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이 날마다 좋은 날 만드는 일
-정현正玄스님 편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 편집실
정현正玄스님은 1941년 전남 순천 생으로 1957년 구례 화엄사에서, 전강田岡( 1898년 ~ 1975년) 대선사를 은사로 득도하였고, 부산 동래 범어사에서 고암스님을 전개화상으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에서 안거 이래 십오안거를 성만盛滿하였고, 1971년 전남 실상사 주지를 역임하는 한편 1980년 도미, LA 오렌지 카운티 주지, 오리건 포틀랜드 보광사 주지, 콜로라도 덴버 용화사 주지 등을 역임하고 캘리포니아 금강선원을 개설하여 원장으로 활동하면서 한국불교의 세계화 1세대로 활동했다. 정현스님은 판화제작에도 혼을 쏟아 많은 작품을 남겼다. 1985년 LA 한국문화원과 하와이연방정부 청사에서의 판화전시는 한국불교의 고승의 예술행위가 현지인들에게 한국불교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1993년 ‘날마다 좋은날 되소서‘ 운동을 준비하고 1994년 6월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본사 용주사 주지로 취임하였다. 1996년 공주 마곡사 태화산 자락 토굴에서 수행하며 ‘날마다 좋은날 되소서’ 그림 그려주기 운동을 전개하여 2002년 1만 800장의 그림 그려주기를 성취하였고, 판화, 인쇄 등으로 전개, 20년간 20만장의 그림을 무료로 배포하였다. <날마다 좋은 날 우담바라전展>, <판치생모전板齒生毛展> 등 다수의 개인전을 가졌다.
■ 정현스님과 선화禪畵
선화禪畵는 선종禪宗불교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화파畵派의 선정삼매禪定三昧로 나아가는 그림을 말한다. 선禪은 부처의 깊은 사유와 깨달음을 통해 불교의 실천 수행인 선정禪定으로, 체계화된 말이다. 선은 팔만사천 번뇌를 다 잡아 ‘고요한 마음’으로 다스리는 수행이고 정定은 고요한 마음으로 들어선 상태며, 삼매三昧는 집중한다는 의미이며, 한결같은 고요한 마음을 통해 진리에 눈을 뜨고 법열法悅을 얻는 것이다. 삼매의 경지에서 근원적인 물음으로 사물과 진리를 볼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깨달음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래서 선화는 ‘고요한 마음의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으로 원용되기도 하고 사물의 실제를 관찰하고 이해하는 길잡이가 된다. 본래심本來心으로 각자의 불성을 깨달아 지금 여기 있는 자기 자신의 존재와 참된 자기 자신을 바로 보고 각자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붓다의 지혜와 진리의 삶을 살려는 마음이 선정禪定이고 정현스님이 말하는 평정심이다. 이 마음은 일체의 경계에 좌우되거나 걸림이 없으며 일체의 번뇌나 망념이 없는 근원적인 마음이다.
문수도와 달마도로 대표되는 정현스님의 선화는 지혜의 스승인 문수동자와 선사상의 지존인 달마도를 주제로 설정하고 있으며, 이 선화들은 모두 즐거운 세상을 만들어가자는 의미가 담겨있다. 정현스님의 선화는 평화롭다. 평범한 듯 친숙하고 단순하면서도 정겹고, 따뜻하면서도 불교의 상징을 화두로 던지고 있다. 그래서 그림은 생각을 던지는 깨달음으로 나아가게 하는 그림, 선화禪畵가 된다. 연꽃과 문수보살, 소와 물고기, 머리가 두 개인 공명조 등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 그림을 구성하고 있는 상징 속에는 그림으로 불법을 포교하려는 스님의 뜻도 담겨져 있다. 이름 하여 그림 포교인 셈이다. 그러면 어떻게 스님은 선화禪畵를 그리게 되었는지 스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내가 용주사에 있다가 나와 가지고 절도 아닌 벽제 성련암에 있다가 보광사로 가고, 그 절에서 나는 그때 당시에 뭘 했냐하면 판화를 수집했어. 절에서는 판화를 변상도變相圖라 하는데, 불교에 관한 여러 가지 내용을, 그러니까 그림으로 형상화 한 거야. 불교의 교리를 그림으로 나타낸 일종의 종교화지. 변상이 화엄경이라고 하면 부처님이 화엄경을 설할 때 화엄경에 대한 그 배경을 그림화化 시키는 거라. 그 그림을 이제 ‘화엄경변상도’라하고 지장경이면 ‘지장경변상도’, 모든 벽마다 변상도가 있어, 그래서 금강경 변상도 그것이 유명해. 팔만대장경의 해인사에 그것을 전부 탁본을 했어. 변상도가 유명한데 그것을 성암 고서박물관에서 전시를 했어. 그러니까 내가 속된말로 얼굴을 내고 싶은 생각도 있는 거라. 말하자면 내가 나를 알리고 싶은 그런 욕망이 있었던 것 같아. 절에 들어가서 공부한다고 했는데, 뭔가 시도 쓰고 철학도 하고 그랬지만, 뭐 하나 뚜렷하게 해 놓은 게 없어. 어중간한 사람이 됐어. 변상도 그것을, 내가 변상도를 많이 찍어놨으니까. 그것을 가지고 미국에 갔어. 미국사람 상대로 문화원에서 변상도를 한 번 보여주고 전시하려고 미국에 갔어. 내가 보기에 그것은 세계적인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 목판으로서. 그렇게 했는데 알고 보니까. 중국에는 석판이 있고, 남방에는 목판 만다라라는 우수한 예술품이 있다는 것을 안 거라. 그때 너무 몰랐지. 내가 우물 안 개구리가 돼가지고. 오히려 그것을 내가 깨우친 거지.
