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8경도’와 ‘방어진12경’
울산제일일보
승인 2016.09.07 20:49
1970년대 초까지는 울산 동구에 들어서면 삼면의 해안을 따라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면서 자연(自然)의 의미를 거스르지 않고 생긴 그대로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구한말쯤에 남목을 중심으로 지역의 선비들이 모여 ‘남전시우회(藍田詩友會)’ 같은 모임을 만들고 시문을 짓고, 지역문학의 지평을 열어갔다.오늘날 전해지는 ‘동면 8경’은 ‘남전시우회’에서 동면(東面)의 자연풍광을 엄선해서 정한 경승지를 일컫는다. 이는 당시 목관의 관아가 있던 남목을 중심으로 선정된 것이었고, ‘방어진 12경’은 이 때문에 뒷날 방어진읍 전체를 아우르자는 취지에서 생겨난 것으로 추측된다.본래 ‘8경’이란 북송 때 이성(李成)이 ‘소상8경도’를 그리면서 생긴 개념으로 보인다. 송적(宋迪)이란 화가도 이른 시기에 소상8경도를 그렸다고 한다. 8경이란 동정호로 들어가는 소강(瀟江)과 상강(湘江)의 여덟 가지 사계(이른 봄부터 늦겨울까지) 경치를 그린 ‘소상8경도’에서 유래되었다. 소상8경도는 ①산시청람(山市晴嵐=산촌의 맑은 아지랑이) ②연사모종(煙寺暮鐘=안개 속에 들려오는 절간의 저녁 종소리) ③원포귀범(遠浦歸帆=먼 포구로 돌아가는 배) ④어촌석조(漁村夕照=어촌의 저녁놀) ⑤소상야우(瀟湘夜雨=소상강의 밤비) ⑥동정추월(洞庭秋月=동정호에 뜬 가을 달) ⑦평사낙안(平沙落雁=모래사장에 내려앉는 기러기) ⑧강천모설(江天暮雪=강마을의 저물녘 눈 내리는 광경)을 묘사한 그림들이다.이후 소상8경은 자연에 대한 서정과 운치를 나타내는 하나의 관념어가 되었고, 우리나라에 와서는 이상향의 산수 관념으로 받아들여졌다. 고려와 조선초기의 화가와 문인들은 상상 속의 소상8경을 즐겨 그림으로 그렸고, 다투어 시로 읊었다. 그러다 훗날 자기 고장의 명승을 소상8경도에 대입시켜 시화(詩畵)로 만든 것이 오늘날의 8경, 혹은 12경이다.전국적으로는 지방마다 팔경들이 있다. 단양팔경, 관동팔경, 양산팔경, 하동팔경, 울산팔경도 이를 모태로 생겨난 것이다. 울산8경은 ①학성세우(鶴城細雨) ②태화어간(太和漁竿) ③무룡산조(舞龍山朝) ④백양효종(白楊曉鐘) ⑤삼산낙안(三山落雁) ⑥문수락조(文殊落照) ⑦염포귀범(鹽浦歸帆) ⑧서생모설(西生暮雪)인데, 이 역시 소상8경도가 모태다.동구의 ‘방어진 12경’이란 제1경 ‘화암만조(花巖晩潮)’는 ‘꽃바위’의 저녁 조수 위에 내려앉은 석양, 제2경 슬도명파(瑟島鳴波)는 방어진항 입구의 슬도(瑟島)와 하얗게 부셔지며 내는 파도소리를 뜻한다. 제3경 마성방초(馬城芳草)는 대왕암 소바위산 주변을 묘사한 것으로, 옛 목장일 때 우마의 분뇨 따위로 들녘이 비옥해져 철따라 온갖 들풀들이 피어나 아름다운 풍광을 이룬 것을 가리킨다. 제4경 용추모우(龍湫暮雨)의 ‘용추(암)’는 대왕암의 다른 이름이다. 