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미용과 미술을 병행한다는 것, 제 행복입니다”
대구 네오헤어 이미자 원장
editor 이소영 기자
어떻게 미용을 시작하셨는지요?
어릴 때 부터 손재주 많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특히 그림을 잘 그렸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그 때는 국민학교였었죠.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그림그리기 대회 때 마다 큰 상을 받았었고, 중학교 미술선생님께서는 혹시 미술전공(대학교)을 할 상황이 못 되면 선생님을 찾아오라는 말씀을 졸업하기 전 제 부모님께 당부를 하시면서 제자로 미술공부 꼭 시켜주겠다는 약속을 하셨다고 하시더라구요.
시골에서 농사지으면서 6남매를 다 대학을 보낼 수 있는 가정형편이 아니라는 걸 알고 계셔서 하신 말씀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도 너무 감사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런 말씀들로 인해 제가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확신을 조금은 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역시나 대학교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4년 전액 장학금으로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언니, 한 살 더 많은 오빠도 대학생, 미대를 가고 싶은 맘은 있었지만 시골에서 농업을 하는 집안 형편으로는 도저히 미대를 갈 수 없다라는 생각을 한 후 부터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여러 직업들을 찾아보고 준비하면서 이왕이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좋아하는 일로 평생 직업을 정해야겠다는 생각을 어린 나이였지만 잘 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고심해서 찾게 된 일이 미용이라는 직업입니다. 도화지에 원하는 그림을 그리는 미술과 사람을 아름답게 가꾸는 미용이 연관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미용 또한 예술의 한 분야라는 생각으로 미용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대학교마다 미용학과가 많이 있지만 그 때만해도 미용대학은 앞으로 생길 것이다라는 말만 있던 시절이었죠. 그래서 미용학원을 등록하고 본격적으로 미용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현명하게 선택을 잘 한 것 같아요. 32년째 미용인으로 살면서 후회한 적이 없으니까요 오히려 가면 갈수록 미용인으로의 삶이 너무 감사하고 고마울 때가 많아졌습니다.
미용을 하면서 겪었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일화
처음 미용 시작하고 디자이너로 취업해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찾아오시는 고객이 계십니다.
그 때는 고등학생, 대학생, 갓 결혼한 새댁, 애기엄마로 처음 미용실 고객으로 만났었는데
그 분들이 지금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애기엄마에서 손주를 본 젊은 할머니의 모습 등으로 여전히 찾아주시는 고객님들이 계십니다 그 분들과 20년도 훨씬 넘게 함께하면서 많은 일들을 공유하면서 이젠 가족 같다는 생각도 들고 인생을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동반자의 의미가 더 크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운영하고 있는 미용실에 디자이너로 취업했다가 조카며느리가 된 경우,
고객님 자녀분들끼리 중매라고 하죠. 소개가 잘 되어서 아들, 딸 낳고 잘 사는 모습에 뿌듯하기도 하고, 여러 명 소개하다보니 아예 직업으로 하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어요, 제가 소개한 커플이 모두가 다 잘 살고 있는 모습에 제가 도로 감사한 맘입니다.
이런 저런 에피소드를 다 풀어보자면 책을 몇 권내도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
미용인으로, 엄마로, 아내로, 숨 가쁠 만큼 바쁘게만 살아오던 어느 날 문득, 내 나이 벌써 40이라는 숫자가 지나고 있다는 생각에, 무엇인지 모를 아쉬운, 허전한, 여러 가지 채워지지 않는 알 수 없는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모임에서 알게 된 화가로 활동 중이신 분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어릴 때 제 꿈이 화가였었다고 했더니 지금이라도 그림을 다시 시작해 보라고 추천해 주셨고, 그 때부터 추천해주신 그 작가님의 갤러리에서 일주일에 한 번 미용실 휴일마다 수채화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수채화를 배우기 시작하고 3개월 후, 가벼운 맘으로 미술공모전에 출품한 작품이 입상을 하게 되면서 자신감을 얻었고, 매년 공모전 있을 때마다 출품한 결과 공모전 수상점수 경력으로 2018년에 대한민국 친환경 미술협회에서 초대작가로 인증서를 받았습니다.
