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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남선 교수님과 함께하는 풍수답사입니다. *
정기답사는 홀수달 둘째주 일요일에 실시하며 일정에 변동이 생길 시 미리 공지하겠습니다.
이번 답사는 장마철을 감안하여 답사시 집중 호우가 있을 수 있어서 양택 답사로 준비하였습니다. 전남 구례군 토지면은 예로부터 세 가지 명당이 있다고 전해져 왔습니다.
지리산에 목욕을 하러 내려온 선녀가 하늘로 올라가며 실수로 금가락지를 떨어뜨렸다는 금환낙지형(金環落地形), 다섯 보배가 한 곳에 모여 있다는 오보교취형(五寶交聚形), 그리고, 거북이 진흙 속으로 들어가는 금구몰니형(金龜沒泥形)이 그들입니다.
운조루는 터닦이 공사를 할 때 거북 형상 돌이 출토되자 사람들은 금구몰니형이라 여겼고, 그 믿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운조루 사람들은 그 고장에서 대대로 부자 소리를 들으며 살아왔습니다. 거북은 알을 많이 낳고 장수하는 동물이니 거북이 터는 재운이 높고 오래 사는 터로 이야기됩니다. 금환낙지형이라 일컫는"곡전재"는 담을 가락지처럼 둥글게 만들었으며 현재는 민박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오보교취형인 다섯가지 보물(금·은·산호·진주·호박)을 꼭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장마로 인해 습한 날씨가 예상되오니 건강 잘 돌보셔서 답사 하시는 하루가 알차고 귀한 시간이 되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풍수에 입문하신 우리 “아풍동님” 모두 혈처에 집을 짓는 복을 받으시길 기원해 봅니다.
고맙습니다.
1. 일시 : 2010년 7월 11일 (일요일)
2. 장소 및 시간 : 아주대 정문 오전 8시 출발
3. 답사지
1) 화엄사(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이다. 창건에 관한 상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사적기(寺蹟記)》에 따르면 544년(신라 진흥왕 5)에 인도 승려 연기(緣起)가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시대는 분명치 않으나 연기(煙氣)라는 승려가 세웠다고만 전하고 있다. 670년(신라 문무왕 10)에는 의상대사(義湘大師)가 화엄10찰(華嚴十刹)을 불법 전파의 도량으로 삼으면서 이 화엄사를 중수하였다. 그리고 장육전(丈六殿)을 짓고 그 벽에 화엄경을 돌에 새긴 석경(石經)을 둘렀다고 하는데, 이때 비로소 화엄경 전래의 모태를 이루었다. 사지(寺誌)에서는 당시의 화엄사는 가람 8원(院) 81암(庵) 규모의 대사찰로 이른바 화엄 불국세계(佛國世界)를 이루었다고 한다. 신라 말기에는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중수하였고 고려시대에 네 차례의 중수를 거쳐 보존되어 오다가 임진왜란 때 전소되고 승려들 또한 학살당하였다. 범종은 왜군이 일본으로 가져가려고 섬진강을 건너다가 배가 전복되어 강에 빠졌다고 전한다. 장육전을 두르고 있던 석경은 파편이 되어 돌무더기로 쌓여져오다가 현재는 각황전(覺皇殿) 안에 일부가 보관되고 있다. 1630년(인조 8)에 벽암대사(碧巖大師)가 크게 중수를 시작하여 7년 만에 몇몇 건물을 건립, 폐허된 화엄사를 다시 일으켰고, 그 뜻을 이어받아 계파(桂波)는 각황전을 완공하였다. 대개의 절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가람을 배치하지만, 이 절은 각황전이 중심을 이루어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주불(主佛)로 공양한다. 주요 문화재로는 국보 제12호인 석등(石燈), 국보 제35호인 사사자삼층석탑(四獅子三層石塔), 국보 제67호인 각황전이 있으며, 보물 제132호인 동오층석탑(東五層石塔), 보물 제133호인 서오층석탑, 보물 제300호인 원통전전 사자탑(圓通殿前獅子塔), 보물 제299호인 대웅전이 있다.
