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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김씨촌로공파종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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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산시의 유래 스크랩 고지도를 통해 본 안산의 옛모습, 지형과 지질
金舜鎭 추천 0 조회 368 12.03.23 17:4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산울림 - 내게 사랑은 너무 써 | 음악을 들으려면 원본보기를 클릭해 주세요.

 

 

제3절 고지도를 통해 본

 

         안산의 옛모습

 

안산의 옛 지도는 조선 후기에 편찬된 본들만 전해지고 있는데, 대부분 18세기 이후에 편찬된 지도들이다. 이는 군현지도의 제작이 18세기 이후에 이르러 보편화되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다른 지방과 동일한 현상이다. 현 전하는 안산의 고지도는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분류된다. 첫째는 전국이나 도별 지도책 또는 지도첩 속에 다른 군현지도들과 함께 일련의 지도로 포함되어 있는 경우이고, 둘째는 읍지 등 지지류에 포함되어 있는 지도이며, 셋째는 개별 군현지도로 독립되어 있는 지도이다. 읍지 등 지지류에 포함되어 있는 지도는 앞에서 살펴보았고, 독립된 개별적 군현의 지도는 두 종만 전해지므로 고지도의 유형을 구분하지 않고 살펴보기로 한다. 안산이 포함된 고지도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그림 1-10「대동여지도」의 아산군과 주변 지역. 

「대동여지도」에「동여도」 의 지명을 추가한 지도이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奎 10333)」 22첩 중 제13첩.

 

? 「여지도(輿地圖;古 4709-68)」 6책 중 제1책.

? 「광여도(廣輿圖;古 4790-58)」 7책 중 제1책.

? 「지승(地乘;奎 15423)」 6책 중 제1책.

? 「여지도(輿地圖;국립 한 61-3, 貴 230)」

? 「해동지도(海東地圖;古大 4709-41)」 8첩 중 제1첩.

? 「조선지도(朝鮮地圖;奎 16030)」 7책 중 제1책.

? 「팔도지도(八道地圖;국립중앙도서관 소장. 한-61-21)」 제1책 ‘기보방여(畿 輔方輿)’

 

「해동여지도(海東輿地圖;국립중앙도서관 소장. 古 2107-36)」 3책 중 제1책. 「대동여지도」는 고산자 김정호가 1861년(1864년 중간본)에 제작한 분첩절첩식 형태의 전국지도이다. 전국지도이지만 축척이 크기 때문에 안산과 그 주변 지역을 살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전도이기 때문에 전국을 모두 볼 수 있도록 그렸으므로 안산의 산천의 배치, 주변 지역과의 관계, 도로망, 도서(섬)의 위치 등을 일목요연하게 살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림 1-10은 「대동여지도」에 「동여도(東輿圖)」의 지명을 추가한 지도로서, 여기에는 다른 자료에 없는 ‘용건면’이 표시되어 있다.

 

그림 1-11「여지도」중의 경기도 지도.

 

조선 시대의 안산은 기전 지역으로서서울에서 반 일 거리에 있었다.전국지도와 도별지도는 안산군 내부의 자세한 모습을 보여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안산의 다른 지역과의 관계, 즉 상대적 위치를 일목요연하게 드러내 준다. 안산은 조선 시대에도 서울의 주변 지역인 기전(畿甸) 지역으로서 반일 거리에 있었다. 「여지도(輿地圖, 그림 1-11)」의 안산군을 나타내는 원 안에 군명 우측으로 ‘반(半)’이라 표시한 것은 서울에서 반일 거리에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안산에 이르는 도로는 한강을 건너 금천(衿川;1795년에 시흥으로 개칭. 현재의 서울시 금천구)을 거치는 길이었다. 조선 시대의 각종 지지 자료를 살펴보면, 안산의 위치는 서울에서 51~57리로 기록되어 있다. 18세기 말 이후 도로에 대한 관심이 커짐에 따라 지도에 거리표를 함께 수록한 지도들이 많아지는데, 그림 1-12의 지도가 그 예이다. 이 지도는 경기도 각 군현 간의 거리를 지도 옆에 부기하였다. 이에 의하면 안산은 서울에서 60리 거리에 있었으며, 시흥·수원과 30리, 인천·과천과 40리, 양천·남양과 50리 위치에 있었다(표 1-6). 경기도 서남부 지역과 대체로 150리 이내의 거리인 반면, 경기도 내에서도 임진강 북쪽에 위치한 장단·적성·삭녕 등이나 경기도 동부 산간 지대에 위치한 가평 등과는 180리가 넘는 비교적 먼 거리에 있었다.

