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김기석의 FUNminton.. 원문보기 글쓴이: 펀민턴김기석
안녕하세요...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
글을 쓸려고 생각하면 사진이나 영상으로 올려야 제대로 전달을 할 것 같아서 접고, 또 접고...
하다보니 여기 까지 왔네요...이건 제 지나온 이야기라서 민턴 경험기에 올릴까 하다가 그냥 이곳에 적어 봅니다.
언젠가 한번 이야기 하였듯이 달리기를 잘한다는 이유로 배드민턴이라는 운동을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당시 4명의(저포함입니다.)아이들이 배드민턴 4학년 신입부원 이었습니다. 위로는 선배님들이 계셨구요..대교눈높이에 계시던 김경란 선배님도 계셨습니다. (그당시 엄청 무서웠습니다.)
처음에는 공부에 흥미없던 저에게 유일한 칭찬을 해주는 곳이니 넘넘 좋았습니다. 또 시간되면 빵도 주고 우유도 주고...넘넘 좋았습니다. ^^또 그당시에는 동학년중에 1등이었으니(4명중이지만^^)가지 말라고 말려도 갔었죠..^^
스냅과 스윙 풋웤 위주로 운동을 하고 6학년 선배들이 운동하면 뒤에서 하루 종일 점프스윙만 한것 같습니다.(선배들의 수업시간이 보통 1~2시간 더 많으니 그시간에 죽어라 쳤습니다.)
--이건 초보자 분들과 비슷했던것 같습니다. 여유 있을때 난타 오래 치잖아요..^^
그렇게 어떻게 지났는지...1년이 흘러서 5학년이 되었습니다.
선배형들이 5명인지라, 운이 좋게 5학년때 전국대회에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선배님의 복식 파트너가 없어서..)첫 대회가 전국종별선수권대회였습니다. 국군체육부대에서 했습니다.
처음 나가본 시합 어린 마음에 체육관이 어마어마하게 컸던것 같습니다. (학교 체육관에서만 운동을 했으니 당연하겠죠...)
또 부대라서 P.X (전 그냥 매점이라고만 알았죠...그때는..)에 가니 먹을것도 싸고...이야~~
그냥 좋았습니다. 첫시합 나갈때 설레임 있잖아요...모든 것이 행복했습니다.
다만 거기까지...^^
첫시합을 강원도 횡성초등학교인가?(정확치는 않음)6학년 형이랑 뛰었는데, 뒤로 클리어 치러나가다가 다리가 꼬여서 엉덩 방아도 찌고, 완젼 코미디 하고 나왔습니다.(이때 방수현누나의 아버지 방일수님도 보고 그 동료 코미디언분들도 여러분 보았습니다. 마냥 신기~~)점수는 11:3, 11:0 그래도 3점 따서 좋았답니다. ^^
복식은 제가 실력이 딸리는 관계로 앞에만 서서 쳤습니다. 한 6점정도 딴것 같은데....이때 중간공을 내가 친다고 나가다가 선배의 눈을 라켓으로 때리고 말았습니다.^^ 일부러 그런건 아닌데...(일부러 그런건가?^^)
저는 이렇게 첫날 시합이 다 끝나고 선배들은 계속 이기니 며칠 시합을 했습니다.
이때 느낀 점은 시합나가면 미역도 못먹게 하고, 후라이도 못먹게 하고, 손톱도 자르지 못하게 하고, 암튼 이런것들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후에는 신경 써본적이 없었지만...징크스라는 것을 처음 느껴본것이죠..
이래저래 시합을 마치고, 학교에 돌아온 저는 여느 동호인 분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것을 느끼고, 열심히 해서 다음에는 오래오래 남아야 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또 같은 일상이 반복되고, 친구 한명이 집에서 반대하는 관계로 운동을 그만 두게 되었고, 그사이 후배들은 새로 들어왔습니다. 그중에 이현일선수도 있답니다.
서울에는 아현초등학교와 영등포 초등학교, 이수초등학교, 또 무슨 초등학교인가? 4개 정도가 있었습니다.