정현스님은 용주사에 있을 때 한 미국 선교사가 《부모은중경》이 새겨진 목판을 탁본하는 것을 보고 외국인들도 저렇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 것인데도 우리가 너무 무관심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스님은 전국을 돌면서 경판을 찍었고,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탁본하기도 하였다. 정현스님이 미국에 가서 포교를 하게 된 계기도 우리의 목판을 미국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가게 되었다. LA 한국문화원과 하와이연방정부청사에서 판화전시를 열기도 했지만 스님의 기대만큼 미국인들은 한국판화에 관심이 없었다. 이런저런 연유로 스님을 선화로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스님의 불교적 사유와 화두 가운데 그리게 된 군더더기 없는 그림은 스님만의 독자적인 그림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스님의 선화에 대해 불교신문의 서현욱 기자는 지난 2010년 ‘날마다 좋은날’ 초대전(다보성 갤러리) 전시회를 보고 스님의 화풍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어 기사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정현 스님이 추구하는 ‘차별과 분별’을 넘어선 ‘날마다 좋은날’은 심플하다. 군더더기가 없다.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의 모습이 화려하지만 심플하고, 장엄한 장식을 걷어냈다. 정현 스님의 작품은 양식상 선화로 구분해야 하지만, 독창적인 자기어법을 가지고 있다. ‘심플’한 화풍은 순수함과 신선함을 부각시키고, 복합하지 않은 조형언어造形言語로 표현주의 성향의 예술을 추상抽想해 간다.
미술을 전공하지도, 큰 스승으로부터 사사 받은 적 없는 스님의 화풍은 매우 독창적이다. 스님의 독창성은 여느 화가들의 작품과 다른 개성주의와 차별성으로 확장돼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한다. 선험적인 영험과 삶을 통한 체험, 수행과 포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선지가 화풍으로 이어진 것이다. 미술에 관한 한 무학의 스님이 성취한 것으로만 보기에는 매우 창조적인 예술행위임에 틀림없다. 남의 것을 베끼거나 빌려오지 않았다. 정현 스님만의 순수한 오리지널리티가 결국 ‘날마다 좋은날’ 연작의 중심핵에 해당한다고 보여진다.
정현스님은 분명 그림그리기를 사사받지 않았다. 하지만 스님의 작품에서는 스스로의 오리지널리티와 함께, 친교한 미술대가의 영향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붓으로 바위에 구멍을 내서 물기를 얻겠다”던 ‘환쟁이’ 고故 장욱진의 심플함이 그것이다. 정현스님은 1970년대 장욱진의 명륜동 시절 그와 교분을 맺었다. 당시 걸레승 중광과도 인연이 있었다. 장욱진이 그리고 성우스님(불교TV 회장)이 글을 쓴 ‘금가락지’ 작품을 정현스님이 판화로 만들었다. 백성욱 박사(동국대 전 총장)과 ‘금강경 공부’ 모임도 같이 했다.
장욱진은 1970년대 명륜동 시절에 불교를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이 그렸고, 모든 작품에 선적 언어가 충만했었다. 걸레승 중광과의 인연, 부인의 예술 모습에 감명 받아 그린 대표작 ‘진진묘眞眞妙’, ‘팔상도’, ‘절집’ 등이 이 시절의 작품이다. 불교적 사유를 바탕으로 한 장욱진의 추상세계는 간결한 선線으로 선禪을 표현했다.
정현스님의 작품에 나타나는 심플한 추상세계는 ‘심플한 선線의 미학으로 선禪의 깨달음’을 좇던 장욱진의 화풍에 맞닿아 있어 보인다. 하지만 ‘심플한 선線의 미학’을 흉내 낸 것은 아니다. 장욱진이 직접 드러내지 못한 ‘불교적 정서와 선禪’의 추상을 정현스님은 직접 드러내 추상한다. 정현스님의 선화의 주제와 사상이 장욱진의 그것보다 ‘직설적’이다.
정현스님의 ‘날마다 좋은날’은 보현과 문수, 공명조를 전면에 등장시켜 부처님의 가르침을 스토리텔링 하듯 그려낸다. 승려들의 선화와 달리 먹선으로만 추상의 세계를 표현하지도 않는다. 친숙한 오방색을 통해 동화적 시각화를 만들어 내며, 주제를 더욱 부각시킨다.
‘날마다 좋은날’은 넓은 의미에서 우주와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의 행복과 자유, 중생을 위한 날마다 좋은날을 염원한다. ‘날마다 좋은날’에는 얼굴이 있다. 부처의 얼굴이자 보살의 얼굴이다. 또한 중생의 얼굴이기도 하다. 이 얼굴은 날마다 좋은날로 가는 통로이자 관문이다. ‘날마다 좋은날’의 얼굴은 정현스님이 추구하는 불교적 사유와 신념이자 지론이다. 정현스님은 “얼굴은 오감을 받아들이는 관문”이라고 설명한다. 자신의 사상과 철학, 신심이 묻어나는 얼굴을 통해 오관이 숨 쉰다. 또 오감을 들여다보는 문이 ‘눈’이다. ‘눈’은 나의 눈이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눈으로 ‘날마다 좋은날’을 본다. 깨달음의 창이자 달관의 눈으로 본 세상은 먹색일 수 없다. 광대무변한 우주를 바라보는 눈은 마음의 창이다.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주제의 등장인물로 차용한 것은 주제를 더욱 선명하게 하는 추상이다. ‘지혜의 상징’인 문수와 ‘실천(행동)의 상징’인 보현을 그림의 중심에 배치한 것은 중생을 제도한다는 불문의 최고 가치를 전면에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심플한 컬러선線으로 표현된 ‘날마다 좋은날’의 색채미학 역시 한국적이며, 불교적이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오방색을 기본으로 이루어진 정현스님의 선화는 색채미학의 단순, 간결한 색채미학이 자연스레 사찰의 단청이 주는 안정적 시각화와 오버랩 된다.
‘날마다 좋은날’의 등장배우들은 한결같이 단순하지만, 그 함축적 의미는 불교철학과 화승畵僧의 불교적 사유가 베이스를 이룬다. 소등에 올라 탄 피리 부는 문수동자, 소 엉덩이 끝에 타고 있는 두 머리를 가진 새 공명조와 연꽃, 십우도(심우도)를 연상시키는 소재 하나하나에 불교의 설화와 가르침을 담았다. 풍자와 해학, 미학의 이미지와 암유暗喩(메타포)는 모든 작품에 함축돼 정현스님 작품의 근간을 이룬다.
스님이 설정한 주제와 불교적 사유, 이미지의 평면추상 등 표현의 방법론은 교육받지 않은 그림으로 보기에는 원숙하고 여백과 공간의 이상적 활용이 인상적이다.