 

표 1-6 조선 후기 안산군과 경기도 각 군현과의거리

안산과의 거리

군 현

안산과의거리

군 현

.30리

.40리

.50리

.60리

.80리

.90리

100리

120리

130리

140리

시흥,화성(수원)

인천,과천

양천,남양

한성부,부평,용인

김포,광주,진위

양지

교하,고양,양성

양주,이천

통진,안성

죽산,풍덕

150리

160리

170리

180리

190리

200리

210리

220리

250리

...강화

...여주,포천

...음죽,교동

...장단,적성,양근,가평

...영평

...마전

...연천

...송도(개성),지평

...삭녕

자료:「해동여지도 」중의 경기도 지도,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그림 1-12「해동여지도」중의 경기도 지도.

 

경기도 각 군현 간의 거리를 지도 옆에 부가 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다른 지역과 같은 현상이지만, 안산의 군현을 그린 옛 지도는 조선 후기에 제작된 것들만 전해지고 있다. 전국 각 군현의 지도를 모두 수록한 전국 군현지도집인 「여지도(輿地圖;古 4709-68. 그림 1-13)」, 「광여도(廣輿圖;古 4790-58. 그림 1-14)」, 「여지도(輿地圖;국립 한 61-3)」는 18세기 중후반에 제작된 전국 군현지도집이다. 전국 군현지도집이란 전국 각 지방의 모든 군현의 지도를 함께 모은 지도집을 말한다. 이 3종의 지도집은 지도책의 형태로 묶여져 있으며,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지도의 뒷면에는 각 지역에 대한 인구, 토지 면적 등의 설명이 기록되어 있는데, 주기(註記)의 내용도 모두 같다. 다만 책의 크기가 다르고, 지형이나 건물의 표현 양식·채색 등이 상이하다.

 

 그림 1-13「여지도」중의 안산군의 지도.

18세기후반 에 제작된 전국 군현 지도집 중 하나이다

 

  그림 1-14「광여도」중의 안산군의 지도.

