터의 유역면적에서 흐르는 703개의 지천이 합류하고 낙동강은 만3천 평방킬로미터 유역면적에서 785개 지천이 합류한다. 모든 지천은 본류와 연결된다. 본류가 오염되는데 지천이 온전할 수 있겠는가. 산란과 서식을 위해 이동하는 물고기에게 피해가 심할 것이며, 그런 물고기를 먹는 상위 생태계의 혼란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운하는 갈수기에도 수심을 유지해야 한다. 그를 위해 추진측은 대형 댐을 준비하고 있다. 어쩌면 시민들의 힘으로 겨우 막아낸 동강의 영월댐이 다시 축조되어야 할지 모른다. 실제로 추진측은 충주호 상류에 경부운하 수위 유지를 위한 두개의 댐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충주호 27억 톤의 물로 갈수기 수위를 맞추지 못한다는 건데, 그렇다면 대형 댐이 갖는 숱한 생태적 문제는 추가되어야 한다.
환경 측면
추진측은 평상시에도 운하에 물이 차 있으므로 가뭄과 수해를 대비할 수 있다고 과감하게 주장한다. 하지만 운하는 다목적댐과 다르다. 홍수를 대비해 물을 미리 비울 수 없다. 운하 때문에 몰려들어오는 빗물을 완충할 수 없으면 일대가 침수될 가능성이 높다. 홍수 피해를 줄이려면 본류구간의 완충능력을 확충해야 한다. 선박을 위한 수위를 유지하면서 홍수와 가뭄 피해를 완충하려면 본류구간의 바닥을 넉넉하게 파내거나 운하 옆에 충분히 높은 둑을 쌓아야 할 텐데 그 규모는 ‘하상계수’를 참고하여 정확하게 계산해야 할 것이다.6) 기상이변과 국지성호우가 전에 없이 빈발하는 상황에서 예상하지 못한 홍수로 물줄기가 둑을 넘을 경우 콘크리트가 아니라면 둑은 무너질 수 있다. 또한 콘크리트 둑은 운하 바닥 아래로 깊게 묻어야 한다.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넘어지면 대재앙이 발생할 수 있다.
콘크리트 둑을 쌓든 바닥을 깊게 파내든, 본류구간 거의 전체를 대상으로 적용해야 한다. 만일 일부 지역에 한정한다면 낮은 곳을 향하는 격류는 엉뚱한 지역의 둑을 터뜨릴 것이다. 또한, 둑이 지천에서 발생한 홍수 물줄기의 본류 유입을 차단한다면 지천의 피해는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자연을 교란한 만큼 이래저래 건설비용이 막대해질 것이지만 운하에서 내다보는 콘크리트 둑은 삭막할 수밖에 없다. 주민이 참기 어려운 것은 좌우의 생활환경이 차단된다는 거다. 철도가 활성화되기 이전에 운하도시로 호황을 누렸던 미국 미시시피 강변 세인트루이스의 경우를 보자. 하상계수가 우리보다 낮을 뿐 아니라 시 전역이 평지에 가까운 세인트루이스의 운하 양 옆에는 15미터에 달하는 콘크리트 둑이 위압적으로 강 좌우의 시선을 빼앗는다. 관광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 우리는 어떨 것인가.
담기는 물의 양이 늘면 오염지수는 내려갈까. 깨끗한 물이 늘면 그만큼 희석되기야 하겠지만 문제는 물이 정체된다는 점이다. 강의 수질은 댐이나 보를 철거해야 비로소 개선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추진측은 스크루가 돌 때 공급되는 산소로 운하의 수질이 개선된다는 이색적인 주장도 편다. 운하는 어항이나 새우 양식장과 규모가 다르다. 모래가 없는 어항에 공기를 불어 넣으면 어떻게 되나. 바닥에 쌓였던 노폐물이 떠올라 금방 더러워지지 않던가. 운하도 마찬가지이지만 바닥 오니의 규모와 독성이 어항과 다르다. 산소를 약간 공급하는 스크루는 오니 속의 미생물의 번식을 촉진할 수 있다. 녹조가 심각해지는 여름철은 더욱 고약해질 수 있다. 엔진과 스크루가 돌 때 배출되는 엔진오일과 윤활유는 무시할 만할까.
오염된 강바닥을 준설해 운하를 만들겠다는 추진측의 주장은 또 어떤가. 오니를 부유하게 만드는 준설은 조심해야 한다. 비용도 걱정이지만 악취가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 민원이 비등할 수밖에 없다. 준설이 필요하다면 물기를 최대한 배제한 후 실시해야 민원을 줄인다. 썩은 물이 흘러내리면 민원의 범위는 늘어난다. 하지만 강은 물기를 배제할 수 없다. 준설보다 오염원을 차단하고 자연에 맡기며 기다리는 것이 현명한 태도다. 우리나라의 하천이 전에 비해 오염되었다지만 준설이 필요할 정도는 아니다. 네덜란드는 준설이 필요한 강의 오염 수치를 제시한다. 그 수치로 볼 때, 현재 우리 하천에서 준설이 필요한 곳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7) 오염된 강이므로 준설로 운하를 만들자는 발상이 아니길 바라지만, 그렇다면 참으로 위험한 혹세무민에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는 강에서 마실 물을 취수한다. 만일 운하가 가동된다면 마실 물이 늘어나는 것일까. 추진측은 그렇게 주장하지만 역시 혹세무민이다. 수량이 아무리 늘어나도 본류구간에서 상수원을 취수할 수 없을 것이다. 오니가 가라앉아 있을 뿐 아니라 운항 중인 선박에서 배출되는 물질로 더욱 오염된 물은 상수원으로 적합할 수 없다. 물을 정화하는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겠지만 깨끗한 강물 마시던 시민들이 반길 리 없다. 반대측의 그런 지적을 받자 추진측은 상수원을 상류로 옮기는 방안으로 수정한다. 수도권의 경우, 팔당호에서 북한강으로 바꾸겠다는 건데, 북한강은 수량이 부족해 수도권 2000만 인구를 감당할 수 없다. 추진측은 느닷없이 간접 취수 방식을 제안한다. 유럽에서 주로 활용하는 ‘강변 여과수’를 취수하겠다는 계획인데, 궁색하기 짝이 없다. 운하 옆을 파는 취수정에서 수량 확보가 어려울 것이 예상되지만 비용마저 과다해진다. 우리의 강변은 유럽과 달리 투수율이 낮기 때문이다. 간접취수 방식이 채택되면 상수원 보호지역에 대한 규제는 해제될 것이다. 땅값이 즉각 상승하고 개발 요구가 빗발칠 것이다. 상수원 보호지역마저 경부운하와 더불어 개발된다면 마실 물에 대한 대안은 찾을 수 없다. 충분히 연구되지 않은 간접취수를 기정사실로 여기는 행위는 무모하다. 운하보다 마실 물이 훨씬 중요하지 않은가.
