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 에세이 ⑬
아흔아홉 명의 사람들
홍일표
아동문학가 이상교
아동문학계의 원로인 이상교 시인이 지난 6월 작고하였다. 그를 오래전 인사동에서 두어 번 뵌 적 있고, 필자의 첫 동시집 『괴물이 될 테야』가 나왔을 때 전화를 주셔서 길게 통화를 하였다. 동시 초보자인 나는 이상교 시인의 동시를 읽고 여러 번 놀란 적이 있다. 팔순을 앞둔 나이에도 변함없이 동시와 동화 창작에 열심인 이상교 시인의 작품은 독자를 새로운 감각의 영지로 이끄는 힘이 있었다.
2024년에 나온 동시집 『깜깜한 밤 한 마리』는 이상교 동시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시적 에너지가 충만한 동시집이었다. 50년이 넘도록 이상교 시인은 새롭게 진화하는 동시계의 최전선에서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빛나는 동시들을 보여주었다. 이상교 문학의 발상지인 강화도에 가본 지도 오래되었다. 지금도 강화도 어딘가에서는 귀뚜라미. 개복숭아, 매미, 토끼, 산딸기, 나비, 솜구름 등이 어릴 적 누군가의 발걸음을 기억하고 있겠다.
밤낮이 없이
언제나 깜깜한
한밤중
네모난
한밤중.
-「김」 전문
피아니스트 리흐테르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피아니스트로 일컬어지는 우크라이나의 리흐테르는 미리 계산되어 있는 피아노 연주를 극도로 싫어했다. 마치 커다란 쟁반에 한꺼번에 내온 음식처럼 미리 다 보여주는 것 같아서 아무 묘미가 없다고 했다. 뜻밖의 울림, 예상치 못한 기쁨을 주는 연주야말로 관객의 감동을 이끌어내는 가장 큰 힘이라고 했던 리흐테르.
시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볼썽사납게 불거져 나왔거나 쉽게 속내를 노출하는 시는 공감하기 어렵다. 정형화된 일상의 언어 질서를 전복하여 새로운 발견에 동참하게 하고, 은폐된 삶의 본래 면목을 드러내는 시는 독자를 전율케 하고 뜻밖의 즐거움으로 이끈다. 이미 익숙한 내용, 익숙한 문법으로 만들어진 시에서는 돌발적인 섬광을 발견하기 어렵다.
러시아에서 슈베르트 소나타를 최초로 연주한 리흐테르를 당시 사람들은 미친 사람 취급했다. 피아니스트들의 레퍼토리에서 슈베르트 소나타는 반복적인 구조 때문에 언급조차 되지 않던 때였다. 글렌 굴드도 평소 슈베르트의 소나타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리흐테르의 연주를 듣고 슈베르트에 대한 오해가 사라졌다고 하였다. 주위의 부정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슈베르트의 곡을 연주한 리흐테르는 “내가 연주를 하는 것은 청중을 위해서가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연주한다. 내가 내 연주에 만족하면 청중 역시 만족한다. ---내가 청중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않을수록 나는 더욱더 연주를 잘한다.”고 하였다.
‘음악의 수도승’답게 사람들의 반응이나 기호에 휘둘리지 않고 고집스럽게 자기 음악의 길을 걸어간 그는 평생 시류에 편승하지 않은 피아니스트였다. 어떤 형태의 자기 선전도 좋아하지 않았고, 일체의 순응주의를 거부한 채 침묵을 지키며 살았다. 리흐테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라고 했던 ‘프로코피예프의 8번 소나타’를 다시 들어봐야겠다.
김박은경 시인
김박은경 시인은 산문집 『비밀이 없으면 가난해지고』 첫 장에서 출판사에 투고했다가 거절당한 경험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나 역시 그런 과거가 있어 크게 공감했다.
여기저기서 원고 달라는 작가들도 많지만 대부분의 작가들은 그렇지 못하여 낙심과 좌절을 거듭하게 된다. 김박은경 시인의 표현대로 그때의 기분은 그지(거지) 같다. 자존감이 크게 떨어지고 앞이 막막해진다. 그러나 김박은경 시인은 거절당해도 망가지지 않는 뚝심을 갖고, 오히려 더 강해지는 면모를 보여준다.
