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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렙산악회 지리산종주 일지
꿈이 있으면 그 꿈이 언젠가는 이루어지는 확실한 증거가 여기에 있다. 갈렙산악회가 해 수를 더하면서 다양한 산행을 해왔지만 당일 산행이 대부분이었다. 마음으로는 해외 기획 산행도 꿈꾸고 노후의 동호인 전원 주택도 의논해 왔지만 아직 갈 길이 멀기만 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오늘과 현실에 충실할 것을 다짐하여왔다. 지난 여름부터 조병하 회장께서 그렇게 분위기를 잡아가며 계획해온 지리산 종주가 여름 휴가 기간중의 서로 바쁜 일정 등으로 불발로 끝나고 추석 연휴로 막연히 미룬 계획이 또 다시 조회장의 뜻 밖의 다리 부상으로 인하여 무산되는 듯 하다가 억척 같은 회원들의 갈렙산악회 부흥의 욕구 속에 접어두었던 청사진이 조금씩 현실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확실한 계기가 된 것은 아들의 혼사를 치루고 마음이 홀가분해진 김용환 고문께서 그동안 같이 산행을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흔쾌히 동행을 약속해 주셨고 격려를 해주신 것이 더 이상 후퇴할 수 없는 결정타가 되었다. 또 오랜 지방 근무를 마치고 사업을 정리하여 서울로 삶의 터전을 옮기신 최성재집사님이 오랜만에 갈렙산악회에 조심스럽게 마음을 여시어 동참하시겠다는 의사를 보내오신 것이 참여하는 회원들에게 큰 기쁨이 되었다. 출발 전날 밤까지도 마음을 정하지 못하여 전전 긍긍했던 조회장이 일단 합류하기로 하고 약속 시간에 나오겠다는 전갈이 왔다. 두 달 여 산행 공백을 깨고 신체 적응 테스트를 확실한 결론 없이 마친 후라서 이래 저래 망설이다가 최성원 장로의 지혜로운 타협점 제시로 결심을 하게 되었다는 후문이다.
그리하여 서문갈렙산악회의 7인조 지리산 종주팀이 구성되게 되었다.
김용환고문, 최성재 차기 고문(?), 조병하회장, 이재규총무(회계), 최성원 길대장, 차병식 포터장, 김창호산악대장.
첫째날; 10월 3일 (화), 맑음
모처럼 개천절을 낀 긴 추석연휴를 맞아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정확한 약속 시각인 6시 반에 제법 무거운 배낭들을 메고 긴장된 모습으로 집결지인 올림픽아파트 동사무소 앞에 모여 짐을 싣고 차에 올랐다. 역시 오늘도 길 박사이신 최성원장로가 운전대를 잡고 시원하게 뚫린 중부고속도로에 들어서 남으로 행했다. 새로 완공된 대진고속도로는 지리산까지의 거리를 많이도 단축시켜 놓았다. 고속도로를 빠져 나와 인월에서 잠시 필요한 장을 보기로 하고 재래시장을 찾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이날이 5일 장이 서는 날이고 추석 대목 장이 서는 날이라서 오랜만에 시골장의 풍성함을 맞보았다. 좌판에 벌여 놓은 아줌마에게 사과며 단감 맛을 보고 한 무더기씩 샀다. 그리고 김고문님의 제안으로 정육점에 들려 지리산 흑돼지 목살을 사서 삶기 좋은 크기로 잘라 봉지에 담았다. 명절의 풍성함까지 배낭에 담아 뱀사골 계곡을 통과해 지리산 종주 코스의 출발점인 성산재로 향했다. 당초 백무동에 차를 세우려던 계획을 바꾸어 예상보다 거의 한 시간 반이나 빠른 10시 반에 성삼재 주차장에 도착하여 짐을 최종 정리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지리산 종주의 첫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주차장에서 포장된 도로를 따라 휴일을 맞아 소풍 온 많은 무리들과 함께 걷기를 시작했다. 유난히 큰 배낭을 지고 제법 나이 들어 보이는 7인의 산꾼들의 행진은 여러 가족 나들이 객들의 시선을 잡기에 충분한가 보다. 