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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9일 (화)
6시 어둠 속에 호텔을 출발하여 6시 30분에 쿠사다이 항구를 출발하여 그리스의 밧모섬으로 향하는 배를 탔는데 우리 일행만이 탄 작은 배였다.
새파란 바다를 배가 순조롭게 가서 좀 더 스릴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갑자기 소낙비가 세차게 쏟아지고 산 같은 하얀 파도가 무섭게 달려들었고 배가 심하게 흔들렸는데 연세가 많으신 사모님께서 멀미 때문에 이층 간판에 앉아 계시며 앞에 있는 나무를 꼭 붙들고 계셨고 나는 사모님의 허리를 꼭 잡고 하얗게 달려드는 무서운 파도를 보고 있었다.
소낙비를 흠뻑 맞으며 참으로 무섭고 스릴 만점이었고 소리지르며 “주여!”를 외쳤다. 사모님께 내려가자고 했지만 무서워서 내려가지 못하셔서 나 혼자 층계를 내려와 아래 선실로 들어와서 목사님들께 이야기를 하니 서너 분의 목사님들이 올라가서 모시고 내려왔다. 참으로 일생 처음으로 세찬 파도와 풍랑을 맛보았는데 예전에 조그마한 배를 타고 풍랑 속에 가셨을 사도 요한을 생각했다.
그리스 밧모섬 : 12시에 아름답고 하얀(모든 집들이 하얗다 - 그렇게 지어야만 한다고 한다) 스칼라 항구에 도착했는데 날이 환하게 개어 있었다. 이곳은 활화산 지대로 인구 3,500명이 모두 희랍 정교도들이고 365개의 교회가 있다고 한다. 인구 10명당 교회가 하나씩이라는 말인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길가에 개집 크기의 조그만 집들을 세워 놓고 죽은 사람들을 기념하는 곳이라고 하며 그리스인들은 그런 것들을 교회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고 씁쓸했다. 15년 전부터 고등학교가 세워졌고 흙, 나무들을 육지에서 실어와 아름다운 나무와 꽃들과 하얀 집으로 여름에는 순례객들이 많이 오고 있다고 한다. 옛날에는 사형수 다음으로 죄인들이 오는 돌산 황무지였는데 오늘에는 아름다운 관광지로 언제나 손님들로 들끓는 성지가 되어 있었다. 관광버스를 타고 사도 바울의 계시 동굴에 가서 요한이 닿았던 바위 위의 이마 자국과 손잡이 자국을 보았다. 이 동굴은 자연 동굴로 옛날 그대로라고 한다.
밧모섬 제일 높은 곳 정상에 있는 모나스트리(수도원)에 가서 성당에 들어갔는데 성화와 모든 장식품들을 온통 금색으로 화려하게 해놓았다. 밖에 나오니 검은 옷을 입은 두 명의 남자 수도사들이 종을 치고 있었는데 이곳에 30여 명의 수도사들이 있다고 한다. 3개의 초등학교, 알몬드 나무, 꽃들이 많은 이곳은 보이는 천국같이 아름답기도 하다. 그러나 이곳 그리스 사람들은 거의 성경책이 없고 성경을 읽지 않고 주일의 개념도 없고 세례식, 결혼식이나 예식이 있을 때에만 교회에 가는 그런 성도들이라고 한다. 말씀을 도무지 모르고 오직 성화를 통해서만 이해하는 그런 사람들로 성화는 저들의 성경책이 되므로 매우 중요한 숭배의 대상이 된다.
12시 30분부터 4시까지는 낮잠을 자는 시간이므로 상점도 문을 닫아 조용한데 우리를 위한 식당만 문을 열고 우리에게 점심식사를 제공하였고 저녁 7시에 다시 한번 저녁을 그곳에서 먹기로 하고 우리의 짐을 그곳에 맡기고 그곳의 화장실을 쓰는데 여러 사람들이 쓰려니 눈치가 보이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주인들도 친절하지가 않았다. 밧모섬 사람들은 무뚝뚝하고 교만한 인상들이었고 터키인들은 오히려 순진하고 착하게 보였다.