그런 과정을 통해 그의 손끝에서 정련된 글들은 알토란 같은 시집과 산문집으로 출간된다. 최근에 ‘교유서가’에서 나온 그의 시집 『의심하세요』도 그러한 결과물이다.
어느 정도 시 쓰는 이력이 생기면 동어반복, 자기 복제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게 된다. 김박은경 시인은 모험과 도전을 통해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는 시인 중 한 사람이다. 기지의 것을 끝없이 의심하는 그에게 복제는 없다. 늘 다시 허물고 새롭게 시의 집을 건축한다. 스스로를 ‘의심’하는 일에 게을렀던 시간을 돌아보면서 그의 시집 『의심하세요』를 읽었다. 역시 기대한 대로였다. 그의 시집은 ‘언어공작소’에서 생산된, 심장 없는 시집들과 달랐다. “입안에 고이는 말은/ 어디에도 닿지 않”아 “질기고 쓴 것을 씹으며/ 조금 더 기울어지는/ 저녁”을 깊이 헤아리며 읽어야 할 시집이다.
정진규 시인
정진규 시인은 마지막 시집이 된 『모르는 귀』 원고를 넘기고 나서 자주 전화를 하였다. 디자인, 교정, 편집 등 순서대로 시집 출판 작업은 진행되고 있었으나 2〜3일에 한 번 정도 연락을 하였다. 차례대로 교정지와 표지 디자인 시안 등을 보냈다. 교정지를 받아 보고는 한 군데도 틀린 곳 없이 완벽하게 교정 작업을 했다며 만족해하였다. 다만 시집을 양장본으로 해달라는 것과 표지 색상을 바꾸어 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시집이 나오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그동안 여러 권의 시집을 냈는데 왜 이렇게 조급해 하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시집 해설을 쓴 이숭원 교수의 글에 대해 매우 흡족해하였다. 고교 때 제자인지라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쓴 평문이었다.
“이 교수가 아주 글을 잘 써줬어.”
시집 해설의 일부를 따서 시집 표4에 넣겠다고 하니 좋아하였다.
정진규 시인은 인간의 슬픔과 아픔을 드러내는 것이 시라고 생각해 왔다. 시를 연꽃의 꽃핌이나 범종의 유곽에 견주어 번외의 꽃이라고 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음주와 담소를 정력적으로 즐기던 인사동 시절, 서럽게 무너지는 게 있어야 시가 된다고 그는 늘 강조하였다. 서글픔, 아픔, 환멸의 습지가 시의 동력이 되고 자양이 된다. 남다른 서글픔을 인지하여 그 서글픔을 스스로 드러내 고백할 때, 그리고 그 고백을 통해 자신의 슬픔을 달랠 수 있을 때 시가 탄생한다. 시는 환멸의 습지에서 탄생하는 번외의 꽃이고, 슬픔의 수렁에서 피어나는 유곽의 연꽃이다. (이숭원 「환멸의 습지에 핀 번외의 꽃」 中)
시집 출판 전에 수록된 시 한 편을 팟캐스트 <시를 읽어주는 여자>에 올리기 위해 육성 낭송을 부탁했다. 며칠 만에 육성 낭송을 핸드폰으로 녹음하여 보내준 걸 편집하여 팟캐스트에 올렸다. KBS 최영미, 박기덕 아나운서의 낭송과 이근화 시인의 차분하고 정감 있는 해설이 곁들여졌다. 직접 들어보고는 이근화 시인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녹음 덕분에 영결식장에서 조문객들은 고인의 마지막 육성을 들을 수 있었다.
