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발암성 화학물질의 사용이 늘어남에 따라 직업성 암 발생이 많아질 것으로 추정되나 인과관계를 밝히기가 어려워 실제 산재로 인정되는 사례는 많지 않다. 직업성 암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이 직업성 폐암이다. 미국에서는 폐암의 10%는 직업성 또는 환경성 원인에 의한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암 중 2∼8%를 직업성으로 가정하여 일년에 3,000∼1만2000명의 직업성 암이 발생할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2001년과 2002년도에 직업성 암 중 다수를 차지하는 폐암이나 악성중피종을 보면 산재 요양으로 인정되는 수가 폐암이 379건, 악성중피종이 1,002건이었다. 호흡기 의사들이 참여하는 감시체계에서는 폐암이 274건, 악성중피종이 973건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한해동안 발생하는 폐암 환자가 1만 명이 넘는데 이 중 5%가 직업과 관련 있다고 가정하면 약 500명의 직업성 폐암이 발생하는 셈이다. 그러나, 직업성 폐암으로 밝혀진 사례는 1년에 10건을 넘지 않는다.
폐암을 일으키는 비직업적 요인은 흡연이 가장 큰 요인이며 직업적으로는 다양한 물질이 알려져 있다. 국제암연구회(IARC)에서 제1종 발암물질로 규정한 유해요인으로는 석면, 크롬, 비소, 베릴륨, 클로로메틸에테르, 카드뮴, 니켈, 염화비닐, 결정형 유리규산, 혼합물로는 검댕과 콜타르이고 유해환경으로는 코크스 제조업 등이 알려져 있다. 직업성 폐암으로 일으키는 원인은 다양하기 때문에 폐암이 발생하면 인과관계를 밝히기가 쉽지 않아 직업병으로 인정받는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폐암의 가장 큰 원인은 흡연이고 우리나라 근로자의 60∼70%가 흡연력이 있으므로 흡연과 같은 비직업적 요인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직업적 요인에 의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비직업적 결정요인인 흡연력은 확실하지만 직업적 결정요인인 노출 물질의 발암성, 노출량 등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한해 직업성 폐암 발병자 500여명 추정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직업성 폐암으로 가장 많이 인정된 것은 진폐증 광부에게 발생한 폐암이다. 진폐증을 일으키는 결정형 유리규산이 발암물질이고 진폐증이 있는 근로자에게서 폐암 발생률이 일반 인구집단보다 2.5배나 높다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연구결과에 의해 진폐증의 합병증으로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1999년 7월부터 8대 광업에서 1년 이상 근무한 근로자에게 진폐증이 있으면서 발생한 원발성 폐암은 자동적으로 직업성 폐암으로 인정받고 있다.
다음으로 석면에 노출된 근로자에게 발생한 폐암이다. 석면은 잘 알려진 폐암 유발물질로 석면에 노출된 것이 확인되는 근로자에게 폐암이 발생한 경우에는 쉽게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6가크롬에 의한 폐암도 인정되고 있다. 6가크롬에 의한 폐암은 크롬제련업, 스테인레스제강업, 크롬 안료를 사용하는 작업에서 많이 보고되었으며, 이외에 크롬 함유강의 용접 및 절단, 크롬 안료의 도포 및 제거 등의 작업에 장기간 종사한 근로자에게 폐암이 발생한다. 우리나라에서 6가크롬에 노출되는 작업자가 가장 많은 작업은 도금작업인데, 도금작업자에서 왜 폐암 발생이 늘어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많다. 도금작업에서 사용되는 6가크롬은 주로 수용성으로, 비수용성 6가크롬에 비해 발암성이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많은 논란을 거친 후 2002년부터 도금작업자에게 발생하는 폐암도 직업성 폐암으로 인정하기로 했다고 하나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충분한 자료가 축적되지 않아 도금작업자의 폐암은 직업병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용접작업자들은 용접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진과 흄에 노출되는데 여기에는 다양한 중금속이 포함되어 있고 그 중에서 크롬 등은 폐암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국의 연구 문헌을 보면 용접작업자에서 폐암 발생이 증가한다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다는 논문도 있는데 아직은 용접작업과 폐암 발생이 관계가 있다고 일반화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의사들 중에도 일부에서는 용접작업에서 폐암 발생이 증가하였다는 일부 논문을 들어 용접공에 발생한 폐암의 업무관련성을 주장하는데 아직은 성급한 주장이다. 만일 일반적인 용접작업이 폐암 발생을 증가시킨다면 약 20∼30만 명의 용접공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역학적 조사에서 의미있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데 아직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용접작업에서 폐암 발생이 증가한 경우에도 일반철 용접작업이 아니라 크롬이 함유된 특수강 용접작업자이거나 석면에 노출되는 용접작업에서 나타나고 있다. 석면은 일반 용접공에게 노출될 가능성은 적고 주로 선박건조나 수리조선업에 근무하는 근로자에게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1990년대 중반 이전에는 용접공들이 불티방지포로 주로 석면으로 제조된 용접포를 사용하였으므로 그 당시 용접 작업자는 석면에 노출될 수도 있다. 크롬은 스테인레스강 등 주로 특수강을 용접하는 근로자들이 노출될 수 있다.