아직도 낮 기온은 따사로워 금방 땀이 등 뒤로 흐르기 시작한다. 일단 방한복을 벋어 배낭 속에 넣고 길을 재촉한다. 아직은 너무나 흥분된 소풍 온 기분인데 가야 할 길이 멀다. 첫날 산행은 뱀사골 대피소까지인데 거리로는 약 6~7km 가량이 된다. 노고단 까지 1.7km를 모두가 차분히 그리고 단숨에 오르는 저력을 보임으로 2박 3일 산행에 대한 초반 테스트를 안전하게 통과한다. 노고단을 지나 임걸령으로 향하면서 그때서야 기념 촬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라 첫 단체 사진을 찍었다. 이미 해발이 1400m 가 넘는 이곳은 단풍이 한창이다. 몇 차례 쉬며 첫 도착지에 이른 곳이 임걸령이다. 옛날의 황폐했던 야영지가 이제는 수풀로 완전히 복원되었고 샘물만이 깨끗이 정리되어 있다. 누군가가 지리산 여러 샘물 중 일걸령 물맛이 최고라고 한다. 가지고 온 물통을 비우고 시원한 새물로 채우고 다시 노루목으로 향했다. 임자도 알 수 없는 무덤을 지나 삼거리에 도착하여 여기에 배낭을 모아 놓고 반야봉을 맨몸으로 다녀오는 코스를 추가하였다. 조회장이 자진해서 배낭 지킴이가 되었고 나머지는 날듯이 가볍게 반야봉을 향하였다. 무거운 짐을 내려 놓으니 이렇게 몸이 가벼울 수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인생들이여 주께로 와서 그 짐을 내려 놓고 참 평안을 얻으시라. 덤으로 오른 반야봉에 다다르니 지리산의 양 끝이 한 눈에 들어오는 듯 하다. 지나온 노고단이 아스라이 한쪽에 보이고 다른 쪽으로 여러 봉우리를 지나 저 먼 곳에 천왕봉이 있으리라. 이틀만 지나면 그 곳에 올라있을 모습을 기대하며 다시 삼거리로 돌아왔다. 인터넷으로 예약한 뱀사골 산장에 오후 5시까지 도착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급하게 산장으로 전화를 하여 예약을 확인하였다. 산에서 앞서고 뒤서며 만나 여러 팀들도 대부분 오늘의 숙소가 뱀사골임을 알고 난 후에는 침근감이 더 하였다. 반야봉을 다녀온 덕분으로 예정보다 1시간 늦은 저녁 6시에 산장에 도착하였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도착하여 숙소를 배정받기 전에 팀별로 부지런히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도 빈 식탁을 차지하여 저녁 준비를 시작하였다. 쌀을 씻어 밥을 올리고 가장 큰 코펠에 물을 끓여 지리산 흑돼지 고기를 삶기 시작했다. 김고문님의 오랜 노하우가 담긴 양념을 풀고 푹 끓였다. 각자의 배낭에서 가지고 온 밑 반찬들을 조심스럽게 꺼내 놓는다. 자기 짐을 먼저 줄이는 결과가 될까 싶어 서로 조심스럽다. 언제나 우리의 입맛을 돋우어 주는 홍어회가 김고문님 배낭에서 나온다. 지금이 홍어의 제 철이란다. 어김없이 구권사님의 정성이 담긴 양념된 광천 새우젓이 나왔다. 박집사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최성재사장이 배낭에 넣어 먼길을 짊어지고 온 복분자주가 달콤하게 지친 육체의 피로를 씻어주며 입맛을 돋운다. 이미 주변은 어두워졌고 늦게 도착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계속 법석인다. 고기가 익어 김고문님의 익숙한 칼질이 계속될 때에는 산등성에 가려있던 반 이상 채워진 달이 나무 숲 사이로 비춰오기 시작한다. 달빛에 기세를 잃은 별들도 구름 없이 맑은 밤하늘에 여기 저기에 눈에 띄며 깊은 산중의 밤은 깊어만 간다. 홍어회와 목살로 낮 동안 소모된 에너지가 넘치도록 보충되고 난 후 이어서 찌게와 밥이 한 공기씩 돌아 갔을 때에는 흥에 겨운 김고문님의 알 듯 모를 듯한 재담에 아드레날린이 한 시간 여 충분히 분출된 상태였다.