정현스님은 자신의 작품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문수동자나 달마선사를 그리는 일은 세상을 맑게 하는 일이야. 문수동자는 지혜를 상징하지 않는가. 문수도를 나누는 일은 지혜를 나눠 갖는 일이요, 달마도를 갖는 일은 깊은 사려와 깨달음을 나눠 갖는 일 아닌가”
정현스님은 자신의 그림에 화려한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그저 흰 화선지에 간결하고 두터운 오방색 선으로 시종을 유지한다. 어려운 문구나 멋도 부리지 않는다. 과장되지 않고 허세도 없다. 소박하고 서민적인 선화로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중략)
정현스님이 ‘날마다 좋은날’에 공명조를 등장시키는 이유는 중생의 어리석음을 알아차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미완성의 문수를 부각시켜 우리와 동일시해 차별과 분별, 미움과 좋음, 악과 선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날마다 좋은날’을 찾길 바라는 가르침도 전하는 것이다. 정현스님은 “문수도에 등장하는 소는 심우도의 소이다. 소는 곧 마음자리를 상징하는 것이지”라고 강조한다. 문수와 소, 공명조가 한데 어우러진 스님의 ‘문수도’에 결국 가장 좋은 글귀는 ‘날마다 좋은날 되소서’이다. 어렵지 않다. 쉬운 글귀로 이웃들에게 문수도를 설명한다. 욕심이 충천한 날이 아니다. 여여如如한 날, 한결같이 청정한 날을 꿈꾸는 스님의 마음이다.
미술평론가 김남수는 정현스님의 작품을 이렇게 평한다.
“인물과 화조의 소재들이 등장하지만 기교보다는 사의적寫意的인 작가의 정신주의와 내재율이 작품의 주제를 돋보이게 하고, 피사체인 외연의 평면구성, 비백의 합리적 분할 등기법과 표현방법론상의 다양한 특징들이 나타나고 있다. 선화를 그린다는 중광스님이나 통도사의 수안스님들의 회화양식과는 완전히 차별성을 갖는 양식상의 어법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하략)(출처 : 불교신문 서현욱 기자)
■ 정현스님과 판치생모板齒生毛
정현스님의 스승 전강대선사께서는 법문가운데 판치생모를 다음과 같이 설說하셨다.
“금일 대중들에게 분명히 이르노니 백천만겁을 몸으로써 보시할지라도
소소영영한 주인공인 본각을 얻은 것만 같지 못하리라.”
구년소실자허엄(九年小室自虛淹)하니
쟁사당두일구전(爭似當頭一句傳)이리오
판치생모유가사(板齒生毛猶可事)인데
석인답파사가선(石人踏破謝家船)이니라
구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이것이 ‘판치생모’에 대한 고인의 송구頌句인데 ‘조사서래의’에 이 이상 더 가까운 게송은 없다. 금일 산승은 모든 허물을 ‘판치생모’에 붙이노니, 대중들은 오직 ‘판치생모’만 붙잡고 용맹을 다하여 의심할지어다.”
‘판치생모’ 화두만 붙잡고 용맹정진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 판치생모板齒生毛
선종禪宗에서는 고측古則, 공안公案 등의 1절이나 1측을 가리켜 화두라 한다. 선가禪家에서 인정받아 통용되는 화두는 1700여개이다.
우리나라 고승들도 화두를 남기고 있으나 그 중 성철스님의 ‘불전 삼천배’나 경봉스님의 ‘극락에는 길이 없는데 어떻게 왔는가’ 등이 있다.
가장 많은 화두를 남긴 고승이 있다면 바로 중국의 조주선사이리라. 조주선사는 조주趙州 지방에서 오신 선지식 이라는 뜻이다.
한 스님이 조주선사에게 물었다.
“일체중생에 불성이 있다고 했는데 개에게 있는 불성이 무엇입니까.”
이에 조주선사가 대답했다.
“무無”
다시 되물었다.
이에 조주선사가 설명하였다.
“그대는 아직도 부족하여 편 가르는 마음을 내고 있지만 개에게는 그런 하찮은 분별망상이 아예 없도다.”
어느 날, 한 스님이 조주화상이 계시는 선원으로 찾아왔다.
“여러 곳을 두루 돌아다니다가 오늘에야 비로소 스님을 찾았나이다.”
이에 조주화상이 물으시기를 “그래, 너는 죽을 먹었느냐? 안 먹었느냐?”
그 스님이 대답하기를, “예, 죽을 먹었습니다.”
조주화상께서 더 이상 아무 말씀 없이 그냥 나가 버렸다.
선방에서는 아침 식사를 죽으로 하고 있으며, 또한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자신의 바리때(밥그릇)는 스스로 씻게 마련이다. 이를 일러 소위 청규라고 하는 것이다.
조주화상께서 “죽은 먹었는가, 아니 먹었는가?” 하고 물었을 때 “예 바리때를 씻었습니다.” 라고 했으면 칭찬을 받았을 것이다.
멀리서 조주선사를 찾아오신 학인이 있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끽다거喫茶去!(차나 한잔 들고 가시게)”
책 제목으로도 유명한 이 말은 이렇게 화두에서 인용한 것이다.
한 스님이 조주선사에게 물었다.
“조사가 집을 떠나 멀리 서쪽으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祖師西來意).”
“뜰 앞의 잣나무니라(庭前柏樹子).”
“조사가 서쪽으로 와서 행한 것에 무슨 의미가 있었습니까?”
“앞니에 곰팡이가 났다(板齒生毛).”