운하 양편에 높고 깊은 콘크리트 둑이 설치될 경우, 운하 내의 평상시 물 높이만큼 지하수면이 내려갈 것이다. 우리의 강은 주변에 농경지를 안고 있다. 논에 물이 없으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국제 쌀값 폭등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텐데, 우리가 유일하게 자급하는 쌀 기반이 바싹 마른다면 어떤 사회혼란이 발생할 수 있을까. 상상하기 두렵다. 밭작물 수확도 어려워질 것이다. 운하의 물은 오염 때문에 농사에 사용할 수 없다. 아무리 절박해도 운하의 물을 빼낼 수 없다. 수심을 유지해야 한다. 농촌에 물이 필요한 봄은 대개 갈수기다.
트럭이나 철도보다 화물선으로 많은 화물을 한꺼번에 운송하면 운송 측면의 에너지 효율이 높아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운하로 지구온난화를 극복할 수 있다는 추진측의 주장은 지나친 환상이다. 고려하지 않은 변수가 많다. 100년 동안 세계는 평균 0.7도 상승했지만 우리는 그 두 배나 뜨거워졌다. 교토협약에 가입한 만큼 대책을 세워야하지만 운하는 아니다. 산업은 물론 가정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도 줄이거나 효율화하면서 재생 가능한 자원의 발굴에 박차를 가해야 할 시점에 운하가 대안이라니. 한가하거나 어이없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선박은 청정연료를 사용할 수 없다. 촉매장치를 부착한 트럭이나 전기 철도와 비교할 수 없다. 2005년 여름, 중국 장강의 샨샤댐을 오르내리는 고급 여객선이 갑문 안으로 내뿜는 배출가스의 악취와 검댕은 관광객을 두려워하게 만들 지경이었다.8)
운하가 철도보다 대기오염을 줄인다고 추진측은 주장하지만 반대측은 철도가 더 유리하다는 자료를 제시하며 반박한다. 동일한 무게의 화물을 운반할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만을 단순히 계산하면 안 된다는 거다. 철도는 경부운하보다 노선이 짧다. 경부운하는 트럭과 선박 사이에 화물을 옮기는 과정을 고려해야 한다. 운하와 수심 유지를 위한 댐과 보에서 발생되는 메탄가스도 뺄 수 없다. 이 모든 변수를 종합하면 철도가 더 환경 친화적이라고 주장하는 반대측은 운하가 철도보다 지구온난화 물질을 더 배출한다는 독일의 실증사례를 제시한다.9) 현재 철도는 부설돼 있지만 운하는 없으므로 공사 과정에서 막대한 토사를 트럭으로 운반해야 한다. 경부고속도로에서 발생한 토사의 20배에 달한다고 한다.10) 어떤 측의 주장을 믿어야 할까. 투명한 논의를 공개적으로 펼칠 필요가 충분하다.
개발 과정의 경제성
추진측은 경부운하가 완공되었을 때 펼쳐질 내륙 터미널 풍경을 화려하게 그려 주민을 현혹시킨다. 환상이다. 수천 톤 선박들이 줄을 잇는 터미널에는 10척 이상 정박할 수 있는 부두가 있고 부두에는 수출입 항구에나 있을 법한 거대한 크레인이 늘어서 있다. 그뿐이 아니다. 부두 인근에 50층을 헤아리는 초고층 아파트와 사무용 빌딩이 즐비하고 고속도로 수준의 도로가 빌딩 숲과 연결돼 있다. 또, 고급 유람선 오가는 운하를 바라보는 곳에 조성될 놀이시설은 삼성의 에버랜드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휘황찬란하다. 흰 구름이 두둥실 뜬 하늘은 파랗고 요트가 수를 놓은 물은 맑다.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우리 경부운하의 미래상이라고 믿으란다. 정부에서 전폭 지원하는 추진측이 그린 그림이다. 그 그림을 믿지 않는 자는 순박하지 않다. 때마침 신문에 광고가 실린다. “대운하 최대 수혜 지역”의 땅을 선착순으로 분양한다는 거다. 값이 천정부지로 오른다는 그 땅을 내놓은 이웃은 누군지 고맙기도 하다. 운하가 지나고, 화물을 싣고 내릴 터미널이 예정된 지역은 운하를 환영한다는 펼침막을 걸었다.
세계에 그 유래가 없을 정도로 환상적인 운하를 건설하려면 들어가는 돈이 어마어마할 텐데, 추진측은 걱정하지 말란다. 세금이 한 푼도 들어가지 않는 ‘민간 투자 사업’이란다. 그런데 왜 정부가 앞장서 홍보에 열을 올리는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고속도로나 교량 같은 사회간접시설 조성사업에 많은 민간 기업이 투자자로 참여했는데, 정부의 홍보 없이 진행된 그 민간 투자 사업들은 세금 지원이 한 푼 없었을까.
민간 투자 사업에는 보통 두 가지 방식이 있다. 건설과 운영사업과 수입권한 일체를 민간 사업체에게 위임하고 수익금으로 공사 대금을 충당하는 BTO방식과 민간 사업체가 건설비를 부담하여 완공된 시설을 정부에 임대, 그 수익금으로 공사비를 갚는 BTL방식이 그것이다. 만일 BTL방식이라면 세금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주장은 허위다. 따라서 BTO방식이어야 할 텐데, 보통 민간 사업체는 수익이 보장되지 않으면 사업을 맡으려 하지 않는다. 사업 진행이 필요한 정부는 ‘최소 운영수익’을 보장해주며 민간 기업을 독려하는데, 그 경우 많은 민간 사업체는 최소 운영수익을 부풀리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으로 신공항을 잇는 공항철도를 예로 들 수 있다. 차량 운영이 기대의 3분의1에 불과해 연평균 500억 원 이상의 비용을 정부에서 지원해야 하는 실정이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나 그 밖의 예가 수두룩하다.