그때서야 김고문께서는 구권사님이 신신 당부했다는 세가지 주의사항이 생각나 애교스러운 후회를 하신다. 그 첫째가 말을 많이 하지 말 것 이었다니 큰일 났다고 하신다. 세월이 좋아 산속에서도 구권사님께 전화가 연결되어 고자질을 했더니 오늘이 결혼 기념일인데 혼자 남겨 놓고 산에 가셨다고 밉지 않은 원망을 늘어 놓으신다. 주위가 조용해 지고 잠시 후 9시에는 소등에 들어간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갑자기 잠자리를 정리한다고 한 사람씩 들어가서는 나오지를 않는다. 최성재 집사님이 어둠 속에서 설거지를 마치고 궁금해서 숙소 안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이미 잠자리에 들어있는 중이었다. 이렇게 해서 설레임으로 시작되었던 지리산 종주의 첫날이 조용히 저물어 가고 안식의 밤이 깊어만 갔다. 달은 모두가 잠자리에 들어간 후에도 보름달을 향하여 조금씩 커가고 있었다.
둘째날; 10월 4일 (수), 맑음
바쁜 중에 모처럼의 장기 산행 준비하랴 새벽기도회 참석하랴 부족했던 수면을 보충하느라고 좁고 딱딱한 산장의 침상에서도 늦게까지 잠들을 잘도 주무신다. 아침 7시가 다 되어서 그 것도 흔들어 깨워서야 일어나 잠자리를 정리하고 식탁으로 나온다. 아침 식사는 소위 간편식이라 하는데 밥만 햇반으로 대치했을 뿐 어제 밤에 먹던 홍어회에 고 칼로리 목살에 또 다시 성찬을 맞이한다. 산행 중에 아침 식사를 든든히 해야 한다는 김고문님의 오랜 경험에 따른 결과다. 어제 저녁부터 아침까지 얼마나 먹어댔던지 모아둔 쓰레기가 큰 봉지로 둘이나 된다. 산장에는 잔반통도 없고 자신의 쓰레기는 되 가져가야 하기 때문에 쓰레기 처리는 보통 일이 아니다. 밤사이 조회장과 최장로의 야심 찬 계획이 발표되는 순간이다. 두 사람은 뱀사골 계곡으로 하산하여 성삼재로 가서 차를 가지고 다음 날 하산 지점인 백무동으로 이동하여 정상 공격진의 귀환을 준비하는 희생을 하겠단다. 혹시나 무리하여 조회장의 무릎 부상을 악화시킬까 염려가 되어 최장로께서 천왕봉 행을 자진해서 포기하고 하루 먼저 하산하는 길을 택하여 모두의 부담을 덜어주는 결정을 한 것이다. 아쉽지만 지혜로운 결정을 받아들여 뱀사골 산장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각자의 길로 향하였다. 모두의 안전한 산행을 기원하면서 출발한 시각은 오전 8시 반이었다. 둘째날의 산행 코스는 약 13km로 오늘 밤은 세석 산장에서 머물게 된다. 화개재를 출발하여 능선을 따라 산행이 계속되는데 잠을 충분히 잘 잔 덕분인지, 짐이 많이 줄은 덕분인지 모두의 발 걸음이 가볍고 힘차다. 날씨는 어제에 이어서 더 없이 청명한 가을 날씨이고 단풍은 가는 곳마다 절정을 이룬다. 멀리 산 기슭 소나무 숲 속에 점점이 박힌 빨간 단풍이 볼수록 그 맛을 더해간다. 내장산의 온통 붉은 단풍의 숲과는 틀림 없이 다른 차원의 은은한 멋임을 이구동성으로 느끼며 감탄을 연발한다. 감동이 올 때마다 준비해온 갈렙산악회의 리본을 나뭇가지에 매단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11시에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하여서는 점심을 준비하기도 애매한 시간이라 간식만 먹으려 하다가 내친김에 이것 저것 꺼내어 커피까지 끓여가며 점심을 해결하였다. 차장로께서 무겁게 지고 온 떡과 최사장께서 준비한 빵과 소시지에 고추장까지 발라가며 맛있게 먹었다. 쉬면서 흐르는 물에 머리로 감고 발도 씻으며 잠시 산행 중의 피로도 씻고 오후의 산행을 새롭게 시작하였다. 지리산 종주의 코스는 대부분 2박 3일로 잡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같은 곳에서 묵게 되고 그래서 산행 중 계속 앞서고 뒤서며 만나게 된다. 같은 방향으로 산행하는 사람들 중에 젊은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고 우리를 알아보고 인사도 하고 숭늉을 끓여다 주는 착한 딸 같은 아가씨도 있었다. 벽소령 대피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남은 오후의 산행을 계속하는데 비로서 둘째날 일정이 만만치 않음을 느끼기 시작한다. 