2. 운조루(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운조루(雲鳥樓)는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위치하는 한옥 사랑채 누각의 이름이나 이 집의 고유명사가 되었다. 운조루는 1776년(조선 영조 52년)에 안동 태생의 유 이주에 의해 건립되었다. 유 이주는 당시 낙안군수였다고 하는데, 그 자신이 ‘전라구례오미동가도(全羅求禮五美洞家圖)’라는 건축도면을 작성하여 축조한 것으로 전한다. 이 건축그림에는 뒷산의 숲과 집 앞의 연못과 시내 등 주변 환경이 잘 묘사되어있다. 운조루의 기본 구성은 튼ㅁ자형 안채를 중심으로 사랑채들이 돌출한 형태이다. 원래 오미동의 이름은 '오동'이었다. 내죽, 하죽, 백동, 추동, 환동의 다섯 동네를 말하는 것이었다. 이랬던 마을 이름이 운조루를 지은 유 이주가 정착하면서부터 오미리(五美里)로 바뀌게 되었다. 오미리(五美里)란 다섯 가지 아름다움이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그 다섯 가지란 월명산, 방방산, 오봉산, 계족산, 섬진강을 이르는 것이다. 지금의 행정구역상의 명칭인 오미리는 내죽(內竹) 하죽(下竹) 오미(五美)의 세 마을을 아우른 이름이다. 일제시대 때 무라야마지준(村山智順)이 쓴 『조선의 풍수』에는 ‘비기(秘記)에 전하기를 이곳 어디에 '금귀몰니(金龜沒泥)', '금환락지(金環落地)', '오보교취(五寶交聚)'의 세 진혈이 있어 이 자리를 찾아 집을 짓고 살면 힘 안들이고 천운이 있어 부귀영달한다고 전해온다. 이 세 자리는 상대(上臺), 중대(中臺), 하대(下臺)라고도 하며 하대인 오보교취 자리가 제일 좋은 자리라 한다. 오리미 일대에는 충청남도, 전라남북도, 경상남북도 각처에서 꽤 지체 높은 양반까지 와서 집을 짓기 시작하여 현재(1929년) 이주해 온 집이 일백여호에 달한다.’고 기록 되어있다. 운조루는 영건시 거북모양의 돌이 출토되어 금귀몰니(金龜沒泥)의 길지로 알려져 왔으며 출토된 거북돌을 집안의 가보로 전해져 왔으나 근래에 도난으로 없어졌다. 거북돌을 넣어 두었던 함의 뚜껑에는 집을 짓기 시작한 해인 1776년에 개기 때에 출토되었다고 그 연유를 적고 있다.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사상(思想)에 따라 직사각형의 못과 원형의 섬으로 축조된 연당(蓮塘)은 맞은편에 보이는 오봉산(五峰山) 삼태봉(三台峰)이 화산이어서 화기(火氣)를 막기 위한 것이라 전한다.
3. 곡전재(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곡전재(穀田齋)는 풍수적으로 천상의 선녀가 떨어뜨린 금가락지 모양이라 하여 금환락지(金環洛地)라고도 한다. 1929년 승주에 살던 박승림이 건축하였으며, 1940년 곡전 이교신(李敎臣)이 인수하여 현재 5대손이 살고 있다. 원래 6채 53칸 규모로 지었으나, 현재는 5채 51칸 규모이다. 문간채, 안채, 사랑채가 모두 'ㅡ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높이 2.5m 이상의 호박돌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인수 당시 동행랑과 중간채가 훼손되었으나 1998년 1월 동행랑과 중간 사랑채를 복원하였으며, 새로 ‘춘해루’라는 누각을 짓고 연못(세연)을 확장하였다. 2003년 구례군 향토문화유산 2003-9호로 지정되었으며, 고택 관광자원화사업의 대상이 되어 안채를 제외한 나머지 4채를 펜션으로 활용하고 있다.
4. 오보교취혈(五寶交聚穴)
풍수의 비기(秘記)에 따르면, 전라남도 구례 땅에 금구몰니 · 금환락지 · 오보교취의 세 진혈(眞穴)이 있다고 하였다. 금구몰니(金龜沒泥;금 거북이 진흙 속에 묻힌 터) · 금환락지(金環落地;금가락지가 떨어진 터)와 더불어 오보(五寶)인 금 · 은 · 진주 · 산호 · 호박이 쌓여있는 오보교취혈을 가리킨다.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의 운조루(雲鳥樓)의 부엌자리가 금귀몰니(상대)이고 행랑채 밖의 연못자리가 금환락지(중대)이며, 면 소재지에 유이주가 세운 돌탑자리가 오보교취(하대)의 명당이라고 한다.
5. 칠불사(경남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지리산 토끼봉의 해발고도 830m 지점에 있는 사찰로, 101년 가락국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이곳에 암자를 짓고 수행하다가 103년 8월 보름날 밤에 성불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지리산 최고의 심산유곡에 자리잡아 수많은 고승을 배출하였으나, 1800년 큰 화재가 나서 보광전, 약사전, 신선당, 벽안당, 미타전, 칠불상각, 보설루, 요사 등 10여 동의 건물이 불탔다가 복구되었다. 1948년 여수·순천사건을 거쳐 6·25전쟁 중 다시 불탄 뒤 1978년에 복구하여 지금의 칠불사가 되었다. 운공선사가 축조한 벽안당 아자방(亞字房)은 세계건축대사전에 기록되어 있을 만큼 독특한 양식으로, 서산대사가 좌선한 곳이자 1828(조선 순조 28) 대은선사가 율종을 수립한 곳으로 유명하다. 아자방은 신라 때 금관가야에서 온 구들도사 담공선사가 만든 온돌방으로, 방안 네 귀퉁이에 70cm씩 높인 곳이 좌선처이며, 가운데 십자 모양의 낮은 곳이 행경처이다. 한번 불을 지피면 49일 동안 온기가 가시지 않았다고 한며, 100명이 한꺼번에 좌선할 수 있는 방으로, 건축 이래 한 번도 보수한 적이 없다. 일곱 왕자를 성불시킨 보옥선사는 거문고의 명인이었으며, 신라 경덕왕 때는 옥보고가 입산해 50년간 30곡의 거문고곡을 지었다고 한다.
4. 회비 : 4만원 (차량 대여비 및 중식 석식 기타 비용 포함) (당일 총무에게 납부)
5. 연락처 : 총무 김 은 희 (010 - 3228 - 6489) 회장 김 종 대 (018 - 234 - 7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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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은희총무님 접수완료라구요 어쩌나 자리나면 연락좀 주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