우리나라 선박 건조나 일반 기계제조업에서 과거에는 일반강을 많이 사용했으나 최근 들어서는 특수선박 건조 등에서 스테인레스강 등 크롬이 함유된 특수강을 더 많이 사용하므로 과거에 비해 최근의 용접자들에서 6가크롬에 노출될 가능성은 더 높아지고 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는 용접작업자에서 폐암이 발생한 경우 석면 노출이 확인되거나 6가크롬에 일정 수준 노출되는 경우에는 업무관련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으나 일반 용접작업자의 폐암은 업무관련성이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특수강 용접작업자 폐암발생 증가업무상질병 인정기준에는 아직 제정되지 않았지만 결정형 유리규산에 노출되는 작업자의 폐암도 직업성 폐암일 가능성이 높다. 결정형 유리규산이 가장 많이 노출되는 작업은 주물사를 취급하는 주물작업이다. 유리규산은 모래에 많이 섞여 있는데 유리규산이 모두 발암물질이 되는 것은 아니고 결정형 형태만 암을 유발한다. 유리규산을 사용하여 분진에 노출되더라도 비결정형 형태이며 폐암을 유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비결정형 유리규산도 열과 충격을 받으면 결정형 유리규산으로 바뀌므로 사용 방법에 따라서는 발암물질이 될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에 의하면 주물작업자의 폐암 발생률은 일반인에 비해 크게 높다. 이는 흡연에 의한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결정형 유리규산이 폐암을 일으킨다는 역학적 증거가 된다. 통상 10년 이상 주물사 분진에 노출되는 근로자에게 발생한 폐암은 직업성 폐암으로 인정하고 있다.
코크스로배출물도 잘 알려진 폐암 유발물질이다. 과거에는 국내에 여러 곳에서 코크스를 제조하였으나 지금은 두 개 사업장에서만 제조하고 있다. 콜타르로 폐암을 일으킬 수 있다. 자동차 배기가스 등에 포함된 다핵방향족탄화수소류도 발암물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배기가스는 아직 어떠한 수준의 노출에서 폐암이 발생할 수 있는지 확실한 근거는 없다. 따라서 10년 이상 배기가스를 직접 측정하는 근로자 또는 정비공에게 발생한 폐암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되고 있다. 일반 근로자나 자동차 운전기사가 단지 배기가스에 많이 노출되었다는 추정만으로는 직업성 폐암을 인정할 만한 근거는 아직 없다.
2002년 7월까지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조사하여 업무관련성이 인정된 폐암은 20건이다. 이중 석면에 의한 것이 7건으로 가장 많고 용접작업(크롬 또는 석면) 4건, 도료에 함유된 크롬 1건, 분진중의 크롬 1건, 코크스로배출물 1건, 주물사의 유리규산 2건, 자동차배기가스의 다환방향족화합물 4건이었다.