제가 나온 영등포초등학교가 배드민턴 명문은 아니지만, 지금 돌아보면, 라경민, 김경란, 이현일, 그외 저를 포함한 많은 국가대표선수들을 각 학년마다 배출 했으니 명문이라면 명문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래도 서울에서는 아현초등, 중학교를 무시 할 수 없습니다.
저희또래는 아현초등학교가 가장 잘 하였습니다. 첫시합에 나가서, 가장 잘한 다고 믿었던 제가 아현 초등학교의 4장 4명중에 4등하는 선수하고 시합을 하여 졌으니...그당시에는 실력차이가 많이 났었던 것 같습니다.
복식또한 터무니 없는 점수 차이로 패를 하고, 아현초가 1,2위 저희 2개팀은 공동 3위를 하였습니다.^^
가끔 대회에 나갔는데...참가 팀수가 적어서 자동 입상 하는때가 있잖아요...이때가 그런 경우였던 것입니다.
그래도 집에 가서는 메달 땄다고 너스레를 떨었으니...지금 생각하면 넘 뻔뻔했던 기억입니다.
그리고 또 1년이 지나고 학교의 주축이 되는 6학년이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진짜 내가 운동을 하는구나" 하고 느끼게 했던 한해였습니다.
6학년이 되어 첫 서울시 시합에 나가게 되었고, 또 상황이 어찌 작년과 틀려진것이 하나도 없는지, 대진도 작년과 같고, 결과도 작년과 같았습니다. ^^ 완전 좌절~(서울에서조차 입상을 못하였으니 전국대회는 꿈도 못 꾸었죠...)
이와는 대조되는 결과로 5학년 후배들은 1,2,3등을 싹쓸고, 복식 또한 1,2등을 했습니다.
흔히쓰는 말로(X팔린다고 하죠~)이때 후배들이 지영철(현 수원시청) 이현일(현 김천시청) 이성림(현 충주시청) 전홍기 (현 생활체육지도)
------------------------------이때 부터 시련의 시작이었습니다.(내용은 나중에)
결과가 이렇게 나왔으니, 참 막막했습니다. 이거 운동을 계속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때 제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세요? 2년 밖에 투자를 안했으면서 "내가 2년이나 했는데 아까워서 못하지.."
하고 생각 했습니다. 앞으로 20~30년을 더 할 것은 생각도 못하구요...)
------------------------------------------------------------------------------------------
참! 저희 학교를 이야기 하자면 제 기억에 코치님께서 두분 계셨는데...금방 1~2달 하시다 가곤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체대를 막 졸업하신 분들이셨는데요... 코치로 오셨으니 실력은 조금 떨어지셨던 분들 같구요...몇달 못하신것 보면 보수가 적은데, 실력이 없으니 못버티시고 금방 바뀌는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학교 선생님분들 중에 배드민턴을 즐기시는 선생님께서 감독 선생님을 하셨답니다.
매년 감독 선생님께서 바뀌셨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6학년때 김정호 선생님이란 분께서 감독선생님으로서 많이 이끌어 주셨습니다.
------------------------------------------------------------------------------------------
김정호 선생님께서는 무척 무서우신 호랑이 선생님이셨습니다. 항상 한손에는 몽둥이를 들고 계셨으니 어린 저희들로서는 무척 무서운 선생님으로 기억되었죠....
사실 맞기도 많이 맞았습니다. 대걸레 자루로 하루에 10대는 맞아야 하루가 갔을 정도니까요...
일화로 서울시 대회가 끝나고 분발하여 열심히 운동하고, 전국종별선수권대회(1년중 유일하게 개인전이 있는 대회랍니다.)에 출전 하였습니다. 비교적 모든 선수들의 실력이 좋아져서 1~2회전씩 모두 진출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일이 터졌습니다. 바로 저 때문에...^^
복식을 하는데, 파트너가 실수를 엄청 하는겁니다.(그때는 제가 동학년중에 젤 잘했었다고 했죠?) 답답하고, 화도나서 싸웠습니다. 공도 대충치고, 그러고 나니 11점 치는데 2~3분 지났을까? 상대가 오히려 적응 못하더라구요...