BTO방식 민간 투자로 세금 낭비가 거듭된다는 지적에 따라 2006년 정부는 ‘사회간접자본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을 재개정, ‘최소 운영수입 보장제’를 폐지했다.11) 그런 마당에 경부운하는 제대로 추진될 수 있을까. 여론이 부정적이고,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도 반대의견이 많다. 최소운영수입 보장제를 되돌리기 어려워진 셈이다. 민간 사업체는 어떻게 수익을 올릴 수 있을까. 아직 소문에 불과하지만, 참여가 예상되는 사업체는 운하 주변의 개발권을 요구할 것으로 반대측은 예측한다. 외국의 물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할 것이라는 소문도 나돈다. 마실 물을 사유화하여 외국 기업에 넘기겠다는 발상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추진측은 골재 채취로 얻는 8조 원으로 사업비의 절반 이상을 충당한다고 예상한다. 이명박 대통령 임기 내에 완공하겠다고 재삼 다짐한다. 가능할까. 우리나라에서 해마다 채취하는 골재의 가격은 1조 원에 달하는데, 8조 원에 해당되는 골재를 한꺼번에 채취할 수단이 없다. 남은 양은 어디에 보관해야 할 텐데, 장소를 물색하기 어렵고 비용이 막대할 것이다. 공사비는 증가할 것이다. 보관된 골재를 수출하면 된다고 추진측이 주장하지만 이동거리가 길면 가격이 상승해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다.
BTO방식이라고 정부 지원이 없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발생한 대부분의 민간 투자 사업은 사업비의 절반 이상을 금융권에서 조달했는데, 정부가 그 지급을 보증했다. 그뿐이 아니다. 토지 보상비의 30퍼센트 이상을 정부가 직접 지원해왔다(경향신문, 2008년 1월 20일자). 민간 투자 사업에 투입되는 정부 예산이 애초 계획보다 거듭 늘어나는 현상은 세계가 공통인데 경부운하만 특별하게 한 푼의 정부 지원이 없을 거로 믿어도 될까.
문제는 투기 조장이다. 벌써부터 조짐이 인다.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민간 사업체는 추진측이 그린 그림을 앞세우며 투자자를 모집할 것이다. 정부를 믿는 순박한 후발 투자자는 어떻게 될까. 운하가 지나가는 지역은 현재, 상당 부분의 땅이 국가 소유일 테지만 민간 사업자는 그 지역을 일단 사유화할 게 분명하다. 개발이 구체화될 즈음, 기업은 민간에 분양하려 나설 텐데, 그림에 현혹돼 뒷북을 칠 순박한 투자자는 개발 완료된 경부운하에서 내내 큰돈을 벌어들일 수 있을까. 경부운하의 터미널은 고속도로 휴게소와 다르다. 사람보다 화물이 주로 쉴 텐데, 투자가치가 그리 긍정적일 것 같지 않다.
반대측은 추진측이 예측한 경부운하 건설비 항목에서 빠진 부분이 많다고 지적한다. 상수원을 옮기거나 간접 취수하는데 들어가는 비용, 운하 양편에 깊이 박아 올려야 할 콘크리트 둑의 축조비용, 운하 수심을 유지하기 위한 댐 건설비용 들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댐은 필연적으로 이주민을 낳을 것이니 보상비가 추가되어야 하고 도로를 새로 닦는 비용도 합산해야 한다. 관련 비용을 모두 더한다면 경부운하 건설비는 50조 원이 훌쩍 넘을 것으로 찬성측은 추산한다. 공사비를 14조 원에 맞춰 예측한 경부운하의 경제성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경부운하는 대기업 삼성 이상의 고용을 창출할 것으로 추진측은 예측한다. 30만 일자리다. 그런데 운하 건설시 발생하는 토목 분야의 단순한 일자리에 우리 젊은이들이 모일 것 같지 않다. 우리가 모델로 삼는 독일의 MD운하는 현재 380명을 고용한다. 독일 운하를 모두 합해도 7600명에 지나지 않는다. 건설 중 토목사업에서 요구하는 단순한 노동력은 공사완료 직후 휘발된다. 2005년 현재 고등학생의 대학 진학률이 82퍼센트에 달한다. 경부운하가 고용을 창출한다는 주장은 누구를 염두에 둔 혹세무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운영 시의 경제성
우리나라는 물류비가 많아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흔히 주장한다. 추진측 역시 그 점을 강조한다. 꽉 막힌 도로가 차지하는 물류비를 경부운하가 담당하면 국가 경쟁력이 그만큼 향상될 것으로 덧붙인다. 추진측은 국가의 경제가 계속 성장할 것이고 성장하는 만큼 물류가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지만, 정비례하는 건 아니다. 경제력이 커질수록 운반해야 할 화물이 작고 가벼워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전자제품이 그렇다. 그러한 물류는 속도를 요구한다. 운하는 석탄이나 석유, 시멘트나 원목처럼 시간 구애를 덜 받는 벌크 화물에 집중 이용된다. 현대 화물에 대한 활용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우리의 도로는 정말 꽉 막힐까. 텔레비전 뉴스가 보여주는 정체된 도로는 트럭이 주로 이용하는 시간대가 아니다. 2002년 기준, 우리나라의 도로 밀도는 OECD 평균의 3배 가까우며 그 중 고속도로가 차지하는 비중은 OECD 평균 5배로 세계 2위에 해당한다. 거기에 전국을 가로 9개 축, 세로 7개 축으로 계획된 고속도로가 완공되면 세계 최대의 고속도로 밀도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된다. 일본의 4배에 달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소득 대비 물류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독일보다 낮다. 우리의 고속도로는 물류에 장애가 될 정도로 막히는 게 아니다. 앞으로 지나칠 정도로 밀집된 고속도로가 완공되면 물류 속도는 다른 국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될 것이다. 물론 생태계는 엉망이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도로 물류비는 일본에 비해 많다. 이는 효율의 차이다. 일본은 전문 물류 업체에 의존하여 화물을 싣지 않은 트럭이 운행되는 경우가 우리보다 드물지만 자가용을 주로 사용하는 우리는 운송 후 빈 차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많이 들어가는 물류비는 개선해야 할 사항이지 운하에 떠넘길 사유가 될 수 없다. 추진측은 유럽의 ‘마르코 폴로’ 계획을 경부운하 홍보를 위해 금과옥조로 떠받는다. 하지만 마르코 폴로 계획은 운하의 확장이나 연장과 거리가 멀다. 물류 시스템의 효율화 계획이다. 기존 운하를 도로와 철도와 항공과 연계해 물류의 효율을 높이려는 계획인 것이다.