시집은 예정대로 8월 15일에 나왔다. 몇몇 잡지에 광고가 실렸고, 《모:든시》 창간호에 서평도 실렸다. 부인의 말에 따르면 정진규 시인은 당뇨로 발가락이 상하는 것도 감추고 여름 내내 시집 원고 정리하는 일에 몰두했다고 한다. 시집 나온 후에야 병원을 찾았으나 상태는 심각한 지경에 이른 뒤였다. 당신에게는 마지막 시집이 되었고, 몸은 이미 많이 상하여 중환자실과 일반 병실을 오가는 상황이 되었다. 발가락 두 개를 자르고 일반실로 옮겼을 때는 표정도 밝고 목소리도 힘이 있어서 곧 퇴원할 것처럼 보였다. 문병 내내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중에 25년 동안 이끌어 온 『현대시학』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였고, 시에 대해 얘기하면서 몸이 아픈 중에도 네 편의 시를 썼다고 하였다. 그 후 정진규 시인은 상태가 악화되어 수술도 하지 못하고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9월 26일 저녁 아홉 시경이었다. 핸드폰에 시인의 전화번호가 찍혀 있었다. 중환자실에 계신 분이 어떻게 하셨지? 사모님에게 바로 전화를 하였다. 사모님이 대신 보관하고 있던 선생의 핸드폰을 잘못 건드려 신호가 간 것 같다고 하였다. 시인의 상태를 묻자 절망적인 목소리로 “아무 말씀도 안 하시네요”라고 하였다. 담당 간호사의 말에 의하면 선생께서는 중환자실에서도 의식을 놓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고 했다. 그러나 26일 저녁에는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결국 정진규 시인은 9월 28일 11시 5분에 지상의 연을 다하여 문인 단체 및 언론사에 부음이 전해졌다. 향년 79세. 시단 생활 57년의 생애였다.
이렇게 급히 가려고 그토록 시집 출판을 서두른 듯했다. 시집 발송을 마치고 한 달 만이었다. 그나마 선생의 마지막 시집을 엮어드린 것이 작은 위안이 되었다.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홍 시인 왔어?”
조용한 웃음으로 맞아주던 그 모습을 이제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정진규 시인이 25년 동안 이끌어 온 『현대시학』을 2년 반 동안 맡아 하면서 선생의 노고가 얼마나 컸던 것인지를 절감했던 일, 큰 아이 혼사 때 선뜻 주례를 맡아 주었던 일, 주저앉아 있던 내 시를 다시 일으켜 세워 새로운 변화의 탄력을 갖게 해주었던 일, 현대시학 주간직을 제안받고 제일 먼저 안성 석가헌으로 달려가 말씀을 들었던 일, 율려정사 개관 때 기뻐하던 모습 등이 스쳐 지나갔다. 이제 모두 지나간 일이 되었다. 병상에서 조용히 웃던 선생의 마지막 모습이 어느새 낮달처럼 희미하게 멀어져 아득하다. 보체리 연못의 연꽃들은 지팡이 짚고 거닐던 ‘아득한 배고픔’의 모습을 다시 보지 못할 테고, 봉구재 들녘의 풀잎 또한 신발 한 켤레 댓돌 위에 벗어놓고 떠난 큰 어른의 나직한 음성을 더는 듣지 못할 것이다.
*
횡성 예버덩에 머물고 있는데, 이른 아침 정진규 시인이 문득 떠올랐다. 사물과 존재의 내밀한 구석을 정밀한 시선으로 들여다보고 나직한 어조로 노래하던 시인은 이미 고인이 되었다. 그러나 시인이 남긴 시편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떠돌고 있다. 이른 아침 주천강 주변은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안개가 자욱하다. 돌연 ‘실감’이라는 낱말이 스치고 지나갔다. 생생했다.
예버덩의 조명 시인은 시골 생활을 하면서 ‘물성’을 새롭게 느끼게 됐다고 했다. 도시에서 바쁘게 시간에 쫓기며 무심코 지나쳤던 사물들이 하나하나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을 발견했다고 했다. 나 역시 어제저녁 어둠이 시나브로 밀려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리고 오늘 아침 집 앞까지 장악한 안개 군단을 보면서 ‘물성’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맞닥뜨린 어둠은 이전의 어둠이 아니었고, 안개 또한 머릿속의 안개가 아니었다. 살아있는 물성을 몸으로 만지는 순간이었다.
사물들이 발언하기 시작했다. 나는 몸과 귀만 활짝 열어놓으면 되었다. 밤이 되면 주천강 물소리가 한층 더 생생하게 들리고, 오래전 서울에서 실종됐던 별들이 귀환하여 또록또록 빛나는 걸 보면서 살아 율동하는 ‘물성’을 ‘실감’했다. 정진규 시인이 지금 이곳에 살아 계시다면 눈앞의 ‘물성’에 전율하면서 특유의 어조로 시 한 편 노래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 가신 지 어느덧 9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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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표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였다. 시집 『매혹의 지도』 ,『밀서』, 『나는 노래를 가지러 왔다』, 『중세를 적다』, 『조금 전의 심장』 평설집 『홀림의 풍경들』 산문집 『사물어 사전』 동시집 『괴물이 될 테야』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