그러고 밖에 나가서 감독 선생님께 인사하러 갔는데...“옥상으로 올라와”
마산실내체육관 3층인가? “몽둥이 찾아와!” 하시는데 맞기는 싫고, 해서 빈약해 보이는 막대기를 가지고 갔습니다. “엎드려 뻗쳐” 그리고 어디론가 사라지셨다가 오시는데 한손에는 대나무가 들려져 있었습니다. 뜨아! 가까이 올수록 악취가 나더라구요...
화장실에 변기 닦는 솔이 달려있던 대나무였던 것 같습니다. 안그래도 코트에서 화가난 것이 정리도 안되었는데, 갑자기 집합에 처음보는 대나무 몽둥이가 눈앞에 있으니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 5대만 참자!” 그런데...이게 웬걸~ 앞에 주장이 맞는데...보통 3~5대 정도면 “나와”이러시는데...계속 몽둥이가 위 아래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5,6,7,8,9.....
저희 한 30분 맞은 것 같았습니다. 8명 맞는데...한대 맞고 뒹굴고,또 한대 맞고 뒹굴고 이랬으니 시간이 오래 되었죠...^^
아무튼 이정도로 무서운 선생님이셨답니다. (달리 보면 그만큼 열정이 있으셨던 것이겠죠)
전국종별선수권대회를 마치고.... 특단의 조치가 떨어졌습니다.
그 첫 번째로....
강훈련을 하고 코트의 구석에 분필로 작은 원을 그려놓으시곤, “집에 가려면 10개중 5개 이상 들어가면 검사 맞고 집에 가라”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런 집에 가서 매칸더V봐야 하는데...꽃 향기를 맞으면 힘이 솟는 꼬마자동차 붕붕도 봐야 하고...^^
암튼 집에 가기 위해 집중하여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게임의 시작이 되는 서브와 리시브는 정말 중요 한 것 같습니다. 그때의 연습이 그 후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매일 이렇게 연습하다 보니 서브가 정확해 지고, 서브가 정확하게 들어가니 푸시와 스매싱으로 당하지 않아 게임의 난리(스트록)횟수도 많아 졌습니다.
다음 두 번째로....“애들아 운동9시까지 하자”, “9시까지 운동하면 매일 짜장면 사줄게”
뭐 생각 할 것도 없었습니다. 영등포라는 동네가 조금 낙후 되었던 관계로(없는동네거든요...)어른들이 생각하시면 너 나이또래도 그랬겠냐? 할만큼 어린 나이 일지도 모르지만, 고기집은 갈 생각도 못했거든요...부 회식때는 짜장면이 고작 이었으니, 회식때나 먹는 짜장면을 매일 사준다는데, 못할게 없었습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영등포 초등학교 바로 옆에 중국학교가 있고, 그 바로 옆에 중국인이 하는 중국집이 있었는데...맛이 기똥찼거든요..
그렇게 약속을 하고 강훈련에 들어갔습니다. 아침 일찍 와서 아이들 자습할 때 우리는 운동장에서 아침 운동을 하였고, 훈련을 하루에 4~5시간씩 하였습니다. 기본 체육관 100바퀴 뛰고 스윙에 풋웤만 50분, 기본스트록 1시간 게임, 헌볼훈련, 체력훈련........
짜장면을 생각하며 모두 참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2~3달이 흘렀을까?
드디어 그간의 훈련을 테스트 할 수 있는 대회에 참가 하였습니다.
전국가을철 추계리그전.....
배드민턴대회는 모두 리그전입니다. 같은 팀에 어떤팀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성남의 희망대 초등학교는 확실한것 같습니다. 그팀이 조1위였으니까요....
그당시에 서울에서 코치를 하고 있는 백장규 정영진 코치는 절대 이길 수 없는 강자 였습니다.
5학년때 6학년들을 이길 정도로 희망대초등학교는 엄청 센팀이었거든요...
희망대 초등학교는 1위 확정으로 준결승진출이고, 나머지 2위팀이 준결승에 올라가는데...물리고 물려서 마지막 게임에 아현초등학교와 영등포초등학교 같은 서울팀끼리 붙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3:0 항상 패를 했으니, 지는것은 당연한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짜장면의 힘으로 지금까지 해온 훈련이 있으니 자신은 있었습니다.
