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규슈 미야자키현 난고손 마을
일본 규슈(九州)지방의 미야자키켄(宮崎県) 난고손(南鄕村) 마을 사람들은 스스로를 <쿠다라노사토(백제마을)>이라고 자랑스럽게 부른다.
이 마을은, 660년에 백제가 망하자 한 왕족 집안이 피신해 와 살았다는 작은 마을로, 1,200년 전의 역사를 되살려 멋진 관광촌을 만들기 위해 마을 가꾸기에 온통 힘을 합치고 있는 중이다(註:1993년 현재)
이 마을에는 <미카도 신사(神門神社)>가 있는데, 백제의 망명 왕족 정가왕(禎嘉王)을 모시는 신사다.
정가왕은 우리 고대사 문헌이나 일본 역사책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다.
이 신사는 5세기~8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동경(銅鏡), 칼, 토기 등 수많은 고대 유물을 소장한 일본의 10대 신사 중 하나로 꼽힌다.
소장품 중 특히 권력의 상징인 동경이 33점에 이르러 정가왕이 상당한 고위 왕족이었음을 의미한다,
이 마을에 피신한 백제인은 정가왕과 둘째 아들 화지왕과 비(妃)를 비롯한 십여 명이었다.
그리고 정가왕의 왕비와 큰아들 복지왕과 비(妃)는 이 마을에서 90km 떨어진 곳에 따로 살았다.
이곳에도 정가왕비와 복지왕을 제신(祭神)으로 섬기는 <히키 신사(比木 神社)>가 따로 있다.
가족이 흩어진 것은 백제에서 배로 떠날 때 두 척의 배로 떠났는데, 도중에 폭풍에 표류하다 각각 다른 해변에 이르렀다고 하지만,
작가는 적군이 추격해 올 것을 대비해 미리 대비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추적 군사는 끝내 난고손(南鄕村) 마을에 이르러 정가왕을 시해하고, 이 소식을 들은 큰아들이 달려와 응전하였으나 그도 전사하고 만다.
그렇다면 구석진 산골까지 백제 왕족을 찾아와 죽이려 한 세력은 누구일까?
작가는 필경 천무왕일 것으로 추측한다. 그는 672년에 쿠데타로 일본 땅의 백제계 정권을 무너뜨리고 왕위에 올라, 반대 세력인 백제계 천지왕의 권속을 샅샅이 뒤졌다.
백제 왕가의 부활을 미리 막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정가왕이 죽은 것은 672년 이후로 판단된다.
백제를 떠난 지 10여 년 후이다.
이 10여 년 동안, 정가왕과 복지왕 집안사람들은 이 마을에서 농경 기술과 의술을 주민들에게 가르치는데 골몰했다.
노래와 춤, 제사 지내는 법 등 생활문화도 전했다.
마을 사람들이 지금껏 그들을 신으로 모시는 데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셈이다.
이들이 이 마을에 사는 동안 정가왕 식구들은 해마다 하나의 제사를 정성들여 모셨다.
해마다 음력 12월 14일부터 9박 10일의 여정으로 큰아들네가 아버지가 있는 남향촌을 찾아가 다례(茶禮)를 지냈다.
이 나들이 의식은 1,2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전해져 연례적으로 치러지고 있다.
전통을 지키는 <백제마을> 사람들의 지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행렬이<미카도 신사(神門神社)>에 다다르면 온통 들판을 불태우는 <불맞이> 행사가 베풀어지고
밤새 풍악과 노래, 춤과 더불어 <미카도 신사(神門神社)>와 <히키 신사(比木 神社)>, 두 신사의 잔치를 겸한 합동 제례가 지내졌다.
모든 의식이 끝나는 날, 아낙네들은 부엌 솥 밑의 검댕이를 긁어다, 떠나는 사람들의 얼굴에 문질렀는데 혹시 가다가 적군을 만나면 누가 복지왕인지 구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랬던 것이다,
그리고 피리 소리와 더불어 마을 어귀 논두렁에 길게 늘어서서 배웅하며 솥뚜껑, 냄비뚜껑, 밥주걱, 국자, 대바구니, 소쿠리 등 부엌세간을 손에 손에 들고나와 흔들며 소리친다.
“사라바! 오 사라바!”
떠나는 이들의 모습이 산모퉁이로 사라질 때까지 “사라바”는 몇 번이고 구성지게 되풀이된다.
이 <사라바>는 우리말이다. <살아 봐> 즉 <살아서 다시 보자>는 처절한 이별의 인사말. 이것이 일본 땅에 역시 이별 인사로 살아 남아있다.
이 말은 TV 역사 대하드라마나 흘러간 옛노래 가사에 자주 등장한다.
<이자(いざ) 사라바(さらば)!>라는 노래 제목도 있다.
<이자>도 우리말 <이제>의 옛말이다. <이제 헤어져 살아남아 있다가 다시 보자>는 뜻의 인사말이다.
비운의 고대사와 더불어 건너간 우리말 <살아 봐>는 일본에 뿌리내려 <안녕!>, <그렇다면..> 등을 뜻하는 일본어가 되었다.
그러나 어원을 알고 보면 이 단순한 말마디가 얼마나 절실한 외침이었는가를 깨닫게 된다.
동시에 오늘날의 일본어 속에서 아름다운 우리 옛말을 기적처럼 풍성하게 건질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백제제(百濟祭)는 지난 <대전 엑스포>때 일본 <백제마을> 사람들에 의해 재현되어 화제를 모았다.
(註) 대전 엑스포: 1993년 대전에서 열린 세계 박람회. 마스코트는 꿈돌이. 108개국 33개 국제기구 참가. 입장객은 약 1,400만 명
이 글은 1993년 5월 30일부터 조선일보 일요판에 연재된 기획물 ‘노래하는 역사’를 간추린 내용이다.
더불어 스크랩한 신문의 뒷면에 실린 30년 전의 사회 실상을 추억하는 내용을 덧대었다.
작가 李寧熙(1931-2021) 선생은 이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화작가, 한국일보 기자, 논설위원을 역임하였다.
만엽집(萬葉集·まんようしゅう /만요슈)
8세기 나라 시대에 편찬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 모음집( 20권 4,516수).
5세기부터 8세기까지의 시가이지만 대부분 7세기 초반에서 8세기 중반에 지어짐.
당시 일본에는 문자가 없어 우리의 향찰(이두 문자)와 비슷하게 일본어 발음을 한자로 표기.
그러나 문자에 대한 해석이 완전하지 않아, 여러 가지로 번역되고, 현재도 정확한 의미가 불분명한 것들이 있다. 만요슈의 많은 노래는 중국, 한반도(특히 백제)의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30년 전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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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시드니 셀던의 책 한 권쯤 읽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기억된다.
그의 책 한 권이 서재 어딘가에 꽂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 찾아보니 없다. 대신 일본 추리 작가 기가시노 게이코의 책이 잔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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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무렵, 내 부모님의 연세를 생각하니 지금의 내 나이이다. 가을이 되면 건성이 되는 피부에 보습제를 바르며 바셀린을 달고 사신 어머니가 문득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