7시까지 두어 시간 남은 시간에 밧모섬의 하얀 집들을 돌아보니 잠을 자는 시간이라선지 조용하고 너무나 쓸쓸하게 보였는데 해변에는 크루즈인지 아주 큰배가 많은 사람을 꾸역꾸역 토해내고 있었다. 이곳에 한국 사람은 외로워서 못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7시까지 남은 시간에 길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계시록 연구를 많이 하신 노 목사님께서 열강을 하셔서 공부를 잘 하고 저녁이 되어 먹고 쉬고 있는데 늦게 오신 목사님이 밧모섬에서 사역하시는 한국 선교사님 부부를 모시고 와서 또 그분의 뜨거운 교회사 강의와 이곳에서의 사역을 들었다. 사모님의 성함을 들으니 인터넷에서 만난 아는 사모님이어서 너무나 반가웠다. 일전에 이곳의 사역이 너무나 힘들고 외롭다는 탄식을 읽고 마음이 아팠던 그 사모님이었다. 이곳에 한국 사람이 산다면 참으로 외롭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
밤 9시 30분에 식당은 문을 닫아야 하므로 우리들은 짐을 갖고 해변에 나와서 밤 12시 배를 기다려야만 했다. 그 동안 가까운 곳에 있는 그 사모님의 집으로 걸어가서 여러 가지 이야기도 나누고 인터넷 메일도 열어보았다. 사모님이 고추장과 맛있는 양배추를 마침 오늘 잔뜩 담았다고 하며 많이 싸주셨는데 오늘 저녁에 먹었더라면 너무나 좋았을 것이었다. 배를 타고 와서인지 속이 느글거려서 옆 사람이 먹는 장아찌가 너무나 먹고 싶었지만 내 차례가 오지 않았는데 이렇게 많은 고추장과 김치를 얻게 되다니 …. 가지고 와서 회장 목사님께 드렸다.
선교지에 와서 이렇게 얻어 가기만 하면 미안한데 그래도 좀 전에 금일봉 헌금을 해서 마음에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이곳은 육지에서 모두 가지고 오므로 물가가 비싼 곳이기도 한데 사모님이 많이 주려고 애를 쓰셨다. 너무 외로운 모습에 가슴이 아팠지만 이 우상단지 밧모섬에 꼭 필요한 주님의 종이셨다.
밤 12시에 큰배가 와서 우리들은 무거운 짐을 들고 층계를 올라 네 사람이 함께 자는 이층침대에 다른 목사님 부부와 같이 자게 되었는데 하얀 수건들을 하나씩 주었고 샤워장도 있었지만 화장실과 모든 것이 더럽고 불편하고 조심스럽기만 했다. 그래도 몸을 길게 누울 수 있는 침대에서 자며 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11월 10일 (수)
아침 7시 30분 아테네 피레우스 항구에 도착해서 최 장로님은 비행기를 타시고 이스탄불로 돌아가시고 새로운 안내자를 만났다. 이곳에서 집시 선교를 하시는 고경진 목사님이 버스로 우리를 마중 나오셨고 김밥과 김치를 가지고 오셔서 버스 속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먼저 그리스에서의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말씀하셨다. 절대로 손바닥을 쫙 펴서 상대방에게 보이지 말 것인데 그것은 욕이 된다고 한다. 첫째, 식당에 가서는 얌전하게 먹지 말고 큰 소리로 즐겁게 떠들며 먹고 둘째, 천천히 먹어야 더 맛있는 것이 나온다고 하며 한국 사람들은 빨리 먹고 빨리 가려고 해서 대접을 잘 못 받는다고 한다. 셋째, 코는 큰 소리로 많이 풀어도 되지만 재채기는 균이 나온다고 싫어한다고 한다. 넷째, 물건을 살 때에 터키에서는 값을 많이 깍지만 여기서는 절대로 깎지 말고 사야 한다고 했다.
