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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학년도 석사학위논문
존 웨슬리의 죄 이해 - 죄 이해 변화과정의 역사적 고찰을 중심으로 감리교신학대학교대학원 역사신학전공 김 민 석 존 웨슬리의 죄 이해 - 죄 이해 변화과정의 역사적 고찰을 중심으로 (John Wesley's Doctrine of Sin) 지도 교수 김홍기 이 논문을 석사 학위 논문으로 제출함 2000년 12월 감리교신학대학 대학원 역사신학전공 김민석 김민석의 석사 학위 논문을 인준함 주심 김 홍 기 부심 김 진 두 부심 임 승 안 감리교 신학 대학 대학원 2000년 12월 11일 감사의 글 ‘시간이 조금 더 있었으면’, ‘논문에만 집중할 수 있었으면’이라는 아쉬움은 모든 논문을 쓰는 사람들에게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음으로 양으로 이끌어 주셨기에 논문을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기억에 남는 것은 제가 신학 대학을 입학하기 바로 전에 평범하지만 진정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셨던 제가 존경하는 이순복 권사님께서 제 손에 쥐어주신 한 분의 추도 예배 순서지입니다. 자신에게 세례를 베풀어주신 목사님이고 그 분을 통해서 주님을 만났고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배웠다면서 저에게 그 분과 같은 목회자가 되라고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 목사님은 바로 변홍규 감독님이셨습니다. 대학원에 와서야 변홍규 감독님이 어떤 분인지 알았습니다. 권사님, 하늘나라에서도 부족한 제가 진정한 주님의 제자가 그리고 제 2의 변홍규 감독님과 같은 참된 목회자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어머니 감사드립니다. 어머니의 기도와 눈물과 피와 땀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장남에게 요구할 것도 많으실 터인데, 그 많은 것들을 가슴에 묻어두시고 늘 희생하시고 기도하시며 사셨습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할머니 자주 찾아 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장손으로서 할머님께 해야될 일이 많음에도, 하지 못하고 있는 못난 손자를 위해 늘 무릎으로 기도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아버님 감사드립니다. 아버님으로 인해 지금에 제가 있게 되었습니다. 아버님께서 못 이룬 꿈을 이루도록 하겠습니다. 보라야! 오빠가 오빠 노릇도 제대로 못하고 미안하구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앞길을 개척하는 너의 모습이 너무나도 자랑스럽다. 김홍기 교수님 감사드립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대학원 생활 자체를 이끌어 주셨던 것 같습니다. 처음 저를 이끌고 역사학회로 직접 인도해주셨고 학문함의 방법론을 엄격하게 적용할 것을 지도해주셨으며, 직접 전화 주셔서 조교로 써 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교수님의 책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심 감사드립니다. 또한 논문을 지도해 주심에 있어서 바쁘신 와중에도 논문을 빨리 쓰도록 재촉하시고 쓴 부분을 미리 읽고 세심하게 지도해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김진두 교수님 감사드립니다. 학부 때부터 귀중한 자료들을 볼 수 있도록 배려 해주셨고 논문을 지도하심에 있어서 제 논문의 부족한 점들을 정확하게 집어주시고 보완해 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임승안 교수님 감사드립니다. 학부 마지막 학년에 발제를 위해 밤을 세워가며 교수님의 학위논문을 읽고 연구했던 기억이 납니다. 교수님의 학위논문을 접함으로서 제 학위논문의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김홍기 교수님, 임승안 교수님, 김진두 교수님! 교수님들의 자상하신 지도가 없었다면 결코 이 논문을 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선한용 교수님 감사드립니다. 학부에서 많은 강의를 교수님으로부터 들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어떠한 방식으로 공부하고 목회하셨는지 수업시간을 통해 많이 들었습니다. 그 수업시간들은 저에게 참 공부였습니다. 학문함에 있어서 모델이 되어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오래 사셔서 후학들에게 산 체험과 지혜를 전해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최이우 목사님, 황인득 사모님 감사합니다. 항상 자상하게 공부는 잘하고 있는지 사역하는데 어려움은 없는지 심지어 식사는 제 때 했는지 물어보시며 세심하게 돌보아 주셨습니다. 새로운 사역지와 환경 속에서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항상 자상하게 살펴주셨습니다. 또한 목회의 모델이 되어주시고 스승이 되어주고 계십니다. 감사드립니다. 전혜진 전도사님, 전재희 장로님 두 분의 보살핌이 없었다면 저희 가정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최조영 목사님, 박명희 사모님 자주 찾아 뵙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자식처럼 아껴주시고 늘 기도해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전치호 목사님, 정기순 사모님 감사드립니다. 항상 관심 가져주시고 아껴주시며 많은 사랑 주심 감사드립니다. 받은 사랑 전하며 살겠습니다. 김영헌 목사님, 나영옥 사모님 감사드립니다. 제가 가장 방황하고 있었던 시기에 목회에 대한 비전에 대해 어렴풋이라도 깨닫도록 해 주셨고 돌보아 주셨습니다. 작년에 건강이 그리 좋지 않으신 모습을 보았을 때 마음이 아팠습니다. 목사님! 항상 건강한 모습으로 힘있는 목회를 하셔서 후배들에게 힘과 용기가 되어주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이은재 목사님 감사합니다. 목사님을 알게 된지 일년 육개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항상 친형처럼 친구처럼 여러 가지 일들을 세심하게 돌보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올 해 초부터 같이 사역을 하게 되어 저에게 많은 위안과 힘이 되었습니다. 저도 후배들에게 본을 보이고 사랑을 나누어주는 선배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올 한해 동고 동락한 교육부 식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웅식이형, 경희 선배, 정민이와 영석이! 논문 쓴답시고 같이 하는 일들에 대해 소홀했던 적이 있었지만 불평 한마디 안하고 참고 견디어 주었습니다. 감신에 와서 가장 큰 소득이 있다면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들을 얻었다는 사실입니다. 심은수, 결혼 축하한다. 설마 결혼했다고 우리의 우정이 변하지는 않겠지! 노혜민 왜 성공회 대학원으로 갔냐? 너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던지 너는 나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 중에 하나야! 이외에도 감사해야할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은석이형, 지겸이형, 경호형, 은표형, 재명이형, 철이형, 영래형, 대흥이형, 승래형, 창원이형, 기문이형, 애성이 누나, 기연이를 비롯한 역사신학회 회원들, 진기, 충근, 호석이를 비롯한 사랑하는 93학번 동기들, 늘 위해서 기도해 주셨던 대한 수도원의 가양제단 식구들, 바쁜 중에도 논문 교정을 해준 명은이 그리고 논문을 쓰느라 집에 가지 못했을 때 처소를 제공해 주었던 기숙사 207호 식구들 특히 운이, 성진이, 선진이. 저에게 너무나도 소중하고 감사한 사람들입니다.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통해 저의 삶 속에서 당신의 사랑을 느끼도록 해주신 하나님! 당신의 그 크신 사랑과 은혜를 제가 어찌 다 갚아야 할는지요. 당신의 크신 사랑이 있어 저는 너무나도 행복합니다. 2000년 12월 어느 날 이른 새벽에 김 민 석 목 차
Abbreviation
.Ⅰ. 서론 A. 문제제기와 연구목적 기독교의 복음은 인간을 향해 있다. 따라서, 본질상 이 복된 소식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이해, 특히 인간의 실존적인 현실에 대한 이해가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 현실에 대한 기독교의 전통적인 견해는 인간의 자연적 상황을 하나님과 분리되어 악과 타락의 상황 가운데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구원받지 못한 상황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 전통은 이러한 현 상태를 끈질기게 ‘죄’라는 단어로 표현하였다. 기독교는 인간을 죄인이라고 부른다. 이 표현만큼 인간의 현 상황을 비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말은 드물다. 이와 같은 이유로 죄와 악에 관한 교리는 기독교 교리 속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삼위일체와 기독론에 포함된 구원론에 비해서 죄에 대한 교리는 긍정적으로 언급된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구원론은 인간의 현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악과 죄에 대한 책임을 확실하게 포함한다. 앞에서 살펴 본 것처럼 구원론과 죄의 개념 사이에는 조직적인 관계가 있다. 따라서 어느 개념도 다른 개념과 완전히 분리되어 공식화 될 수 없다.1) 구원론과 악과 죄의 문제는 빛과 어둠,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이다. 따라서 죄에 대한 이해의 차이가 구원론의 차이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과언은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 구원 이해에 있어서 죄에 대한 이해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죄와 악의 문제가 성서 속에서 다양하게 표현되고 다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구약성서나 신약성서는 악과 죄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성서는 죄에 대한 정의보다는 죄의 극복과 치유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2)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과 죄의 문제에 있어서 그것들이 가지는 불순종으로 인한 하나님과의 관계성의 상실이자 신성한 형상에 대한 모독으로서의 본질적 특성이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어거스틴과 종교 개혁가들을 위시한 서방 전통의 신학은 인간이 완전한 상태로 창조되었는데,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 인간의 타락이 오고 자기 결정의 손실이 왔다고 보았다. 그리고 모든 인간에게 이러한 원죄의 죄책이 유전된다고 보았다. 타락의 상태는 보편적이기에 서방 전통의 신학은 하나님의 은총과 분리되어진 죄책과 타락한 인간의 무능력함을 강조하면서 기본적으로 타락에 근거한 인간이해를 하고 있다.3) 인간이 완전한 상태로 창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게 불순종함으로서 죄를 지었다. 인간은 법정적인 의미에서 하나님께 범죄했다. 따라서 범죄한 인간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범죄에 대한 용서이다. 그러나 서방 기독교는 이 점만을 너무 강조하였기에 서방 신학적인 전통에서 구원은 칭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서방 전통의 신학과는 다르게 동방 신학적 전통의 인간학은 인간의 원창조의 상태를 불완전하지만 순결하며 동시에 하나님과의 연합으로 운명지어졌다고 보았다. 타락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고자 한 인간의 행위에 대한 결과에 기인했다고 보는 점에 있어서 동방 신학적 전통은 서방 신학적 전통과 그 견해를 같이하지만, 타락의 결과는 다르게 이해했다. 그들은 죄의 유전성을 거부했다. 그리고 타락의 우선적 결과가 죽음과 인간 삶의 타락이지만, 타락 후에도 인간에게 응답 가능성이 자연적으로 남아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죄와 타락의 결과를 일종의 치유되어야할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이러한 동방 신학 전통의 죄 이해의 경향의 원인은 원창조시의 인간을 불완전한 존재로 보았기 때문이며, 동방 신학적 전통의 관심은 은총이나 죄보다는 창조와 기독론에 더욱 치중하여 자신들의 인간 이해를 전개시켰기 때문이다.4)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죄의 치유와 신화(Likeness of God)의 추구였다. 이렇게 서방과 동방의 인간과 죄에 대한 다른 이해는 구원론의 논의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를 야기했다. 현대에 와서 죄와 속죄에 대한 논의는 법정적인 개념과 치유적인 개념의 조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논의는 전통적으로 법정적인 개념을 강조한 서방 기독교 신학적 전통과 치유적인 개념을 강조한 동방 기독교적인 전통에 대한 통찰에 기인하고 있다. 그런데 단지 한 측면만을 극단적으로 강조할 때에는 문제가 발생한다. 법정적인 면만을 강조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칭함을 받은 후 인간 실존의 문제인 인간의 죄의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그와는 반대로 치유적인 면만을 강조한다면, 인간의 실존의 문제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해결책을 줄 수 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성에 많은 문제를 초래하게 된다. 그러하기에 죄와 속죄의 법정적인 면과 치유적인 면의 조화는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웨슬리는 죄와 속죄의 법정적 특성과 치유적 특성의 조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었다. 그는 인간 본성과 인간 문제에서 동방 신학의 전통의 치유적인 관심사에 우선성을 두고, 근원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서방의 법정적인 이해를 통합하고자 노력하였다.5) 이러한 노력이 가능했던 이유는 웨슬리가 신학과 삶, 목회에 있어서 끊임없이 은총과 기독자의 삶의 문제의 관계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웨슬리에게 있어서 인간 현실이해인 죄에 대한 이해와 죄의 문제의 해결은 그가 평생을 걸쳐 고민했던 문제였다. 그리고 그러한 고민의 결과로 보다 세밀한 구원론의 형성이 가능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대부분의 학자들은 웨슬리의 죄 이해를 자신의 연구의 기초 자료로서 연구했을 뿐이며 그리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단지 브라이언트(Barry E. Bryant)만이 자신의 학위논문으로 죄의 문제에 집중하여『죄에 대한 웨슬리의 교리』(John Wesley's Doctrine of Sin)6)를 썼다. 그러나 그의 책은 출판되지 않았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까지의 웨슬리의 죄 이해에 관한 연구의 결과물들은 거의 모두가 한 책의 소주제였다. 그리고 그들의 연구 결과물 대부분은 웨슬리의 삶과 신학의 여정 속에서 고찰되어 진 것들이라기 보다는 어떤 특정 시대의 특정한 작품 속에서 저자들이 자신들의 견해에 대한 증빙자료서 첨부하였다. 와일리와 컬버슨(Wiley & Culbertson)은『기독교 신학 입문』(Introduction to Christian Theology)에서 유전의 방법에 있어서 웨슬리가 생물학적인 전이에 의한 ‘유전학적 모드(Genetic Mode)’를 따르고 있다7)고 결론을 내리고 있는데 이것은 깊은 역사적 성찰이 부족한 결론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원죄가 어떻게 유전되는가?에 대한 웨슬리의 견해가 시기에 따라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결론이기 때문이다. 원죄의 유전 방법에 있어서 웨슬리는 생물학적 유전설에서 영혼 창조설적인 견해로 그리고 말년에는 영혼 전이론적인 견해로 바뀌어 가고 있다. 생스터(W. E. Sangster)가『완전에 이르는 길』(The Path to Perfection)에서 웨슬리의 완전 개념을 설명하기 전에 웨슬리의 죄에 대한 개념을 설명하고는 있지만 웨슬리의 1차 자료에 대한 깊은 조사 없이 너무 피상적으로 웨슬리의 죄 이해를 설명하고 있다. 특히 웨슬리가 죄악성에 대한 규정을 하지 않고 단지 자발적인 위반으로서의 죄에 대한 정의만을 시도하였다고 본 점과 웨슬리가 무의식적인 죄(unconscious sin)를 거부하고 있다고 본 사실8)에서 이 점은 잘 드러난다. 웨슬리는 분명히 죄에 대한 복잡한 논의를 한다. 당시 웨슬리가 이러한 죄에 대한 복잡한 논의를 한 이유는 그의 부흥운동을 위협하였던 칼빈주의적인 율법폐기론자들과 웨슬리의 신도회 내의 인물이었던 토마스 멕스필드(Thomas Maxfield)와 조지 벨(George Bell)의 극단적인 열광주의를 경계하기 위해서였다. 웨슬리는 무의식적인 죄(unconscious sin)인 무의지적 죄(unvoluntary sin)조차도 그리스도의 속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콕스(Leo G. Cox)는『완전에 대한 웨슬리의 개념』(John Wesley's Concept of Perfection)에서 비교적 웨슬리의 죄 이해를 명확하게 분석하고 있지만 그 역시 역사적인 상황과의 대화가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카터(Charles W. Carter)는 자신이 편집한『현대 웨슬리 신학Ⅰ』(A Contemporary Wesleyan Theology, volⅠ)에서 죄론을 썼다. 그는 웨슬리의 상황에 대한 역사적인 고찰 없이 조직신학적인 입장에서 웨슬리의 죄론에서 원죄에 대한 이해는 다루었지만 웨슬리가 이해한 죄의 특성과 죄의 종류 및 구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9) 매덕스(Maddox) 또한『응답 가능한 은총』(Responsible Grace)에서 웨슬리의 죄 이해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과 문제점을 제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연구성과는 아니다.10) 따라서 본 논문에서 필자는 철저한 역사적 상황과의 대화를 통해서 웨슬리의 죄 이해가 어떠한 변화를 겪고 있는지를 살핀 후에 웨슬리의 복잡하고 세밀한 죄 이해에 대한 분석을 할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웨슬리가 어떠한 인간 이해의 바탕 속에서 그의 구원론을 이끌어 냈는지에 대한 고찰을 수행할 것이다. 이 작업은 구원 이해의 필수조건인 죄 이해를 웨슬리가 어떠한 과정 속에서 정립하였는지를 고찰함으로서 보다 분명한 웨슬리의 구원론의 특징, 즉 은총과 죄의 관계를 보다 분명히 알게 할 것이다. B. 연구 방법과 범위 및 구조 웨슬리에 대해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이들과 과거 일부의 학자들은 ‘웨슬리는 신학자가 아니라 설교가이며 부흥운동가이다’라는 견해에 대해서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과거에 웨슬리를 연구하던 일부의 학자들은 ‘그는 참(real) 신학자가 아니었기에 그렇다’라는 변증적인 논조로 그의 신학적 개념들을 연구하곤 했다. 그러나, 웨슬리는 분명 당대에 신학에 있어서 가장 잘 훈련된 사람 중에 하나였다. 그는 옥스퍼드의 장학생이었고, 오늘날에 신학 석사(Master of Divinity) 학위에 해당하는 신학 학사 학위(Bachelor of Divinity degree)를 받았으며, 약관 24세의 나이에 옥스퍼드 대학교의 링컨 대학의 연구원(Fellow)이 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웨슬리는 평생을 정숙주의 경향의 모라비안, 율법폐기론적 경향의 칼빈주의자들과 극단적 열광주의자들과 논쟁을 했다는 것에 주의를 해야만 한다. 확고한 신학적 기초가 없었더라면 웨슬리는 이 모든 것을 수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확실히 웨슬리는 현장과의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그리고 그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에 충실한 신학자요 복음전도자였다. 따라서, 웨슬리의 신학이 엄청난 역동성을 가진다는 것은 분명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 개인의 신학적인 사유는 일종의 성장하는 유기체와 같다. 어떠한 환경 속에서 어떤 영향을 받으며 자라났는지가 그 유기체를 이해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듯이, 한 개인의 신학적인 사유를 온전하게 고찰하기 위해서는 그 신학적 사유의 성립의 동인이 무엇인가? 라는 역사적인 고찰이 동시에 수행되어져야만 한다. 그리고 그러한 역사적인 상황과 그 상황 속에서의 결과물인 작품(Text)을 통해 보다 쉽게 그 인물과 그의 사상에 접근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역사적 고찰을 통한 보다 정확하고 분명한 접근은 지금의 현 상황에 그 연구 결과물의 적용을 용이하게 한다. 따라서, 이런 기본적인 입장에서 필자는 웨슬리의 죄에 대한 논의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그러나, 인간의 죄에 대한 웨슬리의 논의들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다양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에 그의 일차자료를 통한 죄 문제에 대한 접근은 다음과 같은 요소들에 주의를 하면서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그 논의가 웨슬리의 신학적인 발전 과정의 어떠한 시기에 대두되었는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두 번째는 논의의 근거를 고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속죄에 대한 그의 법정적인 관심과 치유적인 관심의 통합으로부터 발생하는 긴장 관계들을 고려해야 한다.11) 이런 전제들을 염두에 두고 필자는 죄 이해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전통적인 죄 이해들을 분석할 것이다. 다음으로 웨슬리가 그에게 영향을 준 전통들을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종합했으며 성서를 해석하고 자신의 논지를 전개했는지를 역사적 상황과 그의 작품들의 상관관계를 통해서 고찰할 것이다. 따라서, 이 연구의 수행을 위해 전통적인 죄 이해들을 살펴보고, 각 시기별로 웨슬리의 설교와 논문, 편지, 에세이 그리고 성서주해를 역사적인 상황과 함께 비교 분석할 것이다. 이러한 비교 분석 후에 웨슬리의 죄에 대한 최종적인 이해를 고찰할 것이다. 그리고, 이 결과물을 가지고 웨슬리의 죄 이해가 그의 신학에서 점하는 위치로서 죄로부터의 승리를 위해 어떠한 논의와 목회적인 실천을 하고 있는가를 살펴 볼 것이다. 끝으로, 웨슬리의 인간 현실과 문제에 대한 논의가 그의 신학과 삶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숙고함으로서 본 논문을 마칠 것이다. 이러한 목적 하에서 본 논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 부분은 웨슬리의 죄 이해에 대한 역사적인 고찰 부분이다. 두 번째 부분은 앞부분에서 한 역사적 고찰을 근거로 웨슬리의 죄에 대한 논의와 죄라는 인간 현실문제를 그가 어떠한 구원이해로 풀어가고 있는지 살펴 볼 것이다. 첫 번째 역사적 고찰에 해당하는 부분은 Ⅱ장과 Ⅲ장이다. Ⅱ장은 전통적인 죄 이해가 논의될 것이다. 웨슬리는 영국 국교회의 사제이자 신약학자였다. 따라서 당시 웨슬리의 삶의 자리였던 영국 국교회의 전통과 신약성서의 죄 이해가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즉 성서의 죄 이해와 영국 국교회의 죄 이해가 웨슬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다른 전통들, 즉 동방 교부, 서방 교부, 로마 카톨릭, 종교 개혁의 죄 이해에 대한 고찰 후에 각각의 전통들과 웨슬리의 죄 이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 보고자 한다. Ⅲ장에서는 웨슬리의 죄 이해의 변화과정에 대하여 역사적인 고찰을 할 것이다. 웨슬리는 목회적이고 실천적인 관점에서 평생을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과 그 열매인 ‘거룩한 삶’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를 고민하였다. 그러므로 우선적으로 죄 이해 변화에 대한 3기의 시기 구분에 대한 역사적 근거를 고찰한 후에 ‘거룩한 삶’ 중심의 초기 웨슬리의 죄 이해를 살펴 볼 것이다. 그리고 나서 루터 전통의 모라비안과의 만남을 통해 접하게 된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에 대한 강한 충격 속에 있었던 중기 웨슬리가 어떻게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과 ‘거룩한 삶’의 긴장관계인 신자 안에 남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는가를 살펴 볼 것이다. 신자 안에 남은 죄의 문제는 중기 웨슬리가 모라비안의 정숙주의와 칼빈주의자들의 율법폐기론적 경향, 그리고 웨슬리 신도회 내부의 극단적 열광주의자들과 어떻게 논쟁했는지를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후기의 웨슬리는 인간 현실의 제반 문제인 죄의 문제를 통찰력 깊은 은총 이해를 통해 해결하고 있다. 따라서 그가 어떠한 방식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지 고찰할 것이다. 두 번째 부분은 Ⅳ장과 Ⅴ장으로서 일종의 조직신학적인 접근이다. 앞 부분에서 논의되어진 역사적 고찰을 근거로 Ⅳ장에서는 먼저 웨슬리가 죄의 문제를 논의할 때 악의 기원에 대해 어떠한 이해를 가지고 있으며 원죄에 대해서는 어떻게 강조하였고 원죄 이해에 있어서 그 만의 독특성이 무엇인지 살펴 볼 것이다. 두 번째로는 웨슬리가 자신의 실천적이고 목회적인 상황 속에서 죄 이해와 죄에 대한 구분을 어떻게 시도했는지 살펴 볼 것이다. 웨슬리는 상당히 복잡하고 중첩되는 죄 이해를 했다. 그리고 그의 죄의 구분은 독특한 부분으로서 죄의 구분에 있어서 웨슬리와 종교 개혁의 죄 이해와의 차이는 현실 세상에서의 완전에 대한 논의에 대한 서로 다른 결론을 가능하게 한다. 마지막으로는 죄와 자유의지, 그리고 은총이 어떠한 역동적 관계에 있는지를 살펴 볼 것이다. Ⅴ장은 웨슬리의 죄 이해를 기반으로 그의 독특한 구원 이해를 살펴 볼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반드시 인간 현실의 제반 문제들과의 상관관계 속에서 웨슬리의 구원론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본 장에서는 그의 죄와 은총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선재적 은총, 확신케 하는 은총, 의인화의 은총, 거듭남의 은총, 성화의 은총, 온전한 성화의 은총, 그리고 영화의 은총이 어떻게 인간 현실에서 작용하는지를 고찰할 것이다. 즉 웨슬리가 인간 현실로서의 죄 이해와 그와 관련된 은총 이해 속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보다 세밀한 구원 이해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A. 성서의 죄 이해 악과 죄의 문제는 성서에서 매우 다양하게 표현되고 다루어진다. 성서는 악 일반과 도덕적인 악과 같은 죄에 대해서 분명한 정의를 내리지 않고 있다. 성서는 죄에 대한 정의보다 죄의 극복과 치유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성서 속에서 죄에 대한 개념은 발전과정을 겪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구약성서로부터 발전한 죄의 개념이 신약성서에서는 어떠한 방식으로 확정되었는지를 살펴보아야 성서의 죄에 대한 이해를 바르게 할 수 있다. 구약성서에서 죄 이해의 발전 단계는 다음과 같다. 우선 구약성서에서 죄는 내적인 형태가 아닌 외적인 형태로 인간에게 다가왔다.(불순종; 창 3장) 즉 하나의 행동으로 취급되었다.12) 우리의 첫 부모의 죄가 확실히 외적이 되기 전에 내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행위가 공개 될 때까지 벌을 받지는 않았다. 확실히 죄는 법이나 행동 강령을 어기는 것으로 보여졌다. 히브리적 개념은 우선적으로 죄를 잘못의 공개 행위로 규정한다. 이것은 특히 죄를 의미하는 단어 “Päscha(반항)”와 죄를 의미하는 다른 빈번한 개념들인 “Chet(위반, 형식적인 죄, 계율 위반)”와 “Avon(범죄, 특히 옳지 않은 마음가짐에서부터 생기는 벌받을 죄)”에서 잘 표현되고 있다.13) 하나의 행위로서 죄의 객관적인 관점은 레위기 법전 속에서도 보여진다. 무지의 죄들조차 율법과 대치되는 행동인 한에서는 죄(레 4:13,14)가 되었다. 비록 그것들이 무지의 죄들이라고 할지라도 그것들은 여전히 죄악이며, 용서를 필요로 한다. 특히 레 5장 17절14)에서 드러나는 죄의 개념은 죄의 윤리적인 개념이 결여되어 지극히 법률적이고 형식적이다. 여기의 중심 개념은 자유 의지가 아닌 하나의 법률이다. 두 번째로 신명기 법전은 외적인 행위들 속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내적인 죄들의 개념이 매우 서서히 발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명기 법전은 단지 자기의 의지로 살인을 한 자만이 죄책을 지게 하였다. 의지에 대한 강조로 동기는 행동과 분리되었다. 그리고 내적 죄의 개념을 가장 잘 나타내주고 있는 것이 바로 십계명이다. 십계명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내적 죄에 대한 개념을 통해서 마음의 타락을 역설했던 예레미아와 에스겔과 같은 사람들의 증언들(렘 17:9)의 토대를 가르치셨고 마련하셨다.15) 세 번째의 죄의 발전 단계로서의 계약의 개념은 죄의 개념의 또 다른 발전이었다. 하나님과의 계약적 약속들은 모두 인간의 순종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었다.(민 5:30-31) 계약의 개념 속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율법에 있다기보다는 인격적인 관계 속에 있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과의 계약관계 속에 있고 죄는 계약의 파기이다. 하나님 혹은 계약 공동체의 다른 사람들에게 범한 죄는 모두 윤리적으로 책임져야 할만한 행동들이다. 사회적 죄와 종교적인 죄 모두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다. 한 인격으로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계약에 근거한 것이다. 죄는 율법을 범하는 것 이상의 것으로 그 법을 수여한 분으로부터 떨어져나감을 의미한다. 또한 죄의 윤리적인 개념은 구약성서에서 지배적이다.(잠 4:23) 개인적 책임성과 마음의 동기가 강조되었기에 외적으로는 율법을 지킬 때에조차도 죄를 지을 수 있다. 네 번째의 발전 단계로 죄악된 본성의 개념들로서의 죄가 구약성서에서 나타나고 있다. 시편기자는 “실로, 나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죄인이었고, 어머니의 태 속에 있을 때부터 죄인이었습니다”(시 51편 5절)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것은 죄를 외적 죄를 야기하는 내적 원칙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창조 시에 부여받은 하나님의 형상의 상실 혹은 손상과 관련이 있다. 구약성서에서 나타나는 죄의 몇 가지 특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죄는 보편적이다.16) 두 번째 특징으로 죄는 항상 하나님과의 연합을 파괴한다.17) 세 번째로 죄는 희망이 없는 상태로 인간을 몰고 간다.18) 네 번째 특징으로 죄는 인간의 인간성(humanity)과 육체에 내재적인 것이 아니다. 인간의 유한성이 죄는 아니다.19) 구약의 죄의 개념은 비록 꾸준하지는 않지만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신약성서는 구약의 죄의 개념들을 보완하고 있다. 신약성서에서도 죄는 불순종으로 파악되었다.(롬 5,9) 이러한 불순종은 단지 하나님의 공의와 율법에 대적하는 것만이 아니고 그것을 넘어서 하나님에게 직접 대적하는 것이다.20) 신약성서에 죄에 대해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는 하마르티아(ἁμαρτια)와 아노미아(ἀυομία)이다.21) 하마르티아(ἁμαρτια)는 신약성서 특히 로마서, 히브리서, 요한 서신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죄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 단어가 신약 성서에서 사용되어지는 몇 가지 용법 가운데 하나는 “행위로서의 죄가 아닌 죄의 특성으로 고려되어지는 죄”로서의 악의 원칙이다. 아노미아는 죄악행위(iniquity)를 의미한다. 기본적으로 아노미아는 의지적이든 무지로부터 기인했던지 간에 무법(lawlessness)을 의미한다. 롬 6장 19절에서 아노미아는 “의(δικαιοσύνη)”와 “성결(ἁϒιασμόν)”의 반대어이다. 이 두 단어들(하마르티아와 아노미아)로부터 죄에 대한 두 가지 이론이 나온다. 하나는 죄에 대해 웨슬리가 선호하는 정의인 “알려진 율법에 대한 의지적인 위반”(ἀυομία)이고 다른 하나는 칼빈이 선호하는 “하나님의 완전 법에 비추어 보았을 때의 결점”(ἁμαρτια)으로서의 죄 이해이다.22) 신약성서의 다양성으로 인해서 실제적으로 신약성서에서의 이 용어들은 그리 엄격하게 사용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그 사용에 있어서 매우 다양하고 유동적이다. 예수는 마음의 태도를 강조했다.(마5:8) 그는 바리새인보다 세리와 창녀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마21:31) 죄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죄에 대한 법적 개념의 확실성이 구약성서에서 분명히 드러난다면, 신약은 그것들을 복음의 정신에서 해석한다. 요한 복음 4장 17절에서 태만의 죄는 악한 의도가 없으면 악이 아니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며 요한 복음 9장 41절에서도 바리세인의 죄는 그들의 자랑과 비례하여 선언되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책임성이 없는 죄는 없다. 그런 까닭에 하마르티아에서 기인한 무지는 용서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의지적인 태만은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다.(히 2:3) 이러한 까닭에 결점과 거리가 먼 생각조차도 정죄를 면할 수 있는 것이다. 완전이 결점으로부터의 자유와 지식의 흠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면 그와 같은 기독자의 완전이란 있을 수 없다. 의지와 책임성과 동떨어진 죄악된 행위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특별히 바울의 저작에는 죄의 구체적인 행동들뿐만 아니라 죄의 원칙으로서의 죄악성에 대한 인식이 있다. 이러한 죄의 보편화는 바울 서신에서 특별히 ‘육욕의 사람(the carnal mind)’, ‘옛 사람(old man)’, ‘죄의 육체(body of sin)’라고 표현된다. 그리고 어거스틴에게 있어서는 ‘유전된 부패성(inherited depravity)’의 개념으로 표현된다.23) 따라서 바울의 언어는 죄와 육체를 동일하게 보며 성결을 본질적으로 육체의 정욕에 대한 정복이라고 보는 관점에 대해서 부분적으로 책임이 있다.24) 신자의 삶 속에서의 죄에 대한 물음은 로마서에서 가장 잘 분석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로마서는 성화에 대한 논의가 중심이다. 1장부터 5장까지 바울은 신앙 의인화를 이야기한다. 6장부터 12장에서 바울은 신자의 성화를 이야기한다. 그 논의는 율법 폐기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시작한다.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여전히 죄 가운데 머물러 있어야 하겠습니까?”(롬 6장1절). 6장과 8장에서 바울은 외적인 죄에 대한 승리를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 외적인 죄에 대한 승리는 기독자의 삶의 궁극적인 목표라기보다는 그 삶에 있어서 가장 작은 부분이다. 세례 예식에 의해서 신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내지고 죄에 대하여 죽게 된다. 그는 믿음으로 영적인 부활이 실현되어 육체적인 부활에 참여하여 살게 된다.(골 3장 1절) 이것은 바울이 기독자는 죄를 짓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을 의미하지도 세례가 죄악성을 파괴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신자들은 죄를 지속할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죄를 지속해서도 안되며 할 필요도 없다.(롬6장 2,3,9,11,14,18) ‘죄악된 육’의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개념의 허용은 지상에서의 완전의 가능성을 무로 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이 이것을 가르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주 롬 7장 18절을 언급한다. “나는 내 속에, 곧 내 육신 속에 선한 것이 깃들어 있지 안다는 것을 압니다.” 악이 육체와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면 그것은 단지 억눌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이 구별적이고 분리되어 진 것이라면, 이 세상에서의 죄로부터의 구원은 가능한 것이다. 바울의 몸에 대한 입장은 중립적이다. 왜냐하면 몸은 선하지는 않지만 필연적으로 악을 따르지도 않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율법에 의해 죄를 알 수 있다고 했다.(롬 3:20; 5:20; 7:7) 이것은 율법 이전에 죄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죄악성은 보편적으로 모든 인간에게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율법을 통해서 인식되어진다. 그러므로 단지 인간이 하나님의 완전함에 부족하기 때문에 죄책을 가진다는 것은 성경에 반하는 주장이며 인간이기에 인간의 모든 행위가 죄악 되다고 말하는 것은 죄의 성서적 개념을 손상시키는 것이다. 인간의 연약성들은 죄가 아니고 성령이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신다.(롬 8:26) 따라서, 인간성을 죄악이 넘치는 것 자체로 말하는 것은 비성서적이다. 바울은 육(σάρξ)을 이따금씩 몸(σομα)과 동의어로 쓰지만25) 일반적으로 바울이 몸을 물리적인 의미보다 도덕적인 의미에서 사용하였다는 것에 주의한다면 이 세상에서 죄로부터의 정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몸은 하나님 영을 거스르는 것으로 표현되어 질 때 윤리적인 의미를 가진다.26) 갈 5장19-23에서 ‘육체의 일’은 ‘성령의 열매’와 반대되는 것이고 물리적인 것보다도 “증오, 시기, 분노, 내분, 분열, 이단, 시기”등과 같은 순전히 도덕적인 몇 가지 범주를 포함한다. ‘다툼과 시기’는 단념해야할 육체의 일들이다.(롬 13:13, 14) 고전 3장 3절에서 바울은 그의 편지의 수신인들을 그들의 ‘시기와 다툼’ 때문에 ‘육적(carnal)’이라고 부른다. 고후 1장 12절에서 세상의 지혜(ἐν σοφία σαρκικῇ)는 ‘하나님의 성결과 신실하심’에 대한 반대어이다. 바울의 어휘 사용의 이러한 용법은 “바울이 죄를 몸과 불가분하게 결합시켰다는 관점에 대한 명백한 반대”27)를 의미한다. 로마서 7장에서 바울은 육(σάρξ)을 마음(νους)과 대조하고 8장에서는 성령과 대조한다. 그러므로 육(σάρξ)은 마음과 성령의 적이다. 이것은 몸이 성령의 전임을 바울의 강조와 더불어 몸은 본능적으로 죄악된 것이 아니라는 부가적인 증거를 제공한다. 이점은 6장에 있는 바울의 갈망에 근거해 있다. 이 갈망은 몸의 각 지체가 죄의 도구로서가 아니라 의의 도구로서 하나님께 복종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점은 롬 12장 1절과 2절에 있는 전인이 살아있는 희생제가 되어야 한다는 그의 권고에서 알 수 있다. 그러한 까닭에 몸은 서로 대립되는 두 가지 세력, 즉 ‘육의 법’과 ‘성령의 법’에 주체가 되는 것으로 중립적인 특성을 가진다.(갈 5:16-25) 다른 한편으로 육(σάρξ)은 태어날 때부터 있는 ‘모든 악의 근원’이며 악의 자리로서 성령을 거스르는 일종의 힘이고 동시에 거듭나지 못한 자의 본성을 의미한다. ‘육의 마음’은 기독자의 삶과 양립되는 것이다.(롬 8: 7, 8) 또한 바울은 죄를 자연적인 몸과 결부시키지 않았다. 따라서 바울의 죄에 대한 개념은 이 세상에서의 죄로부터 구원을 가능하게 한다. 바울의 영육의 이원론은 헬레니즘적이기보다는 히브리적이다. 육에 대한 바울의 용법은 육을 준 인격적(quasi-personal)힘인 악에의 경향성으로 본 유대적인 개념과 유사하다. 이 육은 인간이 끊임없이 싸워야할 ‘필요악’이다. 단지 다른 것이라면 바울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세상에서 이 육이 극복되어질 수 있다고 본 점이다. 그런 까닭에 바울에게 있어서 ‘육’은 죄가 아니라 죄의 통로이다.28) 이 죄의 문제의 해결은 ‘자기 초월’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에로의 도약으로 가능해진다.(엡 2장 8절) 그리스도 안에 믿음을 강조함으로서 바울은 속죄를 통한 정화와 회개를 주장한다. 은총에 의해 기독자가 자만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죄에 대한 승리가 가능하다. 승리는 그리스도 안의 믿음으로부터 온다. 죄의 본질에 대한 바울의 개념은 다음과 같이 요약되어질 수 있다. 첫째, 죄는 낯설고 분리되어질 수 있는 요소로 육에 거한다. 둘째, 이 내적 죄는 의인화되어진 사람에게도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이 내적 죄는 성령이 거주함으로서 인간 본성으로부터 분리되어질 수 있고 분리되어져야 한다.29) 롬 6장 6절 “죄의 몸을 멸하기 위하여서”라는 어구에서 과연 죄는 파괴되어지고 극복되어지는가? 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어진다. 여기에서 카타르게오(καταρϒέω)라는 동사와 ‘죄의 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여기서 쓰인 카타르게테(καταρϒθῇ)의 시제는 3인칭 단수 수동 과거형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죄의 몸을 멸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뜻이다. 여기서 ‘죄의 몸’은 물리적인 의미가 아닌 비유적 의미이다. 즉 개별적인 행동으로서가 아닌 보편적인 원칙으로서 이해되어져야 한다. 죄들이 용서되어질 뿐만 아니라 죄악성이 파괴되어진다. 죄로부터의 구원은 죄책으로부터의 법정적인 구원과 죄의 힘으로부터의 주관적 구원의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처럼, 이 준 인격적(quasi-personal)힘인 악에의 경향성 또한 십자가에 못 박혀지고 파괴되어져서 기독자는 그의 모든 것을 주님께 바치게 될 수 있다. 바울은 개혁과 궁극적인 변화가 없는 용서를 소망하지는 않았다. 성화는 율법폐기주의에 대한 그의 보호장치였다. 죄의 지배력은 성령에 의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기독자의 삶 속에서 소멸되어진다. 이러한 의미에서 ‘죄의 몸’과 관련되어 성화의 과정은 현실 세계에서 완전히 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동사의 시제에 의해서, 전체 단락의 의미에서, 승리는 단지 죽음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어떠한 암시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서 알 수 있다. 죄에 대한 인류적이고 일원론적인 사회적 연대성에 대한 바울의 관점과 유사하게 요한 1서에서는 죄에 대한 원칙과 실제가 잘 묘사되어 있다. 생물학적인 용어로 죄는 요한 1서 3장 9절과 요한복음 8장 39-44절에서 암시되어진다. 여기에서 죄는 선천적인 악의 원칙으로 묘사되어진다. 죄는 무해한 단점이나 단순한 연약성은 아니다. 죄는 불순종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께서 죄를 멸하려 오셨기 때문에(요 1서 3:5, 마 1:21) 그 안에 거하는 자는 죄를 범할 수 없다. 왜냐하면 죄는 그의 본성과 대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요 1서 2:29, 2:6) 이것은 요한 1서가 ‘죄없는 완전’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요한 1서에서 빛 속에서 거한다는 것의 의미는 죄의 부정이라기 보다는 죄의 인식과 죄로부터의 정화이다. 과거의 죄에 대한 기억과 현재의 죄에 대한 가능성이 정화되어진 사람들조차도 ‘우리는 죄가 없습니다.’(요 1서 1:8,10)라고 말하지 못하게 한다. 요한 1서는 ‘정결(cleansing)’과 ‘정화(purification)’가 ‘완전 사랑(perfect love)’를 앞선다고 가르친다.(4:12, 18) 성서의 죄 이해는 결코 자의적이며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죄의 성서적 개념은 하나님과의 잘못된 관계이다. 사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왜곡시키는 생각, 행동, 혹은 기질 속에 있는 어떤 것이 죄이다. 하나님과의 이런 왜곡된 관계는 자의적 범죄의 결과이기도하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은총 속에서의 지속적 성장의 실패의 결과이기도 하다.30) 바울과 요한과 같은 신약성서의 저자는 죄의 행위와 구별되는 죄악성이 있음을 강조하였다. 이 죄악성은 신자 안에 남는다. 그리고 죄악성의 개념이 온전한 성화를 가능하게 하며 필요하게 한다. 의인화가 죄의 결과와 관련이 있는 것처럼 성화는 죄의 근원 즉 인간 본성의 오염과 관련이 있다. 인간의 본성의 죄악성보다 하나님의 은총이 더욱 광대하기에 이 세상에서 온전히 성화를 통해 인간의 ‘하나님 형상’은 온전히 회복되어 질 수 있다. 신약성서 전반에 걸쳐서 특별히 바울에게 있어서 관심은 인간의 본성을 관통하고 있는 죄의 뿌리 깊음과 동시에 은총이 제공하는 죄의 치료약에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성서에서 말하는 죄에는 두 가지 기본 개념이 있다. 첫 번째 개념은 하나님의 알려진 의지에 대한 자의적인 위반으로서의 죄의 개념으로 종종 죄의 윤리적인 면이라고 볼 수 있는 객관적이고 법정적인 특성이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형상의 결여 혹은 손상을 강조하는 죄의 주관적이고 치유적인 특성의 개념이다. 이 두 개념 다 성서적인 개념으로써, 진리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각각의 관점은 긴장관계 속에 있기에 한쪽 면만을 극단으로 몰고 간다면 오류에 빠지기 쉽다. 이것은 교회의 역사를 통해 드러난 사실이다. 서방 교부 전통과 종교 개혁가들은 속죄에 있어서 법정적인 면만을 강조하였고, 동방 교부 전통과 일부 중세 카톨릭의 신학자들은 속죄에 있어서 치유적인 면만을 강조한 반면에 웨슬리는 성서가 말하는 죄의 개념에 대한 두 가지 측면을 적절히 통합시키고자 노력을 하였으며 이점은 그의 성서 이해의 탁월성을 반증하는 예라고 할 수 있다. B. 동방 교부의 죄 이해 초기의 동방 교부들은 대체적으로 아담과 이브를 어린아이로 묘사했다. 특히 이레니우스가 이러한 주장의 대표주자였다. 그는 아담과 하와를 생각이 순진하고 어린이와 같았고 완전하지 않았으며 단지 완전으로 의도되었다고 보았다.31) 아담에게는 자유 선택의 능력이 있었지만 은혜에 대한 응답과 하나님의 뜻에 대한 복종이라는 긴 과정을 거쳐야만 창조주께 한층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의도되었다. 그러나 이 의도는 처음부터 좌절되었다.32) 인간은 분별력의 부족과 불순종으로 인하여 타락하게 된다.33) 그 결과 이레니우스는 인간이 신적인 ‘형상(image)과 모습(likeness)’34)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마귀의 수중에 떨어지게 되었다고 보았다. 그는 첫 사람의 불순종이 일반적인 죄된 상태와 인류의 죽음을 초래하였고, 그 결과 인류는 악마의 노예상태가 되었다고 보았다. 아다나시우스는 타락이 자기 중심성(self-centeredness)에 의해 촉진되었다고 보았다. 궁극적으로 이런 자기 중심성으로의 타락은 무로의 타락이다. 인간은 무로부터 창조되어진 존재이기에 결국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면 그들은 비존재로 돌아가게 된다.35) 오리겐은 이레니우스와 터툴리안, 클레멘트가 역사적 사실로 인정했던 창세기에 기록된 이야기를 우주적인 신화로 변형시키고 인간적인 죄의 상태의 근원을 초월적인 면으로 고양시킨다. 그리고 그는 우주 이전의 타락설을 주장한다. 그들은 모든 세대 이전에 마귀든지 영혼이든지 천사든지 간에 모두 순수한 지성들(νόες)이었다. 그들 중에 하나인 악마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어서 하나님께 항거하기로 선택하였는데. ... 각자는 자기 죄에 해당되는 운명을 받았다. 영혼들은 그대로 남았다. 이 영혼들은 마귀가 될 만큼 그다지 통탄할 정도로 죄지은 것도 아니고 천사가 될 만큼 용서받을 정도의 사소한 죄를 지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현재의 세상을 만드시고 그 영혼을 육체에다 벌로 속박해 놓으셨다. ... 그는 명백하게 각 영혼을 그 죄에 알맞게 징벌하셨으니 어떤 것은 마귀가 되었고 어떤 것은 영혼이 되었고 어떤 것은 천사장이 되었다.36)
오리겐에게 우주 이전의 타락설은 인간의 상태가 보편적으로 죄의 상태에 있다는 것을 설명해주는 것으로 인생의 다양한 재난과 비극을 설명해 주고 영혼들이 이전의 죄에 대하여 죄책이 있다는 것을 설명해 주는 이론이었다. 그런데 우주 이전의 타락설은 악이 초월적 세계에서 인간 자신들의 선택의 결과이지 어느 첫 사람의 불순종과 상관이 있는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 다만 오리겐에게 아담의 타락 이야기는 인간이 낙원에서 추방되어질 때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히셨다는 것에 주목하여 그 때를 육체의 덧입음에 대한 시점으로 추측한다.37) 따라서, 오리겐에게 있어서 아담의 죄책에 대한 연대성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육체를 악의 원리라고 정죄하는 자들을 반대하고 악은 오직 의지 속에만 있다고 가르친다.38) 카파도키아 학파의 교부들 중에 닛사의 그레고리는 인간 본성에 대한 연구를 “세상에 가장 경이로운 일” 혹은 “우리에게 알려진 어떤 것보다 큰 것”39)이라고 하며 기독교 인간학의 중요성을 주장한 동방 교부였다. 그는 낙원 상태의 인간을 천사적 본성과 같게 되는 이상적인 상태로 변형될 수 있거나 짐승 같은 본성의 상태와 같은 타락한 상태로 손상되어질 수 있었던 잠정적인 상태로 보았다.40) 닛사의 그레고리는 낙원에서의 인간 본성의 복합성 혹은 잠재성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이러한 단어들(남자와 여자)에 의해서 성서는 우리에게 위대하고 숭고한 교리를 알려준다고 생각한다. ... 두 본성(신적인 즉 합리적이고 영적인 본성과 짐승의 비합리적인 본성)은 양극으로서 서로 분리되어진다.”41) 그런데 짐승의 본성 자체를 닛사의 그레고리는 악한 것으로 주장하고 있지는 않았다. 다만 그 본성들은 악도 될 수 있고 선도 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전적으로 이성과 자유의지에 달린 것이었다.42) 여기에서 인간 타락의 원인을 짚어 볼 수 있는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피조되어진 첫 인간의 타락의 원인은 바로 악마의 시기로 인해 초래되어진 첫 인간(아담과 하와)의 자유의지의 오용에 기인한 것이었다. 닛사의 그레고리는 악의 기원을 사탄에 의한 것으로 보았고 첫 인간의 타락이 악으로의 중단 없는 경향성의 원인으로 보았다. 닛사의 그레고리는 어둠이란 단지 빛의 부재의 소극적인 현상이 아니라 사탄이 고의로 선을 추방하고 의도적으로 악을 끊임없이 선택했기에 발생한 것으로 보았다.43) 여기에서 악의 선택에 대한 능동적이며 반역적인 어떤 것이 발견되어지지만 동시에 그것은 상실(privation)로 간주되어져야 한다. 결국 닛사의 그레고리는 악의 기원을 하나님이 아닌 첫 인간의 의지의 오용 속에 두고 있다.44)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타락의 가능성을 남겨 놓으셨는가의 물음이 대두되는데 닛사의 그레고리는 이 자유의지가 하나님 형상의 한 측면으로서 인간에게서 자유의지의 박탈은 바로 하나님 형상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며 동시에 그의 창조목적, 즉 그의 선하심에 인간을 참여시키고자하는 그의 목적을 말소하는 것이다.45) 결국 닛사의 그레고리에게 있어서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의 본질적인 본성이다. 결국 인간 타락의 결과는 신적인 ‘형상(image)과 모습(likeness)’46)의 왜곡과 상실이었다. 첫 번째 결과로 인간에게 죽음이 왔다. 낙원에서 찾아 볼 수 없었던 죽음이 인간에게 다가왔다. 닛사의 그레고리는 이런 육체적인 죽음을 신적 은총의 과잉의 표징이고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치유의 은총이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서 죽음은 어떤 감각적 만족을 통한 자유의지에 의한 악과의 연대성과 모순되는 타락한 인간의 독특한 치유 방법으로 생각47)되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타락으로 인해 인간의 육체에 죽음이 왔을지라도 인간의 영혼은 불멸로 남아있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은 병들게 되었고 그 결과 치유 받아야만 될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48) 인간 본성에 관한 인간 타락의 두 번째 결과는 합리성에 대한 비합리성의 지배를 초래였다. 아담과 하와가 낙원에서 신적인 본성과 짐승의 본성의 중간 상태에 있었을지라도 합리적인 본성이 비합리적인 본성을 규제했었다. 그러나 현재는 역전현상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치 죄의 경향성이 무거워지고 더욱더 죄를 향하게 된 것처럼 (비합리적 짐승적 본성의) 또 다른 영향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혼을 지배하는 요소가 지성에 의해서 고양되어지는 그 무거운 요소보다 더욱 비합리적인 본성의 무게에 의해서 하강하게 되어지는 요소로 기울어졌기 때문이다.49) 타락으로 인한 인간 본성의 세 번째 결과는 자유의지의 경향성이 악으로 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의지는 여전히 그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잠재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은총을 필요로 한다.50) 고대 교회에서는 죄가 때때로 신약성서에서처럼 그렇게 철저하게 이해되지는 않았다. 동방교부들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책임을 강력히 주장하며, 동시에 인간이 선과 악의 중간에 균형잡고 있어서 양쪽 어느 것이나 선택할 수 있다고 보았다.51) 또한 그들은 사변적인 경향이 강했기에 관심이 주로 삼위일체의 교리와 기독론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레니우스는 원죄에 대한 그의 관념을 표명한바 있으며, 닛사의 그레고리도 그와 비슷한 진술을 행한 바 있다. 그러나 일관된 원죄의 교리를 이끌어내는 것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와 동시에 아다나시우스는 많은 성인이 모든 죄에게 깨끗하고, 시릴은 심지어 인간은 죄 없이 출생했다고까지 주장하였다.52) 그리고 닛사의 그레고리,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등과 같은 사람들에 있어서도 분명히 원죄에 대한 부정을 암시하는 표현을 볼 수 있다.53) 이것은 동방교부들이 모든 죄의 문제를 피상적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웨슬리의 원죄의 결과로서의 인간의 전적 타락이라는 부분은 동방교부 전통의 죄 이해와 전혀 다른 견해이다. 동방 기독교의 전통은 타락으로 인해서 인간의 본래적인 의가 완전히 없어졌다고 보지 않았다. 따라서, 구원에 있어서 자칫 잘못하면 우선성이 인간에게 있게되는 위험성이 있다. 반면에 웨슬리는 인간의 전적인 타락을 주장하여 원죄의 전가된 죄책과 유전된 부패성을 주장하였으며 동시에 선재적인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의 측면이 모든 사람이 원죄의 죄책으로부터 해방시켰고 인간에게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응답 가능성을 형성시켰다고 보았다. 이점에 있어서 동방 교회의 오해 가능한 신인 협력적인 질서에 비해서 웨슬리의 신인 협력적인 구원의 특성은 오해의 소지를 줄인다. 웨슬리의 관점에서 분명히 인간의 응답 가능성이라는 것은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결국 그의 신학과 신앙과 삶의 정점은 크고도 넓으신 하나님의 은총의 광대함이다. 그러나, 웨슬리는 다음과 같은 점들에 있어서 동방교부들과 동일한 견해를 가진다. 악과 죄의 원인을 의지의 오용으로 본 점과 타락의 결과 인간에게 영적이고 육적인 죽음54)이 왔으며 인간의 본래적 본성이 병들어 치유를 요하는 상태에 처해있다고 본 점은 동일하다. C. 서방 교부와 로마 카톨릭의 죄 이해 원죄의 개념을 최초로 만든 교부가 바로 터툴리안이었다. 그는 원죄의 영혼 유전설을 강조하여 개개의 영혼이 인간적 본질로 되어 있으며 대대로 내려오는 아담의 후손으로서의 출생을 통하여 육체와 함께 존재하게 된다고 믿었다. 영혼의 죄된 상태의 결과는 아담과의 관계에서 생긴 결과이다. 인류는 아담의 죽음에 관련되어 있을 뿐만이 아니라 이른바 인간의 자연적 요소, 제 2의 본성, 영혼의 악, 발생의 악인 죄로 물들어 있다.55) 서방 교부 중에 서방 교회의 신학적인 틀을 잡았던 어거스틴은 서방 교부의 대표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어거스틴의 죄 이해는 바로 서방 교부의 죄 이해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어거스틴은 초기 마니교와의 논쟁기에 마니교의 숙명론적 인간이해와 이원론적 창조와 역사이해에 강하게 도전하였다. 마니교의 결정론이나 숙명론은 악의 근인(近因)은 인간의 의지요, 원인(原因)은 하나님이라고 보는 관점을 가진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하나님은 결코 악의 원인이 될 수 없으며 악을 창조하지 않으셨고 다만 선만을 창조하셨다고 강조한다.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은 그는 인간은 본래 선하게 지음 받아 이미 완성되어진 채로 선한 창조인 천국에 자리했다고 보았다.56) 그렇다면 악은 어디서 오는가? 악은 선의 상실과 부패와 타락으로부터 오며, 그 원인은 인간의 자유의지다. 즉 악의 원인은 하나님이 아니고 선의 결핍과 타락이며 죄를 범하는 것은 자유의지에 기인한 것이다.57) 어거스틴은 악한 본성을 비존재며 비본성으로 보았고 모든 본성과 존재는 선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58) 모든 본성과 존재들의 원인이신 하나님은 악을 창조하지 않으시고 악한 본성의 원인이 아님을 주장한다.59) 결국 어거스틴에 의하면 악은 본성이 아닌 오히려 본성에 반대되는 것이다. 어거스틴에 의하면 인간의 죄악행위는 욕망 특히 성적인 욕망(concupiscentia)에서 나오는 데,60) 그 욕망에 영혼이 끌려감으로 죄악행위가 나타난다. 영혼이 욕망에 끌려 다니는 것은 영혼 속에 있는 자유의지 때문이다.61) 그러므로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죄는 선의 박탈, 교만, 자기 사랑, 그리고 정욕이다.62) 어거스틴은 “죄짓는 것은 악의 훈련에 의해서만 일어난다.”63)고 보았다. 그에 의하면 죄는 의지가 자유롭지 않을 때 범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가 불의를 원할 때 범하는 것으로 정의가 금하는 것을 유지하려는 의지 혹은 얻으려는 의지이다64) 그리고 어거스틴은 칭찬 받을 만한 행복한 삶도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고 수치스럽고 불행한 삶을 사는 것도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임을 강조한다.65) 그러나 아담의 타락 이전에 인간은 “죄짓지 않을 수 있었지만(posse non peccare)” 타락 이후에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non posse non peccare)”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66) 죄를 범하고 악을 행한 인간이 다시 선을 행하려면 오로지 은총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어거스틴은 강조한다. 어거스틴에게 있어서는 본성적 자유의지의 요소도 있으면서도, 은총에 의해 세워지고 회복되며 움직여지는 자유의지의 요소도 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자유의지 자체가 그것이 빠져있는 죄악의 속박에서 해방되고, 그 악을 극복하도록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인간은 결코 의롭고 거룩하게 살아갈 수 없다”67)고 해석하며 은총의 중요성을 자유의지에서도 강조한다. 은총이 먼저 선재적으로 역사하지 않으면 자유의지는 제대로 선을 실천할 수 없다. 여기서 웨슬리는 어거스틴의 예정의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어거스틴의 선재적 은총 개념을 자신의 사상으로 끌어들인다. 그는 그의 설교,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룸에 대하여”(On Working Out Our Own Salvation)에서 어거스틴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한다. “우리 없이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은 우리 없이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실 것이다.”(Qui fecit nos sine nobis, non salvabit nos sine nobis.)68) 그러므로 웨슬리의 선재적 은총의 개념은 어거스틴의 개념을 수용하고 있다. 그리고 어거스틴은 세례를 통해 원죄가 제거된다고 보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은총은 율법이 행할 수 없었던 일, 즉 정욕을 이기는 일을 행한다고 보았다.69) 어거스틴은 웨슬리처럼 죽기 전의 완전성화가 가능하다고 믿지 않고, 완전이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이것은 루터와 웨슬리가 유전죄를 본질적으로 불신앙으로 본데 반해서 어거스틴은 죄의 본질을 정욕(concupiscentia)으로 보았고 이 정욕이 죽는 날까지 계속 인간에게 남아 있는 것으로70)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웨슬리와 어거스틴의 육체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드러난다. 어거스틴은 인간의 정욕을 육체적인 면으로 보았기에 그에게는 죄악된 육체라는 개념이 적용이 된다. 그러나 웨슬리에게 있어서 이러한 개념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죄의 자리는 영혼이지 육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웨슬리는 ‘죄악된 육체’의 개념을 강력하게 거부하고 있다.71)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슬리는 육체의 부패성에 동의를 하고 있고 이러한 육체의 부패성으로 인한 유혹의 가능성에도 동의를 하고 있다.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완전은 그리스도에게만 해당되고 죽음 이후 천국에서나 죄 짓지 않는 완전 자유가 가능한 것이다. 마5:48에 하나님의 온전하심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셨기에 완전의 가능성은 믿었으나 현실성은 믿지 않았다.72) 12세기부터 13세기의 중세의 스콜라 신학자들은 죄의 개념에 관해서 어거스틴주의적인 유산73)을 이어받았다. 원죄는 본래적 의의 결핍이며 부가적인 은사의 상실로 보았다. 따라서, 인간의 본성에 원죄가 어떠한 근본적인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는 것으로 보았다.74) 그러나 아퀴나스는 자연적 타락을 적극적인 의미로 보기도 했다. 그것은 정욕이요 죄된 성질과 형벌을 내포한 것이며, 그 정욕은 육체 안에 거하는 것이고 출생에 의해서 대대로 전하여진다고 생각하였다.75) 원죄는 실제의 죄를 통해서 실체화된다. 그 주된 근원은 교만, 탐욕, 색정, 분노, 탐식, 질투, 나태 등 일곱 가지이다. 이러한 것들은 기본적 죄(peccata capotalia)이다. 그것은 다시 중대한 죄(peccata mortalia)와 가벼운 죄(peccata venialia)로 나뉜다. 하나님의 율법을 고의적으로 범하는 죄는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죄이다. 가벼운 죄는 단지 의사(意思)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충분한 반성이나 혹은 적극적인 의지의 작용이 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유리되는 것을 의미한다. 가벼운 죄는 현세의 형벌에 의해서 속량될 수 있다. 범죄의 단순한 자연적 가능성은 만물의 제일 원인이 되는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지만, 행위의 타락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속한다.76) 이점은 신자의 죄77)에 관해서 웨슬리가 죄를 구분할 때 무의지적 죄(involuntary sin)와 의지적 죄(voluntary sin)로 구분한 것과 유사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 교회가 범죄의 단순한 자연적 가능성을 하나님에게 둔 반면에 웨슬리는 범죄의 단순한 자연적 가능성의 원인 또한 인간에게 속한 것으로 본다. 인간의 타락과 죄로 말미암아 인간 본성과 육체의 부패성이 유입되었으며 또한 세상에 불완전성이 유입되었다고 보았다. 스콜라주의자들은 죄의 개념에 있어서는 어거스틴과 일치하며, 죄를 통하여 인간이 무지, 육욕 및 죽음에 복종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인간의 자연적 능력들은 죄에 의해 파괴된 것이 아니라 단지 상처를 입고 일그러졌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의 견해도 비어거스틴적 개념은 아니다.78) 그러나 14-15세기의 중세 교회는 점차 인간의 자연적 의지의 고결성, 즉 의지의 자유가 죄에 의해 오염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대죄를 통하여 영혼을 부패시키거나 파멸시킬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주장을 했다. 이러한 주장이 원죄에 대한 어거스틴적 교리와 더불어 종교 개혁가 더 나아가서는 웨슬리와도 화해할 수 없는 골을 만들게 하였다.79) 웨슬리는 어거스틴과 마찬가지로 죄의 원인을 인간 의지의 자유로 보았다. 그러나 악의 기원과 정의에 있어서는 차이를 보인다. 어거스틴이 악을 선의 부재로 본 반면에 웨슬리는 악을 선의 타락으로 보았다. 따라서 악의 기원에 있어서 웨슬리는 보다 천상적인 기원에서 찾고 있다.80) 그리고 선재적인 은총으로 회복되어진 의지의 자유에 있어서도 어거스틴은 여전히 악만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장하지만 웨슬리는 보편적인 은총의 단비 속에 있는 인간에게 선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고 보았다. 또한 어거스틴은 본질적으로 유전되어진 죄를 정욕으로 본 것에 비해서 웨슬리는 불신앙으로 보았다. 따라서, 어거스틴은 육체를 죄와 동일하게 보았으며 성결을 본질적으로 육체의 정욕에 대한 정복이라고 보았던 반면에 웨슬리는 육체를 죄와 동일하게 보지 않았고 죄의 자리를 단지 영혼에만 두었기에 어거스틴에게 불가능한 이 땅에서의 기독자의 완전이 웨슬리에게는 가능한 개념이다. D. 종교 개혁의 죄 이해 원죄에 관해서 칼빈은 전적으로 루터를 따르고 있다. 즉 그는 “성서에서 육체의 일이라고 불리어진 모든 일들을 우리 속에 낳게 하는 인간 본성의 유전적 타락과 부패”에 대하여 말하였다. 그는 바울과 같이 그것을 ‘죄’로 불렀고 그것이 노출된 것을 ‘죄의 열매’라고 불렀다.81) 아담의 죄는 불순종에 있었다. 죄의 속성은 아담의 모든 후손에게까지 유전되었다. 타락한 뿌리에서 타락한 가지들이 나온 것이다. 칼빈은 아담의 죄가 그 후손의 죄가 되어야 하는 것은 신의 뜻이라고 말한다.82) 그리고 칼빈은 정욕이라는 말을 이해력과 의지, 영혼과 육체 등 인간에게 있는 모든 것이 더렵혀진 것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83)하였다. 이것은 죄의 교리에 관해서 칼빈이 루터를 전적으로 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최초의 성공적 종교개혁자인 루터의 인간과 죄 이해는 일단의 종교 개혁가들의 죄 이해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보편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루터의 죄 이해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종교 개혁자 루터는 중세의 인간 이해와는 다른 인간이해를 토대로 죄의 교리에서도 중세의 왜곡되어져 가는 방향에 수정을 가한다. 루터는 당시의 스콜라 신학이 관심을 가진 인간의 구성요소에 대한 철학적인 인간론84)이 아닌 성서적 인간론, 즉 전인의 단초를 소개한다. 그는 1536년에 “인간에 관한 논제”를 발표하면서 이러한 관점을 발전시킨다. 루터는 기독교 인간론의 중심의 자리에 영혼의 능력 대신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뜻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설정하였다.85) 그리고 루터는 바울이 피력하는 영과 육의 관계86)로서 인간론의 정의를 하였다. 그는 인간을 철저하게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행동의 역사로부터 진술을 시도했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전체 역사 즉 창조, 타락, 그리고 구속의 완성 등은 전인이 무엇인지를 나타내 준다. 이러한 루터의 시각으로부터 전인의 관점을 세 가지87)로 조망할 수 있다. 첫 번째 관점은 원래의 상태(status originalis)이다. 이 상태의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육체와 생령으로 구성되었으며, 처음부터 죄 없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자손을 번식하며 모든 것들에 대해 다스릴 것과 결코 죽지 않게 규정받도록 지음 받았다.88) 이때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피조되고 하나님의 대화상대자로 부름 받은 “전인이며 완전인”이었다. 전인이며 동시에 완전인인 인간은 하나님과의 단절 없는 교제 안에 있는 인간을 말한다. 그러나 아담의 타락 이후 하나님과 인간의 단절 없던 교제가 깨져버렸다. 인간은 영생을 약속 받았던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탈락하여 사탄과 죄와 죽음의 권세 아래로 떨어졌다.89) 이로서 인간은 이제 완전인이 아니다. 전인은 이제 사탄의 다스림 속에 갇혀졌다. 두 번째는 궁극의 상태(status finalis)이다. 아담의 타락 이후 인간은 죄인이 되었고 더 이상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 하나님의 형상이 되어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러한 과정의 목표는 당연히 하나님과의 종말론적 교제이다. ‘그리고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만(만일 그를 믿으면) 벗어날 수 있게 되며 영생을 선물 받게 된다’90) 하나님과의 종말론적 교제가 가능한 것은 바로 기독론적인 종말론적 관계에 힘입어서 가능한 것이다. 이런 궁극의 전인의 상태는 인간의 종말론적인 완성으로서 완전인을 의미한다. 세 번째로는 의인인 동시에 죄인(simul justus et peccator)이다. 루터는 의인인 동시에 죄인이라는 용어를 그리스도인의 실존을 나타내는 하나의 변증법적 존재 방식으로 표현했다. 여기서 관심을 가지고 그 신학적인 의도를 파악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동시에’라는 표현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판단이다. 이 개념은 바울의 영과 육의 구분과 동일한 방법으로 관련시켜 이해되야 한다. 바울에 있어서의 육과 영은 전인의 삶의 방식을 나타내는 신학적 용어로 더 깊은 의미에 있어서는 전인의 삶의 방식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의인인 동시에 죄인인 전인은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위해 자기 자신을 헌신하는 자아 자체로 파악될 수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인간 이해를 기초로 하여 루터는 당시의 로마의 세미-펠라기우스주의적 경향에 반대하여 원죄에 대한 어거스틴적 개념을 옹호하였다. 성서에서의 죄는 육신의 외적인 행위를 뜻할 뿐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이러한 행위를 하도록 하는 모든 활동들도 뜻한다. 이성이 강한 스콜라 신학자들은 원죄를 정의하기를 ‘의가 부족하거나 결핍된 상태’91)라고 한다. 그러나 루터는 “원죄란 인간의 의지 속에 들어있는 내적인 질(質)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지성에 있어서 내적인 빛이나 기억력의 결여만이 아니라 마음속에 일어나는 인간전체(내적인 인간, 외적인 인간, 몸과 영혼 전체까지)에 있어서 공정하고 성실한 자세가 결여된 것을 말하며, 그 전체 인간의 기능을 올바로 발휘할 능력이 결여된 것을 의미한다”92)라고 말한다. 루터는 인간에 관한 이런 기본적인 개념을 전제로 원죄를 정욕과 불신앙으로 보았다. 첫째, 루터는 원죄를 정욕(concupiscentia)으로 본다. 정욕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이기주의를 말한다. 이것은 선을 행하려는 인간의 가장 고상한 의지 속에까지 파고 들어가는 것을 말하며,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도와 수단으로 삼으려는 이기주의이다. 따라서 루터는 정욕을 자기추구와 연관시키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힘으로 극복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욕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그것을 지니고 있다.93) 둘째, 루터는 원죄를 불신앙으로 본다. 성서는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모든 죄의 뿌리와 원천을 가려낸다. 그것은 가장 깊은 내심에 있는 불신이다. 그리스도께서도 요 16:8-9에서 불신앙을 유일한 죄라고 부르신다. 원죄가 이기적인 자기 추구일 때 그것은 당연히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위배되게 되고, 하나님을 거부하는 불신앙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것은 하나님께 드려야할 것을 드리지 않는 것을 의미하며 그 결과 이웃에게 돌아가야 할 것을 돌리지 않는 면으로서도 나타난다. 루터는 ‘불신앙은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르는 데서 나타난다.’고 말한다.94)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마음은 자기애, 자기 기쁨, 자기 신뢰, 자기 의에의 의존과 연결된다. 그 결과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받은 것을 하나님의 선물로 여기지 않고, 이런 선물들을 당연히 받아야 할 것으로 생각하거나, 자신의 노력의 결과로 생각한다. 그들은 감사하지 않고 허영심으로 눈이 멀게 되어 아주 구제 불능의 인간이 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네가 하는 일이 최고로 잘하는 일이며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믿고 다른 생각을 할 여지를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 자신을 위해서 엉뚱한 다른 하나님을 구상한다. 이리하여 그들은 본래 참 하나님에 대한 것보다 더 진실한 마음으로 자신이 구상한 헛된 우상을 예배하데 된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 인간의 육욕적인 생각과 부패한 심정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감사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당히 큰 죄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이것은 다만 허영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인데 이 허영심은 사람을 미혹케 하며 그 결과로 우상 숭배로 떨어지게 하며 그래서 악의 소용동이 속으로 빠져들어 가게 하는 것이다.95) 루터는 원죄의 특성으로 원죄의 보편성과 인간의 전적 타락, 그리고 원죄의 심각성을 주장하였다. 원죄의 보편성에 있어서 비록 원죄가 인간 각자가 스스로 지은 실제적인 죄가 아닐지라도 원죄로 인해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라는 사실이다. 루터는 롬 9:11-13을 주석 하면서 “어떤 사람이 야곱은 모태로부터 성결함을 받았다고 생각한다고 해도 그들은 모두 다 원죄로 인해 더러워졌다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96)고 했다. 태어나서 하루 밖에 안된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원죄 가운데 있게 된다. 