유럽에서 운하가 가장 잘 발달된 국가로 알려진 네덜란드와 독일은 지대가 낮고 국토가 편평하며 바다와 쉽게 연결된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운하를 중요 물류 이동 수단으로 활용하였지만 철도와 도로가 확보된 지금은 아니다. 점차 퇴조하고 있다. 1995년 유럽의 운하 활용은 평균 4퍼센트에서 2004년 3.4퍼센트로 감소했는데 그 추세는 계속된다. 항공 수요가 확대되는 추세이며 바다를 적극 활용한다. 섬이나 반도 중에서 운하를 물류 수단으로 활용하는 국가는 없다. 철도와 도로에 밀린 운하는 지역에 따라 관광용으로 이용하는데 그친다. 1904년 미국 최초로 올림픽과 세계 박람회를 개최할 정도로 규모가 컸던 세인트루이스가 현재 인구 35만의 작은 도시로 바뀐 이유를 운하 쇠퇴의 예로 드는 반대측은 최근 미국의 거대 도시가 된 시카고를 철도와 고속도로의 효과로 풀이한다.
경부 축에서 서울과 부산 사이를 왕래하는 물류는 그리 많지 않다. 부산항에서 수도권으로 싣고 가는 화물은 해마다 줄어들어 2004년 현재 18퍼센트를 넘지 않는다. 수도권에서 부산으로 가는 수출화물도 인천이나 평택항으로 옮기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확장된 평택항과 신항만을 계속 축조하는 인천항의 비중은 더욱 높일 것이 분명하다. 추진측에서 경부 축 도로와 철도의 화물을 운하가 담당할 것으로 예상하는 수치는 명확하지 않다. 추정하는 사람에 따라 다를 뿐 아니라 계산이 잘못된 경우도 보인다. 생태지평 연구소는 추진측의 주장을 근거로 경부 축 철도 수송량의 10퍼센트와 20퍼센트를 운하가 맡을 경우 하루에 2500톤 선박이 몇 회 이동해야 할지 계산했다. 2020년 기준으로 10퍼센트일 때 4회, 20퍼센트일 때 8회면 충분했다. 물론 5000톤 선박은 그 절반이다.
추진측은 경부 축을 도로로 운송할 경우 6미터 컨테이너 당 45만원의 비용이 드는데 운하는 15만 원이면 충분하다고 손쉽게 주장한다. 항구에서 운하, 운하에서 공장으로 트럭을 이용해야 하는 한, 그 계산은 잘 못 되었다. 트럭 운송은 거리와 절대 비례하는 게 아니다. 화물을 얼마나 자주 옮기는가에 따라 비용은 늘어난다. 추진측은 그 부분을 왜곡했다. 트럭 운송비를 추가할 때, 반대측은 적어도 45만원의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한다. 운하로 인한 물류비 절감의 의미는 사라지는 셈이다. 경부운하는 12군데의 화물터미널을 예정한다. 12군데에서 선박을 정박하고 화물을 트럭에 다시 옮겨 실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때마다 운항 시간이 늘어날 것이며 비용도 상승할 것이다. 추진측은 경부운하의 운송 시간을 24시간 내외로 잡고 있지만 터미널에서 화물을 싣고 내리는 한, 그 가능성은 없어질 것이다. 더구나 19개의 갑문을 통과해야 한다. 게다가 우리는 운하를 운영한 경험마저 없다. 반대측은 72시간이 훨씬 넘을 거로 추정한다. 그 추정이 맞는다면, 경부운하의 경제성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대부분의 운하는 벌크화물을 취급한다. 석탄이나 석유, 원목이나 시멘트 따위가 실린다. 간혹 수출 화물이 실리지만 항구로 직행할 따름이다. 경부운하는 시멘트와 유연탄을 수송할 것으로 추진측에서 주장했으나 그 가능성은 없다. 시멘트 이동로는 경부운하와 대각선이다. 주로 화력발전소의 연료로 소비되는 유연탄은 자체 부두에서 처리할 뿐, 운송할 이유가 거의 없다. 느려터진 운하의 컨테이너에 실릴 공산품은 많지 않을 것이며 신선도를 유지해야 할 농산물도 경부운하를 기피할 것이다. 터미널에서 갈아 실을 화물도 거의 없다고 예상할 수 있다. 운하의 중심지였던 독일의 뉘른베르크와 미국의 세인트루이스 운하 터미널은 한산하다. 화물은 꽉 막힌 도로 위를 천천히 움직일 따름이다.
운하의 물류는 늘이면 된다고 국토해양부를 거든 이병욱 환경부차관이 구설수에 오르기 전부터 박석순 교수는 화물을 준비해 운하로 나르자고 제안해 주목을 받았다. 시간을 다투는 국제 교역에서 그렇게 한가한 화주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정부 보조금을 받고 1992년부터 부산에서 인천을 왕복하던 한진해운은 2006년 폐업했다. 누적된 적자를 이길 수 없었다. 반대측이 예상하는 경부운하보다 빠르지만 화주가 없었던 거다. 대한민국의 화주는 환경부차관처럼 제 본분을 망각하지 않은 것이다.
경부운하는 반드시 백두대간을 건너야 하므로 19개의 갑문으로 부족하다. 2500톤 선박을 싣고 올리는 거대한 엘리베이터가 필요하다고 한다. 연결구간에 설치할 선박 리프트(ship lift)다. 추진측은 전기료가 그렇게 많이 들어가지 않는다며 그 수치를 제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운하 전성기인 1930년 이전에 주로 가설한 유럽의 선박 리프트들은 현재 경제성이 없어 운영을 중단했거나 관광객의 보트를 위해 제한적으로 사용한다. 독일은 8기 중 2기만 가동한다. 1회에 1200킬로와트를 소비하는 독일의 한 달 전기료는 2억 원에 달한다. 우리 리프트는 규모가 더 크고 높아 사용료가 더 높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추진측은 경부운하로 내륙지방이 활성화되고 관광수입이 늘어날 것으로 섣불리 예측한다. 그 예측에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 실을 화물이 없고 다닐 선박이 없는데 지방이 활성화될 이유가 없다. 관광객은 콘크리트 운하 둑과 어두운 터널을 며칠씩 보기 위해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운하 주변의 역사와 문화 유적을 방문하기 위한 관광객을 생각할 수도 없다. 운하가 건설되면 수몰되거나 파괴될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경부운하가 72개 지역의 지정 문화재와 177개 지역의 매장 문화재를 훼손하거나 파괴할 것으로 반대측은 예측한다.12) 볼 것도 없고 느린 운하를 일부러 선택해 경부운하 인근의 문화재나 관광지를 찾을 관광객도 드물 것이다. 기존 도로나 철도로 저렴하고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을 것이므로. 추진측은 중국인의 관광을 기대하는데, 삼국지의 역사를 편리하게 이어주는 장강의 삼협댐을 놔두고 경부운하를 찾아와 감탄하고 돌아갈 중국인이 얼마나 될지 그 구체적인 연구 자료는 제시하지 않는다.
