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된지 7, 8년이 지난 50년대 중반, 6·25가 끝난 직후인 그 시절,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우리는 어른들을 흉내내어 이상한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그 노래의 사투리 노래말을 그대로 옮겨 놓겠다.
‘간밤에 구루마 발통(수레 바퀴) 누가 돌맀노(돌렸나)?
집에 와서 생각하니 내가 돌맀다(돌렸다).’
일본 군가 ‘노영(露營)의 노래’에서 따온 가락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이기고 돌아오겠다’는 뜻을 가진 일본어 노래말 ‘갓테쿠루조토이사마시쿠…’로 시작되는 군가였다. 그 시절에는 일본 문화의 잔재가 흔했다. 어른들은 우리말에다 일본어를 자주 섞어 썼고 아이들도 일본어 몇 마디는 너끈하게 알아듣던 시절이었다. 이 해괴한 노래는 그런 시절 누군가가 일본 군가에다 우리말 노래말을 실어놓은 것인 듯하다.
문제는 노래말이다. 간밤에 수레바퀴 누가 돌렸나, 집에 와서 생각하니 내가 돌렸다… 이 노래말은 별로 의미심장한 것으로는 들리지 않는다. 민요의 노래말이 대개 그렇듯이 이 노래의 노래말 역시 매우 평범한 사실만을 평면적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지나지 않는다. 민요의 경우, 노래말의 평면적인 서술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느닷없이 ‘수레바퀴’가 등장하는 이 노래는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른들을 흉내내어 이 노래를 민요 부르는 심정으로 줄기차게 불렀다. 그로부터 세월이 반세기 가까이 흘렀지만 8·15와 6·25가 되면 내 뇌리에는 자동적으로 이 노래가 떠오른다.
신화와 민요의 의미를 새겨 보려고 애쓰면서 이제 어렴풋이 짐작하기 시작한다. 어른들이 이 노래를 줄기차게 부른 것은, 그리고 우리가 흉내낸 것은, 어쩌면 우리의 집단 무의식이 어렴풋이나마 이 노래말에 반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른들은 전쟁으로 황폐해진 산과 들을 바라보면서, 암흑 시대에 역사의 수레바퀴를 잘못 돌린 책임의 소재를 따지기 시작하면서, 이런 노래를 불렀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쩌다 일제로부터 그런 모욕을 당했는가? 어쩌다 이런 전쟁의 참화를 겪게 되었는가? 나는 그 노래의 노래말을 이렇게 새긴다.
‘저 암흑 시대에 역사의 수레바퀴를 잘못 돌린 자는 과연 누구인가?
암흑의 시대가 끝나고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것은 바로 나로구나.’
신화와 민요의 깊은 뜻을 음미할 때마다 나는 이 노래말을 떠올린다.
시인 김영석 교수(배재대)와 함께 선도산(仙桃山·380m)을 올랐다. 김교수는 1994년에 보급판‘삼국유사’를 번역하되 쉽게 풀어낸 국문학자이기도 하다. 선도산은 높은 산도, 아름다운 산도 아니다. 산 아랫마을 사람들은 10분이면 정상에 닿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심지어는 5분 걸린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현지인들의 그런 말을 믿지 않는다. 높지는 않아도 380m는 ‘10, 20분’만에 오를 수 있는 높이는 아니다. 30,40분의 가파른 산행으로도 모자랐다.
선도산을 오르려면 선도리(仙桃里) 마을길을 지나야 한다. 정상 조금 못 미치는 곳에 성모사(聖母祀)가 있다. 신라 시조왕 박혁거세와 시조왕비 알영을 낳았다는 선도성모(仙桃聖母)를 모신 사당이다. 사당 안에는 황원단(皇原壇)이 있다. 임금의 근원을 모신 제단이다. 제단 옆에는 선도산의 산신들을 모신 산령각(山靈閣)이 있다. 절 뒤에는 칠성각과 함께 산신각(山神閣)이 있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경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산신각이 아닌 산령각이다.
정상 너머 서쪽 중턱에는 선원사(仙源寺)라는 조그만 절이 있다. 선도(仙道)의 근원이라는 뜻일 터이다. 이 절에는 기둥에 새긴 주련(柱聯) 대신 벽에 건 액자가 있다. ‘한번 참으면 오래 즐겁다(一忍長樂)’, ‘자신을 닦으면 남을 꾸짖지 않게 된다(修己不責人)’ 같은, 그다지 불교스럽지 않은 경구가 쓰인 액자들이다.