그리하여 루터는 “가령 우리 양친이 죄를 범한 일이 없다고 해도 죄성이 그대로 유전되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애초부터 불의의 자식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97)라고 한다. 루터는 인간의 전적 타락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의 영향을 받은 중세 스콜라 신학은 원죄를 단지 의의 결핍으로만 생각했다. 따라서 의의 결핍으로 인한 잘못된 부분만 제거하면 인간은 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루터는 이와 같은 스콜라주의 신학은 “회개의 귀중성을 약화시킬 염려가 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애고 대신 교만과 인간적인 악한 성질을 다시 심어주는 것이다.”98)라고 반박한다. 즉 루터는 원죄를 단순히 부분적인 약점이나 죄로 보지 않았고, 전인의 완전한 타락으로 보았다. 루터는 시편 51:5을 통하여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으며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하였는데 “내가 잉태될 때 하나님 앞에서는 이미 의를 상실하였다. 나는 일찍이 아담에 의해 의를 상실하였고 따라서 의롭지 않게 잉태되었기 때문에 불의한 자가 된 것이다.”99)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루터는 시 90:8을 주석하면서 “어느 누구도 자신의 모든 죄를 낱낱이 알 수 없다고 선언해야 옳다. 특히 자신의 원죄가 얼마나 막중한가 살펴보게 되면 이점이 더욱 명백해진다.”100)고 한다. 그러므로 루터에 있어서 원죄의 심각성이란 그 누구도 그것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루터는 인간의 원죄의 거대성을 보아서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여지를 남겨놓지 않았다. 따라서 어떤 인간도 결국에는 의인인 동시에 죄인(simul justus et peccator)이상은 될 수가 없다. 인간은 죽는 날까지 죄인으로 남아있다. 세례가 원죄를 제거하지 못한다. 원죄는 그 본질에 관한 한 죽을 때까지 남아있다. 우리는 매일매일 그것을 씻어 버려야 하며, 날마다 선한 일에 자라야 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고 살아야 한다. 무덤에 들어갈 때 비로소 원죄는 완전히 제거된다.101) “웨슬리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전적으로 의가 결핍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심판과 분노 아래 있다는 주장에 관해서는 칼빈과 루터와 어거스틴과 모든 길을 함께 하고 있다.”102)라는 윌리암 캐논(William Cannon)의 말처럼 웨슬리는 종교 개혁가들이 말한 원죄로 인한 모든 인간의 전적 타락이라는 부분에 동의를 한다. 그러나 은총 이해의 미묘한 차이와 죄의 정의에 대한 차이가 구원의 길에 대한 이해에 차이를 야기한다. 웨슬리는 종교 개혁가들과는 은총의 보편성에 대한 이해가 다르다. 웨슬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보편적인 은총의 선물로 보았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아담의 죄책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신학적 입장에 서 있다. 그러므로 웨슬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의 유전된 죄악성과 자기 자신의 자범죄의 죄책에 대한 문제이다. 웨슬리는 죄의 구분을 행위로서의 죄와 상태로서의 죄로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종교 개혁가들은 이러한 구분을 엄격하게 하고 있지 않는다. 루터의 관점에 의하면 기독자는 항상 죄 속에 있으며, 또 항상 칭의 속에 있다. 바꾸어 말하면 그는 항상 죄인이지만 항상 회개하고 그럼으로써 항상 의롭다 칭함을 받는다라는 이야기이다.103) 즉 죄에 관해서는 신자나 불신자나 별반 차이가 없다.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는 하나님께서 신자는 실질적으로는 죄인이지만 죄인으로 보지 않으신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웨슬리는 이러한 의견에 명백한 반대를 한다. “칭의가 율법에 의하여 우리에게 가져온 고발에서 우리를 자유케 한다는 것도 또한 성서의 명백한 증언으로 증명되고 있다고 하기보다는 단순한 가정이라고 할 것입니다.”104) 웨슬리에게 있어서 칭의는 아들의 피로 인하여 된 화목의 제물 때문에 가능한 사면이요 죄의 용서이다. 신자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니기에 하나님께서 신자를 더 이상 죄인으로 여기지 않으신다. 이러한 개념이 가능한 것은 바로 죄에 대한 이해의 차이 때문이다. 칼빈은 의지적 죄와 필연적인 죄를 구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필연적 죄 또한 의지적 죄와 같은 죄책을 가지고 있기에 하나님 앞에서는 차이가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105) 루터는 ‘무지의 죄’와 ‘의지적인 죄’의 구분을 시도했지만 웨슬리처럼 명확한 구분을 시도하지는 못했다.106) 웨슬리는 의지적인 죄와 무의지적인 죄, 그리고 죄책과 죄의 힘, 죄의 현실성을 복잡하게 구분하였다.107) 종교 개혁가들이 무의지적인 죄와 의지적인 죄 모두가 하나님께 정죄함을 받고 죄책 가운데 있는 것으로 보았지만 웨슬리는 단지 의지적인 죄만이 하나님께 정죄함을 받는다고 보았으며 엄밀한 의미에서 성서가 말하는 죄로 보았다. 무의지적인 죄는 엄격한 의미의 죄로 보지 않고 부적절한 의미의 죄로 보고 있다. 그리고 웨슬리는 내적 죄악성, 죄의 현실성을 엄밀한 의미에서 죄책이 있는 죄로 보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죄에 대한 경향성일 뿐이다. 이 경향성에의 의지적인 동의가 하나님으로부터의 정죄를 가지고 오는 것이다. 의지적인 죄는 영원한 죽음을 가지고 오는 유일한 죄로서 은총의 거부를 포함하는 개인적인 죄이다. 따라서 죄와 관련하여 웨슬리의 관점에서 성결이란 은총에 의한 믿음과 그 믿음의 열매들을 통해서 내적인 경향성을 죽임으로서 죄의 뿌리, 인간의 타락한 본성, 죄의 현실성에서의 해방을 의미한다. 신자는 과거의 죄책에서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은총 속에 거함으로 의지적인 죄를 범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신자 안에는 이 죄의 경향성, 죄의 남음이 있다. 이 죄의 남음 자체는 죄책이 있는 죄가 아니라 할지라도 언제든 신자가 의지적으로 하나님께 범죄할 여지를 열어 놓는다. 이점은 트렌트 종교 회의가 세례 후 신자에게 남아 있는 정욕, 죄의 연료를 전혀 죄로 보지 안았던 점과 웨스트민스터 고백에서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본성의 타락은 신자가 살아있는 동안에 벗을 수 없는 굴레로 선언했던 점에 대한 웨슬리의 중도적인 대안이다.108) 종교 개혁가들과는 구별되는 죄와 은총 이해로 인해 웨슬리는 종교 개혁가들이 어쩔 수 없이 걸어갔던 선택과 예정, 그리고 성도 견인의 은총이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점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웨슬리는 자신의 구별되는 죄와 은총 이해를 통해 당시에 나타났던 칼빈주의적 율법폐기론과 모라비안적 정숙주의의 오류에서 벗어나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과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열매이자 결과인 ‘거룩한 삶’을 잘 조화시킬 수 있었다. E. 영국 국교회의 죄 이해 웨슬리는 그 자신이 열정적인 영국 국교회 사제였고 또 자신을 “열렬한 국교도”109)라고 불렀다. 사실 웨슬리 생전에 영국 감리교 운동은 영국 국교회와 분열의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죽을 때까지 분열의 움직임을 막고자 했으며 결국 그의 사후에야 영국 감리교가 영국 국교회로부터 분리되었다. 그리고, 그가 초기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전통이 바로 영국 국교회의 전통이다. 그는 당시 영국 국교회의 사제를 배출하였던 옥스퍼드 대학(Oxford University)의 크라이스트 처치(Christ Church)에서 신학 교육을 받았으며, 영국 국교회의 39개조의 많은 교리적 조항을 따랐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39개 조항을 그의 신학적인 관심에 따라 24개 조항으로 축소 변형시켰다는 점이다.110) 따라서, 영국 국교의 신학의 정립에 큰 공헌을 한 리챠드 후커(Richard Hooker)111)의 죄 이해와 39개조의 원죄(Original Sin)조항인 제9조를 웨슬리가 어떻게 생략, 변형 시켰는지를 살펴봄으로서 영국 국교회의 죄 이해가 웨슬리 죄 이해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아보겠다. 후커는 기본적으로 기독교 인문주의자였다. 그는 인간은 결코 전적으로 타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성과 의지를 사용하여 선을 선택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후커는 인간의 완전 이성 소유의 불가능성 때문에 인간은 결코 절대 선은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했다. 인간 이성의 불완전성 때문에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절대 선보다는 못한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현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항상 선을 선택한다고 할지라도 선택한 선 속에는 여전히 악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까닭에 후커에 의하면 죄는 자유의지와 인간의 불완전한 이성에 기인한다. 결과적으로 죄는 적극적인 행동이라기보다는 적절한 이성의 결여라는 것이 바로 후커의 견해이다.112) 그러나 기독교 인문주의자적인 성격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후커는 당시의 로마 천주교의 행위 의인화(work-righteousness)를 강하게 반대하였다. 그리고 또한 개혁 교회의 신앙 제일주의에도 강한 거부를 하였다. 그는 인류의 구원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극명하게 나타나는 먼저 주시고(initiative)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은총에 관심을 가졌으며, 이 은총을 하나님으로부터의 소외와 개인적인 죄책의 짐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변화의 은총으로 이해했다.113) 그러므로 이 변화의 은총으로 인해 신자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해 응답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은총을 인간이 받아들임은 단지 인간의 내적 정신적 활동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신자의 삶의 스타일의 변화 가운데 눈에 보이는 것이다.114) 결국 성화의 삶을 중시했다. 그러나, 성화의 삶에 있어서 영국 국교회는 그 제도적인 수단을 주님이 제정하신 성례전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이 성례전은 은총의 효과적인 표징115)이며 은총의 참된 수단116)이다. 그렇기에 세례는 단지 고백의 표현이 아닌 기독자와 비기독자와의 구별의 표시이고 거듭남 혹은 신생의 표징이 되는 것이며 죄의 용서와 성령에 의한 하나님의 양자됨의 약속이 되는 것이다.117) 그러나 웨슬리는 영국 국교회의 예전 중심적인 신학 이해의 한계를 그의 경험에 의해서 극복할 수 있었다. 이것은 그의 신학이 영국 국교회에서는 가지고 있지 못한 경험이라는 요소를 가지고 있었고 당시의 대중들에 대한 실천적이고 목회적인 관점에 서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세례와 거듭남이 서로 다른 면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들은 서로 다른 성질의 것이며 영국 국교회처럼 동일한 것으로 보지 않았다. 웨슬리는 세례의 성례전을 외적인 행위로서 하나의 표징으로 보았으며, 거듭남은 내적인 것으로 보았다.1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슬리는 거듭남과 세례가 서로를 동반할 수도 있으며 서로 연합할 수도 있다고 보았다. 그러고 유아 세례에 있어서 세례는 거듭남과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거듭남을 동반한다고 보고 있다.119) 이러한 경향은 영국 성공회로부터 받은 죄 이해에도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영국 국교회의 39개 조항을 축약한 25개조 중에 원죄에 관한 항목을 웨슬리는 자신의 신학에 맞추어 변형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의 설교 13번 “신자 안의 죄(Sin in Believers,1763)”의 도입부에 영국 국교회의 39개조 제 9항을 본문에 삽입하였는데 이때에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신학적인 이해에 따라서 생략하여 소개하고 있다. 원죄는 [아담을 따르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아담의 후손에게 유전되어지는] 모든 사람의 본성의 [결점과] 부패를 말하는 것이고 이것으로 인해서 사람은 [원의(original righteousness)에서부터 멀어지게 되었고] 그 본성에 있어 악으로 향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육이 영과 반대되는 것을 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속적이다. 그리고 그런 까닭에 이 세계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분노와 정죄 아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본성의 부패성은 거듭난 사람에게도 남아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어떤 이들은 지혜로, 어떤 이들은 감각으로, 어떤 이들은 감정으로, 어떤 이들은 육의 소욕으로 해석하는] 헬라어로 프로네마 싸르코스(φρονημα ρακος)라고 부르는 이 육의 정욕은 하나님의 율법에 복종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세례 받고] 믿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기는 하지만 이 정욕은 그 자체가 죄의 성질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120) 원래의 조항에서 웨슬리는 원죄의 유전의 문제를 생략했다. 웨슬리는 원죄의 유전의 문제에 있어서 초기에는 생물학적인 유전 전이설에 영향을 받았다가 중기에는 영혼 창조설적인 입장에 기울어져 있었으며 후기에는 영혼 전이론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다. 그러나 이 설교를 작성했던 영혼 창조설적 경향에 기울어져 있었던 중기에 웨슬리는 원죄의 전이의 방법에 대한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121) 이점으로 미루어보아 생략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보편적인 구속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이 아담의 죄로 인한 죄책으로부터 벗어나 실질적으로 소위 원죄의 결과로 남아 있는 것은 인간의 손상되고 타락한 본성뿐122)이기에 웨슬리는 원죄의 죄책의 문제를 생략한다. 그리고 또한 마지막 구절의 세례를 생략한 것은 세례를 단지 외적인 표징으로 보고 있으며, 의인화의 유일한 조건은 바로 믿음뿐이라는 종교 개혁의 모토에 강한 영향을 받은 후이기에 세례를 통한 정죄함의 구절을 생략한 것이다. 이렇듯 웨슬리는 영국 국교회의 죄 이해를 자신의 목회적이고 실천적인 경험과 신학에 맞추어 변형시켰다. A. 죄 이해 변화에 대한 시기 구분의 근거 “웨슬리의 생애와 사상은 성장과 변화로 특징지어진다.”123) 하이트젠레이터(Heitzenrater)가 지적한대로 웨슬리의 사상을 고찰하기 위해서는 그의 생애의 사건들과의 연관성 속에서 그의 사상이 어떠한 성장과 변화를 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웨슬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대체로 시기를 구분하여 그의 사상을 고찰하고자 했다. 전통적인 경향은 1738년 5월24일의 올더스케잇 체험을 기점으로 구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경향은 이러한 전통적인 경향을 수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전통적인 구분은 웨슬리의 영적 성장의 모습을 왜곡시키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의 생애에서 이 핵심적 사건의 실제적 중요성을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사실 웨슬리는 올더스케잇 체험을 그의 후예들을 위한 회심 모델로 삼지도 않았을 뿐더러 시간이 지난 후에는 신학과 설교에서도 점차적으로 회심경험에 대한 강조와 언급이 없어졌다.124) 그는 한 비판가에게 “저는 회심이라는 용어는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용어는 신약성서에서 거의 나타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125)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올더스케잇 체험이 회심이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웨슬리의 견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해간다. 웨슬리가 이 질문을 언제 했으며 회심이라는 경험을 어떻게 정의했는지를 살펴본다면 웨슬리의 증언에 근거한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회심이었다’일 수도 있고 ‘회심이 아니었다’일 수도 있다.126)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과할 수 없는 중요성이 올더스케잇 체험 속에 있다. 그 경험의 순간은 웨슬리가 당시에 고민했던 확증의 문제와 확증과 회심의 직접적인 관련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준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올더스케잇 체험을 통해 경험 후의 웨슬리가 경험전과 완전하게 다른 새로운 사람이 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지속적인 성장과 성숙의 연장선상에서 올더스케잇 체험을 바라보아야 하며 이러한 경향은 그의 전 생애를 통해서 지속되어져야만 한다. 현대의 웨슬리 학자들은 웨슬리의 생애를 2기로 구분하는 전통적인 경향을 수정하고 있다. 먼저 터틀(Tuttle)은 신학적인 관점의 무게중심의 변이에 따라 올더스케잇 체험 이후를 3기로 구분하고 있다.127) 콜린스(Collins) 역시 단순히 2기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확증에 관해서는 올더스케잇 체험이후 3기(1738-1747: 1748-1770: 1771-1791)로 구분했으며, 또한 웨슬리의 구원론의 핵심 포인트로서 참 기독교(Real Christianity)에 대한 모티브를 중심으로 3기로 나누고 있다.128)또한 카피지(Coppedge)는 예정론 논쟁을 중심으로 4기로 구분을 한다.129) 현대 웨슬리 연구가들인 아우틀러(Outler)130), 하이트젠레이터(Heitzenrater)131), 매덕스(Maddox)132)는 시기 구분에 있어서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그들의 신학적인 연구는 “초기 웨슬리: 1725-1738”, “중기 웨슬리: 1738-1765”, “후기 웨슬리: 1765-1791”로 구분하고 있다. 초기와 중기의 구분은 전형적인 도덕적 정직의 중요성 혹은 하나님과의 유사성에 대한 일치의 강조로부터 그의 신학에 최초의 긴장감을 형성시키는 은총에 의한 구원에 관한 보다 깊은 개신교적인 접근으로의 전이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중기와 후기의 구분은 기독자의 성결에 관한 웨슬리의 지속적인 관심과 은총의 우선성과 인간의 노력과의 성숙한 통합과 밀접하게 관련 있다.133) 즉, 초기와 중기의 분기점은 1738년의 올더스케잇 체험으로 종교 개혁의 신앙 의인화에 의한 강한 충격의 시간이고, 중기와 후기의 구분점은 예정론자들과의 논쟁 속에서 형성되어진 보다 성숙한 구원론의 정립 시기인 1765년이다. 웨슬리는 1765년에 저술한 그의 설교 “구원에 이르는 성서적 길(The Scripture Way of Salvation)”과 “주님 우리의 의(The Lord our Righteousness)”에서 체계적으로 구원의 길(via salutis)을 정립하고 있다. 그리고 그 해에 저술한 에세이 “감리교의 짧은 역사(A Short History of Methodism)”에서는 그 때까지의 감리교 운동의 형성과정을 개괄하고 있다. 파울러(James W. Fowler)는 자신의 신앙 발달 이론에 맞추어서 웨슬리의 신앙과 자기 인식의 성장과 발달 단계를 연구하였는데 흥미롭게도 그 역시 3기의 시기 구분과 유사한 구분을 하고 있다.134) 이러한 3기의 구분에 있어서 초기와 후기의 웨슬리의 신학의 유사점이 중기와 후기의 웨슬리 신학의 유사점보다도 크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이점은 웨슬리가 1770년에 출판한 표준 설교집에서 후기 설교들 중에 초기 설교를 아홉편을 결합시킨 것을 통해서도 드러난다.135) 따라서 유기적으로 시기를 구분한 일단의 학자들(Outler, Heitzenrater, Maddox, Fowler)을 기반으로 구원 이해의 필요조건인 죄 이해의 변화를 3기(“초기 웨슬리: 1725-1738”, “중기 웨슬리: 1738-1765”, “후기 웨슬리: 1765-1791”)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하겠다. 특별히 아우틀러와 하이트젠레이터가 경계하는 일반화의 위험성에 주의를 하며 고찰하도록 하겠다.136) 즉, 전체적인 상황에서 벗어나 웨슬리 자신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의 언급을 일반화하하는 위험성을 피하겠다. 가령 그의 저널을 보면 같은 사건을 시기별로 다르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데, 1725년에 웨슬리가 기독자였는가라는 물음에 1740년대의 그에게는 기독자가 아니라는 답이 나오고, 1770년대의 그에게는 그 당시에도 실질적으로 기독자였다는라는 결론이 나온다.137) 이것은 중기의 자기 인식과 후기의 자기 인식에 차이가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따라서, 그 시기의 상황 속에서 특정 사건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선결해야 할 과제이다. 이점은 신학적인 면에서도 똑같은 특성을 가진다. 특히 죄에 대한 그의 법정적인 관심과 치유적인 관심의 통합으로부터 발생하는 긴장 관계들을 고려하면서138) 웨슬리 신학에 있어서 그의 죄의 이해가 시기별로 어떠한 변화와 성장과 성숙을 과정을 거쳤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역사적 배경 웨슬리는 1720년 입학한 크라이스트 쳐치에서 1724년에 학사학위를 받은 뒤 석사 학위를 위한 공부를 위해서 옥스퍼드에 남는다. 그리고 1725년에 사제(Deacon) 안수를 받는다. 이 당시에 읽었던 제레미 테일러(Jeremy Taylor)의『거룩한 삶과 죽음의 규칙 및 훈련』(Rule and Exercises of Holy Living and Dying)은 그로 하여금 동기의 순수성의 중요함을 가르쳤고, 중간적인 입장이란 없으므로 일부분이 아닌 모든 삶이 하나님께 바쳐지지 않으면 마귀에게 바쳐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래서 웨슬리는 자신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 곧 삶 전체를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결심한다.139) 또한 같은 해에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의『그리스도를 본받아』(Imitatio Christi; Christian's Pattern)에서 웨슬리는 ‘의도의 단순함과 감정의 순수성(Simplicity of intention and Purity of affection)’이 ‘영혼의 두 날개(the wings of soul)’로서 그것 없이는 하나님의 산에 결코 오를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140) 따라서, 토마스 아. 켐피스의 영향으로 웨슬리는 영적 자아의 죽음, 하나님과의 신비적 연합과 같은 신비주의적 영성에 심취하게 된다.141) 특히 1731년 가을에 크라이스트 쳐치 교회에서 행한 설교인 “승리하는 자들의 지혜(The Wisdom of Winning Souls)”에서 토마스 아. 켐피스의 영향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설교의 주제는 진정한 복음주의의 동기와 목적인 거룩한 삶의 복음적 권능이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은총과 의무로서의 거룩한 삶을 역설하고 있다.142) 그리고 웨슬리가 목사들에게 한 훈계인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고 그들(너희들) 안에 있는 것을 행하라”143)는 아 켐피스의 Fac quod in te est(너의 안에 있는 것을 행하라 혹은 너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한다면 하나님께서 너의 선한 의도를 아실 것이다.)144)를 생각나게 한다. 부모님의 권고와 제레미 테일러의 영향으로 1725년 사순절 기간에 영적 일기(diary)145) 쓰기가 시작되었다. 이것은 거룩한 삶과 구원의 확증에 대한 희망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의 일기는 순전히 그가 분투했던 그의 죄와 단점들에 대한 자기 검증들로 가득 차 있다. 또한 웨슬리 일기의 목차는 그의 경건 생활이 ‘명상적인 경건(meditative piety)’146)을 특징으로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런 ‘명상적인 경건(meditative piety)’은 그의 어머니 수산나에 의해 영향을 받고 훈련을 받았다. 명상은 감리교도(Methodist)들이 거룩한 삶의 원천인 덕을 발전시키기 위해 사용한 영적 훈련의 진수였다. 명상의 중요한 목적은 자기 인식이었고 그 목적을 위해 사용된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 자기 검증이었다. 하이트젠레이터는 웨슬리가 사용한 방법이 로욜라의 이그나시우스(Ignatius of Loyola)의 영신 수련(Spiritual Exercises)의 방법과 유사하다고 주장한다.147) 웨슬리는 아버지의 충고인 “성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을 마스터하라”를 받아들인다.148) 베버리지(W. Beveridge)는 고대 동방 교회 문헌을 정리 수집한 Pandectae를 편집하였는데, 웨슬리는 이 편집을 통하여 크리소스톰을 소개받는다. 웨슬리는 옥스퍼드 일기에서 크리소스톰을 1726년 초에 읽었음을 기술하고 있다. 웨슬리는 아버지 사무엘의 충고로 크리소스톰을 마스터하였음을 표현하고 있으며, 크리소스톰의 제1차 자료를 직접 인용하고 있다.149) 그는 크리소스톰을 통해 구원의 신인협조설적 질서(Divine-human cooperation), 즉 하나님의 은총의 주도권과 인간의 도덕적 책임성을 동시에 강조하는 구원의 질서를 배웠다. 인간의 책임성은 회개와 믿음으로 구성된다. 크리소스톰에게 있어서 회개와 믿음은 동전의 앞뒤 양면과 같다. 은혜가 먼저 역사 하면, 자유의지는 회개와 믿음으로 반응한다. 그런데 웨슬리에게 있어서 회개만이 인간의 책임이요, 믿음은 하나님의 주시는 선물이다(엡 2:8). 이 점이 웨슬리와 크리소스톰의 다른 점이다. 1727년에 접한 윌리암 로우(William Law)의『그리스도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과『중대한 소명』(Serious Call)에서 내적 성결의 필요성을 강하게 확신한 웨슬리는 내적 성결을 위해서 영혼의 적절한 기질이 필요하고 그 기질을 위해서 모든 기회에서 은총의 수단을 활용해야 하며, 선행 할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함을 배웠다. 이 모든 것은 내적 성결, 즉 신자의 삶 속에서 하나님 형상의 회복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150) 그에게 있어서 90퍼센트 신자(Almost Christian, Half Christian)가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하나님의 은총을 통해서 모든 소유와 전 존재를 하나님께 헌신할 것을 결심한다.151) 1729년 늦가을에 웨슬리는 링컨 대학의 부름을 받아 강의를 하기 위해 엡워드를 떠나 옥스퍼드로 되돌아 왔다. 이때 동생 챨스 웨슬리(Charles Wesley)는 학문과 경건을 위하여 소수의 학생들과 모임을 가지고 있었다. 웨슬리는 챨스의 요청으로 이 소그룹을 지도하게 된다.152) 웨슬리는 소그룹을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그러한 방식으로 지도하지 않았다. 소그룹의 회원들이 일방적으로 웨슬리를 따라갔던 것이 아니라 서로 간에 영적 나눔이 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 소그룹 운동에 붙여진 명칭 중에 의미가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메도디스트(Methodist-규칙쟁이)’라는 명칭이다. 웨슬리의 부흥 운동은 그 시작부터 지금까지 ‘메도디즘(Methodism)’이라는 명칭으로 불려져왔다. 이 명칭이 옥스퍼드의 웨슬리안 그룹에게 붙여진 것은 1732년부터였다. 그런데 이 명칭이 웨슬리의 옥스퍼드 그룹에 처음으로 붙여진 것이 아니라 17세기에 ‘뉴 메도디스트(New Methodists)’라는 일단의 신앙적 경향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따라서, 당시의 상황을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역사적 사실을 통해 옥스퍼드의 웨슬리안 그룹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메도디스트(Methodist)’라는 명칭이 옥스퍼드의 웨슬리안 그룹에 적용되어진 첫 번째 기록은 윌리암 모간(William Morgan)이 죽고 존 클레이톤(John Clayton)이 그 운동에 참여한 시기인 1732년이다.153) 그런데 ‘메도디스트(Methodist)’라는 용어가 웨슬리안 그룹에 처음으로 사용되어진 것은 아니었다. 17세기에 영국과 유럽에 ‘뉴 메도디스트(New Methodist)’라는 명칭으로 불려진 사람들이 붙여진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아르미니우스적인 경향을 가진 비국교도들과 개신교도들이었다. 이들은 철저한 신앙의인화에 의해 인간의 가능성을 극소화시킨 당시의 개혁교회들에 반대하여 구원의 과정 속에서 신적인 은총이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인간의 응답(신실한 순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규칙과 방법에 의한 삶, 즉 경건한 규칙적인 일상 생활”을 주장했다.154) 이들은 예정보다는 보편적 속죄관에 기인한 인간의 의지와 책임성, 새계약 아래서 ‘율법’을 완성코자하는 신실한 순종, 성결 혹은 성화를 재촉하는 선행, 이중의 의인화 혹은 은총의 결과적 사역에 기인하는 내재적인 의를 강조하였다. 이점은 그들의 신학적 주장과 초기 웨슬리의 신학 사이에 대한 어떤 관계성을 보여준다. 1732년에 웨슬리의 신학은 분명히 당시의 칼빈주의자들이 ‘아르미니안주의’라고 부르는 신학적인 경향에 근거하고 있다.155) 아우틀러는 웨슬리의 초기 설교가 인간의 자유와 책임에 관해서 급진적일 정도로 기울어져 있음을 강조한다.156) 이 당시에 웨슬리는 그의 모든 삶과 신학에 있어서 신실한 순종(sincere obedience)의 비전을 가졌다. 그리고 그는 성결로 명칭되어지는 영혼의 거룩한 습관적 기질을 통해서 죄로부터의 정화, 영과 육의 오염으로부터의 정화를 통해 결과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덕을 받은 존재, 즉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진 존재가 되는 것에 목적157)을 두었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서 더욱 중요한 것은 외적 행위의 의라기보다는 영혼의 내적 경향성을 초래하는 성령의 사역에 있었다.158) “마음의 할례(The Circumcision of the Heart,1733)”를 비롯해서 1730년대 초기의 웨슬리의 설교들은 동일한 신학적인 관점과 관심을 가진다. 우선 기본적으로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는 하나님께 용납되어진 상태에 있는 존재로 그 표징은 외적 할례, 세례 혹은 어떤 외적인 행위가 아니라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진 올바른 상태의 영혼에 있다.159) 중요한 점은 완전함이라기보다는 신실함이며 잘하는 것이 아닌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160) 완전은 그리스도가 내 안에 거함으로서 사랑의 율법이 충족되어짐으로 성취되어진다. 17세기의 ‘뉴 메도디스트(New Methodists)’의 신앙적 경향과 ‘옥스퍼드 메도디스트(Oxford Methodists)’들의 신학과 신앙의 유사함이 이점에 있다. 이 시기에 웨슬리에게 영향을 준 사조들은 우선적으로 성서의 우선성이고, 그리고 초대 교부들과 중세와 영국의 경건주의자들, 대륙의 신비가들과 자유주의자들이었다. 특히 이 사실은 잉함의 일기(diary)161)를 통해서 간접 증명된다. 결과적으로 웨슬리는 그들의 영향으로 성결과 성화의 구원을 정적이고 고착되어진 것이 아니라 발전과 변화가 지속되어지는 것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단순한 의도(single intention)’162)를 가지고 삶 속에서 지속적이고 변화하는 성결을 추구하는 구원관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웨슬리는 ‘명상적 경건(meditative piety)’, 즉 생활을 위한 기도(공적 기도, 사적 기도), 성경 읽기, 금식과 새벽에 기상하기, 모든 공적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고, 이웃 사랑의 실천을 위해서 죄수와 병자를 방문하였으며, 고아와 과부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1732년에 윌리암 로우와의 직접적인 만남과 버리그논(Bourignon), 기욘(Guyon), 페넬론 추기경(Cardinal Fenelon), 피어 포이렛(Pierre Poiret), 몬스의 드 랑테(Mons de Renty)와 같은 사람들의 작품은 웨슬리로 하여금 거룩한 삶에 있어서 규칙들에 대한 커져가는 강박관념을 극복하고자 하는 그의 시도에 힘을 실어준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연합이고, 사랑이 전부라는 것이다.163) 그런데 신비주의의 영향은 웨슬리로 하여금 그가 오랫동안 채택했던 훈련과 규칙의 삶과 신비가들이 강하게 옹호하였던 모든 책무로부터의 면제 사이의 긴장을 초래하였다. 이것이 웨슬리를 곤경에 빠지게 했고 그는 이로 인해 자신이 하나님께 합당하지에 대해서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하이트젠레이터는 웨슬리가 지속적으로 물음을 던져왔던 확실성의 문제 즉 확증의 문제가 더욱 그를 곤란에 빠뜨렸다고 분석한다.164) 구원의 확증에 대한 확실한 근거나 증거가 없다는 딜레마에 빠진 웨슬리는 1735년 10월에 조지아로 선교 여행을 떠난다. 그는 그곳에서 인디안 선교를 통해 구원의 확신을 얻고자 했다.165) 혼란이 구원의 불확실함을 야기했고, 의심이 믿음에 도전을 가했다. 그는 구원에의 확신이 없었기에 미국에 도착하기 약 10일 전인 1736년 1월 25일에 만난 폭풍우로 인해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떨기 시작한다. 이때 그와는 달리 평안한 가운데 평소와 다름없이 예배드리는 독일의 경건주의자들이 있었다.166) 그들은 바로 모라비안들이었다. 이것이 모라비안의 경건에 대한 존 웨슬리의 첫 번째 경험이었고, 훗날 ‘확신(assurance)’에 대한 교리를 강조하게된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웨슬리의 일기를 편집했던 느헤미야 커르낙(Nehemiah Curnock)은 그 폭풍이 초기 감리교에 있어서 결정적 사건 중 하나라고 주장하였고 잉함이(Ingham) 감리교도에서 모라비안으로 전향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해석하였다.167) 1736년 조지아주 사바나 촌에 도착한 웨슬리는 다음날 독일 교회 목사인 스팡겐베르그(August Gottlie Spangenberg)를 만나서 믿음 특히 예수 그리스도와 자신과의 관계에 대한 대화168)를 나눈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웨슬리는 자신이 믿음이 없다는 대답을 한다. 이 대답을 듣고 스팡겐베르그는 “당신은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불충분합니다”라고 응답한다.169) 1737년 12월부터 1738년 1월에 영국으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 다시금 1736년 1월 25일의 상황을 맞게 된다. 거의 영국에 다 왔을 때 다시 한번 죽음의 위기를 맛보는 풍랑 속에서 구원의 확신 없이 두려워하고 있는 자신을 이렇게 회상하였다. 나는 인디안들을 회심시키기 위해서 아메리카로 갔다. 그러나 오 누가 나를 회심시킬 것인가? 이 악한 불신앙의 마음으로부터 나를 구원할 그 분은 누구인가? 무엇인가? 나는 맑게 갠 여름종교를 갖고 있다. 나는 말할 수 있다. 위험이 가까이 없는 한 나는 나 자신을 믿을 수 있다. 그러나 죽음이 나에게 다가올 때 나의 영혼은 고통을 당한다. 나는 죽은 것이 얻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나는 두려워하는 죄를 갖고 있다. 내가 나의 마지막 방적 실을 잣을 때 나는 해변에서 멸망할 것이다.‘170) 웨슬리는 1738년 1월29일 신대륙에서의 경험을 철저하게 뒤돌아보게 된다. 이 때 기록한 일기는 훗날 자신의 영적 상태를 철저히 뒤돌아보면서 기록한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그의 전반적인 회심과정과도 관련이 있다. 조지아에 있는 인디안 원주민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가르치기 위해서 모국을 떠난 지 어느덧 2년 4개월 정도가 흘렀다. 그 동안 나는 나 자신에 대하여 무엇을 배웠던가? 다른 이들을 회심시키려고 미국에 갔음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마저 전적으로 하나님께 회심하지 않았으면서(적어도 약간의 의심이 있는 것) 다른 이들을 회심시키러 미국에 갔단 말인가? ‘내가 이상해 진 것이 아니다. 제정신으로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그 동안 많은 이들이 나를 위로하였듯이), 나는 ‘악마도 그렇게 할 수 있어요’ 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 정도를 믿음이라고 볼 수 있을까? 약속의 계약을 아직 맛보지 못한 상태일 것이다. 예수께서 갈릴리 가나에서 첫 번째로 ‘그의 영광을 드러내셨을 때’, 제자들도 그를 믿었을 지는 몰라도 ‘세상을 이길만한 확신’을 갖고 있지는 못하였다. 내가 원하는 믿음은 바로 이것이다;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서 나의 죄가 용서함 받고 하나님과 화목 되었다는 확실한 믿음과 자신감을 하나님 안에서 소유하는 것이다. ...’171)
지금까지 웨슬리가 1725년부터 1738년까지 어떤 신학적인 여정을 걸었는지 살펴보았다. 이 시기의 웨슬리의 죄 이해의 특성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는 주로 그의 설교이다. 따라서, 그의 죄 이해를 살피기 위해서는 이 시기의 설교가 주 자료가 되어야 한다. 200주년 기념판에 있는 아우틀러가 편집한 웨슬리 설교 중에 이 시기의 설교들은 총 스무편이 있다. 19세기 중반에 웨슬리의 작품들을 모아 편집한 토마스 잭슨(Thomas Jackson)의 전집(Works)에는 이 시기의 설교들이 단지 여섯편172)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웨슬리 자신이 초기의 설교들을 출판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본들의 진정성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기의 설교들은 사본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웨슬리 자신이 십여개의 설교와 몇 개의 단편들을 남겼고, 동생 찰스 웨슬리 또한 그의 형으로부터 받은 사본을 복사해서 남긴 것이 일곱편이 있다.173) 이 200주년 기념판이 나오기 전까지는 잭슨판(Jackson)의 141편의 설교가 웨슬리의 설교 중에 현재까지 전해진 것으로 여겨졌지만, 프랑크 베이커(Frank Baker)와 하이트젠레이터의 연구 결과로 사본으로 존재하는 설교까지 포함해서 웨슬리의 설교가 총151편임이 밝혀졌다.174) 비록 웨슬리 당시에는 출판되어지지는 않았지만 사본으로 남겨진 초기의 설교들은 웨슬리 신학의 태동과 일련의 발달 과정을 연구함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설교들은 젊은 목사로서, 옥스퍼드의 교수175)로서, 그리고 시골 교구의 아버지의 부제로서 기독자의 신앙과 삶에 대한 초기 웨슬리의 관점들이 얼마나 전형적으로 영국 국교회적인가를 보여준다.176) 2. 초기 웨슬리의 죄 이해 초기 웨슬리의 설교들 중에서 당시의 그의 구원관과 관련된 신학적 측면이 강하게 드러나는 설교들은 1730년 11월 1일에 옥스퍼드의 올 세인트(All Saints)에서 처음 설교되어진 “이해력에 관한 전망(The Promise of Understanding)”177)이후의 것들이다. 그 설교들의 공통적 관심사는 참 기독자로서의 내적 성결과 거룩한 삶이었다. 참 기독자로서의 확실성에 대한 물음이었다. 기독자로서의 확실성의 확인은 인간적인 시각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을 뛰어넘는 방법의 사용에 있다.178)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겸손으로 인도하여 믿음으로 걸어가도록 하기 위하여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신다. 인간의 현 상태에 있어서 웨슬리는 창조의 완전성과 타락의 병약성을 비교한다. 하나님의 형상179)으로 피조된 아담은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올바로 향유함으로서 지복(Happiness)의 상태에 있었고 그에게 있어서 실수나 의심은 낯선 것이었다.180) 하나님의 형상 속에서 피조된 인간은 천사보다는 조금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본성은 완전하고 신적이며 천상적인 것이었다.181) 창조의 완전성 속에 있던 인간은 그의 자유를 시험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를 극복하지 못함으로서 타락하게 된다. 즉, 의지의 오용으로 인한 불순종182)때문에 타락하게 된 것이다. 타락의 결과는 먼저 육체적 죽음을 불러왔으며,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형상이 손상되었다. 또한 인간의 이해력에 혼돈과 우둔함이 나타났고, 인간의 의지는 악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었으며 인간의 자유는 악으로 가득찬 노예의 상태가 되었다.183)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히 손상된 자연적 인간은 세상을 향하여서는 살아있고 하나님을 향하여서는 죽어 있다.184)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을 향하지 못하게 되었다. 여기서 웨슬리는 인간의 현 상태, 즉 하나님의 형상이 손상되어진 상태를 병들어 있는 상태로 이해한다. 그리고 특히 원죄를 본성의 생래적 부패(inbred corruption of his nature)185)로 이해했으며 또한 인간 안에 있는 죄성을 병적인 요인으로 보았다. 악한 감정들은 엄청난 사슬일 뿐만 아니라 엄청난 질병이다. 우리의 본성은 병들어 있고 노예상태에 있다. 따라서, 지성은 희미해지고, 마음은 병들게 되었다. 우리의 몸과 혼과 영은 가장 치명적인 병으로 감염되어, 퍼졌고, 가득 차게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질병들, 상처들, 그리고 정화되어야할 종기들로 가득차 있다. 우리의 모든 동물적인 갈망과 악마적 기질, 모든 종류의 정욕, 자만, 이기심은 우리를 죽음에 몰고 갈 상처들이며, 기분 나쁜 종기들의 하나이고 완전한 부패이며 부정함이다.186) 인간의 본성은 병들어 있고 그 본성으로 인한 기질 또한 정화되어져야 할 상태에 있다. 따라서, 인간은 치료되어져야 할 존재이고 약과 의사가 필요한 상태에 있다. 그러나, 자신의 병적 상태를 인식하지 못하고 치료를 거부하게 된다면 인간은 소망 없는 비참한 상태에 처하게 된다. 이제까지 말하여진 것으로부터 살펴보건대, 내적인 질병을 의식하지 못하고, 이 질병의 유일한 치료를 거절하는 사람들의 상태는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몹쓸 병마가 그들을 사로잡았으며, 그들의 심중이 심히 악합니다. 그들의 지각은 어두워졌습니다. 무지와 실수의 구름이 그들의 눈을 가립니다. ... 만일 인간이 자연적으로 타락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 질병을 전제로 해서 나온 치료법과 마찬가지로 이 사실에 근거를 둔 유대교나 기독교와 같은 종교는 헛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187) 따라서, 웨슬리는 이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하나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바로 ‘마음의 할례(the circumcision of the heart)’이다. 이 ‘마음의 할례’는 영혼의 습관적 기질인 성결이다. 성결은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형상대로 새로워진 영혼의 올바른 상태이다. 직접적으로 죄와 영과 육의 모든 오염으로부터 깨끗해지는 것을 의미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덕(이 덕은 겸손, 믿음, 소망, 사랑이다.188))의 결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완전(마5:48)해지는 것이다.189) 그러므로 완전한 율법인 마음의 할례는 마음의 살아있는 희생으로 거룩한 사랑의 불꽃 속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끊임없이 봉헌되어져야 할 것이다. 즉 ‘마음의 할례’는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사랑이며, 마음의 순수한 의도이고, 소명으로 눈을 고정시켜 그 소명에 봉사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할 때에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수 있는 것이다.190)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웨슬리가 본질적으로 행위의 의(works-righteousness)가 아닌 내적 종교(inward religion)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의 참 제자, 하나님께 용인된 상태에 있는 자의 표징은 외적 할례나 세례 혹은 어떤 외적 형태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갱신되어진 올바른 영혼의 상태이다.”191) 하나님 형상의 회복을 위한 첫걸음은 겸손, 바로 자기 인식이다. 그리고 겸손으로 인해 회복된 인간의 이해력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힘입어서 우리의 의지를 회복하게 한다. 회복된 자기 인식을 통해 우리 모두가 어리석고 악하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192) 그것은 바로 믿음과 관련 있다. 이 믿음193)이 인간의 질병을 치유하기 위해서 하늘에서 주어진 단 하나의 약이다. 죄된 인간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통해 주어진 믿음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 즉, 죽음의 문으로부터 온전한 건강함으로 회복되어지며, 우리의 병이 치유되고, 우리의 상처가 회복되고 우리의 불결함이 정화되어져야 한다.194) 그런데, 여기서 웨슬리가 말하는 믿음은 ‘견고한 성이라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강한 무기’(고후 10:24)이다.195) 즉 웨슬리는 믿음은 강한 무기여야 한다는 사실 속에 믿음에 다양한 정도가 있다는 것을 내포시켰기 때문에 그의 관점에서 보면 당연히 참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강한 믿음이 있어야하는가?196)라는 물음이 제기되어진다. 그러하기에 웨슬리는 세상으로부터 난 자와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가 누구인가를 구분 할 수 있는 판단 기준을 제시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는 겸손으로 할례를 받은 자, 믿음으로 할례를 받은 자로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자이고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은 자이다.197) 따라서, 웨슬리는 참 종교의 진정한 열매 혹은 증거인 덕(예수 그리스도의 덕으로 특히 사랑)의 활동과 영혼의 내적 경향의 외적 증거를 검증할만한 수단들을 사용할 것을 권고하며 마음의 할례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오직 믿음’ 뿐만이 아니라 겸손, 소망, 사랑임을 말하고 있다.198) 하나님 형상과 영광스런 자유, 그리고 완전한 건강함의 회복은 우리에게 단하나 필요한 것으로 이들의 향유가 인간 창조의 유일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지는 오로지 우리의 성화 즉, 악한 속박으로부터의 우리의 회복, 이웃 사랑과 우리의 창조자에 대한 우리의 사랑에 있다. 하나님 섭리의 목적도 이것에 있다. 따라서 성령의 모든 사역은 우리의 건강과 자유와 성결을 회복케 한다. 그리고 우리의 강건과 자유와 성결은 우리 본성의 내적 질병과, 자기에 대한 사랑, 이생에 대한 사랑을 치유하는데 목적되어져 있다. 그것들은 우리의 외적 기질에 매일의 양식을 준다. 그럼으로서 우리는 적절한 영양분을 공급받아 우리의 영혼의 건강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회복하게 된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인간의 행복을 완전하게 하는 유일한 필요 조건이다.199) 사랑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고 그의 영광의 광채이며 완전한 자유이다. 사랑은 영혼의 건강이며 영혼의 모든 힘의 완전한 발현이며, 그 능력의 온전함이다. 그런 까닭에 사랑의 향유가 인간 창조의 목적이다 그리고 사랑의 회복이 인간에게 단 하나 필요한 것이다.200) 웨슬리는 이점에 근거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구속의 목적이 바로 인간을 건강과 자유로 회복시키시는 것에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이 목적을 위해 우리 본성의 모든 영적인 병을 치유하시고 우리의 본성을 갱신시키신다201)고 보았다. 웨슬리는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특성 중에 치유자로서의 특성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에 의해서 치유되어가고 있는 기독자가 해야 할 일이 있음을 강조한다. 그것은 제레미 테일러와 토마스 아 켐피스, 그리고 윌리암 로우와 같은 신비 영성가들에 의해서 영향받은 것이다. 우리의 본성의 갱신을 위해 단순한 생각, 순수한 의도에 우리를 고정시켜야합니다. ... 우리는 많은 수단들을 사용해야 합니다. ...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신적인 본성에의 참여자가 되고, 사랑에 의해 작용하고 우리를 하나님과 한 영이 되게 하는 그 신앙에 합당한 지고의 척도를 다시 획득하는 것을 우리의 유일의 관심사가 되도록 하십시오.202) 인간의 회복과 완전을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그의 피를 흘리셨고 성령께서 인간을 돌보신다. 따라서 인간이 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높은 소명의 상급의 표징 즉, 죄의 사슬과 병과 죽음에서 자유와 건강과 영원한 생명으로 향하는 것이다.203) 여기서 웨슬리는 인간이 하나님의 섭리의 참여자이며 파트너가 되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하기에 웨슬리는 당시에 엄격한 규칙과 방법을 세우고 실천하고자 하였다. 지금까지 웨슬리 초기 설교를 통해 구원론 형성의 필요 조건인 죄의 이해를 중심으로 그의 신학을 살펴보았다. 웨슬리는 ‘참 기독교란 무엇인가?’와 ‘자신이 참 기독교인인가’라는 물음 아래 ‘은총에 의한 구원’204)의 교리를 형성해 갔다. 이 시기에 그의 신학적 입장은 그로 하여금 자비와 헌신의 활동들로 특징지어지는 훈련된 삶의 방법들을 활용하게 하였다 할지라도 강조점은 항상 내적 성결이었다. 행위들은 명상적 실천들을 통해 자라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덕들에 대한 증거들이었다.205) 이 당시 웨슬리에게 있어서 구원이란 창조시의 인간의 원상태 즉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진 영적 건강과 영적 자유와 관련 있다. 하나님과 타락한 인간과의 관계회복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은총의 구속적 사역의 목적이었다. 이런 회복은 단지 신자가 사랑을 통해 작용하는 믿음206)을 가질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사랑을 통하여 작용하는 믿음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와 인간의 관계회복은 인간으로 하여금 한층 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그와 함께 동행207)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것은 인간의 현 상황이 부패하고 병들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죄는 바로 인간의 병들고 부패한 본성이다. 따라서, 전에 잃었던 사랑의 순수성을 회복해야 하고, 그리스도의 덕들을 자라나게 함으로써 죄된 경향성을 정화하고 치유해야만 한다. 따라서, 신앙이 가득한 기독자의 삶은 은총으로 충만한 삶이어야 하며, 그는 명상의 실천과 자기 검증, 그리고 기도 등으로 그 덕들을 자라게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성장은 그 덕들의 표징으로서의 헌신과 자비의 활동을 내용으로 하는 규칙적인 삶으로 확증되어져야만 한다. 따라서, 웨슬리는 이러한 관점에서 성서와 초대 교부, 자비의 활동과 헌신적인 묵상, 윤리적인 책임성과 은총의 신학, 규율적인 헌신, 방법론적인 명상, 그리고 웨슬리 자신만의 독특한 기독자의 생각과 삶의 형태를 형성시킨 실천적 경건을 강조한다. 이점이 초기 웨슬리의 신학과 목회의 특징들을 창출하였다. C. 중기(1738~65, 속죄의 법정적 특성의 유입) 1. 역사적 배경 영국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배 안에서의 경험은 웨슬리로 하여금 확증의 문제에 더욱 빠져들게 하였다. 믿음의 증거는 불신앙의 증거와 같은 방식, 즉 내적 감정208)의 문제였다. 이것은 이전에 가졌던 인식을 근거로 하는 확증에 대한 새로운 혼란을 가중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1738년 2월 7일209) 웨슬리는 피터 뵐러(Peter Böhler)와의 만남을 통해 참 믿음은 모든 의심을 제거한다는 것을 더욱 확신한다. 뵐러와의 만남을 통해 구원을 위해서는 단지 믿음만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고, 자신이 지금 불신앙의 상태에 있음을 확신한다. 자신이 불신앙의 상태에 있다고 확신한 웨슬리는 1738년 3월 4일에 뵐러를 만나 설교단을 떠날 결심을 말했을 때, 뵐러는 “믿음이 생길 때까지 설교하시오. 그러다 보면 믿음을 갖게 될 것이고, 그 때부터는 믿음을 설교하게 될 것이요”210)라고 권면한다. 조지아에서 모라비안의 원시 기독교적 모습에 감명을 받은 웨슬리는 이제 뵐러를 통해서 그들의 신학적 명제를 받아들이게 된다.211) 죄와 두려움과 의심을 없애는 확신에 대한 경험의 부족 때문에 웨슬리는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의 상태에 있다고 확실하게 주장할 수 없었다.212) 뵐러는 웨슬리가 자신의 신앙상태를 적절하게 깨닫고 인식하도록 도와주었다. 물론 웨슬리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믿음은 단지 지적으로 인정하는 믿음(assentia)이었다. 하나님께 전 존재를 걸고 신뢰하는 믿음(fiducia)이 체험되지 못한 것이었다. 더군다나 뵐러는 웨슬리에게 순간적인 회심(instantaneous conversion)이 성서적이라는 믿음213)을 주었고, 웨슬리는 증거를 찾으려고 신약성서를 연구하면서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214) 웨슬리는 뵐러와 대화를 하면서 확신을 추구하게 되었다. 웨슬리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이 선결조건임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마음의 확신이 부족했기에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 찰스 웨슬리의 회심 경험은 그로 하여금 확신의 모라비안적인 경험(순간적 구원의 확신)이 자신에게도 멀지 않은 미래에 발생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했다.215) 그러하기에 1738년 5월 34일 저녁의 올더스케잇 체험은 자연적으로 그에게 있어서 이러한 기대가 충족되어진 시간이었다.216) 이 체험을 통해서 웨슬리는 믿음에 정도(a degree of faith)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217) 믿음의 정도에 대한 개념은 웨슬리로 하여금 그가 초기에 신비 영성가들에게 영향받았고 두려움 속에서 확증(assurance)을 추구하게 만들었던 신앙과 불신앙(belief and unbelief)의 이원론을 극복하게 했다. 올더스게이트 체험 이후, 웨슬리는 6월 18일 옥스퍼드의 성 메어리 성당에서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엡2:8)라는 본문으로 설교하였다. 이 설교가 나중에 출판된 그의 설교집 가운데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The Salvation of Faith)”이라는 제목으로 첫 장에 편집되었다. 웨슬리는 그 설교 속에서 여러 가지 유형의 그릇된 믿음, 즉 이교도의 믿음, 악마의 믿음, 심지어는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사도들이 가졌던 믿음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그리고 웨슬리는 최근에 있었던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확신 있게 언급하면서, 죄와 두려움과 죄의 구속으로부터 개인을 구원하는 참 믿음을 현실에서 가질 수 있음을 강조하면서 설교를 끝맺었다. 이러한 믿음은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다. 1746년에 출판된 설교들 중 이 시기부터 설교되어졌던 5편의 설교들218)은 모라비안으로부터 배운 루터의 신앙의인화 복음을 본질적인 중심 내용으로 하고있다. 1738년 6월 4일 웨슬리는 독일의 마린보른(Marienborn)과 헤른후트(Herrnhut)에 있는 모라비안공동체(Moravian communities)를 방문했다. 웨슬리는 그들로부터 많은 것219)을 배웠으며 후에는 모라비안 교도들의 조직유형220) 중 밴드(band)등을 감리교 조직에 활용하기도 하였다. 1738년 9월 17일 새로운 확신을 얻고 영국으로 되돌아 왔다. 그러나 곧바로 웨슬리는 성화를 의인화 안에 함몰시키며 동시에 죄의 용서를 죄에서부터의 자유에 의미로까지 확장시킴으로서 발생할 수 있는 모라비안들의 정숙주의(quietism)와 신앙제일주의를 비판한다. 1739년 가을에 웨슬리는 몰더와 논쟁하였다. 몰더는 페터레인 신도회 내에 참 종교가 없다고 말하면서 모든 은총의 수단(means of grace)을 그만 두어야 하고, 모든 경건의 선행도 그만 두고 대신 시 46:10 말씀에 따라 주님 앞에서 조용히 남아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참 믿음을 가질 때까지 그리스도 이외에는 아무런 은총의 수단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웨슬리는 이러한 주장이 신자들로 하여금 율법폐기론(antinomianism)에 빠지게 만든다고 공격하였다. 악행을 피하는 것, 선행을 실천하는 것, 은총의 수단을 사용하는 것은 삼중적으로 성도의 영성생활에 필요한 것임을 웨슬리는 힘주어 강조하였다. 이점은 모라비안뿐만 아니라 칼빈주의자들221)과의 끊임없는 논쟁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1739년에 웨슬리는 칼빈주의자들의 예정에 관한 교리로 인해 그를 야외 설교단으로 인도했던 옥스퍼드 시절의 제자 휫필드와 논쟁을 시작하게 된다. 당시 휫필드의 부흥 운동 공동체에 퍼져 있던 예정에 대한 교리와 그 교리를 공개적으로 설교해줄 것을 요청하는 분위기222)는 웨슬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두를 위해서 그 자신을 보상으로 주셨다는 것을 선언해야할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웨슬리는 1739년 4월 28일 “값없이 주시는 은총(Free Grace)”이라는 설교를 쓴다. 이 설교는 부분적으로 거의 치유되지 않았던 웨슬리와 휫필드 사이의 개인적 불화로 표시되는 영국 부흥운동의 주요 분열의 표징이다.223) 그는 이 설교를 통해 칼빈주의자들의 관점에 있는 예정에 관한 교리, 특히 유기의 교리(doctrine of reprobation)에 대해 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또한 그 해 11월에 쓰여져서 설교되어진 기독자의 완전 성결에 대한 “기독자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224)과 웨슬리 형제의『찬미와 성시집』(Hymns and Sacred Songs)의 출판은 휫필드로 하여금 웨슬리에게 유감을 표하게 한다.225) 1740년에는 웨슬리는 두 종류의 논쟁 속에 처하게 된다. 하나는 정숙주의와 관련한 모라비안과의 논쟁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1739년에 시작된 예정론에 대한 논쟁이었다. 특히 표준 설교 중에 “은총의 수단들(The Means of Grace,1746)”과 “종의 영과 양자의 영(The Spirit of Bondage and of Adoption,1746)”은 모라비안을 향해 있다. 결국 1740년 7월 18일 웨슬리는 그의 지지자 75명과 함께 페터레인 신도회를 떠남으로서 모라비안과 결별하게 된다.226) 웨슬리는 모라비안의 방법이 성서에 의해 지지 받지 못하는 방법으로 신비주의자들의 이론을 적용한 것이라고 비판한다.227) 예정론자들과의 논쟁 속에서 1740년228)에 아주 특기할 만한 사항이 발견되다. 지속적으로 그의 신학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선재적 은총(prevenient grace)의 개념이 왓츠(Isaac Watts)의 작품을 확장해 발췌한『선택과 유기의 교리에 관한 일련의 고찰들』(Serious Considerations of the Doctrines of Election and Reprobation)이라는 웨슬리의 논문 속에 발견된다. 그는 여기서 무조건적인 유기를 강하게 거부하고 있으며, 또한 하나님의 은총의 소명을 경청하게 하는 모든 이에게 주시는 하나님에 의해, 그리고 그 구원을 받도록 하는 믿음에 의해 주어지는 권능의 내적 충족함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229) 또한 1741년에 웨슬리는 “기독자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이라는 설교 속에서 구원은 우리 안에 있는 손상되어진 하나님의 형상의 전적인 회복이고 그 완전함은 죄를 짓지 않는 우리의 소극적인 힘의 회복이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적극적인 힘의 회복이라는 것을 피력한다.230) 이런 예정의 교리에 대한 견해의 차이는 1741년에 당시 영국의 부흥운동 진영을 분열시킨다. 여기 첫 번째 분열이 있었다. 그 분열 중에 우리는(warm men)는 휫필드씨로 하여금 단지 의견의 차이임을 설득하고자 했다. 사실 보편적 구속을 믿었던 이들은 전혀 분리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한된 구속을 믿었던 이들은 그런 치명적인 오류 속에 있는 이들과는 결코 친분을 맺을 수 없다는 결론으로 인해 어떤 화해에도 귀를 기울이지 안았다. 그래서 현재 두 종류의 메소디스트가 있는 것이다.231) 1740년부터 1741년 사이에 있었던 예정론 논쟁은 웨슬리에게 예정론을 ‘본질적’ 교리의 측면 속에 놓게 했지만, 신학적 사유가 더욱 성숙되어진 1770년대에 그는 예정론을 하나의 ‘의견’으로 분류한다.232) 사실 웨슬리의 주요 관심사는 신자 안의 ‘마음과 삶의 성결’의 배양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 성장을 방해하는 것들에 반대를 한 것이다. 웨슬리는 이런 성결의 삶을 위해 야외 설교, 성서주해, 속회 조직, 은총의 수단들을 활용하였다. 이런 그에게 성결의 삶에 큰 방해물인 칼빈주의의 율법폐기론적 경향과의 논쟁은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1746년에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faith alone)’에 관한 설교들을 중심으로 편집한 설교집 속에서도 ‘거룩한 삶’을 강조한 “성령의 첫 번째 열매(The First Fruits of the Spirit)”에서는 죄의 법정적인 측면과 치유적인 측면의 조화의 노력233)이 시작된다. 이 노력은 그의 평생을 통해 지속되었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신자의 죄의 문제에 관한 중기 웨슬리의 견해는 1761년에 쓰여진 “기독자의 완전에 대한 더 깊은 고찰들(Father Thoughts upon Christian Perfection)”과 1762년의 “방황하는 생각들(Wandering Thoughts)”, 1763년에 쓰여진 “신자 안에 죄(Sin in Believers)”라는 설교들 속에서 알 수 있다. 또한, 1767년에 쓰여진 “신자의 회개(The Repentance of Believers)”에서는 원숙되어진 웨슬리의 견해를 알 수 있다. 여기서 웨슬리는 과정으로서의 완전과 관련되어진 신자의 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또한 “방황하는 생각들(Wandering Thoughts,1762)”이라는 설교에서 웨슬리는 ‘방황하는 생각들(Wandering Thoughts)’이 소위 적절한 죄의 종류에 포함되어져서는 안되다고 밝히고 있으며 의지적인 죄와 무의지적인 죄를 구분한다. 1748년에 두 번째로 출판되어진 설교들에서는 본격적으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faith alone)’과 ‘거룩한 삶(holy living)’이라는 웨슬리 신학의 두 축을 조화시키고자 노력한다. 이 설교들 중에 “거듭남의 표징들(The Marks of The New Birth)”,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들의 위대한 특권(The Great Privilege of those That are Born of God)”에서는 거듭남과 의인화를 구분한다. 그러나, 여전히 세례에 어떤 은총적 힘이 항상 작용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더스케잇 체험은 웨슬리로 하여금 거듭남이 의인과 확증에 관련이 있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따라서, “마음의 할례(The Circumcision of The Heart)”에서 마음의 변화를 세례와 연관지었지만, 여기서는 복음적 회심과 연관시킨다.234) 또한 1748년과 1750년에 출판되어진 그의 열세편의 산상 수훈 설교들은 신앙 의인화의 열매로서 기독자의 삶을 다루고 있는데 그 목적은 의인화의 믿음과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사이의 균형과 통합에 있었다.235) 1750년에 세 번째로 출판된 웨슬리 설교문들 중에 세 편은 도덕법, 다른 세 편은 영국 국교회와의 관련 속에서 형성되어진 것들이다. ‘내재적인 의(inherent righteousness)’ 때문에 ‘믿음에 의한 구원’과 ‘거룩한 삶’에 대한 웨슬리의 미묘한 균형잡기는 가장 큰 잠재적인 위험을 발생시켰다. 그 위험은 바로 도덕주의이다. 따라서 웨슬리는 “율법의 기원, 본질, 특성들, 그리고 용법(The Original, Nature, Properties, and Use of the Law)”, “믿음에 의해 세워지는 율법, 논의 1,2(The law Established Through Faith, Discourse Ⅰ&Ⅱ)”라는 설교를 통해 율법과 복음의 역동적인 상호 의존을 다루고 있다.236) 1740년 여름부터 웨슬리의 저술을 도운 토마스 리차즈(Thomas Richards)와 토마스 웨스톨(Thomas Westall)은 사실 웨슬리가 요구할 때 어디에나 가서 설교하는 전임 평신도 설교가였다.237) 이러한 평신도 설교가들이 1745년에 이르러서는 무려 오십여명에 이르게 되었고 1749년 연회 후 순회설교제도를 만들면서 협동 설교가들의 임무가 정해졌다.238) 감리교 운동이 점차적으로 평신도 운동의 형태를 띄어 감에 따라 영국 국교회는 이전에 있었던 종교적 갈등이 다시 시작되어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의 시각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영국 국교회의 이러한 우려와 관련해 웨슬리는 “열광주의의 본질(The Nature of Enthusiasm, 1750)”이라는 설교에서는 감리교 운동이 광신주의(fanaticism)와 동일한 의미의 열광주의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이고자 했으며,239) “편협한 신앙에 대한 주의(A caution against Bigotry,1750)”에서는 당시 국교회에서 발생했던 평신도 설교가들을 세움으로서 또 다시 종교적인 분열이 일어날까 걱정하는 경향에 대하여 그 걱정이 기우임을 말하고 있다.240) 또한 “보편 정신(Catholic Spirit,1750)”에서는 자신의 신학 방법론이 영국 국교회의 신학방법론인 비교리적인 신학방법론의 전형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웨슬리는 ‘핵심교리’와 ‘의견’과의 차이를 분명히 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 시기에 칼빈주의자들과의 예정론에 관한 논쟁과 관련이 있다. 반면에 그의 말년에 쓰여진 설교인 “신적 존재의 통일성(The Unity of the Divine Being,1789)”에서는 핵심 교리와 의견의 사이의 구분이 그리 엄격하게 나타나고 있지는 않는다.241) 이것은 그의 말년에 칼빈주의자들과 화해의 노력과 관련 있다. 18세기 예정에 관한 논쟁 중에서 가장 중요한 논쟁 중에 하나는 옥스퍼드 시절에 그의 학생이었던 허비(James Hervey)242)와의 저술 교환이었다. 이 저술 교환은 웨슬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의에 관한 교리를 확립하게 한다. 허비의 주요 작품은『테론과 아스파지오』(Theron and Aspasio)243)로서 세 권으로 되어 있다. 주로 성서에 관한 교리들, 원죄, 속죄, 그리고 특히 그리스도의 덧입혀지는 의(the imputed righteousness of Christ)에 관해 다루고 있다. 사실 웨슬리는 허비의『테론과 아스파지오』의 많은 부분을 긍적적으로 보았고 높이 평가했다. 테일러 박사(Dr. John Talyer)의 잘못된 관점에 반대하여 1756년에『원죄에 관한 교리』(The Doctrine of Original Sin, according to Scripture, Reason, and Experience)를 출판했을 때, 웨슬리는 “허비씨의 대화들 속에는 이 주제에 대한 매우 탁월한 언급들이 있다.”고 쓰기도 했다.244) 또한 익명의 저자로부터 허비가 공격받을 때에도 웨슬리는 그를 옹호하기도 한다.245) 그러나 웨슬리는 허비의 ‘그리스도의 덧힙혀진 의’의 특수한 구절의 사용에 강하게 반대한다. 왜냐하면 허비의 의와 의인화에 대한 견해는 비성서적고 성화와 성결을 취약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웨슬리는 허비의 율법폐기적인 경향을 경계246)했던 것이다. 웨슬리의 논적이었던 허비(James Hervey)는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성하신 이래 어떤 성도도 율법을 성취할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웨슬리는 이러한 율법폐기론은 하나님을 죄의 창조자(죄 짓게 만드는 분)로 만든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의를 덧힙혀지는 동시에 내재적인 측면에서 살피게 된다. 하나님의 의에 동참하는 것은 우리의 죄악 된 본성이 갱신되어 하나님의 형상, 곧 의로움과 성결함에 동참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247) 완전한 기독자는 하나님의 본성의 파트너이며 동참자가 된다. 웨슬리는 말했다. “당신의 완전한 본성의 파트너로 나를 당신 안에 있게 하소서, 새로운 죄 없는 피조물로.”248) 오직 사랑만이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를 확신시켜 준다. 결국 그리스도를 통한 신자의 의는 덧입혀졌을(imputed) 뿐만 아니라 내재적이(inherent)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내재적인 의는 하나님이 우리를 용납하시는 근거가 아니라 덧입혀지는 의의 열매이며 결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덧입혀진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그 의를 심어(implant)주신다.249) 이것이 신자의 실제적인 변화로서의 성화와 연결되어지는 것이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원죄에 대한 교리는 지극히 중대한 문제였기에 1756년에 비국교도 목사인 테일러 박사의 원죄 교리에 대응하여 방대한 양의 논문『원죄에 관한 교리』(The Doctrine of Original Sin, according to Scripture, Reason and Experience)을 저술한다. 원죄(Original Sin)에 대한 테일러 박사의 논문은 계몽주의 시대에 있어서 이 교리의 타당성에 대한 심각한 도전을 주었고 인간에 대한 극단적인 낙관주의를 피력하였다. 이런 이유로 웨슬리는 원죄에 관한 논문을 쓴 것이다. 그러나 웨슬리의 원죄에 관한 논문은 너무도 방대했기에 몇 년 후에 이 교리를 요약하여 독자들이 읽기 쉽게 “원죄(Original Sin,1759)”라는 설교를 출판한다.250) 그는 이 설교 속에서 원죄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표명한다. 웨슬리는 “원죄(Original Sin)”라는 설교 이후로 칭의와 거듭남 이후의 신자의 죄에 관해서 다시 집중하고 있다. 1760년부터 1763년까지 작성하고 출판한 설교들 중의 상당수가 더욱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과 ‘거룩한 삶’의 긴장 관계를 조화시키고자 신자 안에 남아 있는 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의 설교 “거듭남(The New Birth,,1760)”은 초기 웨슬리의 견해였던 전통적인 영국 국교회 구원론에서 원죄에 대한 일반적인 치료약이 항상 교회에 있고 세례의 성례전에 있다는 관점에서 벗어나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그는 거듭남을 복음적인 회심과 연관시키고 있다.251) “황야의 상태(The Wilderness State,1760)”에서는 기독자의 영적인 순례의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어려움과 확증 추구에 있어서 일어나는 종교적 두려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황야의 상태’는 회심전의 거듭나기 이전의 상태이다. “많은 유혹들로 인한 영적 무거움(Heaviness through Manifold Temptations,1760)”에서는 영적 어둠(실제적인 믿음의 상실과 기쁨의 전적인 상실, 신앙에서 불신앙으로의 퇴보)과 영적 무거움(종교적인 의기소침)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신자가 종교적 우울로부터 영적인 어둠, 즉 죄악된 절망으로 빠지는 것을 피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252) “자기 부인(Self Denial,1760)”과 “악한 말에 대한 치유(The Cure of Evil-Speaking,1760)”는 성화의 과정 속에서 신자가 신앙에서 불신앙으로의 퇴보를 막기 위한 기독자의 삶 속에서의 프로그램적 요소들을 다루고 있다. 1750년대 말부터 1760년대 초에 웨슬리는 부흥 운동에서 발생하는 완전 경험에 대한 흥미를 가지고 그의 신도회에 있는 많은 이들이 완전 경험을 증언하고 있음을 기록했다.253) 그런데 이런 현실 세계에서의 완전 경험을 극단적으로 끌고나간 열광주의자들이 있었다. 그들 중에 대표적인 인물은 조지 벨(George Bell)과 토마스 멕스필드(Thomas Maxfield)였다. 그들은 신도회 내부의 인물들로서 의인화와 자기 검증, 개인기도 등을 평가 절하했다. 또한 이성과 지식, 지혜를 가볍게 여긴 반면에 감정과 내적 인상, 그리고 상상 등을 과대 평가함으로서 열광주의와 율법폐기주의의 특성을 가지게 되었다. 이들과의 논쟁이 정점에 다른 것은 1763년이었다.254) 조지 벨과 토마스 맥스필드에 의한 혼란은 많은 설교자들로부터 웨슬리에게 완전 교리를 가르치는 것을 중단할 것을 요청하였고 또한 웨슬리로 하여금 칼빈주의자들로부터 대단한 비난과 공격을 감수하게 했다. 그러나 웨슬리는 이것이 “이 땅에 완전의 교리를 몰아내려는 악마의 계략”255)이라고 하면서 조금도 흔들림 없이 완전 교리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였다. 그는 설교자들에게 이 교리를 담대하게 설교하라고 촉구했고 만약 이 교리를 반대하거나 설교하지 않는 설교자가 있다면 그를 면직시켜야한다고 선언했다.256) 웨슬리의 설교 “성령의 증거 담화 1, 2(The Witness of the Spirit Discourses Ⅰ&Ⅱ,1746, 1767)”가 이런 열광주의적 경향의 경계를 목적하고 있다.257) 이 논쟁을 통해서 완전을 지향점으로 하는 그의 구원관이 확고하게 체계적으로 정립되기 시작한다. 모라비안과 칼빈주의자들 그리고 극단적인 열광주의자들과의 논쟁의 중심에는 완전에 대한 이해의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이 완전에 대한 이해의 차이를 야기했던 아주 중요한 요소들 중에 하나가 죄 이해258)의 차이였다.