사업 타당성을 전문가들은 ‘BC분석’으로 구한다. 분석 결과가 100이 넘으면 타당하다고 본다. 추진측의 두 전문가는 BC분석을 1.14와 2.3으로 계산해 차이가 컸다. 그렇듯 BC분석은 어떤 변수를 어떻게 처리했느냐에 따라 편차가 많다. 따라서 BC분석은 합리적이며 신중하게 실시해야 한다. 의견이 첨예할수록 투명하고 공정해야 하며 자료의 중복이나 누락이 없도록 꼼꼼히 따져야 한다. 그래야 오차를 줄일 수 있다. 반대측은 추진측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자료를 추가해 다시 계산했다. 그 결과 최소 0.05에서 최대 0.28로 분석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100만원 투자하면 5만원에서 28만원 남는다는 거다.13)
안전성 문제
육지에 있는 운하에 풍랑이 있을 수 없으니 사고 발생이 거의 없다고 추진측이 주장한다. 여의도 63빌딩에 비행기가 부딪힐 정도의 확률에 지나지 않는다고 덧붙이지만 사실과 다르다. 유럽의 경우, 경부운하와 비슷한 거리에서 하루 한번 꼴로 사고가 발생한다. 화학물질을 실은 배가 전복되거나 석유를 쏟은 사고도 발생했다. 운하를 교차하며 일으키는 선박의 물결이 위험하다고 한다. 문제는 도로와 달리 사고 처리가 어렵다는 점이다. 선박 통행을 막고 뒤처리하려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추진측은 본류구간에서 시간당 30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로 달려 경부운하를 24시간 이내에 주파할 것이라고 호언한다. 하지만 굽이쳐 흐르는 우리의 한강과 낙동강은 2500톤이나 5000톤 선박이 그 정도 속력으로 달릴만한 구간은 아주 드물다. 비용과 민원을 감수하고, 생태계 파괴를 무릅쓰며 현대 토목 기술로 하회마을을 비롯하여 굽이치는 구간을 곧게 펼 수 있겠으나 그렇다고 시속 30킬로미터 이상으로 운행하기 어려울 것이다. 본류구간의 운하 둑을 콘크리트로 막아도 그런 속도는 불가능할 것으로 전문가는 단정한다. 2008년 2월 12일 MBC, 피디수첩은 경부운하가 벤치마킹했다는 독일의 MD운하를 취재해 보도했다. MD운하를 운행하는 선박은 거슬러오를 때 시속 8킬로미터 이상을 내지 않았다. 경제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속 30킬로미터 이상일 경우, 선박에서 발생하는 파랑으로 운하 둑이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지질학자는 연결구간의 위험성을 강하게 지적한다. 추진측이 터널 입출구로 제시한 지역에는 석회암이 발달해 있고, 터널이 지나가는 옥천계 지층은 여러 종류의 암석이 경계를 이루어 틈이 많다는 것이다. 석회암은 물에 잘 용해돼 크고 작은 동굴을 길고 복잡하게 남긴다. 흐르는 물에 특히 약하다. 틈이 많은 암석에는 물의 이동이 많을 수밖에 없다. 지진 전문가는 만일 2500톤 규모의 선박이 이동하는 터널이 틈이 많은 암반 위에 만들어질 경우, 물과 선박의 무게로 인해 암석이 파열할 가능성을 제기한다. 만일 물이 빠져나가면서 터널이 붕괴될 경우, 일대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연결될 것으로 경고한다.14) 추진측이 장담하듯, 현 정권 임기 내에 완공하려고 터널 사이에 여러 개의 출입 터널(사갱, 斜坑)을 더 뚫어 동시에 터널공사를 착공한다면 더 위험할 것이다. 지질조사는 엄격해야 한다. 충분한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조급한 공사는 사고 확률을 높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직 연결구간의 확정된 건설방법을 추진측은 아직 내놓지 않고 있다. 터널이 50킬로미터가 넘는 안을 제시하기도 하는데, 그 경우 위험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추진측은 연결구간에 운하교량을 설치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2500톤 선박이 지나갈 정도의 물을 담은 교량을 수십 킬로미터 이어놓겠다는 것인데, 기술적 가능성이야 부정할 수 없을 것인데, 생각해보자. 터널이든 운하교량이든, 사고와 더불어, 발생할지 모르는 테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에 대비하는 훈련과 경계가 필요하겠지만 사람들의 통행은 엄격하게 제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 의견이 충돌하는 경우
반대측은 추진측의 자료에 근거해 반박할 수밖에 없다. 한데 추진측의 자료는 오락가락한다. 아직도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지 못하던지 안 한다. 지금까지 자신이 밝힌 개발방식을 타당하다고 여기는 추진측과 그렇지 않다고 판단하는 반대측은 여러 부분에서 충돌한다. 그 중, 양측이 상대의 자료까지 펼쳐놓고 투명하고 공정한 논의를 민주적으로 함께 수행해야 할 부분도 있다. 필요하다면 과학적 합의가 가능하도록 공동조사에 임해야 한다고 본다. 무료 홍보책자를 일방적으로 배포하며 여론을 호도하려는 추진측의 행태는 바람직하다고 여길 수 없다.
추진측은 여전히 경부운하가 경제성이 있는 물류라고 주장한다. 지율스님이 천성산 관통 터널의 문제를 지적하며 단식으로 환경영향평가 재실시를 요구할 때, 정부는 KTX가 완공돼 여객을 흡수하면 기존 철도의 화물 운송능력이 7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정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운하 건설은 용납할 수 없는 낭비가 된다. 추진측은 기존 경부선 철도 노선에 새마을이나 무궁화 열차가 운행하므로 여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반대측은 6미터 컨테이너를 100개 싣는 화물열차를 하루 32회 이용하면 경부운하 예상 물량을 전부 수용한고 주장한다. KTX 완공되면 기존 철도의 여유가 발생하는 건 사실일 것이다. 어느 정도일지 검토하는 게 어렵지 않을 텐데, 경부운하를 고집하기 전에 화물열차 32회 증차가 가능한지 여부를 함께 논의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추진측은 경부운하가 운영되더라도 새로 건설하거나 고쳐야 할 교각이 많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오래 전에 건설한 교각 11개 정도를 철거하고 이번 기회에 새로 만들면 된다고 주장한다. 높이가 맞지 않는 5개 정도의 다리는 들었다 내리는 개폐식으로 바꿔 관광자원화 할 계획임을 천명한다. 컨테이너를 3층으로 싣고 다니면 걸릴 수 있는 다리는 상판을 약간 들어주면 된다고 쉽게 판단한다. 그런데 추진측의 자료는 불성실하다. 실측에 의하지 않고 다분히 눈대중이나 짐작에 의존한다. 최근 <한겨레21>은 추진측에서 발표한 자료에 근거해 경부운하 예정 구간을 실측했다.15) 그 결과는 추진측과 판이했다. 5000천 톤 선박이 본류를 운행할 경우 1330의 교각 중 68개를 철거한 후 다시 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추진측은 그 비용을 물론 계상하지 않았으나 상상을 초월할 테고, 교통대란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막대할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수심 유지를 위해 암반을 발파해야 할 구간이 한강 73킬로미터와 낙동강 204킬로미터 이상으로, 반대측은 그 공사로 상수원이 괴멸될 것으로 예상한다. 추진측은 불성실한 자료를 바탕으로 타당성을 주장할 게 아니다. 합리적 논의를 위해 그동안 연구한 자료를 가지고 나타나야 한다.
