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겹고 역겨운 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하고요.
역겹다고? 구토를 하고 싶다고? 오바이트 하고 싶다고? 웩!! 지저분한걸! 그런데 ‘역겨워’라는 용어가 역겨울텐데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웬일일까? 묘하군.
역겨운 녀석을 고이 보내드리온다고? 너무 겸손한 거 아냐? 극존칭으로 이별한다고?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영변의 약산을 사진으로 보니 핵발전소 바로 옆에 있군. 걸어서 20분도 안 되는 거리에 핵발전소가 있어. 아, 끔찍해. 진달래꽃들이 모두 방사능을 마시면서 돌연변이가 될 것 같은데? 근데 말야, 진짜 웃긴 것은 진달래꽃을 꺾어서 선물로 주거나 가시는 길에 뿌리는 거야. 나는 한 번도 진달래꽃을 따다가 길바닥에 뿌려본 경험이 전혀 없거든. 이거 새빨간 거짓말 아닌가? 장미꽃이면 이해를 하겠어. 진달래꽃을 뿌린다는 내용은 이 시를 읽기 전에 단 한 번 도 본 적이 없거든.
하여튼 우리가 사랑하지만, 네가 나를 토하고 싶을 만큼 역겨워서 떠난다면 나는 너한테 욕도 안 하고, 복수도 안 하고, 징징거리지도 않고, 말없이 고이 보내주고, 너의 가는 길 위에 진달래를 아름아름 따다가 고이고이 뿌려줄 거야. 아, 말도 안 돼.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를 역겨워하는 님에게 정중하게 부탁까지 하네. 근데.....‘즈려밟고’라는 시어는 정말 압권이야. 입에 착착 달라붙어. 어깨에, 혀에, 마음에 쩌억 달라붙어. 이토록 매력적인 시어가 어디 있을까? 즈르밟다가 맞는 어법에 맞는 표현이래. 내리눌러밟으라는 의미래. ‘밟다’에 접두사 ‘지르’가 붙은 파생어. 정말 너무 멋진 파생어야. 낙엽을, 첫눈을, 새싹을 살짝 지그시 내리누를 때 쓰는 연약한 접두사. 그런데 왜 자꾸 ‘짓이겨밟고’의 의미가 중첩되는 것일까? 이게 정말 매력포인트란다. ‘사뿐히 짓이겨밟고’로 말도 안 되게 해석되어서 말도 안 되는 상황의 말도 안 되는 마음 상태를 기막히게 표현하고 있는 것만 같아.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죽어도’라는 시어가 이처럼 짠하게 생사를 넘나들게 할 줄이야. 살아도 죽은 것만 같고, 죽음 너머까지 넘나드는 것만 같은 사랑과 인고와 순종의 아픔이 느껴져. ‘아니 눈물’도 너무 기가 막혀. ‘아니’라는 부사어가 ‘흘리우리다’와 호응이 되어야 마땅한데 자꾸 낭송을 하면 ‘아니’가 ‘눈물’과 호응이 되고, 더 나아가 ‘아니눈물’이라는 새로운 비통사적합성어가 사전의 표제어로 등록될 것만 같아. ‘아니눈물’이라는 새로운 신조어를 들어봤어? 짠 눈물, 싱거운 눈물, 뜨거운 눈물, 매운 눈물은 있어도 ‘아니눈물’은 도대체 무슨 눈물이지? 어떤 눈물이지? 그래서 ‘죽어서도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의 반어법으로 읽히는 것이 아니라, ‘아니눈물이라는 눈물을 죽어서까지 저승에서도 펑펑 흘리고싶다’는 절절한 의미로 해석이 되는 걸? 이상하지? 너무 놀랍지?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마법같은 작품이야.
언어의 마법, 어휘의 마법을 부리는 시!!!!
----------------------------------------
인터넷을 살펴보니 사투리버전이 있네. 참, 대단하네.
*강원도 버전
나보기가 기 매해서 들구버질 저는
입두 쩍 않구 고대루 보내드릴 기래요
영변에 약산 빈달배기 참꽃
한 보뎅이 따더 내재는
질라루 훌훌 뿌레 줄끼래요
내 걸리는 발자구 발자구
내꼰진 참꽃을
지져밟고 정이 살페 가시우드래요
나 보는 기 재수바리웁서
내 툴저는 뒈짐 뒈졌지 찔찔 짜잖을 기래요
*경상도 버전
내 꼬라지가 비기 실타고 갈라카모
내사마 더러버서 암 말 안코 보내 주꾸마
화왕산, 천주산 진달래꽃
항거석 따다 니 가는 길빠다게 뿌리 주꾸마.
니 갈라카는 데 마다 놔뚠 그 꼬슬
사부자기 삐대발꼬 가뿌래이
내 꼬라지가 비기시러 갈라카몬
내사마 쌔리직이삔다케도 안 울 끼다.
진짜다 마, 하모. 내사마 안 운다 안 카나.
*전라도 버전
나 낯빠닥이 뵈기싫어 간다먼
주딩이 딱 다물고 보내줄라요.
지리산, 영취산 진달래꽃
허벌나게 따다가 가시는 질가상에 뿌려줄라요,
존일헌다고 갈 때마다가 그 꼬츨 사뿐허니 밟고 가시요
나 낯빠닥이 뵈기싫다고 간다먼
워메 환장허것네. 난 뒈져도 눈물은 안 흘릴라요.
근디 뭣땀시 고로코롬 허야 쓰거쏘 잉.
나가 시방 거시기가 허벌나게 거시기허요잉.
*충청도 버전
이제는 지가 역겨운 감유
가신다면유 어서 가셔유
임자한테 드릴건 없구유
앞산의 벌건 진달래 꽃
뭉텅이로 따다가 가시는 길에 깔아 드리지유.
가시는 걸음 옮길 때마다
저는 잊으셔유 미워하지는 마시구유
가슴 아프다가 말것쥬 워~쩌것시유
그렇게도 지가 보기가 사납던가유
섭섭혀도 워~쩌것시유
지는 괜찮어유 울지 안컷시유
참말로 잘가유 지 가슴 무너지것지만
워~떡허것시유 잘 먹고 잘 살아바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