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찬송가공회에서 발간한 찬송가로 바꾸어 예배를 드리고 있다. 찬송가를 새로 구입한 것 까지는 좋은데 가사가 마음에 걸린다. 영감있는 사람들이 모여 새로 발간한 것이니까 순종하여야 하겠지만 예전 찬송가의 가사 중 한 두 글자만 고쳐 부른 찬송가도 있어 조금 실망이다.
대부분의 곡들도 뜻은 거의 같은데 문구만 고친 것이다. 용어를 현대식으로 고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영어 찬송가를 구입하여 비교해 보았더니 영어 찬송가는 옛날 제임스왕 버젼에 나오는 성경 단어들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니까 찬송가는 굳이 가사를 바꿀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우리가 옛 가곡을 부르면서 가사가 구식이라고 현대식으로 바꾸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런데 번역가사를 굳이 새로운 문장표현식으로 맞출 필요가 어디 있는가. *번역곡만은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게 고쳐 나가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종전의 찬송가도 영어원문을 직역하지 아니한 것이 많은데 새로 나온 찬송가는 종전 찬송가처럼 의역을 하면서도 용어만 조금씩 다르게 한 것이 많다고 느껴졌다.
이는 저작권법에서 볼 때는 일종의 표절이다. *다만 저작권은 찬송가공회에 있으니 법적으로 표절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이 다니던 장로교 합동측에서는 과거 합동찬송가를 사용하였는데 교단이 다른 교회로 옮겼을 때인가 몰라도 새찬송가를 사용하게 되었다.
당시 시골에서는 찬송가 구입이 어려웠기 때문에 다른 찬송가와 같이 사용하였다.
지금은 경제적 이유로 종전 찬송가를 같이 쓸 이유는 줄어들었는데 새로 나온 찬송가는 장마다 종전 찬송가 장을 표시하여 놓고 있다.
합동찬송가를 좋아하시던 내 아버지께서 합동찬송가의 가사가 휠씬 은혜스러운데 왜 새로운 찬송가가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찬송가 역사를 찾아 보니 합동찬송가는 1948년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에서 합동으로 발간하였는데 장로교 일부 교단에서 합동찬송가 대신 1935년에 발간된 신편찬송가를 사용하였고 신편찬송가는 다시 1962년 새찬송가로 개편되었고 합동찬송가도 다시 1967년에 개편찬송가로 다시 발간하였고 1983년에 찬송가를 발간하여 사용하여 왔다.
이번에 나온 새찬송가는 한국찬송가공회에서 발간한 것인데 찬송가공회는 법인설립과정과 찬송가 배포선 선정과정을 둘러싸고 다소간의 다툼이 있다고 들었다.
다툼의 여부가 문제가 아니라 왜 찬송가를 이렇게 자주 바꾸고 여러 교파가 서로 다른 입장들을 보이는지 걱정이다.
찬송은 곡조있는 기도라고 하며 찬송을 외워서 부르면 참으로 은혜가 된다.
전에 유명한 성악가(교회를 다니고 권사님이라는 것 같았다)가 샤론의 꽃 예수를 부르면서 악보를 보고 부르는 것을 보면서 참 은혜가 되지 못했던 기억도 난다.
아무튼 은혜스러운 찬송가 몇곡은 가사를 외우고 힘든 상황에서 부를 수 있어야 하는데 저렇게 자꾸 가사를 바꾸면 어쩌란 말인가.
