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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절 고지도를 통해 본
안산의 옛모습
안산의 옛 지도는 조선 후기에 편찬된 본들만 전해지고 있는데, 대부분 18세기 이후에 편찬된 지도들이다. 이는 군현지도의 제작이 18세기 이후에 이르러 보편화되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다른 지방과 동일한 현상이다. 현 전하는 안산의 고지도는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분류된다. 첫째는 전국이나 도별 지도책 또는 지도첩 속에 다른 군현지도들과 함께 일련의 지도로 포함되어 있는 경우이고, 둘째는 읍지 등 지지류에 포함되어 있는 지도이며, 셋째는 개별 군현지도로 독립되어 있는 지도이다. 읍지 등 지지류에 포함되어 있는 지도는 앞에서 살펴보았고, 독립된 개별적 군현의 지도는 두 종만 전해지므로 고지도의 유형을 구분하지 않고 살펴보기로 한다. 안산이 포함된 고지도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그림 1-10「대동여지도」의 아산군과 주변 지역. 「대동여지도」에「동여도」 의 지명을 추가한 지도이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奎 10333)」 22첩 중 제13첩.
? 「여지도(輿地圖;古 4709-68)」 6책 중 제1책. ? 「광여도(廣輿圖;古 4790-58)」 7책 중 제1책. ? 「지승(地乘;奎 15423)」 6책 중 제1책. ? 「여지도(輿地圖;국립 한 61-3, 貴 230)」 ? 「해동지도(海東地圖;古大 4709-41)」 8첩 중 제1첩. ? 「조선지도(朝鮮地圖;奎 16030)」 7책 중 제1책. ? 「팔도지도(八道地圖;국립중앙도서관 소장. 한-61-21)」 제1책 ‘기보방여(畿 輔方輿)’
「해동여지도(海東輿地圖;국립중앙도서관 소장. 古 2107-36)」 3책 중 제1책. 「대동여지도」는 고산자 김정호가 1861년(1864년 중간본)에 제작한 분첩절첩식 형태의 전국지도이다. 전국지도이지만 축척이 크기 때문에 안산과 그 주변 지역을 살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전도이기 때문에 전국을 모두 볼 수 있도록 그렸으므로 안산의 산천의 배치, 주변 지역과의 관계, 도로망, 도서(섬)의 위치 등을 일목요연하게 살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림 1-10은 「대동여지도」에 「동여도(東輿圖)」의 지명을 추가한 지도로서, 여기에는 다른 자료에 없는 ‘용건면’이 표시되어 있다.
그림 1-11「여지도」중의 경기도 지도.
조선 시대의 안산은 기전 지역으로서서울에서 반 일 거리에 있었다.전국지도와 도별지도는 안산군 내부의 자세한 모습을 보여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안산의 다른 지역과의 관계, 즉 상대적 위치를 일목요연하게 드러내 준다. 안산은 조선 시대에도 서울의 주변 지역인 기전(畿甸) 지역으로서 반일 거리에 있었다. 「여지도(輿地圖, 그림 1-11)」의 안산군을 나타내는 원 안에 군명 우측으로 ‘반(半)’이라 표시한 것은 서울에서 반일 거리에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안산에 이르는 도로는 한강을 건너 금천(衿川;1795년에 시흥으로 개칭. 현재의 서울시 금천구)을 거치는 길이었다. 조선 시대의 각종 지지 자료를 살펴보면, 안산의 위치는 서울에서 51~57리로 기록되어 있다. 18세기 말 이후 도로에 대한 관심이 커짐에 따라 지도에 거리표를 함께 수록한 지도들이 많아지는데, 그림 1-12의 지도가 그 예이다. 이 지도는 경기도 각 군현 간의 거리를 지도 옆에 부기하였다. 이에 의하면 안산은 서울에서 60리 거리에 있었으며, 시흥·수원과 30리, 인천·과천과 40리, 양천·남양과 50리 위치에 있었다(표 1-6). 경기도 서남부 지역과 대체로 150리 이내의 거리인 반면, 경기도 내에서도 임진강 북쪽에 위치한 장단·적성·삭녕 등이나 경기도 동부 산간 지대에 위치한 가평 등과는 180리가 넘는 비교적 먼 거리에 있었다.