가도 가도 앞에 보이는 천왕봉의 거리가 좀처럼 좁혀지질 않는다. 멀리 장터목 산장이 보이는데 두 고개쯤 넘어서 오늘 숙박을 할 세석 산장은 산에 가려 보이질 않는다. 길이 앞에 높게 보이는 봉우리를 옆으로 끼고 돌았으면 하고 기대하며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지만 결국에 능선을 따라 봉우리를 넘어서 간다. 역시 피할 수가 없는 산이고 그렇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즐기며 가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만 이틀을 자나 깨나 같이 보내며 지내왔던 김고문과 최사장께서 걸으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서 이미 오랜 친구 같은 친근감이 엿보인다. 앞에 보이던 높은 봉우리를 넘고 나서 예상보다 빨리 눈 앞에 세석 평전이 펼쳐지며 산장이 바로 앞에 나타났다. 오후 6시가 되어온다. 방 배정 받기 전에 우리 모두는 샘으로 가서 이틀 동안 몸에 젖은 땀을 등목으로 씻어내며 준비한 새 옷으로 갈아 입으니 한결 밤에 잠이 잘 올 것만 같다. 해발이 어제보다 높아서 그런지 저녁 기온이 좀 싸늘한 것을 느끼며 저녁 식사 준비에 들어갔다. 저녁 메뉴는 흑미 쌀밥에 부대찌게와 고 칼로리 목살이다. 좀 많다 싶었던 밥이 결국엔 숭늉까지 끓여 깨끗이 비워졌다. 세석 산장은 새로 지어져서 내부가 깨끗하다. 빈 자리도 많이 있어 비교적 편안하게 잠들을 청할 수 있었다.
셋째날; 10월 5일 (목), 맑음
연 이틀의 산행의 피로가 축적된 탓인지 아침에 일어나며 몸이 뻐근함을 느낀다. 아침 식사로 남은 햇반을 덥혀서 밑반찬과 함께 먹었다. 산행에서는 설거지가 문제인데 햇반의 일회용 용기가 그 수고를 많이 덜어 준다. 사실 일회용 용기가 환경 친화적 제품이 아닐 텐데 이렇게 환영을 받다니. 다음부터는 설거지용으로 주방용 종이 타월을 꼭 준비하면 편리하게 쓸 수가 있겠구나 하고 배우게 되었다. 또 새롭게 터득한 산행 중 잠을 편안하게 자는 비결로는 배낭 위에 다리를 올려 놓고 자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피로 회복과 요통 예방에 좋고 배낭의 도난 걱정도 해결되니 일석이조의 효과라 할 수 있겠다. 느긋하게 아침 식사를 마치고 짐 정리를 마치고 나니 주변의 많던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난 이후였다. 어제와 거의 같은 8시 반이 되어 천왕봉을 향하여 셋째날 마지막 날의 산행을 시작하였다. 오늘 산행 계획도 장터목을 거쳐 천왕봉을 오르고 다시 장터목 산장으로 돌아와 백무동까지 가는 총 거리가 약 13km에 이른다. 산행을 마치고 서울까지 가야 하는 부담이 추가가 된다. 언제부턴가 황폐화 되었던 세석평전이 오랜 기간 동안의 복원 노력에 힘입어 이제는 제법 숲을 이루어 가고 있고 훌륭한 자연 학습장으로 인정을 받는 것 같아 흐뭇하다. 아침 기온이 제법 쌀쌀하여 출발 때 끼어 입은 옷들을 촛대봉에 이르러서는 벗어 배낭에 챙겨 넣었다. 이제 가지고 왔던 식량들이 줄어서 옷을 집어 넣고도 배낭에 공간이 많이 남는다. 촛대봉에서 내려다 보이는 세석 산장에서 이국적인 정취가 풍기며 순식간에 밀려오는 구름으로 인하여 능선의 한쪽이 하얗게 가리운다. 멀리 운해가 덮혀 있는 곳이 섬진강일 것이라고 최사장께서 일러 주신다. 광양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하시면서 어쩔 수 없이 아래 지역을 많이 돌아보신 경험이 있으신지라 여러 가지 지역의 특징을 엮어서 잘 설명해 주셨다. 몇 고개를 넘어 장터목 산장에 도착하였다. 다시 이곳을 거쳐 하산할 계획이므로 산장에 배낭을 맡기고 카메라와 작은 물병만 뒷 주머니에 넣고 가볍게 천왕봉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제석봉를 지나면서 수많은 고사목의 지역을 지난다. 수십 년 전만 해도 울창했다던 깊은 숲이 벌목꾼들에 의해 잘리어져 나가고 증거를 없애려고 불질러졌다는 표지판의 설명이 인간의 어리석음을 다시금 실감케 한다. 