공사 기간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도 필요하다. 미국 방문 중에 가진 취재기자 인터뷰에서 한반도 대운하를 자신의 소신이라고 거듭 밝힌 이명박 대통령은 운하는 청계천과 규모가 다르므로 충분한 논의를 거쳐 건설하겠다고 선언한 적 있다. 선언은 중요한 게 아니다. 지도자의 소신은 합리적 근거와 사회적 지지를 동반해야 빛을 발할 것이다. 진정으로 ‘충분한 논의’나 ‘반대 여론 청취’를 생각한다면 밀실에서 준비하는 자료를 공개하고 정당하게 논의해야 옳다. ‘임기 내 완공’이라는 목표가 철회되었는지, 반대의견은 듣되 2009년 상반기에 공사에 들어갈 것인지 명백히 밝혀야 한다. 다수 국회의원의 강제력으로 특별법을 제정하면 가능할 수 있지만 예비타당성과 환경영향평가들을 조사해야 하는 이상 현재의 법령으로 경부운하는 절대 임기 내에 완공될 수 없다. 대통령의 소신을 불도저처럼 밀어붙인다면 굴종할 수 없는 반대측과 시민사회가 헌법소원이라는 카드를 내밀 가능성이 높겠다. 아직 정부와 추진측은 어떤 계획도 밝히지 않고 있다. 명심해야 할 것은 많은 유권자는 경부운하를 지지하기 때문에 이명박 후보를 선택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시민은 책임 있는 정부의 모습을 기다리고 있다.
뜻밖에, 생태학자를 자처하는 전문가 몇 명이 경부운하를 찬성하며 거든다. 비록 척추동물을 전공했지만 비슷한 생태학을 공부하는 처지에서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한강과 낙동강이 연결될 때 발생할 생물종 사이의 유전적 교란은 무시해도 좋을까. 경부운하를 생태적으로 만들 수 있다면서 제시하는 내용은 본류구간에 적용하기 어렵다고 본다. 도시의 복개 하천을 생태적으로 꾸미는 정도의 기술을 홍수가 빈발하는 본류구간에 적용하는 건 위험하다. 운하 건설 과정에서 훼손된 생태계는 복원하면 된다는 주장은 오만이다. 자연을 파괴한 다음 복원하겠다는 발상은 터무니없다. 수많은 학자들이 오랜 세월 축적한 생태학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생태계의 상호관계를 이해하는데 턱없이 부족하고 허술하다. 사람이 파괴한 자연은 스스로 복원될 수 있도록 모니터링하며 살펴보는 게 원칙이다. 경부운하는 학자의 섣부른 기술로 복원될 자연이 아니다. 복원을 운운하기에 앞서 파괴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보전을 생각한다면 먼저 그를 위한 철저한 조사연구와 충분한 논의가 필수다.
나가는 글
얼마 전, 청와대가 한반도 대운하의 추진을 무기한 보류하기로 결정했다고 언론이 일제히 보도했다. 청와대나 국토해양부 내에 담당부서를 신설해 18대 국회 출범과 동시에 추진하려 했던 이른바 ‘대운하 특별법’ 제정도 보류할 것을 전제로 193개 국책과제에서 한반도 대운하를 제외했다는 것이다. 4월 24일 상황이다. “한반도 대운하는 반대 여론이 높아 당분간 추진하기 어렵다고 보고 청와대ㆍ정부가 직접 나서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며 밝힌 청와대 관계자는 23일, “특별한 계기가 생기지 않는 한 운하 추진은 무기한 보류되는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대신 청와대는 민간단체를 표방하는 ‘한반도 대운하 연구회’에 여론수렴과 홍보를 맡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운하를 완전히 백지화한 것은 아니”라고 부언했다. “한반도 대운하 연구회가 기술적 연구와 여론수렴, 홍보대책 등을 마련하고, 정치권의 여론수렴과 설득은 한나라당이 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현재 압도적인 반대 여론으로 잠시 보류하지만 결국 검토할 것이라는 의지로 들린다. 정부의 비호를 받는 민간단체의 홍보가 효과를 발해 지역에서 운하 요구가 표출되면 “지역 균형발전 차원”을 구실로 건설 명분을 찾으려는 술수로 보인다.
이래저래 안심할 수 없다. 지난 4월 17일자 경향신문은 수질오염과 생태계 교란을 비롯하여 사고의 위험성을 포함한 환경 악영향을 피할 수 없다고 보도했다. 대운하 건설업체들의 의뢰로 수행한 ‘설계보고서’라는 제목의 용역 결과를 15일에 입수한 경향신문은 ‘한반도 대운하를 반대하는 전국교수모임’의 ‘대운하 교수 연구단’ 박창근 상임집행위원장의 발언을 덧붙였다. “보고서에 대운하로 인한 환경 영향을 적시하면서도 설계 지침 등을 제안한 것으로 보아 결국 추진하겠다는 뜻”이라며 “국민 의사에 따라 실시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정부 발표와 달리 대운하 사업 준비가 꾸준히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걱정했다는 것이다. 결국 포기하지 않을 모양이다.
개신교에서 한반도 대운하를 저지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가운데, 법정스님이 “대운하 구상은 망령”이라고 호통을 쳤다. 옛말에 ‘뿔 하나 달린 짐승’이 온 세상을 파헤친다는 말이 있는데 바로 포클레인이라고 탄식한 법정스님은 “삼면이 바다이고, 고속철도와 고속도로가 있는 우리나라에서 운하는 타당하지 않고, 미국과 유럽도 물류기능을 철도 쪽으로 옮겨갈 만큼 운하는 세계적으로도 사양화하고 있다.”면서 “운하 건설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오직 땅값 오르기를 바라는 투기꾼들과 일부 건설업자들뿐”이라고 4월 20일 길상사 법회에서 지적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법정 스님은 “만약 운하 건설을 우리가 지켜보고만 있다면 우리는 이 정권과 함께 씻을 수 없는 범죄자”가 된다고 경고했다고 언론은 전한다.