「광여도」역시 18세기 후반에제작된 전국군현 지도집 중 하나이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3종의 지도에는 도로가 표시되어 있지 않으나, 지도에 ‘대로(大路)·중로(中路)’ 등의 표시가 있어 원래 지도에는 도로 표시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여지도」에는 도로가 적색선으로 표시되어 있어, 이러한 추정을 뒷받침해 준다. 이 지도의 특징은 바다에 그린 섬에 사람의 거주 여부와 경지의 유무를 나타낸 점이다. 이는 당시 섬에 대한 관심과 필요성이 있었음을 반영한 것이다. 「여지도」는 18세기 중엽에 제작된 지도책으로 추정되는데, 지도책 중에 수록된 각 군현 지도는 18세기 전반의 사정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지도는 지도의 내곽선 밖 상단 여백에 각 군현의 옛 이름과 별호(別號)를 기록하였으며, 우측 여백에는 서울에서 각 군현까지의 일정(日程)을 기록하였는데, 이는 지도를 만든 뒤에 별도로 기입한 것으로 보인다. 이 지도는 크기가 작고 아담하여 열람이나 보관에 편리하게 되어 있다. 「광여도」는 「여지도」와 거의 유사하지만 책의 판형이 크고, 수정된 내용들이 반영되어 있어 「여지도」류의 지도를 바탕으로 하여 18세기 후반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도의 뒷면이나 옆면에는 인구, 재정곡, 경지 면적, 사방 강계, 성곽, 창, 면의 이름과 위치(초경<初境>·종경<終境>)에 관한 내용이 주기로 기록되어 있어 지방 각 군현의 지역 사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 지난 시대의 지도를 전사함에 있어서 통계 기록을 그대로 전재하였으므로, 이러한 통계 수치로 지도의 제작 시기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해동지도(海東地圖)」는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또 하나의 훌륭한 지도책으로, 전국 각 군현의 지도를 모두 수록한 전국 군현지도집이다. 「해동지도」에는 주요 산천·관아·역원·면·창 등이 표시되어 있고, 도로가 적색 선으로 그려져 있다(그림 1-15). 특히 이 지도는 도로가 매우 상세하게 표시된 점이 특징이다. 「여지도서」 등 지지의 내용과 달리 안산군의 도로가 모두 대로와 중로로 표시되어 있다. 또 지지(地誌)에 해당하는 내용을 여백에 기록하여 각 지역에 관한 내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한 점이 특징이다. 주기에는 호구, 경지 면적, 고장의 둘레, 군병 총수, 환곡 총수, 각 면과 위치(중심지로부터의 거리), 연혁, 사방 강계, 지형적 특징, 군명, 산천, 고적, 교량, 봉수, 역원, 형승, 토산 등을 자세하게 기록하여 마치 읍지를 요약해 놓은 듯하다.

 

 그림 1-15「해동지도」중의 안산구의 지도.

 주요 산천, 관아, 역원, 면, 창 등과도로가 그려져 있다.

 

「팔도군현지도(八道郡縣地圖;그림 1-16)」와 「조선지도(朝鮮地圖)」는 영조 말인 1767~1776년경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도의 가장 큰 특징은 약 4.1cm의 방안(方眼)에 그린 방안지도라는 점이다. 지도의 크기가 가로 24.4cm, 세로 16.2cm에 불과한 작은 지도이므로 상세하지는 않다. 이것은 전국의 모든 군현을 일정한 축척에 따라 그려 지도책으로 수록하는 데서 오는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전국의 모든 지역을 일정한 축척으로 그린 점, 그것을 통해 전국을 군현 단위로 연결시켜 볼 수 있도록 지도를 만든 점 등은 지도 제작의 측면에서 볼 때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 지도는 일정한 크기의 방안에 전국 각 군현을 그렸기 때문에 축척이 동일하여 각 지역의 크기와 거리 등을 일목요연하게 비교할 수 있으며, 지도 제작의 기본 요소인 축척을 방안(方眼)으로 표시한 점 등으로 보아 조선의 지도 발달사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지도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지도는 안산군을 그린 조선 시대의 지도 중 유일하게 북쪽을 위로 한 지도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팔도지도(八道地圖)」와 「해동여지도(海東輿地圖)」도 같은 양식의 지도로 위의 규장각 소장의 방안지도와 내용이 동일한데, 좀더 뒷 시기인 19세기에 전사하거나 제작한 지도책으로 추정된다.

 

그림 1-16「팔도군현지도」중의 안산군 지도.

방안지도로 1767~76년경에서편찬된것으로 추측된다.