2. 중기 웨슬리의 죄 이해 초기의 웨슬리는 제레미 테일러와 토마스 아 켐피스 그리고 윌리암 로 같은 신비영성가들에 의한 영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특성 중에 치유자로서의 특성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인간의 죄를 치유적인 면에서 보아 인간의 현실을 치료받아야 될 것으로 인식했다. 이러한 상황에 있던 웨슬리에게 모라비안과의 만남, 특히 피터 뵐러와의 만남은 그의 신학과 삶의 한 전기를 마련해 준다. 웨슬리는 피터 뵐러로부터 ‘순간적인 회심에 의한 구원’259)과 확증에 대한 갈망이 용서의 확증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 확증의 결과로 죄, 의심,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하여 평화와 기쁨과 신뢰로 가득 차게되는 경험을 원하였고 결국에는 올더스케잇의 체험이 그의 이러한 갈망을 채워주게 되었다. 결국 웨슬리는 모라비안을 통한 루터 신학과의 만남으로 속죄의 법정적인 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738년 이전의 설교에서는 속죄에 대한 법정적인 관심이 거의 나타나 있지 않지만 올더스케잇 체험이후의 설교들에서는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한 관심과 그 결과로서의 죄책으로부터의 용서가 강조되고 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웨슬리의 믿음에 대한 이해가 바뀌게 되는데 초기의 웨슬리가 당시에 이성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단지 하나님께서 계시하는 것에 대한 동의260)로서 이해했다면 1738년 이후의 웨슬리는 기독자의 믿음을 동의에다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심정적인 신뢰를 수반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이란 그리스도의 복음 전체에 대한 동의일 뿐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의 보혈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 즉 예수의 생명과 죽음과 부활의 공로를 신뢰하고 우리를 위하여 ‘자기를 버리고 또한 우리 안에 살아 역사하시는 우리들의 대속이시요 생명이신’ 그리스도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입니다.(이것은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하여 그의 죄가 용서받고 하나님의 사랑에 화해되었다는 확실한 자신입니다.) 마침내 우리는 우리의 ‘지혜와 의와 성결과 구속’, 한 마디로 말해 우리의 구원이신 그에게 가까이 하여 결국 접붙여지는 것을 말합니다.261) 초기 웨슬리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법정적인 측면의 속죄에 대한 관점의 출현은 그의 구원에 대한 여정에 있어서 신앙 의인화(Justification by Faith)의 종교 개혁적 전통에 대한 수용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초기 웨슬리에게 있어서 핵심적인 사항이 아니었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의 구원론에 있어서 핵심적인 측면262)에 서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부분은 웨슬리가 윌리암 로우와 같은 신비 영성가들에게서 배우지 못했던 것이었다. 결국 올더스케잇 체험 이후의 구원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게 된다. 그 구원은 현재적인 구원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모든 죄로부터 인간을 구원하신다. 믿음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는 죄책과 죄의 힘, 즉 아담의 원죄의 죄책과 자신의 행위의 죄책, 과거와 현재의 죄로부터 구원받는다. 이것이야말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입니다! 이는 현세에서도 얻을 수 있는 구원입니다. 죄로부터의 구원과 그 죄의 결과에서의 구원을 일컬어 종종 칭의(Justification)란 말로서 표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광의(廣義)로 취할 때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지금 그를 믿는 죄인에게 이뤄지는 죄책과 형벌에서의 해방을 뜻하며 또한 그 신자의 맘속에 형성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전체)에서의 해방을 의미합니다.263)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그리스도가 인간들의 죄에서 그들을 구원하신다고 할 때 그 범위가 전체라는 것은 그들의 외적인 죄 뿐만 아니라 악한 생각과 악한 기질을 포함한 그들의 심정의 죄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점이다.264) 결국 이 시기에 웨슬리는 칭의에 성화의 개념까지 포함하였다. 이것은 속죄의 법정적인 개념과 치유적인 개념의 조화가 이루어지고 있지 못함을 반증하는 사실이다. 죄와 속죄의 법정적인 개념을 루터식 모라비안의 신학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받아들였던 웨슬리는 1740년대의 믿음의 정도가 있다265)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던 모라비안이 구원에 있어서 오로지 칭의적 개념만을 주장하는 것에 대한 한계를 인식한다. 따라서, 웨슬리는 옥스퍼드 시절의 성결의 삶에 대한 성화적인 측면을 다시금 강조하게 된다. 웨슬리는 구원의 길(via salutis)에 구별적인 단계로서 의인화와 성화를 구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기독자의 경험의 범위 내에 유아기로부터 성숙기로까지의 성장이 있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감히 어떤 사람들이(모라비안) 그랬던 것처럼 이 모든 구원이 즉시 주어진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사실 하나님의 자녀들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은 순간적일뿐만 아니라 점진적이다.”266) 비록 웨슬리는 1740년대 초에 ‘90퍼센트 기독교인(Almost Christian)’과 ‘온전한 기독교인(Altogether Christian)’을 매우 날카롭게 구별267)했지만 1745년 연회에서 그는 그 설교가 완전히 적절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감리교 설교가들에게 충만한 성화의 상태를 고양시키기 위해서 의인화를 평가절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268) 이때부터 웨슬리는 죄책으로부터의 구원과 죄의 힘으로부터의 구원을 구별하기 시작했다.269) 그리고 이런 구별은 죄의 뿌리로부터의 구원이라는 다음 단계인 온전한 성화, 즉 완전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가능케 한다. 구원에 있어서의 칭의적인 면과 성화적인 면의 혼동은 웨슬리의 죄와 속죄의 이해에 있어서 법정적인 면과 치유적인 면의 긴장관계를 가지고 온다. 이것은 올더스케잇 체험 이전에는 죄의 치유적인 면만을 강조하다가 모라비안의 만남과 올더스케잇 체험은 그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혈을 통한 죄의 법정적인 용서에 대해 강조를 하게 하지만 결국 거룩한 삶이라는 포기 할 수 없는 기독교 전통의 한 축270)으로 이 둘 사이의 긴장관계가 발생한다. 죄의 무거운 짐을 견디기 어렵게 느끼는 병든 사람들이 의사를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 밑에서 신음하고 있는 죄 있는 자들이 용서를 필요로 합니다. 사상, 말, 행위에서의 그들 자신의 불신앙 때문에 하나님에게만이 아니요 그들 자신의 양심에 의해서도 무수한 증인들에 의해서와 마찬가지로 이미 유죄로 선고받고 있는 자들이 큰 소리로 예수 안에서의 속량을 통하여 “불경건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부르짖어 찾는 것입니다.271) 그러나 여기서 분명한 것은 여전히 속죄의 법정적인 면의 우선성이다. 죄책으로부터의 용서에 대한 강한 강조가 우선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우선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죄의 용서를 받기 이전에는 인간 본성의 치유와 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무가 썩어 있을 때는 열매도 썩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그 가운데 부어지기 전에는 필연적인 마음의 본질적 죄악성 때문에272) 병의 회복에 합당한 표징이 나타날 수 없다. 믿음에 의한 구원이 모든 죄에 대한 구원273)이라는 웨슬리의 동의는 한가지 문제를 발생시킨다. 그것은 바로 신자들 속에 남아 있는 죄의 문제였다. 즉, 의인과 거듭남 후에도 실재하는 신자 안의 죄의 문제였던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믿음을 이미 소유하였지만 그들의 죄책의 기억이 남아 있고, 여전히 끊임없는 단점들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였다. 즉 의지적 죄와 무의지적인 죄 그리고 행위의 죄와 내적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의 실질적인 문제에 기인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웨슬리가 루터적인 해결 즉 ‘의인인 동시에 죄인(simul justus et peccator)’이라는 개신교의 전통적인 해결방법에 동의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발생하였다. 웨슬리는 단지 신앙 의인화의 용서라는 속죄의 법정적 측면의 해결에만 만족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루터의 신자 안의 죄에 대한 소극적인 대처는 웨슬리 신학의 또 다른 한 축인 ‘거룩한 삶(holy-living)’과 상충되는 것으로 지상의 완전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게 하여 율법폐기주의적인 경향에 빠지기 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웨슬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기존의 두 극단274)과는 다른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따금 신자가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그의 판단(sight)을 잃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이따금 어떤 어둠이 그로 하여금 볼 수 없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가 속죄의 보혈 속에 있다는 것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는 내적으로 책망 받아 다시 죽음의 선고를 받을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해진다면 저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겠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자비를 보지 못한다면 그는 신자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하나님의 빛이 영혼을 비춘다는 의미에서 빛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누군가 이 빛을 잃어버리는 한 그는 그 순간 믿음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결코 그리스도 안에 참 신자는 믿음의 이 빛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것(믿음)을 잃어버리는 한 그 순간 그는 다시 유죄 판결로 떨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현재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의 이름을 믿고 있는 이들의 경우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성령을 믿고 따라가는 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혹은 그들 자신의 마음을 정죄하시지는 않습니다.275) 웨슬리는 여기서 성도 견인의 견해로 인한 율법폐기주의적 경향과 과도하게 양심에 의존하는 경향들에 반대하여 제 3의 단초를 제안한다. 제 3의 단초라는 것은 믿음의 빛으로서의 확신(assurance) 은총이었다. 이 은총은 잃어버릴 수도 있고 되찾을 수도 있다. 중요한 구별점은 의지적인 죄들과 관련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의 신자들은 죄의 지배로부터는 벗어나지만 여전히 내적 죄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276) 따라서, 성령과 함께 걸어야하고 불완전한 순종을 통해 그들의 신실함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려야만 한다. 즉 기독자는 하나님의 은총에 기대어 죄를 회개하면 항상 용서받을 수 있다는 확신과 성령의 은총이 함께한다는 확신 속에서 성령과 함께 걸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죄의 남음(remains of sin)’을 회개하지 않으면 바로 다시 타락하는 의지적인 죄들이 그에게 발생하기 때문에 신자들은 항상 깨어있어야만 한다. 따라서 이 때부터 웨슬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faith alone)’과 ‘거룩한 삶(holy living)’의 긴장 관계의 해소를 그의 신학과 설교의 중심주제로 삼았다. 이 문제에 대한 고찰은 바로 신자의 남은 죄(죄악성)에 대한 문제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748년 웨슬리는 신자의 남은 죄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결정적인 해결의 단초를 제공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들의 위대한 특권(The Great Privilege of those That are Born of God)”이라는 설교에서 웨슬리는 관계적 변화로서의 의인화와 실질적인 변화로서의 거듭남을 구분하면서 ‘소위 적절한 죄’와 ‘다른 결점’ 사이에 대한, 즉 의지적인 죄와 무의지적인 죄에 대한 조심스러운 구별을 시작한다. 그리고 외적 죄와 내적 죄에 대한 관계를 이야기하고 다윗, 바나바, 베드로의 예를 들면서 신자가 외적인 죄에 빠지는 논리적인 순서를 설명한다. 내적 죄와 유혹에 넘어감으로서 믿음을 상실하면 결국에 신자는 외적 죄를 짓게 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웨슬리에게 있어서 칭의와 거듭남 후에 믿음의 열매로서 이해되어지는 기독자의 삶은 매우 중요한 주제가 된다. 그리고 칭의의 은총으로 인해 하나님께 법정적으로 죄 사함을 받은 신자에게 타락하고 부패한 본성의 치유는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따라서 웨슬리는 13편의 “산상 수훈 설교(Upon Our Lord's Sermon on the Mount 1-13)”에서 의인화의 믿음과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사이의 균형과 통합을 이루고자 하였다.277) 그런데 이런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과 ‘거룩한 삶’에 대한 웨슬리의 미묘한 균형 잡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인한 심기워진 내재적인 의(inherent righteousness) 때문에 도덕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 따라서 웨슬리는 율법과 복음의 역동적인 상호의존을 주장하였다. 웨슬리는 율법의 기원을 하나님 형상을 소유한 인간이 타고나는 도덕적 감각으로 보고, 율법에 기독론적인 본질이 있다고 보았다. 또한 율법의 특성은 성결과 의와 선이며 이 율법이 신자를 확신시키고, 회심시키고, 유지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278) 따라서 율법을 무용하게 만들지 않고 세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율법을 무용하게 만드는 방법은 설교자가 율법을 설교하지 않는 것이며, 믿음이 성결의 필요성을 대신한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리고, 마치 믿음은 성결과 상관없는 것인 양 삶을 사는 것이다.279) 믿음으로 율법을 세우는 방법은 완전한 범위에서 우리의 교리(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에 의한 성서적 교리)를 설교함으로 우리의 위대한 선생님이 지상에 계셨을 때 하셨던 것처럼 율법을 설명하고 강화시키는 것이며, 성결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믿음에 의한 구원’을 설교하는 것이고, 기독자의 심령과 삶 속에서 거룩한 삶으로 율법을 증거하는 것이다.280) 결국 웨슬리에게 있어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은 믿음에 의한 구원의 결과이다. 신자의 죄의 남음의 문제는 원죄의 결과인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 기인한다. 원죄의 결과로서 ‘전적 타락’이라는 부분은 종교 개혁가들과 같은 견해를 가지지만 원죄의 죄책에 관한 문제에서는 그들과 다른 견해를 가진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보편적인 은총으로 인해 아담의 죄책으로부터 모든 인간이 벗어났다. 따라서 원죄로 인해서 인간에게 남아있는 실질적 문제는 아담의 죄로 인한 인간 본성의 타락과 손상의 문제뿐이다.281) “어떤 어린아이라도 아담의 죄에 대한 죄책으로 인하여 지옥에 갔거나 갈 어린아이는 결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세상에 왔을 때 그리스도의 의로 인하여 아담의 죄책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282) 그러므로, 형벌로서의 영원한 죽음은 원죄의 죄책에 기인한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의 문제이다. 결국 기만, 탐욕, 정욕과 같은 행위의 죄는 우리의 타락한 본성으로부터 발생하지만 하나님의 보편적인 은총 덕택에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283) 그러하기에 웨슬리는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선택을 따른다면 악으로 향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은총에 의해서 우리는 이 경향성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혹은 그것을 선택해서 결국에는 행위의 죄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284) 결국 본성의 죄악된 타락성과 행위의 죄 사이의 관계는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의 응답 가능성에 대한 전제가 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올더스케잇 체험 어간에 죄책의 문제, 즉 법정적인 속죄의 관점에 집중하였던 것이 이제는 그 중심 주제가 속죄의 치유적인 관점으로 무게 중심이 바뀌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을 병자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치유자로, 죄를 병으로 보는 관점에서 치유적인 죄의 특성을 더욱 강조하는 관점으로 무게 중심이 서서히 전이되기 시작한다. 우리는 종교의 고유한 본질이 무엇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 종교의 고유한 본질이 무엇인가를 이 사실을 통해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본질은 θεραπεία ψυϰής, 즉 병든 영혼을 고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영혼의 위대한 의사는 그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또한 모든 기능 전체가 전적으로 부패한 인간의 본성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약품을 제공하십니다... 분명한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하나님의 일들을 믿는 신앙을 주심으로써 그 병을 고치십니다. 특히 중요한 사실은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회개와 겸손한 마음을 통하여 교만이라는 치명적인 병이 치료됩니다. 아집이라는 치명적인 병은 하나님의 뜻을 온유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복종하는 용기로서 달성된 단념으로 인해 치료받게 됩니다. 병의 줄기가 되는 모든 종류의 세상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 최상의 치료제입니다. 그리하여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바로 참된 종교입니다. 사랑은 진정으로, 온유한 겸손 가운데에서 작용하며, 이 세상에 대해 완전히 죽는 것이며, 하나님의 모든 뜻과 말씀을 사랑과 감사에 넘쳐 순종하며 헌신하는 것입니다. ... 당신은 종교의 위대한 목적이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새롭게 하는 것이며 또한 우리 조상들의 죄로 인해서 완전하게 상실되었던 참된 거룩함을 회복하는데 있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 당신의 병을 아십시오! 그리고 이 병의 치료법을 아십시오. 그러므로 ‘여러분은 다시 나야 합니다’ 하나님에 의해 태어나야 합니다. 날 때부터 당신은 전적으로 부패하였습니다. 이제 당신은 은혜로 말미암아 다시 온전히 새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당신은 모두 죽었고 두 번째 아담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살아나게 됩니다. ‘여러분은 죄 중에서 죽었지만 그리스도께서 살려주신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삶의 원리, 곧 당신을 사랑하셔서 당신을 위해 자신의 몸을 주셨다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주신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 당신의 모든 병이 치료되었고, ‘모든 마음속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온전히 품을 때까지 믿음에서 믿음으로 나아갑시다.’285) 인간의 타락한 본성은 칭의와 거듭남의 순간에 치유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치유의 시작으로서의 거듭남은 회심과 관련 있다.286) 거듭난 후에 신자는 완전히 자신의 병이 치유된 것은 아니기에 그에게는 지속적인 영적 순례의 과정이 필요하다. 회심 이전의 ‘황야의 상태(The Wilderness)’에서 확신 경험 후의 칭의와 거듭난 자는 자신의 생래적 죄, 즉 본성의 전적인 부패에 대해 더욱 확실히 인식하게 된다.287) 이런 부패성에 대한 인식 때문에 신자에게 종교적인 의기소침인 영적 무거움이 찾아온다. 중요한 것은 이 영적 무거움이 영적 어둠, 즉 실제적인 믿음의 상실과 기쁨의 전적인 상실로 바뀌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288) 하나님께서 이런 영적 무거움이라는 유혹을 그의 자녀들에게 허락하는 이유는 그들의 믿음과 자라나는 믿음에 비례해서 성장해 가는 소망과 사랑을 시험하기 위해서이며 결국에는 내적인 성결을 위해서이다.289)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는 거듭남의 은총의 역사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다. 거듭남의 은총의 역사 후에도 신자에게는 여전히 죄악성이 남아 있기에 두 개의 상반되는 세력 곧 ‘자연과 은총’, 사도 바울의 용어를 따르면 ‘육과 영’이 공존하게 된다. 그런 까닭에 그리스도 안에서의 어린이들이 거룩하여졌다 하지만 이는 부분적이다.290)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영적인 성장과 치유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들은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는 그 순간 새로워졌고 깨끗해졌고 정결해졌고 성별 되었을지라도 우리는 아직 온전히 새로워지고 온전히 깨끗해지고 온전히 정결해지지는 못한 것입니다. 육과 악한 성질이(비록 정복은 되었지만) 아직도 남아 있어 영과 더불어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다 더욱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함에 있어서 우리의 모든 성실을 사용합시다. 그만큼 더욱 우리는 안에 있는 원수에 대항하여 깨어 기도하되 간절히 합시다. 그럴수록 더욱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 우리가 혈과 육과 싸우고, 또한 정사와 권세와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과 싸울지라도 이 모든 것을 다 이룩하면서 이 악한 세대에서 견디어 굳게 설 수 있도록 하십시다.291) 결국 중기 웨슬리의 대부분의 설교의 주제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과 ‘거룩한 삶’의 조화에 역점을 두었다. 즉 초기에는 죄의 치유적 관점에서의 ‘거룩한 삶’ 중심적인 신학과 목회적 초점을 두었지만 올더스케잇 체험으로 인해 웨슬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이라는 전통적인 종교 개혁의 모토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는다. 그러나 웨슬리는 곧바로 극단적인 신앙제일주의가 정숙주의나 율법폐기주의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여 알게 된다. 이런 까닭에 웨슬리는 초기에 지향했던 ‘거룩한 삶’의 비전과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비전을 조화시키고자 한다.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가 단지 법정적인 면만 혹은 치유나 회복적인 면만을 가진 것이 아니라 법정적이며 동시에 치유적인 면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D. 후기(1765~91, 죄와 속죄의 치유적인 특성과 법정적 특성의 조화) 1. 역사적 배경 웨슬리는 모라비안의 정숙주의자들과의 논쟁, 예정론자들과의 논쟁, 열광주의자들과의 논쟁을 통해 그의 신학을 성숙시켜 나갔다. 또한 1760년대 중․후반부터 그의 신학의 핵심인 구원의 길(via salutis)이 보다 명확하게 정립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저작들을 쓰고 출판해낸다. 이 시기에 쓰여진 웨슬리의 중요한 설교와 교리적 에세이는 “구원의 성서적 길(The Scripture Way of Salvation,1765)”, “주님 우리의 의(The Lord Our Righteousness,1765)”, “기독자의 완전에 관한 평이한 해설(A Plain Account of Christian Perfection,1766)”, “성령의 증거, 담화 2(The Witness of the Spirit, Discourse Ⅱ,1767)”, “신자의 회개(The Repentance of Believers,1767)”등292)이 있다. 그는 여기서 자신의 신학의 두 축인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과 ‘거룩한 삶’의 성숙한 조화를 이끌어내고 있으며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와 그 역사 속에서의 인간 상황의 변화와 책임성을 조리 있게 이끌어내고 있다. 특히 “구원의 성서적 길(The Scripture Way of Salvation,1765)”, “주님 우리의 의(The Lord Our Righteousness, 1765)”는 웨슬리의 이정표적인 설교들이다. 이 설교들에서 웨슬리는 구원의 믿음과 성화의 믿음을 조화롭게 연결시키고 그 연결의 고리로서 주님의 의(the Righteousness of the Lord)가 우리에게 덧입혀지고 심겨짐을 말하고 있다. 1760년대 말에 웨슬리는 토플레디(Augustus Montague Toplady)라는 당시의 영국 국교회 복음 성가 작사자와 예정론에 관한 문서 논쟁에 휩싸인다. 칼빈주의자들과 아르미니안들 사이에 존재했던 긴장은 이 논쟁으로 인해서 감리교 운동 진영 내에서 뿐만이 아니라 1760년대에는 보다 넓은 범위인 영국 국교회까지 퍼지게 되었다.293) 웨슬리와 토플레디는 주로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에 관한 논쟁을 하였다. 특히 1770년에 웨슬리는 가장 극단적이고 매력 없는 형태로 칼빈주의의 관점을 소개하면서 서론과 결론에 다음과 같은 자신의 의견을 첨가한 토플레디의『절대적인 예정』(Absolute Predestination)을 요약 출판했다. 이 모든 것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20명중에 1명이 선택되고 20명중에 19명이 유기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하든지 선택을 받은 자는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더라도 유기된 자들은 지옥에 갈 것입니다. 독자들이여 이것을 믿습니까 혹은 지옥에 있겠습니까. 저를 보십시오. A--- T---.294) 토플레디의 예정론적인 경향에 대해서 웨슬리가 반대한 이유는 토플레디의 견해가 지나치게 인간의 응답 가능성을 무시하여 결국에는 율법폐기주의적인 경향에 빠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예정에 관한 가장 파괴적인 마지막 논쟁이 1770년대에 발생했다. 이 논쟁은 그의 설교자들과 함께한 웨슬리의 1770년 연회록295)과 관련하여 발생하였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1770년 연회의 “그것(신도회)이 침체되어 가는 곳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부흥시키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28번 물음에 대한 대답의 6번 항목인 “당신의 교리에 주의하라”였다. 그는 여기서 신도회의 쇠퇴의 원인을 과도한 칼빈주의적인 경향으로 보았다. 그러하기에 웨슬리는 성화의 과정 속에서 인간의 응답적인 행위의 측면인 행함과 보상의 문제를 강조하였고 행위와 현재의 내적 기질이나 외적 기질에 따라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거나 되지 않기에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신실함과 행함에 힘쓸 것을 권고하고 있다.296) 이 점에 있어서 일단의 칼빈주의자들은 웨슬리가 ‘행위에 의한 구원(salvation by works)’의 교리를 퍼뜨리고 있다고 오해했다. 사실 이 논쟁의 중심은 헌팅턴 백작부인(the Countess of Huntingdon)297)과 존 플래처(John Fletcher) 목사였다. 헌팅턴 백작 부인은 1770년 연회에서 지적한 성화의 과정 속에서 중요하게 대두되는 행함에 대한 웨슬리의 교리적인 이해에 강한 반발을 보였다. 그래서 그녀는 자유의지를 이야기하며 아르미니우스주의적인 견해를 가진 웨슬리의 목사들을 자신의 교회에서 배제시켰으며, 그의 삼촌 월터 셜리(Walter Shirly)의 충고에 따라서, 기독자의 완전을 주장한 자신의 학교 선생인 벤슨(Joseph Benson)을 해고했다.298) 그러자 당시 그 학교의 학장이었던 플레쳐는 쟁점이 되었던 웨슬리의 1770년 연회록이 율법폐기주의를 향해 있기에 율법주의자의 위험한 오류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변증적인 어조와 완곡한 표현으로 웨슬리의 교리적 견해를 지지하는 12페이지의 소논문을 쓰면서 학장직을 사임하였다.299) 그러나 웨슬리와 칼빈주의적 경향의 사람들을 화해시키고자한 플레쳐의 노력으로 1771년 연회에서 웨슬리와 칼빈주의자들은 타협점을 찾게 된다. 이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 53명이 “1770년 8월 7일 런던에서 작성되었던 연회 회의록은 교리적 논점이 행함에 의한 의인화를 찬성하는 것으로 이해되었지만, 현재 그 연회에 참석했던 웨슬리 목사와 다른 참석자들은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고 행함에 의한 의인화의 교리를 혐오하고 있으며. ... 행함이 부분적으로든 전체적으로든 처음과 나중의 구원의 공로가 되지 않는다”300)라는 요지에 선언에 동의를 한다. 헌팅턴의 삼촌 월터 셜리가 이 결과에 만족하였기 때문에 웨슬리는 칼빈주의자들과 일시적인 화해를 할 수 있었다. 이런 와중에 리챠드 힐(Richard Hill)은 1771년 6월에 파리에서 마틴 메던(Martin Madan)과 발쉬(Father Walsh)신부를 만나서 1770년의 감리교 연회록을 보았을 때 웨슬리와 그 추종자들이 너무 펠라기안적이다라고 공격한다. 1772년에 펴낸『웨슬리 목사에 의해 가르쳐진 모든 교리들에 대한 개관』(A Review of all the Doctrines taught by the Rev. John Wesley)에서 힐은 웨슬리 목사와 플레처 목사가 전적으로 트렌트 공의회적인 관점 속에서 행위에 의한 두 번째 의인화를 주장하고 있으며 그의 완전에 대한 입장은 펠라기안과 아나벱티스트, 그리고 진젠돌프처럼 ‘죄없는 완전(sinless perfection)’이라고 분류하며 공격하였다. 그리고 1773년 겨울 힐은 Logica Wesleiensits, or Farrago Double-Distilled를 출판했다.301) 여기서 그는 이전의 웨슬리에 대한 공격을 지속하였다. 이러한 힐의 공격에 웨슬리는 이전의 온건한 대응에서 급선회를 하게 된다.302) 힐의 공격에 웨슬리는 1772년 9월 9일에는『힐 씨의 ‘존 웨슬리에 의해 가르쳐진 모든 교리에 관한 개관’에 관한 언급들』(Some Remarks on Mr. Hill's 'Review of All The Doctrines Taught by Mr. John Wesley)를 1773년 3월 14일에『힐 씨의 'Farrago Double-Distilled'에 관한 언급들』(Some Remarks on Mr. Hill's 'Farrago Double-Distilled')을 출판한다.303) 웨슬리는 이 두 작품에서 완전에 대한 교리를 변호함으로서 기독자의 성결에 대한 그의 입장을 강화한다. 그는 조심스럽게 율법에 대한 의지적인 위반들로서의 죄와 의지적인 요소가 없는 하나님의 완전법에 대한 위반으로서의 ‘연약성들’을 구별한다. 그는 장성한 신자는 전자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의지적이면 죄가 되고 무의지적이면 죄가 되지 않는 분류하기 어려운 ‘놀람의 죄들(sins of surprise)’이 있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여기서 그는 완전을 다름 아닌 성 요한이 말한 완전 사랑 즉 우리 주 하나님을 온 마음과 지성과 영혼과 힘을 다해 사랑하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또한 이전에는 사랑 안에서 완전해 진 이들이 구원으로 견인됨을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10년 전부터는 완전을 경험한 이들도 다시 타락할 수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304) 또한 웨슬리는 같은 해 여름에 “예정에 관하여(On Predestination,1773)”라는 설교를 출판하였다.305) 1774년에 웨슬리는 인간의 자유에 대한 옹호로서『필연에 관한 고찰』(Thoughts Upon Necessity)을 출판하였다. 그는 여기서 자신의 대적자들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고 “인간은 자유로운 행위자인가?”306)라는 질문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그러나, 이 책의 목적은 그가 보았을 때 잠재적인 율법폐기론적 경향이 있는 칼빈주의로부터 인간의 응답가능성을 보호하기 위함에 있었다. 웨슬리는 모든 필연주의자의 관점이 하나님을 죄의 주인으로 만드는 논리적 귀결로 연결되어지며 또한 “그것은(필연의 교리) 인간을 단순한 기계로 만들어 인간 행동의 모든 도덕성을 파괴하기”307)에 칼빈주의의 결정주의적인 관점을 반대했다.308) 그리고 그는 이 교리적 에세이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선택의 힘을 주시기 위해 인간사에 개입하셨음을 말하고 있다.309) 그런데 이 관점은 분명하게 그의 선재적인 은총의 개념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관점이다. 1776년 연회에서 웨슬리는 칼빈주의자들의 성도의 최종 견인의 교리를 하나님 사역의 지대한 방해물로 지적했다. 그리고 웨슬리는 설교가들에게 자신과 플레쳐(Fletcher), 샐론(Sellon)의 작품들을 읽고 보편적 구속(universal redemption)을 지속적으로 설교 할 것을 권고하였다. 그리고 그 연회록 마지막에 웨슬리는 참석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그 역병(칼빈주의적 예정론)을 중단시킬켜 달라고 끊임없이 그리고 진지하게 기도하라는 권면하였다.310) 그러나 1777년에 출판된『하나님 주권에 관한 고찰』(Thoughts Upon God's Sovereignty)에서 웨슬리는 보다 온건한 어조로 칼빈주의와 화해를 시도한다. “한 훌륭한 사람에게, 저는 전체 문제가 단 한가지의 요점에 근거한다고 생각합니다. 창조자로서 그 분은 단지 그 자신의 주권적인 의지에 따라서 행동하십니다. 그러나 통치자로서 그는 단지 주권으로만이 아닌 의와 자비에 따라서 행동하십니다.”311) 영국 국교회와 39개조가 칼빈주의와 아르미니우스주의를 동시에 포용할 수 있다고 믿었던 웨슬리는 예정의 교리를 ‘핵심 교리(essence)’가 아닌 하나의 ‘의견(opinion)’의 범주에 위치시킴으로 칼빈주의자들과 화해를 시도하였지만 1770년대 이후 칼빈주의자들과의 보다 밀접한 협력의 모든 희망은 사라져갔다. 카피지는 이 사실을 감리교도들과 영국 국교회와의 보다 넓은 분열의 한 요소로 해석하고 있다.312) 시간이 지나면서 감리교 신도회 내부의 사람들 중에는 이전의 가난으로부터 중산층으로의 경제적인 지위가 향상되어진 사람들이 증가하였고, 일부 부유한 사람들이 공동체내로 들어왔다. 그들은 “돈의 사용(The Use of Money,1760)”의 앞의 두 규칙313)은 잘 받아들였지만 세 번째 규칙314)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웨슬리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들은 자신들의 부가 죄의 치명적인 입구임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Wealth Nations,1776)의 증대해 가는 영향력에 힘을 얻었기에 그들은 더욱 자신들의 부를 필요한 사람들과 나누려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웨슬리는 “부의 위험성(The Danger of Riches,1781)”, “부에 관하여(On Riches,1788)”, “세상적인 어리석음에 관하여(On Worldly Folly,1790)”,“증대해 가는 부의 위험성(The Danger of Increasing Riches,1790)”의 설교들 속에서 잘못된 목적의 잉여물 축적이 죄임을 지속적으로 주장한다. 나눔이 없는 잉여물의 축적은 웨슬리의 실천적인 시각에 있어서 죄의 항목에 들어가며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구원에 대한 기독자의 소유와 희망에 심각하고 긴급한 위험이 된다. 따라서, 웨슬리는 기독교의 무능의 가장 큰 원인 중에 하나를 잘못된 목적으로 축적된 부로 보기도 한다. 기독교, 성서적인 기독교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자신을 손상시키고 파괴시키는 경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왜입니까? 왜냐하면 참 기독교는 그 자신이 퍼지는 곳마다 근면과 검소의 원인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따라서 사물의 자연적인 법칙에 따라, 부를 당연히 축적했습니다. 그리고 자연적으로 부는 자만심, 이 세상에 대한 사랑과 기독교를 파괴하는 모든 기질들을 잉태했습니다.”315) 1780년대 초의 설교들인 “보편적 구원(The General Deliverance, 1781)”, “타락한 인간에 관하여(On The Fall of Man, 1782)”, “타락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God's Love to Fallen Man, 1782)”, “그의 작품들에 대한 하나님의 승인(God's Approbation of His Works,1782)”에서 웨슬리는 악과 창조와 타락 그리고 구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1784년은 웨슬리의 감리교 운동에 기점이 되는 중요한 시기였다. 그 해에 있었던 세 가지 사건은 웨슬리의 감리교 운동과 영국 국교회와의 관계에 큰 변화를 의미하는 것들이었다. 첫 번째로 웨슬리는 1784년 2월 28일에 포고령(Deed of Declaration)을 선포하여 ‘100명의 법적 위원회(Legal hundred)’를 세웠다. 이것으로 감리교 운동은 사실상 독립적인 법적 지위를 부여받았다. 따라서 신도회들은 행정체계와 교리적 지침, 연합조직과 규율, 사역, 예전 양식을 모두 갖춘 단체로서의 독립된 교회가 되는데 필요한 모든 준비를 갖추게 된다.316) 두 번째 사건은 성직 안수였다. 웨슬리는 1784년 9월에 미국에서의 사역을 위해 코크(Coke)에게는 연합 감리사(Joint Superintendents) 안수를 주어 프랜시스 에즈베리(Francis Asbury)와 함께 미국 감리교 운동을 주도하게 하였고, 왓코트(Whatcoat), 베지(Vasey)에게는 장로 안수를 주어 이들을 돕게 했다.317) 그러나 미국 감리교 운동은 1784년 볼티모어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연회에서 애즈베리가 감독(bishop)의 명칭을 취하면서 새로운 자율적인 교단인 감리교 감독교회(Methodist Episcopal Church)를 세운다.318) 세 번째 사건은 같은 해 웨슬리가 영국 국교회의 『공동 기도문』(Book of Common Prayer)을 개정해『다른 특별 예배에 따른, 북아메리카 감리교도들의 주일예배』(The Sunday Service of the Methodists in North America, with other occasional service)를 출판하여 영국 국교회의 39개 조항을 25개조로 축소해서 미국 감리교 운동에 개인편지와 함께 코크의 손에 들려서 보낸 사건이었다. 베이커의 말대로 이 사건들은 모두 영국 국교회와의 분열의 전조였다.319)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슬리 자신은 결코 영국 국교회를 떠나고자 하는 마음이 없음을 누차 밝히고 있다. “저는 공개적으로 그날 저녁에 제가 40년 전보다도 지금 현재 더욱 국교회로부터의 분리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선언했습니다.”320) 이런 상황 속에서 웨슬리는 “목사에게 순종함에 관하여(On Obedience to Pastors,1785)”, “교회에 관하여(Of the Church, 1785)”, “분파에 관하여(On Schism,1786)”, “예언자들과 제사장들(Prophets and Priests,1789)”의 설교들 속에서 영국 국교회와의 분리 움직임을 경계하고 있다. 2. 후기 웨슬리의 죄 이해 죄의 법정적 의미와 치유적 의미의 긴장관계로 의미되는 칭의와 거듭남 후의 신자에게 남은 죄에 대한 문제가 웨슬리에게서 해소되는 전조가 보인다. 그 전조는 웨슬리가 보다 명확한 은총에 대한 이해 속에서 ‘믿음에 의한 구원’과 ‘거룩한 삶’을 조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웨슬리는 “성서적 구원의 길(The Scripture Way of Salvation,1765)”에서 기독자의 모든 삶 속에서 선재적 은총, 의인화의 은총, 동반의 은총, 성화의 은총을 강조한다. 참 종교의 목적은 구원이며 이 구원에 이르는 길은 믿음에 의해서이다. 그런데 구원이란 현재적인 구원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기독자의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사역이다. 이 사역은 바로 하나님의 ‘본성적 양심(natural sin)’으로 불리는 선재적인 은총(preventing grace)에서 시작된다.321) 선재적 은총은 하늘 아버지께서 이끄시는 역사로 인간의 마음속에 형이상학적인 지향점을 가지게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이 은총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결과, 즉 아담의 죄책으로부터의 해방을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여 준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사실상 원죄의 죄책으로부터 용서를 받게 된다.322) 이러한 성령의 사역은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사역을 잊어버리든지 부인하게 된다.323) 또한 웨슬리는 선재적인 은총 다음에 사도들이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구원인 칭의와 성화를 위치시킴으로서 그의 구원론의 완성되어져가는 틀을 제시하고 있다. 칭의(또는 義認)라는 말은 용서와 같은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모든 죄에 대한 용서를 말하는 것이니,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열납되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이 구원이 우리를 위하여 획득되는 값은(일반으로 말하는 우리의 칭의의 공로가 되는 근원은) 그리스도의 보혈과 의(義)입니다. ... 칭의에 따르는 즉각적인 결과는 “하나님의 평강” 곧 “모든 지각에 뛰어나는 평강”,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베드로 전 1: 8)으로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안에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입는 순간에, 그렇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성화(sanctification)가 시작됩니다. 그 찰나에 우리는 거듭납니다. 위로부터 납니다. 성령으로 납니다. 여기에는 실질적인 변화와 상대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내적으로 갱신되는 것입니다. 곧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된 사랑을 느낍니다. 또한 이 사랑은 우리에게 세상과 향락, 안위, 명예, 돈에 대한 사랑을, 우리 속에 있는 자만, 분노, 고집이나 그 외의 여러 가지 악한 성질과 함께 내쫓으며, 한편으로 모든 인류 특히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사랑을 일으켜 줍니다. 즉 한 마디로 말씀드려 이는 우리의 땅에 속한 감정적이요 악마적인 마음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었던 마음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 즉 단지 죄가 일시적으로 정지된 것이지 완전히 파괴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유혹은 다시 오고 죄는 살아납니다. 죄가 전에는 단지 기절하였던 것이지 죽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지금 저들은 자기들 속에 두 가지 세력 곧 상반되는 두 세력이 있음을 느낍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령에 거슬리는 육성(肉性)이 있어 하나님의 은총에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저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힘을 느끼고 또한 하나님의 영이 저들의 영과 더불어 저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함을 느끼지만, 저들은 아직도 속에서 느껴지는 자만, 고집, 분노, 불신앙이 자기 안에 있음을 부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성령을 이기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종종 일어나는 것입니다. 즉 우리를 밀쳐 넘어뜨리려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도우시는 까닭(시편 118: 13 참조)입니다. ... 그러나 분별력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소유한 사람들이라 할 지라도 다시 죄로 인하여 고통을 받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형제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자신들 속에 죄가 없노라고 긍정하는 정도로 은혜를 체험하였다는 예를 종종 봅니다. 그러나 드디어 저들이 그런 죄에서는 완전히 자유함을 얻었다고 생각했을 때, 속에서 올라오는 부패성은 새로이 일어나서 거의 불붙는 상태에 들어가곤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듭난 때부터 성화의 점진적인 역사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육의 행위와 악한 성질에서 나오는 행위를 억제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으면 죽을수록 하나님을 향하여 더욱 삽니다. 우리는 악의 모든 모양을 조심하여 피하며 기회 있는 대로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며, 착한 일에 열심을 내면서 은총에서 은총으로 나아갑니다. 또 흠 없는 하나님의 규례 안에서 걸으면서 성령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며, 또한 자기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는 모든 향락을 부정하면서 우리는 다시금 은총에서 은총으로 계속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사도가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고 말한 대로 온전한 성화 즉 우리들의 모든 죄-자만, 고집, 분노, 불신앙 등-에서 완전한 자리로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완전”입니까? 이 완전이란 말은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마는 여기서 이 말은 완전한 사랑을 뜻합니다. 이는 죄를 내쫓는 사랑이며 또한 그 영혼의 모든 능력을 취하여 그 마음을 사랑으로 가득 채웁니다. 이것이 곧 항상 기뻐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사랑입니다.324) 웨슬리는 선재적인 은총, 칭의, 거듭남, 성화, 완전으로 이어지는 구원의 과정을 개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은총에 대한 강조이다. 이러한 강조는 그의 목회적이며 신학적인 고민, 즉 모라비안적인 정숙주의와 칼빈주의와 극단적인 열광주의자들의 율법폐기주의의 단점인 ‘믿음에 의한 구원’의 극단적인 강조로 인해서 ‘거룩한 삶’의 왜곡된 측면을 바로 잡고자한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선재적인 은총때문에 인간에게 하나님을 향해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이 가능성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현실에 대한 확신, 즉 자신의 죄악을 직시하게 한다. 이러한 확신을 통해 인간은 하나님께 전적인 신뢰의 믿음을 가지게 되며 비록 죄인이지만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된다. 칭의의 순간에 자신이 과거에 범한 자범죄의 죄책이 사해진다. 회개와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믿음과 같은 정도로 필요한 것이 아닌 간접적인 것이다.325) 따라서 칭의의 유일한 조건은 믿음이다. 여기서 칭의에 합당한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케 하셨다는 사실과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랑하셨고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주셨다는 사실에 대한 하나님의 증거요 확신이다.”326) 결국 여기서 말하는 믿음이란 그리스도를 우리의 선지자, 제사장, 또한 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이 믿음으로 그리스도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셔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심을 알게 되는 것이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순간에 성화가 시작된다. 따라서 칭의와 마찬가지로 성화의 유일한 조건도 믿음이다. 어떤 사람도 믿음 없이는 성화될 수 없다.327) 성화 또한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이지만 성화의 시작인 거듭남이 신자의 최종 목표는 아니다. 웨슬리는 그의 전 생애를 통해 기독자의 최종적인 목표가 온전한 성화, 즉 완전에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328) 그러나 이 완전 또한 과정으로서의 완전이기에 현실에서 기독자는 항상 과정 속에 있게 된다. 중기 웨슬리가 고민했던 죄의 남음의 문제가 바로 이 부분과 관련이 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인간의 할 일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신자는 악의 모든 모양을 조심하여 피하며 기회 있는 대로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며, 착한 일에 열심을 내면서 은총에서 은총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법도 안에서 걸으면서 성령과 함께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며, 또한 자기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는 모든 향락을 부정하면서 다시금 은총에서 은총으로 계속하여 나아가야 한다. 즉 믿음의 열매로서의 ‘성결된 삶(holy living)’이 필요한 것이다. 성결의 삶이 가능해지는 것은 은총에 의해 심겨지는 그리스도의 의 때문이다. 은총에 의해 심겨진 그리스도의 의로 인하여 신자들은 성령과 함께 걸으며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만한 순종을 할 수 있게 된다. 나는 하나님께서 그가(그리스도가) 의를 덧입힌 모든 사람들에게 의를 심어주시는 것(implant)을 믿습니다. 나는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의롭게 할뿐만이 아니라 성화하게 만드신 다는 것을 혹은 하나님께서 그를 믿는 자 모두를 의롭게 할뿐만 아니라 성화케 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덧입혀진 자들은 그리스도의 영으로 의로와 지고 의와 참 성결 안에서 피조되어진 하나님과의 유사성인 하나님의 형상이 갱신되어진다는 것을 믿습니다.329) 이러한 기독자의 여정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은총이 자리잡고 있다. 웨슬리는 이 은총을 용서의 권능으로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기쁨을 의도하고 행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우리 안에서 작용하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정의하고 있다. 우리는 (그의 선한 기쁨을 의도하고 행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 안에서 작용하는 하나님의 권능의 의미에서) 은총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지각할 수 있는 대상들이 지각되어지는 것처럼 (그 은총이 확신시키고, 새롭게하고, 정화시키며, 밖으로부터 안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실 때) 그 은총을 마음으로 느낍니다.330) 이러한 은총 이해는 웨슬리가 끊임없이 죄와 속죄의 법정적인 의미와 치유적인 의미와 씨름을 할 수밖에 없게 하였던 악의 기원331)과 악에 대한 선택의 결과로서의 인간의 현실332)과 관련 있다. 인간은 의지의 자유를 오용함으로 하나님을 떠난다. 인간은 불순종을 택하였다. 이러한 불순종은 인간 자신이 값을 수 없는 죄책을 인간에게 가지고 왔으며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자신의 영이 병들어 죽게되는 상황 속에 처하게 된다. 결국 인간의 상태는 자신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 갚아야 할 법적인 채무 관계 속에 처하게 되었고 그 자신의 본성이 부패하고 타락하여 치료를 받아야할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자신만의 힘으로서는 이 모든 현실을 해결 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의 자비와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의 은총을 내려주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의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요 3:16) 여기에 우리의 모든 죄를 위한 치료책이 있습니다. 그는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죄를 범한 어떤 사람이라도 우리는 아버지 앞에 우리의 본성의 타락(부패)을 위한 치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의 중재를 통해서, ‘우리에게 그의 성령을 주셨고’(살전 4:8) 우리를 지식과 그의 근원적인 모습 안에서 새롭게 하셨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필요한 우리의 명철과 밝히 볼 수 있는 눈을 모든 지식들과 함께 열어 주셨습니다. 그것도 그의 도덕적인 모습들 즉 의로움과 진실한 성스러움 안에서 말입니다. 이것이 행해질 때 우리는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게 됨’(롬 8:28)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행복한 경험을 통해서 모든 자연적인 죄악들이 본래의 모습에서 선으로 바뀐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슬픔, 아픔, 고통은 우리의 정신적인 괴로움을 치료하기 위한 모든 약품들을 증명해 줄 것입니다. 그것들은 모두 우리의 유익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말로 다 할 수 없는 유익이 되어 우리를 보다 충분한 그의 거룩함의 참예자로 만들어 갈 것입니다. 우리가 세계에 남아 있는 동안에 , 우리를 위해 하늘에 예비된 왕관에 많은 별들을 더해 갈 것입니다.333) 이러한 인간 현실의 이해가 웨슬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과 그 열매로서의 ‘거룩한 삶’의 조화를 가능하게 하였다. 이 모든 것은 은총에 의해서 신자가 성령과 함께 동행함으로 가능해진다. 성령과 동행하는 신자는 성화의 과정 가운데 은총에 의해서 자기 자신에게 남아있는 죄악성을 치유하고 죽이는 과정의 동참에 대한 가능성과 당위성을 가지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중기 웨슬리가 고민했던 신자의 남은 죄의 문제로 인한 죄의 해결에 있어서 속죄의 법정적인 의미와 치유적인 의미의 긴장관계가 해소된다. 결국에 칭의와 거듭남 후에 남아 있는 죄에 대한 지속적인 치유의 과정이 필요하다. 마치 병을 알아야 치유가 가능한 것처럼 칭의와 거듭남 후에도 신자에게 남아있는 죄악성(자만, 자기 의지, 이 세상에 대한 사랑, 악한 부끄러움, 탐심등)을 깨달아야 치유가 가능해진다.334) 곧 의롭다 하심을 입은 사람들 속에서도 어느 정도 육에 속한 마음이(바울이 고린도 신자들에게 “너희는 육에 속하였다” 하였듯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즉, 타락의 경향에 있는 마음, 아직 계속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떠나려는 마음입니다. 또는 자만, 고집, 분노, 복수심, 세상사랑 또는 갖은 악을 사랑하는 그런 성벽인 것입니다. 환언하여, 순간이라도 굴레를 벗기면 곧 솟아오르려는 “쓴 뿌리”가 아직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런 부패성은 하나님이 비춰주시는 밝은 빛 없이는 알 수도 없는 깊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자들 마음속에 남아 있는 이런 모든 죄를 깨닫는 것이 바로 의롭다 하심을 입은 신자들에게 속하는 회개입니다. 죄가 우리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으면 이 죄가 또한 우리들의 모든 말과 행실에 나타나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335) 참된 신자들은 그들 자신의 남아있는 죄악성으로 인하여 칭의와 거듭남 이전의 가장 악한 죄를 부끄러워했던 것보다 더욱 자신의 최선의 의무를 부끄러워한다.336) 이러한 자기인식은 신자가 자신의 죄책과 무력함을 깨달았을 때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복음적 회개로 인해 신자는 은총에 의한 믿음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의 하나님의 권능을 받음으로 마음이 정결해지고 우리의 손이 깨끗해진다. 또한 복음적인 회개 속에 있는 신자는 자신을 향한 형벌과 죄책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왜냐하면 위대한 의사이며 우리의 영혼을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깨끗게 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은총으로 인해 우리 본성의 온전한 치유 과정이 가능해진다.337) 신자가 이런 복음적 회개 속에서 성령과 함께 걸으면서 다시 타락의 순간에 빠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두 번째 축복(second blessing)’이 신자 안에 남아 있는 모든 악의 근원인 육의 본성을 파괴한다. 따라서 이 ‘두 번째 축복’을 받은 신자에게는 더 이상 생래적인 죄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몸의 행위를 억제하며 안과 밖의 죄를 대항하고 정복하여서 우리의 원수를 매일 매일 약화시킬 수 있을지 모릅니다마는, 우리가 그것들을 완전히 내어쫓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을 때 받은 은총을 가지고는 우리들은 그것들을 근절시킬 수 없습니다. 비록 우리들이 그저 깨어서 열심히 기도한다 하여도 우리의 마음과 손을 전적으로 깨끗이 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히 우리로서는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다시 한번 곧 두 번째로 “깨끗해져라!”고 말씀하실 때에야 비로소 가능합니다. 그 때에만 그 문둥병은 깨끗하여지는 것입니다. 그 순간에만 그 악의 뿌리, 육의 본성이 멸절 되는 것입니다. 그 순간에야 이 생래의 죄는 생존치 않게 되는 것입니다.338) 웨슬리에게 있어서 인간의 구원이라는 것은 모든 죄로부터의 구원이다. 단지 죄책만으로부터의 구원이 아닌 죄의 힘과 죄의 뿌리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에게 구원의 과정, 기독자의 순례의 과정 속에서의 죄와 은총의 관계는 중요한 목회적, 신학적 주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당신은 구원받을 것이다. 우선 그의 피의 속죄를 통해 죄책으로부터, 다음은 당신을 더 이상 지배하지 못하는 죄의 힘으로부터 그리고 그것의 뿌리로부터”339) A. 악의 기원에 대한 웨슬리의 견해 기독교 역사상 신학자들이 직면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들 중에 하나는 바로 악의 문제로서 사랑과 선, 그리고 정의의 하나님과 현실의 악의 현존을 어떻게 설명하는가이다. 웨슬리 또한 “악은 어디에서 오는가?”340)라는 문제에 대해서 오래 동안 흥미를 가졌다. 악이 어디로부터 왔고 왜 왔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웨슬리의 견해를 살피기 위해서는 주제를 두 부분으로 나눌 필요가 있다. 하나는 심미적인 측면으로서 하나님의 선함과 창조의 선함, 존재의 사슬(chain), 선한 천사와 악한 천사와 같은 주제이고 또 다른 하나는 도덕적인 주제로써 웨슬리가 악을 어떻게 묘사했으며, 그것을 어떻게 정의했는가의 문제이다.341) 1. 악의 기원에 대한 웨슬리의 심미적 고찰 심미적인 주제는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시작되어야만 한다. 하나님의 전능과 전지를 견지하면서 웨슬리는 악의 기원에 대한 문제를 정의와 선하심이라는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들을 적용함으로서 시작한다.342) 그와 같은 속성을 가지신 하나님은 단지 선한 피조물을 창조할 수밖에 없으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하심은 창조의 선하심의 전제인 것이다. 따라서, 모든 피조물은 본질적으로 선할 수밖에 없다. 웨슬리는 타락 이전의 피조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모든 것이 하나의 일반적 체계로 구성되었을 때에 모든 피조물은 그것의 원래의 상태에서는 선했었기에 ‘보라. 그들은 매우 선했었다.’라는 말의 의미를 매우 쉽게 알 수 있습니다.”343) 타락 이전의 ‘매우 선한’ 창조 속에서 웨슬리는 모든 피조물이 완벽한 질서와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344) 악의 혼재 또한 없었다345)는 것을 확신했다. 완벽한 질서나 조화에 대한 웨슬리의 묘사는 그 당시에 유행했던 경험주의나 지적 관찰에 의해서가 아닌 현재의 세상에 악이나 죄가 없다면 이라는 상상에 의해 도달한 결론이었다. 따라서, 그가 상상한 타락 이전의 피조 세계는 재앙, 결점, 부패, 혹은 파괴적 경향이 없는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346) 이러한 결론의 근거는 웨슬리가 비록 타락했지만 현 세계의 관찰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실존과 속성을 알 수 있다고 보았다는 점에 있다.347) 웨슬리의 ‘피조물은 궁극적으로 선하다’라는 교리의 저변을 이루고 있는 주요한 개념과 구조는 ‘존재의 사슬(Chain of being)’혹은 ‘충만의 원칙(principle of plenitude)’이다.348) 모든 부분은 정확히 다른 부분들에 적합했습니다. 그리고 전체의 선함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왕관”으로부터 나온 ‘황금 사슬(a golden chain)’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정확하게 일련의 존재들, 지고부터 가장 낮은 것까지 관련이 있습니다. ... 그리고 그것은 영원까지 그의 창조자를 알고 사랑하고 향유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349) 이 ‘존재의 사슬’은 낙원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인간으로부터 하등한 피조물까지 전달해 주었다. 주의할 점은 ‘존재의 사슬’ 속에서 인간보다도 높은 천사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다.350) 천사의 실재는 감각의 세계를 초월해서 존재하기 때문에 그들은 단지 믿음에 의해서 알려질 수 있다.351) 그리고 웨슬리는 그의 천사에 대한 개념을 성서의 계시와 희랍 철학, 그리고 많은 부분을 밀턴(Milton)의 실낙원(Paradise Lost)에서 가지고 왔다.352) 피조된 존재로서 천사들 또한 유한한 존재들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창조하셨을 때 그들은 심지어 가장 지고의 천사들인 케루빔(Cherubim-지품 천사로 9품 천사 중에 제 2위인 지식의 천사)과 세라핌(seraphim-천사의 9품중 1위인 치품 천사로 인간과 닮은 모습으로 세 쌍의 날개를 갖춘 천사, 이사야 6:2,6)과 같은 영적인 존재들도 유한하였다.353)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해와 지식과 지혜와 성결과 힘은 우리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354) 그리고 그 영적 심층부에는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쓰신 도덕법이 그들에게 주어졌다.355) 그 도덕법에 의해서 천사들은 하나님의 완전한 의지를 알 수 있었고 그들은 그것들을 기꺼이 완벽하고 지속적으로 행할 수 있었다.356) 그리고 그들은 선택하고 거부할 수 있는 자유의 능력을 가졌고 이것으로 자유한 의지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다. 그 섬김은 그 자체로 보상이었고 그들의 은혜로운 주에게 가장 잘 받아들여질 만한 것이었다.357) 웨슬리는 이점에 있어서 천사들이 죄지을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여겼으며 결국에는 이 자유가 하늘의 반역의 원인이 되었다고 여겼다. 하나님은 그의 자연적 형상뿐만 아니라 도덕적 형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는 인간을 지와 의와 참 성결로 창조하셨습니다. 그의 이해력은 흠 없고 완전했던 것처럼 그의 모든 감정도 흠 없고 완전했었습니다. ... 그러나 인간이 악을 선으로 오해했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무오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결과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unde malum?" 즉 “세상에 악이 어떻게 왔는가?”의 광대한 물음에 전적인 어려움을 풀어놓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침의 아들, 루시퍼”로부터 왔습니다. 그것은 “악마의 일”이었습니다. 사도는 “악마는 처음부터 죄지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즉, 그가 우주의 최초의 죄인이었으며, 악의 주인이고, 그의 자유를 오용했기에 피조 세계에 악을 처음으로 소개한 첫 존재였습니다. “첫 천사장이 아니었던 최초의 그”는 그 자신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유혹을 받았고 그는 그의 자유 의지로 그 유혹에 넘어갔습니다.358) 결국, 웨슬리는 자유의 오용으로 인한 루시퍼의 자기 의지가 악의 원인이 된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루시퍼가 타락했을 때 그는 단지 자기 혼자만 타락한 것이 아니라 세력을 이루었고 그 결과로 그들은 그들의 영광과 행복을 잃어버렸으며 이전의 거주지로부터 추방당하였다.359) 웨슬리에 의하면 인간이 가지지 못한 많은 특권들을 천사들이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국 자기 의지, 자만, 그리고 자유 의지의 오용으로 인해 하나님께 반기를 들었고, 그것으로 인해 세상에 악이 오게되었다. 그 결과 최상위의 존재의 사슬은 선한 천사와 악한 천사로 나뉘게 되었으며 하나님과 선한 천사는 인간을 위해서 섭리하였고, 악한 천사들과 사탄은 하나님에게 대적하게 되었다.360) 이러한 싸움은 아담에 대한 유혹과 타락 이전에 있었던 것이었다. 웨슬리의 악의 기원에 대한 심미적인 고찰은 다음과 같은 부분들로 구성되어진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피조물의 선함, 다른 피조물에게 하나님의 은총의 통로로서 역할을 감당하는 피조물 내의 존재의 사슬, 존재의 사슬의 정점으로서의 천사, 그리고 우주적인 이원론에 기인한 존재의 사슬을 나누고 세상에 악을 가지고 온 천사의 타락이 그것이다.361) 2. 악의 기원에 관한 웨슬리의 도덕적 고찰362) 사실 위에서 살펴본 웨슬리의 악의 기원에 대한 심미적인 고찰은 악의 정의(definition)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웨슬리는 결점 없는 창조의 교리를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악의 발생은 전적으로 “선이나 악을 선택하거나 거절할 수 있는 힘”인 자유 의지의 오용에서 기인했다고 생각했다.363) 이에 반해서 어거스틴 전통의 낙관주의자들인 킹(William King)과 예닝스(Soame Jenyns)는 창조의 불완전으로부터 자연적 악을 설명했다. 그들은 악을 자유 의지의 오용이라기보다는 선의 결핍으로 보았다. 문제는 이들이 악이 존재를 구성하는 실존적인 수단으로 필수 불가결하게 이 세상에 왔다고 주장364)한 데에 있었다. 결국 자칫 잘못 하면 이들의 주장은 악이 창조의 시점에 있었던 것이 되어버리고 하나님이 악의 창조자가 되어버리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웨슬리는 그들의 신정론(theodicy)을 거부한 것이다. “악은 사물의 기원적인 본성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은 사물의 필연적인 결과라기보다는 영의 필연적인 결과였다.”365) 악이 창조로부터 기인한 것이 아니라면, 어디에서 왔는가? 웨슬리에게 있어서 악은 단지 의지의 결과였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악이 세상에 흘러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셨는가?라는 물음이 대두된다. 웨슬리는 이에 대해서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받을 수 없는 영원한 더 큰 지복을 받을 수 있게 함으로써 그의 지혜와 정의와 자비에 대한 완전한 확증의 위해서366)라고 대답한다. 아담이 죄 짓지 않았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시지도 부활하시지도 않았을 것이다.367) 이점에 있어서 웨슬리는 악의 기원에 대해 어거스틴과는 다른 궤적을 그리게 된다. 악은 선의 결핍이 아닌 완전한 선으로부터의 일탈 혹은 선을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기인한 선의 타락이다. 그 결점은 물질이 아닌 의지에 있다. 결국 웨슬리는 피조물의 결함 가능성은 정확하게 천상적인 의지와 인간적인 의지의 오류가능성과 불완전성에 있다고 보았다. 그들의 의지는 흠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결점은 창조의 방법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영혼이 자리잡고 있는 의지에 있었던 것이다. 결국 웨슬리에게 있어서 창조 안에 있던 결점은 심미적인 것이 아닌 도덕적인 문제였다. 여기에서부터 웨슬리는 악의 기원에 대한 전체적인 물음을 풀어나간다. 모든 악은 자연적, 도덕적 혹은 형벌적인 것입니다. 즉 자연적 악 혹은 고통은 뒤따르는 기쁨이 그것들을 능가한다면 그것은 전혀 악이 아닙니다. 그 도덕적 악 혹은 죄는 그것을 선택한 사람이 그것을 자발적으로 포용하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타락시킬 수 없습니다. 그리고 형벌적 악 혹은 형벌은 그들이 죄를 선택함으로서 그것을 선택하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타락시킬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점에 있어서)하나님의 정의와 선하심이 선이나 악을 선택할 자유를 그의 피조물에게 주는 것, 그들 자신의 손에 행복과 불행을 놓아주는 것, 그들에게 삶과 죽음의 선택권을 남겨두는 것에 전혀 모순되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것은(악의 선택) 전적으로 하나님의 정의 혹은 선하심의 모든 덧입혀짐을 단절시키는 것입니다.368) 여기서 웨슬리는 자연적 악, 도덕적 악, 형벌적 악을 구분한다. 도덕적 악과 형벌적인 악은 자유의지를 전적인 조건으로 한다. 웨슬리는 물질 세계가 어느 정도 비물질 세계 안의 의지의 결점에 의해 영향받았다고 믿었다. 그러하기에 웨슬리는 자연적인 악 또한 악에 대한 아담의 선택의 결과369)라고 보았다. ‘존재의 사슬(The chain of being)’은 아담의 죄로 인해서 그 기능에 장애가 발생했다. 아담이 결함적 창조의 결과로서 고통받은 것이 아니라, 피조 세계가 아담의 결함으로 인해 고통받게 되었다. 인간의 의지 속에 결함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럼으로 악과 죄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새창조(New Creation)는 자연적 악으로부터의 해방도 포함한다. 즉 존재들 사이의 고통으로부터의 해방도 의미하는 것이다.370) 그러나 웨슬리는 주로 도덕적인 측면에서 악과 죄에 대한 정의를 내렸기 때문에 ‘죄 많은 육체’에 대한 정의를 부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확실히 우리가 죄 많은 육체에 거한다면 우리는 죄로부터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 성서에서 권위를 찾을 수 없습니다. ‘죄 많은 육체’라는 단어는 성서에서 발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전적으로 비성서적이라면 그것은 명백하게 잘못 사용되어진 것입니다. 어떤 종류의 육체 혹은 물질도 죄가 있는 것이 아니고 단지 영만이 죄에 대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단지 영혼만이 죄의 거주지가 될 수 있습니다.371) 결단과 자유의지의 근원인 영혼만이 죄에 대해 책임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악과 죄라는 것은 하나님의 의지대로 행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웨슬리의 관점에서 악은 선의 결핍이 아닌 선의 타락이며 육체는 도덕적으로 중립적이다. 이점이 웨슬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형상의 전적 회복의 온전한 성화, 즉 완전에 대한 가능성을 제기할 수 있는 근거와 거룩한 삶의 가능성에 근거 중에 하나가 되는 것이다. B. 인간의 타락과 생래적 죄(원죄) 1. 인간 안에 하나님의 형상 전통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은 다른 피조물들과 달리 인간 존재가 지닌 어떤 재능 혹은 능력과 동일하다고 여겨왔다. 웨슬리 시대의 이신론자들은 이성을 하나님의 형상과 일치시켰고, 웨슬리 이후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양심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았다.372) 이들은 이성과 양심을 본래 내재적인 것으로 본 반면에 웨슬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적인 면에서 이것들을 보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적인 면은 인간과 다른 피조물과의 관계로까지 반사되어야 한다.373) 웨슬리는 창조된 인간이 본성적 형상(natural image), 도덕적 형상(moral image), 정치적 형상(political image)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고 해석374)한다. 웨슬리는 인간의 본성적 형상(natural image)에서 원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음을 강조한다. 첫째 웨슬리는 인간의 이해(understanding)가 하나님의 형상임을 주장한다. 인간은 그를 만드신 분을 닮았기 때문에 이전에 존재하는 사실과 현재의 비교로부터 더 심오한 진리를 추론해 낼 수 있었으며, 거짓으로부터 진리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었다.375) 웨슬리는 인간 이해력의 의로움(just), 분명함(clear), 신속함(swift), 위대함(greatness)을 주장한다.376) 두 번째 인간의 본성적 형상은 의지(will)이다. 웨슬리는 정의롭고, 명료하고, 신속하고, 포괄적인 이해력과 같은 것들은 인간이 원래 창조된 하나님의 형상의 지극히 작은 부분이었다고 하면서, 인간의 두 번째 자질인 완전한 의지(will)를 말한다. 그는 이 속성이야말로 실로 더욱 위대하고 더욱 고귀한 속성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의지력은 그러한 이해력의 명령을 따르기 때문에 완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만일 감정(affection)에 대해서 말한다면, 인간의 손상되지 않은 감정은 합리적(rational)이고, 공평(even)하였다. 타락 이전의 인간은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love) 그 자체였다. 사랑이 그의 영혼 속에 가득 차 있었다. 인간의 마음의 모든 움직임이 곧 사랑으로서 이 사랑이 바로 그의 생동감 있는 열기였다. 사랑은 그의 존재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따듯한 온기였다. 사랑의 불꽃은 그가 나온 하나님께로 타오르게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의지는 오히려 감정(affection)을 의미한다. 세 번째 인간이 가진 하나님의 본성적 형상은 인간이 본래 즐겼던 자유(liberty)이다. 인간의 본성은 부패하지 않은 의지(uncorrupted will)와 완전한 자유(perfect freedom)를 누릴 수 있었다.377) 정치적 형상과 도덕적 형상이란 용어는 웨슬리가 아이작 왓츠(Isaac Watts)로부터 빌려 왔다.378) 웨슬리는 창 1:28과 시 8:6-8에 나오는 우주의 지배자의 개념을 정치적 형상으로 표현한다. 우주와 만물을 다스리고 지배하는 인간의 정치적 능력을 뜻한다. 인간의 정치적 형상이란 하나님의 통치의 대리자요, 왕자 같은 정치력을 부여받은 자로서 창조주와 그의 피조 세계를 연결시켜 주는 채널의 역할이 있음을 의미한다.379) 그러나 인간의 지배와 통치를 받는 피조물들도 낮은 수준이기는 하지만 본성적 형상(natural image)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스스로 움직이는 능력(self-motion), 이해력(understanding), 의지와 감정(will, passion), 그리고 선택의 자유(liberty, power of choice)를 갖고 있다.380) 도덕적 형상이란 본성적 형상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본성적 형상은 영의 이해와 감정과 결단의 기능이라면, 도덕적 형상은 영적 기능에 의해 형성되는 영적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도덕적 형상은 피조된 인간 속에 있는 가장 고귀한 하나님의 형상이다. 그것은 곧 의로움(righteousness)과 참 거룩함(true holiness)381)이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의 순간에 하나님의 도덕적 형상을 완전히 상실하였고, 하나님의 본성적 형상과 도덕적 형상을 부분적으로 상실하였다.382) 2. 인간의 타락 웨슬리는 인간이 피조되었으며 의존적인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기본적인 확신을 가지고 그의 신학을 전개해 나간다. 특히 그는 인간 자신의 실존과 모든 능력이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임을 이야기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영원한 생명 속에 있는 의를 통하여. 여기에 우리의 축복과 하나님의 부요하시고 값없이 주시는 은총의 근원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은총의 원인은 인간의 공적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공적이다. 이 모든 것의 결과 혹은 효과는 단지 용서만이 아닌 생명, 영광으로 이끄는 신적인 생명이다.383) 오늘날 바로 우리의 생명, 호흡과 만물을 주시는 것도 역시 값없이 주시는 은총에 의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하여는 지극히 적은 것이라도 우리는 그것을 가지거나 행하기에 아무 가치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 자신이 우리 안에서 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런 것들은 모두 그의 자비의 표적들입니다. 사람 안에 어떤 의가 있다면 이것도 또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384) 여기서 웨슬리는 하나님의 은총이 타락 이후에도 인간에게 영향을 끼친다고 말하고 있다. 그가 이것으로 무엇을 의미하고자 했든지 간에 하나님의 은총의 표현으로서 창조를 말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웨슬리는 그의 설교 “하나님의 형상(The Image of God)”에서 다음과 같이 창조된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다. 모든 시대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라는 진리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이 진리를 확고하게 보존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을 뿐만 아니라 그의 근원인 하나님과 아주 유사하다고(likeness) 주장했습니다. 즉, 인간에게서 여전히 신적 부모(Divine Parent)의 형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385) 그러나 웨슬리는 이어서 만일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고 한다면 인간의 본성을 얼룩지게 하고, 치욕스럽게 하는 무수한 불완전함은 어디서 왔다는 말인가 하고 무신론자들의 공격을 언급한다.386) 그러나 웨슬리는 어거스틴처럼 마니교적 선과 악의 이원론적 창조를 공격하며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 곧 일원론적 창조를 주장한다. 또한 웨슬리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아름답고 선하게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주장한다. 그런데, 이렇게 지혜롭고, 미덕을 지니고, 행복한 피조물이 어떻게 이러한 완전성을 박탈당했는가?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는가? 웨슬리는 쉽게 대답한다. 인간의 자유는 어떤 시험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었기에 인간은 시험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그 시험에서 인간은 실패하고 죄를 짓게 된다. 즉 하나님이 부여하신 자유롭고 선한 본성을 스스로의 의지로 상실하고 타락하고 부패시키는 선택을 한 것이다.387) “죄는 인간이 자유를 남용함으로 인해서 (세상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388) 죄의 첫 번째 결과는 인간의 육체에 나타났다. 이 불멸의 존재(육체)가 멸망을 옷 입게 되었다. 그리고 웨슬리는 육체의 동료인 영혼에 두 번째 충격이 가해졌다고 해석한다. 영혼은 그가 죽을 수 없다는 사실만 제외하고는 육체와 비슷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389) 인간이 타락한 이성과 부패한 의지의 노예가 된 결과, 인간이 완전할 때 인간으로부터 흘러나오던 행복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 사는 세월은 얼마 되지 않지만 인간은 험악한 세월을 살아야만 했다. 게다가 인간의 능력은 쇠약해져 갔으며 세상에는 고통이 쏟아졌으며 하늘의 것들은 사라져 버렸다. 따라서 죽을 수밖에 없으며 어리석고, 악으로 가득 찬 노예 상태가 된 인간에게 고통이 찾아왔다. 타락한 인간이 전적으로 상실한 부분은 바로 도덕적 형상이었으며, 은총으로 구원받은 인간이 회복할 하나님의 형상의 핵심도 도덕적 형상이다. 인간이 타락했을 때 본성적 형상은 부분적으로 잃어버렸다가 은총으로 구원받았을 때 부분적으로 다시 회복한다. 웨슬리는 그의 설교 “하나님의 형상(The Image of God)”에서는 강조하지 않은 이 도덕적 형상을 “그리스도가 오신 목적(The End of Christ's Coming)”이라는 설교에서 본성적 형상과 비교하면서 본성적 형상과 함께 도덕적 형상도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하였음을 강조한다.390) 웨슬리는 “인간의 타락에 관하여(On the Fall of Man)”라는 설교에서 이 도덕적 형상을 상실한 인간에 대하여 언급하였다.391) 그런데 “그리스도가 오신 목적”이라는 설교에서 웨슬리는 보다 구체적으로 도덕적 형상이 완전히 상실하였다고 지적한다.392) 인간은 거룩하지 않고 행복하지도 않으며 죄책 의식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393) 그러나 웨슬리는 그리스도와 성령의 역사로 전적으로 상실된 도덕적 형상과 부분적으로 상실된 본성적 형상이 회복된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성결에의 참여자(partakers of His holiness)’가 된다는 사실에 있다. 여기에서 웨슬리의 주관적이고 능동적인 은총의 개념이 나타난다. 이렇게 새롭게 회복된 상태는 아담의 타락 이전보다 더 훨씬 높은 상태로 회복되는 것이다. 성도들은 아담이 범죄하지 않았을 상태 보다 훨씬 더 높은 거룩함과 영광의 상태로 회복된다. 왜냐하면 아담이 범죄 하지 않았다면 그리스도가 오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오셔서 죄를 사하시고 구속하시고 의롭다 하시고 거듭나게 하시고 성화 시킴으로 훨씬 더 나은 구원의 상태로 회복되는 길이 열린 것이다. 웨슬리가 은총으로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을 말할 때는 본성적, 정치적, 도덕적 형상 중에 대부분 도덕적 형상을 의미한다.394) “거듭남(The New Birth)”이라는 설교에서 보면 웨슬리는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할 때 주로 하나님의 도덕적인 형상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395) 이렇듯 웨슬리가 세 가지 하나님의 형상 중에 도덕적인 형상을 집중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도덕적인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을 다른 피조물들과 구별시키는 참 의와 참 성결(real righteousness and real holiness)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짐승들과 달리 인간이 하나님께 대해 응답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인간들은 영에 있어서 최고의 선에 예배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은 사랑의 거룩한 기질로 채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396) 두 번째는 죄의 상황이 가능한 것은 인간의 도덕적인 형상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악이 왜 있는가?”라는 물음에 웨슬리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피조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웨슬리는 죄의 가능성을 특별히 지, 정, 의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본성적인 형상과 연결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시한 것은 도덕적인 형상을 정형화하는 요소인 선과 악을 선택하게 하는 결정에 대한 인간의 능력이다.397) 다른 말로 도덕적인 형상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표현이다. 그리고 그 관계는 죄의 유해한 효과 때문에 왜곡되어지고 방해받을 수 있다. 이렇게 이해된 도덕적 형상은 인간의 영화 혹은 타락의 가능성을 나타낸다. 이 점이 웨슬리가 도덕적인 형상을 주요 이미지로 묘사하는데 주저하지 않은 이유이다. 세 번째로 하나님의 도덕적 형상은 도덕법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도덕법은 단지 영원히 지고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부패하지 않은 모습이 아니라 인간이 피조되어진 근원적이고 자연적인 본성의 표현이다.398) 즉 도덕법은 의와 거룩함이라는 하나님의 형상의 본질에 대해 중요한 거울의 역할을 한다. 이점이 하나님의 본성과 피조되어진 근원적 인간의 본성 사이에 유사성을 드러낸다. 3. 생래적 죄(원죄) 1) 원죄론 확립의 역사적 배경 웨슬리에게 있어서 원죄에 대한 교리는 지극히 중대한 문제였기에 1756년에 웨슬리는 방대한 양의 논문『원죄에 대한 교리: 성서, 이성 그리고 경험에 의해서』를 저술한다. 이 논문은 비국교도 목사인 테일러(John Taylor)박사의 원죄 교리에 대한 대응으로서 저술되어진 것이다. 웨슬리는 테일러 박사를 마호멧과 비견될 정도로 기독교에 위험을 주는 인물로 경계하고 있다.399) 원죄(Original Sin)에 대한 테일러 박사의 논문은 계몽주의 시대에 있어서 원죄 교리의 타당성에 대한 심각한 도전을 주었고 인간에 대한 극단적인 낙관주의를 피력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웨슬리는 원죄에 관한 논문을 쓴 것이다. 그 논문의 첫 번째 장은 테일러의 원죄 교리에 대한 응답이고, 그 나머지 장들은 헤브덴(Samuel Hebden)과 예닝스(David Jennings), 왓츠(Isaac Watts), 보스톤(Thomas Boston)에게 대부분 빚진 것들이다. 그러나, 웨슬리의 『원죄에 대한 교리: 성서, 이성 그리고 경험에 의해서』는 너무 방대했기에 몇 년 후에 웨슬리는 이 교리를 요약하여 독자들이 읽기 쉽게 설교로 출판한다.400) 웨슬리는 테일러와 그 시대의 이신론자들, 즉 톨란드(John Toland)와 틴달(Matthew Tindal)등401)과 자신을 구별하면서 “원죄(Original Sin,1759)”라는 설교 속에서 이 핵심적인 교리를 부정하는 모든 사람은 단지 여전히 이교도일 뿐이다라고 선언한다. 또한 같은 설교에서 “본성적으로 인간은 악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라는 물음을 이교도로부터 성서적인 기독교를 구별하는 척도로 사용한다. 우리는 그것을 ‘원죄’라고 부르든지 아니면 다른 칭호를 붙이든지 간에 기독교와 이교간의 차이점을 고려해 볼 때, 이 사실을 부정하려고 하는 자는 이교도임이 분명하다고 규정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인간은 많은 악덕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 대부분은 날 때부터 가지고 나온 것이며, 그래서 결과적으로 우리가 당연히 지니고 있어야 될 현명함과 덕스러움을 가지고 태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들도 인정하게 됩니다. ‘우리는 악하게 될 수 있는 것과 동시에 선하게도 될 수 있는 성향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모든 사람은 창조되었을 때의 아담과 마찬가지로 날 때부터 ‘덕스럽거나 현명하였다’고 노골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이 사실을 검토해 볼 수 있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사람은 본래부터 온갖 죄악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까? 사람에게는 모든 선이 결여되어 있습니까? 사람은 전적으로 타락된 것입니까? 사람의 영혼은 전적으로 부패된 것입니까? 혹은 성서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사람의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들이 항상 악할 뿐입니까?’ 이 사실들을 그렇다고 긍정한다면 당신은 그만큼 기독교인이 되고 이 사실을 부정한다면 당신은 아직까지도 이방인에 불과합니다.402) 이러한 상황 속에서 웨슬리가 집중했던 관심은 바로 구원에 관한 문제였기에 어거스틴이 펠라기우스에 반대했던 것처럼 테일러의 원죄에 대한 교리를 반대하게 된 것이다. 웨슬리의 구원론에 있어서 일관되게 흐르는 특징인 하나님의 은총의 우선성에 큰 위협을 주는 펠라기안적인 인간이해, 특히 원죄를 부정하는 견해를 웨슬리는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2) 원죄(Original Sin)를 대신하는 생래적 죄(Inbred Sin)403) 원죄라는 것은 인류의 조상 아담의 범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담의 범죄의 결과가 그의 후손들에게까지 영향을 주고 있음을 뜻하는 용어이다. 그런데 웨슬리는 주로 원죄라는 용어를 그것을 사용하는 이들과의 대화시에 사용하였다. 특히, 테일러에게 그런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원죄라는 용어에 대한 모호성이『원죄에 대한 교리: 성서, 이성 그리고 경험에 의해서』와 “원죄(Original Sin)”라는 설교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인간의 죄악성의 실체를 강조하고자 할 때, 원죄(original sin)보다는 오히려 ‘생래적 죄(inbred sin)’, ‘내재적 죄(inbeing sin)’, ‘타락한 죄악된 본성(corrupt sinful nature)’, ‘육욕의 사람(carnal mind)’, ‘태생적 죄(birth sin)’, ‘내적 죄(inner sin)’등과 같은 용어를 더 많이 사용404)하고 있다. 그리고 웨슬리는 그의 평신도 설교가들에게 설교 44번 “원죄(Original Sin)”을 이야기할 때, 그 제목을 항상 “내재적 죄(Inbeing Sin)” 혹은 “내주하는 죄(Indwelling Sin)”로 부르고 있다.405) 이렇게 원죄(original sin)라는 용어를 피하고자 한 이유는 웨슬리의 관심의 문제였다. 그는 물론 전가된 죄책에도 관심을 가졌지만, 하나님이 각각의 인간을 책임적으로 치리하고 계시다는 것, 즉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기독자의 응답 가능한 삶에 더욱더 관심을 가졌다. 그러하기에 웨슬리의 죄에 대한 관심은 인간 본성 안에 죄의 현재적인 오염에 더욱 집중하였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보편적 은총으로 인해 아담의 죄책으로부터 모든 인간이 벗어나게 되었다.406) 따라서, 인간의 실질적인 문제는 아담의 죄로 인한 인간 본성의 타락과 손상의 문제만407)으로 국한된다. 웨슬리는 특히 원죄의 죄책이 실질적으로 없어졌음을 어린아이와 관련하여 설명한다. “어떤 어린아이라도 아담의 죄에 대한 죄책으로 인하여 지옥에 갔거나 갈 어린아이는 결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세상에 왔을 때 그리스도의 의로 인하여 아담의 죄책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408)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슬리가 일종의 인류의 죄(racial sin)에 대해 부정했다는 것은 아니다. 웨슬리는 어린아이조차도 죄인이라는 점에 동의했다.409) 즉 웨슬리는 원죄의 죄책과 그 결과로서의 인간 본성의 부패가 모든 인류에게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의한다. 따라서 웨슬리는 원죄(original sin)를 전가된 죄책(imputed guilt)과 유전된 부패(inherited depravity)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날 때부터 죄가 있는 것은 아니며, 실제적인 죄의 과정으로서 나중에 저지르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 인정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과정 이전에 “진노의 자녀들”이기에, 어느 정도 진노와 벌을 면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것의 분명한 의미 속에서 취해진, 명백한 본문으로부터 우리는 신적인 용어인 전가된 원죄와 유전된 원죄에 대하여 명백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전자는 아담의 죄인데,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우리에게 들어 있는 죄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후자는 본래적 의로움의 결핍이며 본성의 타락인데, 그것이 유년기 때부터 우리가 선한 것을 싫어하고 악한 것을 좋아하는 이유이다.410) 여기서 두 가지가 드러난다. 첫째는 이 구절에서 웨슬리는 분명히 이 교리를 일상적으로 사용했던 성 어거스틴과 그 시대의 다른 기독교 저술가들을 따르고 있다.411) 그리고 두 번째는 아담의 범죄함으로 기인한 죄책(guilt)과 부패(depravity)가 어떻게 아담의 후손에게 전가되는가의 문제를 드러낸다. 3) 생래적 죄(Inbred Sin; Original Sin)의 유전성 문제 서방 기독교는 원죄의 전가에 대한 문제를 영혼 창조설적인 측면에서 전통적으로 이해를 해왔다. 그런데 웨슬리가 과연 원죄의 죄책에 대한 전가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했는가는 참으로 흥미 있는 주제이다. 왜냐하면, 그의 원죄의 죄책에 대한 전가 문제의 이해가 변화하였기 때문이다. 원죄의 유전성 문제에 있어서 올더스케잇 체험 이전에 웨슬리는 현재 인간의 타락이 생물학적인 전이의 영향412)이라는 측면으로 기울어 있었다. 1730년에 설교한 “하나님의 형상(The Image of God)”에서 그는 아담과 이브가 금지된 과일을 먹었기에 그들의 피를 혼탁하게 하는 요소들을 함유하는 체액을 가지게 되어서 결국 그들은 죽게 되고 육체적으로 무질서해지고, 그들의 능력이 손상되어지는 결과가 발생했다고 본다. 죄의 첫 번째 결과는 그의 육체에 나타났습니다. 이전에는 불멸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육체 안에는 타락의 씨앗이 없었으며 밖으로부터 아무 것도 받아들이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육체의 본래적 입자들은 부패하지 않은 것들이었습니다. 따라서 필요를 위해서가 아니라 쾌락을 위해서 추가된 입자들은 본래의 입자들의 본성(native substance)과 결합할 수 없었으며, 본래의 입자들은 보충될 필요가 없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외부에서 들어온 추가된 입자들은 본래적 입자들의 어느 부분과도 결합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섞여진 두 본질들은 섞이기 전과 똑같은 성분을 갖고 있음에 틀림이 없으며 이 본질들을 담고 있는 그릇들은 섞이기 전과 똑같은 근원을 가지고 있으며, 여전히 깨끗하고 열려져 있음에 틀림없습니다.413)