그리스 : 국명은 희랍공화국으로 수도는 아띠끼 지방의 아씨나(아테네)이고 종교는 그리스정교(Greek Orthodox Church), 혹은 동방정교, 희랍정교로 주민등록증에 종교를 기입하게 하고 자기의 종교를 믿어야만 주민등록증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사제, 보제들은 결혼한 사람들로 한 번만 처녀(과부, 이혼녀는 안됨)와 결혼해야 하고 주교들은 결혼하지 않은 성직자나 홀아비가 된 사제들 가운데서 선출한다.
국토는 한반도의 3/5정도로 미국 알라바마 주와 같은 작은 나라이다.
로마와 오스만 터키 등 많은 외세의 지배를 받아 오다가 1947년 미국 대통령 트루만 독트린에 따른 미국의 군사 및 재정 원조로 1949년에 내란이 종식되고 입헌 군주제(왕정)로 복귀되었다. 그 후 군사정권, 신민당 정권이 되었다가 지금은 사회당의 시미티스(Simitis) 수상이 집권하고 있다.
그리스문화는 ① 베란다(발코니) 문화로 내부와 베란다가 얼마나 크고 아름답고 좋으냐로 빈부를 따지며, 우리 나라처럼 차를 가지고 빈부를 따지지 않는다고 한다.
② 가족문화로 1층 가게, 2층 처가, 3층 시집 식구가 살며 시집과 친정 식구가 같은 아파트에 다 모여 살면서 부모님과 아이들 대가족제도로 살고 결코 아내, 남편 따로 다니지 않고 내년에 온 가족이 어느 섬에 가서 즐겁게 놀까를 항상 계획하는 철저한 가족중심이고 보수주의이며 전통을 고수하는데, 따라서 홍등가가 없다고 한다. 1,500 가족 당 한 쌍이 이혼하는 비율로 이혼율도 아주 작다. 세속화, 현대화를 싫어하고 보수화, 전통을 고수하며 가족중심을 철저히 지킨다고 한다.
③ 밤, 저녁문화로 낮잠을 자는 대신 밤과 저녁에 가족끼리 외식하고 술을 먹으러 가며 즐긴다고 한다. 일주일에 2.8회 외식을 하고 공원에 가면 남자들이 아기를 보고 여자들은 끼리끼리 모여 수다를 떠는 여자중심의 사회라고 한다.
공무원들은 월요일, 수요일 오후 2시에 퇴근하고 모든 업무 처리는 ‘시가 시가(천천히 천천히)’ 즉 지극히 느리며 생활관은 현실만족으로 후세나 장래를 위하기보다는 금일의 향락과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인생을 즐기는 경향으로 악착과 끈기가 결여되어 있으므로 사회발전이 안 되고 있고 무더운 날씨로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낮잠 자는 습관은 겨울철에도 계속되어 외국인들을 많이 불편하게 하고 있다.
이방인이 그리스에서 시민권을 받으려면 10년 동안 그리스인과 살아야 하고 그리스말로 시험을 보고 그리스 정교를 믿어야 한다. 이방인들이 그리스에서 살 수 없게 하고 모든 종교활동은 안 된다. 그리스인 가정에는 집에 성경책이 없고 주일에는 가족끼리 놀러 다니기에 바쁘다.
아테네(현재명/아씨나) : 아테네는 그리스 남부지방에 위치하여 있고 삼면이 바다(에비아 만, 사로니꼬스 만, 꼬린소스 만)로 둘러싸여 있는 아띠끼 지방의 한 도시로 아테네는 삼면이 산들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 형식의 그리스 문명의 요람지라고 할 수 있는 유럽 대륙 한 모퉁이의 빛과 지성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참으로 귀중한 도시이다.
아씨나(아테네)는 포세이돈(남)과 힘을 겨루어 이기고 선정되어 여신의 이름이 현재의 지명으로 사용되어지고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위로하기 위해 최남단 수니온이라는 곳에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위로하기 위해 장엄한 신전을 지었다고 한다.
아테네의 황금시대에는 페리클레스(개혁으로 인한 아테네의 민주정치), 소크라테스, 플라톤, 크세노폰,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 철학자들이 많이 있고 많은 조각품들이 있는 문화와 예술의 도시이며 무엇보다 많은 토론으로 의회 정치인 민주주의 기초를 만든 본산지라고 할 수가 있다.