뜰 앞의 백수자 나무를 여태 40여 년 동안 잣나무로 잘못 알고 지낸 것을 빗대어 한 말이다. 잘못 알았던들 무슨 소용이냐 라는 뜻이다. 해마다 음력 4월 15일이 되면 어김없이 전국 어느 선원이나 하안거 결제에 들어간다. 안거 3개월 동안은 앞니에 곰팡이가 필 정도로 처절하게 침묵의 정진을 해야 한다. 이를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한다. 판치板齒는 판자처럼 넓은 앞니를 가리킨다. 곰팡이 피고 털이 날 정도로 지독한 인내심이 요구된다는 뜻이다.(출처: 다음카페 육공)
어쩌면 정현스님의 판치생모전展에 전시된 그림들은 그러한 깨달음의 치열한 흔적인지도 모른다. 수도생활을 하며 틈틈이 작품을 그려온 정현스님이 그 화두를 안고, 기나긴 고행 끝에 도달한 깨달음의 길, 그 구도의 길을 선명한 색의 아크릴을 사용, 사찰과 불상의 모습을 캔버스 위에 강렬하게 표현했다. 연꽃, 물고기, 새, 산, 소나무 등 자연을 이용해 소박하면서도 친근한 모습을 담았다. 정현스님은 “예술이란 인간의 영혼을 어루만지는 행복의 양식이며 귀중한 신의 선물로, 많은 사람들이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판치생모전展을 통해 스님의 그림을 많은 사람이 접하고 또 다양한 소감을 피력하고 있다. 예술가의 입장에서, 불자의 입장에서, 일반인의 입장에서 보는 견해는 다르겠지만, 선과 색이 보이는 형상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술이라는 것이다. 그림 앞에서 다가가게 되고 생각하게 되고 마음이 평화로워 진다는 것이다. 그러한 소감 일부를 엮어 보았다.
□ 스님의 그림은 서양의 피카소와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판치생모는 선가禪家에서 생소한 문자가 아니다. 성불成佛의 화두로 쓰인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이 화두話頭에 대해서 여러 가지 해석이 있으나 하나도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없다. 그래서 나는 예술적 감성을 통해서 무애와 무구의 정신으로 미술에 비유하여 해석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다.(중략)
판치생모는 글자대로 해석을 하자면 “판자에서 이빨이 나고 이빨에서 털이난다”는 말이지만 매우 추상적이며 초현실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화두는 “일체 명근銘根을 끊어버리는 칼이다”또 “일체를 쓸어버리는 쇠 빗자루다” 등등 해석이 많다. 그러나 나는 화가로서 그 답을 예술에서 찾으려는 것이다.
부처님의 제자로 수행정진 하면서 예술적 사유와 미감을 통해서 그림선禪으로 초현실주의 작품을 제작하는 정현正玄스님의 예술이 그림 판치생모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스님의 그림은 정상적인 사물의 표현이 아니고 현실을 초월한 방법이며 새로운 불교선화로서 독창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서양의 피카소와 같은 맥락으로 그림 판치생모라 하겠다.
정현스님의 작품에는 두개의 머리를 가진 새, 창공에서 노니는 물고기, 황금색의 연꽃, 고기를 타고 가는 문수보살 등이 모두 그림으로 화두를 던지는 판치생모나 같은 것이다. 정현스님의 그림은 사물의 정형正形을 모사模寫하는 것이 아니고 수행자의 심상으로 원형을 재창조하는 선禪적인 예술행위이며 정신주의에 근거한 화두와 같은 독특한 예술의 모습이다.(중략)
정현스님의 그림은 누구에게 사사해서 그릴 수 있는 그림이 아니다. 스스로 그리면서 깨달음을 얻어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는 정신주의 회화방법이기 때문이다. 스님의 그림은 주로 연꽃과 물고기, 보살상, 무지개, 쌍두 공명조 등 불교적인 소재를 택하고 있다. 비교적 단순한 소재를 이용해서 무거운 주제를 소화하는 것은 선적인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불가에서 여가로 그림을 그리는 스님은 많다. 그러나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창조적 예술 활동을 하는 스님은 드물다. 따라서 현실적인 상업성을 뛰어넘어 선화禪畵를 그리는, 무상의 경지를 그리는 것은 더욱 어렵다. 정현스님은 그림으로 대중을 교화하고 나눔을 실천하며 불교의 자비정신을 고취시키는 판치생모의 그림화두로 많은 업적을 남길 것이다.(하략)(출처: 다음카페 벽강,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話頭 ‘판치생모板齒生毛’… ‘날마다 좋은 날’은 자기 마음속에 있는 것
‘머리 둘 달린 어리석은 공명조. 마음의 눈을 뜬 문수동자는 지혜를 얻고 진면목의 소를 타고 구멍 없는 피리를 분다. 환희의 노란 연꽃은 금빛 광명 속에 피어나 사바의 고뇌를 불사르니 자유와 평온함을 얻어 날마다 좋은 날 우담바라로 피네.’ 정현正玄스님 ‘그림’의 대주제인 ‘날마다 좋은날 되소서’를 글로 그려낸 설명이다.(중략)
정현스님은 부처님의 제자로 수행정진하면서 예술적 사유思惟와 미감美感을 통해서 그린 선禪을 바탕으로 한 초현실주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데 이것이 곧 판치생모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미술 전문가들은 “스님의 그림은 정상적인 사물의 표현이 아니고 현실을 초월한 방법이며 새로운 불교선화로서 독창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서양의 피카소와 같은 맥락”이라며 “사물의 정형定型을 단순히 모사模寫하는 것이 아니고 수행자의 심상心想으로 원형을 재창조하는 선禪적인 예술행위이며 정신주의에 근거한 화두와 같은 독특한 예술의 모습”으로 분석하고 있다.