대왕암은 신라왕 중에 호국의 염원으로 용신이 되어 해중에 잠겼다는 이야기를 품고 있으니 저물녘에 내리는 비는 호국성령들을 추모하듯 숙연한 분위기를 자아냈던 것일까.제5경 어풍귀범(御風歸帆)은 일산진마을 동북쪽에 바다로 돌출된 바위언덕 어풍대를 향해 고기잡이 갔던 어부들이 잔광을 싣고 돌아오는 범선(帆船)을 묘사한 것으로, 한 폭의 진경산수화를 연상케 한다. 어풍대는 조선조 중종12년(1517) 모재(慕齋) 김안국이 경상도관찰사로 재직할 때 울산지역을 순시하던 중 이곳 일산진 해안을 다녀가면서 같은 이름의 시와 시서를 그의 유고집에 남겨 더 유명한데, 시서(詩序)가 이채롭다. “어풍대에 올랐다. 어풍대는 울산바닷가에 있는데, 남쪽 최고운의 해운대, 북쪽 이목은의 관어대와 함께 경승을 겨루어 갑을인바, 고금에 유람하는 자가 많았다. 그런데 이곳은 이름이 없으니 어찌 크게 잘못된 일이 아니겠는가. 이에 이름하여 ‘어풍대’라 하니 감히 최고운 이목은과 비교하려는 것은 아니고, 그 뜻을 따를 뿐이다(登御風臺 臺在蔚山海邊 南則崔孤雲海雲臺 北則李牧隱觀魚臺 景勝相甲乙 古今遊賞者多矣 ?無名稱 豈非一大欠事 因名之曰御風臺 非敢自擬於牧老崔仙也 聊寄意耳).”제6경은 안헌창송(案憲蒼松)이다. 어느 고을이나 마을 앞에 풍수해를 막아주고 마을의 풍요를 가져다주는 앞산이 있었고 이를 안산(案山)이라 하여 방풍림을 조성하고 늘 신성시했다. 제7경 유정만선(楡亭晩蟬)은 지금은 없어진 풍경이다. 옥류천과 제기천이 합류하는 동천가에는 미루나무가 숲을 이루었고 그 사이에는 참외, 수박 밭을 가꾸고 지키던 원두막이 드문드문 지어져 정자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듣는 저녁녘 매미소리는 선남선녀의 합창으로 들렸을 것이다. 제8경 촉산락조(矗山落照)의 촉산은 남목삼거리 쪽에 있던 팽이를 엎어놓은 것처럼 뾰쪽하게 생긴 작은 산이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너무나 가팔라 사람이 오르내리지 못해 송림이 늘 수려했고, 석양에 해가 촉산에 걸려 내려앉는 모습은 더없이 아름다웠을 법하다. 제9경 섬암모운(蟾巖暮雲)은 동축사 뒤쪽의 관일대를 이르는 말로, 옛사람들은 ‘두꺼비바위’라 불렀다. 여기서 바라보는 석양에 물든 구름은 환상의 그림이었을 것이다.제10경은 옥동청류(玉洞淸流)인데, 옥동이란 남목의 별칭인 남옥(南玉)을, 옥류(玉流)란 남옥을 흐르는 내를 가리킨다. 마을의 토질이 마사토여서 옥류천을 흐르는 물은 맑고 청아한 소리를 내며 흐른다. 제11경 승동청화(勝洞晴花)는 불당골의 옛 지명으로, ‘동면 8경’에는 불당골을 만승(萬勝)폭포의 경승지라 칭송했으나 지금은 개인의 집터 안에 있어 아무나 볼 수는 없다. 제12경 망양조하(望洋朝霞)는 태화강 하류 염포의 풍경을 이르는 말로, 염포 해안에는 갈대밭이 뻗어 있었고, 여기서 피어나는 수증기에 아침햇살이 투영되어 빚어지는 아침노을은 실로 장관이었지 싶다.<장세동 울산 동구지역사연구소 소장>출처 : 울산제일일보(http://www.uj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