여기에는 하나님의 금지하는 명령에 도전하지 않았다면 아담은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담의 죽음에 대한 오래된 논제’를 갱신하고자 하는 시도가 담겨있다. 루터는 “아담이 순종했었더라면 그는 결코 죽지 않았을 것이다. ... 그가 창조된 상태로 남아 있었더라면, 그는 육체적인 생명이 요구하는 다른 일을 행했을 것이며, 마침내 그는 영적이며 영원한 생명으로 바뀌게 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414) 웨슬리는 새로운 생리학(Harvey, Cheyne, Weemes등)이 이러한 전통을 확인해 준다고 믿었다. 즉 인간 유기체는 해독한 물질에 의해 타락되지 않았다면 무한하게 작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아담과 이브가 그들의 후손에게 본성의 부패의 중계자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웨슬리의 전적 성화(완전)에 대해 반대하는 옛 동료 톰슨(Richard Tompson)으로부터 1755년에 받은 편지415)와 테일러의『원죄에 관한 성서적 교리(The Scripture Doctrine of Original Sin, Proposed to Free and Candid Examination)』416)에서 대두된 물음이 그로 하여금 원죄의 전이에 관한 생물학적인 관점을 차츰 포기하게 만든다. 즉, 어떻게 죄에서 완전히 자유한 부모로부터 부패한 본성을 가진 아이가 태어날 수 있겠는가?라는 물음이 웨슬리로 하여금 원죄의 생물학적인 전이론을 포기하게 한다. 이후에 웨슬리는 종교개혁가들의 원죄 교리에 포함되어진 ‘전가되어진 타락(imputed depravity)’과 ‘죄된 육체(sinful body)’로 표현되어지는 영혼 창조설417)적 입장에 대한 옹호를 시작함으로서 그의 원죄에 대한 교리를 확립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사실 웨슬리는 원죄 혹은 생래적인 죄가 어떻게 전이되는가?의 문제에 대해서 1762년까지는 약간은 모호한 태도를 가졌다. 웨슬리는 “성서에 의해서, 경험에 의해서, 나는 그 사실을 안다. 나는 그것이 전이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어떻게 전이되어지는지 알지 못하고 알기를 원하지도 않는다.”418)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1762년 아마도 웨슬리는 울노어(Henry Woolnor)의 『영혼의 참 기원(The True Original of the Soule)』을 접하고 영혼 창조설적 관점에서 영혼 유전 전이설419)에 대한 관점으로 선회를 한 것으로 보인다.420) 웨슬리는 출생시에 아담의 자손들의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도 인류의 첫 부모에게 속하기 때문에 아담의 죄책과 그 결과들이 온 인류에게 미치게 된다고 본다. 즉 인류는 아담 안에서, 아담과 함께 타락하였기에 출산시에 타락한 영혼이 전이되는 결과가 발생한다. 웨슬리는 1762년 그의 『신약 성서 주해』를 영혼 유전 전이설적인 입장에서 개정한다. 그는 히브리서 12장 9절의 주해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이 세상이 시작될 때에 창조하셨다고 주장한다.421) 이 개정의 요점은 우리의 영혼이 아담의 사슬에 있고 우리의 부모를 통해서 우리가 출생한다는 것이다.422) 웨슬리는 영혼의 유전 전이설적 인간론을 1782년 확실하게 명시하고 있다. 웨슬리는 그 해 아르미니안 메거진(Arminian Magazine) 5월 호에서 울노어의 책에 많은 영향을 받은 “영혼의 기원에 관하여(On the Origin of the Soul)”라는 소논문을 발표한다.423) 그리고 그는 이런 입장에서 1782년에 그의 초기 설교 “하나님의 형상(The Image of God)”의 창조와 타락이라는 주제를 다시 한번 “인간의 타락에 관하여(On the Fall of Man)”라는 설교로 피력한다.424) 4) 원죄의 결과 아담의 죄책으로 인한 결과는 웨슬리의 설교 “원죄(Original Sin)”에 잘 나타나 있다. 원죄의 결과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로 드러난다. 먼저 인간은 무신론자로 세상에 태어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으며, 그를 알지 못한다.425) 즉, 은총을 받기 이전의 우리의 자연적인 이해력(understanding)은 우리를 하나님에 관한 지식으로 이끌 능력이 없다. 그리고 이 지식을 갖지 못한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다.426) 고립되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인간은 자신들을 삶의 수단의 중심에 놓음으로서 일종의 우상숭배에 열중하게 된다. 마땅히 하나님께 집중해야할 경외를 우리 자신에게 향하게 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숭배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 중에 일부가 잘 달려간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길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그들은 결코 옳은 길을 목적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든 간에 그들은 자기 자아를 벗어나서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들을 추구합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들을 위해 행합니다. 그들의 자연적, 시민적, 그리고 종교적 행위들은 그것들이 어떤 것에 기인하건 간에 모두다 죽음의 바다로 나아가고 죽음의 바다를 만나게 됩니다.427) 두 번째로 무신론과 우상 숭배는 자만에 근거한다. 그것들은 자기 영광의 결과이다. 그런데 이 죄와 기만의 힘은 너무나도 강하기 때문에 오로지 하나님의 은총만이 그것들을 깨뜨릴 수 있게 되었다.428) 자기 왜곡으로서의 죄에 대한 웨슬리의 이해는 루터와 어거스틴의 죄의 이해와 그 맥을 같이한다. 세 번째, 아담의 유산은 자기 의지를 포함한다. 그러나 교만만이 우리가 본성적으로 지니고 있는, 허물이 되는 유일한 종류의 우상숭배는 아닙니다. 사탄은 역시 우리의 마음속에서 자기 의지라고 하는 그의 형상을 색인해 놓았습니다. 사탄이 하늘에서 추방되기 전에 ‘나는 북방으로 가서 내 창조자의 뜻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신의 의지와 기쁨을 누리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똑같은 말을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이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자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429) 네 번째는 세상에 대한 사랑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사탄의 형상을 지니고, 그의 발자취를 따라 왔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단계에서 우리는 사탄을 떼어놓게 됩니다. 우리가 우상숭배에 빠지는 것이 사탄에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말하고자하는 것은 세상에 대한 사랑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뜻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지금도 아주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430) 원죄의 네 번째 특성은 다음과 같은 구성요소를 가진다. 그것은 바로 ‘육신의 소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등이다.431) 결국 불신앙, 자만, 자기 의지, 이 세상에 대한 사랑과 같은 것은 인간이 아담과 이브로부터 받은 유전적인 것이다.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의 도덕적인 형상은 완전히 잃어버렸고 자연적, 정치적인 형상은 크게 손상되었기에 이 모든 것들은 그들의 자손들에게 전가되어지는 유산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떠나있는 인간의 현재적인 영적 상태는 어두움과 처절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웨슬리는 철저히 종교 개혁전통에 서서 인간의 자연적인 상태를 전적 타락의 상태로 보았으며 이것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은총 외에는 없음을 끊임없이 여러 편의 설교들 속에서 주장해 왔다. 당신은 영혼의 모든 힘과 능력에 있어서 타락해 있습니다. 당신은 이 모든 것에 있어서 전적으로 타락해 있습니다. 물론 존재되는 원천에 있어서도 말입니다.432) 인간 마음 안에 생각의 모든 상상은 악합니다. 오로지 악합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지속될 것입니다.433)... 인간의 모든 자식들의 마음속에는 끊임없이 쏟아 나오는 불의와 부정의 샘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영혼 속에 너무도 깊고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기에 권능의 은총 외에는 그것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434) 1. 내적 죄와 외적 죄 (inner sin and actual sins) 웨슬리가 구분한 내적 죄와 행위의 죄와의 관계는 죄와 은총의 관계에 있어서 거듭남과 관련이 있다. 즉 거듭난 자는 죄의 힘으로부터 자유하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십자가의 은총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으며 성령의 능력으로 거듭난 자는 “모든 종류의 외적 죄, 즉 모든 악한 말과 행동을 이길 힘과 내적 죄를 이길 힘을 가지게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거듭남의 은총은) 모든 불경건한 욕망과 기질로부터 마음을 정결하게 하기 때문이다.”435) 칭의의 순간에 모든 말과 행위의 자범죄(actual sins)의 죄책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고, 거듭남의 순간 내적 죄악성(inner sin)이 파괴되기 시작함으로 이제는 더 이상 죄의 힘(power of sin)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고 다스리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듭난 자에게도 여전히 죄악성이 남아있어436) 그를 괴롭힌다. 그러나 내적 죄악성은 거듭난 신자를 지배하거나, 다스리거나, 조롱하지 못한다. 그리고 죄는 더 이상 그에게 능력을 갖지 못한다. 왜냐하면 신자는 죄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기 때문이다.437) 그러나 불신자는 죄 아래 있기 때문에 죄에게 복종하고 죄의 지배를 당한다.438) 웨슬리는 내적 죄악성(inner sin)이란 용어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편적인 속죄의 보혈로 원죄(original sin)의 죄책이 없어진 상태로서의 죄의 뿌리(roots of sin), 생래적 죄(inbred sin), 내주하는 죄(indwelling sin), 육적인 본성(carnal mind)과 같은 의미439)로 사용하였으며 그 본질을 인간 본성의 가장 심층부의, 인간 심령의 생래적인 손상(the inbred corruption of thy, of thy very inmost nature)440)으로 보았다. 또한 내적 죄악성으로 인해 인간은 본래부터 온갖 죄악으로 가득 차 있으며, 모든 선의 결여, 전적인 타락, 영혼의 전적인 부패와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들이 항상 악할 뿐인 상태에 있다고 보았다.441) 따라서 이 생래적 혹은 내적 죄악성(inbred or inward sin)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의 마음과 대조되는 기질로서 자만, 자기 고집, 이생에 대한 사랑, 악한 부끄러움, 만악의 근원인 탐심과 같은 어떤 죄악된 기질, 감정, 혹은 열정”442)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내적 죄는 그 자체로는 결코 죄의 힘이나 죄책을 가지지 못한다. 내가 느끼는 분노에 한순간조차도 굴복 당하지 않는다면 죄책, 즉 그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유죄 선고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 그것은 힘을 가지지 않습니다. 비록 그것이 성령을 거스르는 것일지라도 그것이 우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수많은 예들을 보았을 때, 죄책이나 죄의 힘을 가지지 못하는 죄가 있습니다.443) 외적인 죄(actual sins)는 의지적인 자범죄를 말하는 것으로서 현실의 자발적인 율법의 위반, 즉 계시되고 기록되어진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의 위반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웨슬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요한 일 3 : 9)는 믿음과 사랑에 머물러 있는 한, 기도와 감사의 생각을 갖는 한, 단순히 죄를 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방식으로 죄를 범할 수가 없다444)고 말하고 있다. 칭의와 거듭남 후에 신자는 모든 죄로부터 깨끗해짐을 받는다. 즉 ‘하나님께로 난 자’는 외적인 죄의 지배로부터 구원을 받는다. 또한 내적 죄의 힘이 파괴되어지기 시작하여 그것으로부터 지배를 받지 않게 된다. 그러나 내적인 죄악성이 전적으로 파괴되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이 남아있는 내적 죄로 인해서 신자가 다시금 외적 자범죄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신자는 지속적인 싸움 즉 성령을 따라 걸어감으로써 “불완전한 순종을 통해 그들의 신실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할”445) 필요가 있다. 웨슬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들 중에서도 남아 있는 내적 죄악성으로 인해 외적인 행위의 죄를 범한 사람들을 성서의 예를 통해 들고 있다. 즉 밧세바를 취한 다윗,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던 마가 요한을 선교 여행에 데리고 감으로서 바울과 크게 다툰 바나바, 이방인과의 식사 때에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을 피해 식사자리에서 일어난 베드로의 예446)를 들고 있다. 웨슬리는 이러한 성서의 예증을 통해서 은혜에서 행위의 죄로 떨어지고 타락하는 다음과 같은 단계들을 말하고 있다. (1)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 속에는 사랑의 신적 씨앗, 승리하는 믿음이 머물러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하여 ‘그가 그 자신을 지키고, 죄를 짓지 않습니다.’ (2)유혹이 생깁니다. 이 세상으로부터, 육체로부터, 혹은 악마로부터든가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3)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죄가 가까이에 있다고 경고를 주며 더 자주 깨어서 기도하라고 명합니다. (4)그는 어느 정도 유혹에 양보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그에게 즐거움이 되어 가기 시작합니다. (5)성령은 탄식합니다. 그의 신앙은 약해지고 하나님에 대한 그의 사랑은 차가워집니다. (6)성령은 더욱 날카롭게 그를 비난하시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길이니 너는 그 안에서 걸어라” (7)그는 하나님의 고통스러운 음성을 피하여 유혹의 즐거운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8)믿음과 사랑이 소멸될 때까지 악한 욕구가 그의 혼 속에 시작되고 퍼져갑니다. (9)그는 이제 외적인 죄를 범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권능이 그에게서 떠나버렸기 때문입니다.447) 결국 유혹과 신자 안에 남아있는 내적인 죄악성으로 인해 신자의 믿음이 상실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의 상실은 신자들로 하여금 외적인 죄를 범할 수 있게 만든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총으로 내적인 죄악성이 소멸되는 완전 경험이전에 내적 죄악성은 소멸되어지지 않기에448) 신자는 지속적인 회개와 믿음을 통해 성령과 함께 걸어가야만 한다. 2. 의지적인 죄와 무의지적인 죄 (voluntary sin and involuntary sin) 웨슬리의 의지적인 죄와 무의지적인 죄에 대한 구별은 죄에 대한 그의 실질적인 정의와 관련이 있다. 엄격히 말하자면 하나님의 알려진 법에 대한 자발적인 위반 이외에 어떤 것도 죄는 아닙니다. 그런 까닭에 사랑의 법에 대한 모든 자발적인 위반은 죄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엄밀히 말할 때 그 외의 것은 모두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문제를 더욱더 왜곡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칼빈주의자들의 방법입니다. 비록 아담적인 율법은 위반할지라도 사랑의 (법을) 위반하지 않는 수많은 방황하는 생각들과 게을러진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칼빈주의자들은 이 모든 것들을 (죄로) 혼동합니다.449) 위의 인용을 통해 보면 웨슬리의 실질적인 죄에 대한 정의에는 두 가지의 흥미로운 점이 있다. 첫째로 웨슬리는 실질적인 죄를 법에 대한 자의적인 위반으로 정의한다. 이것은 죄의 발생이 의지의 수반과 죄에 대한 자의적인 동의가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런 까닭에 비록 하나님의 율법의 위반이라 할지라도 모든 무의식적인 실수와 잘못, 이해력의 둔감, 상상력의 약점, 기억력의 결여, 언어 표현의 미숙450)등은 의지적인 의도성이 없기 때문에 웨슬리의 관점에서는 엄밀한 의미에서 죄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혈조차도 이 육체적 연약성과 고통, 병, 약함을 완전히 파괴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모두 인간의 영혼이 썩어질 몸에 거하기에 발생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451) 따라서 소위 무의지적인 죄는 인간의 연약성에 기인한다. 이것은 육체와 정신의 자연적 결함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 영혼이 하나님께로 갈 때까지 벗어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하기에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충만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자신의 연약성 때문에 본의 아니게 잘못을 범할 수 있다. 이 연약성 자체는 죄가 될 수가 없는 것이며 오로지 죄의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것은 영혼뿐이다. 따라서 웨슬리는 “타락한 육체에서 필연적으로 흘러나오는 잘못이나 모든 연약함은 결코 사랑과 대립된 동기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기에 이런 실수나 과오는 성경에서 말하는 일반적 죄와 구분할 것”452)을 권고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까닭에 웨슬리에게 있어서 이 땅에서의 절대적인 완전은 불가능하지만 상대적 완전은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대적인 완전은 바로 하나님의 전적인 은총으로 가능해진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불가능한 것이 하나님께는 가능합니다.(마 19:26) ‘그렇긴 하지만, 이것은 본성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이 죄악된 육신을 입고 있으면서도, 모든 죄로부터 구원받을 것이라는 모순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반대론에는 상당한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당신이 주장하는 대부분을 인정합니다. 우리는 사람이 육신을 입고 있는 한, 실수로부터 전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이미 인정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주의하여도 우리는 여전히 많은 점에서 잘못 판단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판단의 실수는 아주 빈번하게도 행위의 실수를 야기합니다. 뿐만 아니라, 잘못된 판단은 그 기질 안에 무엇인가를 야기하거나, 순전히 올바르지만은 않은 열정을 불러일으킵니다. 그것은 불필요한 두려움이나 잘못된 희망, 불합리한 사랑, 터무니없는 반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위에서 설명한 완전과 결코 모순되어지는 것들은 아닙니다. ‘그렇소, 그것은 마지막 절과도 맞지 않고, 죄로부터의 구원과도 일치할 수 없는 것이오’라고 당신은 말합니다. 내 대답은 죄를 ‘(죄에 대한 성서적 정의라고 생각하는) 율법을 의지적으로 어기는 것으로 정의하는 것에 따르면, 그것이 죄로부터의 구원과 완전히 잘 일치하리라는 것입니다. ‘아니오, 하나님이 율법을 어기는 것은 의지적이든, 무의지적이든 모두 죄입니다. 왜냐하면 성 요한도 “모든 죄는 율법을 어기는 것”453)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그는 ‘율법을 어기는 모든 것이 죄’라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은 제가 부인합니다. 할 수 있으면 밝혀보라고 하십시오. ... ‘죄악된 육신’이라고요? 청컨대 이러한 표현이 얼마나 애매하고 모호한 것인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그 말은 성서에 근거가 없습니다. ‘죄악된 몸’이란 말은 거기서 결코 찾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전혀 비성서적인 것처럼, 그 말은 명백히 터무니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육신도, 어떤 종류의 물건도 ‘죄악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오로지 영혼만이 죄의 자리입니다.454) 두 번째로 웨슬리는 계시되어지고 성문화되어진 하나님의 율법의 관점에서 죄를 정의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문화되어진 율법이라기보다는 그 율법의 정신, 즉 하나님 형상의 완벽한 그림자로서의, “지고의 변하지 않는 이성”455)으로서의 도덕법이다. 즉 무의지적으로 죄를 지었을지라도 그것이 사랑의 법인 도덕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죄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단 한번이라도 의도적으로 도덕법을 위반한 것은 죄를 지은 것이며 그 죄에 대한 죄책이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원한 사망에 대한 책임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있다. 죄에 대한 형벌로서의 사망은 죄에 대한 인간 자신의 의지적인 참여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연약성으로 기인한 무의지적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위반에 대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혈이 필요없는가?라는 물음이 대두된다. 웨슬리는 이 물음에 “인간은 모든 상태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필요로 한다.”456)라는 아주 명쾌한 해답을 내린다. “소위 말하는 죄라 불러 마땅한 죄(즉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고의적 위반)뿐만이 아니라 죄라고 부르기 부적절한 죄(알던지 혹은 모르던지 간에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무의지적인 위반) 모두 다 속죄의 보혈을 필요로 한다.”457) 완전을 경험한 자들도 여전히 자신들의 육체의 연약함으로 기인한 무의지적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위반, 즉 그들의 태만과 부족함 그리고 판단 및 행실의 잘못과 여러 가지 결함들 때문에 여전히 그리스도의 대속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도 하나님의 완전한 율법(perfect law)에서 보면 빗나간 것들458)이기 때문이다. 웨슬리가 이렇듯 의지적인 죄와 무의지적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위반을 나누고, 그 자신이 소위 무의지적인 죄를 실제적인 죄와는 구분하여 복잡하게 설명한 것은 다음과 같은 경향들을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완전법에 비추어보았을 때 부적절하지만 소위 죄인 무의지적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위반을 죄로 여기지 않고 완전 경험 후에는 중보자 없이 무한하신 공의 앞에 자신들이 설 수 있다고 믿었던 조지 벨과 토마스 멕스필드같은 현실 세계에서의 완전 경험을 극단적으로 끌고나간 열광주의자들을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두 번째는 인간의 연약성에서부터 기인한 무의지적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위반을 의지적인 죄와 동일시하여 인간은 죄악성의 깊이에 눌려 살수밖에 없기에 이 땅에서의 완전이 불가능하다고 보았던 모라비안과 칼빈주의자들을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3. 죄책과 죄의 힘, 죄의 현실성(guilt, power of sin and being of sin) 웨슬리는 “신자 안의 죄에 관하여(On Sin in Believers)”라는 설교에서 죄책, 죄의 힘, 죄의 현실성을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복잡하게 죄에 관해서 설명한 것은 의인과 거듭남 후에 기독자가 의와 화평과 희락을 얻지 못했을 경우에는 이러한 확증이 그에게 올 때까지 조용히(stillness) 있어야 한다며 정숙주의적 경향에 빠졌던 모라비안들과 인간의 죄악성에의 절망과 하나님의 성도 견인의 예정으로 인한 율법폐기론적 경향을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실제에 있어 어떤 교파들은 이것(인간 본성의 부패성)을 너무 지나치게 다루어 이 신자의 마음의 부패를 설명할 때 그리스도인이 이것을 극복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도리어 신자가 이것에 얽매여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그들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거의 구분할 수 없게 만듭니다. 이런 극단을 피하려는 나머지 많은 선량한 사람들, 특히 고(故) 진젠돌프 백작의 지도하에 있던 사람들은 또 하나의 극단으로 흐르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모든 참다운 신자들은 죄의 지배(dominion of sin)에서 구원받았을 뿐 아니라, 외적인 죄뿐만이 아니라 내적인 죄의 현실성(being of inward sin)에서까지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죄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많은 영국 사람들은 약 20년 전에 그들로부터 그러한 견해를 받아들여,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본성의 부패성조차도 이미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459) 모라비안들은 신자, 거듭남, 의로움을 같은 말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신자가 모든 죄에서 자유함을 받기에 그 마음속에 아무 죄도 없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모라비안들에게는 성화의 과정이 무시되어질 수 있는 위험이 있었다. 그러나 웨슬리는 칭의를 통해 자범죄의 죄책이 사함을 받고 죄의 힘이 파괴되기 시작하며460) 거듭남의 은총을 통해 손상되어진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기 시작461)됨을 명시했다. 그리고 신자는 내적 죄와 외적 죄를 이길 힘을 가지게 된다.462) 그러나 웨슬리는 사도 바울의 서신들의 견해를 따라 신자 안에 여전히 본성과 은총이, 육과 영이 다 있기에 영적인 싸움이 필요함463)을 말하고 있다. 그러하기에 웨슬리는 신자에게 죄가 없으며 육에 속한 마음이 없고 타락할 경향이 없다는 주장이 하나님 말씀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말이며 율법폐기주의 경향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것464)이라며 모라비안적 경향에 강하게 반박하였다. 신자는 영적이다. 그러나 전적으로 영적일 수도 있지만, 영적이며 동시에 부분적으로 육적일 수도 있기에465) 그는 죄에서 구원을 받았지만 전적으로 구원받은 것은 아니다. 즉 비록 죄가 그를 지배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남아 있게 된다. 모라비안이 죄책과 죄의 힘을 죄의 현실성 자체와 동일한 것으로 본 것에 반대해서 웨슬리는 죄책과 죄의 힘 그리고 죄의 현실성을 각각 별개의 것으로 구별했다. 그리고 이런 구별이 웨슬리로 하여금 무리 없이 ‘신자 안에 남아 있는 죄’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신자들은 성령을 따라 행한다.(로마 8:1) 그리고 하나님의 영은 그들 안에 내주하신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죄책과 죄의 힘에서, 또는 한 마디로 해서 죄의 현실성에서 구원받는다’ 이 말들은 마치 그것들이 동일한 것인 양 겹쳐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들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죄책이라는 말과 죄의 권세라든가 죄의 현실성이라는 말은 각각 다릅니다. 우리 신자들이 죄책과 죄의 힘으로부터 구원받음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들이(신자들이) 죄의 현실성에서까지 건짐을 받았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습니다.466) 죄책과 죄의 힘에 관해서 웨슬리는 후기로 갈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혈이 죄책으로부터 신자를 구원해 주는 것에는 지속적으로 동의하였지만 죄의 힘으로부터의 구원까지를 말하고자 하지는 않았다. 그는 “나는 당신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증언합니다. 만일 여전히 당신이 죄를 지속하고 있다면 그리스도는 당신에게 별반 도움이 되실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당신을 당신의 죄 속에서 구원하시지 않으신다면 그는 당신에게 구원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467)라고 말했다. 이것은 결국 그리스도가 인간들을 죄책으로부터 구원하시지만 죄의 힘으로부터 구원하시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이며 아담의 죄로 인한 죄책은 그리스도의 보편적인 속죄의 보혈로 사함을 받지만 자신의 자범죄에 대한 죄책은 은총에 의한 믿음을 통해서 사함을 받는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칭의와 거듭남 후의 신자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죄의 현실성으로 인해서 죄악성은 우리의 말과 행동에 여전히 효력을 발휘한다. 따라서 신자의 가장 최선의 말과 행동에서조차도 여전히 죄악성이 있기 때문에468) 죄의 현실성에서 해방되지 못한 신자는 여전히 육적인 본성을 향하게 된다. 여기서 웨슬리가 말하는 죄의 현실성은 바로 죄의 뿌리, 내주하는 죄, 육적인 본성, 생래적인 죄, 악의 경향성, 본성의 타락성과 동일한 말이다. 따라서 웨슬리가 여러 곳에서 강조한 것처럼 신자는 죄의 지배로부터는 벗어났음에도 여전히 자신 안에 남아 있는 내적 죄악성으로 인해서 죄책과 죄의 힘이 없는 죄가 발생할 경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469) 이점은 죄책과 죄의 힘에 대한 웨슬리의 구별이 외적이든 내적이든 간에 행위의 죄로서의 개념과 일치하는 것이고 죄의 현실성으로서의 구별은 경향성(disposition)으로서의 죄의 개념과 일치함을 보여주고 있다. 즉 웨슬리는 죄를 상태와 행위로 구별해 이해하고 있다. D. 죄, 자유의지 그리고 은총(sin, free will and grace) 1. 죄와 자유의지(sin and free will) 웨슬리는 보편적인 악의 원인을 초월적인 존재의 자유의 오용으로 보았으며 인간 타락의 원인은 유혹에로의 최초의 인간 자유의 오용으로 보았다. 이렇듯 의지의 자유를 오용함으로서 인간은 전적인 본성의 타락과 부패의 상태에 처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창조시에 인간에게 절대적인 자유를 주셨다. 그러나 인간은 자유의 남용으로 죄를 지어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전적인 타락이라는 것은 모든 인간을 오염시킨 하나의 병이다. 따라서 루터와 칼빈처럼 웨슬리도 전적 타락후 인간 본래의 자연적인 자유의지는 결코 하나님을 향할 수 없다는데 동의를 한다.470) 즉, 은총을 받지 못한 자연적인 인간은 하나님의 빛이 비추더라도 전혀 그것을 지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가망이 없는 죄악 그 자체의 상태 속에 있는 것이고 영원히 하나님과 떨어져 있는 상태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곧 이어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기초한 보편적인 은총을 통해 초자연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어느 정도의 자유의지가 회복됨을 말하고 있다. 저는 지금까지 자유의지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저는 도덕적인 것으로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인간의 현재의 상태에서의 자연적 자유의지를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단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비추는 초자연적인 빛과 함께 하는 모든 사람에게 초자연적으로 회복되어진 어느 정도의 자유의지를 주장할 뿐입니다.471) 콕스의 지적처럼 웨슬리는 타락한 인간조차도 현재 행위의 계약이 아닌 은혜의 계약 아래에 살고 있다고 본다.472) 모든 인간이 은혜의 계약 아래에 살고 있다는 것은 행위의 율법이 소멸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사실은 우리 구원의 근거인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이 우리 모두를 위해 값없이 임하시고 우리 모두 안에 값없이 거하신다는 의미이다.473)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보편적인 은총에서 배제되지 않는다. 이점은 웨슬리의 은총 이해에 있어서 선재적 은총의 개념과 연결되어진다. 그리고 이 미묘한 차이로 인해서 웨슬리는 구원에 있어서 성서 중심적인 입장에서 종교개혁가들과도 아르미니우스와도 다른 성서적 구원의 길을 추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474) 아우틀러가 지적한 것처럼 아르미니우스는 은총 이전에 자연적으로 인간의 자유의지가 회복되었다고 보아서 세미 펠라기안적인 경향에 빠졌던 반면에 웨슬리에게 있어서 의지의 회복은 성령의 선재적인 활동에 기인한 것이다. 이런 성령의 선행적인 활동이 인간으로 하여금 선을 향해 갈 수 있게 하며 영감을 받을 수 있게 한다.475) 분명 웨슬리는 이점에 있어서 아르미니우스와도 세미 펠라기안과도 또한 종교 개혁가들과도 다른 경향에 서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회복되어진 인간 의지의 자유는 은총에 대한 인간의 응답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하나님의 보편적인 은총으로 회복되어진 이 의지의 자유가 인간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과 인간의 협력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이것은 의지의 능동적인 참여라기보다는 수동적인 참여이다.476) 왜냐하면 인간 구원에 있어서의 우선권은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니(요한 5 : 17) 그러므로 너희도 일하라”는 말씀에는 아무 모순이 없으며, 오히려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즉 이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면에서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첫째로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니 그러므로 너희도 일할 수 있다는 것이요, 둘째로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니 그러므로 너희도 일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 모든 사람은 어느 정도 그 빛을 받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희미하게 빛나는 서광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조만간, 또한 다소간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비춥니다. ... 따라서 어느 누구도 은총이 없어서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받은 은총을 사용하지 않기에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477) 웨슬리는 인간의 죄에 대한 가능성을 육체에 둔 것이 아니라 영혼에 두었다.478) 그리고 의지의 자유에 대한 문제는 영혼의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육체적 연약성에 기인한 수많은 악한 유혹들과 방황하는 생각들에 휩싸이기 쉽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479)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백성을 죄로부터 구원하러 이 땅에 오신 것이지 유혹으로부터 구원하러 오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480) 그러나 의지적으로 그리고 부주의하게 그것들에게 다가가지 않는 이상 우리는 확실히 그런 악한 유혹들과 방황하는 생각들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481) 모든 죄의 원인은 인간 자신에게 있다. 바로 하나님께서 회복시켜주신 양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 자신의 의지를 오용함으로서 죄악에 빠지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죄를 범하는 것은 그에게 은총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은총을 활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칭의와 거듭남 후의 신자에게는 여전히 내적 죄악성 즉 죄의 현실성이 남아있고 여러 유혹이 그에게 다가오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의지로 악과 죄로의 경향성을 선택하여 자범죄를 다시 선택할 수도 있다. 이런 까닭에 웨슬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의 위대한 특권(The Great Privilege of Those Who Are Born of God)”이라는 설교에서 타락의 가능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웨슬리는 여기서 우리 영혼이 하나님께 반응을 보이지 아니하면 하나님도 우리 영혼 속에서 계속 행동하지 않으시며, 또한 우리 영혼이 하나님을 향하여 호흡하지 아니하고 그분께 우리의 사랑과 감사와 기도를 돌리지 아니하면 하나님도 우리 영혼을 향하여 계속 호흡하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경고한다.482) 또한 웨슬리는 신자가 은혜로부터 죄인의 상태로 떨어지는 단계를 설명하고 있는데,483) 이러한 타락 과정의 뚜렷한 특징은 신자의 타락에 원인이 결국에는 자기 자신의 의지의 오용에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지의 자유가 자기 자신의 행동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자신이 져야하는 결과를 만든다. 2. 죄와 은총(sin and grace) 웨슬리에게 있어서 죄의 본질은 불신앙이다. 즉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성의 타락이다. 그리고, 이러한 타락의 결과는 육체적 죽음의 언도와, 영적인 죽음이다. 여기서 영적인 죽음이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성의 단절을 의미하는 죽음이다. 그리고 도덕적 형상이 전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인간만의 노력으로는 하나님께 응답할 수 없게 되었다. 웨슬리는 원죄로 인한 결과에 있어서는 종교개혁의 전통 위에 서서 ‘전적인 타락’을 말하고 있다. 아담 이후에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인간 자체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에 희망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웨슬리는 어거스틴이나 종교개혁자들과 함께 ‘은총으로만’이라는 입장을 취하게 된다.484) 그러나 동시에 종교 개혁가들과 웨슬리 사이에는 미세한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은총의 개념이다. 웨슬리 자신이 “하나님의 은총이 어떻게 역사하느냐의 문제에서 머리털 두께 만한 차이가 있을 뿐”485)이라고 말하고 있다. 웨슬리는 전적타락이라는 말을 단지 자연적 인간에게만 사용한다. 즉 하나님의 은총의 단비를 만나지 못한 존재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용어가 전적 타락이다. 그런데, 웨슬리는 실질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의 단비를 만나지 못한 자연적 인간(natural man)은 없다고 말한다. 인간들의 모든 영혼들이 본질적으로 죄 속에서 죽어 있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어떤 누구도 정죄를 면케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단지 자연적인 상태에 있는 인간은 없기 때문입니다. ... 살아있는 인간은 ‘자연적 양심’이라고 불리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선재적인 은총’이라고 불리는 것이 더욱 적절합니다.486) 인간은 세상 속에서 자연적인 인간(natural man)으로 있을 수 없다. 또한 우리 인간에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긍정적 모습은 결코 인간 자신의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전적타락에 대한 웨슬리의 확고한 믿음은 분명 그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한편으로는 그와 이 교리를 공유했던 개신교 신학자들은 그가 동의하지 않았던 제한된 속죄론과 무조건적인 선택의 교리를 이 개념으로부터 끌어왔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동방전통의 신학자들과 로마 카톨릭은 타락 후에도 하나님의 형상이 기본적으로 남아서 이것으로 인해서 구원에 관한 주체는 하나님이 아닌 인간이라고 보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웨슬리는 양쪽편의 어떤 주장에도 동조할 수 없었다. 전자는 하나님의 회복시키시는 은총의 비공로적인 특성을 위험하게 했고, 후자는 원죄의 위험성을 과소평가 하게 한다. 그러하기에 웨슬리는 인간의 자연적 특성은 분명 가능성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비로운 사랑에 기인한 하나님의 보편적인 은총으로 인간에게 가능성이 회복되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은총을 통해 모든 인간은 아담의 죄에 대한 죄책으로부터 자유해졌고487) 단지 그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담 이래로 인간의 타락하고 손상된 본성의 문제와 자신의 타락한 본성과 유혹으로부터 기인한 자범죄의 죄책뿐이었다. 그러나 자범죄의 죄책과 타락한 본성의 문제도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로 해결 가능해졌기에 인간 구원의 길에서 인간의 응답 가능성이 생겼다고 보는 웨슬리의 신학적 통찰력은 아주 놀라운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웨슬리는 현 상태의 인간 타락의 심각성을 주장하였고 인간 본성의 부패성이 어떻게 전가되느냐에 있어서 생물학적 유전설, 영혼 창조설을 거부하고 영혼 전이론적인 입장을 그의 말년에 피력한 것이다. 죄에 대한 입장 차이를 가지는 동방 신학과 서방 신학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인다. 서방의 신학은 그들의 속죄에 대한 법정적인 관점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그리스도를 통한 인간의 죄책에 대한 무조건적인 용서로 보았다. 반면에 동방의 신학은 하나님의 은총을 기본적으로 하나님과의 연합을 통한 우리의 손상되어진 본성을 치유하는 권능으로 보았다. 그러나, 종합주의자인 웨슬리는 은총을 용서와 동시에 권능의 의미로 파악했다.488)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슬리의 은총이해는 시기별로 그 강조점을 다르게 가진다. 초기의 웨슬리는 은총을 기본적으로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치유시키며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덕 속에서 자라게 하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웨슬리에게 있어서 1738년의 개신교 전통의 법정적 의인화에 대한 깊은 감명과 경험은 은총의 개념을 무조건적인 용서의 개념으로 바뀌게 한다. 그러나 기독자의 삶에 대한 정숙주의와 열광주의의 오류는 웨슬리로 하여금 은총을 용서의 개념과 함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되어짐으로서 책임적인 기독자의 삶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권능으로 규정하게 한다.489)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인간에게 요구하지 않는, 공로 없이 얻은 긍휼로 이해되어야만 합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죄인인 나는 그리스도의 공로로써 이제 하나님과 화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것을 차라리 “우리 속에서 활동하셔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우리에게 의욕을 일으켜 일하게 하시는”(빌립보 2:13) 저 성령이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전자의 의미에서, 그의 용서의 사랑)이 우리의 영혼에서 확증되어질 때마다, 하나님의 은총(후자의 의미에서, 그의 성령의 권능)이 그곳에서 발생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인간에게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에 의하여 실행할 수가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행동을 바르게 정돈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강하게 하시는 저 사랑의 빛과 능력에서 모든 것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 “하나님의 모양대로”(창세기 1:26) 영혼을 갱신하는 성결, 하나님의 영광에 부응하도록 우리의 모든 발언과 행위를 인도하는 하나님의 진실, 이런 것들을 하나님은 내 안에 느끼게 해 주십니다.490) 위의 인용에서 알 수 있듯이 웨슬리에게 분명한 강조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 ‘하나님의 모양대로’ 영혼의 갱신이다. 따라서, 두 가지 차원의 은총 이해(용서, 치유와 회복)에 있어서 용서에 대한 강조는 치유의 권능이라는 보다 큰 주제에 통합된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용서는 우리의 타락한 본성을 치유하는 도구인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491) 따라서, 웨슬리에게 있어서 은총은 죄와 마찬가지로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적인 차원에 있는 것이며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 삶 속에 인격적으로 현존하시는 것이다. 은총이 우리를 깨우시고 우리에게 가능성을 제공해 주신다. 웨슬리는 은총을 저항할 수 있고 협력 가능한 것으로 이해했다.492) 결국 하나님의 은총이 인격적이며 협력 가능한 자비로운 권능이라면 그것은 확실히 점진적인 특성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웨슬리는 은총의 정도와 구원의 정도에 대해 말할 수 있었고 점진적인 성화를 강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은총에 의해서 아담 안에서 모든 것을 잃은 인류는 그리스도 안에서 잃은 것 이상으로 회복될 수 있게 된다. 웨슬리의 은총 이해는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역할을 강조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그러나 인간의 역할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은총의 사역에 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인간 본성의 전적 타락성으로 인해 인간 자체만으로는 결코 가능성이 없어졌기 때문이며 구원의 시작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고 엄밀히 말하자면 인간의 참여 또한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총에 의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웨슬리의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이 믿음을 가지기 이전에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그 모든 것들도 사실은 은총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믿음과 믿음의 열매인 선행 또한 은총에 의해 가능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그 자신의 구원을 향한 인간의 노력도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의 사역의 한 부분이 된다. 이러한 은총의 상실이 인간을 전혀 가망성 없는 존재로 만든다. 결론적으로 웨슬리는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의 죄에 대하여 집단적인 접근 방법과 동시에 개인적인 접근 방법을 택하고 있다. 즉 죄인의 상태를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고 있는 실존적인 인간으로 묘사하고 있다.493) 인간의 실존과 하나님의 은총은 동전의 양면처럼 웨슬리의 신학에 있어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웨슬리는 인간의 현실의 제반 문제, 특히 구원의 문제를 목회적이고 실천적 차원에서 인간의 실존과 하나님과의 살아 있는 관계 속에서 심도 깊게 다루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웨슬리 신학을 이해함에 있어서 인간 현실의 이해와 그에 따른 하나님의 은총의 사역의 측면의 고찰이 핵심적인 사항이다. A. 선재적 은총494)과 죄 치유와 용서의 가능성 현대의 웨슬리 신학자 중에 매덕스와 아우틀러는 웨슬리의 선재적 은총의 개념을 광의와 협의의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다.495) 그들이 말하는 웨슬리의 선재적 은총의 두 가지 측면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협의의 개념은 의인화와 성화 은총을 앞서는 은총으로서의 선재적 은총이다.496) 여기서 선재적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결과로서 발생하는 죄인의 일반적인 계몽뿐만이 아니라 성령의 사역으로 인한 죄의 확신을 포함하는 것이다.497) 이 개념은 당시의 영국 국교회와 부흥운동 진영 내의 칼빈주의자들과의 논쟁 속에서 발전하였다.498) 두 번째 광의의 개념은 회개부터 완전에 이르는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모든 구원적 행위와 덕들은 하나님의 은총의 선행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즉 구원 사역에 있어서 하나님 사역의 우선성과 모든 은총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라는 측면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협력을 강조하는 관점에서 은총의 선행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콜린스(Collins)는 선재적 은총이라는 개념을 은총의 보편적 특성인 선행성까지 의미를 넓히기보다는 웨슬리 구원의 순서의 시작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협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고 있다.499) 왜냐하면 선재적 은총, 확신 은총, 의인화의 은총, 성화의 은총, 영화의 은총의 구별이 결국에는 사랑을 통해서 두려움과 무지로부터 승리케하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보다 깊은 발전적 관계를 나타내고 있으며 웨슬리가 선재적 은총의 개념을 그의 작품 속에서 사용한 것은 거의가 다 협의의 개념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재적 은총 자체를 은총의 선행성으로까지 그 의미를 넓힌다면 웨슬리 신학의 두 축 중에 하나인 ‘거룩한 삶(holy living)’500), 즉 은총으로부터 은총으로 성장해 가는 신자들의 삶 속에서 질적인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의 중요성이 평가 절하될 위험성이 있다는 점에서 콜린스의 비판은 의미가 있다. 웨슬리가 영국 국교회로부터 많은 빚을 지고 있는 부분이 선재적 은총(prevenient grace)의 개념이다. 당시의 영국 국교회 신학은 선재적 은총을 강조하고 있었고, 웨슬리는 이러한 국교회의 신학적인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선재적 은총은 39개조항 중 10조 “우리를 선행(先行)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하나님의 은총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만한 선행(善行)을 할 힘을 가지지 못한다”501)에 나타나 있다. 기독자를 갱신시키기 위해 주어진 도움과 신적인 에너지로서의 선재적 은총에 대한 강조는 공동 기도서의 예식문에서도 볼 수 있다. 39개조는 인간으로 하여금 은총을 돕고 선행(善行)을 가능하게 하는 선재적 은총을 의인화되고 거듭난 사람에게 부여되어진 신적인 선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영국 국교회는 선재적인 은총의 통로와 근거를 세례와 성만찬과 같은 예식으로 보았다. 이와 같은 관점의 영국 국교회 39개조항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의인화의 믿음을 가지게 되는지, 혹은 선재적 은총이 인간에게 믿음과 의인화를 어떻게 가능하게 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답하지 못한다.502) 영국 국교회의 선재적 은총이해가 이와 같았던 반면에 시간에 따라 웨슬리의 선재적인 은총 이해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초기 웨슬리는 영국 국교회처럼 세례와 같은 은총의 수단들을 선재적 은총의 통로로 보았다.503) 그러나 중기에는 선재적인 은총과 회개를 밀접하게 연결시켰으며, 후기에는 선재적인 은총을 전체적인 구원의 순서에 한 부분과 관련시켰다.504) 이점이 웨슬리의 선재적 은총과 영국 국교회의 선재적 은총과의 폭에 차이이다. 인간의 전적 타락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웨슬리는 루터나 칼빈 같은 종교 개혁자들과 분명한 일치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은총이 역사하는 방법에서의 차이가 웨슬리와 종교개혁자들이 구원의 길(via salutis)을 추구하는 데에 있어서 시작부터 다른 길을 걷도록 한다. 루터와 칼빈이 성화의 은총을 불가항력적인 은총이라고 보아 구원의 예정을 주장한데 반해서, 웨슬리는 구원의 시작인 선재적 은총(prevenient grace)을 불가항력적 은총으로 보았다. 이점으로 인해서 웨슬리안의 구원론과 칼빈주의자들의 구원론은 엄청난 차이를 가지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은 많건 적건 이 선재적 은총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은총은 인간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관계없습니다.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인간은 누구든지 선행을 행하려는 의욕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록 이런 선행의 의욕이 인간의 심층을 찌르기 전에 그리고 좋은 열매를 맺기 전에 없애 버리는 사람이 많다고 하여도 이 선행의 의욕은 모든 인간에게 있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조만간 어느 정도 자기를 비추어 주는 빛, 즉 희미하기는 하여도 반짝이는 광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만약 귀가 화저로 지져 마비된 양심을 가진 극소수의 사람에 속하지 않는다면 양심의 빛을 거역했을 때 다소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505)
결과적으로 웨슬리에게 있어서 전적으로 타락한 상태에 있는 ‘자연적 인간’이라는 것은 하나의 추상적인 개념이다. 따라서, 원죄의 효력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더 이상 전적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생래적 죄의 죄책은 인간이 태어나자마자 제거되었기”506)때문이다. 결국 이것은 선재적 은총의 특권으로서 원죄의 죄책에 대한 용서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은총은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값없이 임하는 것이다. 특히 웨슬리는 “값없이 주시는 은총(Free Grace)”이라는 설교의 마지막에 배치한 찬양시 “보편적 구속(Universal Redemption)”에서 더욱 은총의 보편성을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한결같이 모든 것을 증거하는 사랑스러운 속성을 찬양하라. 주님의 값없는 은혜의 영광, 보편적인 사랑을 소리치며 천지의 기쁨과 긍휼하심을 노래하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가진 모든 죄인들이 발견하는 긍휼이, 주님 손으로 만드신 무한하고 크신 긍휼이, 모든 인류를 끌어안으심이 모든 역사를 통하여 드러나도다.507) 선재적 은총으로 인해 인간은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사역과 우리의 요구를 감지하고, 그 요구에 응답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타락한 본성과 능력이 부분적으로 회복되어진다. 첫 번째로, 선재적 은총에 의해 우리의 이해력이 회복되어진다. 이해력의 회복은 하나님의 기본적 지식의 회복을 의미508)하며 인간의 마음판에 새겨진 도덕법의 회복으로 인해서 선과 악의 구별이 가능해 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509)이다. 두 번째로 선재적 은총에 의해 회복되는 것은 자유 즉 의지의 자유510)이다. 선재적 은총으로 회복되어진 의지의 자유는 종교 개혁자들이 주장할 수밖에 없었던 무조건적인 선택과 불가항력적 은총에 대한 웨슬리의 대안이었다. 웨슬리로 하여금 결정론적 구원관을 벗어나게 해준 것이 선재적 은총으로 회복된 의지의 자유라는 개념이다.511) 세 번째는 양심이다. 양심은 모든 사람 안에서 발견되어진다는 것 때문에 자연적인 것이라고 불려지지만, 사실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선물이다.512) 따라서, 선재적 은총의 사역으로 인해 현재 인간의 타락한 상황에 대한 책임성은 우리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회복의 사역에 대한 우리의 거부에 있는 것이지, 결코 인간의 생래적 죄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떠한 인간도 그가 은총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은총을 활용하지 않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다.”513) 그러하기에 계속 죄에 거하는 자들이 우리를 일으키실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니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되살릴 수가 없습니다라고 변명하면서 그 책임을 창조주께 전가할 수 없는 것이다. 영혼이 자연적으로 죄악에서 죽었다는 것을 용인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변명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단순히 자연 상태에 머물러 있는 인간(a state of nature)이란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514) 결국 웨슬리는 선재적 은총을 타락한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최초의 사역으로 보았다. 타락한 본성의 회복은 인간 자신만의 힘으로는 결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아담의 원죄로 인해 전가되어진 모든 인류의 죄책은 하나님의 선재적 은총을 통해 즉 모든 이에게 보편적으로 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덕으로 인해 제거되었다. 동시에 회복의 영으로서의 하나님의 최초 사역은 우리가 하나님께 응답하거나 그분을 지각할 수 있을 정도로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부분적으로 회복시키신다. 부분적으로 회복되어진 인간의 능력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 가능해진다.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선재적인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의 보편적 구속의 은총으로 인간은 아담의 원죄로 인한 죄책으로부터의 사함을 받고 손상되어진 하나님의 형상이 부분적으로 회복되어진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하나님께서 앞으로 지속적으로 부어주실 은총에 응답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선재적 은총에 의해서 응답의 가능성이 열린 인간은 현재 그들의 상태, 즉 그들 자신의 죄책에 대한 용서와 타락한 본성의 치유가 필요함을 자각하게 된다. “병들어 있음을 알고 전적으로 그것을 자각하고 있는 자들만이 의사에게 갈 수 있기에”515) 웨슬리는 구원의 여정의 시작 부분에 영적 자각(awakening)이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웨슬리는 비극과 자연적 재앙들(무서운 섭리), 영적 자각을 일깨우는 설교와 대화 혹은 성령에 의한 직접적인 설득을 통해 자신이 죄인이라는 영적인 자각이 발생한다고 말했다.516) 영적 자각 혹은 죄에 대한 확신은 성령의 사역으로서 매우 다양한 방법의 역사를 통해서 일어나게 된다. 웨슬리는 이러한 성령의 사역이 말씀 듣기와 대화, 좋은 책읽기, 그리고 묵상 등을 통해서 발생한다고 보았기에 이러한 것들을 중요시했다.517) 그 중에서 설교가 “사탄의 왕국을 흔들”518)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강조하고 중요시하였다. 영적인 각성은 죄인으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상태를 인식하게 하고 율법의 내적, 영적 의미를 자각하게 한다. 또한 죄의 값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의지를 떠난 삶은 의미가 없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영적 자각은 확신의 은총에 의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망의 그림자 속에, 어두움 속에 잠자고 있는 그의 마음을 어루만지십니다. 그분(하나님)은 그의 잠을 흔들어 깨우십니다. 그리고 그의 위험을 자각하도록 하십니다.”519) 웨슬리는 처음으로 영적 자각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도구로써 도덕법을 말하고 있다.520) 도덕법은 지고의 변하지 않는 이성으로써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는 하나님 형상의 그림자이며, 또한 성령의 중계를 통해서 죄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죄책과 공포를 확신케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에 선과 악을 구별하게 한다.521) 그리고 결국에는 죄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에게 향하게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영적 자각은 회개와 매우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웨슬리는 의인화와 거듭남 이전의 회개를 “죄인으로서 자기 자신을 자각하는 것”522)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회개를 단순히 칭의 이전의 회개에만 국한시키지 않았다. 웨슬리는 두 종류의 회개가 있음을 주장하였다. 첫 번째 율법적인 회개(legal repentance)는 영적 순례의 시작으로서의 죄에 대한 확신을 포함한다. 즉 율법적인 회개는 성령에 의해서 자신이 죄인임을 자각하는 것으로 확고한 결심과 신실한 의도를 가지고 삶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향하도록 하는 첫 번째 동기523)이다. 웨슬리는 율법적 회개를 영적 삶의 첫 번째 단계인 영적 자각으로서 ‘종교의 현관(porch of religion)’524)이라고 말하고 있다. 두 번째 종류의 회개는 복음적 회개(evangelical repentance)로서 이것은 모든 죄로부터 성결로의 마음의 변화525)를 포함한다. 복음적 회개는 신자의 삶 속에서의 회개로서 의인화와 거듭남 이후의 회개이다. 율법적 회개가 행위의 죄와 관련이 있는 것이라면 복음적인 회개는 영적인 성숙의 과정 속에서 생래적 죄 혹은 원죄, 죄의 본질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확신의 은총과 죄의 자각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율법적 회개만을 고찰하도록 하겠다. 웨슬리는 율법적 회개를 구성하는 요소가 단지 한 가지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1)죄의 이유에 대한 슬픔, (2)하나님의 장중에서의 굴욕, (3)죄에 대한 증오, (4)죄의 고백, (5)신적 자비에 대한 진중한 기도, (6)하나님에 대한 사랑, (7)죄를 중단하기, (8)새로운 순종에 대한 확고한 목적, (9)악하게 발현된 선들의 복구, (10)우리에게 잘못한 우리의 이웃들에 대한 용서, (11)선행과 자선의 열매들526) 위의 인용을 통해 콜린스(Collins)는 웨슬리가 율법적 회개의 세가지 주요 원칙, 즉 1) 확신, 자기 인식 2)영의 곤궁 3) 자기 의와 자기 의인화의 거부에 강조점을 두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527) 율법적인 회개를 한 자는 종의 영을 가진 자로서 그에게 하나님의 율법의 내적이며 영적인 의미528)가 빛을 발하기 시작하여 그는 자신의 심령의 상태가 죄 중에 있음을 깨닫는다. 이 때부터 죄와 투쟁하기 시작하지만 죄가 더 강성하기에 그는 여전히 죄 중에 있게 된다. 그는 계속해서 죄 짓고 회개하고 또 죄 짓고 회개하고를 반복한다.529) 웨슬리는 종의 영을 가진 자들은 의인화의 준비 단계에 있는 사람들로서 ‘율법적 상태(legal state)’에 있는 자들로 ‘유대적 기질을 가진 자’들이고 ‘종의 신앙’을 가진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530) 분명히 율법적인 회개는 은총 속에서의 실질적이고 중요한 성장의 표징이지만 이 성장은 사랑의 심령으로의 거룩한 기질로의 변화까지 이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슬리는 율법적 회개에도 내적 참회와 은총의 외적인 표현인 그에 합당한 열매가 있어야 됨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열매는 형제용서, 악을 중단하고 선을 행하며 하나님이 정하신 바를 따르는 것이고 마지막으로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받아들이는 은총의 척도들을 따라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531) 그리고 중요한 점은 의인화 신앙의 전주곡과 같은 은총의 역사로서의 회개와 그에 합당한 열매가 하나님의 더 깊은 은총들을 부여받기 위한 우리의 준비됨의 표징이라는 사실에 있다.532) 즉 회개는 인간이 먼저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자각 속에서 하나님의 선행(先行)하는 은혜로운 확신 은총에 대한 응답이다. 웨슬리가 신도회를 만든 목적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런 회개, 즉 죄인들로 하여금 다가올 하나님의 분노로부터 자유케하기 위함이었다.533) 따라서, 이점을 통해 웨슬리가 구원의 여정의 시작부터 개인 신앙 생활만이 아닌 공동체의 신앙 생활을 중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은총 속에서의 성장이 친밀한 관계 속에서 서로를 돌보고 관심을 가질 때 가장 바람직하게 이루어진다고 보았기에 웨슬리는 일반적인 기독자들의 모임과 같은 그룹으로 만나는 모임을 참된 은총의 수단들로 보았다.534) 그래서, 웨슬리는 목회적 차원에서 그의 감리교 신앙 공동체 안에 신도회(Society), 연합 신도회(The United Society), 속회(Class), 밴드(Band), 선발 신도회(Select Society), 참회자반(Penitents)과 같은 많은 신앙 공동체들535)을 만들었다. 그리고 웨슬리는 이러한 신앙 공동체들이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루게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보았기에 “속회 모임에 참석하지 않은 자는 우리와 함께 할 수 없다”536)라며 말하기도 하였다. 초기 감리교 신앙 공동체 안의 모든 사람들은 공동체를 통해서 마음과 생활 방식, 도덕을 개혁하고 성결을 이루었다. 확신의 은총에 의한 자기 자신의 죄에 대한 영적 자각과 그 자각을 통한 회개, 그리고 그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마음의 거듭남, 즉 인간 안의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은 아니다. 따라서 성령의 치유의 현존을 통해 확신의 은총 속에 거하는 자들은 그들 자신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는 은총에까지 이르러야만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확신의 은총 속에 있는 인간은 단지 자기의 죄만을 인식했을 뿐이지 그 죄에 대한 용서를 받은 것도 아니고, 그의 타락하고 손상된 본성을 치유 받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회개가 죄의 인식을 통한 우리 영의 필요에 대한 인식이라면 의인화는 그 필요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공급이라고 할 수 있다. 웨슬리의 관점에서 의인화 은총과 죄의 용서에 대한 관계를 알아보기 전에 전통적으로 로마 카톨릭과 종교 개혁자들, 그리고 영국 성공회의 의인화 개념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웨슬리는 그의 실존적 삶 속에서 이들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런 경향들을 가진 사람들과의 논쟁을 통해 그의 의인화에 관한 교리를 확립했기 때문이다. 종교 개혁자들에게 대응하기 위해 트렌트 공의회는 인과 관계의 학문적 원칙에 의거해서 의인화를 분석했다. 그 내용은 의인화의 최종 원인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영광과 영원한 삶에 있고, 공덕적인 원인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는 십자가에서의 거룩한 수난으로 우리를 위한 의인화의 공덕이 되었고 우리를 대표해서 하나님 아버지에게 성화되었다. 그리고 효과적 원인(자극, 동기)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자비이며, 그 제도적인 원인은 세례이고, 형식적인 원인은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주입한 하나님의 의에 있다는 것이다.537)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의인화의 형식적인 원인이다. 트렌트 공의회는 ‘주입되어진 의’를 의인화의 형식적인 원인으로 봄으로써 하나님께서 죄인을 어떻게 공의롭게 받아들이실 수 있는가를 설명하고자 했다.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신자들에게 의를 주입하셨기 때문에 칭의보다 성화가 앞서게 되어 인간 자신의 의가 중요하게 되어버렸다. 이에 반해서 종교 개혁 전통의 신학자들은 의인화의 형식적인 원인을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보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의인화시에 우리에게 덧입혀지는 그의 완전한 능동적이고 수동적인 의의 전형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의 구원의 값이 아니라 그 자체가 우리의 구원이다. 이러한 주장의 필연적인 결과가 바로 예정과 제한된 속죄의 강조이다.538) 중용(via media)을 신학적 특성으로 하는 영국 국교회는 의인화의 형식적인 원인을 모든 신자들에게 자비를 가지시는 하나님의 계약적인 원칙으로 보았다. 하나님의 계약적인 원칙을 의인화의 형식적인 원인으로 보게되면 그리스도의 죽음의 역할은 공덕적인 원인으로 국한되어버릴 가능성이 발생한다. 이점이 믿음의 행위가 어느 정도 인간의 ‘공덕’이라는 주장에 대한 여지를 남겨놓게 한다.539) 그러나 분명히 영국 성공회의 39개 신조는 11조항에서 우리의 의인화(Justification)의 가능성은 인간의 공덕이 아닌 믿음에 의해서라고 밝히고 있으며, 12조는 믿음에 의한 행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밝히고 있다.540) 로마 카톨릭이 성화를 의인화 앞에 위치시켰고, 종교 개혁가들이 의인화 안에 성화를 내포시켰다면 영국 국교회, 특히 1690년대의 조지 불(George Bull)은 의인화 이전의 성결한 삶에 의존하지 않는 ‘처음 의인화(initial justification)’와 성화 안에서 열매를 가지는 의인화의 신앙에 의존하는 ‘최종 의인화(final justification)’를 구별하였다.541) 영국 국교회와 신비 영성가들의 충실한 신봉자였던 올더스케잇 체험 이전의 웨슬리는 의인화와 성화를 종종 혼동했다. 1730년에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웨슬리는 “복음 안에서의 죄의 용서가 성화입니다.”542)라고 쓰고 있으며 당시의 자신이 ‘의인화의 본질과 조건’에 무지했음을 나중에 고백하고 있다.543) 그리고 1738년 이후 종교 개혁가들의 오직 믿음으로만의 구원에 강하게 영향받은 웨슬리는 성화가 의인화를 앞선다는 카톨릭의 오류를 확신하게 된다. 또한 부흥운동 초기에는 성화와 의인화의 매우 미묘한 관계를 설명하고자했던 조지 불의 시도에 강한 반감을 나타내기도 했다.544) 그러나, 종교 개혁자들의 의인화에 내포되어버린 성화의 빈약성 때문에 웨슬리는 후에 조지 불이 시도한 ‘처음 의인화’와 ‘최종 의인화’의 구별과 동일한 것을 주장하였고, 조지 불을 “기독교 교회의 위대한 빛”545)이라고 칭송하기도 하였다. 이 과정 속에서 웨슬리는 의인화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의 덕으로 우리를 용서하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은총을 강조한다.546) 1738년 5월 28일 런던의 롱 아크레(Long Acre) 채플에서 처음 설교하고 1742년 엡워드의 아버지의 묘비석 위에서 행했던 설교인 “믿음에 의한 의인화(Justification by Faith)”547)에서 “의인화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그는 부정의 방법을 통해 의인화를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로 의인화는 실질적인 의와 정의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성화이다. 사실 그것은 어느 정도 의인화의 즉각적인 열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인화는 하나님의 구별적인 은총이다.548) 두 번째로 의인화는 “우리를 율법에 의한 우리에 대한 고소로부터 무효하게 하지는 않는다.” 세 번째로 의인화는 “하나님께서 그가 의인화시킨 사람들에게서 속임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내포한다.549) 이 모든 것들은 의인화가 하나님과의 관계적인 변화임을 말해주고 있다. 웨슬리는 이 설교에서 명확하게 의인화의 성서적 개념이 용서, 즉 죄에 대한 용서임을 말하고 있으며 그 죄에 대한 용서란 생각, 말, 행동에 있었던 그의 모든 과거의 죄책의 사함550)임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의인화란 아들의 피로 인하여 된 화목제를 통하여 과거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심으로 자기의 의(자비)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시는(로마 3 : 25) 하나님 아버지의 행위이다.551) 사망의 선고를 받고 있는 죄인을 생명으로 옮겨놓는 하나님의 선언이다.552) 하나님 아버지의 전적인 은총이다. 나는 의인화에 있어서 다음의 세 가지 요소가 관련된다고 믿는다. 즉 하나님에게서는 그의 위대한 자비와 은혜, 그리스도에게서는 자기의 몸을 바쳐 피를 흘리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시킨 대속 그리고 우리에게 있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는 참되고도 산 믿음, 이 세 가지가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이다.553) 의인화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관계성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직접적인 관계성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화목제의 중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죄인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죄인이 의인(義認)이 되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 믿음이 바로 그 조건이다.554) 믿음은 “구원의 유일한 수단555)과 조건556)”이며 동시에 “의인화의 필수 조건”557)이다. 여기서의 믿음은 성서가 확증하는 것에 대한 동의와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신뢰(fiducia)를 의미하며558) ‘마음의 기질(disposition of the heart)’559)을 의미한다. 하나님과의 관계 변화인 의인화의 죄책에 대한 용서라는 측면은 과거의 죄책의 힘에서의 해방을 의미하며 비록 죄인이지만 의롭게 여겨진 신자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풍성히 향유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복구되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런 칭의의 결과는 평화와 기쁨이다. 칭의 후에 인간은 비록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소망을 향유하게 되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책과 죄의 힘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이것이야말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입니다! 이는 현세에서도 얻을 수 있는 구원입니다. 죄로부터의 구원과 그 죄의 결과에서의 구원을 일컬어 종종 칭의(Justification)란 말로서 표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광의(廣義)의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지금 그를 믿는 죄인에게 이뤄지는 죄책과 형벌에서의 해방을 뜻하며 또한 그 신자의 맘속에 형성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의 힘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합니다.560) D. 치유의 영으로서의 은총과 죄의 치유
1. 거듭남의 은총과 죄의 치유 전형적인 영국 국교회의 신학자들인 리챠드 후커(Richard Hooker)와 란셀롯 엔드류(Lancelot Andrewes)와의 비교를 통해 웨슬리의 의인화에 대한 교리 연구를 학위 논문으로 쓴 발커(Walker)박사는 의인화를 용서와 참여의 관점에서 보고 있다. 그는 ‘신앙 의인화’에, 관계적이며 치유적인 면과 주관적이며 법정적인 면이 동시에 있다고 주장561)하고 있다. 그 근거로 발커 박사는 “믿음에 의한 의인화(Justification by Faith)”라는 설교에서 말한 의인화의 결과 혹은 특징으로서 죄책에 대한 용서, 하나님의 호의에 대한 회복, 영적 삶에 대한 우리의 죽은 영혼의 회복562)과 동시에 치유자로서, 심판자로서의 하나님의 상징563)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전형적인 종교 개혁자들의 입장에서 웨슬리의 의인화에 관한 교리를 이해하고 있다. 웨슬리를 연구하는 현대의 학자들 중에서도 의인화와 거듭남과의 관계에 대한 문제에 대해 혼란을 야기하는 경우564)가 종종 있다. 그러나, 웨슬리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의 위대한 특권(The Great Privilege of those that are Born of God)”이라는 설교에서 의인화와 거듭남565)의 관계를 분명히 설명하고 있다.