‘붓’이 깨달음이 되어 새로운 ‘경지境地’를 이룬다. 특이한 것은 정현스님은 그 누구에게 사사師事한 적이 없다한다. 스님은 “무엇을 그리겠다고 미리 생각하지 않고 붓을 들어 화폭에 대면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새로운 경지를 찾아가게 되고 또 하나의 ‘좋은 날’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스님의 그림은 주로 연꽃과 물고기, 보살상, 후광後光, 쌍두 공명조 등 불교적인 소재를 택하고 있다. 비교적 단순한 소재를 이용해서 무거운 주제를 소화하는 것은 선적인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중략)
독창적인 자기어법에 순수와 신선감을 더해 세련미 넘치는 조형언어를 완성하고 있는 표현주의 성향의 예술이다. 이러한 화풍畵風이 탄생한 것은 누구에게 그림을 배운 게 아니라, 스님 스스로의 공부에 의한 것이다. 혹 남에게 그림을 배웠다면 독창적인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 수 있다.(중략)
정현 스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색채’다. 우리나라 전통 색인 화려한 오방색五方色이 작품에 흐드러지게 뿌려져 있다. 한마디로 오방색 ‘교접交接’의 극치미를 보여주는 것이다.(하략)
(출처: e People 한세희(http://www.ithepeople.kr)>
■ 정현스님과 ‘날마다 좋은날’
정현스님을 이야기할 때 자연스럽게 거론되는 것이 ‘날마다 좋은날 되소서’ 운동이다. ‘날마다 좋은날’ 즉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은 중국 운문선사의 너무나 유명한 선구이다. 운문선사가 어느 날 제자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십오일 이전에 대해서는 너희에게 묻지 않겠다. 하지만 십오일 이후에 대해서는 어디 한 마디 해보아라.” 제자들 중 그 누구도 대답하지 못하자 스님은 스스로 답하길 “날마다 좋은날이다日日是好日”라고 말했다. 이 자문자답 형태의 선문답의 의미에 대해 많은 해석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십오일은 보름달과 깨달음을 의미한다. 십오일 이전은 깨달음 이전이고 십오일 이후는 깨달음 이후를 말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깨달음만 이해한다면 ‘날마다 좋은날’이다. 나아가 이 말은 ‘날이면 날마다가 좋은 날’이라는 의미에 더해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싫은 일, 좋은 일이라는 분별分別없이 있는 그대로 담담히 받아들이면 그것이 세상의 실상에 가깝고 세상을 여실하게 보는 눈이다.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분별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고 일상생활을 아무 분별없이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평상심平常心으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를 매 순간 살아가자는 가르침으로 여겨진다.
정현스님은 운문선사의 선구禪句인 ‘날마다 좋은날’을 화제畵題로 삼아 지난 30년 가까이 선화禪畵를 그려 무주상보시를 하며 ‘날마다 좋은날 되소서’ 선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불교를 알리고 무주상보시를 실천해 오셨다. 말 그대로 이 보시는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한다.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부처님의 자비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내가 남을 위하여 베풀었다’는 생각이 있는 보시는 진정한 보시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날마다 좋은날 되소서’라는 선구는 위안을 주고 힘을 준다. 남의 기쁨과 행복을 발원하는 내용은 많은 이들에게 살아가는 힘을 제공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날마다 좋은날 되소서’ 그림, 판화 등 20만장을 배포하셨다. 스님께서 ‘날마다 좋은 날’ 그림을 그리고 운동을 전개하게 된 동기는 무엇일까. 여기서 스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날마다 좋은 날, 사실은 내가 너무나 내 자신이 생각해 볼 때 승려로서도 참선수행을 제대로 못했고 또 무엇인가 하나 내 놓을만한 것이 없어서 좀 내 나름대로 하나의 포교로, 포교의 방법을 생각했고 그렇게 ‘날마다 좋은 날’이란 것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을 지어주자. 또 나도 복을 짓자,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하면서 복을 짓자, 그런 마음으로 내가 시작을 한 거야. 날마다 좋은날. 불교에서는 무주상無住相,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좋은 일을 하면은 그걸로 끝내야 할텐데. 좋은 일을 조그만큼 하면서도 대문짝만하게 자기 얼굴을 내미는 게 상相이라. 좋을 일은 했다는 상을 했는데 저는 무주상, 상이 없는, 그래서 무주상 보시를 좀 하자. 그런 의미에서 내가 생각해 놓은 것이 ‘날마다 좋은 날’이라는 것이지. 나도 복을 지으면서 많은 사람이 복을 질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길러줄 수 있는 것이 그 운동, ‘날마다 좋은날’ 운동이라. 시작한지 한 30년 했는데 20만 장뿐이 못 한거라. 10년 걸려서 만장을 했어. 그랬는데 내가 얼마를 살것어. 그러면 10년에 만장 한다면 100살을 살아도 44만 장뿐이 못해.(대담자: 50만장은 하셔야죠) 그래서 꾀를 낸 것이 판화를 찍어서, 인쇄를 해서 여러 사람이 동참을 해서 채색을 하다가 이제 그것도 안돼서 목판을 찍어서 ‘한두뼘’ 식구들이 하고 있어. 그래서 인자 ‘날마다 좋은 날’ 운동을 내가 몸도 아프고 해서 무초스님을 총재로 모든 권한을 무초스님에게 인계를 해 준거야. 손대표를 위시해서 한두뼘 식구들이 같이 들 열심히 해.”
스님의 그림 수행은 1996년 공주 마곡사 태화산 토굴에서부터 현재 강화도 불은암에서 까지 이어지고 있다. 날마다 그림을 그리고, 무주상 보시를 실천하는 스님께서는 “그냥 아무 일없이 일상생활 속에서 밥 먹고 잠자고 공부하는 것이 날마다 좋은날을 사는 비결”이라고도 말씀하시고, 누군가에게는 “스스로 번뇌를 다스리면 매일이 ‘좋은 날’이 될 것”이라고도 하신다. 또한 좋은 날이란 “마음의 평정심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 하시는 가하면, “날마다 좋은날은 어느 특정한 날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마음에 있는 것이며, 지혜롭고 용기 있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에 좋은날을 만들어 행복하고 기쁜 날들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도 하신다. “날마다 좋은 날은 인간의 마음에 있는 것인데, 어리석은 자는 ‘어느 날’에 매달리지만, 지혜롭고 용기 있는 사람은 좋은 날을 자신의 마음으로 만든다는 말이다. 자기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과 존재한다는 말은 둘 다 똑같은 말이라. 존재한다고 자신이 그렇게 인정하면 있는 것이고, 없다고 생각하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듯이 이 모든 것은 자신의 마음을 근원으로 일어나는 현상인데, 그래서 선禪 공부, 마음 공부가 필요해. 공부가 수승해지면 자기 속의 부처를 볼 수 있으니 무엇이든지 가능하지”라며 ‘좋은 날’은 마음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좋은 날’은 욕심으로 꽉 찬 날이 아니라 여여如如한 날
정현스님의 작업노트를 살짝 열어 보았다. 그 곳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문수동자나 달마선사를 그리는 일은 세상을 맑게 하는 일이야. 문수동자는 지혜를 상징하지 않는가. 문수도를 나누는 일은 지혜를 나눠 갖는 일이요, 달마도를 갖는 일은 깊은 사려와 깨달음을 나눠 갖는 일이 아닌가.”