경기는 시작되었고, 넘 오래되어서 이긴것 밖에 생각이 안나네요...ㅋㅋㅋ
저와 그팀 2등선수와 붙겠되었습니다. 예상 밖의 승! 그리고 그팀 1등이었던 김대근(현재 서울에서 코치를 합니다.)선수에게 패 그래서 게임점수1:1 복식도 마찬가지로 1:1 마지막선수로 후배인 지영철선수가 나갔습니다.
초중학교때 막강이었거든요...그래도 상대는 아현초 6학년....
업치락 뒷치락, 역전에 역전 세트스코어 1:1 마지막 파이날 세트에서 넘어지더니 무릎에서 피가 철철...진자 박진감 넘치는 경기 였던것 같습니다. 결과는 마지막 비슷비슷하게 가다가 이겼습니다.^^
어찌나 기쁘던지...서울에서도 3:0 패만 하였는데....전국대회 그것도 중요한 준결승 진출 한경기를 남기고 이겼으니 무척으나 좋았습니다.
그리고 칭찬 많이 듣고 회식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후 1달 후 서울시 대회 단체 경승전 도 아현초등학교와 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있었고, 자신 했었습니다.
역시나 스코어 2:2 그당시 김대근 선수는 이길 선수가 없었거든요...^^
마지막 파이날 단식 1게임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경기 들어가기 전에 오더를 짜는데....한 친구가" 저 꼭 이길 자신 있습니다."
해서 다른 친구가 들어 갈것을 그친구가 들어 갔거든요...(이름은 생략 하겠습니다.^^)
반신반의 했지만, 이길 것 같기도 했구요....우리는 모두 우승이구나! 하고 자신 하고 있었습니다.
대충 오더 나온것만 봐도 몇대몇에 누가 이기고 누가 지고, 이렇게 이기겠구나 나오거든요...^^
그런데 이게 왠걸? 이길 줄 알았던 친구가 져버린 것입니다. 찬물 쏴~~~~
그친구 집에 혼자 갔습니다.^^
저도 이때 기억에 10:3 마지막 한 포인트 남기고 역전패 했거든요...결국은 2,3세트 잡아서 이기긴 했지만요...
저도 역적 될뻔 했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서울 아현중학교를 진학 하기 위하여 시험을 치루기로 했습니다.
그때 동학년이 아현과, 저희 학교를 포함해 7명이었는데...5명만 특기자가 된다고 해서 시합을 해서 정하기로 했습니다.
운이 좋아서 제가 차례대로 상대 1장 2장 4장을 모조리 이기고 이명훈 코치에게만 졌습니다.
이길수 있었던것 같았는데....
그리하여 아현중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을 하고 나니 너무나 기분이 좋았습니다.
시합에 나가면 아현중학교는 다른 팀들의 선망에 대상이었거든요...
시합 나가면 무조건 상위입상에 주니어대표(청소년국가대표)도 많고, 넘넘 좋았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3학년에 무척이나 무서운 선배님이 계셨습니다.
개인 프라이버시가 있으므로 실명으 거론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만나 뵌 후 동의 하시면 실명으로 전환 하겠습니다.
그냥 c선배라고 하겠습니다. ^^
악몽의 시작이었습니다. 매일 새벽7시까지 부실에 집합해서 맞고, 또 내일 또 맞고, 또 맞고...매일 맞았습니다. 라켓 손잡이로 머리 맞고....
진짜 많이 맞기도 맞고, 온갖 괴롭힘은 다 당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려서 강해보이고 남을 통제할 수 있다는 그러한 것 때문에 많은 선배들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저또한...)
하나 하나 나열 하자면 많은 사건이 있지만...시간이 지난 후, 혹은 술자리에서 안주거리로 이야기 하겠습니다. ^^
아현 중학교 부원은 총9명 이었습니다. 이에 아현 초등학교까지 모두 하면 25~30명 정도가 되었습니다.
코트는 4코트! 한코트에 많이 들어가도 4코트에 4명해서 16명 그럼 나머지 10명 정도는 코트 밖에서 스윙 연습뿐이 못하였습니다. 게다가 체육관은 어찌나 열악한지.....