화가 활동과 미용인에 대해서...
다른 업종의 일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미용인들은 많이 바쁘게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미용이라는 직업 특성상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하고 기술연마를 계속해야만 하기 때문에 더 바쁘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러면서도 가정에서는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책임감 있게 최선을 다하시고, 직장에서 또 디자이너로, 원장으로, 경영자로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바쁘게만 달리다 보니 숨 쉬는 것도 힘들 때가 있다는 것을 가끔 느낄 때가 있었어요.
그럴 즈음 다시 접하게 된 그림, 수채화를 다시 시작하면서 그동안 어딘지 모를 아쉬움, 허전함이 신기하게도 싹 없어지고 내 삶의 만족도가 훨씬 높아졌다는 걸 스스로 느끼면서 행복감이 충만해졌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해 왔던 미용 일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일들을 계속하면서 휴일, 쉬는 날이지만 쉬지 않고 화실에서 아침부터 저녁 해지는 줄도 모르고 늦은 밤까지 하루 종일 앉아서 그림을 그리면서도 피곤한 줄 모르고 오히려 피로감, 스트레스가 풀어진다는 것도 신기했구요. 바빠서 한 참을 그림을 그리지 못할 때는 속상함을 느끼는 것을 보면서 언젠가는 여유 있게 시간을 가지고 맘 편하게 그림 그릴 날이 오지 않겠냐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열심히 일에 파묻혀 살고 계시는 미용인들께도 추천 드리고 싶어요. 꼭 그림이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취미생활이 있다면 지금 부터라도 꼭 해보시라고 권장합니다. 삶의 활력과 에너지를 재 충전해주는 시간이 될 거라고 확신한답니다.
화가로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시는지?
화가라고 하기에는 아직 많이 부끄러운 실력이에요. 그림 공부 시작한지 벌써 9년째가 되었네요. 평소에는 작은 소품을 주로 그리고 있고, 공모전 출품을 위한 대작은 1년에 한, 두 작품 정도 하고 있어요. 작년에는 미용실, 학교 강의, 대회준비, 민간자격증 교재 출간 등 여러 많은 일들로 정말 많은 분들과 초대작가들이 함께하는 대한민국 친환경 예술협회 작품전시회에 제 작품도 함께 출품한 정도입니다
앞으로의 계획
한 달 전쯤 아무 예고 없이 갑자기 쓰러진 적이 있었습니다. 한 밤중에 응급실로, 다음 날 병원 입원으로 이어져 한 참을 병원에서 보냈습니다. 쓰러진 이유를 의사들은 과로, 스트레스 등으로 쓰러질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정말 다행이었고 또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검사결과 CT나 MRI에서는 특별한 이상 없었고, 다친 머리와 아픈 곳들도 점점 호전 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신력으로는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내 몸은 괜찮은 게 아니었다는 것을 그 때 깨달았던 거죠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면 정말 일 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무작정 달려만 온 나를 볼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잠시 멈춰 나를 재정비하라는 뜻으로 쓰러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대로 계속 달리기만 했다면, 얻는 것도 있겠지만 그 보다 더 소중한 많은 것들을 잃고 살아갔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소중한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나누는 시간들, 친구들과 차 한 잔의 여유로움들, 직원들과의 힐링 여행 등,,, 앞으로는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과 많은 시간 함께 나누며 살고 싶습니다.
한 말씀 더
미용인으로 열심히, 엄마로도 열심히, 아내로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 이미자로는 더 열심히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결혼한 후 애들 키우면서, 대학교, 대학원, 석사, 박사까지 마치고, 하고 싶어 하던 그림공부까지, 대학교 강의, 미용실 운영 등...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해 낼 수 있었고,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다 남편의 덕분이었습니다.
보통 결혼을 하면 여자분들이 남편을 보고 아들하나 더 키운다고들 하는데 저는 남편이 딸을 하나 더 키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떤 일이든 저를 더 우선적으로 배려해주고, 항상 일등 순위로 먼저 챙겨주는 남편이 있었기에 제 이름으로 더 열심히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고맙고 감사함으로 알고 있고 이 글을 쓰면서 진심으로 감사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뷰티라이프> 2020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