 

이처럼 전국이나 경기도를 대상으로 하여 작성한 군현지도집에 안산지도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 지도들이 18세기에 편중되어 있어 시계열적인 지역의 변화 모습을 파악하는 데에는 아쉬움이 있다. 군현지도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앞에서 언급한 군현지도집 중에 포함되어 있는 지도들이다. 지도책이나 지도첩의 형태 속에 경기도 전체 군현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으므로 지역간의 비교나 경기도 전체를 이해하는 데에 매우 편리하다. 그러나 지도책은 대부분 크기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상세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반면에 두 번째 유형의 군현지도인 단독 군현지도는 대부분 대형으로 제작한 경우가 많다. 크기가 크기 때문에 상세하며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이들 군현지도 중 가장 상세한 지도는 19세기 후반 고종 시대에 편찬된 지도들이다. 독립되어 있는 단독지도로서 1872년(고종 8)에 제작된 경기도 각 군현의 지도가 남아 있어 조선 후기의 지역 모습을 훌륭하게 전해 주고 있다. 이들은 채색 필사본 지도로서 1866년의 병인양요, 1871년의 신미양요를 겪은 후 중앙 조정이 각 지방에 지도 편찬령을 내려, 그 결과물로서 각 읍에서 지도를 제작하여 상송한 것으로 보인다. 이 지도들은 크기가 매우 큰 대축척지도로서 채색이 명료하고, 그 내용도 풍부하고 상세하다. 이때의 지도들은 같은 시기에 제작되었지만 각 군현에서 작성하여 올렸기 때문에 지역마다 표현 방식이나 강조된 내용들이 서로 달라서 개성 있는 지도들이 되었다.

 

경기도 지도는 총 40장의 낱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38개 군현과 영종도·대부도의 진지도(鎭地圖)가 포함되어 있다. 이들 지도에는 산과 하천 등 지형·교량·면리·장시·서원·향교·관아 등이 세밀하게 표시되어 있어 지명의 고증과 복원은 물론 옛 지역 문화를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를 제공한다. 그러나 경기 지역의 지도들은 타도에 비하여 상세한 편이 아니며, 안산 지도의 경우도 이전의 지도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그림 1-17, 1-18).

 

그림 1-17 1872년에 제작된「안산군 지도」.

경기도 지도는 다른 도의 지도에 비하여 상세한 편이다.

 

그림 1-18「대부지도(大阜地圖)

 1982년에 제작된 것으로, 지형의 고증과 복원에 크게 기여한다

 

지형과 지질

 

1. 지형

 

자연환경이 지역의 특성과 주민의 삶의 형태를 이루는 바탕이 된다면, 안산시의 자연환경은 안산의 지역적 특징을 형성하는 기저를 이룬다. 1972년 당시의 국립지질조사소에 의해 간행된 「남양지질도폭(南陽地質圖幅)」 설명서에 의하면 안산시 인근 지역은 노년기 지형으로서 경기 평야의 중서부에 위치하여 비교적 넓은 충적평야가 발달하고 있으며, 한반도의 중앙을 동북 방향으로 발달하는 광주산맥의 서남단에 위치한다. 이 지역의 지형은 지형적 특징에 따라 이대분(二大分)이 가능한데 이는 구성암석 및 지질구조에 기인한다.


첫째, 안산시 동부의 산지지역은 대부분이 편암(片岩) 및 편마암류(片麻岩類)로 구성되어 있고, 주릉(主陵)은 남북방향으로 발달하며, 지릉(支陵)은 북동 방향으로 발달하고 있다. 특히 풍화에 강한 석영편암(규암)층이 분포한 지역은 험준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둘째, 안산시와 시흥시 부근의 서부해안지역은 대부분이 구릉성 산지를 형성하며, 침식해안을 이루고 있다. 안산과 시흥 신도시 건설 이전에는 활발한 간척사업으로 인하여 넓은 갯벌 지대가 육화되어 우리 나라 굴지의 염전지대를 이루었고, 그 일부는 이미 전답으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구릉성 산지도 모두 절개·평지화되어 안산 시가지와 반월 및 시흥공업단지를 이루고 있으며, 대형 방조제 건설에 따른 인공 시화호가 형성되어 있다.


