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상투 중국회화는 모두 조선의 그림들이다
1.
성종(成宗) 19년(1488), 명(明)나라 사신으로 조선을 찾았던 동월(董越)이 조선 사행을 마친 뒤 조선의 산천과 풍속, 인정과 물정을 부(賦)의 형식으로 기록한 글이 조선부(朝鮮賦)인데 이글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1권 경도(京都) 상에 실려 있다.
여기에 실려있는 한 문장은 우리가 조선의 역사를 재구성하고 새롭게 해석하는데 있어서 특히 회화(繪畫)와 관련하여 천금과 같은 귀중한 정보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1권 > 경도(京都) 상
童留胎髮,不間後先。有甫孩提而髮已垂肩者 有歲六七而角總丱然者。
아기의 어릴 때의 머리카락을 그대로 보존하여 먼저와 뒤의 구별이 없어서, 어떤 아이는 어릴 때에 머리카락이 벌써 어깨에 드리우며, 어떤 아이는 6ㆍ7세가 되면 뿔 모양으로 쌍 상투를 묶는다.
필자는 4년전의 유투브영상에서 쌍상투가 조선만의 유일한 머리장식이라는 사실을 위 기록을 통해 고증한 바 있다.
각총(角總)은 반대로 보면 총각이다. 즉 쌍상투가 바로 총각이라는 말이고, 따라서 조선에서 결혼안한 남자를 총각이라고 불렀다는 것은 어려서부터 결혼전까지 머리를 모두 쌍상투 즉 총각머리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낼수가 있게 된다. 결혼을 하면서 비로소 총각을 해체하고 외상투를 틀게된 것이다.
반찬중에 총각무라는 말은 쌍상투의 틀어올린 모양처럼 앝타리무가 생겼기에 그러한 말이 생겼음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수도 있을 것이다.
명(明)나라 사신이 와서 조선의 머리장식인 쌍상투를 읊고 기록했다는 것은 조선만의 유일한 특색이었기에 기록한 것으로 볼수 있고,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대륙조선을 고증하고 밝혀가는 데 있어서, 이른바 당(唐),송(宋),원(元),명(明)청(淸) 이라는 중국역사속의 회화(繪畫)그림중에서 쌍상투가 그려진 그림은 모두 조선의 그림이었음을 밝혀낼수가 있게 된 것이다.
즉 1926년이후 조선이 반도로 이주하면서 수많은 조선의 문화유산인 회화중 많은 수가 송(宋)명(明)대의 그림으로 둔갑되었음을 명확히 인식할수 있게 되었다.
2.
다음의 그림들은 미국의 중국사학자 존 킹 페어뱅크스(John King Fairbank ,1907 –1991)의 신중국사에 삽입된 삽화들이다.
모두 송(宋)명(明)청(淸)대의 그림들로 둔갑되어 있지만, 책으로 제본되어 있는 그림들속에 명확히 쌍상투를 한 아이들과 청소년기의 남자아이들이 등장함에 따라 이 그림들이 조선의 그림임을 여지없이 간파해 낼수가 있다.
또한 이 그림들속에 건축하는 장면의 그림은 출경입필도와 청명상하도의 궁성과 담장 그리고 개인주택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함에 따라, 출경입필도와 청명상하도 또한 조선인이 그린 조선의 문화유산임을 알아낼수가 있기도 하다.
놀라운 것은 일전에 올렸던 태평성시도에 나온 개울에서 쌍상투의 모습으로 물놀이하는 아이들의 그림이 이중섭의 터치와 너무나 일치함에 아연실색할 따름이다.
3.
①
설명에 송(宋)나라 11세기의 그림으로 ‘경전을 맞추어 보고 있는 북제(北齊)의 학자들’ 이라고 쓰여 있다.
그렇다면 북제(北齊)라는 나라는 바로 조선의 일파였다는 말이 되며, 그러한 증거는 바로 쌍상투를 한 동자의 모습에서 그들이 조선인임을 알수 있기 때문이다.
②
위 그림은 흠정서경도설(欽定書經圖說)-1905-의 청 말엽 판본에 수록된 그림이라고 한다.
오른쪽 위에 쌍상투를 한 아이 두명이 보이고, 또한 백익(伯益)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백익(伯益)은 삼황오제시대의 재상으로 처음으로 집을 건축하고 우물을 판 인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우(禹)임금이 자리를 선양하지 우임금의 아들 계(啓)에게 양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우(禹)임금의 치수를 도와 영(嬴)씨 성을 하사받아 영(嬴)씨의 조상이 되어 진시황(秦始皇)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위 그림을 통해 본다면 쌍상투라는 조선의 특징문화로 인해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역사와 진시황(秦始皇)이 모두 조선인이었음을 알수 있게 해주고 있다.
③
위 그림의 우측 아래를 보면 역시 쌍상투를 한 사람이 풀무질을 하고 있다. 명확히 조선인이 그린 조선의 그림임을 알수 있다.
④
⑤
⑥
⑦
위의 모든 그림들은 한 책속에 편집된 그림들로 어른들도 모두 상투를 하고 있다. 모두 조선인의 그림들이다.
얼마나 세뇌에 찌들었는지 어느새 우리는 우리 선조들의 모습을 보고도 우리 선조가 아니라고 나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역사교육을 받아왔고 지금도 그러한 역사교육은 계속되고 있다.
가장 작은 한걸음부터,
열사람의 한걸음으로 시작해 가면 만리길도 그리 멀지만은 않을 것이다.
1944년 그 어둡고 추웠던 시절!!
장준하 선생도 김준엽 선생도 그 외 동지들 50인도 그렇게 나라사랑을 시작하지 않았던가?
2021.03.29. 송계(松溪)
첫댓글
총각이란 단어가 나왔지요
총각무우 총각김치 이런 말들이 생겨 낫지요?
맨 아래 담쌓은 모습이 저 어렸을 때 목수가 담쌓는 모습하고 똑같네요. 우리 조상들의 선진기술이 대단합니다.
그림을 보면 어린아이 중에서 쌍상투를 한 아이와 환계(둥글 환, 상투 계)를 아이의 두 종류의 상투를 한 모습이 보입니다. 여기서 환계는 어린아이가 트는 둥근 상투를 말합니다.
여하튼 쌍상투든 환계든 머리에 상투를 한 민족은 울 민족이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물론 장가를 가면 모두 외상투를 하지만요.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