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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 한반도에 직접 영향을 끼친 첫 태풍 다나스(danas)가 10월에 찾아왔다. 1998년 이후 15년 만에 찾아온 10월 태풍이다. 관측이 시작된 1904년부터 지난해까지 109년 동안 한반도에 내습한 태풍 335개 가운데 10월 태풍은 8개에 불과했다.
제주에는 '6월에 태풍이 오면 그 해에는 여섯 번 온다'는 말이 있다. 6월부터 태풍이 내습한다는 것은 태풍 발달과 진로에 영향을 주는 태평양상의 기상조건이 일찍부터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는 번번이 태풍의 진로가 막히다 10월에야 들이닥쳤다. 10월 태풍이 발생한 이유는 서태평양상의 수온이 높고 일본으로 밀려난 북태평양 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한반도 쪽으로 태풍의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태풍의 길목에 위치한 제주도는 이전부터 많은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겪었다. '조선왕조실록'만을 보더라도 기상재해는 풍해가 44건으로 가장 많고, 수해 30건, 한해 23건, 동해 10건 순 이었다.('조선시대 제주도기후와 주민의 대응에 관한 연구', 김오진) 반면에 한반도는 제주도와는 달리 수해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태풍으로 인한 피해기록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1514년에는 제주 대정 정의 고을에 풍우, 즉 태풍과 비로 인해 나무뿌리가 뽑히고 관사와 민가 452채가 무너지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외에도 태풍과 재해로 인한 기록은 많다.
이처럼 잦은 강한 바람, 태풍은 일찍부터 제주에 많은 피해를 끼쳤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제주문화의 근간을 형성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세계무형유산인 칠머리당 영등굿이다. 영등굿은 음력 2월초에서 보름사이, 겨울과 봄 사이에 부는 바람을 굿의 형태로 승화시킨 것이다. 제주도민들은 이때 바람의 신인 영등할망을 맞아들이고 보내면서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굿판을 펼친다. 바람을 굿축제로 승화해낸 상상력이 놀랍다.
바람이 낳은 제주문화중 하나는 밭담이다. 밭담을 오늘날과 같은 훌륭한 경관자원으로 만들어낸 것은 바람이다.
김정의 '제주풍토록'(1521)에는 '돌담이 높고 좁은 것은 제주의 토속으로 강풍과 몰아치는 눈을 막고 있다'고 했다. 김상헌은 '남사록'(1602)에 '밭이라고 하는 것들은 반드시 돌을 가지고 둘렀다. 인가는 모두 돌을 쌓아서 높은 담을 만들고 문을 만들었다'고 하고 있다. 이는 밭담의 여러 기능 가운데 하나가 태풍이나 강풍에 의한 피해를 방지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제주도에서 태풍은 '놀름' 또는 '노대름'이라 했다. 제주도를 들이치는 바람은 1959년 태풍 '사라호'나 2007년의 '나리'처럼 많은 피해를 주지만 그 바람이 만들어낸 문화와 경관은 오늘날 진화하고 있다. 삼다도라 불렸던 제주에서 이제 '돌'과 '바람'은 제주를 먹여살리는 자원이 된 것이다. 밭담이 세계농업유산 등재 과정에 있고, 바람은 청정 대체에너지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우리가 마냥 태풍을, 아니 바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이유다. 오히려 제주문화의 원천으로 삼아온 역발상의 지혜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이윤형 사회교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