표 1-6 조선 후기 안산군과 경기도 각 군현과의거리
자료:「해동여지도 」중의 경기도 지도,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그림 1-12「해동여지도」중의 경기도 지도.
경기도 각 군현 간의 거리를 지도 옆에 부가 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다른 지역과 같은 현상이지만, 안산의 군현을 그린 옛 지도는 조선 후기에 제작된 것들만 전해지고 있다. 전국 각 군현의 지도를 모두 수록한 전국 군현지도집인 「여지도(輿地圖;古 4709-68. 그림 1-13)」, 「광여도(廣輿圖;古 4790-58. 그림 1-14)」, 「여지도(輿地圖;국립 한 61-3)」는 18세기 중후반에 제작된 전국 군현지도집이다. 전국 군현지도집이란 전국 각 지방의 모든 군현의 지도를 함께 모은 지도집을 말한다. 이 3종의 지도집은 지도책의 형태로 묶여져 있으며,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지도의 뒷면에는 각 지역에 대한 인구, 토지 면적 등의 설명이 기록되어 있는데, 주기(註記)의 내용도 모두 같다. 다만 책의 크기가 다르고, 지형이나 건물의 표현 양식·채색 등이 상이하다.
그림 1-13「여지도」중의 안산군의 지도. 18세기후반 에 제작된 전국 군현 지도집 중 하나이다
그림 1-14「광여도」중의 안산군의 지도. 「광여도」역시 18세기 후반에제작된 전국군현 지도집 중 하나이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3종의 지도에는 도로가 표시되어 있지 않으나, 지도에 ‘대로(大路)·중로(中路)’ 등의 표시가 있어 원래 지도에는 도로 표시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여지도」에는 도로가 적색선으로 표시되어 있어, 이러한 추정을 뒷받침해 준다. 이 지도의 특징은 바다에 그린 섬에 사람의 거주 여부와 경지의 유무를 나타낸 점이다. 이는 당시 섬에 대한 관심과 필요성이 있었음을 반영한 것이다. 「여지도」는 18세기 중엽에 제작된 지도책으로 추정되는데, 지도책 중에 수록된 각 군현 지도는 18세기 전반의 사정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지도는 지도의 내곽선 밖 상단 여백에 각 군현의 옛 이름과 별호(別號)를 기록하였으며, 우측 여백에는 서울에서 각 군현까지의 일정(日程)을 기록하였는데, 이는 지도를 만든 뒤에 별도로 기입한 것으로 보인다. 이 지도는 크기가 작고 아담하여 열람이나 보관에 편리하게 되어 있다. 「광여도」는 「여지도」와 거의 유사하지만 책의 판형이 크고, 수정된 내용들이 반영되어 있어 「여지도」류의 지도를 바탕으로 하여 18세기 후반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도의 뒷면이나 옆면에는 인구, 재정곡, 경지 면적, 사방 강계, 성곽, 창, 면의 이름과 위치(초경<初境>·종경<終境>)에 관한 내용이 주기로 기록되어 있어 지방 각 군현의 지역 사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 지난 시대의 지도를 전사함에 있어서 통계 기록을 그대로 전재하였으므로, 이러한 통계 수치로 지도의 제작 시기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해동지도(海東地圖)」는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또 하나의 훌륭한 지도책으로, 전국 각 군현의 지도를 모두 수록한 전국 군현지도집이다. 「해동지도」에는 주요 산천·관아·역원·면·창 등이 표시되어 있고, 도로가 적색 선으로 그려져 있다(그림 1-15). 특히 이 지도는 도로가 매우 상세하게 표시된 점이 특징이다. 「여지도서」 등 지지의 내용과 달리 안산군의 도로가 모두 대로와 중로로 표시되어 있다. 또 지지(地誌)에 해당하는 내용을 여백에 기록하여 각 지역에 관한 내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한 점이 특징이다. 주기에는 호구, 경지 면적, 고장의 둘레, 군병 총수, 환곡 총수, 각 면과 위치(중심지로부터의 거리), 연혁, 사방 강계, 지형적 특징, 군명, 산천, 고적, 교량, 봉수, 역원, 형승, 토산 등을 자세하게 기록하여 마치 읍지를 요약해 놓은 듯하다.