안산시가 포함되어 있는 경기만 일대는 한반도의 중앙에서 남남서 방향으로 뻗어 나간 광주산맥의 서남단에 위치한 해안 지역으로서, 내륙은 구릉성 산지가 발달한 노년기 지형 특성이 뚜렷하고, 해안에는 이들 구릉성 산지의 절단과 해식애(海蝕崖)의 발달이 현저한 암석해안이 널리 분포되어 있다. 또한 조차가 커 해안을 따라 조차 간만의 차가 나타나는 조간대(潮間帶)가 넓게 발달되어 있으며, 이 조간대는 대부분 갯벌로 이루어진 간석지의 형태로 나타나 있다.

 

따라서 해안선은 조차가 큰 환경을 반영하여 구릉성 산지와 만나는 암석해안을 제외하면 대부분 입자가 작은 모래의 간석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일부 해안 지역과 섬 지역에서는 파랑의 작용과 바람의 영향을 크게 받는 곳에 해빈과 해안사구(海岸砂丘)가 나타나기도 한다.


안산시의 지세는 강원도 북부에서 남남서로 달리는 광주산맥의 말단부 남쪽에 위치하며, 북동부는 비교적 높은 산지가 형성되어 있고, 해안을 따라 서부와 남부는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다. 대부도를 제외한 안산시의 지세를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해안으로부터 내륙에 이르기까지 해안에 인접한 해성충적지대(海性沖積地帶)와 잔류성구릉지대(殘留性丘陵地帶), 그리고 저산지대(低山地帶)로 나눌 수 있다. 해안을 따라 넓게 분포하는 평탄지대는 대부분 해성 퇴적 기원의 충적물과 일부 하천변의 하성퇴적물(河性堆積物)로 이루어져 있는데, 오랜 동안의 꾸준한 간척사업에 의해 육지화되었다.


해발 고도 40~100m에 이르는 저평한 구릉지는 시화공단 지역과 원곡동· 선부동 일대, 그리고 시의 동쪽에 있는 사사동과 사동 일대에 분포한다. 저산 지대는 군포시와 안양시의 경계에 있는 수리산에서 시작된 산줄기가 안양시와 경계를 이루는 북동부의 수암봉(395m) 일대를 거쳐 한 줄기는 서진하여 시흥시와 경계를 이루는 마산(麻山, 246m)을 향하고, 다른 한 줄기는 남진하여 수원시에 있는 칠보산(七寶山, 239m)을 향해 뻗어 있다. 따라서 안산시는 전체적으로 안산천(安山川)의 상류 방향으로 점차 높아지는 북고남저(北高南低) 또는 동고서저(東高西低)의 지세를 나타낸다(그림 1-19).


안성군에서 용인군·수원시·부천시·김포군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한남정맥(漢南正脈)은 한강의 남쪽 분수계가 되는데, 그 맥은 연속성이 약하고 고도도 낮지만 경기 지역 내에서 문화적 특성을 구분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지리적 환경을 지니고 있다. 한남정맥은 조선 시대의 산맥 분류 체계의 한 가지이다.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우리 국토의 등줄기를 이루며 지리산까지 뻗은 백두대간(白頭大幹)에서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이 갈라져 나오고, 한남금북정맥은 죽산 칠현산에서 그친다. 여기서 한남정맥이 시작되어 서북으로 뻗어 올라간다.

 
한강 남쪽의 정맥, 즉 한남정맥(漢南正脈)의 흐름을 보면, 죽산 칠현산→안성 백운산→양지 구봉산→대소곡돈현→양지 성륜산→수유산→용인 부아산→용인 보개산→용인 석성산→객망현→수원 광교산→사근현→광주 오봉산→안산 수리산→안산 오자산→인천 소래산→인천 성현→인천 주안산→부평 원적산→경명산→김포읍 북성산에 이르러 그친다. 안산은 한남정맥의 서쪽에 위치하며, 안산의 수리산과 오자산은 한남정맥의 주요 봉우리를 이룬다.


