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을간다.’(10차)<2>
<가사령-사관령-배실재-침곡산-태화산-한티재.18km>
(2008년 9월20일(토)~21일(일))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인지 21일새벽2시경 눈이 떠졌다.
수돗물 쏟아지는듯한 소리가 들린다. 공사장이라 파이프 같은곳에서 나오는 소린가 싶어 텐트밖으로 나와 유리없는 창틀을 내다보니 비가 쏟아지고 있다. 이왕 오려면 밤중에 다 오고 아침에는 그쳐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산행에서 비(雨)는 반갑지 않은 손님으로 나는 제일 싫어한다. 차라리 눈(雪)이 백번도 좋다.
설악산의 소공원에서 비선대까지 왕복하는 길이라면 비가와도 그렇게 싫지는 않으리라.
정맥길은 거의 일반산행인들이 다니지 않는 거친곳이 많다. 누군가 손질하지 않은 등산로에는 제멋대로 자란 풀, 꽃 나무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어 가며 담뿍 물기를 머금고 있기 때문에 어떤곳은 수영을 하듯 헤쳐 나가야 하는 곳도 부지기수다.
아무리 최고급 완전방수 등산화라도 결국 바지와 양말을 타고 들어오는 보이지 않는 물기에는 속수무책이다. (가슴까지 오는 고기잡이 물옷을 입기전에는). 또한 비가오면 조망은 아예포기 해야한다. 그냥 정맥길을 걷고 또 걸을 뿐이다.
다시 텐트속으로 들어가 아침에 좋아지는 날씨만을 기대하며 잠시 더 눈을 부쳤다. 눈을뜨니 05시30분.
푹자지 못하고 엉망의 밤을보낸 송천도 차에서 나왔다.
서둘러 아침을 해결하고 가사령에 다시오르니 가느다란 비가 여전히 뿌리고 있다. 난감한 상황이다. 가긴가야 하는데 오늘 물에젖은 몸과 발로 하루종일 산행을 할 일이 불을보듯 뻔하다. 이것도 삶에서 주어지는 하나의 공부 이려니 하고 07시정각, 시멘트 흙받이를 넘어 급경사 오름길로 들어섰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부터 키를넘는 잡풀과 싸리나무가 잔뜩 물을 뒤집어쓰고 올테면 오라고 꿈쩍도 않고 서있다.(스스로 알아서 비켜주면 오죽이나 이쁠까...). 스틱으로 털며 제키며 한걸음씩 오른다. (엇차피 젖겠지만 혹시나 발만이라도 기분좋게 느끼며 걷고 싶어서).
비는 거의 그친듯 한데 나무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들은 비가 오고 있는듯한 느낌이다.
두시간쯤후 사관령이라는 예전 헬기장인 듯한 곳에 올라섰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정맥은 꺽이어 아래로 이어 내린다. 몽벨표지기를 하나달고 오늘의 중간지점 배실재로 향했다. 중간에 약간의 주의할 곳이 있었으나 예전에 올라왔던 길이라 무난히 정각11시 넓은 공터같은 삼거리에 도착했다.
전에 써서 달아놓았던 표지기가 흐미한 글씨의 형태를 하고 나뭇가지에 매달려있다. 인연이 닿아서 만나니 반가운 마음이든다.
송천의 전매특허 얼구었던 맥주를 꺼내놓는다. 날씨가 더웠더라면 200% 효과를 발휘했을텐데 오늘은 흐린날씨라 90점 짜리다.
점심은 침곡산에서 하기로 했다.
오르면 내려가고 또 오르고 좀처럼 침곡산이 좁혀지지 않는다. 계속 털고 꺽고 제키며 조망없는 길은 막바지 침곡산 전 오름에서는 아예 잡목터널을 통과하는 느낌이다.(멧돼지도 싫어 하겠다) 12시50분 커다란 묘지가 있는 바로위 침곡산 정상에 섰다.
포항산악회에서 오석으로 표석을 세웠고 친절하게 중요지점 이정표도 걸어놓았다. 놀라운 성의다.
심마니 두분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한장을 찍어달라 부탁하고 점심을 가볍게 마친뒤 오늘의 마지막 오름포인트 ‘태화산(지도에는 산불감시탑으로)’을 힘차게 향했다.
이미 신발속은 물이 스며들어 기분은 찝찝하다. 다행이 구름이 걷히고 해가 비추어 그나마 오늘의 산행을 스스로에게 위로했다. 몇 번의 오르내림을 반복한뒤 오후3시 태화산 정상 산불감시탑과 돌탑이 서있는 북쪽을 제외한 조망이 시원한 오래된 묘지1기가 있는 공터에 섰다.
남서방향으로의 산수화같은 겹겹산의 파도가 일시에 피로를 가시게 하며 시원하게 펼쳐진다.
잠시후 대구에서 왔다는 정맥팀이 올라왔다. 20명인데 차라리그들 뒤를 따랐으면 덜 젖었을텐데 하는 엉뚱한 생각도 순간 해보았다. 이제부터 1시간이면 옛한티재 까지 내려만 가면 된다. 올라오려면 굉장한 된비알이다.
먹재에서 한번 가볍게 올라서는 오름이 한번있다. 눈에익은 한티재에 도착하니 정각오후4시. 총9시간의 산행이 끝났다.(털고 꺽고 제키는 헛된 동작을 하지않았으면 1시간정도 단축을 했을것 같다)
이제 남은일은 가사령으로 되돌아 가는일.
한티터널 앞으로 내려오니 많은 차들이 달리기 시합이라도 하는지 정신없이 오가고 있다. 이곳에서 차 얻어타기는 하늘의 별 따기겠다. 좀더 아래로 걸어서 감곡리 작은 정류장에서 진을 치기로 했다. 대중교통은 물건너갔고 택시나 빈차를 만나야한다. 몇십대를 보았으나 손을 들어도 서는 차가 없다.
‘지성이면 감천’ 1톤봉고3가 오고 있길래 무심코 손을들고 도와 달라는 몸짓을 했다.
그냥 가는가 싶더니 10여미터쯤 앞으로 가다가 선다. 창안으로 자초지종을 대략 이야기 하니 선뜻 타라고 하신다. 집은 바로 근처 정자리에 있고 과수원을 하신다는 70대쯤 되어 보이는 깡마른 어른이시다.
입암리까지 태워다 주신다고 한다.(약8km) 가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아예 수고비를 드릴테니 가사령까지 선처해 주실것을 간곡히 부탁했다.(물에 빠진놈 건져놓으니 보따리 달라는 격이다) 입암리에서 잠시 생각 하시더니 수고비 때문이 아니라 타관에서 온 사람에게 박정하게 못하는 천성의 마음 때문인지 그대로 차를 진행키신다.
울진이 고향 이시라고 하시며 이젠 이곳 죽장면 정자리에서 여생을 마치려고 하신단다.
오후5시 우리는 또 한분의 마음밝은 분을 만나 정맥10차 출발지점인 가사령으로 되돌아 오는 행운을 받았다.
혹시 이곳을 지나게 되면 과수원에 들리라고 하신다. 사과라도 좀 주시겠단다. (거듭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이글을 쓰면서 그분에게 보낸다).
가사령에서 상옥리, 통점재, 부남면, 청송읍을 거쳐 길안면으로 넘어오는 고갯길에서 만난 넘어가는 저녁해는 오늘따라 유난히 곱고 아름답게 보였다.
-고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