정현스님의 그림은 대체로 이렇게 구성된다. 정중앙에 소를 탄 문수동자가 자리 잡고, 그 옆에 전설의 새 공명조를 소의 등에 자연스럽게 앉힌다. 대개 문수동자는 사자를 타고 있지만 소와 어울리게 한 것은 우리가 미완성의 문수이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반드시 함께 어우러지는 글귀는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다. 대단히 간단하면서 쉬운 문구이지만 깊이는 절대 얕지 않다. ‘좋은 날’은 욕심으로 꽉 찬 날이 아니라 여여如如한 날, 한결같이 청정한 날을 의미한다.(이하 하략)
(출처e People 한세희 http://www.ithepeople.kr)
□ “스스로 번뇌를 다스리면 매일이 ‘좋은 날’이 될 것”
그렇다면 정현스님이 말하는 ‘좋은 날’은 어떤 날인가. 첫 마디가 ‘자신에 달렸다’이다. '좋은 날'은 어느 특정한 날이 아니고 인간의 마음에 있는 것인데 어리석은 자는 ‘어느 날’에 매달리지만, 지혜롭고 용기 있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에 좋은 날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강조하는 것은 바로 “‘날마다 좋은 날’은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우리는 항시 나보다 남을 생각하는 대자비와 사랑, 봉사와 희생정신으로 이웃을 돕고 불행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사람이야말로 ‘날마다 좋은 날’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역설했다.
정현스님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설법說法했다. “현실은 좋은 날 보다 고통과 슬픔으로 이어지는 날이 더 많기 때문에 어쩌면 매일 매일 나쁜 날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인간은 길일을 선호하고 액일을 피하지만 좋은 날인가 나쁜 날인가는 마음이 어떤 것인가에 달려있는 것이지 날짜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날마다 좋은 날은 집착심을 없애버리고 평안한 마음과 맑은 경지를 나타내야 한다. 즉 하루하루는 인간에게 최상의 날이며 소중한 날인 것이다. 기쁠 때는 즐거워하고 슬프고 괴로울 때는 울고 화날 때는 화를 낸다. 억지로 무엇을 하지 않으면서 현실에 있는 그대로 생활한다. 이처럼 시기와 장소에 따라 대응하면서 번뇌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면 매일이 ‘좋은 날’이 될 것이다."
(출처 : The People 한세희 http://www.ithepeople.kr)
□ 행복한 삶은 마음의 평정에서 시작
정현스님의 선화에 적힌 ‘날마다 좋은날 되소서’는 중생을 향한 스님의 가장 알기 쉽고 편한 법어法語이다. 날마다 좋은날은 모든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이며 꼭 필요한 말이다. 날마다 좋은날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으며 특별히 마련되어 있지도 않다. 허나 많은 사람들은 이사, 여행 등을 위해 길일吉日을 택한다. 이처럼 자신만의 특별한 날을 위해 길일을 택하면 선택되지 못한 날은 좋은날이 아닌 나쁜 날이 되고 만다. 길일과 흉일로 양분화 시켜놓고 날마다 좋은날이 되길 바란다는 것은 인간의 어리석은 모습을 드러내는 행위인 것이다. 정현스님은 “날마다 좋은날은 어느 특정한 날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마음에 있는 것이며, 지혜롭고 용기 있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에 좋은 날을 만들어 행복하고 기쁜 날들을 만들어 가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택일을 선택하는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날마다 좋은날은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길일을 선호하고 액일을 피해서 얻는 날이 아닌, 봉사와 희생정신으로 이웃을 돕고 불행과 고통을 함께 나누면 날마다 좋은날은 찾아 올 것이다. 또한 말과 생각만 앞서는 사람보다 몸소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날마다 좋은 날은 다가 올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하루하루는 다시는 못 올 시간이기에 최상의 날이며 소중한 날이다. 따라서 집착과 번뇌를 버리고 우리 이웃과 사회를 위해 살아간다면 매일매일 좋은날이 될 것이며 진정한 의미도 찾게 될 것이다.(출처: 다음 카페 김영권)
지난 4월 30일 다시 한 번 스님께 ‘좋은 날’이 무엇인지, 복잡한 현대인들이 마음의 평정심을 갖고 날마다 좋은 날을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 보았다. 스님께서는 “착한 마음으로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이 날마다 좋은 날”이라고 말씀하셨다. 스님의 말씀을 들어보자.
(대담자 : 복잡한 현대인들이 날마다 좋은 날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까요)
“날마다 좋은 날이 되려면, 불교에 이런 이야기가 있어. 불사선不思善 불사악不思惡이라.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는 말도 있지만, 나는 착한 마음을 갖고 선을 행하라. 착한 마음으로 선을 행하는 것이 날마다 좋은 날 만드는 일이다 그렇게 말하고 싶어. 중국 당대의 시인
백낙천이 스님을 찾아갔어. 자기에게 교훈이 될 수 있는 말씀을 한마디 해주시오 하니까. 착한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다 말하니까. 삼척동자도 다 아는 얘기를 저한데 해주십니까. 자기는 중국의 6대 문장가이고 정승까지 지낸 그런 벼슬을 한 사람한테 겨우 내려 준 것이 고작 착한 일을 하라는 것뿐이 없습니까. 그러니까 스님이 삼척동자도 아는 이야기지만 80노인도 행하지를 못한다. 그러니까 그때서사 무릎을 꿇었다는 그런 이야기가 있어. 그러니까 착한 일을 하라는 말을 누가 못해? 그리고 누가 몰라? 그런데 그것을 행하기는 그렇게 어려운 것이다. 80대 노인도 행하지를 못 한다는 이야기가 있어. 그러니까 우리가 착한 마음으로 사는 것, 참 그것이야말로 세상에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쉬운 이야기지만 그것을 행하기는 참 어려운 것이다. 이 말이야. 쉬운 것이 제일 어려운 것이라.”
(대담자 : 마곡사 태화산 토굴에서의 수행생활은 어떠셨나요)
“미국에서 돌아오고 나서 마곡사에서 15년을 살았어. 살다보니까. 마곡사에서. 판치생모 그림은 강화에서 그리고 마곡사 토굴에서도 그렸고. 내가 날마다 좋은 날을 10년을 그리니까, 만장을 그려줬다니까 1년에 천장씩, 10년을 그려줬어. 그렇게 10년을 그린 것이 만장뿐이 못 그려. 마음은 있지만 내 욕심에는 그것이 너무 적은 거라. 그래서 판화로 만들어가지고. 또 판화로 해도 그것도 찍어서 나눠주면 그것도 힘들어. 그래서 인쇄를 했어. 인쇄를 해서 많은 사람을 동참하게 그것을 채색하게 해서 나눠주고 했어.”