성장 속도가 느린 고산지대의 구상나무며 가문비 나무들이 언제나 자라서 울창해진 숲을 이룬 모습을 다시 볼 수가 있을까? 통천문을 지나서 천왕봉 정상이 바로 앞에 다가 선다. 이미 휴일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정상에 도착하여 제 나름대로의 자축과 감격을 나눈다. 잠시 숨을 돌리고 난 후 우리 정상 공격조 5인도 기념 촬영을 한다. 그리고는 다른 팀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어야 한다. 날씨가 너무 청명하고 시야도 좋아서 30분 정도 정상에서 즐기고 난 후에 하산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일에 그렇듯이 정상에 머무르는 시간은 잠시 뿐, 다시 서둘러 하산을 시작한다. 2박 3일을 힘들게 올라와서 이렇게 30분의 여유를 갖고 누리기가 힘든 우리들이 되었나 보다. 하산을 시작하여 통천문에 이르기 작전 앞에 지나가던 몇 사람이 멈추어 서서 숲을 가리키며 심상치 않은 긴장된 표정이 역역하다. 귀를 의심하였지만 곰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자니 놀랍게도 시커먼 반달곰 한 마리가 숲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혹시나 다시 나타날까 기대하며 카메라를 들이 댔는데 그 곰이 다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잠시 후 이 반달곰이 통천문의 철 계단으로 내려와 길을 막고 쇠 난간에 등을 비비며 딴청을 피우고 있다. 이미 수십명의 등산객이 호기심에 찬 모습으로 가까이에서 긴장된 모습으로 곰을 바라보고 있다가 곰이 뒤로 걸어올 때는 혼비백산하여 도망한다. 그러나 오히려 곰은 태연하게 왔다 갔다 하며 일부러 시간을 끄는 것 같다. 전혀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어진 것 같다. 지리산 곳 곳에서 반달곰이 출현했을 때의 주의 사항 등 여러 표지판을 보았지만 설마 산행 중 반달곰을 만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을 하지 못한 터라 처음에는 모두가 행운이라며 반기었지만 철 계단을 막고 서서 30분이나 기다리게 되니 나중에는 짜증이 나기 시작하여 곰을 밀어낼 작전들을 열심히 세우다 결국엔 철 계단을 피하여 위험한 바위 틈 사이의 길로 우회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이렇게 사람들의 호 불호의 차이가 쉽게 바뀔 수가 있는 것 인가. 어째 튼 지리산에서 반달곰을 만났다는 이야기 거리와 사진에 그 증거를 담아 늦어진 하산 길을 재촉하였다. 장터목 산장에 도착하여서는 맡겨 논 배낭을 찿아서 점심 식사를 준비하였다. 2박 3일의 산행 중 산에서 먹는 마지막 식사를 최대한 간편하게 컵라면과 남은 밑 반찬으로 해결하였다. 오후 2시에 짐을 다시 정리하여 장터목 산장을 출발하여 백무동 계곡으로 하산을 시작하였다. 하산 길에 단풍 나무의 숲을 지날 때 형형 색갈의 나뭇잎이 햇빛을 받아 화려하게 빛난다 아쉬움에 쉬는 횟수도 증가한다. 이렇게 한참을 내려오다 보니 언제부턴가 빨갛게 물든 단풍이 보이지 않는다. 온 산이 단풍으로 물들었다고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 지리산의 단풍이 아직도 해발 천m 대 까지만 내려왔음을 알게 되었다. 오후 4시 경에는 하산을 마치고 밑에서 차를 가지고 기다리고 있을 조회장과 최장로를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결국 한 시간이 늦은 5시에 하산을 마치게 되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산에서 만난 반달곰으로 인하여 30분을 지체하였고 아마도 점심 준비하는데 예상보다 많은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조회장과 최장로가 민박집에서 특별히 사정하여 사논 지리산 도토리 묵 파티로 산행의 감격을 나누는 짧은 시간을 가졌다.