칭의와 거듭남이 시점에 있어서는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이 둘은 쉽게 구별되는 것입니다. 이 둘은 동일한 것이 아니요, 대단히 다른 성질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칭의는 단지 관계적인 변화를 의미하며 거듭남은 실제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우리를 의롭다 하심으로써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시지만 우리를 새로 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일을 하십니다. 전자로 말미암아 우리의 하나님께 대한 외적인 관계를 변화시키고 그로 인하여 원수였던 우리가 자녀들이 되는 것입니다. 후자로 말미암아 우리 영혼의 깊은 속이 변화되어 그로 인하여 죄인이었던 우리가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전자는 하나님의 호의에, 후자는 하나님의 형상에 우리를 복귀시켜 줍니다. 전자는 죄책을 제거하는 일이요, 후자는 죄의 힘을 제거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둘은 시점에서는 함께 결합되어 있지만 전연 별개의 성질의 것입니다.566) “믿음에 의한 의인화(Justification by Faith)”를 처음으로 설교했던 1738년 직후에 웨슬리는 넓은 의미에서 의인화 속에 죄사함과 거듭남 그리고 성화를 다 포함시켰던 경향이 있다.567)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웨슬리는 의인화와 거듭남을 구분568)하기 시작한다. 칭의와 거듭남, 그리고 그 결과로서 하나님의 양자됨이 시간적으로는 동시에 발생하지만 논리적으로는 차이가 있다. 칭의가 거듭남에 앞서며 칭의와 거듭남 후에 신자는 하나님의 양자가 된다. 이것은 결국 한 사건의 다른 측면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거듭난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죄책을 용서받으며, 동시에 하나님의 은총을 통해서 죄책과 죄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어 결국에는 하나님의 자녀로 양자(adopted)되어 하나님의 상속자 곧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상속자가 된다.569) 조종남 박사는 거듭남과 양자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reconciliation)의 측면으로서 의인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고 해석하고 있다.570) 의인화는 우리 죄를 용서하심으로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우리를 위한(for us) 위대한 사역이며, 거듭남은 우리의 타락한 본성을 새롭게 하시는 우리 안에서(in us) 하나님께서 하시는 위대한 사역입니다. 시간적인 순서로 본다면, 어느 것도 다른 것에 우선되지 않으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하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순간, 역시 우리는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사고의 순서로 본다면, 말의 표현에 있어서 칭의가 거듭남에 앞서는 것입니다.571) 의인화가 상대적인 변화를 의미한다면, 거듭남은 실제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의인은 하나님을 향한 외적 관계에서 죄책의 해결을 통하여 지금까지의 원수 관계였던 것을 올바른 관계로의 변화라면572) 거듭남은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모든 덕의 열매들을 심어주심으로서 “은총 속에서 자라나는”573) 것을 가능케 한다. “거듭남(New Birth)”이라는 설교에서 웨슬리는 거듭남의 근거로서 “우리 본성의 완전한 타락”574)을 들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죄 안에서 죽은 존재이기에 다시 태어나야만 하기 때문이다. 결국 완전히 타락한 우리의 본성은 절대적으로 거듭남을 필요로 한다. 의인화와 거듭남을 경험한 하나님의 양자575)된 기독자는 주님의 사랑의 빛을 보고, 주님의 목소리를 내적으로 들으며, 성령의 역사를 느끼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며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된다.576) 왜냐하면 거듭남의 은총의 본질이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 안에서 일하시는 위대한 변화라는 점이기 때문이다.577) 거듭남의 시점인 칭의의 순간에 모든 그리스도의 덕으로 씨앗이 영혼 속에 심겨지며 그때부터 신자는 점진적으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은총 속에서 성장하게 된다.578) 즉 거듭남의 시점은 도덕적 형상 회복의 시점이기에 거듭남 후에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해 죽어있던 신자의 영적 감각이 다시 살아나게 된다. 또한 영적 감각을 살아나게 하는 거듭남의 본질은 부분적인 변화가 아니라 전적인 변화이다. 거듭남이 전적인 변화이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본성이 완전히 타락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권능의 영이 전적으로 행하시는 것이다.579) 여기서 전적인 변화는 성화의 완전성 즉, 거듭남에 완전의 의미를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성화의 시작으로서의 철저함과 완전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듭남이라는 초자연적인 변화는 바로 ‘성결과 성화의 입구이며 일부분’580)이다. 즉 거듭남으로부터 치유의 은총으로서의 성령의 점진적인 역사가 시작되며 이 거듭나게 하시는 영이 인간으로 하여금 그 자신의 내적 죄악성을 극복하게 한다. 그러므로 성결은 선재적인 은총이나 확신의 은총이 아닌 거듭남으로부터 시작된다. 웨슬리는 거듭남을 내적 성결로 보았으며 그 특성을 순간적이고 전적인 하나님의 사역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거듭남 이후 성화의 외적인 성결의 측면 즉, 하나님의 지속적인 성화의 영을 받기에 합당하게 하는 자비와 경건이라는 인간의 응답적인 행위를 포함한다는 측면581)을 고려하면 웨슬리의 구원론의 큰 특징을 알 수가 있다. 성화는 과정성과 순간성582)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왜냐하면 거듭남은 성화의 과정 속에 포함되어지기 때문이다. 웨슬리는 우리의 마음판에 새겨진 성결의 회복과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마지막으로 이 세상에서의 행복을 위해서 거듭남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583) 그리고 거듭남의 표징은 믿음, 소망, 사랑이다. 이것들 중에 거듭남의 표징으로서의 “믿음은 단지 사변적이거나 관념적인 믿음 혹은 동의가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난 이해의 행위로서의 동의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속에서 역사하시는 내적 경향(disposition)”584)을 말한다. 이러한 내적 변화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고한 신뢰로서의 믿음이다. 믿음에는 열매가 있다. 그것은 죄의 힘으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것과 하나님의 자비와 의가 나타나심으로 오는 평안이다.585) 이 믿음의 즉각적이고도 항상 있어야하는 열매, 곧 믿음과 잠시라도 결코 나눠질 수 없는 열매는 바로 죄를 이기는 힘입니다. 첫째로는 모든 외적인 죄를 이기는 힘인데, 모든 악한 말과 행실을 이기는 힘입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죽은 행실로부터 양심을 깨끗하게 하도록”(히브리 9:14) 어디에서나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는 내적인 죄를 이기는 힘입니다. 믿음은 모든 불경건한 정욕과 성정(性情)으로부터 마음을 정결케 하기 때문입니다. ... 너희가 과거에는 죄의 종이었으나 이제는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음”을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말입니다.586) 거듭남의 두 번째 표징인 소망은 그리스도의 내주하심으로 오는 결과로서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에서 오는 확신이다.587) 결국 이 소망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확신의 교리와 동일한 것이다.588) 세 번째 표징인 사랑은 “우리에게 주어진 성령에 의해서 우리의 마음에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589)이다. 이 사랑으로 사랑의 이중 계명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가능해진다. 사랑의 은총으로 거듭난 자는 하나님의 의지와 계명에 순응하고 순종할 수 있게 된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은총은 하나님의 생명을 죽은 영에 불어 넣어주시는 은총이며, 병든 인간의 본성을 정화시키고 치유하시는 은총이다. 갱신과 관련된 이러한 성령의 권능은 우리가 하나님과 영원을 향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본성의 전적인 타락이 우리로 하여금 죄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을 향하게 했다면, 거듭남의 은총은 우리로 하여금 순종과 성결을 향하게 한다. 왜냐하면 거듭남의 은총을 통해서 거듭난 신자는 타락한 본성이 치유되어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그에게 하나님의 치유의 영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응답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의 심령이 실질적으로 변해가는 과정 속에 있게 된다. 당신의 병을 아십시오! 그리고 이 병의 치료법을 아십시오. 그러므로 여러분은 다시 나야 합니다. 하나님에 의해 태어나야 합니다. 날 때부터 당신은 전적으로 부패하였습니다. 이제 당신은 은혜로 말미암아 다시 온전히 새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당신은 모두 죽었고 두 번째 아담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살아나게 됩니다. ‘여러분은 죄 중에서 죽었지만 그리스도께서 살려주신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삶의 원리, 곧 당신을 사랑하셔서 당신을 위해 자신의 몸을 주셨다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주신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 당신의 모든 병이 치료되고, 모든 마음속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온전히 품을 때까지 믿음에서 믿음으로 나아갑시다.’590) 의인과 거듭남의 순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덧입혀 주시고 또한 심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591)를 통해 하나님의 도덕적 형상이 회복되어져 마음의 습관적인 기질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또한 이러한 마음의 습관적인 기질의 변화는 의도적인 죄와 외적인 죄를 짓지 않게 한다.592) 그러나 성서의 예를 보면 분명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임에도 죄를 범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신자가 자범죄에 빠지는 이유는 거듭난 자의 마음속에 비록 지배는 받지 않지만 내적 죄가 남아있기 때문이다.593) 즉,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도 모든 악의 씨앗인 생래적인 죄, 악의 경향성, 본성의 타락성이 남아 있기에 죄를 지을 가능성이 남아 있게 된다. 거듭난 후의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 어린이로서 비록 성화 되었을지라도 부분적으로 성화된 것이기에 온전한 성화를 향해 점진적으로 성장해야 하며 육, 세상, 악에 대하여 깨어있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는 그 순간 우리는 갱신되어지고 깨끗해지며 정결해지고 성화 되었을지라도 동시에 우리는 아직 온전히 갱신되어지고 온전히 깨끗해지고 온전히 정결해지지는 못한 것입니다. 육과 악한 성질이(비록 정복은 되었지만) 아직도 남아 있어 영과 더불어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다 더욱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움에 있어서 모든 근면함을 사용합시다. 그 만큼 더욱 우리는 안에 있는 원수에 대항하여 깨어 기도하되 간절히 합시다. 그럴수록 더욱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 우리가 혈과 육과 싸우고, 또한 정사와 권세와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과 싸울지라도 이 모든 것을 다 이룩하면서 이 악한 세대에서 견디어 굳게 설 수 있도록 하십시다.594) 거듭남 후에 기독자는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회복은 완전한 회복이 아니기에 성결의 과정이 필요하다. 거듭남은 지속적 성화라는 보다 큰 과정의 시작을 의미할 뿐이다. 성화는 하나님 형상의 온전한 회복 과정이다. 웨슬리는 감리교 역사에 있어서 성화의 교리를 감리교 교리의 중심에 위치시킨다. 그래서 그는 회개는 종교의 현관(porch)이고, 믿음은 종교의 문(door)이요, 성화는 종교 자체(religion itself)라고까지 말한다.595) 치유와 정화의 성화 은총은 신자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한 회복을 향해 나아가도록 한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 형상의 회복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 없으면 발생할 수 없다. 선재적 은총이 양심, 자유의지와 같은 인간 능력 회복의 불가항력적인 은총이라면 성화의 은총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응답을 필요로 하는 하나님과 인간의 협력(Divine-human cooperation)을 요청하는 거부 가능한 은총이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서 일하시기에 여러분이 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일하시지 아니하면 인간이 자신의 구원을 이룩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 둘째로,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서 일하시니 그러므로 여러분도 일해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고후 6:1)이 되어야만 합니다(이것이 사도 바울이 한 말 그대로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일하시기를 그만 두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총을 주시되 “무릇 있는 자는 더 받게 되고 없는 자(이미 있는 은총을 키우지 않는 자)는 있는 것도 빼앗깁니다.”(마태 25: 29) 이것이 하나님의 일하시는 원칙입니다. 이러한 교리와는 반대되는 쪽으로 기울기를 좋아하였던 성 어거스틴은 심지어 Qui fecit nos sine salvabit nos sine nobis라고 하였으니 이 말은 “인간 없이 인간을 만드신 분께서는 인간 없이 인간을 구원하시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596) 웨슬리는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인간의 응답적 협력을 중시했다. 그리고 성화의 은총 역시 하나님의 현재적 선물이기에 신자들이 지속적으로 부어주시는 은총에 응답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도 은총을 부어주시는 일을 중단하신다. 따라서 웨슬리는 “완전을 향해 지속적으로 나아가지 않는 한 성결이 유지될 수 없다”597)고 하였다. 그러하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은총이 크면 클수록 이 은총을 활용해야할 의무가 더욱더 커지게 되기 때문에 결코 머물러 쉴 수가 없게 된다.598) 성화란 타락한 피조물이 창조주와 교제 가능한 실존으로 회복되는 것이며 원창조시의 청지기로서의 삶을 회복하는 것이다. 성결을 증가시킴으로서 하나님과 다른 피조물들과의 관계를 더욱 더 강건하고 통전적으로 만들어 가는 삶이 성화이다.599) 칭의 후에 자범죄와 죄책에서 자유하게 되고, 거듭남의 순간 내적 죄악성이 파괴되기 시작함으로 죄의 힘으로부터 구원받았다 할지라도, 내적 죄악성이 계속 남아있기 때문에 신자들은 그들 자신이 이따금씩 자만, 고집, 이 세상에 대한 사랑, 분노, 탐심, 불신앙600)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이런 내적 죄악성의 확신이 성령으로 하여금 신자의 마음에 도덕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의 완전한 구현을 시도하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도덕법) 여전히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용법(이로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여전히 마음과 삶 속에 남아있는 죄를 확신시킵니다. 그리고 그런 까닭에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에게 가깝게 다가가게 해서 그의 피가 우리를 매순간 정화시킵니다. 두 번째로 그것은 우리의 지성(Head)으로부터 힘을 이끌어냅니다. 세 번째로 그것은 우리가 그(그리스도)의 약속들을 실질적으로 완전히 소유할 때까지 은총 위에 은총을 수여 받는 것과 그것이 명령한 것이지만 아직 우리가 획득하지 못한 것에 대한 우리의 소망을 굳건히 합니다.601) 하나님의 빛과 그림자인 성령과 도덕법을 통해서만이 신자들은 자신 속에 남아 있는 부패성을 볼 수 있고 죄의 힘으로부터 자유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남아 있는 내적 부패성 혹은 죄악성으로 인하여 믿음을 상실 할 수 있고, 타락의 경향성에 굴복할 수 있으며, 결국에는 다른 사람처럼 자범죄를 범할 수도 있다. 따라서, 웨슬리는 스스로 섰다고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하며, 우리의 품속에 누워 있는 드릴라에 대항하여, 악한 본성에 대항하여,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602) 그러하기에 신자들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603)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마음속에 남아 있는 모든 죄악성으로부터 깨끗하게 되고, 우리의 말과 행동이 모든 불의로부터 깨끗하게 된다. 우리 영혼을 사랑하시는 위대한 의사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깨끗케 하실 수 있다. 때문에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믿는 우리의 믿음과 지속적인 회개를 통해서 성결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604) 회개와 믿음은 구원의 출발일 뿐 아니라 구원의 계속적인 성장에 필요한 것으로, 하나님 나라로 이르게 한다. 그러므로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이 시작되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완성된다. 따라서 온전한 성화를 죽기 전에 이루었다고 할지라도 계속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혈을 필요로 한다. 그리스도의 의로움과 거룩함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계속적인 회개와 믿음이 요청된다.605) 우리가 칭의 후에도 우리의 죄과(罪過, demerit)-어떤 의미에서는 죄책이라 할 수 있겠지만-를 깊이 깨닫는 것은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깨달음으로써 우리는 대속하시는 보혈의 참 가치를 볼 수 있게 되며, 이 보혈은 우리가 전에 필요하였던 것과 같이 지금 의롭다 하심을 입은 후에도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와 같은 깨달음이 없이는 우리는 이 언약의 보혈을 단지 하나의 보통 것이라고, 즉 우리의 과거의 모든 죄는 도말된 것을 알고, 지금은 별로 필요치 않은 어떤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만약 우리의 마음과 생활이 이와 같이 깨끗하지 않다면, 여기에는 우리와 순간순간 관계되어 마침내는 우리들로 하여금 순간순간 새로운 정죄를 받게끔 하는 어떤 죄책이 있는 것입니다.606) 칭의 후에도 필요한 지속적인 회개가 바로 복음적 회개로서의 신자의 회개이다. 복음적인 회개는 은총 안에서의 성장과 지속을 위해서 필요한 것으로 “죄로부터 성결로의 마음의 변화인 내적 변화”607)를 의미한다. 칭의 후의 지속적인 회개는 남아 있는 죄에 대하여 깨닫는 것이고 우리 마음에 고집, 우상숭배, 불신앙이 남아 있다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제사장과 왕으로 삼아 동행하지 않을 때의 자신이 무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608) 온전한 성화 이전에 필요한 회개(복음적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있는데 그것은 성화의 과정에 필요한 일종의 인간의 응답적 선행(good works)인 경건의 선행(all works of piety)과 자비의 선행(all works of mercy)이다.609) 먼저 경건의 선행은 은총의 수단들을 말하는 것으로 공적 기도(대중기도), 가족기도, 골방기도, 주의 만찬에 참석하는 것, 성경 말씀을 듣고 읽으며 명상하면서 하는 성경 연구, 또는 몸의 건강이 허락하는 대로하는 금식, 절제 등을 말한다.610) 웨슬리에게 있어서 은총의 수단은 신자들에게 성화의 은총을 전달하는 공식적 매개체이었기에611) 그는 은총의 수단을 통해 그를 따르는 신앙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기독자의 훈련을 시켰다. 또한 진정한 기독자의 삶 즉,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그리스도가 걸으셨던 그 길을 그대로 걷도록 엄격한 규율을 적용시켰다. 이것은 웨슬리가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신학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신학과 신앙에 있어서 철저하게 목회적이며 실천적인 면에 관심을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김진두 박사는 웨슬리의 은혜의 방편을 웨슬리 목회 자체로 보았으며 웨슬리가 교회를 이 은혜의 방편을 실행하는 거룩한 기구로 보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612) 온전한 성화 이전에 필요한 회개의 두 번째 열매는 자비의 선행이다. 이 자비의 선행 역시 “경건의 열매와 마찬가지로 은총의 참된 수단”613)으로 죄인들의 일시적인 요구와 영적인 요구를 충족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웨슬리는 또한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매여 있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고전 9:19)라는 사랑의 종노릇에 대한 바울의 고백을 배고픈 자를 먹이고, 헐벗은 자를 입히며, 병든 자와 갇힌 자를 방문하고, 눈먼 자에게 눈이 되어 주며, 고아에게 아버지가 되어 주고, 과부에게 남편이 되어 주는 것이라고 아주 구체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일들은 사람의 육과 영에 관계된 것들입니다. 굶주린 자를 먹이며, 헐벗은 자를 입히고, 나그네를 대접하며, 감옥에 갇힌 자나 병든 자나 여러 가지로 어려움 있는 자들을 찾아보는 일들입니다. 또한 무식한 자를 가르치며, 어리석은 죄인을 각성시키며, 뜨뜻미지근한 자에게 활기를 주며, 흔들리는 자를 견고케 하며, 마음이 연약한 자를 위로하고, 시험받는 자를 구조하는 것 혹은 죽어 가는 영혼들을 구원시키고자 하는 방법에 자신을 헌신하는 것과 같은 것들에 애쓰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요, 회개에 합당한 열매이며, 온전한 구원에 필요한 것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명하사 완전한 구원을 기다리게 하시는 길입니다.614) 자비의 선행이라는 성화의 측면은 성화에 있어서의 사회적인 면을 보여준다. 웨슬리는 동생 찰스와 함께 1739년에 출판한『찬미와 성시집』(Hymns and Sacred Poems)의 머리말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회적이지 않은 종교를 모른다. 사회적 성결 아닌 성결을 모른다”615)라고 하였고 또 산상 수훈에 관한 설교에서는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종교입니다. 기독교를 고독한 종교로 바꾸는 것은 참으로 기독교를 파괴시키는 것입니다.”616)라고 힘주어 말하며 단지 세상을 떠나 자신만의 내적 성결에 함몰어버린 신비주의자들과 모라비안들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왜냐하면 웨슬리는 사랑을 활동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이웃으로 더불어 자신의 활동적인 관계성 안에서 대응하는 변화 없이는 ‘내면적인 사랑’ 또한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617) 그가 사회적 성결, 즉 이웃 사랑의 실천을 중시했다는 예들은 그의 인쇄된 설교문 151편 중 13편이 산상수훈 강해 설교였고618), 브리스톨에서 처음 옥외 설교할 때(1739) 예수님이 옥외 산상에서 설교하셨듯이 웨슬리도 옥외 탄광 지역에서 산상수훈 강해 설교를 시작했다는 점619)에서 알 수 있다. 이런 까닭에 김홍기 박사는 루터에게 있어서 종교개혁의 교과서가 로마서라면, 웨슬리에게는 산상수훈이었다라고 말하고 있다.620) 웨슬리는 그의 평신도 지도자들을 교육시킬 때, 평신도 설교가들을 세우시는 하나님의 목적이 “어떤 새로운 종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민족을 개혁하는 것(to reform the nation), 특별히 교회를 개혁하는 것, 그리고 온 땅에 성서적 성결을 널리 퍼트리는 것”621)이라고 말하였다. 따라서 웨슬리는 이런 성화의 사회적인 특성에 집중하여 구제 기금 조성과 구제 사업, 고아와 과부들을 위한 고아원과 구빈원(The Poor House) 설립 운영, 교도소 목회, 병자 간병인과 무료 진료소 설립 운영,『원시 의학』(Primitive physics)의 저술, 노예 해방 운동과 같은 박애 운동을 펼쳤으며, 킹스우드에 학교를 세움으로 교육 사업을 펼쳤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성화 신학이 구체적이며 실천적이고 목회적인 특징을 가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칭의 후에 회개(복음적 회개, 신자의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다름 아닌 성결의 삶, 즉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삶이다. 그러나, 웨슬리는 이것들이 완전한 구원(full salvation)에 있어서 믿음과 같은 의미로 혹은 같은 정도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구분하고 있다.622) 복음적 회개와 그 열매가 우리의 성화를 위해 비록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지만 우리를 성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성화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는 단지 믿음뿐이다.623) 다소간의 회개를 통해서 그 회개의 열매가 있든지 없든지 간에 믿음으로 성화(온전한 성화)624)되는 것이다. 신자의 성결이 가능해지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완전을 향해 나아가는 점진적인 성화의 은총을 통해 죄인을 치료하시는 위대한 의사인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을 믿는 신자의 믿음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신자의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있는 내적 죄악성을 소멸시키시며 타락하고 병들어 있는 본성을 치유시키시고 손상되어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더욱 큰 의무가 발생하게 된다. 선재적 은총으로부터 확신의 은총, 의인화의 은총, 거듭남의 은총으로 점점 더 은총의 무게가 더해질수록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부요하신 은총의 역사를 더욱 풍요하게 할 책임이 있다. 하나님이 더 많은 은총을 우리에게 부어주실 수 있는 우리 자신의 그릇을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다. 즉 우리는 더욱 우리 자신의 내적 성결(하나님 사랑)과 사회적인 성화(이웃 사랑)을 증가 시켜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병자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병을 낫고자 노력하면 할수록 자신의 병이 빨리 치유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치유의 영이 우리의 본성을 치유하실 때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우리의 응답적인 노력이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의 온전한 회복의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3. 온전한 성화(완전)의 은총과 죄의 치유 웨슬리는 온전한 성화625)를 위해 회개와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그것들이 우리의 완전을 이루는 것은 아님을626) 말했다. 믿음을 통해 받아들이게 되는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의 온전한 성화를 가능하게 한다. 단지 하나님만이 우리를 전적으로 성결시킬 수 있다. 웨슬리는 그의 설교 “구원에 이르는 성서적 길(The Scripture Way of Salvation)”에서 죄로부터 구원받고 사랑 안에서 완전해 지는 우리의 온전한 성화를 위해 필요한 믿음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다. 성화에 필요한 믿음은 성서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에 대한 신적인 증거와 확신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할 수 있으며, 이 약속을 하나님께서 현재 이행하시고 있다는 신적인 증거와 확신이다.627) 따라서 성화가 과정적이라면 온전한 성화 즉 완전의 체험은 순간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웨슬리가 이해한 완전의 상태는 완전해진 완전(perfectio; perfected perfection), 즉 성취되어진 상태로서의 완전인 천사 같은 완전(angelic perfection)이 아니라 과정적인 완전(teleiotes; perfecting perfection)으로서 “모든 사랑의 충만을 위한 끝이 없는 열망”628)이다. 완전 경험은 순간적이지만 그 순간 전과 후는 점진적이다.629) 바로 이점이 완전에 대한 웨슬리의 반대자들과 심지어는 추종자들까지 웨슬리가 말하고 있는 완전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켰다.630) 웨슬리는 완전을 경험한 이들도 무지로 인해 지식에 있어서 완전하지 못하고, 실수, 연약함과 유혹에 있어서 자유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이 땅에서의 완전은 상대적인 완전으로 절대적인 완전은 현실에서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631) 그리고 성도들은 오히려 이러한 육체적 연약함, 아픔, 고난 속에서 그리스도의 은총이 강해지고 완전해짐을 경험한다.632) 이러한 무지, 연약, 실수와 유혹으로부터도 자유함을 얻고, 무의식적인 죄에서도 성결함을 받는 것은 죽은 후 영화의 단계에서나 가능한 것이다.633) 완전 사랑의 은총을 경험한 성도도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속죄 은총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온전한 성화에 이른 성도도 의식적인 죄는 범하지 않지만, 무의식적으로 하나님의 법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634) 그러나 분명 웨슬리의 목회 전 기간에 걸쳐서 그의 사상 중에 가장 일관된 단일한 주제는 ‘거룩한 생활’ 즉 ‘완전’이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완전은 성결한 사랑이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는 상태 속에서의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완전 사랑이며 죄 없음의 완전 성결 상태이다.635) 그리고 웨슬리가 기독자의 완전을 말할 때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유아적인 기독자(babes in christ)’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장성한 분량의 기독자(adult christian)’636)를 지칭하는 것이었다.637)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의 ‘유아적 기독자’조차도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기에 죄를 범하지 않을 정도로는 완전하다638)고 웨슬리는 그의 설교 “기독자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에서 말하고 있다. 웨슬리가 말하는 죄 없음의 완전 성결 상태는 완전의 소극적인 의미로서 기독자를 타락(backsliding)하게 만드는 자만, 고집, 이 세상에 대한 사랑 등과 같은 거룩하지 못한 기질들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즉 죄 없음의 완전 성결 상태란 죄의 뿌리로부터의 구원을 말하는 것639)이며 죄에 대하여 완전히 죽는 것640)을 의미한다. 결국 완전을 경험한 사람은 성령의 온전한 성화의 은총의 현존을 통해 그의 생래적인 죄(inbred sin)로부터 정화되어진다. 그의 타락한 본성이 완전히 치유되어진 상태에 있게 된다. 이러한 상태는 완전 경험을 한 성도의 죄의 뿌리까지 뽑히는 것을 뜻하며, 행위적인 죄들뿐 아니라 내적인 죄까지도 그에게서 근절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죄의 지배를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죄가 남아 있지도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대신하여 자기 몸을 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갈 2: 20) 이 말씀은 외적인 죄와 함께 내적인 죄에도 구원받은 것을 명백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소극적으로도 표현되었고 또한 적극적으로도 표현되었습니다. 소극적으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라”고 하였으니 이는 나의 악한 성질 곧 죄의 몸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는 말씀과 “내가 산 것이 아니라”는 말씀은 분리시킬 수 없도록 결합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신자들 사이에 살고 있는 사람은 믿음으로써 그의 마음이 정결하여질 것입니다. 이는 “영광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신 사람은 그의 깨끗하심 같이 자신을 깨끗케 하기”(요한 일 3: 3)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마음이 겸손하였기에 그는 교만으로부터 깨끗함을 받습니다. 완전한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뜻과 욕망으로부터 깨끗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시고 그의 사업을 이루시는데 전심하려 하셨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그리스도인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성냄(분노)으로부터 깨끗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온유하시고 점잖으시며 인내하시고 오래 참으시기 때문입니다. ... 허물에 대하여는 노하시고 기뻐하시지 않으셨으나 허물을 저지른 사람에 대하여는 불쌍히 여기신 것입니다. 그 일에 대하여는 연민과 사랑으로 대하셨습니다. 완전한 이들이여! 가서 이와 같이 행하십시오. 분노하더라도 범죄하지는 마십시오. 하나님을 거역하는 모든 죄에 대하여는 분노를 느낄지라도 거역하는 사람만은 사랑하고 따뜻하게 동정하여야 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그 백성들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십니다. 외적인 죄에서만이 아니라 마음의 죄로부터도 구원하십니다. 악한 생각으로부터 그리고 악한 성품으로부터 구원하시는 것입니다.641) 완전을 경험한 사람은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거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총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실천에 아무런 제약도 거리낌도 없게 되고 그의 영혼에 이러한 사랑과 반대되는 어떤 나쁜 기질도 남아있지 않게 됨으로 그의 모든 생각들과 언어들, 그리고 행동들은 온전한 사랑에 의해 지배받게 된다.642) 이것이 바로 완전의 적극적인 의미인 완전 사랑이다. 이런 상대적인 완전이 지상에서 가능한 것은 아르미니우스에 의해서 영향을 받은 은총의 낙관주의(optimism of grace)643)에 의해서이다. 우리의 죄악성의 깊이로는 불가능하지만, 그러나 은총의 높이가 크시기에 그 크신 은총으로 가능하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웨슬리에게 온전한 성화의 상태도 역시 정착된 상태가 아닌 과정으로서의 상태이다. 내적인 죄까지도 사함 받는 것이 완전이지만, 웨슬리는 완전을 경험한 성도도 다시 죄 중에 빠질 수 있음을 그의 목회적인 경험을 통해서 말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은총을 유지하는 것이 그것을 얻는 것보다 더욱 어려우며, 세 명중에 하나도 이것을 하기 힘들며 이것은 완전한 사랑을 경험한 이들에게서도 나타난다”644)라고 말하고 있다. 웨슬리는 온전한 성화 은총의 상실의 가능성 때문에 완전한 사랑을 경험한 신자라도 지속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마음의 순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645)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가 여전히 완전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도 필요한데 이것은 단지 생래적 죄와 실제적 죄가 그들에게 다시 출현하지 못하게 하는 데에 필요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태만, 단점, 판단과 실행에 있어서의 실수, 여러 가지 모양의 결점들을 위한 속죄”646)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웨슬리는 혹여 은총의 상실을 경험한 이들에게 교만, 열광주의, 율법폐기론, 태만, 분열에서 벗어나 하나님만을 추구하고 모든 일에 남의 모범이 될 것을 충고하고 있다.647) 특히 웨슬리는 결국 생래적 죄와 외적 죄의 재출현 가능성과 유혹648), 혹은 인간의 연약성으로 인한 무의지적인 하나님의 율법의 위반 등으로 온전한 성화 은총 상실의 가능성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지속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혈이 필요한 것이다. 결국 웨슬리가 죄없는 완전이라는 구절을 사용했을 때, 그것이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던 간에 사랑의 완전한 이중 계명의 어떠한 위반으로부터도 자유하다는 의미에서는 결코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완전을 죄로부터의 구원의 의미에서 사용했다.649)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 없는 완전이 가능한 것은 웨슬리가 이해한 죄에 대한 개념으로부터 가능하다. 그것은 웨슬리가 인간의 유한성으로 인한 무의지적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위반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죄로 보기에 부적절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4. 영화의 은총과 죄에 대한 완전한 승리(mortification) 웨슬리는 죄의 치유적 강조점과 일관해서 기독자들이 죄의 본질로부터의 자유의 그 궁극적 상태인 영화 되어지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의도하는 마음과 삶의 성결을 회복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650) 그러나 이것은 웨슬리가 죽음 이전에 전적으로 성화되었던 이들의 최종 의인화(Final Justification)를 제한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보다는 하나님께서 은총 안에서 신실하게 장성한 자들 모두가 어느 정도 종말(eschaton) 이전에 기독자의 완전을 획득할 수 있다는 확신의 반영이다.651) 콜린스는 구속의 순서에서 웨슬리가 목적한 것은 완전이라기 보다는 구원의 영원한 목적 즉, 영원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652) 웨슬리는 그의 전 생애를 거쳐 온전한 성화를 넘어서서 영원으로의 구속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653) 그러나 그의 가장 흥미로운 주장 중에 하나는 완전히 적합치 못한 이들은 그들이 최종적인 종말을 기다리는 동안 낙원에서 ‘원숙의 과정(ripen)’을 지속한다는 것이다. 현재 아브라함의 품에, 낙원에 있는 이들-태초부터 지금까지 육체로부터 해방되어진 모든 거룩한 영혼들은 세상의 근본으로부터 그들을 위해 준비되어진 그 왕국을 받기 전에 끊임없이 하늘에 적합하도록 원숙되어지고 있고, 영속적으로 더욱더 거룩해지고 행복해질 것입니다.654) 이러한 주장은 참으로 흥미로운 것으로서 대부분의 서구 기독교 전통은 이 낙원을 새 하늘과 새 땅의 궁극적 상태를 단지 기다리는 축복된 휴식을 의미한 반면 웨슬리는 그곳을 은총 속에서의 성장의 장소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사실 웨슬리는 완전이란 낙원의 상태를 뛰어넘어 은총 속에서 영원으로의 성장을 의미하였다.655) 지상에서 경험되어지는 완전은 상대적이지만, 천상에서 경험되는 영화는 절대적 완전의 상태를 의미한다. 이 영화라는 구원의 마지막 단계는 종말론적인 의미와 연관이 있다. 그런데 의인화가 죄책으로부터의 구원이요 성화는 죄의 본질로부터 구원이라면 영화는 다름 아닌 죄의 현실성으로부터의 구원이다. ‘그는 그가 의롭게 한자들을 영화롭게 하십니다.’ 이것이 마지막 단계입니다. 그들을 빛의 성도들의 상속자들의 참여자들이 되도록 적합하게 한 그는 그들에게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그들을 위해 준비되었던 그 왕국을 주십니다.656) 당신은 마지막 날에 누구의 의로 서실 것입니까? - 누구의 공덕으로 당신은 하나님의 영광 속으로 들어가실 수 있겠습니까? 저는 주저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의(righteousness) 덕택이라고 대답합니다. 단지 그의 공덕만을 통해서 모든 신자들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즉 죄책으로부터 구원받는 의롭게 됨, 죄의 본질로부터 구원받는 성화됨, 그리고 하늘로 들리어 올리는 영화됨.657) 영화는 의지적인 죄뿐 아니라 무의지적인 죄까지도 사함 받는 상태이다. 또한 무지, 실수, 연약함, 유혹에서마저도 자유함을 얻게 되는 것이다. 죽을 몸이 죽지 아니할 몸으로,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할 몸으로, 병드는 몸이 병들지 아니하는 몸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의 몸처럼 다시 신령한 몸으로 사는 것이다. 실수, 고통, 그리고 모든 육체적인 연약함이 중단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죽음에 의해서 파괴되어집니다. 그리고 인간의 ‘최후의 적’ 죽음 자체는 부활에 의해서 파괴되어 질 것입니다. 우리가 천사장의 목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를 듣는 그 순간 ‘성서의 예언이 완성되어 질 것입니다. 죽음은 승리에 삼킨 바 되었습니다. 이러한 부패한 육체는 썩지 않게 됩니다. 이러한 죽을 몸은 영원함의 옷을 입게 됩니다.’ 그리고 하늘의 구름 속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악마의 마지막 이 일(인간성에 기인한 연약성)을 파괴합니다.658) 웨슬리는 영화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의심할 것 없이 그리스도의 의이다. 어떠한 영혼이라도 영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의가 필요하다. 더불어서 웨슬리는 개인적인 성결 역시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의 없이 우리는 영화에 대한 권리가 없으며 성결 없이 우리는 영화에 적합할 수 없다.”659) 영화를 위해 필요한 그리스도의 의와 우리의 성결에 대한 핵심적인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믿음이다. 웨슬리는 그의 생애 마지막 설교 중 하나인 “믿음에 관하여(On Faith)”에서 믿음을 영적 세계와 관련하여 표현하고 있으며 낙원의 구원 상태를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웨슬리는 그의 설교 “성서적 구원의 길(The Scripture Way of Salvation)”에서 강조한 구원의 현재적 성격과는 대조적으로 구원의 미래적 초월적 성격을 강조한다.660) A. 요약 웨슬리는 평생에 걸쳐서 자신이 추구하였던 ‘참 기독교’를 위협하는 많은 요소들과 논쟁했다. 그 요소들은 모라비안의 정숙주의,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의 율법폐기론적 경향, 자신의 신도회 내의 극단적 열광주의와 당시 영국 사회 전반에 걸쳐 퍼져있던 이신론적 경향들이었다. 그리고 죽음이 임박한 말년에 웨슬리는 낭만주의자들과 합리주의자들 그리고 계몽주의자들의 인간 이성의 극대화에 대한 경향을 경계하였다.661) 이러한 극단들과의 논쟁 속에서 웨슬리가 항상 근거를 두고 힘을 얻었던 신학의 근원은 성서, 특히 신약성서였다. 웨슬리는 그 자신이 신약 학자로서 성서에 계시되어진, 특별히 신약 성서에서 계시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모든 경향들을 경계하고자 하였다.662) 본 논문에서 고찰한 죄 이해의 문제도 이런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지며 다음과 같은 변천 과정을 가진다. 전형적인 영국 국교회의 아들이었던 초기의 웨슬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경향은 로마 카톨릭과 신비주의, 영국의 경건주의 그리고 초대 교부들의 저작들이었다. 이들의 영향을 받은 웨슬리는 타락에 기인한 인간의 현 상황을 철저하게 질병 가운데서 파악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병들어 있는 본성의 치유와 부패한 기질의 정화였다. 이러한 인간의 가장 심각한 질병의 치료약은 믿음이다. 인간은 이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의 덕인 믿음, 사랑, 겸손, 소망을 회복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 또한 인간을 건강과 자유로 회복시키시는 것에 있다. 따라서 초기의 웨슬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있어서 치유자로서의 사역에 집중하였다. 그러므로 웨슬리는 치유의 과정 속에서 자비와 헌신의 활동들로 특징지어지는 훈련된 삶의 방법들을 활용하고 중시하였다. 이점은 당시의 웨슬리가 치유의 과정으로서 ‘거룩한 삶’에 집중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초기 웨슬리에게 나타나는 한계를 보여주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 한계는 비단 웨슬리 자신만의 것이 아닌 당시 영국 국교회의 한계였다. 당시에 영국 국교회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적인 측면보다는 이성주의의 영향 속에서 인간 자신의 실질적인 문제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따라서 웨슬리의 죄 이해에 있어서 속죄의 법정적인 측면의 결여와 속죄의 치유적인 측면의 강조가 이 시기의 특징이다. 구원의 확증의 문제로 고민하던 중기 웨슬리는 올더스케잇 거리에서 하나의 커다란 충격적 체험을 하게 된다. 신대륙의 조지아 선교 후에 모라비안과의 보다 긴밀한 접촉을 통해 웨슬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이라는 기독교의 핵심적 진리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는다. 이 만남으로 웨슬리는 종교 개혁적 전통과 접촉하게 된다. 그들을 통해서 웨슬리는 자신이 고민했던 구원의 확증이 결국은 용서의 확증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종교 개혁전통과의 만남의 충격 속에 있었던 중기 웨슬리는 속죄의 법정적인 측면에 관심을 집중하게 된다. 올더스케잇 체험 이전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던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한 관심과 죄책에 대한 용서가 올더스케잇 체험 바로 후의 설교들의 중심 주제가 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웨슬리는 구원의 유일한 필수 조건인 믿음이 동의(assentia)에다 심정적인 신뢰(fiducia)를 수반함을 확신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모라비안의 정숙주의와 신앙제일주의에 기인한 율법폐기론적 경향은 웨슬리로 하여금 ‘거룩한 삶’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하게 한다. 이점으로 인하여 웨슬리는 칼빈주의자들과도 논쟁하게 되었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에 동의한 웨슬리는 한가지 문제에 봉착한다. 그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신자에게 남아 있는 죄인 죄악성의 문제였다. 이 문제에 대한 종교 개혁의 해결책은 ‘의인인 동시에 죄인(simul justus et peccator)’인데 이것은 죄의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신자나 불신자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지 차이는 인간이 아닌 하나님께 있다. 구원받은 인간은 실질적으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책임을 물으시지 않으시고 자신의 진노를 거두신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인간에게는 가차없이 책임을 물으시고 그를 분노 중에 놓으신다. 이러한 종교 개혁의 전통적 견해는 웨슬리 평생의 관심사인 ‘마음과 삶의 성결’의 배양과 상충되는 것으로 정숙주의와 율법폐기론적 경향에 빠질 가능성이 있었으며 당시 영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경향들이 팽배했었다. 이러한 종교 개혁의 해결책은 하나님의 은총조차도 인간의 실질적 문제인 인간 본성의 타락성을 현실에서는 어찌할 수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웨슬리는 신자 안에 남아 있는 죄에 대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고심한다. 이러한 고민 중에 있던 웨슬리는 또한 당시의 이신론자인 테일러 박사와의 논쟁 때문에 확고한 원죄론을 펼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슬리는 아담의 원죄로 인해 모든 인류의 본성이 전적으로 타락했다는 전통적인 견해에는 동의를 하지만 그리스도의 보혈의 구속에 있어서는 종교 개혁적 전통과는 그 궤를 달리한다. 웨슬리는 보편적 구속(universal redemption)을 믿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혈의 공로가 만인에게 미치기에 원죄의 죄책으로부터 모든 인류는 해방되었다. 그러하기에 인간에게 있어서 실질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자범죄의 죄책의 문제와 아담의 죄로부터 기인한 유전되어진 본성의 부패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웨슬리는 원죄(original sin)라는 단어보다는 ‘생래적 죄(inbred sin)’, ‘내재적 죄(inbeing sin)’, ‘타락한 죄악된 본성(corrupt sinful nature)’, ‘육욕의 사람(carnal mind)’, ‘내적 죄(inner sin)’, ‘태생적 죄(birth sin)’등과 같은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중기 웨슬리가 씨름하였던 신자 안에 남아 있는 죄의 문제는 다름 아닌 인간 본성의 부패성인 ‘생래적 죄(inbred sin)’의 문제였다. 또한 웨슬리의 신학과 실천적인 목회에 있어서 죄와 관련하여 속죄의 법정적인 특성과 치유적인 특성이 긴장관계에 있음을 보여주는 사실 또한 죄의 남음의 문제였다. 신자에게 남아 있는 죄의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서 웨슬리는 성서에 근거해서 죄에 대한 구분을 세밀하게 시도한다. 웨슬리는 죄에 대하여 내적죄와 외적죄, 의지적인 죄와 무의지적인 죄, 죄책과 죄의 힘 그리고 죄의 현실성 등으로 구분하여 논의한다. 이러한 죄의 구분은 모두 모라비안의 정숙주의, 극단적 칼빈주의의 율법폐기론과 웨슬리 자신의 신도회 내부의 극단적 열광주의를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모두 웨슬리가 평생을 통해 강조하였던 완전 사랑의 온전한 성화의 현실성을 거부하거나 혹은 오도하여 완전 경험 후에는 중보자 없이 자기 자신의 의(righteousness)만으로 하나님의 공의 앞에 설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이었다. 중기 웨슬리는 종교 개혁적 전통의 죄와 속죄에 대한 법정적 이해의 강한 충격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충격으로 기인한 죄와 속죄의 치유적 특성과 법정적 특성의 긴장 관계 속에 처한다. 죄와 관련하여 속죄의 법정적 특성과 치유적 특성의 긴장 관계 속에 있었던 웨슬리는 후기에 들어서면서 통찰력 있는 은총 이해를 통하여 죄와 속죄의 특성간에 긴장 관계를 해소시킨다. 루터식 모라비안의 정숙주의, 극단적 칼빈주의의 율법폐기론적 경향, 극단적 열광주의적 경향들과 지속적으로 논쟁하였던 웨슬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과 그 열매인 ‘거룩한 삶’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웨슬리는 1765년부터 일련의 저작들을 통해 인간 현실의 제반 문제인 죄의 문제와 그에 따른 은총 이해와 관련하여 심도 깊은 구원의 과정(ordo salutis)을 정립하기 시작한다. 웨슬리는 은총이 단지 용서만의 의미, 혹은 치유만의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용서의 은총은 타락한 본성 치유의 도구가 된다고 본다. 결국에는 이 은총 안에서 인류는 아담 안에서 잃은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잃은 것 이상의 것으로 회복될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이런 기본적 은총 이해를 가지고 웨슬리는 인간 현실의 제반 문제 속에서 구원의 과정에 대해 서술한다. 아담의 타락으로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여 아무 가능성도 없게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부어주시는 선재적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의 보편적 구속으로 말미암아 가능성이 생기게 되었다. 모든 인간은 원죄의 죄책으로부터 해방되어졌고 선재적 은총으로 인한 본성적 형상과 정치적인 형상의 부분적인 치유는 형이하학적으로 밖에 될 수 없었던 인간에게 하나님을 향해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확신케 하는 은총을 사람들에게 부어주기시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영적 자각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은 칭의와 신생 이전의 회개인 율법적 회개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확신의 은총 속에 있는 인간은 단지 자범죄의 죄책과 죄악성만을 인식했을 뿐이지 죄책을 용서받은 것도 아니고 타락하고 손상된 본성을 치유받은 것도 아니기에 하나님의 용서와 치유의 권능을 지속적으로 받아야 될 필요가 있다. 자기 자신의 죄책과 죄악성을 인식한 인간은 의인화의 은총에 의한 믿음을 통해서 자범죄의 죄책으로부터 구원받게 되고 그와 동시에 거듭남의 은총에 의해서 병들어 있는 자신의 본성이 치유되기 시작됨으로 죄의 힘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칭의와 거듭남 후의 신자 안에는 여전히 내적 죄악성 즉, 죄의 현실성이 남아 있다. 그러나 내적 죄악성 자체는 죄가 아니다. 그것은 죄에 대한 경향성이다. 그러므로 칭의와 거듭남 후의 신자는 죄의 지배로부터는 벗어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죄가 남아 있게 된다. 즉 거듭남 후의 기독자는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기 시작함으로서 자신의 내적 죄악성이 치유되어지기 시작하지만 완전한 치유와 회복이 아니기에 성화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환자가 의사의 치료에 적극적으로 동참했을 때 그 병의 치유가 더 빠르고 온전하게 이루어지는 것처럼 인간에게는 하나님께서 부요하게 부어주시는 은총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응답해야 하는 필요성과 당위성이 있다는 사실에 있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온전한 성화를 지향해 나아가는 과정인 점진적 성화의 과정에 신인 협력(Divine-human cooperation)이 필요한 것이다. 죄의 뿌리인 남아 있는 내적 죄악성의 치유를 위해서 점진적인 성화의 과정을 지속해야만 한다. 이러한 과정 중에 하나님께서 온전한 성화의 은총을 인간에게 부어주셔서 인간의 내적인 죄악성을 온전히 치유하신다. 이 경험이 완전한 사랑의 경험인 온전한 성화의 경험이다. 완전 경험 후의 신자는 그의 심중이 하나님의 성결한 사랑으로 가득차게 되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롭게 주신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데 어려움이 없게 되며 기독자를 타락하게 만드는 자만, 고집, 이 세상에 대한 사랑 등과 같은 거룩하지 못한 기질들로부터 자유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는데 그것은 웨슬리가 말하는 지상에서의 완전은 완전해진 상태로서의 완전이 아닌 과정으로서의 완전이라는 점이다. 영원 속에서 하나님을 향유해가는 과정의 하나로서의 완전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완전 사랑을 경험한 신자도 그 자신의 육체적 연약성과 유혹으로 인하여 온전한 성화의 은총을 상실할 수도 있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의 보혈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이점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바로 토마스 맥스필드와 조지 벨과 같은 극단적 열광주의자들이었다. 온전한 성화의 은총을 경험한 기독자들도 그 자신의 육체적인 연약성에 기인한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무의지적인 위반을 하게 된다. 즉 소위 말하는 무의지적인 죄를 범하게 된다. 이 무의지적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위반으로부터 벗어나 죄의 현실성 자체로부터의 구원이 가능해지는 것이 바로 영화이다. 이런 구원의 과정에서 강조되어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편적이고 지속적인 속죄의 보혈과 의의 덧임혀짐과 심겨짐이다. 우리의 중보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혈과 의와 믿음은 선재적 은총부터 영화까지의 전 구원의 과정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들이다. B. 종합 분석 우리가 흔히 웨슬리를 연구할 때 당연히 여기지만 동시에 간과하고 넘어가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웨슬리가 부흥운동가이며 영국 국교회 사제이자 동시에 신약학자였다라는 사실이다. 웨슬리는 일평생 성서, 특히 신약성서 속에서 그가 추구하였던 ‘참 기독교’를 찾고자 했으며 그가 걸어갔던 ‘참 기독교’에 대한 여정을 방해하였던 많은 오류들에 대해 성서가 증언하는 참 진리 가운데서 해결점을 찾고자 했다. 웨슬리의 죄 이해 또한 이러한 기본적인 틀 속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 그의 죄 이해는 철저하게 성서에 근거해 있으며 그의 은총 이해와 관련된 구원 이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특히 그가 한 평생 ‘참 기독교’의 지표로 삼았던 성결,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기독자의 완전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손수 그 방법(천국에 이르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하여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바로 이 목적을 위하여 그는 천국으로부터 오셨습니다. 그는 한 책에 그 사실을 쓰셨습니다. 오 그 책을 저에게 주십시오! 어떤 값으로 제가 그 책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 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저를 위한 풍부한 지식이 있습니다. 저로 하여금 한 책의 사람(homo unius libri)이 되게 하십시오. 저는 여기서(성서 속에서) 인간의 분주한 방법과 멀어집니다. 저는 홀로 앉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여기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의 임재 속에서 저는 천국에 이르는 길을 찾고자 하는 목적을 위해서 성서를 열어 읽습니다.663) 이것은(기독자의 완전) 제가 1725년부터 줄곧 목표로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성경 외에는 비교적 아무 책도 중요시하지 않는 한 책의 사람(homo unius libri)이 되고자 했던 1730년부터는 더욱 명확해졌습니다.664) 역사적인 고찰을 중심으로 수행되어진 웨슬리의 죄 이해에 대한 종합 분석 및 전망은 다음과 같다. 첫째, 웨슬리의 죄 이해는 철저하게 성서의 죄 이해, 특히 신약의 죄 이해에 근거해 있다. 신약성서의 죄 이해는 매우 다양하다. 그리고 죄에 대한 명확한 정의보다는 죄의 특성으로서의 법정적인 면과 치유적인 면의 극복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죄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않고 있다는 것은 죄를 의미하는 어근이 여덟 개나 신약성서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665) 웨슬리도 죄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는데 노력하기보다는 자신의 목회적인 상황 속에서 유동적인 죄의 특성과 구분에 관심을 집중한다. 이러한 노력은 자신과 자신의 감리교 운동이 직면한 위험요소들에 대한 대응과 관련이 있다. 즉 웨슬리는 자신의 목회적이고 실천적인 상황에 따라서 죄 이해를 하고 있다. 초기의 웨슬리는 속죄의 법정적인 면에는 거의 무지하였던 것처럼 보일 정도로 속죄의 치유적 특성에만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모라비안들의 순간적인 회심과 연관된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이라는 거대한 충격은 웨슬리로 하여금 속죄의 법정적 특성에 관심을 집중하게 한다. 그러나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극단적 강조는 ‘거룩한 삶’이라는 놓칠 수 없는 주제를 간과하게 하며 종교개혁의 전통적 해결책은 ‘신자의 남은 죄’에 대한 적절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기 못하기에 중기 웨슬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과 ‘거룩한 삶’이라는 기독교 신학과 삶의 두 가지 축을 조화시키고자 한다. 웨슬리는 이러한 조화의 노력 속에서 죄에 대한 복잡하고 정의 내리기 어려운 미묘한 구분과 설명, 그리고 그에 따른 지속적으로 부어주시는 은총의 역할들을 숙고한다. 따라서, 중기 웨슬리의 죄 이해는 속죄의 법정적 특성과 치유적인 특성의 긴장 관계 속에 있다. 그러나 1765년 이후의 보다 세분화되어지고 명확해진 은총 이해는 웨슬리로 하여금 속죄의 법정적 특성과 치유적인 특성의 긴장관계를 해소하게 한다. 이 시기의 웨슬리는 용서로서의 은총 이해를 치유의 권능이라는 보다 큰 주제에 통합시킨다. 선재적 은총은 용서와 치유의 가능성을 의미하고, 확신케하는 은총은 영적 자각, 의인화의 은총은 용서, 거듭남과 과정적 성화, 온전한 성화 그리고 영화의 은총은 치유와 관련이 있다. 이러한 죄와 은총의 관계 이해의 역동성은 서방교회의 전통과 동방교회의 전통을 성공적으로 포괄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그의 죄 이해가 우선적으로 성서를 근간으로 형성되어졌음을 보여준다. 둘째, 웨슬리는 악의 원인과 인간 타락의 원인을 의지의 자유의 오용으로 보고 있다. 악의 원인을 초월적인 존재의 자유에 대한 오용으로 본 점은 서방교회 전통과 다른 동방 교회적인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리고 웨슬리는 첫 인간의 불순종으로 인한 결과로 ‘전적 타락’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지 못한 ‘자연적 인간(natural human)'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향할 수 없다는 웨슬리의 주장은 종교 개혁의 주장과 전적으로 동일한 주장이다. 반면에 이점은 동방 교회의 전통과는 다른 인간 이해이다. 셋째, 원죄의 유전 문제에 있어서 웨슬리의 관점은 시기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 초기의 웨슬리는 생물학적 전이론의 입장을, 중기의 웨슬리는 영혼 창조론적 입장을, 후기의 웨슬리는 영혼 유전 전이설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리차드 톰슨이 웨슬리에게 원죄가 생물학적으로 유전된다면 죄에서 완전히 자유해진 양친으로부터 아이가 태어났을 때 어떻게 부패한 본성을 가진 아이가 태어날 수 있겠는가라는 물음을 던졌을 때 원죄의 유전에 있어서 생물학적인 전이론은 그의 완전 교리와 상충되는 점을 노출시켰다. 그리고 중기의 웨슬리가 염두에 두었던 영혼 창조론적인 입장은 ‘죄된 육체’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었다. 따라서 영혼 창조론적인 입장은 죄의 자리를 육체에 두었기에 이 입장에서는 지상에서의 완전이란 불가능한 것이었다. 따라서, 후기의 웨슬리는 원죄의 유전 문제에 있어서 ‘죄악된 육체’의 개념과 무관하며 죄의 가능성을 영혼에 두는 영혼 전이론적인 입장을 피력한다. 이 영혼 전이론적인 입장은 웨슬리가 일관되게 주장한 지상에서의 상대적인 완전 가능성에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 입장이었다. 넷째, 죄와 관련된 웨슬리의 은총 이해는 하나님의 보편적인 은총의 우선성이 특징이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보편적인 선재적 은총으로 아무 능력이 없었던 자연적 인간에게 가능성이 생겼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보편적인 구속(universal redemption)으로 아담의 불순종으로 기인한 원죄의 죄책이 사해졌다고 보았다. 따라서, ‘자연적 인간(natural man)’은 웨슬리에게 있어서 논리적인 추상이며 인간에게 남아 있는 실질적인 문제는 자범죄에 대한 죄책과 인간 본성의 타락과 부패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웨슬리는 ‘원죄(original sin)’라는 용어보다는 ‘생래적 죄(inbred sin)’와 ‘내재적 죄(inbeing sin)’라는 용어를 쓴다. 그러나 웨슬리는 이러한 ‘생래적 죄’와 자범죄의 죄책에 대해서 인간 자체만의 노력으로서는 철저하게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오직 하나님께서 값없이 부어주시는 은총(free grace)에 힘입을 때에만 인간에게 가능성이 발생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하는 의지에 자유의 회복이라든가 성화의 과정 속에서 주님의 사랑의 계명을 준수할 수 있는 가능성의 회복은 모두 은총에 의한 것이기에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할 수 있는 것조차도 모두 은총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섯째, 웨슬리는 죄의 자리를 육체에 두지 않고 영혼에 둔다. 웨슬리는 바울의 몸에 대한 관점을 그대로 수용한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서 인간은 필연적으로 연약성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몸을 지니게 되었지만 그 연약성 자체가 악이나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서방 교회의 전통은 육체를 악한 것으로 보아 지상에서의 완전이 불가능하며 인간은 필연적으로 죽기 이전에는 죄에 눌려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로 보았다. 반면에 웨슬리는 그와는 반대되는 개념, 즉 인간의 육체적인 연약성은 악이나 죄가 아니고 단지 악과 죄에 책임이 있는 것은 영혼이라는 사실을 성서 속에서 찾음으로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의 풍성한 은총 아래에 있는 인간이 보다 긍정적이고 역동적으로 현실에서의 구원의 여정에 참여 할 수 있게 하였다. 이 사실이 웨슬리로 하여금 죄로부터의 완전한 구원으로서의 완전이 지상에서 가능함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게 하였다. 바울의 관점에 의하면 죄로부터의 구원이란 믿음에 의해 가능한 현실의 삶 속에서 약속되어진 특권이다. 여섯째, 웨슬리의 죄의 구분과 정의는 종교 개혁의 구원 이해보다 더욱 세밀한 구원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웨슬리는 죄책(guilt), 죄의 힘(power of sin), 죄의 현실성(being of sin)으로 죄를 나누어 설명함으로서 행위로서의 죄와 상태로서의 죄를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으며, 내적 죄와 외적 죄, 의지적인 죄와 무의지적인 죄를 말하고 있다. 특히 죄에 대한 정의에 있어서 웨슬리는 의지적인 죄를 적절한 의미의 죄, 무의지적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위반을 소위 부적절한 의미의 죄로 설명한다. 종교 개혁의 죄 이해는 죄책과 관련해서 인간의 연약성에 기인한 죄, 즉 무의지적인 죄를 의지적인 죄와 동일한 견지에서 이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을 죄에 눌려 살 수 밖에 만들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신자로 하여금 쉽게 종교적 우울에 빠지게 하였다. 반면에 웨슬리의 죄에 대한 미묘한 구분은 신자로 하여금 보다 긍정적으로 구원의 순례에 대한 과정을 지향할 수 있게 하였다. 특히 웨슬리의 죄 이해의 관점에 의하면 하나님의 자녀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지속적인 속죄의 보혈과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 신자는 진정한 의미의 성도가 되며 지상에서 주님의 참된 자녀로 살아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무의지적인 죄 또한 하나님의 완전한 율법에서 보자면 빗나간 것이기에 그리스도의 대속의 보혈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며, 온전한 사랑을 경험한 사람도 온전한 성화의 은총을 상실 할 수 있기에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걸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웨슬리는 초대교부, 경건주의와 신비 영성가들의 영향으로 평생을 죄와 유혹과 싸움하는 자기 검증의 삶을 살았다. 하이젠레이터가 지적한 것처럼 옥스퍼드 시절의 웨슬리에게 있어서 로욜라의 이그나시우스의 영신수련과 같은 자기 검증의 영적 분투가 그의 삶에 중심이었다. 이런 영적인 분투가 비단 초기 웨슬리만의 특징은 아니었다. 웨슬리는 평생을 통해 자신의 목회와 삶의 지표로 삼았던 ‘참 기독교’를 찾는 여정에서 자기 검증적인 영성 생활의 중요함을 주장하였고 자신의 삶과 공동체에서의 적용을 통해 실제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러한 목적으로 웨슬리는 자신의 감리교 운동에서 은총의 수단을 끊임없이 강조하였다. 이점이 지금의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바는 실로 크다 할 수 있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1970년대와 1980년대의 갑작스런 양적 증가와 더불어 질적인 하락의 현실에 처해 있으며 아직까지 내세적이며 동시에 현실에서의 기복적 신앙 강조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삼풍사건, 옷로비 의혹 사건, 근래의 일련의 신용금고 사건들의 중심에는 항상 소위 교인이라는 사람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현재 한국 기독교인들의 영적 상태를 알려준다. 현재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자기 검증 없이 단지 내세적이고 기복 중심적인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의 한국교회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자기 검증 가운데서 내적 죄악성 및 외적 유혹과의 싸움을 중시하는 초대 교회의 수도 운동과 중세의 신비 영성, 종교 개혁 후의 경건주의 운동 그리고 웨슬리의 준 수도주의(semi-monastic)와 같은 교회 전통의 회복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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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breviation