경부운하는 물류비용에 주안점이 있지만 그 실효성은 실체가 드러날수록 의심하게 된다. 문제는 운하로 인해 경부운하 일대의 문화와 역사적 가치의 몰락, 그리고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를 동반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BC분석 결과 경부운하의 경제성이 2.3으로 분석되었다는 MBC 피디의 말을 듣고, 독일의 힐데가르드 아놀드 로트마이어 IFO 경제연구소 교통경제학자는 어이없어했다. 그 정도 수치라면 물동량이 세계 최대인 파나마나 수에즈 운하의 경제성에 맞먹는다는 거다. 4월 12일 방영된 PD수첩에서 그는 “독일은 갑문을 보수할 수는 있지만 절대로 새 운하를 건설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과거 자신의 경제성 평가의 실패를 인정했다. 현대의 운하는 뱃길을 크게 주려야 인정된다. 파나마와 수에즈운하는 1만 수천 킬로미터 이상의 항로를 200킬로미터 이내로 단축했지만 경부운하는 고작 210킬로미터를 단축하는데 그친다.
경부운하의 벤치마킹 대상인 독일의 MD운하는 마인강과 다뉴브강을 인공으로 연결한다. 171킬로미터의 구간을 1961년 착공해 1992년 31년 만에 완공했으나 1982년 타당성 논란으로 공사가 한동안 중단된 적이 있다. 경부운하는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 독일의 전 교통부장관이 “바벨탑 이후 인류가 저지른 가장 무식한 사업”으로 평가한 MD운하는 완공한 이후 이제까지 보수유지비 이외의 수익은 발생하지 않는다. 주민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관광산업 활성화를 약속했지만 그마저 어긋났다. 갑문 16개를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 때문이다. 초창기 반짝했던 승객들이 이내 흥미를 잃어 관광객 모집이 쉽지 않은 까닭이다. 마인강과 다뉴브강의 홍수와 운하 내의 결빙으로 운항 중단이 빈발하는 MD운하는 우리처럼 강을 파괴하며 활용하는 게 아니다. 강물을 끌어들린 수로에 불과하다. MD운하는 라인강과 다뉴브강이 베푸는 생명의 흐름을 차단하지 않았다. 한겨울이면 단단하게 얼어붙는 강을 통째로 저주할 경부운하와 다르다.
미국의 플로리다는 1920년대 강을 직선으로 만들어 운하를 건설했지만 현재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공사가 끝나자마자 닥친 홍수로 2000여 명이 희생되더니 2000년이 되자 토양 1.5미터가 유실된 것이다. 강과 운하가 오염되자 지하수마저 마실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더는 견딜 수 없어 공사비의 10배 예산을 동원하며 복원을 시도하지만 이미 파괴되고 오염돼 복원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마실 물도 회복되지 못한다. 2005년 미국의 뉴올리언스를 물바다로 몰고간 하리케인 카트리나는 운하 제방을 무너뜨렸다. 경부운하가 시작되는 부산은 해마다 태풍이 두세 차례 공격하는 길목에 있다. 그쪽의 제방은 안전할 수 있을까. 부산 일원의 인구는 뉴올리언스와 비교할 수 없다.
21세기는 운하의 시대가 아니다. 지구온난화는 물류의 개선이 아니라 억제를 요구한다. 철도화물을 배로 운반하는 게 친환경이 아니다. 친환경은 우리의 낭비적인 삶을 먼저 반성하고 개선하려는 데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지구온난화를 촉진하는 분별없는 개발과 아무 관계가 없다. 대량폐기로 이어지는 대량생산과 대량운송과 대량소비를 지양해야 국운이 후손에까지 지속 가능하다는 걸 지구온난화는 경고한다. 지구의 평균 온난화보다 그 정도가 심각한 우리나라에서 경쟁의 승리를 전제로 하는 ‘부강한 나라’를 추구하는 것은 후손의 처지에서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다른 나라를 지배해야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부강한 국가’는 에너지 낭비를 기초로 한다.
백두대간과 13개 정맥으로 이어진 우리나라에서, 계획된 격자형 고속도로는 지나치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도로정책도 이제 중단해야 할 시점인데, 한반도 대운하는 터무니없다. 주요 정책과정에서 빼는 척하며 여론의 추이를 살펴야 할 정도로 경부운하 건설에 미련을 둘 절박한 사유는 없다. 은근슬쩍 총선공약에서 운하계획을 없앤 현 정부의 솜씨는 내일을 몹시 두렵게 한다.
경부운하 계획이 잠시 수면 아래로 잠길지 결국 물 건너갈지 아직 확신할 수 없이 불안하다. 경부운하가 아니더라도 신자유주의 시대를 맞은 지금은 시민운동이 필요한 시기다.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의 저자 더글러스 러미스는 “민주주의 반대는 경제성장”이라고 주장한다. 지금은 ‘경제성장’이라는 마패 앞에 이웃과 후손과 그들의 생태계마저 위태로운 시대가 되었다. 지역에 뿌리내리려는 정주의식보다 돈 앞에 무력한 ‘먹튀현상’이 만연되었다.16) 경부운하는 먹고 튀는 현상을 심화시킬 것이다.
한반도 생태계의 근간을 흔드는 경부운하는 내일을 파괴한다. 아직 첫 삽을 뜨지 않았으니 경부운하와 한반도 대운하 계획은 철회되어야 한다. 경부운하보다 지역의 문화와 역사의 가치, 환경과 생태적 가치를 인식하고 보전할 수 있도록, 자식 키우는 시민들은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리고 개발 사업에 대한 정책 결정은 전문가만의 몫일 수 없다. 내일을 생각하는 시민과 먼저 합의해야 한다. (작가들, 2008년 여름호)
1) ≪경부ㆍ경안운하와 물류혁명≫, 주명건 외, 세종연구원, 1997년 4월. 세종정책연구 제2집으로 소개되고 있다.
2) 《지식인을 위한 변명》, 장 폴 사르트르 지음, 박정태 옮김, 이학사, 2007년.
3) 2008년 3월 27일, ‘한반도 대운하를 반대하는 전국교수모임’은 박석순 교수의 발언에 대해 “정치인이 되 버린 박석순은 교수로서의 본분을 망각하지 말라!”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채택하며 “더 이상 정치인들의 자가당착적인 행동을 모방하지 말고, 지조를 지키며 밤늦게까지 연구실의 불을 밝히는 학자로 돌아오길” 바란다고 일침을 놓았다.