이러한 안산의 지세를 「경기지(京畿誌)」의 안산읍지 ‘명산(名山)’조에서는 “수리산의 한 맥이 남쪽으로 굽어 돌아 군내면의 노적봉(露積峯)이 되어 성곶포(聲串浦)에서 그치며, 또 다른 한 맥은 북쪽으로 뻗어 초산면의 응봉(鷹峯), 잉화면의 마하산(痲霞山), 마유면의 군자봉(君子峯)이 되었으며, 와리면의 옛 소릉(昭陵)을 이루고 성두(城頭)에서 그친다.”고 설명하였다.


경기 지역에서 평야의 분포가 넓은 곳은 황해안과 접한 개성·파주·고양시 지역을 비롯해 김포·인천·시흥·안산·화성 지역과 남부의 평택 지역, 동남부의 이천·여주 지역 등이다. 특히 평택 지역과 경기 동남부의 이천·여주 지역은 풍화와 침식에 약한 화강암이 넓게 분포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평야가 넓게 분포하고 있다.























그림 1-19 안산시 주요 지형(육지부). 안산시는 전체적으로 북고남저, 동고서저의 지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지형적 환경이 바탕이 되어 충적지를 중심으로 일찍부터 농경지가 개척되었고, 그에 인접한 침식 평야에는 많은 촌락들이 발달하였다. 그러나 산지로 둘러싸인 분지성 지형이 거의 발달되어 있지 않은 데다 집수면적(集水面積)이 큰 산지가 적기 때문에 풍화물 침식 지형이 넓게 분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도시의 발달이 미약한 편이었다.

 

그러나 각종 용수를 상수도에 의존하게 되면서 풍화물 침식 지형이 넓게 분포한 지역을 중심으로 농촌 지역의 도시화나 도시의 평면적 확대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인천의 발전, 고양시의 일산이나 안산 지역 일대에 신도시가 건설된 것은 지역의 풍화물 침식 지형의 분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산업화 시대에 들어선 오늘날에는 과거 임야나 묘지 또는 밭으로 이용되던 지역에 대규모의 주택단지가 조성되거나 산업과 관련된 다양한 인공구조물이 들어서고 있다.

 

이 경우에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지형적 조건은 지표의 물이 지하로 잘 스며들고 습하지 않으며 홍수시에도 침수의 위험이 없어야 한다. 풍화물 침식 지형은 배수가 잘 되는 데다 침수의 위험이 거의 없고, 지표의 기복을 쉽게 변형시킬 수 있기 때문에 주택지 개발이나 공업단지 조성 등에 매우 적합한 곳으로 평가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도시화가 활발하게 진행된 경기 지역에서는 도시 주변 지역을 중심으로 밭이나 임야로 이용되던 구릉성 침식지가 주택지로 개발되는 경우가 많았다. 구릉화된 침식지는 배수상태가 양호한 데다 구릉성 침식지를 깎아내어 토지를 평탄화시키기가 용이하기 때문이었다.


안산시 지역은 남부 해안의 중앙부와 반월천 연안에 충적지가 발달되어 있고 그 주변에는 구릉성 산지와 풍화물 침식지가 많이 분포하고 있다. 안산 지역의 도시 발달은 충적지 주변의 풍화물 침식지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이 지역의 도시화는 처음에는 서남부의 풍화물 침식지와 간척지를 중심으로 공업단지가 조성되었고, 그 북부의 침식 평야에 주택단지가 조성되면서 시작되었다.

 

해안의 공업단지와 내륙의 주택단지의 중간 지대에는 구릉성 저산지가 분포하고 있다. 주택지구가 구릉성 산지의 북쪽에 입지한 것은 남부 해안 지역의 공업지대에서 방출되는 오염물질이 북쪽의 주택지로 흘러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후 안산시의 도시화와 시가지의 수평적 확대는 충적지 주변의 풍화물 침식지를 따라 진행되어, 현재는 저습한 충적평야를 제외한 거의 전 지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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