(대담자 : 그림 한 장 그리기도 쉽지 않은데 다행이 울림이 주는 그림이다 보니까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것 같아요)
“내가 그려 놓고 그것을 보니 날마다 좋은 날에 딱 맞는 그림이다. 날마다 좋은 날이라는 것은 자기를 깨쳐야 돼. 궁극적으로는 자기가 행복하고 평화로우려면 자기를 깨치기 이전에는 행복하지를 못 해.”
(대담자 : 저희 같은 사람들은 ‘좋은 날은 내일 올 거다.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거다’하는데, 오늘 좋은 날이 아니면 그 미래에 좋은 날은 오지 않는 것이죠. 어떻게 보면)
“그래서 극락이라든지, 천당이라든지 내가 현실에 천당을 가보지 못하면 죽어서는 천당 못 간다 이 말이여. 어떻게 현실에서 알지를 못하는데 죽어서 천당을 찾아갈 수가 있느냐 이 말이야.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죽어서 천당 가고 죽어서 극락 가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는 말이야. 바로 현실이 극락이 돼야 되고, 현실이 천당이 돼야 되고. 그것을 이루지 못하고는 죽어서 찾아가지를 못해.”
(대담자 : 그림에 꼭 공명조가 등장하는데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요)
“공명조는 선악을 이야기할 수가 있고 음양도 이야기할 수가 있고, 부처님께서 우리 인간이 완전하지 못하니까 공명조라는 새를 비유해가지고 우리 인간을 이야기 한 것이라. 우리는 조석병이라 이 말이지. 마음이. 찰라병이지, 찰라병. 그런 마음이 있어서는 행복할 수가 없는 거라. 불변의 마음을 가져야 하니까. 자기를 깨치지 않고서는 불변의 마음을 가질 수가 없어.”
스님께서는 ‘날마다 좋은 날’이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그 말 그대로 해석하면 된다. 어찌 보면 가장 쉬운 것 같기도 하지만 가장 어려운 말이기도 하다. 쉬워보여도 행하기 어려운 것이 인간의 나약함이라, 자기를 깨치기 위한 마음 공부와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선업을 쌓을 때 일상생활의 평정심도 오고 날마다 좋은 날도 온다는 것이다. 모두 좋은 마음자리를 갖고서 날마다 좋은 날이 되게 하자는 것이다.
■ “일 년의 모든 날, 모든 시간을 좋은 날들이 되게 하자”
지난 4월 30일 정현스님을 만나기 위해 무초스님과 함께 손윤경 한두뼘 대표와 작가2명이 부산 황룡산 자락을 찾았다. 스님께서 강화도 불은암을 잠시 떠나오신 황룡산 절골에는 이름처럼 많은 암자와 사찰이 있었다. 이미 봄꽃은 지고 초여름 신록이 짙어가고 있었다. 우선 건강부터 살폈다. 팔순을 앞 둔 연세와 지병으로 인한 피곤함이 안색에 묻어났지만, 표정만큼은 한결같이
40년 인연의 황처사님이 마련해 준 임시거처에는 묵향과 차향이 그윽하였다. 달마도와 문수도 그림이 화선지에 겹겹이 쌓여 있고, 앞마당에는 양다래(키위) 넝쿨이 차양이 될 정도로 무성히 뻗어 꽃 봉우리들도 막 올라와 터트릴 기회만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대담자: 스님 건강은 어떠세요?)
“건강은 괜찮아. 여기 와서 내가 여그 내려오게 된 동기를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정진스님을 만나기 위해 온 거라. 보갑사라는 절이 있어. 절 앞마당에 효행 공원을 만든다 그래.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내가 정진스님을 만나고 효행공원을 하는데 그것을 하기 위해서 여기를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투석하고 바로 가기도 하다 보니 무척 피곤하기도 해.
내가 20년 전에 용주사에서 효행교육원을 만들려다가 잘 안됐는데 그때 내가 부모은중경 동판을 제작해 놨었어. 그것을 모씨에게 맡겼는데 초파일 쇠고 거기를 가려고 그래. 은중경을 찍어가지고 그걸로 불사를 하라고 하고 싶어. 다 찍으면 그 동판을 갔다가 모시라고 그러고 싶어. 부모은중경은 부모의 10대 은혜인데, 은중경을 설하는 동기랄까, 부처님이 뼈 무더기에 절을 하는데, 부처님께서 어째서 남들도 하지 않는 뼈 무덤에 절을 하십니까.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뼈를 만져보고 들어봐라. 뼈가 무거우면 남자 뼈고, 뼈가 가벼우면 여자 뼈다. 그러면서 은중경을 설하게 된 거라. 그리고 나중에 부모은혜를 어떻게 하면 갚을 수 있느냐. 그럴 때 곤륜산, 그렇게 높은 산을 아버지와 어머니를 양어깨에 메고 그 산을 10바퀴를 돌아도 그 은혜를 못 갚는다. 그 말씀을 하신거라. 그래서 12장이라. 은혜는 10대 은혜니까 10가지로 표현을 했고, 그러니까 용주사가 원래 가랑사라는 신라시대 아주 쪼그만 토굴이었는데 용주사를 창건한 주지 이름을 잊어버렸어. 그런데 그 주지스님이 정조대왕 어가가 용주사 앞을 지날 때마다 앞에서 얼쩡거려. 그러니까 정조대왕이 그 스님을 불렀지. 주지인지 모르고. 불교에도 부모님을 섬기는 효도하는 법이 있는가 하고 물었어. 그 스님은 아무 말도 안하고 옆구리에 끼고 있던 은중경을 드렸어. 어가를 타고 가면서 정조대왕이 은중경을 읽어보니 구구절절이 부모은혜에 대한 간절한 이야기가 쓰여 있거든.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다시 불러가지고 소원이 뭐냐고. 그래서 용주사를, 이 절을 크게 짓는 게 소원이라고. 그런데 정조대왕이 용꿈을 꿔. 그래서 용주사라.