언더를 하면 천장에 Shuttle이 맞았습니다. 천장에 닿으면 지는게 룰이었고, 서브는 한번은 봐주고, 2번째는 폴트로 하는 나름대로의 체육관 룰이 있었습니다.^^
조금 이야기를 삐뚤어 나가면, 체육관이 낮은 덕분에 복식은 전국에서 가장 강한팀으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천장이 낮으니 언더는 할 수 없고, 무조건 스매싱 드라이브형 공격이고, 수비도 드라이브 일변도니 시합에 나가면, 상대들이 스피드에 정신을 못차렸지요...
예로 시합에 나가면, 단식, 단식, 복식, 복식, 단식의 경기순서에 3경기 (우선 승 하는팀이 이기는 룰)를 하게 됩니다.
한경기 한경기 피를 말리며 지켜보게 되죠...^^
그러나 전국에서 유일하게 앞의 단식 2경기를 져서 0:2가 되는 상황에서도 느긋한 팀이 아현 중학교 였습니다. 그정도로 복식에는 상대가 없었죠....제 기억에는 복식경기를 보고 있으면 고개가 아플 정도롤 빨리 Shuttle이 빨랐으니까요....
다시 돌아와서, 2년을 코트 밖에서 스윙만 했습니다. 학교 수업을 다 마치고 체육관에 오면 3시30~4시부터 시작하여 6시~6시30분까지의 운동 중 코트에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0~20분정도.....선배 형들이 휴식할 때 유일하게 들어가서 공을 칠 수 있었습니다.
수업마치고, 런닝 10~20분정도 숨이 턱까지 차게 뛰고, 스윙, 풋웤 20~30분하고 기본스트록 50분 정도 하고 복식 스트록 50분정도 하고 끝이 나는 것이 보통 스케쥴입니다.
저학년은 스윙, 풋웤까지 같이 하고 운동장에 나가서 또 운동장을 뛰고, 들어와서 스윙을 500~1000개 다시 합니다. ^^
이때 어찌나 운동을 그만두고 싶던지....겨우 참았습니다. 참을 수 있었던 것은 형들이 게임을 너무나 잘해서 아현중학교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했기 때문에 버틴 것 같습니다. 허나 바로 한해 위의 선배들이 너무나 잘해서(4명중 3명이 주니어대표)전대회 우승이라는 성적을 내니....저희들에게 코치선생님의 손이 올 시간이 없었습니다.
선배들이 졸업한 그때나 겨우 코치를 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창피한 이야기지만.....중학교 2학년때 까지의 성적 단복식 모두 1회전, 또는 2회전 탈락! ^^
운동을 많이 못한 것 도 있지만, 키가 반에서 3번째 였습니다 .중3 졸업때까지 최고가 13번이었던 것 같습니다. ^^
키가 작지만, 승부근성이 타고나 타선수들 또는 감독 코치님들에게 악바리란 별명을 얻었지만, 체형이 작은 관계로 힘에서도 많이 밀리고, 체력이 빨리 떨어져서 코트에 들어가면 운동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이 되어 코치님의 작품으로 만들어 지고자 열심히 하였습니다.
첫 대회인 전국춘계리그전 대회를 앞두고 열심히 운동 하고 있었습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복식 연습경기를 하던중, (저희 체육관에는 코트 사이사이에 물이나 침을 뱉을수 있는 철판이 있었습니다. 발털이게 같이 생긴 쇠판) 멀리 떨어지는 공을 치기위해 다이빙을 했습니다. 다행히 언더를 했으나 얼더를 하고 구부러진 팔을 그대로 쇠판에 떨어졌습니다. 약간 욱신 거렸지만, 뜨거워진 몸에 약간의 통증을 빼고는,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눈물이 날 정도로 많이 아팠습니다. 팔도 퉁퉁 붙고...
2년만에 돌아온, 코트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는데,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었기에 또 중학교 3학년이라 입상경력이 있어야, 고등학교에 진학 할 수있으니 물러날 곳도 없었습니다.
맨소래담 많이 바르고 파스 뿌리고 압박붕대 칭칭감고 운동을 하였습니다. 진짜 클리어 스매싱, 암것도 못치고 나올때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소년체전 끝날 때 까지 한 3개월을 운동 한 것 같습니다.
진통제 먹고 진짜 세상에 태어나 최고로 아팠던 때가 그때인 것 같습니다.