그리고 공중예배에서 서로 다른 가사로 찬송을 부르는 것은 과도기적이라도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가사인데 가사를 바꾼 것은 아마 음악 전공자가 아니고 목사님들이나 신학자들이나 국문학을 하신 분들일 것이다. 새로 나온 곡들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면 그런 곡들을 추가하는 선에서 그쳐도 될텐데 굳이 기존 곡의 가사를 고친 이유가 궁금하다. *새로 많은 곡들을 추가하는 등 찬송가를 새로 발간할 필요가 있고 기왕에 발간한 찬송가는 발간비라도 확보를 하여야 하기에 약간의 고려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찬송가 편집위원으로서의 명예심에서 그렇게 다른 내용으로 바꾼 것은 아닌지도 궁금하다. 이런 억측을 하게 되는 까닭은 우리 아이들이 사용하는 국정교과서에서도 비슷한 일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수학교과서를 보면 우리 학교 다닐 때와 판이하게 다름을 알 수 있는데 수준이 무척 높아졌다.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수학 강국도 아니다. 과거에는 문교부 편수관이란 사람들이 교과서를 집필하였는데 학교 교사들이 자신들의 참여를 주장하였다. 내 아버지도 초등학교 교장이셨지만 초등학교 교사들 중에는 승진이 어렵고 또 사회적 대우가 낮다는 것 등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아이들 가르치는 것 못지 않게 자기계발에도 시간과 경비를 쓰는데 대개 교육대학원에 진학을 한다. 내친 김에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초등교사들이 많다. 그 분들은 학위를 땄지만 중등학교로 옮기거나 하기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배운 지식을 활용하고 싶어하고 결국 교과서 편집에 끼어들려고 한 것이다. 문교부도 좋은 생각이라 싶어 그 분들을 편수업무에 동원하였는데 그 결과로 나온 것이 대폭 까다로워진 수준 높은 교과서이다. 내가 언젠가 초등학교 아이 질문을 받고 수학을 가르치려고 하니 대략 난감이었다. 명색이 대학원까지 나온 내가 초등수학을 제대로 못 가르치다니 참 망신이었다. 그런데 시골에 소재한 초등학교 교사들, 그것도 정년이 65세이던 시절 나이 드신 노교사들이 개정된 교과서를 어떻게 가르치나 알아 보았더니 방학때를 이용하여 연수를 실시한다고 한다. 교육부 실무자 이야기가 연수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교사들은 새로 나온 교과서를 가르치는데 많은 애로를 느낀다는 것이고 자기가 생각해도 우리 초등학교 교과서 수준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다. 결국 박사학위를 가진 일부 초등학교 편수교사들이 자신들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려다 보니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교과서를 만들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야기가 곁으로 빠졌는데 찬송가 가사에 대하여 구체적인 사례를 하나 들어 본다.
"살아계신 주" 찬양곡이 새로 나온 찬송가에 추가되었는데 이 역시 가사가 많이 달라졌다. 종전에 경배와 찬양 악보에 실린 가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1. 주 하나님 독생자 예수 날 위하여 오시었네 내 모든 죄 다 사하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나의 구세주 2. 주 안에서 거듭난 생명 도우시는 주의 사랑 참 기쁨과 확신 가지고 예수님의 도우심을 믿으며 살리 3. 그 언젠가 주 뵐 때까지 주를 위해 싸우리라 승리의 길 멀고 험해도 주님께서 나의 앞길 지켜 주시리
(후렴)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 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영어 원문은 다음과 같다.
1. God sent His Son, they called Him Jesus, He came to love, heal and forgive; He lived and died to buy my pardon, an empty grave is there to prove my Savior lives. 2. How sweet to hold a new born baby, And feel the pride and joy he gives; But greater still the calm assurance, This child can face uncertain days because He lives. 3. And then one day I`ll cross the river, I`ll fight life`s final war with pain; And then as death gives to victory, I`ll see the lights of glory and I`ll know He lives.
(burden) Because He lives I can face tomorrow, Because He lives all fear is gone; Because I know He holds the future. And life is worth the living just because He lives.
새로 나온 찬송가에서는 가사가 다음과 같이 바뀌었다.
1.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날 위하여 오시었네 내 모든 죄 사하시려고 십자가 지셨으나 다시 사셨네 2. 주 안에서 거듭난 우리 기뻐하며 찬양하리 가슴 속에 넘치는 확신 우리의 가는 길에 소망넘치네 3. 선한 싸움 다 마친 후에 우리 주님 뵈오리라 사망권세 다 물리치고 주님이 다스리니 영광넘치네
(후렴)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두려움이 사라지네 사랑의 주 내 갈 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살아 계신 주 찬양곡이 우리에게 선을 뵌지 상당히 오래 되었고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곡이다.
그리고 원문과 비교할 때 의역을 하였지만 은혜스럽기는 원문 못지 않다.
그럼에도 굳이 바꿀 필요가 있었을까.
바꾼 가사도 의역한 부분이 많은데 그 부분은 종전 가사와 비슷하고 용어와 어순만 다르게 한 구절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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