고린도 운하 : 고속도로의 톨게이트를 조금 지나자 길이 6.34km, 폭 20m, 수심 10m의 동방의 에게해와 서방의 고린도 만을 연결하는 좁고 긴 고린도 운하를 보게 되는데 이 운하는 67년 네로 황제가 유대인을 포함한 죄수(노예) 6,000명을 동원하여 공사에 들어가자마자 황제 자리에서 밀려나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그후 1893년 프랑스 기술진에 의해 완공되었다. 이 운하는 여객선 같은 큰배는 통과할 수가 없고, 폭이 좁아 배들은 일 열로 일방통행을 하되 배가 통과할 시 양쪽 끝에 있는 다리는 10m의 바다 속으로 잠기게 되어 차량들은 다리가 올라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 운하를 통과하여 이탈리아로 항해하면 반도를 돌아가는 것보다 10시간(약 400km) 정도가 줄어들게 된다.
아크로폴리스 : ‘높은 곳에 세워진 도시’라는 뜻으로 높은 언덕 위에 웅장하게 세워져 있는데 성역과 도시 방어의 역할을 하였다. 안에 많은 유물들이 있었으나 전쟁으로 다 파괴되어 지금은 박물관에 남아 있는 것 외에는 이곳에는 없지만 대리석으로 된 그 웅장한 기둥과 겉모양만으로도 많은 관광객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아테네 도시를 내려다보면 참으로 경치가 아름답다.
아그립바 기념 좌대, 승리의 여신 니까 신전 : 입구에는 거대한 문이 동쪽으로 나있는데 모두 장엄한 모습이고 대리석으로 되어 있다.
파르테논 신전 :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 고적 1호이기도 하며 그리스 고적 1호이기도 하다. 디아의 딸을 위한 신전으로 파르테논이라고 부르게 된 동기는 아씨나가 처녀(동정녀)라는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고대 올림피아의 유명한 조각가 피디아스가 감독하여 두 명의 건축가를 중심으로 건축이 되었는데 수많은 웅장한 기둥이 보는 사람들로 경탄하게 만든다.
이 신전은 페르시아의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만들어졌는데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에는 이곳이 성 쏘피아 교회로, 오스만 터키의 지배하에는 회교 사원 및 탄약고로 사용되는 비극의 신전이다. 이 신전을 빼앗으려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군대가 쏜 폭격에 탄약고가 맞아 폭발하기도 하는 비극을 겪었고 막대한 양의 유물들은 현재 대영 박물관, 루부르, 코펜하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매년 일천만 명이 이 신전을 찾는 이유는 일반인들이 생각할 수 없는 건축학적, 기하학적으로 뛰어난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아레오바고 : 아크로폴리스의 입구에서 50미터 내려가면 조그마한 대리석으로 된 언덕 가운데 계단이 있는 장소로 아리스의 언덕이라고도 불리는 곳으로 흉악범들에 대한 재판정 및 최고 의회 혹은 귀족 의회가 열리는 곳이었다.
사도 바울이 이곳에서 복음(행 17: 22-32)을 전하여 세 종류의 반응을 얻었는데 첫 번 째는 조롱하는 사람, 두 번째는 신비하고 재미있다고 다음에 또 듣겠다고 하는 사람, 세 번째는 그들 중에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고 하는 여인과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인데 그러나 모든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은 헬라인들에게는 어리석은 일이었다(고전 1:23). 언덕 오른쪽 하단에 사도행전 17장 22-32절까지의 말씀이 동판에 기록되어 있다.
제우스 신전, 아드리아누스의 문, 아씨나 청동 상, 헤롯 안티커스 음악당, 디오니소스 신전 터 및 극장, 헤파이토스 신전, 아고라(고대시장 혹은 저자거리)
목사님 한 분이 비디오 찍다가 넘어지셔서 바위에 머리를 다쳐서 병원에 가시다.(비가 와서 미끄러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