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정과 인도語」
선구자 조 수 미
조 수 미 - '선 구 자'
손경달 동문이 홈페이지에 올린 중국의 동북아공정과 윤직홍동문이 쓴 한국어와 인도어를 읽으면서 우리 민족의 원류와 한국말에 관심을 가졌던 2년전 일이 다시 생각난다.
1992년에 한국전시장개관식 축하대표로 흑룡강성 할빈에 가서 축사를 할때 만주땅을 휩쓸었던 고구려를 회상하면서 깊은 감회에 잠겼는데 당시만해도 잠자는 사자 --중국이 이제는 古朝鮮의 역사를 부인하는 동북공정?을 감행하였다.
그런데 우리 정부나 학계의 대응은 너무도 무력하였고 세계13위의 경제대국이라고 자만하면서 소련까지 던져버린 사회주의 좌파이념을 떠들어대면서 탁상공론만하고 나라안이 분렬되니 마치 이조말 나라를 빼앗기던 때를 보는것 같이 불안하였다.
그럴때는 역사적으로 항상 당하기만--
국민들도 요즘 흔한 촛불도 전혀 없었다.
사대주의 근성?
중국이 백두산을 파헤치고 관광지로 개발열을 올리는데도 북한은 꿀먹은 벙어리이면서 직항관광코스를 열 엄두도 않고 남한을 향해서만 가시걸린 목소리로 매일 민족 민족만 되풀이하면서 막말하고 있으니
韓민족이라는것이 참으로 한심스러웠다.
사대주의 근성?
1983년에 해외에서 중국 동남아 교포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누군가가 한국은 기자조선이래로 중국의 식민지였다고해서 화난적이 있는데
지금 생각하면 일본 교과서뿐 아니라 중국 교과서도 모두 그런식인것 같다.
우리가 빈만년의 역사--라고 우리들끼리 떠들어봤자---남한과 미국에 대놓고 막말하는 김정일도 중국 앞에서는 슬슬 매는것 보면 역시 식민적 사대성격이라--
왜 동북공정이--고조선을 들먹이나해서--도대체 우리 단일민족이란게 누구 자식이길래 요렇게 악랄하게들 물고 뜯고 쌈질만 하는 저질인지
너무도 궁금해서--
직장생활이후 가본적없는 책방에 가서 중국역사.한국역사 .한민족의 성씨 등등 10권념게
한꺼번에 책을 사서 읽었다.
결론은 단일민족이란 그림자도 없고 완전히 잡종이라--혈연(피)으로서는 우리 민족을 찾기 어려울 것 같아 언어(말)로 민족의 동질성을 찾아보려다 힘에 부쳐서 그만두고 말았다.
해방직후 어릴때 중국인을 대(때)국놈이라고들 했고 다 쫓아냈는데 올림픽 메달 휩쓰는것을 보니 6,25때 중공군인해전술이 생각나니 요주의---
윤직홍동문의 글을 읽다가 느낌은 성씨중에 崔 裵 薛 鄭 경주李 孫씨들은 모두 인도 인종의 핏줄기같다.
박혁거세를 추대한 6촌장은 모두 인도인이었다.
수년전 김종필씨가 티비인터뷰에서 과데말라(중남미) 며느리를 본 소감을 묻자 대답왈 "우리 조상이 일찌기 인도여자와 국제결혼했으니 아들도 얼마든지--"라 하였다한다.
김해 김씨 원조인 김수로왕이 인도 간지스강 부근 아요디아국 출신 공주?(허황옥)와 결혼한
역사를 설명한것이다.
가야. 가락이라는 나라 이름도 고대 인도말로 물고기라 한다. 그러니 김해 許씨도 인도인이다. 실제로 피부가 까무잡잡한 사람이 많다고한다,
서라벌 서울 ----가라 가야가 모두 인도 말이고 비슷한 시기에 수많은 인도 베트남등지에서 보트피플이 남한일대를 점령한것이다.
그래서인지 경상남북도에 미스코리아출신도
많다.
단군조선의 단군왕검은 만민은 평등하다는 홍익인간 정치이념으로 존경받고 펑화를 사랑해왔다는데 우리 역사를 보면 오히려 항상 극심한 양반제도의 관념으로 사회적 신분차이가 두드려져 백성간의 갈등과 국가 발전의 방해요소로 작용했는데
단군조선이후 이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최고 권력층인 성골. 진골의 엄격한 신분제가 몇 천년동안 잠재적으로 굳어진 탓이 아닐가?