.Ⅰ. 서론 A. 문제제기와 연구목적 기독교의 복음은 인간을 향해 있다. 따라서, 본질상 이 복된 소식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이해, 특히 인간의 실존적인 현실에 대한 이해가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 현실에 대한 기독교의 전통적인 견해는 인간의 자연적 상황을 하나님과 분리되어 악과 타락의 상황 가운데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구원받지 못한 상황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 전통은 이러한 현 상태를 끈질기게 ‘죄’라는 단어로 표현하였다. 기독교는 인간을 죄인이라고 부른다. 이 표현만큼 인간의 현 상황을 비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말은 드물다. 이와 같은 이유로 죄와 악에 관한 교리는 기독교 교리 속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삼위일체와 기독론에 포함된 구원론에 비해서 죄에 대한 교리는 긍정적으로 언급된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구원론은 인간의 현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악과 죄에 대한 책임을 확실하게 포함한다. 앞에서 살펴 본 것처럼 구원론과 죄의 개념 사이에는 조직적인 관계가 있다. 따라서 어느 개념도 다른 개념과 완전히 분리되어 공식화 될 수 없다.1) 구원론과 악과 죄의 문제는 빛과 어둠,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이다. 따라서 죄에 대한 이해의 차이가 구원론의 차이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과언은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 구원 이해에 있어서 죄에 대한 이해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죄와 악의 문제가 성서 속에서 다양하게 표현되고 다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구약성서나 신약성서는 악과 죄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성서는 죄에 대한 정의보다는 죄의 극복과 치유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2)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과 죄의 문제에 있어서 그것들이 가지는 불순종으로 인한 하나님과의 관계성의 상실이자 신성한 형상에 대한 모독으로서의 본질적 특성이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어거스틴과 종교 개혁가들을 위시한 서방 전통의 신학은 인간이 완전한 상태로 창조되었는데,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 인간의 타락이 오고 자기 결정의 손실이 왔다고 보았다. 그리고 모든 인간에게 이러한 원죄의 죄책이 유전된다고 보았다. 타락의 상태는 보편적이기에 서방 전통의 신학은 하나님의 은총과 분리되어진 죄책과 타락한 인간의 무능력함을 강조하면서 기본적으로 타락에 근거한 인간이해를 하고 있다.3) 인간이 완전한 상태로 창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게 불순종함으로서 죄를 지었다. 인간은 법정적인 의미에서 하나님께 범죄했다. 따라서 범죄한 인간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범죄에 대한 용서이다. 그러나 서방 기독교는 이 점만을 너무 강조하였기에 서방 신학적인 전통에서 구원은 칭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서방 전통의 신학과는 다르게 동방 신학적 전통의 인간학은 인간의 원창조의 상태를 불완전하지만 순결하며 동시에 하나님과의 연합으로 운명지어졌다고 보았다. 타락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고자 한 인간의 행위에 대한 결과에 기인했다고 보는 점에 있어서 동방 신학적 전통은 서방 신학적 전통과 그 견해를 같이하지만, 타락의 결과는 다르게 이해했다. 그들은 죄의 유전성을 거부했다. 그리고 타락의 우선적 결과가 죽음과 인간 삶의 타락이지만, 타락 후에도 인간에게 응답 가능성이 자연적으로 남아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죄와 타락의 결과를 일종의 치유되어야할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이러한 동방 신학 전통의 죄 이해의 경향의 원인은 원창조시의 인간을 불완전한 존재로 보았기 때문이며, 동방 신학적 전통의 관심은 은총이나 죄보다는 창조와 기독론에 더욱 치중하여 자신들의 인간 이해를 전개시켰기 때문이다.4)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죄의 치유와 신화(Likeness of God)의 추구였다. 이렇게 서방과 동방의 인간과 죄에 대한 다른 이해는 구원론의 논의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를 야기했다. 현대에 와서 죄와 속죄에 대한 논의는 법정적인 개념과 치유적인 개념의 조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논의는 전통적으로 법정적인 개념을 강조한 서방 기독교 신학적 전통과 치유적인 개념을 강조한 동방 기독교적인 전통에 대한 통찰에 기인하고 있다. 그런데 단지 한 측면만을 극단적으로 강조할 때에는 문제가 발생한다. 법정적인 면만을 강조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칭함을 받은 후 인간 실존의 문제인 인간의 죄의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그와는 반대로 치유적인 면만을 강조한다면, 인간의 실존의 문제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해결책을 줄 수 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성에 많은 문제를 초래하게 된다. 그러하기에 죄와 속죄의 법정적인 면과 치유적인 면의 조화는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웨슬리는 죄와 속죄의 법정적 특성과 치유적 특성의 조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었다. 그는 인간 본성과 인간 문제에서 동방 신학의 전통의 치유적인 관심사에 우선성을 두고, 근원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서방의 법정적인 이해를 통합하고자 노력하였다.5) 이러한 노력이 가능했던 이유는 웨슬리가 신학과 삶, 목회에 있어서 끊임없이 은총과 기독자의 삶의 문제의 관계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웨슬리에게 있어서 인간 현실이해인 죄에 대한 이해와 죄의 문제의 해결은 그가 평생을 걸쳐 고민했던 문제였다. 그리고 그러한 고민의 결과로 보다 세밀한 구원론의 형성이 가능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대부분의 학자들은 웨슬리의 죄 이해를 자신의 연구의 기초 자료로서 연구했을 뿐이며 그리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단지 브라이언트(Barry E. Bryant)만이 자신의 학위논문으로 죄의 문제에 집중하여『죄에 대한 웨슬리의 교리』(John Wesley's Doctrine of Sin)6)를 썼다. 그러나 그의 책은 출판되지 않았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까지의 웨슬리의 죄 이해에 관한 연구의 결과물들은 거의 모두가 한 책의 소주제였다. 그리고 그들의 연구 결과물 대부분은 웨슬리의 삶과 신학의 여정 속에서 고찰되어 진 것들이라기 보다는 어떤 특정 시대의 특정한 작품 속에서 저자들이 자신들의 견해에 대한 증빙자료서 첨부하였다. 와일리와 컬버슨(Wiley & Culbertson)은『기독교 신학 입문』(Introduction to Christian Theology)에서 유전의 방법에 있어서 웨슬리가 생물학적인 전이에 의한 ‘유전학적 모드(Genetic Mode)’를 따르고 있다7)고 결론을 내리고 있는데 이것은 깊은 역사적 성찰이 부족한 결론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원죄가 어떻게 유전되는가?에 대한 웨슬리의 견해가 시기에 따라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결론이기 때문이다. 원죄의 유전 방법에 있어서 웨슬리는 생물학적 유전설에서 영혼 창조설적인 견해로 그리고 말년에는 영혼 전이론적인 견해로 바뀌어 가고 있다. 생스터(W. E. Sangster)가『완전에 이르는 길』(The Path to Perfection)에서 웨슬리의 완전 개념을 설명하기 전에 웨슬리의 죄에 대한 개념을 설명하고는 있지만 웨슬리의 1차 자료에 대한 깊은 조사 없이 너무 피상적으로 웨슬리의 죄 이해를 설명하고 있다. 특히 웨슬리가 죄악성에 대한 규정을 하지 않고 단지 자발적인 위반으로서의 죄에 대한 정의만을 시도하였다고 본 점과 웨슬리가 무의식적인 죄(unconscious sin)를 거부하고 있다고 본 사실8)에서 이 점은 잘 드러난다. 웨슬리는 분명히 죄에 대한 복잡한 논의를 한다. 당시 웨슬리가 이러한 죄에 대한 복잡한 논의를 한 이유는 그의 부흥운동을 위협하였던 칼빈주의적인 율법폐기론자들과 웨슬리의 신도회 내의 인물이었던 토마스 멕스필드(Thomas Maxfield)와 조지 벨(George Bell)의 극단적인 열광주의를 경계하기 위해서였다. 웨슬리는 무의식적인 죄(unconscious sin)인 무의지적 죄(unvoluntary sin)조차도 그리스도의 속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콕스(Leo G. Cox)는『완전에 대한 웨슬리의 개념』(John Wesley's Concept of Perfection)에서 비교적 웨슬리의 죄 이해를 명확하게 분석하고 있지만 그 역시 역사적인 상황과의 대화가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카터(Charles W. Carter)는 자신이 편집한『현대 웨슬리 신학Ⅰ』(A Contemporary Wesleyan Theology, volⅠ)에서 죄론을 썼다. 그는 웨슬리의 상황에 대한 역사적인 고찰 없이 조직신학적인 입장에서 웨슬리의 죄론에서 원죄에 대한 이해는 다루었지만 웨슬리가 이해한 죄의 특성과 죄의 종류 및 구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9) 매덕스(Maddox) 또한『응답 가능한 은총』(Responsible Grace)에서 웨슬리의 죄 이해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과 문제점을 제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연구성과는 아니다.10) 따라서 본 논문에서 필자는 철저한 역사적 상황과의 대화를 통해서 웨슬리의 죄 이해가 어떠한 변화를 겪고 있는지를 살핀 후에 웨슬리의 복잡하고 세밀한 죄 이해에 대한 분석을 할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웨슬리가 어떠한 인간 이해의 바탕 속에서 그의 구원론을 이끌어 냈는지에 대한 고찰을 수행할 것이다. 이 작업은 구원 이해의 필수조건인 죄 이해를 웨슬리가 어떠한 과정 속에서 정립하였는지를 고찰함으로서 보다 분명한 웨슬리의 구원론의 특징, 즉 은총과 죄의 관계를 보다 분명히 알게 할 것이다. B. 연구 방법과 범위 및 구조 웨슬리에 대해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이들과 과거 일부의 학자들은 ‘웨슬리는 신학자가 아니라 설교가이며 부흥운동가이다’라는 견해에 대해서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과거에 웨슬리를 연구하던 일부의 학자들은 ‘그는 참(real) 신학자가 아니었기에 그렇다’라는 변증적인 논조로 그의 신학적 개념들을 연구하곤 했다. 그러나, 웨슬리는 분명 당대에 신학에 있어서 가장 잘 훈련된 사람 중에 하나였다. 그는 옥스퍼드의 장학생이었고, 오늘날에 신학 석사(Master of Divinity) 학위에 해당하는 신학 학사 학위(Bachelor of Divinity degree)를 받았으며, 약관 24세의 나이에 옥스퍼드 대학교의 링컨 대학의 연구원(Fellow)이 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웨슬리는 평생을 정숙주의 경향의 모라비안, 율법폐기론적 경향의 칼빈주의자들과 극단적 열광주의자들과 논쟁을 했다는 것에 주의를 해야만 한다. 확고한 신학적 기초가 없었더라면 웨슬리는 이 모든 것을 수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확실히 웨슬리는 현장과의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그리고 그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에 충실한 신학자요 복음전도자였다. 따라서, 웨슬리의 신학이 엄청난 역동성을 가진다는 것은 분명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 개인의 신학적인 사유는 일종의 성장하는 유기체와 같다. 어떠한 환경 속에서 어떤 영향을 받으며 자라났는지가 그 유기체를 이해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듯이, 한 개인의 신학적인 사유를 온전하게 고찰하기 위해서는 그 신학적 사유의 성립의 동인이 무엇인가? 라는 역사적인 고찰이 동시에 수행되어져야만 한다. 그리고 그러한 역사적인 상황과 그 상황 속에서의 결과물인 작품(Text)을 통해 보다 쉽게 그 인물과 그의 사상에 접근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역사적 고찰을 통한 보다 정확하고 분명한 접근은 지금의 현 상황에 그 연구 결과물의 적용을 용이하게 한다. 따라서, 이런 기본적인 입장에서 필자는 웨슬리의 죄에 대한 논의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그러나, 인간의 죄에 대한 웨슬리의 논의들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다양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에 그의 일차자료를 통한 죄 문제에 대한 접근은 다음과 같은 요소들에 주의를 하면서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그 논의가 웨슬리의 신학적인 발전 과정의 어떠한 시기에 대두되었는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두 번째는 논의의 근거를 고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속죄에 대한 그의 법정적인 관심과 치유적인 관심의 통합으로부터 발생하는 긴장 관계들을 고려해야 한다.11) 이런 전제들을 염두에 두고 필자는 죄 이해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전통적인 죄 이해들을 분석할 것이다. 다음으로 웨슬리가 그에게 영향을 준 전통들을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종합했으며 성서를 해석하고 자신의 논지를 전개했는지를 역사적 상황과 그의 작품들의 상관관계를 통해서 고찰할 것이다. 따라서, 이 연구의 수행을 위해 전통적인 죄 이해들을 살펴보고, 각 시기별로 웨슬리의 설교와 논문, 편지, 에세이 그리고 성서주해를 역사적인 상황과 함께 비교 분석할 것이다. 이러한 비교 분석 후에 웨슬리의 죄에 대한 최종적인 이해를 고찰할 것이다. 그리고, 이 결과물을 가지고 웨슬리의 죄 이해가 그의 신학에서 점하는 위치로서 죄로부터의 승리를 위해 어떠한 논의와 목회적인 실천을 하고 있는가를 살펴 볼 것이다. 끝으로, 웨슬리의 인간 현실과 문제에 대한 논의가 그의 신학과 삶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숙고함으로서 본 논문을 마칠 것이다. 이러한 목적 하에서 본 논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 부분은 웨슬리의 죄 이해에 대한 역사적인 고찰 부분이다. 두 번째 부분은 앞부분에서 한 역사적 고찰을 근거로 웨슬리의 죄에 대한 논의와 죄라는 인간 현실문제를 그가 어떠한 구원이해로 풀어가고 있는지 살펴 볼 것이다. 첫 번째 역사적 고찰에 해당하는 부분은 Ⅱ장과 Ⅲ장이다. Ⅱ장은 전통적인 죄 이해가 논의될 것이다. 웨슬리는 영국 국교회의 사제이자 신약학자였다. 따라서 당시 웨슬리의 삶의 자리였던 영국 국교회의 전통과 신약성서의 죄 이해가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즉 성서의 죄 이해와 영국 국교회의 죄 이해가 웨슬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다른 전통들, 즉 동방 교부, 서방 교부, 로마 카톨릭, 종교 개혁의 죄 이해에 대한 고찰 후에 각각의 전통들과 웨슬리의 죄 이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 보고자 한다. Ⅲ장에서는 웨슬리의 죄 이해의 변화과정에 대하여 역사적인 고찰을 할 것이다. 웨슬리는 목회적이고 실천적인 관점에서 평생을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과 그 열매인 ‘거룩한 삶’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를 고민하였다. 그러므로 우선적으로 죄 이해 변화에 대한 3기의 시기 구분에 대한 역사적 근거를 고찰한 후에 ‘거룩한 삶’ 중심의 초기 웨슬리의 죄 이해를 살펴 볼 것이다. 그리고 나서 루터 전통의 모라비안과의 만남을 통해 접하게 된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에 대한 강한 충격 속에 있었던 중기 웨슬리가 어떻게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과 ‘거룩한 삶’의 긴장관계인 신자 안에 남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는가를 살펴 볼 것이다. 신자 안에 남은 죄의 문제는 중기 웨슬리가 모라비안의 정숙주의와 칼빈주의자들의 율법폐기론적 경향, 그리고 웨슬리 신도회 내부의 극단적 열광주의자들과 어떻게 논쟁했는지를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후기의 웨슬리는 인간 현실의 제반 문제인 죄의 문제를 통찰력 깊은 은총 이해를 통해 해결하고 있다. 따라서 그가 어떠한 방식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지 고찰할 것이다. 두 번째 부분은 Ⅳ장과 Ⅴ장으로서 일종의 조직신학적인 접근이다. 앞 부분에서 논의되어진 역사적 고찰을 근거로 Ⅳ장에서는 먼저 웨슬리가 죄의 문제를 논의할 때 악의 기원에 대해 어떠한 이해를 가지고 있으며 원죄에 대해서는 어떻게 강조하였고 원죄 이해에 있어서 그 만의 독특성이 무엇인지 살펴 볼 것이다. 두 번째로는 웨슬리가 자신의 실천적이고 목회적인 상황 속에서 죄 이해와 죄에 대한 구분을 어떻게 시도했는지 살펴 볼 것이다. 웨슬리는 상당히 복잡하고 중첩되는 죄 이해를 했다. 그리고 그의 죄의 구분은 독특한 부분으로서 죄의 구분에 있어서 웨슬리와 종교 개혁의 죄 이해와의 차이는 현실 세상에서의 완전에 대한 논의에 대한 서로 다른 결론을 가능하게 한다. 마지막으로는 죄와 자유의지, 그리고 은총이 어떠한 역동적 관계에 있는지를 살펴 볼 것이다. Ⅴ장은 웨슬리의 죄 이해를 기반으로 그의 독특한 구원 이해를 살펴 볼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반드시 인간 현실의 제반 문제들과의 상관관계 속에서 웨슬리의 구원론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본 장에서는 그의 죄와 은총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선재적 은총, 확신케 하는 은총, 의인화의 은총, 거듭남의 은총, 성화의 은총, 온전한 성화의 은총, 그리고 영화의 은총이 어떻게 인간 현실에서 작용하는지를 고찰할 것이다. 즉 웨슬리가 인간 현실로서의 죄 이해와 그와 관련된 은총 이해 속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보다 세밀한 구원 이해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A. 성서의 죄 이해 악과 죄의 문제는 성서에서 매우 다양하게 표현되고 다루어진다. 성서는 악 일반과 도덕적인 악과 같은 죄에 대해서 분명한 정의를 내리지 않고 있다. 성서는 죄에 대한 정의보다 죄의 극복과 치유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성서 속에서 죄에 대한 개념은 발전과정을 겪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구약성서로부터 발전한 죄의 개념이 신약성서에서는 어떠한 방식으로 확정되었는지를 살펴보아야 성서의 죄에 대한 이해를 바르게 할 수 있다. 구약성서에서 죄 이해의 발전 단계는 다음과 같다. 우선 구약성서에서 죄는 내적인 형태가 아닌 외적인 형태로 인간에게 다가왔다.(불순종; 창 3장) 즉 하나의 행동으로 취급되었다.12) 우리의 첫 부모의 죄가 확실히 외적이 되기 전에 내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행위가 공개 될 때까지 벌을 받지는 않았다. 확실히 죄는 법이나 행동 강령을 어기는 것으로 보여졌다. 히브리적 개념은 우선적으로 죄를 잘못의 공개 행위로 규정한다. 이것은 특히 죄를 의미하는 단어 “Päscha(반항)”와 죄를 의미하는 다른 빈번한 개념들인 “Chet(위반, 형식적인 죄, 계율 위반)”와 “Avon(범죄, 특히 옳지 않은 마음가짐에서부터 생기는 벌받을 죄)”에서 잘 표현되고 있다.13) 하나의 행위로서 죄의 객관적인 관점은 레위기 법전 속에서도 보여진다. 무지의 죄들조차 율법과 대치되는 행동인 한에서는 죄(레 4:13,14)가 되었다. 비록 그것들이 무지의 죄들이라고 할지라도 그것들은 여전히 죄악이며, 용서를 필요로 한다. 특히 레 5장 17절14)에서 드러나는 죄의 개념은 죄의 윤리적인 개념이 결여되어 지극히 법률적이고 형식적이다. 여기의 중심 개념은 자유 의지가 아닌 하나의 법률이다. 두 번째로 신명기 법전은 외적인 행위들 속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내적인 죄들의 개념이 매우 서서히 발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명기 법전은 단지 자기의 의지로 살인을 한 자만이 죄책을 지게 하였다. 의지에 대한 강조로 동기는 행동과 분리되었다. 그리고 내적 죄의 개념을 가장 잘 나타내주고 있는 것이 바로 십계명이다. 십계명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내적 죄에 대한 개념을 통해서 마음의 타락을 역설했던 예레미아와 에스겔과 같은 사람들의 증언들(렘 17:9)의 토대를 가르치셨고 마련하셨다.15) 세 번째의 죄의 발전 단계로서의 계약의 개념은 죄의 개념의 또 다른 발전이었다. 하나님과의 계약적 약속들은 모두 인간의 순종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었다.(민 5:30-31) 계약의 개념 속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율법에 있다기보다는 인격적인 관계 속에 있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과의 계약관계 속에 있고 죄는 계약의 파기이다. 하나님 혹은 계약 공동체의 다른 사람들에게 범한 죄는 모두 윤리적으로 책임져야 할만한 행동들이다. 사회적 죄와 종교적인 죄 모두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다. 한 인격으로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계약에 근거한 것이다. 죄는 율법을 범하는 것 이상의 것으로 그 법을 수여한 분으로부터 떨어져나감을 의미한다. 또한 죄의 윤리적인 개념은 구약성서에서 지배적이다.(잠 4:23) 개인적 책임성과 마음의 동기가 강조되었기에 외적으로는 율법을 지킬 때에조차도 죄를 지을 수 있다. 네 번째의 발전 단계로 죄악된 본성의 개념들로서의 죄가 구약성서에서 나타나고 있다. 시편기자는 “실로, 나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죄인이었고, 어머니의 태 속에 있을 때부터 죄인이었습니다”(시 51편 5절)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것은 죄를 외적 죄를 야기하는 내적 원칙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창조 시에 부여받은 하나님의 형상의 상실 혹은 손상과 관련이 있다. 구약성서에서 나타나는 죄의 몇 가지 특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죄는 보편적이다.16) 두 번째 특징으로 죄는 항상 하나님과의 연합을 파괴한다.17) 세 번째로 죄는 희망이 없는 상태로 인간을 몰고 간다.18) 네 번째 특징으로 죄는 인간의 인간성(humanity)과 육체에 내재적인 것이 아니다. 인간의 유한성이 죄는 아니다.19) 구약의 죄의 개념은 비록 꾸준하지는 않지만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신약성서는 구약의 죄의 개념들을 보완하고 있다. 신약성서에서도 죄는 불순종으로 파악되었다.(롬 5,9) 이러한 불순종은 단지 하나님의 공의와 율법에 대적하는 것만이 아니고 그것을 넘어서 하나님에게 직접 대적하는 것이다.20) 신약성서에 죄에 대해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는 하마르티아(ἁμαρτια)와 아노미아(ἀυομία)이다.21) 하마르티아(ἁμαρτια)는 신약성서 특히 로마서, 히브리서, 요한 서신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죄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 단어가 신약 성서에서 사용되어지는 몇 가지 용법 가운데 하나는 “행위로서의 죄가 아닌 죄의 특성으로 고려되어지는 죄”로서의 악의 원칙이다. 아노미아는 죄악행위(iniquity)를 의미한다. 기본적으로 아노미아는 의지적이든 무지로부터 기인했던지 간에 무법(lawlessness)을 의미한다. 롬 6장 19절에서 아노미아는 “의(δικαιοσύνη)”와 “성결(ἁϒιασμόν)”의 반대어이다. 이 두 단어들(하마르티아와 아노미아)로부터 죄에 대한 두 가지 이론이 나온다. 하나는 죄에 대해 웨슬리가 선호하는 정의인 “알려진 율법에 대한 의지적인 위반”(ἀυομία)이고 다른 하나는 칼빈이 선호하는 “하나님의 완전 법에 비추어 보았을 때의 결점”(ἁμαρτια)으로서의 죄 이해이다.22) 신약성서의 다양성으로 인해서 실제적으로 신약성서에서의 이 용어들은 그리 엄격하게 사용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그 사용에 있어서 매우 다양하고 유동적이다. 예수는 마음의 태도를 강조했다.(마5:8) 그는 바리새인보다 세리와 창녀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마21:31) 죄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죄에 대한 법적 개념의 확실성이 구약성서에서 분명히 드러난다면, 신약은 그것들을 복음의 정신에서 해석한다. 요한 복음 4장 17절에서 태만의 죄는 악한 의도가 없으면 악이 아니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며 요한 복음 9장 41절에서도 바리세인의 죄는 그들의 자랑과 비례하여 선언되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책임성이 없는 죄는 없다. 그런 까닭에 하마르티아에서 기인한 무지는 용서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의지적인 태만은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다.(히 2:3) 이러한 까닭에 결점과 거리가 먼 생각조차도 정죄를 면할 수 있는 것이다. 완전이 결점으로부터의 자유와 지식의 흠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면 그와 같은 기독자의 완전이란 있을 수 없다. 의지와 책임성과 동떨어진 죄악된 행위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특별히 바울의 저작에는 죄의 구체적인 행동들뿐만 아니라 죄의 원칙으로서의 죄악성에 대한 인식이 있다. 이러한 죄의 보편화는 바울 서신에서 특별히 ‘육욕의 사람(the carnal mind)’, ‘옛 사람(old man)’, ‘죄의 육체(body of sin)’라고 표현된다. 그리고 어거스틴에게 있어서는 ‘유전된 부패성(inherited depravity)’의 개념으로 표현된다.23) 따라서 바울의 언어는 죄와 육체를 동일하게 보며 성결을 본질적으로 육체의 정욕에 대한 정복이라고 보는 관점에 대해서 부분적으로 책임이 있다.24) 신자의 삶 속에서의 죄에 대한 물음은 로마서에서 가장 잘 분석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로마서는 성화에 대한 논의가 중심이다. 1장부터 5장까지 바울은 신앙 의인화를 이야기한다. 6장부터 12장에서 바울은 신자의 성화를 이야기한다. 그 논의는 율법 폐기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시작한다.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여전히 죄 가운데 머물러 있어야 하겠습니까?”(롬 6장1절). 6장과 8장에서 바울은 외적인 죄에 대한 승리를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 외적인 죄에 대한 승리는 기독자의 삶의 궁극적인 목표라기보다는 그 삶에 있어서 가장 작은 부분이다. 세례 예식에 의해서 신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내지고 죄에 대하여 죽게 된다. 그는 믿음으로 영적인 부활이 실현되어 육체적인 부활에 참여하여 살게 된다.(골 3장 1절) 이것은 바울이 기독자는 죄를 짓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을 의미하지도 세례가 죄악성을 파괴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신자들은 죄를 지속할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죄를 지속해서도 안되며 할 필요도 없다.(롬6장 2,3,9,11,14,18) ‘죄악된 육’의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개념의 허용은 지상에서의 완전의 가능성을 무로 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이 이것을 가르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주 롬 7장 18절을 언급한다. “나는 내 속에, 곧 내 육신 속에 선한 것이 깃들어 있지 안다는 것을 압니다.” 악이 육체와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면 그것은 단지 억눌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이 구별적이고 분리되어 진 것이라면, 이 세상에서의 죄로부터의 구원은 가능한 것이다. 바울의 몸에 대한 입장은 중립적이다. 왜냐하면 몸은 선하지는 않지만 필연적으로 악을 따르지도 않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율법에 의해 죄를 알 수 있다고 했다.(롬 3:20; 5:20; 7:7) 이것은 율법 이전에 죄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죄악성은 보편적으로 모든 인간에게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율법을 통해서 인식되어진다. 그러므로 단지 인간이 하나님의 완전함에 부족하기 때문에 죄책을 가진다는 것은 성경에 반하는 주장이며 인간이기에 인간의 모든 행위가 죄악 되다고 말하는 것은 죄의 성서적 개념을 손상시키는 것이다. 인간의 연약성들은 죄가 아니고 성령이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신다.(롬 8:26) 따라서, 인간성을 죄악이 넘치는 것 자체로 말하는 것은 비성서적이다. 바울은 육(σάρξ)을 이따금씩 몸(σομα)과 동의어로 쓰지만25) 일반적으로 바울이 몸을 물리적인 의미보다 도덕적인 의미에서 사용하였다는 것에 주의한다면 이 세상에서 죄로부터의 정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몸은 하나님 영을 거스르는 것으로 표현되어 질 때 윤리적인 의미를 가진다.26) 갈 5장19-23에서 ‘육체의 일’은 ‘성령의 열매’와 반대되는 것이고 물리적인 것보다도 “증오, 시기, 분노, 내분, 분열, 이단, 시기”등과 같은 순전히 도덕적인 몇 가지 범주를 포함한다. ‘다툼과 시기’는 단념해야할 육체의 일들이다.(롬 13:13, 14) 고전 3장 3절에서 바울은 그의 편지의 수신인들을 그들의 ‘시기와 다툼’ 때문에 ‘육적(carnal)’이라고 부른다. 고후 1장 12절에서 세상의 지혜(ἐν σοφία σαρκικῇ)는 ‘하나님의 성결과 신실하심’에 대한 반대어이다. 바울의 어휘 사용의 이러한 용법은 “바울이 죄를 몸과 불가분하게 결합시켰다는 관점에 대한 명백한 반대”27)를 의미한다. 로마서 7장에서 바울은 육(σάρξ)을 마음(νους)과 대조하고 8장에서는 성령과 대조한다. 그러므로 육(σάρξ)은 마음과 성령의 적이다. 이것은 몸이 성령의 전임을 바울의 강조와 더불어 몸은 본능적으로 죄악된 것이 아니라는 부가적인 증거를 제공한다. 이점은 6장에 있는 바울의 갈망에 근거해 있다. 이 갈망은 몸의 각 지체가 죄의 도구로서가 아니라 의의 도구로서 하나님께 복종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점은 롬 12장 1절과 2절에 있는 전인이 살아있는 희생제가 되어야 한다는 그의 권고에서 알 수 있다. 그러한 까닭에 몸은 서로 대립되는 두 가지 세력, 즉 ‘육의 법’과 ‘성령의 법’에 주체가 되는 것으로 중립적인 특성을 가진다.(갈 5:16-25) 다른 한편으로 육(σάρξ)은 태어날 때부터 있는 ‘모든 악의 근원’이며 악의 자리로서 성령을 거스르는 일종의 힘이고 동시에 거듭나지 못한 자의 본성을 의미한다. ‘육의 마음’은 기독자의 삶과 양립되는 것이다.(롬 8: 7, 8) 또한 바울은 죄를 자연적인 몸과 결부시키지 않았다. 따라서 바울의 죄에 대한 개념은 이 세상에서의 죄로부터 구원을 가능하게 한다. 바울의 영육의 이원론은 헬레니즘적이기보다는 히브리적이다. 육에 대한 바울의 용법은 육을 준 인격적(quasi-personal)힘인 악에의 경향성으로 본 유대적인 개념과 유사하다. 이 육은 인간이 끊임없이 싸워야할 ‘필요악’이다. 단지 다른 것이라면 바울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세상에서 이 육이 극복되어질 수 있다고 본 점이다. 그런 까닭에 바울에게 있어서 ‘육’은 죄가 아니라 죄의 통로이다.28) 이 죄의 문제의 해결은 ‘자기 초월’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에로의 도약으로 가능해진다.(엡 2장 8절) 그리스도 안에 믿음을 강조함으로서 바울은 속죄를 통한 정화와 회개를 주장한다. 은총에 의해 기독자가 자만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죄에 대한 승리가 가능하다. 승리는 그리스도 안의 믿음으로부터 온다. 죄의 본질에 대한 바울의 개념은 다음과 같이 요약되어질 수 있다. 첫째, 죄는 낯설고 분리되어질 수 있는 요소로 육에 거한다. 둘째, 이 내적 죄는 의인화되어진 사람에게도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이 내적 죄는 성령이 거주함으로서 인간 본성으로부터 분리되어질 수 있고 분리되어져야 한다.29) 롬 6장 6절 “죄의 몸을 멸하기 위하여서”라는 어구에서 과연 죄는 파괴되어지고 극복되어지는가? 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어진다. 여기에서 카타르게오(καταρϒέω)라는 동사와 ‘죄의 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여기서 쓰인 카타르게테(καταρϒθῇ)의 시제는 3인칭 단수 수동 과거형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죄의 몸을 멸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뜻이다. 여기서 ‘죄의 몸’은 물리적인 의미가 아닌 비유적 의미이다. 즉 개별적인 행동으로서가 아닌 보편적인 원칙으로서 이해되어져야 한다. 죄들이 용서되어질 뿐만 아니라 죄악성이 파괴되어진다. 죄로부터의 구원은 죄책으로부터의 법정적인 구원과 죄의 힘으로부터의 주관적 구원의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처럼, 이 준 인격적(quasi-personal)힘인 악에의 경향성 또한 십자가에 못 박혀지고 파괴되어져서 기독자는 그의 모든 것을 주님께 바치게 될 수 있다. 바울은 개혁과 궁극적인 변화가 없는 용서를 소망하지는 않았다. 성화는 율법폐기주의에 대한 그의 보호장치였다. 죄의 지배력은 성령에 의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기독자의 삶 속에서 소멸되어진다. 이러한 의미에서 ‘죄의 몸’과 관련되어 성화의 과정은 현실 세계에서 완전히 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동사의 시제에 의해서, 전체 단락의 의미에서, 승리는 단지 죽음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어떠한 암시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서 알 수 있다. 죄에 대한 인류적이고 일원론적인 사회적 연대성에 대한 바울의 관점과 유사하게 요한 1서에서는 죄에 대한 원칙과 실제가 잘 묘사되어 있다. 생물학적인 용어로 죄는 요한 1서 3장 9절과 요한복음 8장 39-44절에서 암시되어진다. 여기에서 죄는 선천적인 악의 원칙으로 묘사되어진다. 죄는 무해한 단점이나 단순한 연약성은 아니다. 죄는 불순종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께서 죄를 멸하려 오셨기 때문에(요 1서 3:5, 마 1:21) 그 안에 거하는 자는 죄를 범할 수 없다. 왜냐하면 죄는 그의 본성과 대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요 1서 2:29, 2:6) 이것은 요한 1서가 ‘죄없는 완전’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요한 1서에서 빛 속에서 거한다는 것의 의미는 죄의 부정이라기 보다는 죄의 인식과 죄로부터의 정화이다. 과거의 죄에 대한 기억과 현재의 죄에 대한 가능성이 정화되어진 사람들조차도 ‘우리는 죄가 없습니다.’(요 1서 1:8,10)라고 말하지 못하게 한다. 요한 1서는 ‘정결(cleansing)’과 ‘정화(purification)’가 ‘완전 사랑(perfect love)’를 앞선다고 가르친다.(4:12, 18) 성서의 죄 이해는 결코 자의적이며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죄의 성서적 개념은 하나님과의 잘못된 관계이다. 사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왜곡시키는 생각, 행동, 혹은 기질 속에 있는 어떤 것이 죄이다. 하나님과의 이런 왜곡된 관계는 자의적 범죄의 결과이기도하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은총 속에서의 지속적 성장의 실패의 결과이기도 하다.30) 바울과 요한과 같은 신약성서의 저자는 죄의 행위와 구별되는 죄악성이 있음을 강조하였다. 이 죄악성은 신자 안에 남는다. 그리고 죄악성의 개념이 온전한 성화를 가능하게 하며 필요하게 한다. 의인화가 죄의 결과와 관련이 있는 것처럼 성화는 죄의 근원 즉 인간 본성의 오염과 관련이 있다. 인간의 본성의 죄악성보다 하나님의 은총이 더욱 광대하기에 이 세상에서 온전히 성화를 통해 인간의 ‘하나님 형상’은 온전히 회복되어 질 수 있다. 신약성서 전반에 걸쳐서 특별히 바울에게 있어서 관심은 인간의 본성을 관통하고 있는 죄의 뿌리 깊음과 동시에 은총이 제공하는 죄의 치료약에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성서에서 말하는 죄에는 두 가지 기본 개념이 있다. 첫 번째 개념은 하나님의 알려진 의지에 대한 자의적인 위반으로서의 죄의 개념으로 종종 죄의 윤리적인 면이라고 볼 수 있는 객관적이고 법정적인 특성이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형상의 결여 혹은 손상을 강조하는 죄의 주관적이고 치유적인 특성의 개념이다. 이 두 개념 다 성서적인 개념으로써, 진리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각각의 관점은 긴장관계 속에 있기에 한쪽 면만을 극단으로 몰고 간다면 오류에 빠지기 쉽다. 이것은 교회의 역사를 통해 드러난 사실이다. 서방 교부 전통과 종교 개혁가들은 속죄에 있어서 법정적인 면만을 강조하였고, 동방 교부 전통과 일부 중세 카톨릭의 신학자들은 속죄에 있어서 치유적인 면만을 강조한 반면에 웨슬리는 성서가 말하는 죄의 개념에 대한 두 가지 측면을 적절히 통합시키고자 노력을 하였으며 이점은 그의 성서 이해의 탁월성을 반증하는 예라고 할 수 있다. B. 동방 교부의 죄 이해 초기의 동방 교부들은 대체적으로 아담과 이브를 어린아이로 묘사했다. 특히 이레니우스가 이러한 주장의 대표주자였다. 그는 아담과 하와를 생각이 순진하고 어린이와 같았고 완전하지 않았으며 단지 완전으로 의도되었다고 보았다.31) 아담에게는 자유 선택의 능력이 있었지만 은혜에 대한 응답과 하나님의 뜻에 대한 복종이라는 긴 과정을 거쳐야만 창조주께 한층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의도되었다. 그러나 이 의도는 처음부터 좌절되었다.32) 인간은 분별력의 부족과 불순종으로 인하여 타락하게 된다.33) 그 결과 이레니우스는 인간이 신적인 ‘형상(image)과 모습(likeness)’34)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마귀의 수중에 떨어지게 되었다고 보았다. 그는 첫 사람의 불순종이 일반적인 죄된 상태와 인류의 죽음을 초래하였고, 그 결과 인류는 악마의 노예상태가 되었다고 보았다. 아다나시우스는 타락이 자기 중심성(self-centeredness)에 의해 촉진되었다고 보았다. 궁극적으로 이런 자기 중심성으로의 타락은 무로의 타락이다. 인간은 무로부터 창조되어진 존재이기에 결국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면 그들은 비존재로 돌아가게 된다.35) 오리겐은 이레니우스와 터툴리안, 클레멘트가 역사적 사실로 인정했던 창세기에 기록된 이야기를 우주적인 신화로 변형시키고 인간적인 죄의 상태의 근원을 초월적인 면으로 고양시킨다. 그리고 그는 우주 이전의 타락설을 주장한다. 그들은 모든 세대 이전에 마귀든지 영혼이든지 천사든지 간에 모두 순수한 지성들(νόες)이었다. 그들 중에 하나인 악마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어서 하나님께 항거하기로 선택하였는데. ... 각자는 자기 죄에 해당되는 운명을 받았다. 영혼들은 그대로 남았다. 이 영혼들은 마귀가 될 만큼 그다지 통탄할 정도로 죄지은 것도 아니고 천사가 될 만큼 용서받을 정도의 사소한 죄를 지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현재의 세상을 만드시고 그 영혼을 육체에다 벌로 속박해 놓으셨다. ... 그는 명백하게 각 영혼을 그 죄에 알맞게 징벌하셨으니 어떤 것은 마귀가 되었고 어떤 것은 영혼이 되었고 어떤 것은 천사장이 되었다.36)
오리겐에게 우주 이전의 타락설은 인간의 상태가 보편적으로 죄의 상태에 있다는 것을 설명해주는 것으로 인생의 다양한 재난과 비극을 설명해 주고 영혼들이 이전의 죄에 대하여 죄책이 있다는 것을 설명해 주는 이론이었다. 그런데 우주 이전의 타락설은 악이 초월적 세계에서 인간 자신들의 선택의 결과이지 어느 첫 사람의 불순종과 상관이 있는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 다만 오리겐에게 아담의 타락 이야기는 인간이 낙원에서 추방되어질 때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히셨다는 것에 주목하여 그 때를 육체의 덧입음에 대한 시점으로 추측한다.37) 따라서, 오리겐에게 있어서 아담의 죄책에 대한 연대성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육체를 악의 원리라고 정죄하는 자들을 반대하고 악은 오직 의지 속에만 있다고 가르친다.38) 카파도키아 학파의 교부들 중에 닛사의 그레고리는 인간 본성에 대한 연구를 “세상에 가장 경이로운 일” 혹은 “우리에게 알려진 어떤 것보다 큰 것”39)이라고 하며 기독교 인간학의 중요성을 주장한 동방 교부였다. 그는 낙원 상태의 인간을 천사적 본성과 같게 되는 이상적인 상태로 변형될 수 있거나 짐승 같은 본성의 상태와 같은 타락한 상태로 손상되어질 수 있었던 잠정적인 상태로 보았다.40) 닛사의 그레고리는 낙원에서의 인간 본성의 복합성 혹은 잠재성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이러한 단어들(남자와 여자)에 의해서 성서는 우리에게 위대하고 숭고한 교리를 알려준다고 생각한다. ... 두 본성(신적인 즉 합리적이고 영적인 본성과 짐승의 비합리적인 본성)은 양극으로서 서로 분리되어진다.”41) 그런데 짐승의 본성 자체를 닛사의 그레고리는 악한 것으로 주장하고 있지는 않았다. 다만 그 본성들은 악도 될 수 있고 선도 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전적으로 이성과 자유의지에 달린 것이었다.42) 여기에서 인간 타락의 원인을 짚어 볼 수 있는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피조되어진 첫 인간의 타락의 원인은 바로 악마의 시기로 인해 초래되어진 첫 인간(아담과 하와)의 자유의지의 오용에 기인한 것이었다. 닛사의 그레고리는 악의 기원을 사탄에 의한 것으로 보았고 첫 인간의 타락이 악으로의 중단 없는 경향성의 원인으로 보았다. 닛사의 그레고리는 어둠이란 단지 빛의 부재의 소극적인 현상이 아니라 사탄이 고의로 선을 추방하고 의도적으로 악을 끊임없이 선택했기에 발생한 것으로 보았다.43) 여기에서 악의 선택에 대한 능동적이며 반역적인 어떤 것이 발견되어지지만 동시에 그것은 상실(privation)로 간주되어져야 한다. 결국 닛사의 그레고리는 악의 기원을 하나님이 아닌 첫 인간의 의지의 오용 속에 두고 있다.44)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타락의 가능성을 남겨 놓으셨는가의 물음이 대두되는데 닛사의 그레고리는 이 자유의지가 하나님 형상의 한 측면으로서 인간에게서 자유의지의 박탈은 바로 하나님 형상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며 동시에 그의 창조목적, 즉 그의 선하심에 인간을 참여시키고자하는 그의 목적을 말소하는 것이다.45) 결국 닛사의 그레고리에게 있어서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의 본질적인 본성이다. 결국 인간 타락의 결과는 신적인 ‘형상(image)과 모습(likeness)’46)의 왜곡과 상실이었다. 첫 번째 결과로 인간에게 죽음이 왔다. 낙원에서 찾아 볼 수 없었던 죽음이 인간에게 다가왔다. 닛사의 그레고리는 이런 육체적인 죽음을 신적 은총의 과잉의 표징이고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치유의 은총이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서 죽음은 어떤 감각적 만족을 통한 자유의지에 의한 악과의 연대성과 모순되는 타락한 인간의 독특한 치유 방법으로 생각47)되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타락으로 인해 인간의 육체에 죽음이 왔을지라도 인간의 영혼은 불멸로 남아있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은 병들게 되었고 그 결과 치유 받아야만 될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48) 인간 본성에 관한 인간 타락의 두 번째 결과는 합리성에 대한 비합리성의 지배를 초래였다. 아담과 하와가 낙원에서 신적인 본성과 짐승의 본성의 중간 상태에 있었을지라도 합리적인 본성이 비합리적인 본성을 규제했었다. 그러나 현재는 역전현상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치 죄의 경향성이 무거워지고 더욱더 죄를 향하게 된 것처럼 (비합리적 짐승적 본성의) 또 다른 영향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혼을 지배하는 요소가 지성에 의해서 고양되어지는 그 무거운 요소보다 더욱 비합리적인 본성의 무게에 의해서 하강하게 되어지는 요소로 기울어졌기 때문이다.49) 타락으로 인한 인간 본성의 세 번째 결과는 자유의지의 경향성이 악으로 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의지는 여전히 그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잠재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은총을 필요로 한다.50) 고대 교회에서는 죄가 때때로 신약성서에서처럼 그렇게 철저하게 이해되지는 않았다. 동방교부들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책임을 강력히 주장하며, 동시에 인간이 선과 악의 중간에 균형잡고 있어서 양쪽 어느 것이나 선택할 수 있다고 보았다.51) 또한 그들은 사변적인 경향이 강했기에 관심이 주로 삼위일체의 교리와 기독론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레니우스는 원죄에 대한 그의 관념을 표명한바 있으며, 닛사의 그레고리도 그와 비슷한 진술을 행한 바 있다. 그러나 일관된 원죄의 교리를 이끌어내는 것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와 동시에 아다나시우스는 많은 성인이 모든 죄에게 깨끗하고, 시릴은 심지어 인간은 죄 없이 출생했다고까지 주장하였다.52) 그리고 닛사의 그레고리,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등과 같은 사람들에 있어서도 분명히 원죄에 대한 부정을 암시하는 표현을 볼 수 있다.53) 이것은 동방교부들이 모든 죄의 문제를 피상적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웨슬리의 원죄의 결과로서의 인간의 전적 타락이라는 부분은 동방교부 전통의 죄 이해와 전혀 다른 견해이다. 동방 기독교의 전통은 타락으로 인해서 인간의 본래적인 의가 완전히 없어졌다고 보지 않았다. 따라서, 구원에 있어서 자칫 잘못하면 우선성이 인간에게 있게되는 위험성이 있다. 반면에 웨슬리는 인간의 전적인 타락을 주장하여 원죄의 전가된 죄책과 유전된 부패성을 주장하였으며 동시에 선재적인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의 측면이 모든 사람이 원죄의 죄책으로부터 해방시켰고 인간에게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응답 가능성을 형성시켰다고 보았다. 이점에 있어서 동방 교회의 오해 가능한 신인 협력적인 질서에 비해서 웨슬리의 신인 협력적인 구원의 특성은 오해의 소지를 줄인다. 웨슬리의 관점에서 분명히 인간의 응답 가능성이라는 것은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결국 그의 신학과 신앙과 삶의 정점은 크고도 넓으신 하나님의 은총의 광대함이다. 그러나, 웨슬리는 다음과 같은 점들에 있어서 동방교부들과 동일한 견해를 가진다. 악과 죄의 원인을 의지의 오용으로 본 점과 타락의 결과 인간에게 영적이고 육적인 죽음54)이 왔으며 인간의 본래적 본성이 병들어 치유를 요하는 상태에 처해있다고 본 점은 동일하다. C. 서방 교부와 로마 카톨릭의 죄 이해 원죄의 개념을 최초로 만든 교부가 바로 터툴리안이었다. 그는 원죄의 영혼 유전설을 강조하여 개개의 영혼이 인간적 본질로 되어 있으며 대대로 내려오는 아담의 후손으로서의 출생을 통하여 육체와 함께 존재하게 된다고 믿었다. 영혼의 죄된 상태의 결과는 아담과의 관계에서 생긴 결과이다. 인류는 아담의 죽음에 관련되어 있을 뿐만이 아니라 이른바 인간의 자연적 요소, 제 2의 본성, 영혼의 악, 발생의 악인 죄로 물들어 있다.55) 서방 교부 중에 서방 교회의 신학적인 틀을 잡았던 어거스틴은 서방 교부의 대표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어거스틴의 죄 이해는 바로 서방 교부의 죄 이해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어거스틴은 초기 마니교와의 논쟁기에 마니교의 숙명론적 인간이해와 이원론적 창조와 역사이해에 강하게 도전하였다. 마니교의 결정론이나 숙명론은 악의 근인(近因)은 인간의 의지요, 원인(原因)은 하나님이라고 보는 관점을 가진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하나님은 결코 악의 원인이 될 수 없으며 악을 창조하지 않으셨고 다만 선만을 창조하셨다고 강조한다.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은 그는 인간은 본래 선하게 지음 받아 이미 완성되어진 채로 선한 창조인 천국에 자리했다고 보았다.56) 그렇다면 악은 어디서 오는가? 악은 선의 상실과 부패와 타락으로부터 오며, 그 원인은 인간의 자유의지다. 즉 악의 원인은 하나님이 아니고 선의 결핍과 타락이며 죄를 범하는 것은 자유의지에 기인한 것이다.57) 어거스틴은 악한 본성을 비존재며 비본성으로 보았고 모든 본성과 존재는 선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58) 모든 본성과 존재들의 원인이신 하나님은 악을 창조하지 않으시고 악한 본성의 원인이 아님을 주장한다.59) 결국 어거스틴에 의하면 악은 본성이 아닌 오히려 본성에 반대되는 것이다. 어거스틴에 의하면 인간의 죄악행위는 욕망 특히 성적인 욕망(concupiscentia)에서 나오는 데,60) 그 욕망에 영혼이 끌려감으로 죄악행위가 나타난다. 영혼이 욕망에 끌려 다니는 것은 영혼 속에 있는 자유의지 때문이다.61) 그러므로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죄는 선의 박탈, 교만, 자기 사랑, 그리고 정욕이다.62) 어거스틴은 “죄짓는 것은 악의 훈련에 의해서만 일어난다.”63)고 보았다. 그에 의하면 죄는 의지가 자유롭지 않을 때 범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가 불의를 원할 때 범하는 것으로 정의가 금하는 것을 유지하려는 의지 혹은 얻으려는 의지이다64) 그리고 어거스틴은 칭찬 받을 만한 행복한 삶도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고 수치스럽고 불행한 삶을 사는 것도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임을 강조한다.65) 그러나 아담의 타락 이전에 인간은 “죄짓지 않을 수 있었지만(posse non peccare)” 타락 이후에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non posse non peccare)”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66) 죄를 범하고 악을 행한 인간이 다시 선을 행하려면 오로지 은총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어거스틴은 강조한다. 어거스틴에게 있어서는 본성적 자유의지의 요소도 있으면서도, 은총에 의해 세워지고 회복되며 움직여지는 자유의지의 요소도 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자유의지 자체가 그것이 빠져있는 죄악의 속박에서 해방되고, 그 악을 극복하도록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인간은 결코 의롭고 거룩하게 살아갈 수 없다”67)고 해석하며 은총의 중요성을 자유의지에서도 강조한다. 은총이 먼저 선재적으로 역사하지 않으면 자유의지는 제대로 선을 실천할 수 없다. 여기서 웨슬리는 어거스틴의 예정의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어거스틴의 선재적 은총 개념을 자신의 사상으로 끌어들인다. 그는 그의 설교,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룸에 대하여”(On Working Out Our Own Salvation)에서 어거스틴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한다. “우리 없이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은 우리 없이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실 것이다.”(Qui fecit nos sine nobis, non salvabit nos sine nobis.)68) 그러므로 웨슬리의 선재적 은총의 개념은 어거스틴의 개념을 수용하고 있다. 그리고 어거스틴은 세례를 통해 원죄가 제거된다고 보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은총은 율법이 행할 수 없었던 일, 즉 정욕을 이기는 일을 행한다고 보았다.69) 어거스틴은 웨슬리처럼 죽기 전의 완전성화가 가능하다고 믿지 않고, 완전이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이것은 루터와 웨슬리가 유전죄를 본질적으로 불신앙으로 본데 반해서 어거스틴은 죄의 본질을 정욕(concupiscentia)으로 보았고 이 정욕이 죽는 날까지 계속 인간에게 남아 있는 것으로70)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웨슬리와 어거스틴의 육체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드러난다. 어거스틴은 인간의 정욕을 육체적인 면으로 보았기에 그에게는 죄악된 육체라는 개념이 적용이 된다. 그러나 웨슬리에게 있어서 이러한 개념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죄의 자리는 영혼이지 육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웨슬리는 ‘죄악된 육체’의 개념을 강력하게 거부하고 있다.71)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슬리는 육체의 부패성에 동의를 하고 있고 이러한 육체의 부패성으로 인한 유혹의 가능성에도 동의를 하고 있다.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완전은 그리스도에게만 해당되고 죽음 이후 천국에서나 죄 짓지 않는 완전 자유가 가능한 것이다. 마5:48에 하나님의 온전하심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셨기에 완전의 가능성은 믿었으나 현실성은 믿지 않았다.72) 12세기부터 13세기의 중세의 스콜라 신학자들은 죄의 개념에 관해서 어거스틴주의적인 유산73)을 이어받았다. 원죄는 본래적 의의 결핍이며 부가적인 은사의 상실로 보았다. 따라서, 인간의 본성에 원죄가 어떠한 근본적인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는 것으로 보았다.74) 그러나 아퀴나스는 자연적 타락을 적극적인 의미로 보기도 했다. 그것은 정욕이요 죄된 성질과 형벌을 내포한 것이며, 그 정욕은 육체 안에 거하는 것이고 출생에 의해서 대대로 전하여진다고 생각하였다.75) 원죄는 실제의 죄를 통해서 실체화된다. 그 주된 근원은 교만, 탐욕, 색정, 분노, 탐식, 질투, 나태 등 일곱 가지이다. 이러한 것들은 기본적 죄(peccata capotalia)이다. 그것은 다시 중대한 죄(peccata mortalia)와 가벼운 죄(peccata venialia)로 나뉜다. 하나님의 율법을 고의적으로 범하는 죄는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죄이다. 가벼운 죄는 단지 의사(意思)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충분한 반성이나 혹은 적극적인 의지의 작용이 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유리되는 것을 의미한다. 가벼운 죄는 현세의 형벌에 의해서 속량될 수 있다. 범죄의 단순한 자연적 가능성은 만물의 제일 원인이 되는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지만, 행위의 타락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속한다.76) 이점은 신자의 죄77)에 관해서 웨슬리가 죄를 구분할 때 무의지적 죄(involuntary sin)와 의지적 죄(voluntary sin)로 구분한 것과 유사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 교회가 범죄의 단순한 자연적 가능성을 하나님에게 둔 반면에 웨슬리는 범죄의 단순한 자연적 가능성의 원인 또한 인간에게 속한 것으로 본다. 인간의 타락과 죄로 말미암아 인간 본성과 육체의 부패성이 유입되었으며 또한 세상에 불완전성이 유입되었다고 보았다. 스콜라주의자들은 죄의 개념에 있어서는 어거스틴과 일치하며, 죄를 통하여 인간이 무지, 육욕 및 죽음에 복종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인간의 자연적 능력들은 죄에 의해 파괴된 것이 아니라 단지 상처를 입고 일그러졌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의 견해도 비어거스틴적 개념은 아니다.78) 그러나 14-15세기의 중세 교회는 점차 인간의 자연적 의지의 고결성, 즉 의지의 자유가 죄에 의해 오염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대죄를 통하여 영혼을 부패시키거나 파멸시킬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주장을 했다. 이러한 주장이 원죄에 대한 어거스틴적 교리와 더불어 종교 개혁가 더 나아가서는 웨슬리와도 화해할 수 없는 골을 만들게 하였다.79) 웨슬리는 어거스틴과 마찬가지로 죄의 원인을 인간 의지의 자유로 보았다. 그러나 악의 기원과 정의에 있어서는 차이를 보인다. 어거스틴이 악을 선의 부재로 본 반면에 웨슬리는 악을 선의 타락으로 보았다. 따라서 악의 기원에 있어서 웨슬리는 보다 천상적인 기원에서 찾고 있다.80) 그리고 선재적인 은총으로 회복되어진 의지의 자유에 있어서도 어거스틴은 여전히 악만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장하지만 웨슬리는 보편적인 은총의 단비 속에 있는 인간에게 선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고 보았다. 또한 어거스틴은 본질적으로 유전되어진 죄를 정욕으로 본 것에 비해서 웨슬리는 불신앙으로 보았다. 따라서, 어거스틴은 육체를 죄와 동일하게 보았으며 성결을 본질적으로 육체의 정욕에 대한 정복이라고 보았던 반면에 웨슬리는 육체를 죄와 동일하게 보지 않았고 죄의 자리를 단지 영혼에만 두었기에 어거스틴에게 불가능한 이 땅에서의 기독자의 완전이 웨슬리에게는 가능한 개념이다. D. 종교 개혁의 죄 이해 원죄에 관해서 칼빈은 전적으로 루터를 따르고 있다. 즉 그는 “성서에서 육체의 일이라고 불리어진 모든 일들을 우리 속에 낳게 하는 인간 본성의 유전적 타락과 부패”에 대하여 말하였다. 그는 바울과 같이 그것을 ‘죄’로 불렀고 그것이 노출된 것을 ‘죄의 열매’라고 불렀다.81) 아담의 죄는 불순종에 있었다. 죄의 속성은 아담의 모든 후손에게까지 유전되었다. 타락한 뿌리에서 타락한 가지들이 나온 것이다. 칼빈은 아담의 죄가 그 후손의 죄가 되어야 하는 것은 신의 뜻이라고 말한다.82) 그리고 칼빈은 정욕이라는 말을 이해력과 의지, 영혼과 육체 등 인간에게 있는 모든 것이 더렵혀진 것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83)하였다. 이것은 죄의 교리에 관해서 칼빈이 루터를 전적으로 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최초의 성공적 종교개혁자인 루터의 인간과 죄 이해는 일단의 종교 개혁가들의 죄 이해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보편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루터의 죄 이해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종교 개혁자 루터는 중세의 인간 이해와는 다른 인간이해를 토대로 죄의 교리에서도 중세의 왜곡되어져 가는 방향에 수정을 가한다. 루터는 당시의 스콜라 신학이 관심을 가진 인간의 구성요소에 대한 철학적인 인간론84)이 아닌 성서적 인간론, 즉 전인의 단초를 소개한다. 그는 1536년에 “인간에 관한 논제”를 발표하면서 이러한 관점을 발전시킨다. 루터는 기독교 인간론의 중심의 자리에 영혼의 능력 대신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뜻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설정하였다.85) 그리고 루터는 바울이 피력하는 영과 육의 관계86)로서 인간론의 정의를 하였다. 그는 인간을 철저하게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행동의 역사로부터 진술을 시도했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전체 역사 즉 창조, 타락, 그리고 구속의 완성 등은 전인이 무엇인지를 나타내 준다. 이러한 루터의 시각으로부터 전인의 관점을 세 가지87)로 조망할 수 있다. 첫 번째 관점은 원래의 상태(status originalis)이다. 이 상태의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육체와 생령으로 구성되었으며, 처음부터 죄 없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자손을 번식하며 모든 것들에 대해 다스릴 것과 결코 죽지 않게 규정받도록 지음 받았다.88) 이때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피조되고 하나님의 대화상대자로 부름 받은 “전인이며 완전인”이었다. 전인이며 동시에 완전인인 인간은 하나님과의 단절 없는 교제 안에 있는 인간을 말한다. 그러나 아담의 타락 이후 하나님과 인간의 단절 없던 교제가 깨져버렸다. 인간은 영생을 약속 받았던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탈락하여 사탄과 죄와 죽음의 권세 아래로 떨어졌다.89) 이로서 인간은 이제 완전인이 아니다. 전인은 이제 사탄의 다스림 속에 갇혀졌다. 두 번째는 궁극의 상태(status finalis)이다. 아담의 타락 이후 인간은 죄인이 되었고 더 이상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 하나님의 형상이 되어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러한 과정의 목표는 당연히 하나님과의 종말론적 교제이다. ‘그리고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만(만일 그를 믿으면) 벗어날 수 있게 되며 영생을 선물 받게 된다’90) 하나님과의 종말론적 교제가 가능한 것은 바로 기독론적인 종말론적 관계에 힘입어서 가능한 것이다. 이런 궁극의 전인의 상태는 인간의 종말론적인 완성으로서 완전인을 의미한다. 세 번째로는 의인인 동시에 죄인(simul justus et peccator)이다. 루터는 의인인 동시에 죄인이라는 용어를 그리스도인의 실존을 나타내는 하나의 변증법적 존재 방식으로 표현했다. 여기서 관심을 가지고 그 신학적인 의도를 파악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동시에’라는 표현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판단이다. 이 개념은 바울의 영과 육의 구분과 동일한 방법으로 관련시켜 이해되야 한다. 바울에 있어서의 육과 영은 전인의 삶의 방식을 나타내는 신학적 용어로 더 깊은 의미에 있어서는 전인의 삶의 방식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의인인 동시에 죄인인 전인은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위해 자기 자신을 헌신하는 자아 자체로 파악될 수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인간 이해를 기초로 하여 루터는 당시의 로마의 세미-펠라기우스주의적 경향에 반대하여 원죄에 대한 어거스틴적 개념을 옹호하였다. 성서에서의 죄는 육신의 외적인 행위를 뜻할 뿐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이러한 행위를 하도록 하는 모든 활동들도 뜻한다. 이성이 강한 스콜라 신학자들은 원죄를 정의하기를 ‘의가 부족하거나 결핍된 상태’91)라고 한다. 그러나 루터는 “원죄란 인간의 의지 속에 들어있는 내적인 질(質)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지성에 있어서 내적인 빛이나 기억력의 결여만이 아니라 마음속에 일어나는 인간전체(내적인 인간, 외적인 인간, 몸과 영혼 전체까지)에 있어서 공정하고 성실한 자세가 결여된 것을 말하며, 그 전체 인간의 기능을 올바로 발휘할 능력이 결여된 것을 의미한다”92)라고 말한다. 루터는 인간에 관한 이런 기본적인 개념을 전제로 원죄를 정욕과 불신앙으로 보았다. 첫째, 루터는 원죄를 정욕(concupiscentia)으로 본다. 정욕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이기주의를 말한다. 이것은 선을 행하려는 인간의 가장 고상한 의지 속에까지 파고 들어가는 것을 말하며,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도와 수단으로 삼으려는 이기주의이다. 따라서 루터는 정욕을 자기추구와 연관시키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힘으로 극복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욕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그것을 지니고 있다.93) 둘째, 루터는 원죄를 불신앙으로 본다. 성서는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모든 죄의 뿌리와 원천을 가려낸다. 그것은 가장 깊은 내심에 있는 불신이다. 그리스도께서도 요 16:8-9에서 불신앙을 유일한 죄라고 부르신다. 원죄가 이기적인 자기 추구일 때 그것은 당연히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위배되게 되고, 하나님을 거부하는 불신앙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것은 하나님께 드려야할 것을 드리지 않는 것을 의미하며 그 결과 이웃에게 돌아가야 할 것을 돌리지 않는 면으로서도 나타난다. 루터는 ‘불신앙은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르는 데서 나타난다.’고 말한다.94)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마음은 자기애, 자기 기쁨, 자기 신뢰, 자기 의에의 의존과 연결된다. 그 결과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받은 것을 하나님의 선물로 여기지 않고, 이런 선물들을 당연히 받아야 할 것으로 생각하거나, 자신의 노력의 결과로 생각한다. 그들은 감사하지 않고 허영심으로 눈이 멀게 되어 아주 구제 불능의 인간이 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네가 하는 일이 최고로 잘하는 일이며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믿고 다른 생각을 할 여지를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 자신을 위해서 엉뚱한 다른 하나님을 구상한다. 이리하여 그들은 본래 참 하나님에 대한 것보다 더 진실한 마음으로 자신이 구상한 헛된 우상을 예배하데 된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 인간의 육욕적인 생각과 부패한 심정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감사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당히 큰 죄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이것은 다만 허영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인데 이 허영심은 사람을 미혹케 하며 그 결과로 우상 숭배로 떨어지게 하며 그래서 악의 소용동이 속으로 빠져들어 가게 하는 것이다.95) 루터는 원죄의 특성으로 원죄의 보편성과 인간의 전적 타락, 그리고 원죄의 심각성을 주장하였다. 원죄의 보편성에 있어서 비록 원죄가 인간 각자가 스스로 지은 실제적인 죄가 아닐지라도 원죄로 인해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라는 사실이다. 루터는 롬 9:11-13을 주석 하면서 “어떤 사람이 야곱은 모태로부터 성결함을 받았다고 생각한다고 해도 그들은 모두 다 원죄로 인해 더러워졌다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96)고 했다. 태어나서 하루 밖에 안된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원죄 가운데 있게 된다. 그리하여 루터는 “가령 우리 양친이 죄를 범한 일이 없다고 해도 죄성이 그대로 유전되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애초부터 불의의 자식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97)라고 한다. 루터는 인간의 전적 타락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의 영향을 받은 중세 스콜라 신학은 원죄를 단지 의의 결핍으로만 생각했다. 따라서 의의 결핍으로 인한 잘못된 부분만 제거하면 인간은 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루터는 이와 같은 스콜라주의 신학은 “회개의 귀중성을 약화시킬 염려가 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애고 대신 교만과 인간적인 악한 성질을 다시 심어주는 것이다.”98)라고 반박한다. 즉 루터는 원죄를 단순히 부분적인 약점이나 죄로 보지 않았고, 전인의 완전한 타락으로 보았다. 루터는 시편 51:5을 통하여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으며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하였는데 “내가 잉태될 때 하나님 앞에서는 이미 의를 상실하였다. 나는 일찍이 아담에 의해 의를 상실하였고 따라서 의롭지 않게 잉태되었기 때문에 불의한 자가 된 것이다.”99)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루터는 시 90:8을 주석하면서 “어느 누구도 자신의 모든 죄를 낱낱이 알 수 없다고 선언해야 옳다. 특히 자신의 원죄가 얼마나 막중한가 살펴보게 되면 이점이 더욱 명백해진다.”100)고 한다. 그러므로 루터에 있어서 원죄의 심각성이란 그 누구도 그것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루터는 인간의 원죄의 거대성을 보아서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여지를 남겨놓지 않았다. 따라서 어떤 인간도 결국에는 의인인 동시에 죄인(simul justus et peccator)이상은 될 수가 없다. 인간은 죽는 날까지 죄인으로 남아있다. 세례가 원죄를 제거하지 못한다. 원죄는 그 본질에 관한 한 죽을 때까지 남아있다. 우리는 매일매일 그것을 씻어 버려야 하며, 날마다 선한 일에 자라야 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고 살아야 한다. 무덤에 들어갈 때 비로소 원죄는 완전히 제거된다.101) “웨슬리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전적으로 의가 결핍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심판과 분노 아래 있다는 주장에 관해서는 칼빈과 루터와 어거스틴과 모든 길을 함께 하고 있다.”102)라는 윌리암 캐논(William Cannon)의 말처럼 웨슬리는 종교 개혁가들이 말한 원죄로 인한 모든 인간의 전적 타락이라는 부분에 동의를 한다. 그러나 은총 이해의 미묘한 차이와 죄의 정의에 대한 차이가 구원의 길에 대한 이해에 차이를 야기한다. 웨슬리는 종교 개혁가들과는 은총의 보편성에 대한 이해가 다르다. 웨슬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보편적인 은총의 선물로 보았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아담의 죄책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신학적 입장에 서 있다. 그러므로 웨슬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의 유전된 죄악성과 자기 자신의 자범죄의 죄책에 대한 문제이다. 웨슬리는 죄의 구분을 행위로서의 죄와 상태로서의 죄로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종교 개혁가들은 이러한 구분을 엄격하게 하고 있지 않는다. 루터의 관점에 의하면 기독자는 항상 죄 속에 있으며, 또 항상 칭의 속에 있다. 바꾸어 말하면 그는 항상 죄인이지만 항상 회개하고 그럼으로써 항상 의롭다 칭함을 받는다라는 이야기이다.103) 즉 죄에 관해서는 신자나 불신자나 별반 차이가 없다.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는 하나님께서 신자는 실질적으로는 죄인이지만 죄인으로 보지 않으신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웨슬리는 이러한 의견에 명백한 반대를 한다. “칭의가 율법에 의하여 우리에게 가져온 고발에서 우리를 자유케 한다는 것도 또한 성서의 명백한 증언으로 증명되고 있다고 하기보다는 단순한 가정이라고 할 것입니다.”104) 웨슬리에게 있어서 칭의는 아들의 피로 인하여 된 화목의 제물 때문에 가능한 사면이요 죄의 용서이다. 신자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니기에 하나님께서 신자를 더 이상 죄인으로 여기지 않으신다. 이러한 개념이 가능한 것은 바로 죄에 대한 이해의 차이 때문이다. 칼빈은 의지적 죄와 필연적인 죄를 구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필연적 죄 또한 의지적 죄와 같은 죄책을 가지고 있기에 하나님 앞에서는 차이가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105) 루터는 ‘무지의 죄’와 ‘의지적인 죄’의 구분을 시도했지만 웨슬리처럼 명확한 구분을 시도하지는 못했다.106) 웨슬리는 의지적인 죄와 무의지적인 죄, 그리고 죄책과 죄의 힘, 죄의 현실성을 복잡하게 구분하였다.107) 종교 개혁가들이 무의지적인 죄와 의지적인 죄 모두가 하나님께 정죄함을 받고 죄책 가운데 있는 것으로 보았지만 웨슬리는 단지 의지적인 죄만이 하나님께 정죄함을 받는다고 보았으며 엄밀한 의미에서 성서가 말하는 죄로 보았다. 무의지적인 죄는 엄격한 의미의 죄로 보지 않고 부적절한 의미의 죄로 보고 있다. 그리고 웨슬리는 내적 죄악성, 죄의 현실성을 엄밀한 의미에서 죄책이 있는 죄로 보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죄에 대한 경향성일 뿐이다. 이 경향성에의 의지적인 동의가 하나님으로부터의 정죄를 가지고 오는 것이다. 의지적인 죄는 영원한 죽음을 가지고 오는 유일한 죄로서 은총의 거부를 포함하는 개인적인 죄이다. 따라서 죄와 관련하여 웨슬리의 관점에서 성결이란 은총에 의한 믿음과 그 믿음의 열매들을 통해서 내적인 경향성을 죽임으로서 죄의 뿌리, 인간의 타락한 본성, 죄의 현실성에서의 해방을 의미한다. 신자는 과거의 죄책에서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은총 속에 거함으로 의지적인 죄를 범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신자 안에는 이 죄의 경향성, 죄의 남음이 있다. 이 죄의 남음 자체는 죄책이 있는 죄가 아니라 할지라도 언제든 신자가 의지적으로 하나님께 범죄할 여지를 열어 놓는다. 이점은 트렌트 종교 회의가 세례 후 신자에게 남아 있는 정욕, 죄의 연료를 전혀 죄로 보지 안았던 점과 웨스트민스터 고백에서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본성의 타락은 신자가 살아있는 동안에 벗을 수 없는 굴레로 선언했던 점에 대한 웨슬리의 중도적인 대안이다.108) 종교 개혁가들과는 구별되는 죄와 은총 이해로 인해 웨슬리는 종교 개혁가들이 어쩔 수 없이 걸어갔던 선택과 예정, 그리고 성도 견인의 은총이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점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웨슬리는 자신의 구별되는 죄와 은총 이해를 통해 당시에 나타났던 칼빈주의적 율법폐기론과 모라비안적 정숙주의의 오류에서 벗어나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과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열매이자 결과인 ‘거룩한 삶’을 잘 조화시킬 수 있었다. E. 영국 국교회의 죄 이해 웨슬리는 그 자신이 열정적인 영국 국교회 사제였고 또 자신을 “열렬한 국교도”109)라고 불렀다. 사실 웨슬리 생전에 영국 감리교 운동은 영국 국교회와 분열의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죽을 때까지 분열의 움직임을 막고자 했으며 결국 그의 사후에야 영국 감리교가 영국 국교회로부터 분리되었다. 그리고, 그가 초기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전통이 바로 영국 국교회의 전통이다. 그는 당시 영국 국교회의 사제를 배출하였던 옥스퍼드 대학(Oxford University)의 크라이스트 처치(Christ Church)에서 신학 교육을 받았으며, 영국 국교회의 39개조의 많은 교리적 조항을 따랐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39개 조항을 그의 신학적인 관심에 따라 24개 조항으로 축소 변형시켰다는 점이다.110) 따라서, 영국 국교의 신학의 정립에 큰 공헌을 한 리챠드 후커(Richard Hooker)111)의 죄 이해와 39개조의 원죄(Original Sin)조항인 제9조를 웨슬리가 어떻게 생략, 변형 시켰는지를 살펴봄으로서 영국 국교회의 죄 이해가 웨슬리 죄 이해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아보겠다. 후커는 기본적으로 기독교 인문주의자였다. 그는 인간은 결코 전적으로 타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성과 의지를 사용하여 선을 선택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후커는 인간의 완전 이성 소유의 불가능성 때문에 인간은 결코 절대 선은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했다. 인간 이성의 불완전성 때문에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절대 선보다는 못한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현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항상 선을 선택한다고 할지라도 선택한 선 속에는 여전히 악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까닭에 후커에 의하면 죄는 자유의지와 인간의 불완전한 이성에 기인한다. 결과적으로 죄는 적극적인 행동이라기보다는 적절한 이성의 결여라는 것이 바로 후커의 견해이다.112) 그러나 기독교 인문주의자적인 성격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후커는 당시의 로마 천주교의 행위 의인화(work-righteousness)를 강하게 반대하였다. 그리고 또한 개혁 교회의 신앙 제일주의에도 강한 거부를 하였다. 그는 인류의 구원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극명하게 나타나는 먼저 주시고(initiative)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은총에 관심을 가졌으며, 이 은총을 하나님으로부터의 소외와 개인적인 죄책의 짐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변화의 은총으로 이해했다.113) 그러므로 이 변화의 은총으로 인해 신자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해 응답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은총을 인간이 받아들임은 단지 인간의 내적 정신적 활동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신자의 삶의 스타일의 변화 가운데 눈에 보이는 것이다.114) 결국 성화의 삶을 중시했다. 그러나, 성화의 삶에 있어서 영국 국교회는 그 제도적인 수단을 주님이 제정하신 성례전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이 성례전은 은총의 효과적인 표징115)이며 은총의 참된 수단116)이다. 그렇기에 세례는 단지 고백의 표현이 아닌 기독자와 비기독자와의 구별의 표시이고 거듭남 혹은 신생의 표징이 되는 것이며 죄의 용서와 성령에 의한 하나님의 양자됨의 약속이 되는 것이다.117) 그러나 웨슬리는 영국 국교회의 예전 중심적인 신학 이해의 한계를 그의 경험에 의해서 극복할 수 있었다. 이것은 그의 신학이 영국 국교회에서는 가지고 있지 못한 경험이라는 요소를 가지고 있었고 당시의 대중들에 대한 실천적이고 목회적인 관점에 서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세례와 거듭남이 서로 다른 면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들은 서로 다른 성질의 것이며 영국 국교회처럼 동일한 것으로 보지 않았다. 웨슬리는 세례의 성례전을 외적인 행위로서 하나의 표징으로 보았으며, 거듭남은 내적인 것으로 보았다.1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슬리는 거듭남과 세례가 서로를 동반할 수도 있으며 서로 연합할 수도 있다고 보았다. 그러고 유아 세례에 있어서 세례는 거듭남과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거듭남을 동반한다고 보고 있다.119) 이러한 경향은 영국 성공회로부터 받은 죄 이해에도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영국 국교회의 39개 조항을 축약한 25개조 중에 원죄에 관한 항목을 웨슬리는 자신의 신학에 맞추어 변형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의 설교 13번 “신자 안의 죄(Sin in Believers,1763)”의 도입부에 영국 국교회의 39개조 제 9항을 본문에 삽입하였는데 이때에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신학적인 이해에 따라서 생략하여 소개하고 있다. 원죄는 [아담을 따르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아담의 후손에게 유전되어지는] 모든 사람의 본성의 [결점과] 부패를 말하는 것이고 이것으로 인해서 사람은 [원의(original righteousness)에서부터 멀어지게 되었고] 그 본성에 있어 악으로 향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육이 영과 반대되는 것을 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속적이다. 그리고 그런 까닭에 이 세계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분노와 정죄 아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본성의 부패성은 거듭난 사람에게도 남아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어떤 이들은 지혜로, 어떤 이들은 감각으로, 어떤 이들은 감정으로, 어떤 이들은 육의 소욕으로 해석하는] 헬라어로 프로네마 싸르코스(φρονημα ρακος)라고 부르는 이 육의 정욕은 하나님의 율법에 복종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세례 받고] 믿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기는 하지만 이 정욕은 그 자체가 죄의 성질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120) 원래의 조항에서 웨슬리는 원죄의 유전의 문제를 생략했다. 웨슬리는 원죄의 유전의 문제에 있어서 초기에는 생물학적인 유전 전이설에 영향을 받았다가 중기에는 영혼 창조설적인 입장에 기울어져 있었으며 후기에는 영혼 전이론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다. 그러나 이 설교를 작성했던 영혼 창조설적 경향에 기울어져 있었던 중기에 웨슬리는 원죄의 전이의 방법에 대한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121) 이점으로 미루어보아 생략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보편적인 구속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이 아담의 죄로 인한 죄책으로부터 벗어나 실질적으로 소위 원죄의 결과로 남아 있는 것은 인간의 손상되고 타락한 본성뿐122)이기에 웨슬리는 원죄의 죄책의 문제를 생략한다. 그리고 또한 마지막 구절의 세례를 생략한 것은 세례를 단지 외적인 표징으로 보고 있으며, 의인화의 유일한 조건은 바로 믿음뿐이라는 종교 개혁의 모토에 강한 영향을 받은 후이기에 세례를 통한 정죄함의 구절을 생략한 것이다. 이렇듯 웨슬리는 영국 국교회의 죄 이해를 자신의 목회적이고 실천적인 경험과 신학에 맞추어 변형시켰다. A. 죄 이해 변화에 대한 시기 구분의 근거 “웨슬리의 생애와 사상은 성장과 변화로 특징지어진다.”123) 하이트젠레이터(Heitzenrater)가 지적한대로 웨슬리의 사상을 고찰하기 위해서는 그의 생애의 사건들과의 연관성 속에서 그의 사상이 어떠한 성장과 변화를 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웨슬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대체로 시기를 구분하여 그의 사상을 고찰하고자 했다. 전통적인 경향은 1738년 5월24일의 올더스케잇 체험을 기점으로 구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경향은 이러한 전통적인 경향을 수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전통적인 구분은 웨슬리의 영적 성장의 모습을 왜곡시키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의 생애에서 이 핵심적 사건의 실제적 중요성을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사실 웨슬리는 올더스케잇 체험을 그의 후예들을 위한 회심 모델로 삼지도 않았을 뿐더러 시간이 지난 후에는 신학과 설교에서도 점차적으로 회심경험에 대한 강조와 언급이 없어졌다.124) 그는 한 비판가에게 “저는 회심이라는 용어는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용어는 신약성서에서 거의 나타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125)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올더스케잇 체험이 회심이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웨슬리의 견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해간다. 웨슬리가 이 질문을 언제 했으며 회심이라는 경험을 어떻게 정의했는지를 살펴본다면 웨슬리의 증언에 근거한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회심이었다’일 수도 있고 ‘회심이 아니었다’일 수도 있다.126)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과할 수 없는 중요성이 올더스케잇 체험 속에 있다. 그 경험의 순간은 웨슬리가 당시에 고민했던 확증의 문제와 확증과 회심의 직접적인 관련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준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올더스케잇 체험을 통해 경험 후의 웨슬리가 경험전과 완전하게 다른 새로운 사람이 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지속적인 성장과 성숙의 연장선상에서 올더스케잇 체험을 바라보아야 하며 이러한 경향은 그의 전 생애를 통해서 지속되어져야만 한다. 현대의 웨슬리 학자들은 웨슬리의 생애를 2기로 구분하는 전통적인 경향을 수정하고 있다. 먼저 터틀(Tuttle)은 신학적인 관점의 무게중심의 변이에 따라 올더스케잇 체험 이후를 3기로 구분하고 있다.127) 콜린스(Collins) 역시 단순히 2기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확증에 관해서는 올더스케잇 체험이후 3기(1738-1747: 1748-1770: 1771-1791)로 구분했으며, 또한 웨슬리의 구원론의 핵심 포인트로서 참 기독교(Real Christianity)에 대한 모티브를 중심으로 3기로 나누고 있다.128)또한 카피지(Coppedge)는 예정론 논쟁을 중심으로 4기로 구분을 한다.129) 현대 웨슬리 연구가들인 아우틀러(Outler)130), 하이트젠레이터(Heitzenrater)131), 매덕스(Maddox)132)는 시기 구분에 있어서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그들의 신학적인 연구는 “초기 웨슬리: 1725-1738”, “중기 웨슬리: 1738-1765”, “후기 웨슬리: 1765-1791”로 구분하고 있다. 초기와 중기의 구분은 전형적인 도덕적 정직의 중요성 혹은 하나님과의 유사성에 대한 일치의 강조로부터 그의 신학에 최초의 긴장감을 형성시키는 은총에 의한 구원에 관한 보다 깊은 개신교적인 접근으로의 전이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중기와 후기의 구분은 기독자의 성결에 관한 웨슬리의 지속적인 관심과 은총의 우선성과 인간의 노력과의 성숙한 통합과 밀접하게 관련 있다.133) 즉, 초기와 중기의 분기점은 1738년의 올더스케잇 체험으로 종교 개혁의 신앙 의인화에 의한 강한 충격의 시간이고, 중기와 후기의 구분점은 예정론자들과의 논쟁 속에서 형성되어진 보다 성숙한 구원론의 정립 시기인 1765년이다. 웨슬리는 1765년에 저술한 그의 설교 “구원에 이르는 성서적 길(The Scripture Way of Salvation)”과 “주님 우리의 의(The Lord our Righteousness)”에서 체계적으로 구원의 길(via salutis)을 정립하고 있다. 그리고 그 해에 저술한 에세이 “감리교의 짧은 역사(A Short History of Methodism)”에서는 그 때까지의 감리교 운동의 형성과정을 개괄하고 있다. 파울러(James W. Fowler)는 자신의 신앙 발달 이론에 맞추어서 웨슬리의 신앙과 자기 인식의 성장과 발달 단계를 연구하였는데 흥미롭게도 그 역시 3기의 시기 구분과 유사한 구분을 하고 있다.134) 이러한 3기의 구분에 있어서 초기와 후기의 웨슬리의 신학의 유사점이 중기와 후기의 웨슬리 신학의 유사점보다도 크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이점은 웨슬리가 1770년에 출판한 표준 설교집에서 후기 설교들 중에 초기 설교를 아홉편을 결합시킨 것을 통해서도 드러난다.135) 따라서 유기적으로 시기를 구분한 일단의 학자들(Outler, Heitzenrater, Maddox, Fowler)을 기반으로 구원 이해의 필요조건인 죄 이해의 변화를 3기(“초기 웨슬리: 1725-1738”, “중기 웨슬리: 1738-1765”, “후기 웨슬리: 1765-1791”)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하겠다. 특별히 아우틀러와 하이트젠레이터가 경계하는 일반화의 위험성에 주의를 하며 고찰하도록 하겠다.136) 즉, 전체적인 상황에서 벗어나 웨슬리 자신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의 언급을 일반화하하는 위험성을 피하겠다. 가령 그의 저널을 보면 같은 사건을 시기별로 다르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데, 1725년에 웨슬리가 기독자였는가라는 물음에 1740년대의 그에게는 기독자가 아니라는 답이 나오고, 1770년대의 그에게는 그 당시에도 실질적으로 기독자였다는라는 결론이 나온다.137) 이것은 중기의 자기 인식과 후기의 자기 인식에 차이가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따라서, 그 시기의 상황 속에서 특정 사건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선결해야 할 과제이다. 이점은 신학적인 면에서도 똑같은 특성을 가진다. 특히 죄에 대한 그의 법정적인 관심과 치유적인 관심의 통합으로부터 발생하는 긴장 관계들을 고려하면서138) 웨슬리 신학에 있어서 그의 죄의 이해가 시기별로 어떠한 변화와 성장과 성숙을 과정을 거쳤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역사적 배경 웨슬리는 1720년 입학한 크라이스트 쳐치에서 1724년에 학사학위를 받은 뒤 석사 학위를 위한 공부를 위해서 옥스퍼드에 남는다. 그리고 1725년에 사제(Deacon) 안수를 받는다. 이 당시에 읽었던 제레미 테일러(Jeremy Taylor)의『거룩한 삶과 죽음의 규칙 및 훈련』(Rule and Exercises of Holy Living and Dying)은 그로 하여금 동기의 순수성의 중요함을 가르쳤고, 중간적인 입장이란 없으므로 일부분이 아닌 모든 삶이 하나님께 바쳐지지 않으면 마귀에게 바쳐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래서 웨슬리는 자신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 곧 삶 전체를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결심한다.139) 또한 같은 해에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의『그리스도를 본받아』(Imitatio Christi; Christian's Pattern)에서 웨슬리는 ‘의도의 단순함과 감정의 순수성(Simplicity of intention and Purity of affection)’이 ‘영혼의 두 날개(the wings of soul)’로서 그것 없이는 하나님의 산에 결코 오를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140) 따라서, 토마스 아. 켐피스의 영향으로 웨슬리는 영적 자아의 죽음, 하나님과의 신비적 연합과 같은 신비주의적 영성에 심취하게 된다.141) 특히 1731년 가을에 크라이스트 쳐치 교회에서 행한 설교인 “승리하는 자들의 지혜(The Wisdom of Winning Souls)”에서 토마스 아. 켐피스의 영향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설교의 주제는 진정한 복음주의의 동기와 목적인 거룩한 삶의 복음적 권능이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은총과 의무로서의 거룩한 삶을 역설하고 있다.142) 그리고 웨슬리가 목사들에게 한 훈계인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고 그들(너희들) 안에 있는 것을 행하라”143)는 아 켐피스의 Fac quod in te est(너의 안에 있는 것을 행하라 혹은 너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한다면 하나님께서 너의 선한 의도를 아실 것이다.)144)를 생각나게 한다. 부모님의 권고와 제레미 테일러의 영향으로 1725년 사순절 기간에 영적 일기(diary)145) 쓰기가 시작되었다. 이것은 거룩한 삶과 구원의 확증에 대한 희망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의 일기는 순전히 그가 분투했던 그의 죄와 단점들에 대한 자기 검증들로 가득 차 있다. 또한 웨슬리 일기의 목차는 그의 경건 생활이 ‘명상적인 경건(meditative piety)’146)을 특징으로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런 ‘명상적인 경건(meditative piety)’은 그의 어머니 수산나에 의해 영향을 받고 훈련을 받았다. 명상은 감리교도(Methodist)들이 거룩한 삶의 원천인 덕을 발전시키기 위해 사용한 영적 훈련의 진수였다. 명상의 중요한 목적은 자기 인식이었고 그 목적을 위해 사용된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 자기 검증이었다. 하이트젠레이터는 웨슬리가 사용한 방법이 로욜라의 이그나시우스(Ignatius of Loyola)의 영신 수련(Spiritual Exercises)의 방법과 유사하다고 주장한다.147) 웨슬리는 아버지의 충고인 “성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을 마스터하라”를 받아들인다.148) 베버리지(W. Beveridge)는 고대 동방 교회 문헌을 정리 수집한 Pandectae를 편집하였는데, 웨슬리는 이 편집을 통하여 크리소스톰을 소개받는다. 웨슬리는 옥스퍼드 일기에서 크리소스톰을 1726년 초에 읽었음을 기술하고 있다. 웨슬리는 아버지 사무엘의 충고로 크리소스톰을 마스터하였음을 표현하고 있으며, 크리소스톰의 제1차 자료를 직접 인용하고 있다.149) 그는 크리소스톰을 통해 구원의 신인협조설적 질서(Divine-human cooperation), 즉 하나님의 은총의 주도권과 인간의 도덕적 책임성을 동시에 강조하는 구원의 질서를 배웠다. 인간의 책임성은 회개와 믿음으로 구성된다. 크리소스톰에게 있어서 회개와 믿음은 동전의 앞뒤 양면과 같다. 은혜가 먼저 역사 하면, 자유의지는 회개와 믿음으로 반응한다. 그런데 웨슬리에게 있어서 회개만이 인간의 책임이요, 믿음은 하나님의 주시는 선물이다(엡 2:8). 이 점이 웨슬리와 크리소스톰의 다른 점이다. 1727년에 접한 윌리암 로우(William Law)의『그리스도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과『중대한 소명』(Serious Call)에서 내적 성결의 필요성을 강하게 확신한 웨슬리는 내적 성결을 위해서 영혼의 적절한 기질이 필요하고 그 기질을 위해서 모든 기회에서 은총의 수단을 활용해야 하며, 선행 할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함을 배웠다. 이 모든 것은 내적 성결, 즉 신자의 삶 속에서 하나님 형상의 회복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150) 그에게 있어서 90퍼센트 신자(Almost Christian, Half Christian)가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하나님의 은총을 통해서 모든 소유와 전 존재를 하나님께 헌신할 것을 결심한다.151) 1729년 늦가을에 웨슬리는 링컨 대학의 부름을 받아 강의를 하기 위해 엡워드를 떠나 옥스퍼드로 되돌아 왔다. 이때 동생 챨스 웨슬리(Charles Wesley)는 학문과 경건을 위하여 소수의 학생들과 모임을 가지고 있었다. 웨슬리는 챨스의 요청으로 이 소그룹을 지도하게 된다.152) 웨슬리는 소그룹을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그러한 방식으로 지도하지 않았다. 소그룹의 회원들이 일방적으로 웨슬리를 따라갔던 것이 아니라 서로 간에 영적 나눔이 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 소그룹 운동에 붙여진 명칭 중에 의미가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메도디스트(Methodist-규칙쟁이)’라는 명칭이다. 웨슬리의 부흥 운동은 그 시작부터 지금까지 ‘메도디즘(Methodism)’이라는 명칭으로 불려져왔다. 이 명칭이 옥스퍼드의 웨슬리안 그룹에게 붙여진 것은 1732년부터였다. 그런데 이 명칭이 웨슬리의 옥스퍼드 그룹에 처음으로 붙여진 것이 아니라 17세기에 ‘뉴 메도디스트(New Methodists)’라는 일단의 신앙적 경향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따라서, 당시의 상황을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역사적 사실을 통해 옥스퍼드의 웨슬리안 그룹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메도디스트(Methodist)’라는 명칭이 옥스퍼드의 웨슬리안 그룹에 적용되어진 첫 번째 기록은 윌리암 모간(William Morgan)이 죽고 존 클레이톤(John Clayton)이 그 운동에 참여한 시기인 1732년이다.153) 그런데 ‘메도디스트(Methodist)’라는 용어가 웨슬리안 그룹에 처음으로 사용되어진 것은 아니었다. 17세기에 영국과 유럽에 ‘뉴 메도디스트(New Methodist)’라는 명칭으로 불려진 사람들이 붙여진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아르미니우스적인 경향을 가진 비국교도들과 개신교도들이었다. 이들은 철저한 신앙의인화에 의해 인간의 가능성을 극소화시킨 당시의 개혁교회들에 반대하여 구원의 과정 속에서 신적인 은총이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인간의 응답(신실한 순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규칙과 방법에 의한 삶, 즉 경건한 규칙적인 일상 생활”을 주장했다.154) 이들은 예정보다는 보편적 속죄관에 기인한 인간의 의지와 책임성, 새계약 아래서 ‘율법’을 완성코자하는 신실한 순종, 성결 혹은 성화를 재촉하는 선행, 이중의 의인화 혹은 은총의 결과적 사역에 기인하는 내재적인 의를 강조하였다. 이점은 그들의 신학적 주장과 초기 웨슬리의 신학 사이에 대한 어떤 관계성을 보여준다. 1732년에 웨슬리의 신학은 분명히 당시의 칼빈주의자들이 ‘아르미니안주의’라고 부르는 신학적인 경향에 근거하고 있다.155) 아우틀러는 웨슬리의 초기 설교가 인간의 자유와 책임에 관해서 급진적일 정도로 기울어져 있음을 강조한다.156) 이 당시에 웨슬리는 그의 모든 삶과 신학에 있어서 신실한 순종(sincere obedience)의 비전을 가졌다. 그리고 그는 성결로 명칭되어지는 영혼의 거룩한 습관적 기질을 통해서 죄로부터의 정화, 영과 육의 오염으로부터의 정화를 통해 결과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덕을 받은 존재, 즉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진 존재가 되는 것에 목적157)을 두었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서 더욱 중요한 것은 외적 행위의 의라기보다는 영혼의 내적 경향성을 초래하는 성령의 사역에 있었다.158) “마음의 할례(The Circumcision of the Heart,1733)”를 비롯해서 1730년대 초기의 웨슬리의 설교들은 동일한 신학적인 관점과 관심을 가진다. 우선 기본적으로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는 하나님께 용납되어진 상태에 있는 존재로 그 표징은 외적 할례, 세례 혹은 어떤 외적인 행위가 아니라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진 올바른 상태의 영혼에 있다.159) 중요한 점은 완전함이라기보다는 신실함이며 잘하는 것이 아닌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160) 완전은 그리스도가 내 안에 거함으로서 사랑의 율법이 충족되어짐으로 성취되어진다. 17세기의 ‘뉴 메도디스트(New Methodists)’의 신앙적 경향과 ‘옥스퍼드 메도디스트(Oxford Methodists)’들의 신학과 신앙의 유사함이 이점에 있다. 이 시기에 웨슬리에게 영향을 준 사조들은 우선적으로 성서의 우선성이고, 그리고 초대 교부들과 중세와 영국의 경건주의자들, 대륙의 신비가들과 자유주의자들이었다. 특히 이 사실은 잉함의 일기(diary)161)를 통해서 간접 증명된다. 결과적으로 웨슬리는 그들의 영향으로 성결과 성화의 구원을 정적이고 고착되어진 것이 아니라 발전과 변화가 지속되어지는 것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단순한 의도(single intention)’162)를 가지고 삶 속에서 지속적이고 변화하는 성결을 추구하는 구원관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웨슬리는 ‘명상적 경건(meditative piety)’, 즉 생활을 위한 기도(공적 기도, 사적 기도), 성경 읽기, 금식과 새벽에 기상하기, 모든 공적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고, 이웃 사랑의 실천을 위해서 죄수와 병자를 방문하였으며, 고아와 과부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1732년에 윌리암 로우와의 직접적인 만남과 버리그논(Bourignon), 기욘(Guyon), 페넬론 추기경(Cardinal Fenelon), 피어 포이렛(Pierre Poiret), 몬스의 드 랑테(Mons de Renty)와 같은 사람들의 작품은 웨슬리로 하여금 거룩한 삶에 있어서 규칙들에 대한 커져가는 강박관념을 극복하고자 하는 그의 시도에 힘을 실어준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연합이고, 사랑이 전부라는 것이다.163) 그런데 신비주의의 영향은 웨슬리로 하여금 그가 오랫동안 채택했던 훈련과 규칙의 삶과 신비가들이 강하게 옹호하였던 모든 책무로부터의 면제 사이의 긴장을 초래하였다. 이것이 웨슬리를 곤경에 빠지게 했고 그는 이로 인해 자신이 하나님께 합당하지에 대해서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하이트젠레이터는 웨슬리가 지속적으로 물음을 던져왔던 확실성의 문제 즉 확증의 문제가 더욱 그를 곤란에 빠뜨렸다고 분석한다.164) 구원의 확증에 대한 확실한 근거나 증거가 없다는 딜레마에 빠진 웨슬리는 1735년 10월에 조지아로 선교 여행을 떠난다. 그는 그곳에서 인디안 선교를 통해 구원의 확신을 얻고자 했다.165) 혼란이 구원의 불확실함을 야기했고, 의심이 믿음에 도전을 가했다. 그는 구원에의 확신이 없었기에 미국에 도착하기 약 10일 전인 1736년 1월 25일에 만난 폭풍우로 인해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떨기 시작한다. 이때 그와는 달리 평안한 가운데 평소와 다름없이 예배드리는 독일의 경건주의자들이 있었다.166) 그들은 바로 모라비안들이었다. 이것이 모라비안의 경건에 대한 존 웨슬리의 첫 번째 경험이었고, 훗날 ‘확신(assurance)’에 대한 교리를 강조하게된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웨슬리의 일기를 편집했던 느헤미야 커르낙(Nehemiah Curnock)은 그 폭풍이 초기 감리교에 있어서 결정적 사건 중 하나라고 주장하였고 잉함이(Ingham) 감리교도에서 모라비안으로 전향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해석하였다.167) 1736년 조지아주 사바나 촌에 도착한 웨슬리는 다음날 독일 교회 목사인 스팡겐베르그(August Gottlie Spangenberg)를 만나서 믿음 특히 예수 그리스도와 자신과의 관계에 대한 대화168)를 나눈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웨슬리는 자신이 믿음이 없다는 대답을 한다. 이 대답을 듣고 스팡겐베르그는 “당신은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불충분합니다”라고 응답한다.169) 1737년 12월부터 1738년 1월에 영국으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 다시금 1736년 1월 25일의 상황을 맞게 된다. 거의 영국에 다 왔을 때 다시 한번 죽음의 위기를 맛보는 풍랑 속에서 구원의 확신 없이 두려워하고 있는 자신을 이렇게 회상하였다. 나는 인디안들을 회심시키기 위해서 아메리카로 갔다. 그러나 오 누가 나를 회심시킬 것인가? 이 악한 불신앙의 마음으로부터 나를 구원할 그 분은 누구인가? 무엇인가? 나는 맑게 갠 여름종교를 갖고 있다. 나는 말할 수 있다. 위험이 가까이 없는 한 나는 나 자신을 믿을 수 있다. 그러나 죽음이 나에게 다가올 때 나의 영혼은 고통을 당한다. 나는 죽은 것이 얻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나는 두려워하는 죄를 갖고 있다. 내가 나의 마지막 방적 실을 잣을 때 나는 해변에서 멸망할 것이다.‘170) 웨슬리는 1738년 1월29일 신대륙에서의 경험을 철저하게 뒤돌아보게 된다. 이 때 기록한 일기는 훗날 자신의 영적 상태를 철저히 뒤돌아보면서 기록한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그의 전반적인 회심과정과도 관련이 있다. 조지아에 있는 인디안 원주민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가르치기 위해서 모국을 떠난 지 어느덧 2년 4개월 정도가 흘렀다. 그 동안 나는 나 자신에 대하여 무엇을 배웠던가? 다른 이들을 회심시키려고 미국에 갔음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마저 전적으로 하나님께 회심하지 않았으면서(적어도 약간의 의심이 있는 것) 다른 이들을 회심시키러 미국에 갔단 말인가? ‘내가 이상해 진 것이 아니다. 제정신으로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그 동안 많은 이들이 나를 위로하였듯이), 나는 ‘악마도 그렇게 할 수 있어요’ 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 정도를 믿음이라고 볼 수 있을까? 약속의 계약을 아직 맛보지 못한 상태일 것이다. 예수께서 갈릴리 가나에서 첫 번째로 ‘그의 영광을 드러내셨을 때’, 제자들도 그를 믿었을 지는 몰라도 ‘세상을 이길만한 확신’을 갖고 있지는 못하였다. 내가 원하는 믿음은 바로 이것이다;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서 나의 죄가 용서함 받고 하나님과 화목 되었다는 확실한 믿음과 자신감을 하나님 안에서 소유하는 것이다. ...’171)