모두가 한결 같이 청명한 날씨며, 계획과 준비, 팀웍 등 너무나 다행스럽고 행복했음을 서로에게 고백하며 만족과 아쉬움을 나누었다. 이러한 순간이 우리에게 다시 주어질 수가 있을까? 미적거리다 이 황금 같은 기회를 놓쳤다면 아마도 지금쯤 검단산 산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30-5번 시내버스에 앉아 있겠지.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일에 대하여 어떻게 후회를 할까? 사흘 전 출발할 때와 같이 7인의 갈렙의 용사들은 달콤한 피로감에 젖은 채 추석 귀향 행렬이 막 끝나 텅 빈 고속도로를 달려 서울로 돌아왔다. 떠날 때의 무거웠던 배낭은 현저하게 가벼워진 채로, 수 많은 추억과 감사를 마음 속에 가득히 담고… 예, 갈렙은 해냈습니다, 주님이 허락하신 지평을 또 다시 넓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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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정 : 2015.09.04~05(1박2일)
참가자 : 최학생, 최성원, 김창호, 임석남, 이춘식, 김태홍, 이준규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지리산은 마치 엄마의 품을 연상케 하는 곳이다.
백두대간 종주를 졸업구간으로 한 구간 남기고 시작점인 천왕봉에 오르고 싶은 욕망에 사로 잡혀 종주를 꿈 꿔 보지만 평일 시간을 내야 하는 부담 때문인지 모두 난색을 표한다. 그렇다고 1박2일에 종주를 생각해 보니 부담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 우선 어렵다는 산장 예약을 마치고 회원모집을 하지만 종주보다는 천왕봉 왕복 코스로 결정하고 더 많은 회원의 동참을 위해 산장도 세석대피소로 바꾸어 예약을 마치니 이제 어머니의 품속으로 들어갈 날을 기다리며 설레는 마음을 조용히 간직한 채 준비물을 챙겨본다.
<첫째 날>
백무동 출발→첫나들이폭포 →가내소폭포→5층폭포→한신폭포→세석대피소→영신봉
총 거리 7.92Km, 5시간08분 소요
새벽기도를 마치고 6시 30분 교회를 출발하여 내려가는 동안 모두 고시공부를 하게 된다. 질문과 답변으로 토론도 이루어진다. 시간가는 줄 모르게 함양에 도착하여 저녁만찬을 위해 지리산 흑 돼지를 구입하고 백무동에 도착하니 11시…… 이른 점심을 먹고 짐을 나눈다. 아무래도 먹는게 제일 문제인 듯하다. 그러나 산장에서 먹는 즐거움에 비하면 충분히 견딜만하다.
국립공원입구에서는 언제부터인지 예년과 달리 입산통제 시간이 철저하게 구분되어 산장 예약 인원과 명단을 체크하며 통과시킨다. 우리는 당당하게 한신계곡을 향하여 출발(12:08)한다. 가물었던 봄 보다는 지난 여름 비가 와서 수량이 풍부한 느낌을 받는다. 계곡을 따라 물소리와 함께 오르는 한신계곡 코스는 힐링하기에 충분한 여유로운 코스로 이어지다가 우렁차게 쏟아내는 시원한 폭포소리가 발길을 멈추게 하여 잠시 쉬어가기를 반복한다.
마지막 폭포를 지나 지나왔던 여유로움을 찾을 수 없는 된비알을 만나니 지체될 수 밖에 없지만 오늘 일정은 세석대피소에서 머무는 것으로 서두르지 않기로 한다. 고도를 높여 갈수록 저지대에서는 볼 수 없는 야생화들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1580m 드디어 새석평전에 도달하여 일부는 세석대피소로 향하고 나는 아름다운 낙조의 가능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바로 옆 영신봉에 오로기로 한다. 불과 몇 백 미터의 거리지만 이미 목적지를 지나 걷는 걸음은 힘들게만 느껴졌다. 영신봉에는 새롭게 복원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무엇을 복원하는지 알지 못했다. 최장로님, 임집사님과 함께 오른 영신봉에 대한 기대는 구름과 안개에 빼앗기고 있을 즈음 대피소에서는 왜 고기 안 가져 오느냐 아우성이다. 서둘러 대피소로 돌아와 만찬을 준비하며 행복에 겨워 본다.
