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풍동헌이 어디에 있지요?"
연풍면을 오가는 젊은이들 대부분은 처음 듣는 말인 듯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이리저리 헤매다 겨우 한 아주머니에게서 알아낸 정보
"이리로 쭉 가다, 왼쪽으로 가면 초등학교가 나오는데 그 안에 있어요."
"초등학교 이름이 뭔데요?"
"그냥 초등학교예요."
이곳 괴산은 이정표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곳이 참 많아요.
다시 초등학교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 콩 타작을 하고 있는 아저씨를 만났어요.
김홍도가 현감으로 있던 연풍동헌을 찾는다고 하니까 얼른 가르쳐 주더군요.
요즘 젊은 세대가 고장의 역사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속상했는데....
나이 든 세대는 그래도 잘 알고 있어, 속상했던 마음이 스르르 가라앉았어요.
연풍동헌은 연풍초등학교 안에 있었어요.
그리고 연풍초등학교는 바로 연풍성지 옆이었고요.
작은 이정표 하나만 있었어도.......
느티나무의 고장 괴산....
학교 교문을 바로 들어서자 이 커다란 느티나무가 반겨주네요.
이곳에 서서 이곳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지켜보고 있었을 느티나무......
학교 건물 앞에도 300년 된 느티나무가 있었어요.
와, 입이 쩍 벌어졌지요.
드디어, 찾았다!
연풍동헌......
동헌은 옛 관청인 관아에서 업무를 처리하던 중심 건물을 말하는 거예요.
연풍동헌은 원해 현종 4년(1663년) 현감 성희위가 지었고, 지금 있는 건물은 영조 42년(1766)에 다시 지은 것이에요.
연풍은 백두대간을 사이에 두고 산간분지에 자리잡고 있어 조선시대에는 군사 및 교통상 중요한 요충지였어요.
이러한 요충지 연풍에 조선 후기 화가 김홍도가 현감으로 임명되어 온 때는 정조 15년인 1791년 12월이었어요.
김홍도는 이곳에서 만 3년 동안 연풍현감으로 재직했지요.
그가 이곳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아요.
그가 부임해오면서부터 연풍을 포함한 삼남 지방에 내리 3년동안 지독한 가뭄으로 백성들이 살기가 무척 어려웠어요.
정조 17년인 1793년에 충청감사 이형원이 충청도 일대의 기근 상황을 돌아본 뒤 올린 장계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어요.
"연풍은 두 번째로 피해가 심한 지역에 속하는데, 수령이 나라의 곡식에 의지하지 않고 나름대로 곡식을 나눠주어 죽이라도 끓여먹어 굶주린 백성들이 살아났습니다."
그 뒤 정조 19년(1795) 정월에 정조가 충청 위유사 홍대협에게 연풍 사정을 물었어요.
"듣건대 김홍도는 한 고을의 수장으로서 잘 한 일이 없고, 중매나 일삼으며,
(중략) 사냥을 한다고 장정들을 동원하고, 빠진 사람에게는 벌로 세미를 거두어들여
고을이 소란하고 원망이 높으니 무거운 벌을 내려야 합니다."
그의 말을 듣고, 정조는 김홍도를 현감직에서 물러나게 했어요.
김홍도는 유능한 관리자가 결코 아니었어요.
신선과 같은 삶을 살고자 했던 예술가를 현감 자리에 앉히다니.....
김홍도를 무척 사랑했던 정조는 곧 김홍도를 불러올렸어요.
김홍도, 그는 철저한 예술가였어요.
"그는 때로 끼니를 잇지 못하는 생활 속에서도 그림 값 삼천을 받아
천으로 매화를 사고, 팔백으로 술을 사 친구들과 매화를 감상하며,
나머지 이백으로 쌀과 나무를 샀으니 하루치도 못 되었다."
김홍도.....
그는 풍채와 태도가 좋았으며 도량이 넓고 구야받는 것이 없어서 마치 신선과도 같았다...
이렇게 표현된 글귀도 있어요.
그런데 그는 왜 이 제비꽃을 보는데, 김홍도 같다는 생각이 들지요?
동헌이 있는 연풍초등학교는 올해도 개교 100년주년을 맞았다네요.
100년 후에 열어볼 작정으로 만든 '타임캡슐'의 모습.....
아무쪼록 이러한 유적들이 잘 보존되어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괴산군청의 아낌없는 후원과 보조가 필요할 텐데....
그냥 걱정이 되어 한숨을 푹 내쉬어봅니다.
참! SBS 바람의 화원 촬영장이 괴산군 덕평면에 있어요.
지금 한창 '관아와 동헌' 등을 짓고 있는 중이에요.
내년 봄 쯤이면 구경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때면 괴산군에서 이정표를 제대로 만들어 놓으려나....
(괴산군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건의해 볼 참입니다.)
첫댓글 콩타작, 도리깨, 늦둥이 제비꽃, 그리고 타임캡슐...... 모두 다 재미있군요.
단원이 현감으로 있었어도, 백성들은 먹고살기에 급급해서, 화풍이 일어날만큼 아니되었는가봅니다. 역사의 한 구석입니다
학교 안에 문화재를 갖고 있는 아이들은 어떤 기분일지 궁금해지네요.
글쎄요. 인천의 경우 문학향교도 문학초등학교 안에, 부평향교도 부평초등학교 안에 있는데....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요.
아름다운 고장엘 다녀오셨군요 역시 정겨운 고장입니다
전국 어디를 가도 참 좋더군요. 외국과는 또다는 정겨운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