그림 1-15「해동지도」중의 안산구의 지도. 주요 산천, 관아, 역원, 면, 창 등과도로가 그려져 있다.
「팔도군현지도(八道郡縣地圖;그림 1-16)」와 「조선지도(朝鮮地圖)」는 영조 말인 1767~1776년경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도의 가장 큰 특징은 약 4.1cm의 방안(方眼)에 그린 방안지도라는 점이다. 지도의 크기가 가로 24.4cm, 세로 16.2cm에 불과한 작은 지도이므로 상세하지는 않다. 이것은 전국의 모든 군현을 일정한 축척에 따라 그려 지도책으로 수록하는 데서 오는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전국의 모든 지역을 일정한 축척으로 그린 점, 그것을 통해 전국을 군현 단위로 연결시켜 볼 수 있도록 지도를 만든 점 등은 지도 제작의 측면에서 볼 때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 지도는 일정한 크기의 방안에 전국 각 군현을 그렸기 때문에 축척이 동일하여 각 지역의 크기와 거리 등을 일목요연하게 비교할 수 있으며, 지도 제작의 기본 요소인 축척을 방안(方眼)으로 표시한 점 등으로 보아 조선의 지도 발달사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지도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지도는 안산군을 그린 조선 시대의 지도 중 유일하게 북쪽을 위로 한 지도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팔도지도(八道地圖)」와 「해동여지도(海東輿地圖)」도 같은 양식의 지도로 위의 규장각 소장의 방안지도와 내용이 동일한데, 좀더 뒷 시기인 19세기에 전사하거나 제작한 지도책으로 추정된다.
그림 1-16「팔도군현지도」중의 안산군 지도. 방안지도로 1767~76년경에서편찬된것으로 추측된다.
이처럼 전국이나 경기도를 대상으로 하여 작성한 군현지도집에 안산지도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 지도들이 18세기에 편중되어 있어 시계열적인 지역의 변화 모습을 파악하는 데에는 아쉬움이 있다. 군현지도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앞에서 언급한 군현지도집 중에 포함되어 있는 지도들이다. 지도책이나 지도첩의 형태 속에 경기도 전체 군현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으므로 지역간의 비교나 경기도 전체를 이해하는 데에 매우 편리하다. 그러나 지도책은 대부분 크기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상세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반면에 두 번째 유형의 군현지도인 단독 군현지도는 대부분 대형으로 제작한 경우가 많다. 크기가 크기 때문에 상세하며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이들 군현지도 중 가장 상세한 지도는 19세기 후반 고종 시대에 편찬된 지도들이다. 독립되어 있는 단독지도로서 1872년(고종 8)에 제작된 경기도 각 군현의 지도가 남아 있어 조선 후기의 지역 모습을 훌륭하게 전해 주고 있다. 이들은 채색 필사본 지도로서 1866년의 병인양요, 1871년의 신미양요를 겪은 후 중앙 조정이 각 지방에 지도 편찬령을 내려, 그 결과물로서 각 읍에서 지도를 제작하여 상송한 것으로 보인다. 이 지도들은 크기가 매우 큰 대축척지도로서 채색이 명료하고, 그 내용도 풍부하고 상세하다. 이때의 지도들은 같은 시기에 제작되었지만 각 군현에서 작성하여 올렸기 때문에 지역마다 표현 방식이나 강조된 내용들이 서로 달라서 개성 있는 지도들이 되었다.