그 후에 병원에 가니 뼈조각이 떨어지고, 팔에 금이 간상태에서 그냥 붙어 버렸다고 하더라구요....
수술을 해야 하나 아직 성장기라 조금더 커야 할 수 있다고.....
별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냥 할 수 있는 방법 밖에...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부터 팔이 구부러지지도 펴지지도 않았습니다. 장애판정이 났죠TT
매 시합마다 나가서 팔이 아파서 시합을 못뛰었습니다.
이명훈 코치님과 복식조였는데. 너무 아파서 복식경기를 뛰다가 앞뒤로 혼복하듯이 뛰기 까지 했으니까요...(이때 처음으로 개인복식 3등이라는 등수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중학교 때의 기억은 점프 스윙했던 기억과 아팠던 기억밖에 없습니다.
다음은 주니어 대표에 대해서 쓸려고 했으나....
중학교 1학년 전국대회에 나갔던 생각이 새록새록 떠올려 봅니다.
그당시 저는 학부모님들께 악바리란 별명을 듣곤 했습니다. 운동을 못했으니 열심히 라도 뛰어야 했거든요..^^
동년배들보다 크는 머리하나가 작고 클리어 싸움에서는 이긴 적이 없으니 근성뿐이 없었죠...
그래도 다행인것은 그러한 근성이 많은 선생님들께서 저놈이 김기석이구나 라는것은 기억 할 수 있게 해주신것 같습니다.
특히나 생각이 많이 나는것은 군포인가? 그쪽에서 코치를 하고 계신 김명기 코치님과의 게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김명기코치님은 중학교 3학년 저는 중학교 1학년 성인들과는 달리 중학교 때까지는 파워나 신장에서 1년 차이가 무척 많이 난답니다.
간단하게 적기 위해 호칭 생략하겠습니다.
전 동기이자 우리 학년의 1장인 대근이와 한편이 되어 진광중 3학년인 명기형 또 그 파트너와 게임을 뛰었습니다.
단식에서 2:0으로 지고 있었고....첫번째 복식.....
당연히 지는거였지만, 예나 지금이나 누구랑 붙던지 무조건 붙고 보자는 자존심과 근성으로 열심히 뛰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상대는 무척재미있었을 것입니다. 막 덤비니 살살 요리하면서 게임을 즐겼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리 넘어지고, 저리 넘어지고...다이빙에 다이빙....때리고 또 때리고.....
정말 열심히 뛰었습니다.
제 평생 게임중에 손에 꼽히는 게임으로 기억됩니다.
가장 좋았던 것은 "관심"이었습니다.
게임을 뛰고 나오는데... 명기형이 이야 너희 잘한다....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또, 상대 코치님께서 너희 몇학년이니? 하고 물어봐 주시는데....어린 저에게는 엄청난 가슴 벅참과 동기부여를 받았습니다.
지금도 코트에는 많은 초보자 분들께서 들어오십니다.
이분들 또한 제가 어렸을 적에 그러한 마음 이실 것입니다. 기존 회원분들의 인사와 잠깐의 클리어연습, 또 많이 느셨네요....라는 인사를 한마디 건내주신다면 무척이나 뿌듯해 하시고, 클럽의 일원으로서 소속감을 가지실 것입니다.
오늘 모든 펀민턴 가족분들 주위의 초보자 분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만 건내보세요....
미래의 저 같은 사람 하나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 잖아요? ^^
별 내용은 없었지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참 한가지 또 이야기 하고 싶었던것....
이날 전 단식을 뛰게 되어 있었습니다. 위에서 시합때 미역을 안먹고 그랬던 징크스의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이날 게임을 2게임을 뛰어 주신다고 하여 기분이 좋아서 룰루랄라~~
골목길을 딱 나서는데...자전거가 와서, 제 뒤를 딱 들이 박았습니다. 별 이상은 없었지만....
그날 엔트리 제외 복식만 한게임 뛰었습니다.
그날 저녁 코치님께서 하시는 말씀! "너 자전거가 와서 들이박아 오늘 너 재수가 없을것 같아서복식만 넣었다"
에고~~이런걸 믿으시나요? 어찌나 속상하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