4) 2008년 4월 현재까지 발간된 추진측의 책을 살펴본다. 당시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였던 유우익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하여 18명의 대학교수가 ‘한반도대운하연구회’라는 이름으로 모여 ≪한반도 대운하는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물길이다≫라는 제목의 두툼한 책자를 2007년 11월에 발간했다.(경덕출판사 간행) 그 책은 지리학자, 토목학자, 경제학자와 의외로 생태학자 들이 제시한 경부운하에 대한 계획을 소개하고 있으나 반대측이 제기한 문제에 대한 해명이나 비난은 없다. 이에 반해 추부길 목사는 한반도 대운하 시리즈를 표방하면서 홍보물에 가까운 ≪왜 한반도 대운하인가≫를 2007년 10월에 발간했다. 하지만 반대측의 논거가 시민사회에 알려지면서 반대 여론에 힘이 실리자 2008년 1월 ≪운하야 놀자≫라는 작은 책을 새롭게 펴냈는데 이 책은 반대측의 논거를 비하하는 내용을 숨기지 않는다. 두 권 모두 ‘말과창조사’에서 간행했다. 2008년 4월 한반도 대운하 연구회에서 《한반도 대운하 희망 스토리》가 개미와베짱이 출판사를 통해 발간되었다. 반대측을 비난하는 수위는 낮았지만 독자를 모독한다는 점에서 ≪운하야 놀자≫와 비슷하다.
5) 글쓴이는 척추동물 생태학을 전공했다. 따라서 경부운하의 경제성 평가나 토목 관련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논의를 위해 반대측이 출판한 몇 권의 책과 자료를 참고하였으며 반대측 인사의 여러 강연을 듣고, 직접 질문하여 들은 의견을 참조하였다. 이 글에서 서술하는 내용이 경부운하가 내포하는 문제의 전부는 물론 아니다. 미처 제기하지 못한 문제가 있을 것이다. 다만 이 글은 시민사회의 힘을 키우려는 데 있다. 시민의 힘으로 검증이 필요한 부분을 끌어내, 투명하고 공정한 논의와 조사를 지속적으로 실시할 수 있도록 여론을 끌어가야 한다고 판단하는 까닭이다. 참고한 책은 다음과 같다. ≪경부운하, 축복일까 재앙일까≫, 박진섭ㆍ장지영 지음, 오마이뉴스, 2007년 7월, ≪운하 안 하고도 대대손손 잘 사는 50가지 방법≫, 운잘모 지음, 현암사, 2008년 3월, ≪재앙의 물길, 한반도 대 운하≫, 환경운동연합 엮음, 환경재단 도요새, 2008년 4월, <강은 복수한다>, 한겨레21 703호, 2008년 4월 1일자, 80-130쪽. 이 책들은 추진측이 제시한 자료를 근거로 경부운하의 여러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6) ‘하상계수’는 1년 중 가장 많은 강수량을 가장 적은 강수량으로 나눈 값을 말한다. 하상계수가 높다는 것은 강수량이 고르지 않다는 걸 의미한다. 하상계수가 높으면 강의 수위는 급격히 변하므로 운하의 효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강의 하상계수는 1:390이고 낙동강은 1:372이며 우리나라 대부분 하천의 하상계수는 300에 가깝다. 우리가 벤치마킹하려고 하는 라인강의 하상계수는 1:18, 양쯔강은 1:22에 불과하다.
7) 네덜란드는 구리 30피피엠을 비롯하여, 카드뮴 30, 납 1000, 크롬 1000, 아연 2500, 수은 15피피엠이 넘을 때 하천을 준설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 수치를 오염이 심각하다고 알려진 낙동강 물금과 구포 선착장을 비교할 경우, 우리는 네덜란드 규정의 백분의1에도 미치지 않는다. 수치로 보아 우리나라 대부분의 강은 아직 준설이 요구될 정도로 오염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경부운하, 축복인가 재앙인가≫ 159쪽.
8) 2005년 8월, 중국 장강의 샨샤댐을 방문한 적 있다. 1만 톤 급 선박 2대를 동시에 들어 올릴 수 있는 갑문이 5기 설치되었는데 댐이 완공되기 전이었던 당시는 4기를 가동하고 있었다. 5기의 갑문을 빠져나가는데 설계상 3시간이 걸린다고 현지 가이드는 이야기했지만 크고 작은 선박들이 갑문 밖에서 대기하는데 5시간 이상이 필요했다. 자정 무렵 첫 갑문에 들어가 4번 째 갑문을 빠져나갈 때 시계를 보니 새벽 4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20만 척의 선박이 이동하는 장강의 규모는 한강이나 낙동강과 크게 다르다. 수량도 엄청나 70킬로와트 발전터빈을 26기 가동할 정도다.
9) 《운하 안 하고도 대대손손 잘 사는 50가지 방법》, 32-38쪽.
10) <자연 환경에 내려지는 사형 선고>, 안병옥, 《재앙의 물길, 한반도 대운하》, 도요새, 2008년 4월, 150-151쪽.
11) 1995년 개정된 ‘사회간접자본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에 의거, 예상 운영수익보다 낮을 경우 손실의 80에서90퍼센트를 정부가 보전해 주는 제도를 ‘최소 운영수입 보장제’라고 한다. 그런데 제도를 악용한 많은 민간 사업자가 수요 예측을 부풀려 손해를 높게 책정한 다음, 지원금을 터무니없이 받아가곤 했다. 공항철도의 사례가 언론의 도마에 올랐다. 정부는 첫해 955억 원을 공항철도에 지원한 이후 2006년까지 5년 동안 4000억 원이 넘는 세금을 지원하였으며 수입 보장이 끝나는 2020년까지 지불될 보조금이 2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경향신문, 2008년 1월 20일자)
12) 《운하 안 하고도 대대손손 잘 사는 50가지 방법》, 운잘모 지음, 현암사, 2008년 3월, 128-137쪽.
13) <경부운하, 경제적 타당성이 없다>, 홍종호,《재앙의 물길, 한반도 대운하》, 66-67쪽.
14) <조령산 수로터널 예정지역의 지질학적 문제점>, 김세현, 한국환경생태학회 학술논문발표회 요약집, 2008년 4월 18일.
15) <강은 복수한다>, 한겨레21, 703호, 2008년 4월 1일, 80-130쪽.
16) 먹고 튀는 현상을 세칭 ‘먹튀현상’이라고 한다. 부동산 투기는 물론 재산가치 향상을 위해 자주 집을 옮기는 요사이의 풍조도 먹튀현상일 것이다. 다정한 이웃과 더불어 사는 마을에서 뿌리내릴 기회를 차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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