경기도 지도는 총 40장의 낱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38개 군현과 영종도·대부도의 진지도(鎭地圖)가 포함되어 있다. 이들 지도에는 산과 하천 등 지형·교량·면리·장시·서원·향교·관아 등이 세밀하게 표시되어 있어 지명의 고증과 복원은 물론 옛 지역 문화를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를 제공한다. 그러나 경기 지역의 지도들은 타도에 비하여 상세한 편이 아니며, 안산 지도의 경우도 이전의 지도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그림 1-17, 1-18).
그림 1-17 1872년에 제작된「안산군 지도」. 경기도 지도는 다른 도의 지도에 비하여 상세한 편이다.
그림 1-18「대부지도(大阜地圖)」 1982년에 제작된 것으로, 지형의 고증과 복원에 크게 기여한다
지형과 지질
1. 지형
자연환경이 지역의 특성과 주민의 삶의 형태를 이루는 바탕이 된다면, 안산시의 자연환경은 안산의 지역적 특징을 형성하는 기저를 이룬다. 1972년 당시의 국립지질조사소에 의해 간행된 「남양지질도폭(南陽地質圖幅)」 설명서에 의하면 안산시 인근 지역은 노년기 지형으로서 경기 평야의 중서부에 위치하여 비교적 넓은 충적평야가 발달하고 있으며, 한반도의 중앙을 동북 방향으로 발달하는 광주산맥의 서남단에 위치한다. 이 지역의 지형은 지형적 특징에 따라 이대분(二大分)이 가능한데 이는 구성암석 및 지질구조에 기인한다.
따라서 해안선은 조차가 큰 환경을 반영하여 구릉성 산지와 만나는 암석해안을 제외하면 대부분 입자가 작은 모래의 간석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일부 해안 지역과 섬 지역에서는 파랑의 작용과 바람의 영향을 크게 받는 곳에 해빈과 해안사구(海岸砂丘)가 나타나기도 한다.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우리 국토의 등줄기를 이루며 지리산까지 뻗은 백두대간(白頭大幹)에서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이 갈라져 나오고, 한남금북정맥은 죽산 칠현산에서 그친다. 여기서 한남정맥이 시작되어 서북으로 뻗어 올라간다.
그림 1-19 안산시 주요 지형(육지부). 안산시는 전체적으로 북고남저, 동고서저의 지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지형적 환경이 바탕이 되어 충적지를 중심으로 일찍부터 농경지가 개척되었고, 그에 인접한 침식 평야에는 많은 촌락들이 발달하였다. 그러나 산지로 둘러싸인 분지성 지형이 거의 발달되어 있지 않은 데다 집수면적(集水面積)이 큰 산지가 적기 때문에 풍화물 침식 지형이 넓게 분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도시의 발달이 미약한 편이었다.
그러나 각종 용수를 상수도에 의존하게 되면서 풍화물 침식 지형이 넓게 분포한 지역을 중심으로 농촌 지역의 도시화나 도시의 평면적 확대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인천의 발전, 고양시의 일산이나 안산 지역 일대에 신도시가 건설된 것은 지역의 풍화물 침식 지형의 분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경우에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지형적 조건은 지표의 물이 지하로 잘 스며들고 습하지 않으며 홍수시에도 침수의 위험이 없어야 한다. 풍화물 침식 지형은 배수가 잘 되는 데다 침수의 위험이 거의 없고, 지표의 기복을 쉽게 변형시킬 수 있기 때문에 주택지 개발이나 공업단지 조성 등에 매우 적합한 곳으로 평가되고 있다.
해안의 공업단지와 내륙의 주택단지의 중간 지대에는 구릉성 저산지가 분포하고 있다. 주택지구가 구릉성 산지의 북쪽에 입지한 것은 남부 해안 지역의 공업지대에서 방출되는 오염물질이 북쪽의 주택지로 흘러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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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안 산 김 씨 원문보기 글쓴이: 희망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