정현스님과 무초스님
용주사는 내게도 인연이 깊어. 1960년 4.19 되던 해에 화엄사에 계시던 스님들이 대처승들에게 다 쫒겨 났을 때 전강조실스님께서는 흥복사로 해서 인천으로 가시게 되었는데, 그 당시 용화사가 처음에는 무당절이라. 무당. 사형인 누나가 무당이었어. 조실스님께 드린 것인데. 조실 스님이 사시면서 보니 거기에 일본 신사 터가 있었어. 거기가 구룡장주터라. 아홉 마리 용이 구슬을 다투는 그런 터다. 용화사가. 그 신사 터가 명당이라는 거라. 일본 사람들은 대학에서 그것을 배워. 풍수지리를 가리켜. 그것을 전통적으로 배워. 그리고 그 사람들은 사실 그것을 전쟁에서 써먹은 거라. 전쟁에서. 풍수가지고. 아무튼 나는 군대 첫 휴가 나와서 용주사 도반을 찾아갔더니 이런 저런 어려움이 많았어. 그래서 조실스님을 모시고 가서 용주사를 중앙선원으로 만들었어. 그 때 조실스님이 용주사를 가시지 않았으면 지금의 용주사는 누가 살고 있는지도 모르지. (대담자: 정현스님이 전강스님을 용주사로 모시고 가지 않았으면 용주사가 지금처럼 발전하기 힘들었겠어요) 조실스님으로부터 선방도 하게 되고. 그 뒤에 용주사 주지했던 정대스님이 선방을 만들었지만 그 전부터 거기 선원으로 밑에서 선방을 했어. 위에 따로 짓기는 정대스님이 지었고. 용주사에서 전강스님 제자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전강문도들이 지금도 살고 그래서 용주사는 전강문도 절이라고도 할 수 있지. 대한민국에서 그렇게 많이 법문을 많이 한 스님은 전강 조실스님뿐이 없어. 남아있는 법문의 대다수가 용화사와 용주사에서 하신 법문이 녹음으로 남아 있지. 아침, 저녁으로 법문을 하셨으니까.”
정현스님께서 따라 주시는 차를 마시면서 인터뷰를 하는 사이 여러 명의 보살이 다녀가셨다.
멀리서 가까이에서 스님은 또 그렇게 선연을 쌓아가며 ‘날마다 좋은 날’을 만들고 계시는 듯 하다. 황룡산 절골에는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꽃보다 화려하게 연등이 여기 저기 피어나고 있었다. 어쩌면 30년 가까이 나누어준 ‘날마다 좋은날’ 그림들이 전국의 사찰을 꽃피우는 연등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스님의 건강을 기원하며 모두가 날마다 좋은 날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 정현스님 시(詩) 2편
내 안의 나
내 안에
내가 왜 이리 많은가?
병들어 신음하는 놈도 있고
탐욕스런 도둑놈도 있고
바람둥이 건달놈도 있고
벙어리와 장님도 있고
공양을 받는 수행자도 있다.
소문에 듣자니
그 가운데 부처도 있다는데
그가 누구일까?
방 가운데 앉아서 졸고 있는
늙은이 일까?
말귀가 어두워 아이들이
등 뒤에서 흉을 보는
내 안의 멍청이 일까?
날마다 좋은 날
머리 둘 달린 어리석은 공명조
참담한 죽음은 눈을 감지 못한 물고기
마음에 눈을 떠 문수동자는 지혜를 얻고
진면목의 소를 타고
구멍 없는 피리를 분다.
환희의 노란 연꽃
금빛 광명 속에 피어나
사바의 고뇌를 불사르니
자유와 평온함을 얻어
날마다 좋은날
우담바라로 피네
■ 참고자료: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부모의 은혜가 한량없이 크고 깊음을 설하여 그 은혜에 보답할 것을 가르친 경전. 1권.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이라고도 한다. 이 경의 내용은 부모의 은혜가 한량없이 크다는 것에 역점을 두고 있다. 구체적인 예로서, 어머니가 아이를 낳을 때는 3말 8되의 응혈(凝血)을 흘리고 8섬 4말의 혈유(血乳)를 먹인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부모의 은덕을 생각하면 자식은 아버지를 왼쪽 어깨에 업고 어머니를 오른쪽 어깨에 업고서 수미산(須彌山)을 백 천번 돌더라도 그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다고 설하였다.
이와 같이 부모의 은혜를 기리는 이 경은 부모의 은혜를 구체적으로 십대은(十大恩)으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다.
십대은은 ① 어머니 품에 품고 지켜 주는 은혜[懷耽守護恩], ② 해산날에 즈음하여 고통을 이기시는 어머니 은혜[臨産受苦恩], ③ 자식을 낳고 근심을 잊는 은혜[生子忘憂恩], ④ 쓴 것을 삼키고 단 것을 뱉아 먹이는 은혜[咽苦甘恩], ⑤ 진 자리 마른 자리 가려 누이는 은혜[廻乾就濕恩], ⑥ 젖을 먹여서 기르는 은혜[乳哺養育恩], ⑦ 손발이 닳도록 깨끗이 씻어주시는 은혜[洗濁不淨恩], ⑧ 먼 길을 떠나갔을 때 걱정하시는 은혜[遠行憶念恩], ⑨ 자식을 위하여 나쁜 일까지 짓는 은혜[爲造惡業恩], ⑩ 끝까지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 주는 은혜[究意憐愍恩] 등이다.(중략)
언해본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1553년(명종 8)에 경기도 장단 화장사(華藏寺)에서 개판한 것이 있다. 변상도(變相圖)의 완벽함과 그 섬세함에 있어서는 정조가 부모의 은혜를 기리는 뜻에서 개간하도록 하고, 김홍도(金弘道)의 그림이 첨가되어 있는 수원용주사(龍珠寺)의 것을 꼽을 수 있다. 이 밖에도 수십 종의 판본이 전하는데, 이들은 모두 효도가 강조된 조선시대에 불교의 효를 강조함으로써 그 사회의 저변에서나마 불교를 전파하려고 하였던 노력의 일환으로 풀이할 수 있다.(하략)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부모은중경 [父母恩重經]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정현스님 근황 사진 및 날마다 좋은날 운동 관련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