선도산, 성모사, 황원단, 산령각, 선원사… 우리가 선도성모 신화를 알지 못하고 듣는다면, 불교적이라기보다는 다분히 도교적(道敎的)인 이런 이름은 한갓 명사에 지나지 못한다. 선도성모를 알지 못하고 만나면, 이런 이름을 지닌 절이나 사당은 아무 의미도 없는 초라한 구조물에 지나지 못한다. 선도성모(仙桃聖母)는 그 이름이 스스로 드러내고 있듯이 도교적(道敎的)이다. ‘선도’는 기독교의 천당, 불교의 극락에 해당하는 도교의 선경(仙境)에만 열리는 복숭아다. 시조왕과 시조왕비를 낳았다는, 이름이 다분히 도교적인 선도성모 신화가 불교 설화에 실려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진평왕 때 지혜(智惠)라는 비구니가 있었는데 무척 어진 행실을 많이 했다. 지혜는 안흥사에 살면서 새로 불전(佛殿)을 수리하려고 했으나 재력이 모자랐다. 그런데 지혜의 꿈에, 머리를 예쁜 구슬로 꾸민 선녀가 나타나 지혜를 위로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선도산의 신모(神母)인데 네가 불전을 수리한다 하니 기특하다. 내가 금 열 근을 시주하여 돕고 싶다.
그러니 내 자리 밑에서 금을 파내어 으뜸 가는 부처님 세 분을 꾸미고 벽에는 53불(佛)과 6류성중(六類聖衆)과 여러 천신들과 오악(五岳)의 신들을 그리도록 하라. 그리고 해마다 봄과 가을, 곧 3월 및 9월 10일에는 선남선녀들을 모아 일체 중생을 위하여 점찰법회(占察法會)를 베풀고 이를 규례로 삼으라. 지혜가 꿈을 깨어 무리를 이끌고 가서 신사(神祠) 자리 밑에서 금 150냥을 파내어 불전을 수리하되 신모가 시키는대로 했다.’
고등 종교인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도 이 땅에 종교가 있었다. 신라 학자 최치원에 따르면 그것은 ‘예부터 우리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었으니 바로 풍류도(風流道)다’. 풍류도는 샤머니즘과 도교적 신선 사상이 하나로 어우러진 신라인들의 세계관이었다고 한다.
풍류도를 좇는 화랑 및 그 우두머리 국선(國仙)은 인위를 좇지 않았다. 그들은 생명이 있는 것들과 생명이 없는 것들을 나누지 않고 하나되어 살고자 했다.
그러나 풍류도는 뒤늦게(5세기) 들어와 위세를 떨치기 시작한 조직적인 고등 종교 불교에 자리를 내어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도교에 매우 가까운 풍류도의 신모(神母) 선도성모가 비구니를 도와 불전을 수리하게 했다는 이야기는 불교가 도교 또는 풍류도를 습합(習合), 곧 절충하는 과정을 담은 ‘수레바퀴’ 이야기인 것이다. ‘수레바퀴’ 노래말에 ‘일제’나 ‘전쟁’ 같은 낱말은 등장하지 않듯이 선도성모 이야기에도 산신과 부처의 대결을 암시하는 낱말은 등장하지 않는다.
선도산에 오르려면 무열왕릉, 김인문릉, 그리고 무수한 서악리 고분군(西岳里古墳群)을 지나야 한다. 기슭에는 진흥왕(24대), 진지왕(25대), 문성왕(46대), 헌안왕(47대) 등의 왕릉이 있다. 선도산의 다른 이름인 서악(西岳)은 해지는 곳에 있는 산이다. 선도산에 있는 마애삼존불의 주존(主尊)인 아미타불은 극락정토를 주장하는 부처다.
“이상하네요? 시조왕 부부를 낳았다는 선도성모의 자궁 같은 성산(聖山) 기슭이 왕들의 공동묘지가 되어 있다는 게 이상하지 않아요?”
나의 질문에 동행했던 김영석 시인이 나에게 되물었다. “자궁이 영어로 뭔가? ‘움(womb)’이 아닌가? 무덤은 또 뭔가? ‘툼(tomb)’ 아닌가? 옛사람들은 이걸 둘로 보지 않았던 것 같아.
1.경주 서악리 고분군에서 바라본 선도산. 무열왕릉, 김인문릉은 바로 이 고분군과 한 울타리 안에 있다.
2.신라의 시조왕 부부의 어머니 선도성모를 모신 선도산의 성모사.
3.선도산 기슭의 무수한 왕릉 뒤에 남아 있는, 이제는 버려진 무덤들. 왕릉에 견주어 봉분이 낮은 무덤들 위로 무심하게도 소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