이런 聖골眞골은 경주 부근의 촌장들이었던 신라 귀족회의 6부의 권력층이 인도의 신분제인 카스타계급제도를 정착시킨 탓이 아닐가?
casta란 산스크리트말로 verna인데 피부색갈로 사람을 가리어 정권을 유지하는 철저한 인종차별정책이다.
카스타제도는 핏줄(혈연)의 貴賤에 다라 옷색갈, 집의 크기.出世등을 규제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적자와 서자까지도 규제하였고
양반.상놈을 구분하였다.
신라에서 불교가 성행했는데 중국에서 불교가 들어오기전에 이것 역시 인도 출신 6촌장의 영향이 아닐가?
경주 석굴암의 부처는 중국것과는 다르다며
우리는 (인도)민족의 창조성을 자랑한다?
인도의 시인 타골이 죽기전에 "코리아!! 언젠가는 동방의 등불이 되리라" 하여 무슨 뜻인가 이상타했드니 인도인을 주축으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인도인이 추대한 "박"씨 대통령이 한강의 기적을 일구냈다?
인도계 한국인들은 정권유지차원에서 처음에는 왕도 성골에서만 뽑다가 아들 핏줄이 끊어져 대신 여왕(진덕)을 세운 이후로는 성골도 끝나고
세습제가 아닌 선양제(석탈해왕)를 하게되어 고구려.백제의 유민들이 섞인 진골(한민족계:김춘추)에서도 왕이 나오기 시작--
이후 통일전쟁바람에 차차 한국계의 왕권이 강화되었으나 혈연중시의 인도 골품제는 물론 지속되었다.
다만 인도 카스타와의 차이점은 관료관등계급출세에 일반 서민의 불만이 많아 과거제를 처음으로 시행하여 출세를 어느정도 허락한것이다.
브라만종교. 힌두교하의 인도 서민들은 종교적 윤회(업: 카르마)관념으로 출세, 계급.현세에
대한 불만이 없었다.
신라의 골품제가 얼마나 심각했는가는 첫 추대된 박혀거세이외는 박씨 왕이 거의 없고 6부제 화백회의 인도 출신 족장들 입맛대로 왕을 정한것이라고 본다.
인도 브라만교 힌두교당시의 카스타운영방식과 같았다.
신라는 인도인 6姓의 나라였고 韓민족인 고구려와 백제는 중국(唐)과 인도계 민족에의거 멸망되어 만주땅을 영원히 뺏긴것이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건국정치이념이 다물(鹿語謂復舊 土爲"多勿"믈)인데 그 핵심은 고조선의 옛땅을 찾는다는 거친 꿈이라는선구자의 노래내용과 같은것으로--다물정신은 발해까지 이어왔는데
중국이 고조선의 존재를 부인하니 역사 살리기라도 후손들이 이룩하여야 할것 같다.
관료호칭도 고구려(막리지)와 신라(거서간)의
것이 완전히 달랐다.
인도말과 한국말? 언어의 차이--
역사를 규명하러면 유물 유적의 고증방법도 있지만 언어학적 분석방법도 있다는 말을 듣고 우랄알타이어와 한자표기가 아닌 순수 우리말을
몇가지 찾아 보았다.
몽고말로 알타는 금(金)이고 알타이산을 金山이라한단다. 금산에 살던 북융족이 김씨 성의
조상이라한다.
단군 왕검이 조선을 세우고 첫 도읍지를 아사달에 정했는데 아사는 아침(朝) 첫. 새(新)의 의미고 달은 산 땅(地)(음달.양달의 달)을 의미하여 아침의 땅 아침의 나라 라고 한다.
안시성을 아리티로, 배달이라는 말은 박달(나무)에서 밝다로 변했다.
중국 고사를 보면 신화라도 삼황오제들은 모두 성, 이름.호를 부치는데
우리의 단군은 왕검이라는 표현뿐이고 성 .호는 부쳐주지도 않는다.
후손인 우리의 마음가짐이다. 중국은 주 무왕때 삼황오제의 신화 이야기를 제대로 정리했느데
우리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그런것은 전연 없고, 기록마저 소흘하다.
겨우 일연의 삼국유사에 언급한 위서(중국)와 제왕운기의 野史만으로 단군을 확인하고 있고 요즘은 단군을 신화로만 치부시켜 민속 미신 취급을 하고 있다.
건국신화없는 민족이 있나? 한심한--중국이
고조선을 부인할만 이유--
몽골어로 당굴은 무당인데 단군은 제사장이므로 당굴에서 나왔다?