최장로님께서 준비한 홍어회와 삶은 돼지고기에 묵은지까지 제대로 된 삼합을 1,500m고지에서 맛보니 남 부러울 게 없다. 여기저기서 삼겹살 굽는 냄새가 진동하는데 오히려 그 냄새가 불쾌하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식사 후 자연 누룽지와 함께 차를 마시고 좁은 잠자리를 정리하니 주변이 어둑해 지면서 구름이 몰려온다. 그렇지만 싸늘한 가을 바람을 맞으며 하늘을 처다 보니 별이 하나 둘씩 보인다. 어찌 이 별을 놓치랴. 김대장께서는 이미 나와 별자리를 찾고 있었다. 김태홍집사님과 함께 김대장님을 따라 능선에 오르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하늘이 열린다. 이런저런 별자리를 이야기하는데 스쳐 지나가는 소리일 뿐 우린 북두칠성과 은하수에 푹 빠져서 천상의 아름다움을 눈으로 밖에 담을 수 없음에 아쉬워해야 했다.
<둘째 날>
세석대피소출발→촛대봉→연하봉→일출봉→장터목대피소→제석봉→통천문→천왕봉(1,915m)→장터목대피소→소지봉→백무동 총거리 15.13Km, 8시간06분 소요
바이로리듬의 변화로 뒤척이는 잠자리에 모두 잠을 설친 듯 한데 특히 민감한 모모 집사님과 함께 불과 2~3시간 밖에 잠을 청하지 못하였으니 오늘 하루의 일정이 겁이 난다. 그러나 자연 속에 머문 이유인지 피로감은 별로 없었다. 어젯밤 너무 맛있게 잘 먹은 탓인지 시장끼가 없었지만 남은 반찬을 모두 모아 김치찌개로 아침상을 차리니 잔반이 남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다. 산 위의 모닝커피로 잠시 머문 뒤 인증샷을 남기고 06:18분 구름 속에 천왕봉 정상을 향하여 출발한다.
약 20분을 오르니 촛대봉이 반갑게 맞이한다. 예상했던 대로 구름과 안개 속에 일출은 포기하고 약 한 시간 가량을 더 진행하니 연하봉에 다다르고 급기야 노고단까지 보이는 지리산의 운해를 맛보게 하니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일출봉을 지나 08:15분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하여 잠시 짐을 정리하고 단독군장으로 정상을 향한다. 역시 구름이 앞을 가리고 구름의 수분으로 인하여 차갑게 느껴지는 가운데 제석봉을 지나 통천문을 앞두고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놀라 발걸음을 멈추니 스틱을 분실했다고 도움을 청한다. 앞 뒤로 찾아 보다가 계단 밑에 숨겨진 스틱을 찾으니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은 기분이다. 고도를 높여 갈수록 천왕봉 정상에 대한 설레임으로 먹먹해 지는 가슴을 쓸어 담고 한발자국씩 내 딛는 걸음이 가볍게 느껴진다.
하늘로 향하는 통천문을 지나 드디어 남한의 육지 최고봉 지리산 천왕봉(1,915m0에 오르니 정상석 뒤에‘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하다’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길지 않은 줄을 서서 인증샷을 남기고 바람을 피하여 교회와 가정을 위해 잠시 기도를 마치고 찬양을 부르며 몸과 마음을 자연에 깊이 잠기어 본다. 다시 장터목으로 하산하는 길은 무척이나 가볍다. 장터목에는 이미 간식으로 라면 물이 끓고 있었다.
소지봉과 참샘을 지나 백무동을 향하여 하산하는 길은 지루하게 한 참을 내려와야 했다. 잠시 족탕을 위해 머물 무렵 빗방울이 떨어진다. 많이 오지 않을 듯하여 배낭커버만 씌우고 하산하는데 이미 준비한 우의를 사용해야 한다며 우의를 입고 하산하던 발걸음은 30분도 안되어 벗어야 했다.
백무동 탐방안내소에 도착(14:24)하여 잠시 땀을 씻기 위해 간이 샤워를 하고 애마에 오른다. 잊지 못 할 추억의 힐링 1박2일 지리산 산행을 안전하게 마무리하며 19시30분 교회에 도착하여 감사를 드리고 해산한다.
첫댓글 산행기를 찾아 추가 올렸습니다.
2015년 늦여름 지리산 산행기를 추가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