지금까지 웨슬리가 1725년부터 1738년까지 어떤 신학적인 여정을 걸었는지 살펴보았다. 이 시기의 웨슬리의 죄 이해의 특성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는 주로 그의 설교이다. 따라서, 그의 죄 이해를 살피기 위해서는 이 시기의 설교가 주 자료가 되어야 한다. 200주년 기념판에 있는 아우틀러가 편집한 웨슬리 설교 중에 이 시기의 설교들은 총 스무편이 있다. 19세기 중반에 웨슬리의 작품들을 모아 편집한 토마스 잭슨(Thomas Jackson)의 전집(Works)에는 이 시기의 설교들이 단지 여섯편172)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웨슬리 자신이 초기의 설교들을 출판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본들의 진정성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기의 설교들은 사본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웨슬리 자신이 십여개의 설교와 몇 개의 단편들을 남겼고, 동생 찰스 웨슬리 또한 그의 형으로부터 받은 사본을 복사해서 남긴 것이 일곱편이 있다.173) 이 200주년 기념판이 나오기 전까지는 잭슨판(Jackson)의 141편의 설교가 웨슬리의 설교 중에 현재까지 전해진 것으로 여겨졌지만, 프랑크 베이커(Frank Baker)와 하이트젠레이터의 연구 결과로 사본으로 존재하는 설교까지 포함해서 웨슬리의 설교가 총151편임이 밝혀졌다.174) 비록 웨슬리 당시에는 출판되어지지는 않았지만 사본으로 남겨진 초기의 설교들은 웨슬리 신학의 태동과 일련의 발달 과정을 연구함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설교들은 젊은 목사로서, 옥스퍼드의 교수175)로서, 그리고 시골 교구의 아버지의 부제로서 기독자의 신앙과 삶에 대한 초기 웨슬리의 관점들이 얼마나 전형적으로 영국 국교회적인가를 보여준다.176) 2. 초기 웨슬리의 죄 이해 초기 웨슬리의 설교들 중에서 당시의 그의 구원관과 관련된 신학적 측면이 강하게 드러나는 설교들은 1730년 11월 1일에 옥스퍼드의 올 세인트(All Saints)에서 처음 설교되어진 “이해력에 관한 전망(The Promise of Understanding)”177)이후의 것들이다. 그 설교들의 공통적 관심사는 참 기독자로서의 내적 성결과 거룩한 삶이었다. 참 기독자로서의 확실성에 대한 물음이었다. 기독자로서의 확실성의 확인은 인간적인 시각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을 뛰어넘는 방법의 사용에 있다.178)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겸손으로 인도하여 믿음으로 걸어가도록 하기 위하여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신다. 인간의 현 상태에 있어서 웨슬리는 창조의 완전성과 타락의 병약성을 비교한다. 하나님의 형상179)으로 피조된 아담은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올바로 향유함으로서 지복(Happiness)의 상태에 있었고 그에게 있어서 실수나 의심은 낯선 것이었다.180) 하나님의 형상 속에서 피조된 인간은 천사보다는 조금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본성은 완전하고 신적이며 천상적인 것이었다.181) 창조의 완전성 속에 있던 인간은 그의 자유를 시험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를 극복하지 못함으로서 타락하게 된다. 즉, 의지의 오용으로 인한 불순종182)때문에 타락하게 된 것이다. 타락의 결과는 먼저 육체적 죽음을 불러왔으며,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형상이 손상되었다. 또한 인간의 이해력에 혼돈과 우둔함이 나타났고, 인간의 의지는 악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었으며 인간의 자유는 악으로 가득찬 노예의 상태가 되었다.183)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히 손상된 자연적 인간은 세상을 향하여서는 살아있고 하나님을 향하여서는 죽어 있다.184)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을 향하지 못하게 되었다. 여기서 웨슬리는 인간의 현 상태, 즉 하나님의 형상이 손상되어진 상태를 병들어 있는 상태로 이해한다. 그리고 특히 원죄를 본성의 생래적 부패(inbred corruption of his nature)185)로 이해했으며 또한 인간 안에 있는 죄성을 병적인 요인으로 보았다. 악한 감정들은 엄청난 사슬일 뿐만 아니라 엄청난 질병이다. 우리의 본성은 병들어 있고 노예상태에 있다. 따라서, 지성은 희미해지고, 마음은 병들게 되었다. 우리의 몸과 혼과 영은 가장 치명적인 병으로 감염되어, 퍼졌고, 가득 차게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질병들, 상처들, 그리고 정화되어야할 종기들로 가득차 있다. 우리의 모든 동물적인 갈망과 악마적 기질, 모든 종류의 정욕, 자만, 이기심은 우리를 죽음에 몰고 갈 상처들이며, 기분 나쁜 종기들의 하나이고 완전한 부패이며 부정함이다.186) 인간의 본성은 병들어 있고 그 본성으로 인한 기질 또한 정화되어져야 할 상태에 있다. 따라서, 인간은 치료되어져야 할 존재이고 약과 의사가 필요한 상태에 있다. 그러나, 자신의 병적 상태를 인식하지 못하고 치료를 거부하게 된다면 인간은 소망 없는 비참한 상태에 처하게 된다. 이제까지 말하여진 것으로부터 살펴보건대, 내적인 질병을 의식하지 못하고, 이 질병의 유일한 치료를 거절하는 사람들의 상태는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몹쓸 병마가 그들을 사로잡았으며, 그들의 심중이 심히 악합니다. 그들의 지각은 어두워졌습니다. 무지와 실수의 구름이 그들의 눈을 가립니다. ... 만일 인간이 자연적으로 타락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 질병을 전제로 해서 나온 치료법과 마찬가지로 이 사실에 근거를 둔 유대교나 기독교와 같은 종교는 헛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187) 따라서, 웨슬리는 이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하나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바로 ‘마음의 할례(the circumcision of the heart)’이다. 이 ‘마음의 할례’는 영혼의 습관적 기질인 성결이다. 성결은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형상대로 새로워진 영혼의 올바른 상태이다. 직접적으로 죄와 영과 육의 모든 오염으로부터 깨끗해지는 것을 의미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덕(이 덕은 겸손, 믿음, 소망, 사랑이다.188))의 결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완전(마5:48)해지는 것이다.189) 그러므로 완전한 율법인 마음의 할례는 마음의 살아있는 희생으로 거룩한 사랑의 불꽃 속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끊임없이 봉헌되어져야 할 것이다. 즉 ‘마음의 할례’는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사랑이며, 마음의 순수한 의도이고, 소명으로 눈을 고정시켜 그 소명에 봉사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할 때에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수 있는 것이다.190)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웨슬리가 본질적으로 행위의 의(works-righteousness)가 아닌 내적 종교(inward religion)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의 참 제자, 하나님께 용인된 상태에 있는 자의 표징은 외적 할례나 세례 혹은 어떤 외적 형태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갱신되어진 올바른 영혼의 상태이다.”191) 하나님 형상의 회복을 위한 첫걸음은 겸손, 바로 자기 인식이다. 그리고 겸손으로 인해 회복된 인간의 이해력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힘입어서 우리의 의지를 회복하게 한다. 회복된 자기 인식을 통해 우리 모두가 어리석고 악하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192) 그것은 바로 믿음과 관련 있다. 이 믿음193)이 인간의 질병을 치유하기 위해서 하늘에서 주어진 단 하나의 약이다. 죄된 인간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통해 주어진 믿음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 즉, 죽음의 문으로부터 온전한 건강함으로 회복되어지며, 우리의 병이 치유되고, 우리의 상처가 회복되고 우리의 불결함이 정화되어져야 한다.194) 그런데, 여기서 웨슬리가 말하는 믿음은 ‘견고한 성이라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강한 무기’(고후 10:24)이다.195) 즉 웨슬리는 믿음은 강한 무기여야 한다는 사실 속에 믿음에 다양한 정도가 있다는 것을 내포시켰기 때문에 그의 관점에서 보면 당연히 참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강한 믿음이 있어야하는가?196)라는 물음이 제기되어진다. 그러하기에 웨슬리는 세상으로부터 난 자와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가 누구인가를 구분 할 수 있는 판단 기준을 제시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는 겸손으로 할례를 받은 자, 믿음으로 할례를 받은 자로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자이고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은 자이다.197) 따라서, 웨슬리는 참 종교의 진정한 열매 혹은 증거인 덕(예수 그리스도의 덕으로 특히 사랑)의 활동과 영혼의 내적 경향의 외적 증거를 검증할만한 수단들을 사용할 것을 권고하며 마음의 할례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오직 믿음’ 뿐만이 아니라 겸손, 소망, 사랑임을 말하고 있다.198) 하나님 형상과 영광스런 자유, 그리고 완전한 건강함의 회복은 우리에게 단하나 필요한 것으로 이들의 향유가 인간 창조의 유일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지는 오로지 우리의 성화 즉, 악한 속박으로부터의 우리의 회복, 이웃 사랑과 우리의 창조자에 대한 우리의 사랑에 있다. 하나님 섭리의 목적도 이것에 있다. 따라서 성령의 모든 사역은 우리의 건강과 자유와 성결을 회복케 한다. 그리고 우리의 강건과 자유와 성결은 우리 본성의 내적 질병과, 자기에 대한 사랑, 이생에 대한 사랑을 치유하는데 목적되어져 있다. 그것들은 우리의 외적 기질에 매일의 양식을 준다. 그럼으로서 우리는 적절한 영양분을 공급받아 우리의 영혼의 건강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회복하게 된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인간의 행복을 완전하게 하는 유일한 필요 조건이다.199) 사랑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고 그의 영광의 광채이며 완전한 자유이다. 사랑은 영혼의 건강이며 영혼의 모든 힘의 완전한 발현이며, 그 능력의 온전함이다. 그런 까닭에 사랑의 향유가 인간 창조의 목적이다 그리고 사랑의 회복이 인간에게 단 하나 필요한 것이다.200) 웨슬리는 이점에 근거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구속의 목적이 바로 인간을 건강과 자유로 회복시키시는 것에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이 목적을 위해 우리 본성의 모든 영적인 병을 치유하시고 우리의 본성을 갱신시키신다201)고 보았다. 웨슬리는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특성 중에 치유자로서의 특성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에 의해서 치유되어가고 있는 기독자가 해야 할 일이 있음을 강조한다. 그것은 제레미 테일러와 토마스 아 켐피스, 그리고 윌리암 로우와 같은 신비 영성가들에 의해서 영향받은 것이다. 우리의 본성의 갱신을 위해 단순한 생각, 순수한 의도에 우리를 고정시켜야합니다. ... 우리는 많은 수단들을 사용해야 합니다. ...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신적인 본성에의 참여자가 되고, 사랑에 의해 작용하고 우리를 하나님과 한 영이 되게 하는 그 신앙에 합당한 지고의 척도를 다시 획득하는 것을 우리의 유일의 관심사가 되도록 하십시오.202) 인간의 회복과 완전을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그의 피를 흘리셨고 성령께서 인간을 돌보신다. 따라서 인간이 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높은 소명의 상급의 표징 즉, 죄의 사슬과 병과 죽음에서 자유와 건강과 영원한 생명으로 향하는 것이다.203) 여기서 웨슬리는 인간이 하나님의 섭리의 참여자이며 파트너가 되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하기에 웨슬리는 당시에 엄격한 규칙과 방법을 세우고 실천하고자 하였다. 지금까지 웨슬리 초기 설교를 통해 구원론 형성의 필요 조건인 죄의 이해를 중심으로 그의 신학을 살펴보았다. 웨슬리는 ‘참 기독교란 무엇인가?’와 ‘자신이 참 기독교인인가’라는 물음 아래 ‘은총에 의한 구원’204)의 교리를 형성해 갔다. 이 시기에 그의 신학적 입장은 그로 하여금 자비와 헌신의 활동들로 특징지어지는 훈련된 삶의 방법들을 활용하게 하였다 할지라도 강조점은 항상 내적 성결이었다. 행위들은 명상적 실천들을 통해 자라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덕들에 대한 증거들이었다.205) 이 당시 웨슬리에게 있어서 구원이란 창조시의 인간의 원상태 즉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진 영적 건강과 영적 자유와 관련 있다. 하나님과 타락한 인간과의 관계회복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은총의 구속적 사역의 목적이었다. 이런 회복은 단지 신자가 사랑을 통해 작용하는 믿음206)을 가질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사랑을 통하여 작용하는 믿음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와 인간의 관계회복은 인간으로 하여금 한층 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그와 함께 동행207)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것은 인간의 현 상황이 부패하고 병들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죄는 바로 인간의 병들고 부패한 본성이다. 따라서, 전에 잃었던 사랑의 순수성을 회복해야 하고, 그리스도의 덕들을 자라나게 함으로써 죄된 경향성을 정화하고 치유해야만 한다. 따라서, 신앙이 가득한 기독자의 삶은 은총으로 충만한 삶이어야 하며, 그는 명상의 실천과 자기 검증, 그리고 기도 등으로 그 덕들을 자라게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성장은 그 덕들의 표징으로서의 헌신과 자비의 활동을 내용으로 하는 규칙적인 삶으로 확증되어져야만 한다. 따라서, 웨슬리는 이러한 관점에서 성서와 초대 교부, 자비의 활동과 헌신적인 묵상, 윤리적인 책임성과 은총의 신학, 규율적인 헌신, 방법론적인 명상, 그리고 웨슬리 자신만의 독특한 기독자의 생각과 삶의 형태를 형성시킨 실천적 경건을 강조한다. 이점이 초기 웨슬리의 신학과 목회의 특징들을 창출하였다. C. 중기(1738~65, 속죄의 법정적 특성의 유입) 1. 역사적 배경 영국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배 안에서의 경험은 웨슬리로 하여금 확증의 문제에 더욱 빠져들게 하였다. 믿음의 증거는 불신앙의 증거와 같은 방식, 즉 내적 감정208)의 문제였다. 이것은 이전에 가졌던 인식을 근거로 하는 확증에 대한 새로운 혼란을 가중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1738년 2월 7일209) 웨슬리는 피터 뵐러(Peter Böhler)와의 만남을 통해 참 믿음은 모든 의심을 제거한다는 것을 더욱 확신한다. 뵐러와의 만남을 통해 구원을 위해서는 단지 믿음만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고, 자신이 지금 불신앙의 상태에 있음을 확신한다. 자신이 불신앙의 상태에 있다고 확신한 웨슬리는 1738년 3월 4일에 뵐러를 만나 설교단을 떠날 결심을 말했을 때, 뵐러는 “믿음이 생길 때까지 설교하시오. 그러다 보면 믿음을 갖게 될 것이고, 그 때부터는 믿음을 설교하게 될 것이요”210)라고 권면한다. 조지아에서 모라비안의 원시 기독교적 모습에 감명을 받은 웨슬리는 이제 뵐러를 통해서 그들의 신학적 명제를 받아들이게 된다.211) 죄와 두려움과 의심을 없애는 확신에 대한 경험의 부족 때문에 웨슬리는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의 상태에 있다고 확실하게 주장할 수 없었다.212) 뵐러는 웨슬리가 자신의 신앙상태를 적절하게 깨닫고 인식하도록 도와주었다. 물론 웨슬리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믿음은 단지 지적으로 인정하는 믿음(assentia)이었다. 하나님께 전 존재를 걸고 신뢰하는 믿음(fiducia)이 체험되지 못한 것이었다. 더군다나 뵐러는 웨슬리에게 순간적인 회심(instantaneous conversion)이 성서적이라는 믿음213)을 주었고, 웨슬리는 증거를 찾으려고 신약성서를 연구하면서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214) 웨슬리는 뵐러와 대화를 하면서 확신을 추구하게 되었다. 웨슬리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이 선결조건임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마음의 확신이 부족했기에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 찰스 웨슬리의 회심 경험은 그로 하여금 확신의 모라비안적인 경험(순간적 구원의 확신)이 자신에게도 멀지 않은 미래에 발생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했다.215) 그러하기에 1738년 5월 34일 저녁의 올더스케잇 체험은 자연적으로 그에게 있어서 이러한 기대가 충족되어진 시간이었다.216) 이 체험을 통해서 웨슬리는 믿음에 정도(a degree of faith)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217) 믿음의 정도에 대한 개념은 웨슬리로 하여금 그가 초기에 신비 영성가들에게 영향받았고 두려움 속에서 확증(assurance)을 추구하게 만들었던 신앙과 불신앙(belief and unbelief)의 이원론을 극복하게 했다. 올더스게이트 체험 이후, 웨슬리는 6월 18일 옥스퍼드의 성 메어리 성당에서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엡2:8)라는 본문으로 설교하였다. 이 설교가 나중에 출판된 그의 설교집 가운데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The Salvation of Faith)”이라는 제목으로 첫 장에 편집되었다. 웨슬리는 그 설교 속에서 여러 가지 유형의 그릇된 믿음, 즉 이교도의 믿음, 악마의 믿음, 심지어는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사도들이 가졌던 믿음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그리고 웨슬리는 최근에 있었던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확신 있게 언급하면서, 죄와 두려움과 죄의 구속으로부터 개인을 구원하는 참 믿음을 현실에서 가질 수 있음을 강조하면서 설교를 끝맺었다. 이러한 믿음은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다. 1746년에 출판된 설교들 중 이 시기부터 설교되어졌던 5편의 설교들218)은 모라비안으로부터 배운 루터의 신앙의인화 복음을 본질적인 중심 내용으로 하고있다. 1738년 6월 4일 웨슬리는 독일의 마린보른(Marienborn)과 헤른후트(Herrnhut)에 있는 모라비안공동체(Moravian communities)를 방문했다. 웨슬리는 그들로부터 많은 것219)을 배웠으며 후에는 모라비안 교도들의 조직유형220) 중 밴드(band)등을 감리교 조직에 활용하기도 하였다. 1738년 9월 17일 새로운 확신을 얻고 영국으로 되돌아 왔다. 그러나 곧바로 웨슬리는 성화를 의인화 안에 함몰시키며 동시에 죄의 용서를 죄에서부터의 자유에 의미로까지 확장시킴으로서 발생할 수 있는 모라비안들의 정숙주의(quietism)와 신앙제일주의를 비판한다. 1739년 가을에 웨슬리는 몰더와 논쟁하였다. 몰더는 페터레인 신도회 내에 참 종교가 없다고 말하면서 모든 은총의 수단(means of grace)을 그만 두어야 하고, 모든 경건의 선행도 그만 두고 대신 시 46:10 말씀에 따라 주님 앞에서 조용히 남아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참 믿음을 가질 때까지 그리스도 이외에는 아무런 은총의 수단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웨슬리는 이러한 주장이 신자들로 하여금 율법폐기론(antinomianism)에 빠지게 만든다고 공격하였다. 악행을 피하는 것, 선행을 실천하는 것, 은총의 수단을 사용하는 것은 삼중적으로 성도의 영성생활에 필요한 것임을 웨슬리는 힘주어 강조하였다. 이점은 모라비안뿐만 아니라 칼빈주의자들221)과의 끊임없는 논쟁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1739년에 웨슬리는 칼빈주의자들의 예정에 관한 교리로 인해 그를 야외 설교단으로 인도했던 옥스퍼드 시절의 제자 휫필드와 논쟁을 시작하게 된다. 당시 휫필드의 부흥 운동 공동체에 퍼져 있던 예정에 대한 교리와 그 교리를 공개적으로 설교해줄 것을 요청하는 분위기222)는 웨슬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두를 위해서 그 자신을 보상으로 주셨다는 것을 선언해야할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웨슬리는 1739년 4월 28일 “값없이 주시는 은총(Free Grace)”이라는 설교를 쓴다. 이 설교는 부분적으로 거의 치유되지 않았던 웨슬리와 휫필드 사이의 개인적 불화로 표시되는 영국 부흥운동의 주요 분열의 표징이다.223) 그는 이 설교를 통해 칼빈주의자들의 관점에 있는 예정에 관한 교리, 특히 유기의 교리(doctrine of reprobation)에 대해 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또한 그 해 11월에 쓰여져서 설교되어진 기독자의 완전 성결에 대한 “기독자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224)과 웨슬리 형제의『찬미와 성시집』(Hymns and Sacred Songs)의 출판은 휫필드로 하여금 웨슬리에게 유감을 표하게 한다.225) 1740년에는 웨슬리는 두 종류의 논쟁 속에 처하게 된다. 하나는 정숙주의와 관련한 모라비안과의 논쟁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1739년에 시작된 예정론에 대한 논쟁이었다. 특히 표준 설교 중에 “은총의 수단들(The Means of Grace,1746)”과 “종의 영과 양자의 영(The Spirit of Bondage and of Adoption,1746)”은 모라비안을 향해 있다. 결국 1740년 7월 18일 웨슬리는 그의 지지자 75명과 함께 페터레인 신도회를 떠남으로서 모라비안과 결별하게 된다.226) 웨슬리는 모라비안의 방법이 성서에 의해 지지 받지 못하는 방법으로 신비주의자들의 이론을 적용한 것이라고 비판한다.227) 예정론자들과의 논쟁 속에서 1740년228)에 아주 특기할 만한 사항이 발견되다. 지속적으로 그의 신학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선재적 은총(prevenient grace)의 개념이 왓츠(Isaac Watts)의 작품을 확장해 발췌한『선택과 유기의 교리에 관한 일련의 고찰들』(Serious Considerations of the Doctrines of Election and Reprobation)이라는 웨슬리의 논문 속에 발견된다. 그는 여기서 무조건적인 유기를 강하게 거부하고 있으며, 또한 하나님의 은총의 소명을 경청하게 하는 모든 이에게 주시는 하나님에 의해, 그리고 그 구원을 받도록 하는 믿음에 의해 주어지는 권능의 내적 충족함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229) 또한 1741년에 웨슬리는 “기독자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이라는 설교 속에서 구원은 우리 안에 있는 손상되어진 하나님의 형상의 전적인 회복이고 그 완전함은 죄를 짓지 않는 우리의 소극적인 힘의 회복이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적극적인 힘의 회복이라는 것을 피력한다.230) 이런 예정의 교리에 대한 견해의 차이는 1741년에 당시 영국의 부흥운동 진영을 분열시킨다. 여기 첫 번째 분열이 있었다. 그 분열 중에 우리는(warm men)는 휫필드씨로 하여금 단지 의견의 차이임을 설득하고자 했다. 사실 보편적 구속을 믿었던 이들은 전혀 분리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한된 구속을 믿었던 이들은 그런 치명적인 오류 속에 있는 이들과는 결코 친분을 맺을 수 없다는 결론으로 인해 어떤 화해에도 귀를 기울이지 안았다. 그래서 현재 두 종류의 메소디스트가 있는 것이다.231) 1740년부터 1741년 사이에 있었던 예정론 논쟁은 웨슬리에게 예정론을 ‘본질적’ 교리의 측면 속에 놓게 했지만, 신학적 사유가 더욱 성숙되어진 1770년대에 그는 예정론을 하나의 ‘의견’으로 분류한다.232) 사실 웨슬리의 주요 관심사는 신자 안의 ‘마음과 삶의 성결’의 배양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 성장을 방해하는 것들에 반대를 한 것이다. 웨슬리는 이런 성결의 삶을 위해 야외 설교, 성서주해, 속회 조직, 은총의 수단들을 활용하였다. 이런 그에게 성결의 삶에 큰 방해물인 칼빈주의의 율법폐기론적 경향과의 논쟁은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1746년에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faith alone)’에 관한 설교들을 중심으로 편집한 설교집 속에서도 ‘거룩한 삶’을 강조한 “성령의 첫 번째 열매(The First Fruits of the Spirit)”에서는 죄의 법정적인 측면과 치유적인 측면의 조화의 노력233)이 시작된다. 이 노력은 그의 평생을 통해 지속되었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신자의 죄의 문제에 관한 중기 웨슬리의 견해는 1761년에 쓰여진 “기독자의 완전에 대한 더 깊은 고찰들(Father Thoughts upon Christian Perfection)”과 1762년의 “방황하는 생각들(Wandering Thoughts)”, 1763년에 쓰여진 “신자 안에 죄(Sin in Believers)”라는 설교들 속에서 알 수 있다. 또한, 1767년에 쓰여진 “신자의 회개(The Repentance of Believers)”에서는 원숙되어진 웨슬리의 견해를 알 수 있다. 여기서 웨슬리는 과정으로서의 완전과 관련되어진 신자의 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또한 “방황하는 생각들(Wandering Thoughts,1762)”이라는 설교에서 웨슬리는 ‘방황하는 생각들(Wandering Thoughts)’이 소위 적절한 죄의 종류에 포함되어져서는 안되다고 밝히고 있으며 의지적인 죄와 무의지적인 죄를 구분한다. 1748년에 두 번째로 출판되어진 설교들에서는 본격적으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faith alone)’과 ‘거룩한 삶(holy living)’이라는 웨슬리 신학의 두 축을 조화시키고자 노력한다. 이 설교들 중에 “거듭남의 표징들(The Marks of The New Birth)”,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들의 위대한 특권(The Great Privilege of those That are Born of God)”에서는 거듭남과 의인화를 구분한다. 그러나, 여전히 세례에 어떤 은총적 힘이 항상 작용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더스케잇 체험은 웨슬리로 하여금 거듭남이 의인과 확증에 관련이 있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따라서, “마음의 할례(The Circumcision of The Heart)”에서 마음의 변화를 세례와 연관지었지만, 여기서는 복음적 회심과 연관시킨다.234) 또한 1748년과 1750년에 출판되어진 그의 열세편의 산상 수훈 설교들은 신앙 의인화의 열매로서 기독자의 삶을 다루고 있는데 그 목적은 의인화의 믿음과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사이의 균형과 통합에 있었다.235) 1750년에 세 번째로 출판된 웨슬리 설교문들 중에 세 편은 도덕법, 다른 세 편은 영국 국교회와의 관련 속에서 형성되어진 것들이다. ‘내재적인 의(inherent righteousness)’ 때문에 ‘믿음에 의한 구원’과 ‘거룩한 삶’에 대한 웨슬리의 미묘한 균형잡기는 가장 큰 잠재적인 위험을 발생시켰다. 그 위험은 바로 도덕주의이다. 따라서 웨슬리는 “율법의 기원, 본질, 특성들, 그리고 용법(The Original, Nature, Properties, and Use of the Law)”, “믿음에 의해 세워지는 율법, 논의 1,2(The law Established Through Faith, Discourse Ⅰ&Ⅱ)”라는 설교를 통해 율법과 복음의 역동적인 상호 의존을 다루고 있다.236) 1740년 여름부터 웨슬리의 저술을 도운 토마스 리차즈(Thomas Richards)와 토마스 웨스톨(Thomas Westall)은 사실 웨슬리가 요구할 때 어디에나 가서 설교하는 전임 평신도 설교가였다.237) 이러한 평신도 설교가들이 1745년에 이르러서는 무려 오십여명에 이르게 되었고 1749년 연회 후 순회설교제도를 만들면서 협동 설교가들의 임무가 정해졌다.238) 감리교 운동이 점차적으로 평신도 운동의 형태를 띄어 감에 따라 영국 국교회는 이전에 있었던 종교적 갈등이 다시 시작되어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의 시각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영국 국교회의 이러한 우려와 관련해 웨슬리는 “열광주의의 본질(The Nature of Enthusiasm, 1750)”이라는 설교에서는 감리교 운동이 광신주의(fanaticism)와 동일한 의미의 열광주의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이고자 했으며,239) “편협한 신앙에 대한 주의(A caution against Bigotry,1750)”에서는 당시 국교회에서 발생했던 평신도 설교가들을 세움으로서 또 다시 종교적인 분열이 일어날까 걱정하는 경향에 대하여 그 걱정이 기우임을 말하고 있다.240) 또한 “보편 정신(Catholic Spirit,1750)”에서는 자신의 신학 방법론이 영국 국교회의 신학방법론인 비교리적인 신학방법론의 전형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웨슬리는 ‘핵심교리’와 ‘의견’과의 차이를 분명히 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 시기에 칼빈주의자들과의 예정론에 관한 논쟁과 관련이 있다. 반면에 그의 말년에 쓰여진 설교인 “신적 존재의 통일성(The Unity of the Divine Being,1789)”에서는 핵심 교리와 의견의 사이의 구분이 그리 엄격하게 나타나고 있지는 않는다.241) 이것은 그의 말년에 칼빈주의자들과 화해의 노력과 관련 있다. 18세기 예정에 관한 논쟁 중에서 가장 중요한 논쟁 중에 하나는 옥스퍼드 시절에 그의 학생이었던 허비(James Hervey)242)와의 저술 교환이었다. 이 저술 교환은 웨슬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의에 관한 교리를 확립하게 한다. 허비의 주요 작품은『테론과 아스파지오』(Theron and Aspasio)243)로서 세 권으로 되어 있다. 주로 성서에 관한 교리들, 원죄, 속죄, 그리고 특히 그리스도의 덧입혀지는 의(the imputed righteousness of Christ)에 관해 다루고 있다. 사실 웨슬리는 허비의『테론과 아스파지오』의 많은 부분을 긍적적으로 보았고 높이 평가했다. 테일러 박사(Dr. John Talyer)의 잘못된 관점에 반대하여 1756년에『원죄에 관한 교리』(The Doctrine of Original Sin, according to Scripture, Reason, and Experience)를 출판했을 때, 웨슬리는 “허비씨의 대화들 속에는 이 주제에 대한 매우 탁월한 언급들이 있다.”고 쓰기도 했다.244) 또한 익명의 저자로부터 허비가 공격받을 때에도 웨슬리는 그를 옹호하기도 한다.245) 그러나 웨슬리는 허비의 ‘그리스도의 덧힙혀진 의’의 특수한 구절의 사용에 강하게 반대한다. 왜냐하면 허비의 의와 의인화에 대한 견해는 비성서적고 성화와 성결을 취약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웨슬리는 허비의 율법폐기적인 경향을 경계246)했던 것이다. 웨슬리의 논적이었던 허비(James Hervey)는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성하신 이래 어떤 성도도 율법을 성취할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웨슬리는 이러한 율법폐기론은 하나님을 죄의 창조자(죄 짓게 만드는 분)로 만든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의를 덧힙혀지는 동시에 내재적인 측면에서 살피게 된다. 하나님의 의에 동참하는 것은 우리의 죄악 된 본성이 갱신되어 하나님의 형상, 곧 의로움과 성결함에 동참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247) 완전한 기독자는 하나님의 본성의 파트너이며 동참자가 된다. 웨슬리는 말했다. “당신의 완전한 본성의 파트너로 나를 당신 안에 있게 하소서, 새로운 죄 없는 피조물로.”248) 오직 사랑만이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를 확신시켜 준다. 결국 그리스도를 통한 신자의 의는 덧입혀졌을(imputed) 뿐만 아니라 내재적이(inherent)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내재적인 의는 하나님이 우리를 용납하시는 근거가 아니라 덧입혀지는 의의 열매이며 결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덧입혀진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그 의를 심어(implant)주신다.249) 이것이 신자의 실제적인 변화로서의 성화와 연결되어지는 것이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원죄에 대한 교리는 지극히 중대한 문제였기에 1756년에 비국교도 목사인 테일러 박사의 원죄 교리에 대응하여 방대한 양의 논문『원죄에 관한 교리』(The Doctrine of Original Sin, according to Scripture, Reason and Experience)을 저술한다. 원죄(Original Sin)에 대한 테일러 박사의 논문은 계몽주의 시대에 있어서 이 교리의 타당성에 대한 심각한 도전을 주었고 인간에 대한 극단적인 낙관주의를 피력하였다. 이런 이유로 웨슬리는 원죄에 관한 논문을 쓴 것이다. 그러나 웨슬리의 원죄에 관한 논문은 너무도 방대했기에 몇 년 후에 이 교리를 요약하여 독자들이 읽기 쉽게 “원죄(Original Sin,1759)”라는 설교를 출판한다.250) 그는 이 설교 속에서 원죄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표명한다. 웨슬리는 “원죄(Original Sin)”라는 설교 이후로 칭의와 거듭남 이후의 신자의 죄에 관해서 다시 집중하고 있다. 1760년부터 1763년까지 작성하고 출판한 설교들 중의 상당수가 더욱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과 ‘거룩한 삶’의 긴장 관계를 조화시키고자 신자 안에 남아 있는 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의 설교 “거듭남(The New Birth,,1760)”은 초기 웨슬리의 견해였던 전통적인 영국 국교회 구원론에서 원죄에 대한 일반적인 치료약이 항상 교회에 있고 세례의 성례전에 있다는 관점에서 벗어나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그는 거듭남을 복음적인 회심과 연관시키고 있다.251) “황야의 상태(The Wilderness State,1760)”에서는 기독자의 영적인 순례의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어려움과 확증 추구에 있어서 일어나는 종교적 두려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황야의 상태’는 회심전의 거듭나기 이전의 상태이다. “많은 유혹들로 인한 영적 무거움(Heaviness through Manifold Temptations,1760)”에서는 영적 어둠(실제적인 믿음의 상실과 기쁨의 전적인 상실, 신앙에서 불신앙으로의 퇴보)과 영적 무거움(종교적인 의기소침)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신자가 종교적 우울로부터 영적인 어둠, 즉 죄악된 절망으로 빠지는 것을 피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252) “자기 부인(Self Denial,1760)”과 “악한 말에 대한 치유(The Cure of Evil-Speaking,1760)”는 성화의 과정 속에서 신자가 신앙에서 불신앙으로의 퇴보를 막기 위한 기독자의 삶 속에서의 프로그램적 요소들을 다루고 있다. 1750년대 말부터 1760년대 초에 웨슬리는 부흥 운동에서 발생하는 완전 경험에 대한 흥미를 가지고 그의 신도회에 있는 많은 이들이 완전 경험을 증언하고 있음을 기록했다.253) 그런데 이런 현실 세계에서의 완전 경험을 극단적으로 끌고나간 열광주의자들이 있었다. 그들 중에 대표적인 인물은 조지 벨(George Bell)과 토마스 멕스필드(Thomas Maxfield)였다. 그들은 신도회 내부의 인물들로서 의인화와 자기 검증, 개인기도 등을 평가 절하했다. 또한 이성과 지식, 지혜를 가볍게 여긴 반면에 감정과 내적 인상, 그리고 상상 등을 과대 평가함으로서 열광주의와 율법폐기주의의 특성을 가지게 되었다. 이들과의 논쟁이 정점에 다른 것은 1763년이었다.254) 조지 벨과 토마스 맥스필드에 의한 혼란은 많은 설교자들로부터 웨슬리에게 완전 교리를 가르치는 것을 중단할 것을 요청하였고 또한 웨슬리로 하여금 칼빈주의자들로부터 대단한 비난과 공격을 감수하게 했다. 그러나 웨슬리는 이것이 “이 땅에 완전의 교리를 몰아내려는 악마의 계략”255)이라고 하면서 조금도 흔들림 없이 완전 교리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였다. 그는 설교자들에게 이 교리를 담대하게 설교하라고 촉구했고 만약 이 교리를 반대하거나 설교하지 않는 설교자가 있다면 그를 면직시켜야한다고 선언했다.256) 웨슬리의 설교 “성령의 증거 담화 1, 2(The Witness of the Spirit Discourses Ⅰ&Ⅱ,1746, 1767)”가 이런 열광주의적 경향의 경계를 목적하고 있다.257) 이 논쟁을 통해서 완전을 지향점으로 하는 그의 구원관이 확고하게 체계적으로 정립되기 시작한다. 모라비안과 칼빈주의자들 그리고 극단적인 열광주의자들과의 논쟁의 중심에는 완전에 대한 이해의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이 완전에 대한 이해의 차이를 야기했던 아주 중요한 요소들 중에 하나가 죄 이해258)의 차이였다.
2. 중기 웨슬리의 죄 이해 초기의 웨슬리는 제레미 테일러와 토마스 아 켐피스 그리고 윌리암 로 같은 신비영성가들에 의한 영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특성 중에 치유자로서의 특성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인간의 죄를 치유적인 면에서 보아 인간의 현실을 치료받아야 될 것으로 인식했다. 이러한 상황에 있던 웨슬리에게 모라비안과의 만남, 특히 피터 뵐러와의 만남은 그의 신학과 삶의 한 전기를 마련해 준다. 웨슬리는 피터 뵐러로부터 ‘순간적인 회심에 의한 구원’259)과 확증에 대한 갈망이 용서의 확증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 확증의 결과로 죄, 의심,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하여 평화와 기쁨과 신뢰로 가득 차게되는 경험을 원하였고 결국에는 올더스케잇의 체험이 그의 이러한 갈망을 채워주게 되었다. 결국 웨슬리는 모라비안을 통한 루터 신학과의 만남으로 속죄의 법정적인 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738년 이전의 설교에서는 속죄에 대한 법정적인 관심이 거의 나타나 있지 않지만 올더스케잇 체험이후의 설교들에서는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한 관심과 그 결과로서의 죄책으로부터의 용서가 강조되고 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웨슬리의 믿음에 대한 이해가 바뀌게 되는데 초기의 웨슬리가 당시에 이성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단지 하나님께서 계시하는 것에 대한 동의260)로서 이해했다면 1738년 이후의 웨슬리는 기독자의 믿음을 동의에다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심정적인 신뢰를 수반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이란 그리스도의 복음 전체에 대한 동의일 뿐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의 보혈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 즉 예수의 생명과 죽음과 부활의 공로를 신뢰하고 우리를 위하여 ‘자기를 버리고 또한 우리 안에 살아 역사하시는 우리들의 대속이시요 생명이신’ 그리스도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입니다.(이것은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하여 그의 죄가 용서받고 하나님의 사랑에 화해되었다는 확실한 자신입니다.) 마침내 우리는 우리의 ‘지혜와 의와 성결과 구속’, 한 마디로 말해 우리의 구원이신 그에게 가까이 하여 결국 접붙여지는 것을 말합니다.261) 초기 웨슬리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법정적인 측면의 속죄에 대한 관점의 출현은 그의 구원에 대한 여정에 있어서 신앙 의인화(Justification by Faith)의 종교 개혁적 전통에 대한 수용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초기 웨슬리에게 있어서 핵심적인 사항이 아니었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의 구원론에 있어서 핵심적인 측면262)에 서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부분은 웨슬리가 윌리암 로우와 같은 신비 영성가들에게서 배우지 못했던 것이었다. 결국 올더스케잇 체험 이후의 구원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게 된다. 그 구원은 현재적인 구원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모든 죄로부터 인간을 구원하신다. 믿음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는 죄책과 죄의 힘, 즉 아담의 원죄의 죄책과 자신의 행위의 죄책, 과거와 현재의 죄로부터 구원받는다. 이것이야말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입니다! 이는 현세에서도 얻을 수 있는 구원입니다. 죄로부터의 구원과 그 죄의 결과에서의 구원을 일컬어 종종 칭의(Justification)란 말로서 표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광의(廣義)로 취할 때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지금 그를 믿는 죄인에게 이뤄지는 죄책과 형벌에서의 해방을 뜻하며 또한 그 신자의 맘속에 형성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전체)에서의 해방을 의미합니다.263)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그리스도가 인간들의 죄에서 그들을 구원하신다고 할 때 그 범위가 전체라는 것은 그들의 외적인 죄 뿐만 아니라 악한 생각과 악한 기질을 포함한 그들의 심정의 죄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점이다.264) 결국 이 시기에 웨슬리는 칭의에 성화의 개념까지 포함하였다. 이것은 속죄의 법정적인 개념과 치유적인 개념의 조화가 이루어지고 있지 못함을 반증하는 사실이다. 죄와 속죄의 법정적인 개념을 루터식 모라비안의 신학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받아들였던 웨슬리는 1740년대의 믿음의 정도가 있다265)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던 모라비안이 구원에 있어서 오로지 칭의적 개념만을 주장하는 것에 대한 한계를 인식한다. 따라서, 웨슬리는 옥스퍼드 시절의 성결의 삶에 대한 성화적인 측면을 다시금 강조하게 된다. 웨슬리는 구원의 길(via salutis)에 구별적인 단계로서 의인화와 성화를 구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기독자의 경험의 범위 내에 유아기로부터 성숙기로까지의 성장이 있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감히 어떤 사람들이(모라비안) 그랬던 것처럼 이 모든 구원이 즉시 주어진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사실 하나님의 자녀들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은 순간적일뿐만 아니라 점진적이다.”266) 비록 웨슬리는 1740년대 초에 ‘90퍼센트 기독교인(Almost Christian)’과 ‘온전한 기독교인(Altogether Christian)’을 매우 날카롭게 구별267)했지만 1745년 연회에서 그는 그 설교가 완전히 적절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감리교 설교가들에게 충만한 성화의 상태를 고양시키기 위해서 의인화를 평가절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268) 이때부터 웨슬리는 죄책으로부터의 구원과 죄의 힘으로부터의 구원을 구별하기 시작했다.269) 그리고 이런 구별은 죄의 뿌리로부터의 구원이라는 다음 단계인 온전한 성화, 즉 완전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가능케 한다. 구원에 있어서의 칭의적인 면과 성화적인 면의 혼동은 웨슬리의 죄와 속죄의 이해에 있어서 법정적인 면과 치유적인 면의 긴장관계를 가지고 온다. 이것은 올더스케잇 체험 이전에는 죄의 치유적인 면만을 강조하다가 모라비안의 만남과 올더스케잇 체험은 그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혈을 통한 죄의 법정적인 용서에 대해 강조를 하게 하지만 결국 거룩한 삶이라는 포기 할 수 없는 기독교 전통의 한 축270)으로 이 둘 사이의 긴장관계가 발생한다. 죄의 무거운 짐을 견디기 어렵게 느끼는 병든 사람들이 의사를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 밑에서 신음하고 있는 죄 있는 자들이 용서를 필요로 합니다. 사상, 말, 행위에서의 그들 자신의 불신앙 때문에 하나님에게만이 아니요 그들 자신의 양심에 의해서도 무수한 증인들에 의해서와 마찬가지로 이미 유죄로 선고받고 있는 자들이 큰 소리로 예수 안에서의 속량을 통하여 “불경건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부르짖어 찾는 것입니다.271) 그러나 여기서 분명한 것은 여전히 속죄의 법정적인 면의 우선성이다. 죄책으로부터의 용서에 대한 강한 강조가 우선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우선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죄의 용서를 받기 이전에는 인간 본성의 치유와 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무가 썩어 있을 때는 열매도 썩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그 가운데 부어지기 전에는 필연적인 마음의 본질적 죄악성 때문에272) 병의 회복에 합당한 표징이 나타날 수 없다. 믿음에 의한 구원이 모든 죄에 대한 구원273)이라는 웨슬리의 동의는 한가지 문제를 발생시킨다. 그것은 바로 신자들 속에 남아 있는 죄의 문제였다. 즉, 의인과 거듭남 후에도 실재하는 신자 안의 죄의 문제였던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믿음을 이미 소유하였지만 그들의 죄책의 기억이 남아 있고, 여전히 끊임없는 단점들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였다. 즉 의지적 죄와 무의지적인 죄 그리고 행위의 죄와 내적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의 실질적인 문제에 기인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웨슬리가 루터적인 해결 즉 ‘의인인 동시에 죄인(simul justus et peccator)’이라는 개신교의 전통적인 해결방법에 동의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발생하였다. 웨슬리는 단지 신앙 의인화의 용서라는 속죄의 법정적 측면의 해결에만 만족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루터의 신자 안의 죄에 대한 소극적인 대처는 웨슬리 신학의 또 다른 한 축인 ‘거룩한 삶(holy-living)’과 상충되는 것으로 지상의 완전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게 하여 율법폐기주의적인 경향에 빠지기 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웨슬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기존의 두 극단274)과는 다른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따금 신자가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그의 판단(sight)을 잃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이따금 어떤 어둠이 그로 하여금 볼 수 없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가 속죄의 보혈 속에 있다는 것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는 내적으로 책망 받아 다시 죽음의 선고를 받을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해진다면 저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겠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자비를 보지 못한다면 그는 신자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하나님의 빛이 영혼을 비춘다는 의미에서 빛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누군가 이 빛을 잃어버리는 한 그는 그 순간 믿음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결코 그리스도 안에 참 신자는 믿음의 이 빛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것(믿음)을 잃어버리는 한 그 순간 그는 다시 유죄 판결로 떨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현재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의 이름을 믿고 있는 이들의 경우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성령을 믿고 따라가는 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혹은 그들 자신의 마음을 정죄하시지는 않습니다.275) 웨슬리는 여기서 성도 견인의 견해로 인한 율법폐기주의적 경향과 과도하게 양심에 의존하는 경향들에 반대하여 제 3의 단초를 제안한다. 제 3의 단초라는 것은 믿음의 빛으로서의 확신(assurance) 은총이었다. 이 은총은 잃어버릴 수도 있고 되찾을 수도 있다. 중요한 구별점은 의지적인 죄들과 관련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의 신자들은 죄의 지배로부터는 벗어나지만 여전히 내적 죄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276) 따라서, 성령과 함께 걸어야하고 불완전한 순종을 통해 그들의 신실함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려야만 한다. 즉 기독자는 하나님의 은총에 기대어 죄를 회개하면 항상 용서받을 수 있다는 확신과 성령의 은총이 함께한다는 확신 속에서 성령과 함께 걸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죄의 남음(remains of sin)’을 회개하지 않으면 바로 다시 타락하는 의지적인 죄들이 그에게 발생하기 때문에 신자들은 항상 깨어있어야만 한다. 따라서 이 때부터 웨슬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faith alone)’과 ‘거룩한 삶(holy living)’의 긴장 관계의 해소를 그의 신학과 설교의 중심주제로 삼았다. 이 문제에 대한 고찰은 바로 신자의 남은 죄(죄악성)에 대한 문제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748년 웨슬리는 신자의 남은 죄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결정적인 해결의 단초를 제공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들의 위대한 특권(The Great Privilege of those That are Born of God)”이라는 설교에서 웨슬리는 관계적 변화로서의 의인화와 실질적인 변화로서의 거듭남을 구분하면서 ‘소위 적절한 죄’와 ‘다른 결점’ 사이에 대한, 즉 의지적인 죄와 무의지적인 죄에 대한 조심스러운 구별을 시작한다. 그리고 외적 죄와 내적 죄에 대한 관계를 이야기하고 다윗, 바나바, 베드로의 예를 들면서 신자가 외적인 죄에 빠지는 논리적인 순서를 설명한다. 내적 죄와 유혹에 넘어감으로서 믿음을 상실하면 결국에 신자는 외적 죄를 짓게 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웨슬리에게 있어서 칭의와 거듭남 후에 믿음의 열매로서 이해되어지는 기독자의 삶은 매우 중요한 주제가 된다. 그리고 칭의의 은총으로 인해 하나님께 법정적으로 죄 사함을 받은 신자에게 타락하고 부패한 본성의 치유는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따라서 웨슬리는 13편의 “산상 수훈 설교(Upon Our Lord's Sermon on the Mount 1-13)”에서 의인화의 믿음과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사이의 균형과 통합을 이루고자 하였다.277) 그런데 이런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과 ‘거룩한 삶’에 대한 웨슬리의 미묘한 균형 잡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인한 심기워진 내재적인 의(inherent righteousness) 때문에 도덕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 따라서 웨슬리는 율법과 복음의 역동적인 상호의존을 주장하였다. 웨슬리는 율법의 기원을 하나님 형상을 소유한 인간이 타고나는 도덕적 감각으로 보고, 율법에 기독론적인 본질이 있다고 보았다. 또한 율법의 특성은 성결과 의와 선이며 이 율법이 신자를 확신시키고, 회심시키고, 유지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278) 따라서 율법을 무용하게 만들지 않고 세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율법을 무용하게 만드는 방법은 설교자가 율법을 설교하지 않는 것이며, 믿음이 성결의 필요성을 대신한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리고, 마치 믿음은 성결과 상관없는 것인 양 삶을 사는 것이다.279) 믿음으로 율법을 세우는 방법은 완전한 범위에서 우리의 교리(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에 의한 성서적 교리)를 설교함으로 우리의 위대한 선생님이 지상에 계셨을 때 하셨던 것처럼 율법을 설명하고 강화시키는 것이며, 성결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믿음에 의한 구원’을 설교하는 것이고, 기독자의 심령과 삶 속에서 거룩한 삶으로 율법을 증거하는 것이다.280) 결국 웨슬리에게 있어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은 믿음에 의한 구원의 결과이다. 신자의 죄의 남음의 문제는 원죄의 결과인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 기인한다. 원죄의 결과로서 ‘전적 타락’이라는 부분은 종교 개혁가들과 같은 견해를 가지지만 원죄의 죄책에 관한 문제에서는 그들과 다른 견해를 가진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보편적인 은총으로 인해 아담의 죄책으로부터 모든 인간이 벗어났다. 따라서 원죄로 인해서 인간에게 남아있는 실질적 문제는 아담의 죄로 인한 인간 본성의 타락과 손상의 문제뿐이다.281) “어떤 어린아이라도 아담의 죄에 대한 죄책으로 인하여 지옥에 갔거나 갈 어린아이는 결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세상에 왔을 때 그리스도의 의로 인하여 아담의 죄책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282) 그러므로, 형벌로서의 영원한 죽음은 원죄의 죄책에 기인한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의 문제이다. 결국 기만, 탐욕, 정욕과 같은 행위의 죄는 우리의 타락한 본성으로부터 발생하지만 하나님의 보편적인 은총 덕택에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283) 그러하기에 웨슬리는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선택을 따른다면 악으로 향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은총에 의해서 우리는 이 경향성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혹은 그것을 선택해서 결국에는 행위의 죄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284) 결국 본성의 죄악된 타락성과 행위의 죄 사이의 관계는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의 응답 가능성에 대한 전제가 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올더스케잇 체험 어간에 죄책의 문제, 즉 법정적인 속죄의 관점에 집중하였던 것이 이제는 그 중심 주제가 속죄의 치유적인 관점으로 무게 중심이 바뀌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을 병자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치유자로, 죄를 병으로 보는 관점에서 치유적인 죄의 특성을 더욱 강조하는 관점으로 무게 중심이 서서히 전이되기 시작한다. 우리는 종교의 고유한 본질이 무엇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 종교의 고유한 본질이 무엇인가를 이 사실을 통해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본질은 θεραπεία ψυϰής, 즉 병든 영혼을 고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영혼의 위대한 의사는 그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또한 모든 기능 전체가 전적으로 부패한 인간의 본성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약품을 제공하십니다... 분명한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하나님의 일들을 믿는 신앙을 주심으로써 그 병을 고치십니다. 특히 중요한 사실은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회개와 겸손한 마음을 통하여 교만이라는 치명적인 병이 치료됩니다. 아집이라는 치명적인 병은 하나님의 뜻을 온유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복종하는 용기로서 달성된 단념으로 인해 치료받게 됩니다. 병의 줄기가 되는 모든 종류의 세상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 최상의 치료제입니다. 그리하여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바로 참된 종교입니다. 사랑은 진정으로, 온유한 겸손 가운데에서 작용하며, 이 세상에 대해 완전히 죽는 것이며, 하나님의 모든 뜻과 말씀을 사랑과 감사에 넘쳐 순종하며 헌신하는 것입니다. ... 당신은 종교의 위대한 목적이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새롭게 하는 것이며 또한 우리 조상들의 죄로 인해서 완전하게 상실되었던 참된 거룩함을 회복하는데 있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 당신의 병을 아십시오! 그리고 이 병의 치료법을 아십시오. 그러므로 ‘여러분은 다시 나야 합니다’ 하나님에 의해 태어나야 합니다. 날 때부터 당신은 전적으로 부패하였습니다. 이제 당신은 은혜로 말미암아 다시 온전히 새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당신은 모두 죽었고 두 번째 아담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살아나게 됩니다. ‘여러분은 죄 중에서 죽었지만 그리스도께서 살려주신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삶의 원리, 곧 당신을 사랑하셔서 당신을 위해 자신의 몸을 주셨다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주신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 당신의 모든 병이 치료되었고, ‘모든 마음속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온전히 품을 때까지 믿음에서 믿음으로 나아갑시다.’285) 인간의 타락한 본성은 칭의와 거듭남의 순간에 치유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치유의 시작으로서의 거듭남은 회심과 관련 있다.286) 거듭난 후에 신자는 완전히 자신의 병이 치유된 것은 아니기에 그에게는 지속적인 영적 순례의 과정이 필요하다. 회심 이전의 ‘황야의 상태(The Wilderness)’에서 확신 경험 후의 칭의와 거듭난 자는 자신의 생래적 죄, 즉 본성의 전적인 부패에 대해 더욱 확실히 인식하게 된다.287) 이런 부패성에 대한 인식 때문에 신자에게 종교적인 의기소침인 영적 무거움이 찾아온다. 중요한 것은 이 영적 무거움이 영적 어둠, 즉 실제적인 믿음의 상실과 기쁨의 전적인 상실로 바뀌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288) 하나님께서 이런 영적 무거움이라는 유혹을 그의 자녀들에게 허락하는 이유는 그들의 믿음과 자라나는 믿음에 비례해서 성장해 가는 소망과 사랑을 시험하기 위해서이며 결국에는 내적인 성결을 위해서이다.289)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는 거듭남의 은총의 역사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다. 거듭남의 은총의 역사 후에도 신자에게는 여전히 죄악성이 남아 있기에 두 개의 상반되는 세력 곧 ‘자연과 은총’, 사도 바울의 용어를 따르면 ‘육과 영’이 공존하게 된다. 그런 까닭에 그리스도 안에서의 어린이들이 거룩하여졌다 하지만 이는 부분적이다.290)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영적인 성장과 치유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들은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는 그 순간 새로워졌고 깨끗해졌고 정결해졌고 성별 되었을지라도 우리는 아직 온전히 새로워지고 온전히 깨끗해지고 온전히 정결해지지는 못한 것입니다. 육과 악한 성질이(비록 정복은 되었지만) 아직도 남아 있어 영과 더불어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다 더욱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함에 있어서 우리의 모든 성실을 사용합시다. 그만큼 더욱 우리는 안에 있는 원수에 대항하여 깨어 기도하되 간절히 합시다. 그럴수록 더욱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 우리가 혈과 육과 싸우고, 또한 정사와 권세와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과 싸울지라도 이 모든 것을 다 이룩하면서 이 악한 세대에서 견디어 굳게 설 수 있도록 하십시다.291) 결국 중기 웨슬리의 대부분의 설교의 주제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과 ‘거룩한 삶’의 조화에 역점을 두었다. 즉 초기에는 죄의 치유적 관점에서의 ‘거룩한 삶’ 중심적인 신학과 목회적 초점을 두었지만 올더스케잇 체험으로 인해 웨슬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이라는 전통적인 종교 개혁의 모토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는다. 그러나 웨슬리는 곧바로 극단적인 신앙제일주의가 정숙주의나 율법폐기주의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여 알게 된다. 이런 까닭에 웨슬리는 초기에 지향했던 ‘거룩한 삶’의 비전과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비전을 조화시키고자 한다.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가 단지 법정적인 면만 혹은 치유나 회복적인 면만을 가진 것이 아니라 법정적이며 동시에 치유적인 면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D. 후기(1765~91, 죄와 속죄의 치유적인 특성과 법정적 특성의 조화) 1. 역사적 배경 웨슬리는 모라비안의 정숙주의자들과의 논쟁, 예정론자들과의 논쟁, 열광주의자들과의 논쟁을 통해 그의 신학을 성숙시켜 나갔다. 또한 1760년대 중․후반부터 그의 신학의 핵심인 구원의 길(via salutis)이 보다 명확하게 정립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저작들을 쓰고 출판해낸다. 이 시기에 쓰여진 웨슬리의 중요한 설교와 교리적 에세이는 “구원의 성서적 길(The Scripture Way of Salvation,1765)”, “주님 우리의 의(The Lord Our Righteousness,1765)”, “기독자의 완전에 관한 평이한 해설(A Plain Account of Christian Perfection,1766)”, “성령의 증거, 담화 2(The Witness of the Spirit, Discourse Ⅱ,1767)”, “신자의 회개(The Repentance of Believers,1767)”등292)이 있다. 그는 여기서 자신의 신학의 두 축인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과 ‘거룩한 삶’의 성숙한 조화를 이끌어내고 있으며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와 그 역사 속에서의 인간 상황의 변화와 책임성을 조리 있게 이끌어내고 있다. 특히 “구원의 성서적 길(The Scripture Way of Salvation,1765)”, “주님 우리의 의(The Lord Our Righteousness, 1765)”는 웨슬리의 이정표적인 설교들이다. 이 설교들에서 웨슬리는 구원의 믿음과 성화의 믿음을 조화롭게 연결시키고 그 연결의 고리로서 주님의 의(the Righteousness of the Lord)가 우리에게 덧입혀지고 심겨짐을 말하고 있다. 1760년대 말에 웨슬리는 토플레디(Augustus Montague Toplady)라는 당시의 영국 국교회 복음 성가 작사자와 예정론에 관한 문서 논쟁에 휩싸인다. 칼빈주의자들과 아르미니안들 사이에 존재했던 긴장은 이 논쟁으로 인해서 감리교 운동 진영 내에서 뿐만이 아니라 1760년대에는 보다 넓은 범위인 영국 국교회까지 퍼지게 되었다.293) 웨슬리와 토플레디는 주로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에 관한 논쟁을 하였다. 특히 1770년에 웨슬리는 가장 극단적이고 매력 없는 형태로 칼빈주의의 관점을 소개하면서 서론과 결론에 다음과 같은 자신의 의견을 첨가한 토플레디의『절대적인 예정』(Absolute Predestination)을 요약 출판했다. 이 모든 것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20명중에 1명이 선택되고 20명중에 19명이 유기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하든지 선택을 받은 자는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더라도 유기된 자들은 지옥에 갈 것입니다. 독자들이여 이것을 믿습니까 혹은 지옥에 있겠습니까. 저를 보십시오. A--- T---.294) 토플레디의 예정론적인 경향에 대해서 웨슬리가 반대한 이유는 토플레디의 견해가 지나치게 인간의 응답 가능성을 무시하여 결국에는 율법폐기주의적인 경향에 빠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예정에 관한 가장 파괴적인 마지막 논쟁이 1770년대에 발생했다. 이 논쟁은 그의 설교자들과 함께한 웨슬리의 1770년 연회록295)과 관련하여 발생하였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1770년 연회의 “그것(신도회)이 침체되어 가는 곳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부흥시키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28번 물음에 대한 대답의 6번 항목인 “당신의 교리에 주의하라”였다. 그는 여기서 신도회의 쇠퇴의 원인을 과도한 칼빈주의적인 경향으로 보았다. 그러하기에 웨슬리는 성화의 과정 속에서 인간의 응답적인 행위의 측면인 행함과 보상의 문제를 강조하였고 행위와 현재의 내적 기질이나 외적 기질에 따라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거나 되지 않기에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신실함과 행함에 힘쓸 것을 권고하고 있다.296) 이 점에 있어서 일단의 칼빈주의자들은 웨슬리가 ‘행위에 의한 구원(salvation by works)’의 교리를 퍼뜨리고 있다고 오해했다. 사실 이 논쟁의 중심은 헌팅턴 백작부인(the Countess of Huntingdon)297)과 존 플래처(John Fletcher) 목사였다. 헌팅턴 백작 부인은 1770년 연회에서 지적한 성화의 과정 속에서 중요하게 대두되는 행함에 대한 웨슬리의 교리적인 이해에 강한 반발을 보였다. 그래서 그녀는 자유의지를 이야기하며 아르미니우스주의적인 견해를 가진 웨슬리의 목사들을 자신의 교회에서 배제시켰으며, 그의 삼촌 월터 셜리(Walter Shirly)의 충고에 따라서, 기독자의 완전을 주장한 자신의 학교 선생인 벤슨(Joseph Benson)을 해고했다.298) 그러자 당시 그 학교의 학장이었던 플레쳐는 쟁점이 되었던 웨슬리의 1770년 연회록이 율법폐기주의를 향해 있기에 율법주의자의 위험한 오류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변증적인 어조와 완곡한 표현으로 웨슬리의 교리적 견해를 지지하는 12페이지의 소논문을 쓰면서 학장직을 사임하였다.299) 그러나 웨슬리와 칼빈주의적 경향의 사람들을 화해시키고자한 플레쳐의 노력으로 1771년 연회에서 웨슬리와 칼빈주의자들은 타협점을 찾게 된다. 이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 53명이 “1770년 8월 7일 런던에서 작성되었던 연회 회의록은 교리적 논점이 행함에 의한 의인화를 찬성하는 것으로 이해되었지만, 현재 그 연회에 참석했던 웨슬리 목사와 다른 참석자들은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고 행함에 의한 의인화의 교리를 혐오하고 있으며. ... 행함이 부분적으로든 전체적으로든 처음과 나중의 구원의 공로가 되지 않는다”300)라는 요지에 선언에 동의를 한다. 헌팅턴의 삼촌 월터 셜리가 이 결과에 만족하였기 때문에 웨슬리는 칼빈주의자들과 일시적인 화해를 할 수 있었다. 이런 와중에 리챠드 힐(Richard Hill)은 1771년 6월에 파리에서 마틴 메던(Martin Madan)과 발쉬(Father Walsh)신부를 만나서 1770년의 감리교 연회록을 보았을 때 웨슬리와 그 추종자들이 너무 펠라기안적이다라고 공격한다. 1772년에 펴낸『웨슬리 목사에 의해 가르쳐진 모든 교리들에 대한 개관』(A Review of all the Doctrines taught by the Rev. John Wesley)에서 힐은 웨슬리 목사와 플레처 목사가 전적으로 트렌트 공의회적인 관점 속에서 행위에 의한 두 번째 의인화를 주장하고 있으며 그의 완전에 대한 입장은 펠라기안과 아나벱티스트, 그리고 진젠돌프처럼 ‘죄없는 완전(sinless perfection)’이라고 분류하며 공격하였다. 그리고 1773년 겨울 힐은 Logica Wesleiensits, or Farrago Double-Distilled를 출판했다.301) 여기서 그는 이전의 웨슬리에 대한 공격을 지속하였다. 이러한 힐의 공격에 웨슬리는 이전의 온건한 대응에서 급선회를 하게 된다.302) 힐의 공격에 웨슬리는 1772년 9월 9일에는『힐 씨의 ‘존 웨슬리에 의해 가르쳐진 모든 교리에 관한 개관’에 관한 언급들』(Some Remarks on Mr. Hill's 'Review of All The Doctrines Taught by Mr. John Wesley)를 1773년 3월 14일에『힐 씨의 'Farrago Double-Distilled'에 관한 언급들』(Some Remarks on Mr. Hill's 'Farrago Double-Distilled')을 출판한다.303) 웨슬리는 이 두 작품에서 완전에 대한 교리를 변호함으로서 기독자의 성결에 대한 그의 입장을 강화한다. 그는 조심스럽게 율법에 대한 의지적인 위반들로서의 죄와 의지적인 요소가 없는 하나님의 완전법에 대한 위반으로서의 ‘연약성들’을 구별한다. 그는 장성한 신자는 전자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의지적이면 죄가 되고 무의지적이면 죄가 되지 않는 분류하기 어려운 ‘놀람의 죄들(sins of surprise)’이 있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여기서 그는 완전을 다름 아닌 성 요한이 말한 완전 사랑 즉 우리 주 하나님을 온 마음과 지성과 영혼과 힘을 다해 사랑하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또한 이전에는 사랑 안에서 완전해 진 이들이 구원으로 견인됨을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10년 전부터는 완전을 경험한 이들도 다시 타락할 수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304) 또한 웨슬리는 같은 해 여름에 “예정에 관하여(On Predestination,1773)”라는 설교를 출판하였다.305) 1774년에 웨슬리는 인간의 자유에 대한 옹호로서『필연에 관한 고찰』(Thoughts Upon Necessity)을 출판하였다. 그는 여기서 자신의 대적자들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고 “인간은 자유로운 행위자인가?”306)라는 질문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그러나, 이 책의 목적은 그가 보았을 때 잠재적인 율법폐기론적 경향이 있는 칼빈주의로부터 인간의 응답가능성을 보호하기 위함에 있었다. 웨슬리는 모든 필연주의자의 관점이 하나님을 죄의 주인으로 만드는 논리적 귀결로 연결되어지며 또한 “그것은(필연의 교리) 인간을 단순한 기계로 만들어 인간 행동의 모든 도덕성을 파괴하기”307)에 칼빈주의의 결정주의적인 관점을 반대했다.308) 그리고 그는 이 교리적 에세이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선택의 힘을 주시기 위해 인간사에 개입하셨음을 말하고 있다.309) 그런데 이 관점은 분명하게 그의 선재적인 은총의 개념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관점이다. 1776년 연회에서 웨슬리는 칼빈주의자들의 성도의 최종 견인의 교리를 하나님 사역의 지대한 방해물로 지적했다. 