왕검은 동이족의 말로 이두식으로는 임금과 같은 말이라고 한다?
"검"은 곰 .대인의 의미란다.
왕이 성이고 검이 이름인줄 알았는데? 확실한
기록은 하나도 없다
단군은 중국史를 보면 有熊國, 우리 기록은 熊心國에 살다가 제사장=임금君으로 추대되면서
朝鮮을 세웠다.
중국 魏書를 보면 國號를 조선이라 했다는데
국명을 사용한것은 중국보다 빨랐다.
중국은 삼황오제 요순상까지도 국호가 없다가 夏때에 처음으로 국호사용을 시작하였다.
단군은 중국 요와 같은 시대이니 씨족부족사회에서 국가사회로 훨씬 빨리 발전한것이다.
유웅국이나 웅심국이라는 표현은 단군시대의 우리 민족은 전투시에 곰가죽을 뒤집어썻기 때문에 나중에 단군이 곰熊女의 자식이라는 신화가
나왔을 것이다?
고대에는 정치와 종교일치니까 임금=제사장이므로 단군은 제사장(당굴)의 칭호이고 왕검은
제사장의 이름(姓?명?)으로 본다.
중국에서는 삼황오제나 왕들만이 姓을 가질수 있었다는데 우리 국조 단군이 성이 없으면 동북공정에서 문제될수 잇으니 지금이라도 성은 王씨이고 이름은 검이라고 정해야 할것이다,
문제는 단일민족이라는 우리나라에 왕씨가 거의 없으니----
단군조선이 위만조선에 멸망 당하면서 王씨들이 살아남기 위해 밭 田자로 성을 바꾸었고 고려 시조 왕건의 조상만이 성을 유지하다가 고려가 멸망 당하면서 이조 초기에 왕씨들이 살아남기
위해 온전할 全자로 개명했다는데
田씨나 全씨의 원조가 王씨이고 단군 왕검인지를 연구해볼만 하다.
그렇다면 단군의 성은 王씨가 확실하다
언어학적으로 알타이계에 속하는 東夷족은 중국 漢족과 말의 語順이 다르다.
중국 漢족의 어순은 영어와 같으므로 중국민족은 영어를 잘한다. 일본민족은 우리와 어순이 같으므로 영어가 떨어진다. 인도인도 영어를 잘한다. 영어를 잘하는 한국사람은 순수한韓민족이 아니다?
東夷란 오량캐라는 말로 중국 漢족이 동쪽의
우리를 존경?해서 부른 말이다.
황하주변에 살던 漢족은 소수 민족을 9개의
오랑캐로 九夷라 불렀는데
춘추전국인 중국천하를 통일한 진시황도 결국 몽고와 우리 동이족때문에 만리장성을 요하서쪽에 쌓았기 때문이다..
요하와 만리장성이 단군조선과 중국 진(진시황)의 확실한 진짜 국경이 된것이다.
1500년이된 단군조선도 쇠약해질 무렵 부여 옥저 맥 --등등 만주땅이 정치적 혼란에 쌓일때 호시탐탐 漢무제가 요하 동쪽을 차지하고 한사군을 세웠고
만주를 통일한 고구려의 고주몽이 다시 낙랑을 탈환했다.
이 많은 땅을 신라가 삼국통일의 대가로 중국(당)에게 그냥 주었으니 통일이란 우리민족에게 멸망을 길을 걷게한 원흉이 아닐가?
왜 그러냐? 지금 남북통일한다고 하다가 -------막판에 중국이 북한을 또 차지하면 인도계
한국만 남지 않을가?
중국문화를 연구하면서 상형문자 .말. 기록을 분석하여 동이족의 말의 어순을 밝혀내므로서
역사적 증거를 찾아야 할것 아닐가?
언어학을 전공한 동문들의 몫이다.
왜냐하면 삼황오제중에 복희씨 신농 심지어 헌원까지도 그리고 진시황도 동이족이라는 학설과
증거가 나오고 있기때문이다.
그렇다면 원래 중국땅의 주인은 동이족이다,
동이족이 중국을 계속 침입한것은 원래 자기들 땅이었기 때문이다.
실지로 만주족인 동이인 금나라와 청나라가
중국 본토를 다시 차지했다.
자꾸 쭝얼거리다보니 나는 누구인가?
횡설수설?
영어를 잘하는 漢족은 어디서 왔을가?
글:강립
출처:http://egloos.zum.com/kdcaaa/v/57097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