[사례1] 용접 및 가우징 작업장에서 발생한 폐암
55세의 H씨는 23년 간 조선소에서 배관용접 및 가우징작업을 하던 중 폐암(선암)을 진단 받고 사망하였다. H씨는 15년 간 가우징작업과 아크용접작업을 하였다. 가우징과 용접작업시 화재 예방을 위해 석면포를 사용하였다. 이후에는 공무팀 소속으로 수리선 교체작업을 하였다. 이 작업장에 작업환경측정 기록은 1996년 이전 것은 없고 이후 기록에서는 50% 이상의 작업에서 분진의 노출기준을 초과하고 있었다. H씨는 발병 10년 전에 진폐증을 진단 받았고 발병당시에는 진폐 3형이었다. H씨는 흡연을 하지 않았다.
가우징작업에 사용되는 모재나 용접봉에 크롬이나 니켈 성분은 적어 가우징과 용접작업에서 발암성 물질인 6가 크롬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그러나, H씨가 입사 10년 후에 용접공폐증(진폐증)으로 진단 받은 것으로 보아 용접흄이나 용접분진에 과다노출 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사례2] 버스정비공에서 발생한 폐암
36세의 J씨는 18년 간 버스정비공으로 근무하던 중 폐암(선암)을 진단받았다. J씨는 발병 1년 전까지 매일 23대 버스의 엔진을 점검하였는데 매일 육안으로 매연 검사를 하였고, 월 1∼2회 정도 매연 측정을 하였다. 당직일에는 새벽에 출발하는 23대의 버스에 시동을 걸고 차량 상태를 점검하였고 주 1∼2회 정도 1∼2시간씩 이루어졌던 브레이크 라이닝 교체작업을 도와주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조사 결과 브레이크 라이닝에는 석면이 40% 함유되어 있었다. 라이닝 교환작업을 한 근로자에서 석면농도는 노출기준 이하이었다.
J씨와 같은 작업을 하는 근로자에 대한 디젤연소물질은 노출기준을 초과하지는 않았다. 디젤 연료를 사용하면 다환방향족탄화수소가 발생한다. 디젤연소물질이 체내에 흡입된 후 배설되는 소변 중의 다환방향족탄화수소의 대사물질을 측정한 결과 배차담당자와 운전기사는 같은 수준이었으나 정비사는 다른 부서 종사자들보다 더 높았다. 특히 채취일 전날 당직을 하고 조사당일 오전 5시경부터 엔진 시동을 걸었던 근로자는 비흡연자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근로자보다도 높게 나타났다. 최근의 연구에서 디젤엔진 연소물질에 노출되는 근로자에서 전반적으로 폐암 발생 위험도가 높고, 양반응 관계도 보이고 있다. J씨는 흡연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J씨는 비흡연자로 18년 간 노출된 석면이나 디젤엔진 연소물질과 그에 함유된 다환방향족탄화수소류에 의해 폐암이 발생하였을 가능성이 높았다.
[직업병이 아닌 사례]알루미늄 용접공에서 발생한 폐암
54세 K씨는 11년 간 알루미늄 법랑냄비를 만드는 회사에서 알루미늄용접 및 배관수리, 청소 등을 하던 중 폐암(편평상피세포암)을 진단받았다. K씨는 세척을 거친 알루미늄 냄비에 손잡이 부착용 알루미늄 못을 아크용접하는 스터드 용접작업을 하였다. 용접 부위의 산화방지를 위하여 아르곤 가스를 사용하며 용접 1개당 약 25cc 정도의 아르곤 가스가 방출된다. 1996년 이후 작업환경측정에서 용접흄의 농도는 노출기준의 이하이었다. K씨는 입사 이전에도 알루미늄 산소 또는 아르곤 용접을 하였다. 흡연력은 약 20년 간 10∼15갑·년이었다.
알루미늄 용접은 알루미늄 모재와 용접봉에 발암물질은 함유되어 있지 않았고 용접작업시 발생하는 흄의 농도도 높지 않았다. 배관작업에서 근로자들이 석면으로 알고 있던 보온재는 유리섬유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K씨는 작업 중에 폐암을 일으킬 만한 발암요인에 노출되었던 증거가 없고 흡연력이 있어 K씨의 폐암은 업무와 관련이 적은 것으로 판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