그리고 웨슬리는 설교가들에게 자신과 플레쳐(Fletcher), 샐론(Sellon)의 작품들을 읽고 보편적 구속(universal redemption)을 지속적으로 설교 할 것을 권고하였다. 그리고 그 연회록 마지막에 웨슬리는 참석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그 역병(칼빈주의적 예정론)을 중단시킬켜 달라고 끊임없이 그리고 진지하게 기도하라는 권면하였다.310) 그러나 1777년에 출판된『하나님 주권에 관한 고찰』(Thoughts Upon God's Sovereignty)에서 웨슬리는 보다 온건한 어조로 칼빈주의와 화해를 시도한다. “한 훌륭한 사람에게, 저는 전체 문제가 단 한가지의 요점에 근거한다고 생각합니다. 창조자로서 그 분은 단지 그 자신의 주권적인 의지에 따라서 행동하십니다. 그러나 통치자로서 그는 단지 주권으로만이 아닌 의와 자비에 따라서 행동하십니다.”311) 영국 국교회와 39개조가 칼빈주의와 아르미니우스주의를 동시에 포용할 수 있다고 믿었던 웨슬리는 예정의 교리를 ‘핵심 교리(essence)’가 아닌 하나의 ‘의견(opinion)’의 범주에 위치시킴으로 칼빈주의자들과 화해를 시도하였지만 1770년대 이후 칼빈주의자들과의 보다 밀접한 협력의 모든 희망은 사라져갔다. 카피지는 이 사실을 감리교도들과 영국 국교회와의 보다 넓은 분열의 한 요소로 해석하고 있다.312) 시간이 지나면서 감리교 신도회 내부의 사람들 중에는 이전의 가난으로부터 중산층으로의 경제적인 지위가 향상되어진 사람들이 증가하였고, 일부 부유한 사람들이 공동체내로 들어왔다. 그들은 “돈의 사용(The Use of Money,1760)”의 앞의 두 규칙313)은 잘 받아들였지만 세 번째 규칙314)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웨슬리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들은 자신들의 부가 죄의 치명적인 입구임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Wealth Nations,1776)의 증대해 가는 영향력에 힘을 얻었기에 그들은 더욱 자신들의 부를 필요한 사람들과 나누려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웨슬리는 “부의 위험성(The Danger of Riches,1781)”, “부에 관하여(On Riches,1788)”, “세상적인 어리석음에 관하여(On Worldly Folly,1790)”,“증대해 가는 부의 위험성(The Danger of Increasing Riches,1790)”의 설교들 속에서 잘못된 목적의 잉여물 축적이 죄임을 지속적으로 주장한다. 나눔이 없는 잉여물의 축적은 웨슬리의 실천적인 시각에 있어서 죄의 항목에 들어가며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구원에 대한 기독자의 소유와 희망에 심각하고 긴급한 위험이 된다. 따라서, 웨슬리는 기독교의 무능의 가장 큰 원인 중에 하나를 잘못된 목적으로 축적된 부로 보기도 한다. 기독교, 성서적인 기독교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자신을 손상시키고 파괴시키는 경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왜입니까? 왜냐하면 참 기독교는 그 자신이 퍼지는 곳마다 근면과 검소의 원인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따라서 사물의 자연적인 법칙에 따라, 부를 당연히 축적했습니다. 그리고 자연적으로 부는 자만심, 이 세상에 대한 사랑과 기독교를 파괴하는 모든 기질들을 잉태했습니다.”315) 1780년대 초의 설교들인 “보편적 구원(The General Deliverance, 1781)”, “타락한 인간에 관하여(On The Fall of Man, 1782)”, “타락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God's Love to Fallen Man, 1782)”, “그의 작품들에 대한 하나님의 승인(God's Approbation of His Works,1782)”에서 웨슬리는 악과 창조와 타락 그리고 구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1784년은 웨슬리의 감리교 운동에 기점이 되는 중요한 시기였다. 그 해에 있었던 세 가지 사건은 웨슬리의 감리교 운동과 영국 국교회와의 관계에 큰 변화를 의미하는 것들이었다. 첫 번째로 웨슬리는 1784년 2월 28일에 포고령(Deed of Declaration)을 선포하여 ‘100명의 법적 위원회(Legal hundred)’를 세웠다. 이것으로 감리교 운동은 사실상 독립적인 법적 지위를 부여받았다. 따라서 신도회들은 행정체계와 교리적 지침, 연합조직과 규율, 사역, 예전 양식을 모두 갖춘 단체로서의 독립된 교회가 되는데 필요한 모든 준비를 갖추게 된다.316) 두 번째 사건은 성직 안수였다. 웨슬리는 1784년 9월에 미국에서의 사역을 위해 코크(Coke)에게는 연합 감리사(Joint Superintendents) 안수를 주어 프랜시스 에즈베리(Francis Asbury)와 함께 미국 감리교 운동을 주도하게 하였고, 왓코트(Whatcoat), 베지(Vasey)에게는 장로 안수를 주어 이들을 돕게 했다.317) 그러나 미국 감리교 운동은 1784년 볼티모어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연회에서 애즈베리가 감독(bishop)의 명칭을 취하면서 새로운 자율적인 교단인 감리교 감독교회(Methodist Episcopal Church)를 세운다.318) 세 번째 사건은 같은 해 웨슬리가 영국 국교회의 『공동 기도문』(Book of Common Prayer)을 개정해『다른 특별 예배에 따른, 북아메리카 감리교도들의 주일예배』(The Sunday Service of the Methodists in North America, with other occasional service)를 출판하여 영국 국교회의 39개 조항을 25개조로 축소해서 미국 감리교 운동에 개인편지와 함께 코크의 손에 들려서 보낸 사건이었다. 베이커의 말대로 이 사건들은 모두 영국 국교회와의 분열의 전조였다.319)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슬리 자신은 결코 영국 국교회를 떠나고자 하는 마음이 없음을 누차 밝히고 있다. “저는 공개적으로 그날 저녁에 제가 40년 전보다도 지금 현재 더욱 국교회로부터의 분리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선언했습니다.”320) 이런 상황 속에서 웨슬리는 “목사에게 순종함에 관하여(On Obedience to Pastors,1785)”, “교회에 관하여(Of the Church, 1785)”, “분파에 관하여(On Schism,1786)”, “예언자들과 제사장들(Prophets and Priests,1789)”의 설교들 속에서 영국 국교회와의 분리 움직임을 경계하고 있다. 2. 후기 웨슬리의 죄 이해 죄의 법정적 의미와 치유적 의미의 긴장관계로 의미되는 칭의와 거듭남 후의 신자에게 남은 죄에 대한 문제가 웨슬리에게서 해소되는 전조가 보인다. 그 전조는 웨슬리가 보다 명확한 은총에 대한 이해 속에서 ‘믿음에 의한 구원’과 ‘거룩한 삶’을 조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웨슬리는 “성서적 구원의 길(The Scripture Way of Salvation,1765)”에서 기독자의 모든 삶 속에서 선재적 은총, 의인화의 은총, 동반의 은총, 성화의 은총을 강조한다. 참 종교의 목적은 구원이며 이 구원에 이르는 길은 믿음에 의해서이다. 그런데 구원이란 현재적인 구원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기독자의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사역이다. 이 사역은 바로 하나님의 ‘본성적 양심(natural sin)’으로 불리는 선재적인 은총(preventing grace)에서 시작된다.321) 선재적 은총은 하늘 아버지께서 이끄시는 역사로 인간의 마음속에 형이상학적인 지향점을 가지게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이 은총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결과, 즉 아담의 죄책으로부터의 해방을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여 준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사실상 원죄의 죄책으로부터 용서를 받게 된다.322) 이러한 성령의 사역은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사역을 잊어버리든지 부인하게 된다.323) 또한 웨슬리는 선재적인 은총 다음에 사도들이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구원인 칭의와 성화를 위치시킴으로서 그의 구원론의 완성되어져가는 틀을 제시하고 있다. 칭의(또는 義認)라는 말은 용서와 같은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모든 죄에 대한 용서를 말하는 것이니,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열납되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이 구원이 우리를 위하여 획득되는 값은(일반으로 말하는 우리의 칭의의 공로가 되는 근원은) 그리스도의 보혈과 의(義)입니다. ... 칭의에 따르는 즉각적인 결과는 “하나님의 평강” 곧 “모든 지각에 뛰어나는 평강”,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베드로 전 1: 8)으로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안에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입는 순간에, 그렇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성화(sanctification)가 시작됩니다. 그 찰나에 우리는 거듭납니다. 위로부터 납니다. 성령으로 납니다. 여기에는 실질적인 변화와 상대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내적으로 갱신되는 것입니다. 곧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된 사랑을 느낍니다. 또한 이 사랑은 우리에게 세상과 향락, 안위, 명예, 돈에 대한 사랑을, 우리 속에 있는 자만, 분노, 고집이나 그 외의 여러 가지 악한 성질과 함께 내쫓으며, 한편으로 모든 인류 특히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사랑을 일으켜 줍니다. 즉 한 마디로 말씀드려 이는 우리의 땅에 속한 감정적이요 악마적인 마음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었던 마음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 즉 단지 죄가 일시적으로 정지된 것이지 완전히 파괴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유혹은 다시 오고 죄는 살아납니다. 죄가 전에는 단지 기절하였던 것이지 죽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지금 저들은 자기들 속에 두 가지 세력 곧 상반되는 두 세력이 있음을 느낍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령에 거슬리는 육성(肉性)이 있어 하나님의 은총에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저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힘을 느끼고 또한 하나님의 영이 저들의 영과 더불어 저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함을 느끼지만, 저들은 아직도 속에서 느껴지는 자만, 고집, 분노, 불신앙이 자기 안에 있음을 부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성령을 이기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종종 일어나는 것입니다. 즉 우리를 밀쳐 넘어뜨리려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도우시는 까닭(시편 118: 13 참조)입니다. ... 그러나 분별력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소유한 사람들이라 할 지라도 다시 죄로 인하여 고통을 받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형제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자신들 속에 죄가 없노라고 긍정하는 정도로 은혜를 체험하였다는 예를 종종 봅니다. 그러나 드디어 저들이 그런 죄에서는 완전히 자유함을 얻었다고 생각했을 때, 속에서 올라오는 부패성은 새로이 일어나서 거의 불붙는 상태에 들어가곤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듭난 때부터 성화의 점진적인 역사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육의 행위와 악한 성질에서 나오는 행위를 억제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으면 죽을수록 하나님을 향하여 더욱 삽니다. 우리는 악의 모든 모양을 조심하여 피하며 기회 있는 대로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며, 착한 일에 열심을 내면서 은총에서 은총으로 나아갑니다. 또 흠 없는 하나님의 규례 안에서 걸으면서 성령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며, 또한 자기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는 모든 향락을 부정하면서 우리는 다시금 은총에서 은총으로 계속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사도가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고 말한 대로 온전한 성화 즉 우리들의 모든 죄-자만, 고집, 분노, 불신앙 등-에서 완전한 자리로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완전”입니까? 이 완전이란 말은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마는 여기서 이 말은 완전한 사랑을 뜻합니다. 이는 죄를 내쫓는 사랑이며 또한 그 영혼의 모든 능력을 취하여 그 마음을 사랑으로 가득 채웁니다. 이것이 곧 항상 기뻐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사랑입니다.324) 웨슬리는 선재적인 은총, 칭의, 거듭남, 성화, 완전으로 이어지는 구원의 과정을 개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은총에 대한 강조이다. 이러한 강조는 그의 목회적이며 신학적인 고민, 즉 모라비안적인 정숙주의와 칼빈주의와 극단적인 열광주의자들의 율법폐기주의의 단점인 ‘믿음에 의한 구원’의 극단적인 강조로 인해서 ‘거룩한 삶’의 왜곡된 측면을 바로 잡고자한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선재적인 은총때문에 인간에게 하나님을 향해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이 가능성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현실에 대한 확신, 즉 자신의 죄악을 직시하게 한다. 이러한 확신을 통해 인간은 하나님께 전적인 신뢰의 믿음을 가지게 되며 비록 죄인이지만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된다. 칭의의 순간에 자신이 과거에 범한 자범죄의 죄책이 사해진다. 회개와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믿음과 같은 정도로 필요한 것이 아닌 간접적인 것이다.325) 따라서 칭의의 유일한 조건은 믿음이다. 여기서 칭의에 합당한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케 하셨다는 사실과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랑하셨고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주셨다는 사실에 대한 하나님의 증거요 확신이다.”326) 결국 여기서 말하는 믿음이란 그리스도를 우리의 선지자, 제사장, 또한 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이 믿음으로 그리스도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셔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심을 알게 되는 것이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순간에 성화가 시작된다. 따라서 칭의와 마찬가지로 성화의 유일한 조건도 믿음이다. 어떤 사람도 믿음 없이는 성화될 수 없다.327) 성화 또한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이지만 성화의 시작인 거듭남이 신자의 최종 목표는 아니다. 웨슬리는 그의 전 생애를 통해 기독자의 최종적인 목표가 온전한 성화, 즉 완전에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328) 그러나 이 완전 또한 과정으로서의 완전이기에 현실에서 기독자는 항상 과정 속에 있게 된다. 중기 웨슬리가 고민했던 죄의 남음의 문제가 바로 이 부분과 관련이 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인간의 할 일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신자는 악의 모든 모양을 조심하여 피하며 기회 있는 대로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며, 착한 일에 열심을 내면서 은총에서 은총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법도 안에서 걸으면서 성령과 함께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며, 또한 자기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는 모든 향락을 부정하면서 다시금 은총에서 은총으로 계속하여 나아가야 한다. 즉 믿음의 열매로서의 ‘성결된 삶(holy living)’이 필요한 것이다. 성결의 삶이 가능해지는 것은 은총에 의해 심겨지는 그리스도의 의 때문이다. 은총에 의해 심겨진 그리스도의 의로 인하여 신자들은 성령과 함께 걸으며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만한 순종을 할 수 있게 된다. 나는 하나님께서 그가(그리스도가) 의를 덧입힌 모든 사람들에게 의를 심어주시는 것(implant)을 믿습니다. 나는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의롭게 할뿐만이 아니라 성화하게 만드신 다는 것을 혹은 하나님께서 그를 믿는 자 모두를 의롭게 할뿐만 아니라 성화케 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덧입혀진 자들은 그리스도의 영으로 의로와 지고 의와 참 성결 안에서 피조되어진 하나님과의 유사성인 하나님의 형상이 갱신되어진다는 것을 믿습니다.329) 이러한 기독자의 여정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은총이 자리잡고 있다. 웨슬리는 이 은총을 용서의 권능으로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기쁨을 의도하고 행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우리 안에서 작용하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정의하고 있다. 우리는 (그의 선한 기쁨을 의도하고 행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 안에서 작용하는 하나님의 권능의 의미에서) 은총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지각할 수 있는 대상들이 지각되어지는 것처럼 (그 은총이 확신시키고, 새롭게하고, 정화시키며, 밖으로부터 안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실 때) 그 은총을 마음으로 느낍니다.330) 이러한 은총 이해는 웨슬리가 끊임없이 죄와 속죄의 법정적인 의미와 치유적인 의미와 씨름을 할 수밖에 없게 하였던 악의 기원331)과 악에 대한 선택의 결과로서의 인간의 현실332)과 관련 있다. 인간은 의지의 자유를 오용함으로 하나님을 떠난다. 인간은 불순종을 택하였다. 이러한 불순종은 인간 자신이 값을 수 없는 죄책을 인간에게 가지고 왔으며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자신의 영이 병들어 죽게되는 상황 속에 처하게 된다. 결국 인간의 상태는 자신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 갚아야 할 법적인 채무 관계 속에 처하게 되었고 그 자신의 본성이 부패하고 타락하여 치료를 받아야할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자신만의 힘으로서는 이 모든 현실을 해결 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의 자비와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의 은총을 내려주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의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요 3:16) 여기에 우리의 모든 죄를 위한 치료책이 있습니다. 그는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죄를 범한 어떤 사람이라도 우리는 아버지 앞에 우리의 본성의 타락(부패)을 위한 치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의 중재를 통해서, ‘우리에게 그의 성령을 주셨고’(살전 4:8) 우리를 지식과 그의 근원적인 모습 안에서 새롭게 하셨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필요한 우리의 명철과 밝히 볼 수 있는 눈을 모든 지식들과 함께 열어 주셨습니다. 그것도 그의 도덕적인 모습들 즉 의로움과 진실한 성스러움 안에서 말입니다. 이것이 행해질 때 우리는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게 됨’(롬 8:28)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행복한 경험을 통해서 모든 자연적인 죄악들이 본래의 모습에서 선으로 바뀐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슬픔, 아픔, 고통은 우리의 정신적인 괴로움을 치료하기 위한 모든 약품들을 증명해 줄 것입니다. 그것들은 모두 우리의 유익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말로 다 할 수 없는 유익이 되어 우리를 보다 충분한 그의 거룩함의 참예자로 만들어 갈 것입니다. 우리가 세계에 남아 있는 동안에 , 우리를 위해 하늘에 예비된 왕관에 많은 별들을 더해 갈 것입니다.333) 이러한 인간 현실의 이해가 웨슬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과 그 열매로서의 ‘거룩한 삶’의 조화를 가능하게 하였다. 이 모든 것은 은총에 의해서 신자가 성령과 함께 동행함으로 가능해진다. 성령과 동행하는 신자는 성화의 과정 가운데 은총에 의해서 자기 자신에게 남아있는 죄악성을 치유하고 죽이는 과정의 동참에 대한 가능성과 당위성을 가지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중기 웨슬리가 고민했던 신자의 남은 죄의 문제로 인한 죄의 해결에 있어서 속죄의 법정적인 의미와 치유적인 의미의 긴장관계가 해소된다. 결국에 칭의와 거듭남 후에 남아 있는 죄에 대한 지속적인 치유의 과정이 필요하다. 마치 병을 알아야 치유가 가능한 것처럼 칭의와 거듭남 후에도 신자에게 남아있는 죄악성(자만, 자기 의지, 이 세상에 대한 사랑, 악한 부끄러움, 탐심등)을 깨달아야 치유가 가능해진다.334) 곧 의롭다 하심을 입은 사람들 속에서도 어느 정도 육에 속한 마음이(바울이 고린도 신자들에게 “너희는 육에 속하였다” 하였듯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즉, 타락의 경향에 있는 마음, 아직 계속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떠나려는 마음입니다. 또는 자만, 고집, 분노, 복수심, 세상사랑 또는 갖은 악을 사랑하는 그런 성벽인 것입니다. 환언하여, 순간이라도 굴레를 벗기면 곧 솟아오르려는 “쓴 뿌리”가 아직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런 부패성은 하나님이 비춰주시는 밝은 빛 없이는 알 수도 없는 깊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자들 마음속에 남아 있는 이런 모든 죄를 깨닫는 것이 바로 의롭다 하심을 입은 신자들에게 속하는 회개입니다. 죄가 우리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으면 이 죄가 또한 우리들의 모든 말과 행실에 나타나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335) 참된 신자들은 그들 자신의 남아있는 죄악성으로 인하여 칭의와 거듭남 이전의 가장 악한 죄를 부끄러워했던 것보다 더욱 자신의 최선의 의무를 부끄러워한다.336) 이러한 자기인식은 신자가 자신의 죄책과 무력함을 깨달았을 때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복음적 회개로 인해 신자는 은총에 의한 믿음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의 하나님의 권능을 받음으로 마음이 정결해지고 우리의 손이 깨끗해진다. 또한 복음적인 회개 속에 있는 신자는 자신을 향한 형벌과 죄책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왜냐하면 위대한 의사이며 우리의 영혼을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깨끗게 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은총으로 인해 우리 본성의 온전한 치유 과정이 가능해진다.337) 신자가 이런 복음적 회개 속에서 성령과 함께 걸으면서 다시 타락의 순간에 빠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두 번째 축복(second blessing)’이 신자 안에 남아 있는 모든 악의 근원인 육의 본성을 파괴한다. 따라서 이 ‘두 번째 축복’을 받은 신자에게는 더 이상 생래적인 죄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몸의 행위를 억제하며 안과 밖의 죄를 대항하고 정복하여서 우리의 원수를 매일 매일 약화시킬 수 있을지 모릅니다마는, 우리가 그것들을 완전히 내어쫓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을 때 받은 은총을 가지고는 우리들은 그것들을 근절시킬 수 없습니다. 비록 우리들이 그저 깨어서 열심히 기도한다 하여도 우리의 마음과 손을 전적으로 깨끗이 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히 우리로서는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다시 한번 곧 두 번째로 “깨끗해져라!”고 말씀하실 때에야 비로소 가능합니다. 그 때에만 그 문둥병은 깨끗하여지는 것입니다. 그 순간에만 그 악의 뿌리, 육의 본성이 멸절 되는 것입니다. 그 순간에야 이 생래의 죄는 생존치 않게 되는 것입니다.338) 웨슬리에게 있어서 인간의 구원이라는 것은 모든 죄로부터의 구원이다. 단지 죄책만으로부터의 구원이 아닌 죄의 힘과 죄의 뿌리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에게 구원의 과정, 기독자의 순례의 과정 속에서의 죄와 은총의 관계는 중요한 목회적, 신학적 주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당신은 구원받을 것이다. 우선 그의 피의 속죄를 통해 죄책으로부터, 다음은 당신을 더 이상 지배하지 못하는 죄의 힘으로부터 그리고 그것의 뿌리로부터”339) A. 악의 기원에 대한 웨슬리의 견해 기독교 역사상 신학자들이 직면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들 중에 하나는 바로 악의 문제로서 사랑과 선, 그리고 정의의 하나님과 현실의 악의 현존을 어떻게 설명하는가이다. 웨슬리 또한 “악은 어디에서 오는가?”340)라는 문제에 대해서 오래 동안 흥미를 가졌다. 악이 어디로부터 왔고 왜 왔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웨슬리의 견해를 살피기 위해서는 주제를 두 부분으로 나눌 필요가 있다. 하나는 심미적인 측면으로서 하나님의 선함과 창조의 선함, 존재의 사슬(chain), 선한 천사와 악한 천사와 같은 주제이고 또 다른 하나는 도덕적인 주제로써 웨슬리가 악을 어떻게 묘사했으며, 그것을 어떻게 정의했는가의 문제이다.341) 1. 악의 기원에 대한 웨슬리의 심미적 고찰 심미적인 주제는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시작되어야만 한다. 하나님의 전능과 전지를 견지하면서 웨슬리는 악의 기원에 대한 문제를 정의와 선하심이라는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들을 적용함으로서 시작한다.342) 그와 같은 속성을 가지신 하나님은 단지 선한 피조물을 창조할 수밖에 없으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하심은 창조의 선하심의 전제인 것이다. 따라서, 모든 피조물은 본질적으로 선할 수밖에 없다. 웨슬리는 타락 이전의 피조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모든 것이 하나의 일반적 체계로 구성되었을 때에 모든 피조물은 그것의 원래의 상태에서는 선했었기에 ‘보라. 그들은 매우 선했었다.’라는 말의 의미를 매우 쉽게 알 수 있습니다.”343) 타락 이전의 ‘매우 선한’ 창조 속에서 웨슬리는 모든 피조물이 완벽한 질서와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344) 악의 혼재 또한 없었다345)는 것을 확신했다. 완벽한 질서나 조화에 대한 웨슬리의 묘사는 그 당시에 유행했던 경험주의나 지적 관찰에 의해서가 아닌 현재의 세상에 악이나 죄가 없다면 이라는 상상에 의해 도달한 결론이었다. 따라서, 그가 상상한 타락 이전의 피조 세계는 재앙, 결점, 부패, 혹은 파괴적 경향이 없는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346) 이러한 결론의 근거는 웨슬리가 비록 타락했지만 현 세계의 관찰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실존과 속성을 알 수 있다고 보았다는 점에 있다.347) 웨슬리의 ‘피조물은 궁극적으로 선하다’라는 교리의 저변을 이루고 있는 주요한 개념과 구조는 ‘존재의 사슬(Chain of being)’혹은 ‘충만의 원칙(principle of plenitude)’이다.348) 모든 부분은 정확히 다른 부분들에 적합했습니다. 그리고 전체의 선함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왕관”으로부터 나온 ‘황금 사슬(a golden chain)’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정확하게 일련의 존재들, 지고부터 가장 낮은 것까지 관련이 있습니다. ... 그리고 그것은 영원까지 그의 창조자를 알고 사랑하고 향유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349) 이 ‘존재의 사슬’은 낙원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인간으로부터 하등한 피조물까지 전달해 주었다. 주의할 점은 ‘존재의 사슬’ 속에서 인간보다도 높은 천사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다.350) 천사의 실재는 감각의 세계를 초월해서 존재하기 때문에 그들은 단지 믿음에 의해서 알려질 수 있다.351) 그리고 웨슬리는 그의 천사에 대한 개념을 성서의 계시와 희랍 철학, 그리고 많은 부분을 밀턴(Milton)의 실낙원(Paradise Lost)에서 가지고 왔다.352) 피조된 존재로서 천사들 또한 유한한 존재들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창조하셨을 때 그들은 심지어 가장 지고의 천사들인 케루빔(Cherubim-지품 천사로 9품 천사 중에 제 2위인 지식의 천사)과 세라핌(seraphim-천사의 9품중 1위인 치품 천사로 인간과 닮은 모습으로 세 쌍의 날개를 갖춘 천사, 이사야 6:2,6)과 같은 영적인 존재들도 유한하였다.353)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해와 지식과 지혜와 성결과 힘은 우리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354) 그리고 그 영적 심층부에는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쓰신 도덕법이 그들에게 주어졌다.355) 그 도덕법에 의해서 천사들은 하나님의 완전한 의지를 알 수 있었고 그들은 그것들을 기꺼이 완벽하고 지속적으로 행할 수 있었다.356) 그리고 그들은 선택하고 거부할 수 있는 자유의 능력을 가졌고 이것으로 자유한 의지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다. 그 섬김은 그 자체로 보상이었고 그들의 은혜로운 주에게 가장 잘 받아들여질 만한 것이었다.357) 웨슬리는 이점에 있어서 천사들이 죄지을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여겼으며 결국에는 이 자유가 하늘의 반역의 원인이 되었다고 여겼다. 하나님은 그의 자연적 형상뿐만 아니라 도덕적 형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는 인간을 지와 의와 참 성결로 창조하셨습니다. 그의 이해력은 흠 없고 완전했던 것처럼 그의 모든 감정도 흠 없고 완전했었습니다. ... 그러나 인간이 악을 선으로 오해했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무오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결과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unde malum?" 즉 “세상에 악이 어떻게 왔는가?”의 광대한 물음에 전적인 어려움을 풀어놓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침의 아들, 루시퍼”로부터 왔습니다. 그것은 “악마의 일”이었습니다. 사도는 “악마는 처음부터 죄지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즉, 그가 우주의 최초의 죄인이었으며, 악의 주인이고, 그의 자유를 오용했기에 피조 세계에 악을 처음으로 소개한 첫 존재였습니다. “첫 천사장이 아니었던 최초의 그”는 그 자신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유혹을 받았고 그는 그의 자유 의지로 그 유혹에 넘어갔습니다.358) 결국, 웨슬리는 자유의 오용으로 인한 루시퍼의 자기 의지가 악의 원인이 된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루시퍼가 타락했을 때 그는 단지 자기 혼자만 타락한 것이 아니라 세력을 이루었고 그 결과로 그들은 그들의 영광과 행복을 잃어버렸으며 이전의 거주지로부터 추방당하였다.359) 웨슬리에 의하면 인간이 가지지 못한 많은 특권들을 천사들이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국 자기 의지, 자만, 그리고 자유 의지의 오용으로 인해 하나님께 반기를 들었고, 그것으로 인해 세상에 악이 오게되었다. 그 결과 최상위의 존재의 사슬은 선한 천사와 악한 천사로 나뉘게 되었으며 하나님과 선한 천사는 인간을 위해서 섭리하였고, 악한 천사들과 사탄은 하나님에게 대적하게 되었다.360) 이러한 싸움은 아담에 대한 유혹과 타락 이전에 있었던 것이었다. 웨슬리의 악의 기원에 대한 심미적인 고찰은 다음과 같은 부분들로 구성되어진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피조물의 선함, 다른 피조물에게 하나님의 은총의 통로로서 역할을 감당하는 피조물 내의 존재의 사슬, 존재의 사슬의 정점으로서의 천사, 그리고 우주적인 이원론에 기인한 존재의 사슬을 나누고 세상에 악을 가지고 온 천사의 타락이 그것이다.361) 2. 악의 기원에 관한 웨슬리의 도덕적 고찰362) 사실 위에서 살펴본 웨슬리의 악의 기원에 대한 심미적인 고찰은 악의 정의(definition)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웨슬리는 결점 없는 창조의 교리를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악의 발생은 전적으로 “선이나 악을 선택하거나 거절할 수 있는 힘”인 자유 의지의 오용에서 기인했다고 생각했다.363) 이에 반해서 어거스틴 전통의 낙관주의자들인 킹(William King)과 예닝스(Soame Jenyns)는 창조의 불완전으로부터 자연적 악을 설명했다. 그들은 악을 자유 의지의 오용이라기보다는 선의 결핍으로 보았다. 문제는 이들이 악이 존재를 구성하는 실존적인 수단으로 필수 불가결하게 이 세상에 왔다고 주장364)한 데에 있었다. 결국 자칫 잘못 하면 이들의 주장은 악이 창조의 시점에 있었던 것이 되어버리고 하나님이 악의 창조자가 되어버리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웨슬리는 그들의 신정론(theodicy)을 거부한 것이다. “악은 사물의 기원적인 본성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은 사물의 필연적인 결과라기보다는 영의 필연적인 결과였다.”365) 악이 창조로부터 기인한 것이 아니라면, 어디에서 왔는가? 웨슬리에게 있어서 악은 단지 의지의 결과였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악이 세상에 흘러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셨는가?라는 물음이 대두된다. 웨슬리는 이에 대해서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받을 수 없는 영원한 더 큰 지복을 받을 수 있게 함으로써 그의 지혜와 정의와 자비에 대한 완전한 확증의 위해서366)라고 대답한다. 아담이 죄 짓지 않았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시지도 부활하시지도 않았을 것이다.367) 이점에 있어서 웨슬리는 악의 기원에 대해 어거스틴과는 다른 궤적을 그리게 된다. 악은 선의 결핍이 아닌 완전한 선으로부터의 일탈 혹은 선을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기인한 선의 타락이다. 그 결점은 물질이 아닌 의지에 있다. 결국 웨슬리는 피조물의 결함 가능성은 정확하게 천상적인 의지와 인간적인 의지의 오류가능성과 불완전성에 있다고 보았다. 그들의 의지는 흠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결점은 창조의 방법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영혼이 자리잡고 있는 의지에 있었던 것이다. 결국 웨슬리에게 있어서 창조 안에 있던 결점은 심미적인 것이 아닌 도덕적인 문제였다. 여기에서부터 웨슬리는 악의 기원에 대한 전체적인 물음을 풀어나간다. 모든 악은 자연적, 도덕적 혹은 형벌적인 것입니다. 즉 자연적 악 혹은 고통은 뒤따르는 기쁨이 그것들을 능가한다면 그것은 전혀 악이 아닙니다. 그 도덕적 악 혹은 죄는 그것을 선택한 사람이 그것을 자발적으로 포용하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타락시킬 수 없습니다. 그리고 형벌적 악 혹은 형벌은 그들이 죄를 선택함으로서 그것을 선택하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타락시킬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점에 있어서)하나님의 정의와 선하심이 선이나 악을 선택할 자유를 그의 피조물에게 주는 것, 그들 자신의 손에 행복과 불행을 놓아주는 것, 그들에게 삶과 죽음의 선택권을 남겨두는 것에 전혀 모순되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것은(악의 선택) 전적으로 하나님의 정의 혹은 선하심의 모든 덧입혀짐을 단절시키는 것입니다.368) 여기서 웨슬리는 자연적 악, 도덕적 악, 형벌적 악을 구분한다. 도덕적 악과 형벌적인 악은 자유의지를 전적인 조건으로 한다. 웨슬리는 물질 세계가 어느 정도 비물질 세계 안의 의지의 결점에 의해 영향받았다고 믿었다. 그러하기에 웨슬리는 자연적인 악 또한 악에 대한 아담의 선택의 결과369)라고 보았다. ‘존재의 사슬(The chain of being)’은 아담의 죄로 인해서 그 기능에 장애가 발생했다. 아담이 결함적 창조의 결과로서 고통받은 것이 아니라, 피조 세계가 아담의 결함으로 인해 고통받게 되었다. 인간의 의지 속에 결함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럼으로 악과 죄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새창조(New Creation)는 자연적 악으로부터의 해방도 포함한다. 즉 존재들 사이의 고통으로부터의 해방도 의미하는 것이다.370) 그러나 웨슬리는 주로 도덕적인 측면에서 악과 죄에 대한 정의를 내렸기 때문에 ‘죄 많은 육체’에 대한 정의를 부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확실히 우리가 죄 많은 육체에 거한다면 우리는 죄로부터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 성서에서 권위를 찾을 수 없습니다. ‘죄 많은 육체’라는 단어는 성서에서 발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전적으로 비성서적이라면 그것은 명백하게 잘못 사용되어진 것입니다. 어떤 종류의 육체 혹은 물질도 죄가 있는 것이 아니고 단지 영만이 죄에 대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단지 영혼만이 죄의 거주지가 될 수 있습니다.371) 결단과 자유의지의 근원인 영혼만이 죄에 대해 책임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악과 죄라는 것은 하나님의 의지대로 행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웨슬리의 관점에서 악은 선의 결핍이 아닌 선의 타락이며 육체는 도덕적으로 중립적이다. 이점이 웨슬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형상의 전적 회복의 온전한 성화, 즉 완전에 대한 가능성을 제기할 수 있는 근거와 거룩한 삶의 가능성에 근거 중에 하나가 되는 것이다. B. 인간의 타락과 생래적 죄(원죄) 1. 인간 안에 하나님의 형상 전통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은 다른 피조물들과 달리 인간 존재가 지닌 어떤 재능 혹은 능력과 동일하다고 여겨왔다. 웨슬리 시대의 이신론자들은 이성을 하나님의 형상과 일치시켰고, 웨슬리 이후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양심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았다.372) 이들은 이성과 양심을 본래 내재적인 것으로 본 반면에 웨슬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적인 면에서 이것들을 보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적인 면은 인간과 다른 피조물과의 관계로까지 반사되어야 한다.373) 웨슬리는 창조된 인간이 본성적 형상(natural image), 도덕적 형상(moral image), 정치적 형상(political image)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고 해석374)한다. 웨슬리는 인간의 본성적 형상(natural image)에서 원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음을 강조한다. 첫째 웨슬리는 인간의 이해(understanding)가 하나님의 형상임을 주장한다. 인간은 그를 만드신 분을 닮았기 때문에 이전에 존재하는 사실과 현재의 비교로부터 더 심오한 진리를 추론해 낼 수 있었으며, 거짓으로부터 진리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었다.375) 웨슬리는 인간 이해력의 의로움(just), 분명함(clear), 신속함(swift), 위대함(greatness)을 주장한다.376) 두 번째 인간의 본성적 형상은 의지(will)이다. 웨슬리는 정의롭고, 명료하고, 신속하고, 포괄적인 이해력과 같은 것들은 인간이 원래 창조된 하나님의 형상의 지극히 작은 부분이었다고 하면서, 인간의 두 번째 자질인 완전한 의지(will)를 말한다. 그는 이 속성이야말로 실로 더욱 위대하고 더욱 고귀한 속성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의지력은 그러한 이해력의 명령을 따르기 때문에 완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만일 감정(affection)에 대해서 말한다면, 인간의 손상되지 않은 감정은 합리적(rational)이고, 공평(even)하였다. 타락 이전의 인간은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love) 그 자체였다. 사랑이 그의 영혼 속에 가득 차 있었다. 인간의 마음의 모든 움직임이 곧 사랑으로서 이 사랑이 바로 그의 생동감 있는 열기였다. 사랑은 그의 존재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따듯한 온기였다. 사랑의 불꽃은 그가 나온 하나님께로 타오르게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의지는 오히려 감정(affection)을 의미한다. 세 번째 인간이 가진 하나님의 본성적 형상은 인간이 본래 즐겼던 자유(liberty)이다. 인간의 본성은 부패하지 않은 의지(uncorrupted will)와 완전한 자유(perfect freedom)를 누릴 수 있었다.377) 정치적 형상과 도덕적 형상이란 용어는 웨슬리가 아이작 왓츠(Isaac Watts)로부터 빌려 왔다.378) 웨슬리는 창 1:28과 시 8:6-8에 나오는 우주의 지배자의 개념을 정치적 형상으로 표현한다. 우주와 만물을 다스리고 지배하는 인간의 정치적 능력을 뜻한다. 인간의 정치적 형상이란 하나님의 통치의 대리자요, 왕자 같은 정치력을 부여받은 자로서 창조주와 그의 피조 세계를 연결시켜 주는 채널의 역할이 있음을 의미한다.379) 그러나 인간의 지배와 통치를 받는 피조물들도 낮은 수준이기는 하지만 본성적 형상(natural image)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스스로 움직이는 능력(self-motion), 이해력(understanding), 의지와 감정(will, passion), 그리고 선택의 자유(liberty, power of choice)를 갖고 있다.380) 도덕적 형상이란 본성적 형상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본성적 형상은 영의 이해와 감정과 결단의 기능이라면, 도덕적 형상은 영적 기능에 의해 형성되는 영적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도덕적 형상은 피조된 인간 속에 있는 가장 고귀한 하나님의 형상이다. 그것은 곧 의로움(righteousness)과 참 거룩함(true holiness)381)이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의 순간에 하나님의 도덕적 형상을 완전히 상실하였고, 하나님의 본성적 형상과 도덕적 형상을 부분적으로 상실하였다.382) 2. 인간의 타락 웨슬리는 인간이 피조되었으며 의존적인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기본적인 확신을 가지고 그의 신학을 전개해 나간다. 특히 그는 인간 자신의 실존과 모든 능력이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임을 이야기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영원한 생명 속에 있는 의를 통하여. 여기에 우리의 축복과 하나님의 부요하시고 값없이 주시는 은총의 근원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은총의 원인은 인간의 공적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공적이다. 이 모든 것의 결과 혹은 효과는 단지 용서만이 아닌 생명, 영광으로 이끄는 신적인 생명이다.383) 오늘날 바로 우리의 생명, 호흡과 만물을 주시는 것도 역시 값없이 주시는 은총에 의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하여는 지극히 적은 것이라도 우리는 그것을 가지거나 행하기에 아무 가치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 자신이 우리 안에서 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런 것들은 모두 그의 자비의 표적들입니다. 사람 안에 어떤 의가 있다면 이것도 또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384) 여기서 웨슬리는 하나님의 은총이 타락 이후에도 인간에게 영향을 끼친다고 말하고 있다. 그가 이것으로 무엇을 의미하고자 했든지 간에 하나님의 은총의 표현으로서 창조를 말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웨슬리는 그의 설교 “하나님의 형상(The Image of God)”에서 다음과 같이 창조된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다. 모든 시대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라는 진리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이 진리를 확고하게 보존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을 뿐만 아니라 그의 근원인 하나님과 아주 유사하다고(likeness) 주장했습니다. 즉, 인간에게서 여전히 신적 부모(Divine Parent)의 형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385) 그러나 웨슬리는 이어서 만일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고 한다면 인간의 본성을 얼룩지게 하고, 치욕스럽게 하는 무수한 불완전함은 어디서 왔다는 말인가 하고 무신론자들의 공격을 언급한다.386) 그러나 웨슬리는 어거스틴처럼 마니교적 선과 악의 이원론적 창조를 공격하며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 곧 일원론적 창조를 주장한다. 또한 웨슬리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아름답고 선하게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주장한다. 그런데, 이렇게 지혜롭고, 미덕을 지니고, 행복한 피조물이 어떻게 이러한 완전성을 박탈당했는가?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는가? 웨슬리는 쉽게 대답한다. 인간의 자유는 어떤 시험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었기에 인간은 시험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그 시험에서 인간은 실패하고 죄를 짓게 된다. 즉 하나님이 부여하신 자유롭고 선한 본성을 스스로의 의지로 상실하고 타락하고 부패시키는 선택을 한 것이다.387) “죄는 인간이 자유를 남용함으로 인해서 (세상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388) 죄의 첫 번째 결과는 인간의 육체에 나타났다. 이 불멸의 존재(육체)가 멸망을 옷 입게 되었다. 그리고 웨슬리는 육체의 동료인 영혼에 두 번째 충격이 가해졌다고 해석한다. 영혼은 그가 죽을 수 없다는 사실만 제외하고는 육체와 비슷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389) 인간이 타락한 이성과 부패한 의지의 노예가 된 결과, 인간이 완전할 때 인간으로부터 흘러나오던 행복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 사는 세월은 얼마 되지 않지만 인간은 험악한 세월을 살아야만 했다. 게다가 인간의 능력은 쇠약해져 갔으며 세상에는 고통이 쏟아졌으며 하늘의 것들은 사라져 버렸다. 따라서 죽을 수밖에 없으며 어리석고, 악으로 가득 찬 노예 상태가 된 인간에게 고통이 찾아왔다. 타락한 인간이 전적으로 상실한 부분은 바로 도덕적 형상이었으며, 은총으로 구원받은 인간이 회복할 하나님의 형상의 핵심도 도덕적 형상이다. 인간이 타락했을 때 본성적 형상은 부분적으로 잃어버렸다가 은총으로 구원받았을 때 부분적으로 다시 회복한다. 웨슬리는 그의 설교 “하나님의 형상(The Image of God)”에서는 강조하지 않은 이 도덕적 형상을 “그리스도가 오신 목적(The End of Christ's Coming)”이라는 설교에서 본성적 형상과 비교하면서 본성적 형상과 함께 도덕적 형상도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하였음을 강조한다.390) 웨슬리는 “인간의 타락에 관하여(On the Fall of Man)”라는 설교에서 이 도덕적 형상을 상실한 인간에 대하여 언급하였다.391) 그런데 “그리스도가 오신 목적”이라는 설교에서 웨슬리는 보다 구체적으로 도덕적 형상이 완전히 상실하였다고 지적한다.392) 인간은 거룩하지 않고 행복하지도 않으며 죄책 의식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393) 그러나 웨슬리는 그리스도와 성령의 역사로 전적으로 상실된 도덕적 형상과 부분적으로 상실된 본성적 형상이 회복된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성결에의 참여자(partakers of His holiness)’가 된다는 사실에 있다. 여기에서 웨슬리의 주관적이고 능동적인 은총의 개념이 나타난다. 이렇게 새롭게 회복된 상태는 아담의 타락 이전보다 더 훨씬 높은 상태로 회복되는 것이다. 성도들은 아담이 범죄하지 않았을 상태 보다 훨씬 더 높은 거룩함과 영광의 상태로 회복된다. 왜냐하면 아담이 범죄 하지 않았다면 그리스도가 오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오셔서 죄를 사하시고 구속하시고 의롭다 하시고 거듭나게 하시고 성화 시킴으로 훨씬 더 나은 구원의 상태로 회복되는 길이 열린 것이다. 웨슬리가 은총으로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을 말할 때는 본성적, 정치적, 도덕적 형상 중에 대부분 도덕적 형상을 의미한다.394) “거듭남(The New Birth)”이라는 설교에서 보면 웨슬리는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할 때 주로 하나님의 도덕적인 형상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395) 이렇듯 웨슬리가 세 가지 하나님의 형상 중에 도덕적인 형상을 집중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도덕적인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을 다른 피조물들과 구별시키는 참 의와 참 성결(real righteousness and real holiness)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짐승들과 달리 인간이 하나님께 대해 응답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인간들은 영에 있어서 최고의 선에 예배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은 사랑의 거룩한 기질로 채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396) 두 번째는 죄의 상황이 가능한 것은 인간의 도덕적인 형상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악이 왜 있는가?”라는 물음에 웨슬리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피조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웨슬리는 죄의 가능성을 특별히 지, 정, 의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본성적인 형상과 연결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시한 것은 도덕적인 형상을 정형화하는 요소인 선과 악을 선택하게 하는 결정에 대한 인간의 능력이다.397) 다른 말로 도덕적인 형상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표현이다. 그리고 그 관계는 죄의 유해한 효과 때문에 왜곡되어지고 방해받을 수 있다. 이렇게 이해된 도덕적 형상은 인간의 영화 혹은 타락의 가능성을 나타낸다. 이 점이 웨슬리가 도덕적인 형상을 주요 이미지로 묘사하는데 주저하지 않은 이유이다. 세 번째로 하나님의 도덕적 형상은 도덕법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도덕법은 단지 영원히 지고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부패하지 않은 모습이 아니라 인간이 피조되어진 근원적이고 자연적인 본성의 표현이다.398) 즉 도덕법은 의와 거룩함이라는 하나님의 형상의 본질에 대해 중요한 거울의 역할을 한다. 이점이 하나님의 본성과 피조되어진 근원적 인간의 본성 사이에 유사성을 드러낸다. 3. 생래적 죄(원죄) 1) 원죄론 확립의 역사적 배경 웨슬리에게 있어서 원죄에 대한 교리는 지극히 중대한 문제였기에 1756년에 웨슬리는 방대한 양의 논문『원죄에 대한 교리: 성서, 이성 그리고 경험에 의해서』를 저술한다. 이 논문은 비국교도 목사인 테일러(John Taylor)박사의 원죄 교리에 대한 대응으로서 저술되어진 것이다. 웨슬리는 테일러 박사를 마호멧과 비견될 정도로 기독교에 위험을 주는 인물로 경계하고 있다.399) 원죄(Original Sin)에 대한 테일러 박사의 논문은 계몽주의 시대에 있어서 원죄 교리의 타당성에 대한 심각한 도전을 주었고 인간에 대한 극단적인 낙관주의를 피력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웨슬리는 원죄에 관한 논문을 쓴 것이다. 그 논문의 첫 번째 장은 테일러의 원죄 교리에 대한 응답이고, 그 나머지 장들은 헤브덴(Samuel Hebden)과 예닝스(David Jennings), 왓츠(Isaac Watts), 보스톤(Thomas Boston)에게 대부분 빚진 것들이다. 그러나, 웨슬리의 『원죄에 대한 교리: 성서, 이성 그리고 경험에 의해서』는 너무 방대했기에 몇 년 후에 웨슬리는 이 교리를 요약하여 독자들이 읽기 쉽게 설교로 출판한다.400) 웨슬리는 테일러와 그 시대의 이신론자들, 즉 톨란드(John Toland)와 틴달(Matthew Tindal)등401)과 자신을 구별하면서 “원죄(Original Sin,1759)”라는 설교 속에서 이 핵심적인 교리를 부정하는 모든 사람은 단지 여전히 이교도일 뿐이다라고 선언한다. 또한 같은 설교에서 “본성적으로 인간은 악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라는 물음을 이교도로부터 성서적인 기독교를 구별하는 척도로 사용한다. 우리는 그것을 ‘원죄’라고 부르든지 아니면 다른 칭호를 붙이든지 간에 기독교와 이교간의 차이점을 고려해 볼 때, 이 사실을 부정하려고 하는 자는 이교도임이 분명하다고 규정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인간은 많은 악덕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 대부분은 날 때부터 가지고 나온 것이며, 그래서 결과적으로 우리가 당연히 지니고 있어야 될 현명함과 덕스러움을 가지고 태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들도 인정하게 됩니다. ‘우리는 악하게 될 수 있는 것과 동시에 선하게도 될 수 있는 성향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모든 사람은 창조되었을 때의 아담과 마찬가지로 날 때부터 ‘덕스럽거나 현명하였다’고 노골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이 사실을 검토해 볼 수 있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사람은 본래부터 온갖 죄악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까? 사람에게는 모든 선이 결여되어 있습니까? 사람은 전적으로 타락된 것입니까? 사람의 영혼은 전적으로 부패된 것입니까? 혹은 성서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사람의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들이 항상 악할 뿐입니까?’ 이 사실들을 그렇다고 긍정한다면 당신은 그만큼 기독교인이 되고 이 사실을 부정한다면 당신은 아직까지도 이방인에 불과합니다.402) 이러한 상황 속에서 웨슬리가 집중했던 관심은 바로 구원에 관한 문제였기에 어거스틴이 펠라기우스에 반대했던 것처럼 테일러의 원죄에 대한 교리를 반대하게 된 것이다. 웨슬리의 구원론에 있어서 일관되게 흐르는 특징인 하나님의 은총의 우선성에 큰 위협을 주는 펠라기안적인 인간이해, 특히 원죄를 부정하는 견해를 웨슬리는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2) 원죄(Original Sin)를 대신하는 생래적 죄(Inbred Sin)403) 원죄라는 것은 인류의 조상 아담의 범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담의 범죄의 결과가 그의 후손들에게까지 영향을 주고 있음을 뜻하는 용어이다. 그런데 웨슬리는 주로 원죄라는 용어를 그것을 사용하는 이들과의 대화시에 사용하였다. 특히, 테일러에게 그런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원죄라는 용어에 대한 모호성이『원죄에 대한 교리: 성서, 이성 그리고 경험에 의해서』와 “원죄(Original Sin)”라는 설교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인간의 죄악성의 실체를 강조하고자 할 때, 원죄(original sin)보다는 오히려 ‘생래적 죄(inbred sin)’, ‘내재적 죄(inbeing sin)’, ‘타락한 죄악된 본성(corrupt sinful nature)’, ‘육욕의 사람(carnal mind)’, ‘태생적 죄(birth sin)’, ‘내적 죄(inner sin)’등과 같은 용어를 더 많이 사용404)하고 있다. 그리고 웨슬리는 그의 평신도 설교가들에게 설교 44번 “원죄(Original Sin)”을 이야기할 때, 그 제목을 항상 “내재적 죄(Inbeing Sin)” 혹은 “내주하는 죄(Indwelling Sin)”로 부르고 있다.405) 이렇게 원죄(original sin)라는 용어를 피하고자 한 이유는 웨슬리의 관심의 문제였다. 그는 물론 전가된 죄책에도 관심을 가졌지만, 하나님이 각각의 인간을 책임적으로 치리하고 계시다는 것, 즉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기독자의 응답 가능한 삶에 더욱더 관심을 가졌다. 그러하기에 웨슬리의 죄에 대한 관심은 인간 본성 안에 죄의 현재적인 오염에 더욱 집중하였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보편적 은총으로 인해 아담의 죄책으로부터 모든 인간이 벗어나게 되었다.406) 따라서, 인간의 실질적인 문제는 아담의 죄로 인한 인간 본성의 타락과 손상의 문제만407)으로 국한된다. 웨슬리는 특히 원죄의 죄책이 실질적으로 없어졌음을 어린아이와 관련하여 설명한다. “어떤 어린아이라도 아담의 죄에 대한 죄책으로 인하여 지옥에 갔거나 갈 어린아이는 결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세상에 왔을 때 그리스도의 의로 인하여 아담의 죄책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408)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슬리가 일종의 인류의 죄(racial sin)에 대해 부정했다는 것은 아니다. 웨슬리는 어린아이조차도 죄인이라는 점에 동의했다.409) 즉 웨슬리는 원죄의 죄책과 그 결과로서의 인간 본성의 부패가 모든 인류에게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의한다. 따라서 웨슬리는 원죄(original sin)를 전가된 죄책(imputed guilt)과 유전된 부패(inherited depravity)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날 때부터 죄가 있는 것은 아니며, 실제적인 죄의 과정으로서 나중에 저지르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 인정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과정 이전에 “진노의 자녀들”이기에, 어느 정도 진노와 벌을 면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것의 분명한 의미 속에서 취해진, 명백한 본문으로부터 우리는 신적인 용어인 전가된 원죄와 유전된 원죄에 대하여 명백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전자는 아담의 죄인데,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우리에게 들어 있는 죄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후자는 본래적 의로움의 결핍이며 본성의 타락인데, 그것이 유년기 때부터 우리가 선한 것을 싫어하고 악한 것을 좋아하는 이유이다.410) 여기서 두 가지가 드러난다. 첫째는 이 구절에서 웨슬리는 분명히 이 교리를 일상적으로 사용했던 성 어거스틴과 그 시대의 다른 기독교 저술가들을 따르고 있다.411) 그리고 두 번째는 아담의 범죄함으로 기인한 죄책(guilt)과 부패(depravity)가 어떻게 아담의 후손에게 전가되는가의 문제를 드러낸다. 3) 생래적 죄(Inbred Sin; Original Sin)의 유전성 문제 서방 기독교는 원죄의 전가에 대한 문제를 영혼 창조설적인 측면에서 전통적으로 이해를 해왔다. 그런데 웨슬리가 과연 원죄의 죄책에 대한 전가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했는가는 참으로 흥미 있는 주제이다. 왜냐하면, 그의 원죄의 죄책에 대한 전가 문제의 이해가 변화하였기 때문이다. 원죄의 유전성 문제에 있어서 올더스케잇 체험 이전에 웨슬리는 현재 인간의 타락이 생물학적인 전이의 영향412)이라는 측면으로 기울어 있었다. 1730년에 설교한 “하나님의 형상(The Image of God)”에서 그는 아담과 이브가 금지된 과일을 먹었기에 그들의 피를 혼탁하게 하는 요소들을 함유하는 체액을 가지게 되어서 결국 그들은 죽게 되고 육체적으로 무질서해지고, 그들의 능력이 손상되어지는 결과가 발생했다고 본다. 죄의 첫 번째 결과는 그의 육체에 나타났습니다. 이전에는 불멸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육체 안에는 타락의 씨앗이 없었으며 밖으로부터 아무 것도 받아들이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육체의 본래적 입자들은 부패하지 않은 것들이었습니다. 따라서 필요를 위해서가 아니라 쾌락을 위해서 추가된 입자들은 본래의 입자들의 본성(native substance)과 결합할 수 없었으며, 본래의 입자들은 보충될 필요가 없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외부에서 들어온 추가된 입자들은 본래적 입자들의 어느 부분과도 결합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섞여진 두 본질들은 섞이기 전과 똑같은 성분을 갖고 있음에 틀림이 없으며 이 본질들을 담고 있는 그릇들은 섞이기 전과 똑같은 근원을 가지고 있으며, 여전히 깨끗하고 열려져 있음에 틀림없습니다.413)
여기에는 하나님의 금지하는 명령에 도전하지 않았다면 아담은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담의 죽음에 대한 오래된 논제’를 갱신하고자 하는 시도가 담겨있다. 루터는 “아담이 순종했었더라면 그는 결코 죽지 않았을 것이다. ... 그가 창조된 상태로 남아 있었더라면, 그는 육체적인 생명이 요구하는 다른 일을 행했을 것이며, 마침내 그는 영적이며 영원한 생명으로 바뀌게 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414) 웨슬리는 새로운 생리학(Harvey, Cheyne, Weemes등)이 이러한 전통을 확인해 준다고 믿었다. 즉 인간 유기체는 해독한 물질에 의해 타락되지 않았다면 무한하게 작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아담과 이브가 그들의 후손에게 본성의 부패의 중계자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웨슬리의 전적 성화(완전)에 대해 반대하는 옛 동료 톰슨(Richard Tompson)으로부터 1755년에 받은 편지415)와 테일러의『원죄에 관한 성서적 교리(The Scripture Doctrine of Original Sin, Proposed to Free and Candid Examination)』416)에서 대두된 물음이 그로 하여금 원죄의 전이에 관한 생물학적인 관점을 차츰 포기하게 만든다. 즉, 어떻게 죄에서 완전히 자유한 부모로부터 부패한 본성을 가진 아이가 태어날 수 있겠는가?라는 물음이 웨슬리로 하여금 원죄의 생물학적인 전이론을 포기하게 한다. 이후에 웨슬리는 종교개혁가들의 원죄 교리에 포함되어진 ‘전가되어진 타락(imputed depravity)’과 ‘죄된 육체(sinful body)’로 표현되어지는 영혼 창조설417)적 입장에 대한 옹호를 시작함으로서 그의 원죄에 대한 교리를 확립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사실 웨슬리는 원죄 혹은 생래적인 죄가 어떻게 전이되는가?의 문제에 대해서 1762년까지는 약간은 모호한 태도를 가졌다. 웨슬리는 “성서에 의해서, 경험에 의해서, 나는 그 사실을 안다. 나는 그것이 전이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어떻게 전이되어지는지 알지 못하고 알기를 원하지도 않는다.”418)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1762년 아마도 웨슬리는 울노어(Henry Woolnor)의 『영혼의 참 기원(The True Original of the Soule)』을 접하고 영혼 창조설적 관점에서 영혼 유전 전이설419)에 대한 관점으로 선회를 한 것으로 보인다.420) 웨슬리는 출생시에 아담의 자손들의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도 인류의 첫 부모에게 속하기 때문에 아담의 죄책과 그 결과들이 온 인류에게 미치게 된다고 본다. 즉 인류는 아담 안에서, 아담과 함께 타락하였기에 출산시에 타락한 영혼이 전이되는 결과가 발생한다. 웨슬리는 1762년 그의 『신약 성서 주해』를 영혼 유전 전이설적인 입장에서 개정한다. 그는 히브리서 12장 9절의 주해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이 세상이 시작될 때에 창조하셨다고 주장한다.421) 이 개정의 요점은 우리의 영혼이 아담의 사슬에 있고 우리의 부모를 통해서 우리가 출생한다는 것이다.422) 웨슬리는 영혼의 유전 전이설적 인간론을 1782년 확실하게 명시하고 있다. 웨슬리는 그 해 아르미니안 메거진(Arminian Magazine) 5월 호에서 울노어의 책에 많은 영향을 받은 “영혼의 기원에 관하여(On the Origin of the Soul)”라는 소논문을 발표한다.423) 그리고 그는 이런 입장에서 1782년에 그의 초기 설교 “하나님의 형상(The Image of God)”의 창조와 타락이라는 주제를 다시 한번 “인간의 타락에 관하여(On the Fall of Man)”라는 설교로 피력한다.424) 4) 원죄의 결과 아담의 죄책으로 인한 결과는 웨슬리의 설교 “원죄(Original Sin)”에 잘 나타나 있다. 원죄의 결과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로 드러난다. 먼저 인간은 무신론자로 세상에 태어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으며, 그를 알지 못한다.425) 즉, 은총을 받기 이전의 우리의 자연적인 이해력(understanding)은 우리를 하나님에 관한 지식으로 이끌 능력이 없다. 그리고 이 지식을 갖지 못한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다.426) 고립되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인간은 자신들을 삶의 수단의 중심에 놓음으로서 일종의 우상숭배에 열중하게 된다. 마땅히 하나님께 집중해야할 경외를 우리 자신에게 향하게 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숭배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 중에 일부가 잘 달려간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길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그들은 결코 옳은 길을 목적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든 간에 그들은 자기 자아를 벗어나서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들을 추구합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들을 위해 행합니다. 그들의 자연적, 시민적, 그리고 종교적 행위들은 그것들이 어떤 것에 기인하건 간에 모두다 죽음의 바다로 나아가고 죽음의 바다를 만나게 됩니다.427) 두 번째로 무신론과 우상 숭배는 자만에 근거한다. 그것들은 자기 영광의 결과이다. 그런데 이 죄와 기만의 힘은 너무나도 강하기 때문에 오로지 하나님의 은총만이 그것들을 깨뜨릴 수 있게 되었다.428) 자기 왜곡으로서의 죄에 대한 웨슬리의 이해는 루터와 어거스틴의 죄의 이해와 그 맥을 같이한다. 세 번째, 아담의 유산은 자기 의지를 포함한다. 그러나 교만만이 우리가 본성적으로 지니고 있는, 허물이 되는 유일한 종류의 우상숭배는 아닙니다. 사탄은 역시 우리의 마음속에서 자기 의지라고 하는 그의 형상을 색인해 놓았습니다. 사탄이 하늘에서 추방되기 전에 ‘나는 북방으로 가서 내 창조자의 뜻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신의 의지와 기쁨을 누리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똑같은 말을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이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자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429) 네 번째는 세상에 대한 사랑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사탄의 형상을 지니고, 그의 발자취를 따라 왔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단계에서 우리는 사탄을 떼어놓게 됩니다. 우리가 우상숭배에 빠지는 것이 사탄에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말하고자하는 것은 세상에 대한 사랑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뜻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지금도 아주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430) 원죄의 네 번째 특성은 다음과 같은 구성요소를 가진다. 그것은 바로 ‘육신의 소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등이다.431) 결국 불신앙, 자만, 자기 의지, 이 세상에 대한 사랑과 같은 것은 인간이 아담과 이브로부터 받은 유전적인 것이다.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의 도덕적인 형상은 완전히 잃어버렸고 자연적, 정치적인 형상은 크게 손상되었기에 이 모든 것들은 그들의 자손들에게 전가되어지는 유산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떠나있는 인간의 현재적인 영적 상태는 어두움과 처절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웨슬리는 철저히 종교 개혁전통에 서서 인간의 자연적인 상태를 전적 타락의 상태로 보았으며 이것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은총 외에는 없음을 끊임없이 여러 편의 설교들 속에서 주장해 왔다. 당신은 영혼의 모든 힘과 능력에 있어서 타락해 있습니다. 당신은 이 모든 것에 있어서 전적으로 타락해 있습니다. 물론 존재되는 원천에 있어서도 말입니다.432) 인간 마음 안에 생각의 모든 상상은 악합니다. 오로지 악합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지속될 것입니다.433)... 인간의 모든 자식들의 마음속에는 끊임없이 쏟아 나오는 불의와 부정의 샘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영혼 속에 너무도 깊고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기에 권능의 은총 외에는 그것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434) 1. 내적 죄와 외적 죄 (inner sin and actual sins) 웨슬리가 구분한 내적 죄와 행위의 죄와의 관계는 죄와 은총의 관계에 있어서 거듭남과 관련이 있다. 즉 거듭난 자는 죄의 힘으로부터 자유하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십자가의 은총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으며 성령의 능력으로 거듭난 자는 “모든 종류의 외적 죄, 즉 모든 악한 말과 행동을 이길 힘과 내적 죄를 이길 힘을 가지게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거듭남의 은총은) 모든 불경건한 욕망과 기질로부터 마음을 정결하게 하기 때문이다.”435) 칭의의 순간에 모든 말과 행위의 자범죄(actual sins)의 죄책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고, 거듭남의 순간 내적 죄악성(inner sin)이 파괴되기 시작함으로 이제는 더 이상 죄의 힘(power of sin)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고 다스리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듭난 자에게도 여전히 죄악성이 남아있어436) 그를 괴롭힌다. 그러나 내적 죄악성은 거듭난 신자를 지배하거나, 다스리거나, 조롱하지 못한다. 그리고 죄는 더 이상 그에게 능력을 갖지 못한다. 왜냐하면 신자는 죄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기 때문이다.437) 그러나 불신자는 죄 아래 있기 때문에 죄에게 복종하고 죄의 지배를 당한다.438) 웨슬리는 내적 죄악성(inner sin)이란 용어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편적인 속죄의 보혈로 원죄(original sin)의 죄책이 없어진 상태로서의 죄의 뿌리(roots of sin), 생래적 죄(inbred sin), 내주하는 죄(indwelling sin), 육적인 본성(carnal mind)과 같은 의미439)로 사용하였으며 그 본질을 인간 본성의 가장 심층부의, 인간 심령의 생래적인 손상(the inbred corruption of thy, of thy very inmost nature)440)으로 보았다. 또한 내적 죄악성으로 인해 인간은 본래부터 온갖 죄악으로 가득 차 있으며, 모든 선의 결여, 전적인 타락, 영혼의 전적인 부패와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들이 항상 악할 뿐인 상태에 있다고 보았다.441) 따라서 이 생래적 혹은 내적 죄악성(inbred or inward sin)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의 마음과 대조되는 기질로서 자만, 자기 고집, 이생에 대한 사랑, 악한 부끄러움, 만악의 근원인 탐심과 같은 어떤 죄악된 기질, 감정, 혹은 열정”442)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내적 죄는 그 자체로는 결코 죄의 힘이나 죄책을 가지지 못한다. 내가 느끼는 분노에 한순간조차도 굴복 당하지 않는다면 죄책, 즉 그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유죄 선고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 그것은 힘을 가지지 않습니다. 비록 그것이 성령을 거스르는 것일지라도 그것이 우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수많은 예들을 보았을 때, 죄책이나 죄의 힘을 가지지 못하는 죄가 있습니다.443) 외적인 죄(actual sins)는 의지적인 자범죄를 말하는 것으로서 현실의 자발적인 율법의 위반, 즉 계시되고 기록되어진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의 위반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웨슬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요한 일 3 : 9)는 믿음과 사랑에 머물러 있는 한, 기도와 감사의 생각을 갖는 한, 단순히 죄를 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방식으로 죄를 범할 수가 없다444)고 말하고 있다. 칭의와 거듭남 후에 신자는 모든 죄로부터 깨끗해짐을 받는다. 즉 ‘하나님께로 난 자’는 외적인 죄의 지배로부터 구원을 받는다. 또한 내적 죄의 힘이 파괴되어지기 시작하여 그것으로부터 지배를 받지 않게 된다. 그러나 내적인 죄악성이 전적으로 파괴되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이 남아있는 내적 죄로 인해서 신자가 다시금 외적 자범죄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신자는 지속적인 싸움 즉 성령을 따라 걸어감으로써 “불완전한 순종을 통해 그들의 신실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할”445) 필요가 있다. 웨슬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들 중에서도 남아 있는 내적 죄악성으로 인해 외적인 행위의 죄를 범한 사람들을 성서의 예를 통해 들고 있다. 즉 밧세바를 취한 다윗,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던 마가 요한을 선교 여행에 데리고 감으로서 바울과 크게 다툰 바나바, 이방인과의 식사 때에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을 피해 식사자리에서 일어난 베드로의 예446)를 들고 있다. 웨슬리는 이러한 성서의 예증을 통해서 은혜에서 행위의 죄로 떨어지고 타락하는 다음과 같은 단계들을 말하고 있다. (1)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 속에는 사랑의 신적 씨앗, 승리하는 믿음이 머물러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하여 ‘그가 그 자신을 지키고, 죄를 짓지 않습니다.’ (2)유혹이 생깁니다. 이 세상으로부터, 육체로부터, 혹은 악마로부터든가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3)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죄가 가까이에 있다고 경고를 주며 더 자주 깨어서 기도하라고 명합니다. (4)그는 어느 정도 유혹에 양보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그에게 즐거움이 되어 가기 시작합니다. (5)성령은 탄식합니다. 그의 신앙은 약해지고 하나님에 대한 그의 사랑은 차가워집니다. (6)성령은 더욱 날카롭게 그를 비난하시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길이니 너는 그 안에서 걸어라” (7)그는 하나님의 고통스러운 음성을 피하여 유혹의 즐거운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8)믿음과 사랑이 소멸될 때까지 악한 욕구가 그의 혼 속에 시작되고 퍼져갑니다. (9)그는 이제 외적인 죄를 범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권능이 그에게서 떠나버렸기 때문입니다.447) 결국 유혹과 신자 안에 남아있는 내적인 죄악성으로 인해 신자의 믿음이 상실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의 상실은 신자들로 하여금 외적인 죄를 범할 수 있게 만든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총으로 내적인 죄악성이 소멸되는 완전 경험이전에 내적 죄악성은 소멸되어지지 않기에448) 신자는 지속적인 회개와 믿음을 통해 성령과 함께 걸어가야만 한다. 2. 의지적인 죄와 무의지적인 죄 (voluntary sin and involuntary sin) 웨슬리의 의지적인 죄와 무의지적인 죄에 대한 구별은 죄에 대한 그의 실질적인 정의와 관련이 있다. 엄격히 말하자면 하나님의 알려진 법에 대한 자발적인 위반 이외에 어떤 것도 죄는 아닙니다. 그런 까닭에 사랑의 법에 대한 모든 자발적인 위반은 죄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엄밀히 말할 때 그 외의 것은 모두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문제를 더욱더 왜곡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칼빈주의자들의 방법입니다. 비록 아담적인 율법은 위반할지라도 사랑의 (법을) 위반하지 않는 수많은 방황하는 생각들과 게을러진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칼빈주의자들은 이 모든 것들을 (죄로) 혼동합니다.449) 위의 인용을 통해 보면 웨슬리의 실질적인 죄에 대한 정의에는 두 가지의 흥미로운 점이 있다. 첫째로 웨슬리는 실질적인 죄를 법에 대한 자의적인 위반으로 정의한다. 이것은 죄의 발생이 의지의 수반과 죄에 대한 자의적인 동의가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런 까닭에 비록 하나님의 율법의 위반이라 할지라도 모든 무의식적인 실수와 잘못, 이해력의 둔감, 상상력의 약점, 기억력의 결여, 언어 표현의 미숙450)등은 의지적인 의도성이 없기 때문에 웨슬리의 관점에서는 엄밀한 의미에서 죄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혈조차도 이 육체적 연약성과 고통, 병, 약함을 완전히 파괴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모두 인간의 영혼이 썩어질 몸에 거하기에 발생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451) 따라서 소위 무의지적인 죄는 인간의 연약성에 기인한다. 이것은 육체와 정신의 자연적 결함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 영혼이 하나님께로 갈 때까지 벗어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하기에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충만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자신의 연약성 때문에 본의 아니게 잘못을 범할 수 있다. 이 연약성 자체는 죄가 될 수가 없는 것이며 오로지 죄의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것은 영혼뿐이다. 따라서 웨슬리는 “타락한 육체에서 필연적으로 흘러나오는 잘못이나 모든 연약함은 결코 사랑과 대립된 동기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기에 이런 실수나 과오는 성경에서 말하는 일반적 죄와 구분할 것”452)을 권고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까닭에 웨슬리에게 있어서 이 땅에서의 절대적인 완전은 불가능하지만 상대적 완전은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대적인 완전은 바로 하나님의 전적인 은총으로 가능해진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불가능한 것이 하나님께는 가능합니다.(마 19:26) ‘그렇긴 하지만, 이것은 본성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이 죄악된 육신을 입고 있으면서도, 모든 죄로부터 구원받을 것이라는 모순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반대론에는 상당한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당신이 주장하는 대부분을 인정합니다. 우리는 사람이 육신을 입고 있는 한, 실수로부터 전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이미 인정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주의하여도 우리는 여전히 많은 점에서 잘못 판단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판단의 실수는 아주 빈번하게도 행위의 실수를 야기합니다. 뿐만 아니라, 잘못된 판단은 그 기질 안에 무엇인가를 야기하거나, 순전히 올바르지만은 않은 열정을 불러일으킵니다. 그것은 불필요한 두려움이나 잘못된 희망, 불합리한 사랑, 터무니없는 반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위에서 설명한 완전과 결코 모순되어지는 것들은 아닙니다. ‘그렇소, 그것은 마지막 절과도 맞지 않고, 죄로부터의 구원과도 일치할 수 없는 것이오’라고 당신은 말합니다. 내 대답은 죄를 ‘(죄에 대한 성서적 정의라고 생각하는) 율법을 의지적으로 어기는 것으로 정의하는 것에 따르면, 그것이 죄로부터의 구원과 완전히 잘 일치하리라는 것입니다. ‘아니오, 하나님이 율법을 어기는 것은 의지적이든, 무의지적이든 모두 죄입니다. 왜냐하면 성 요한도 “모든 죄는 율법을 어기는 것”453)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그는 ‘율법을 어기는 모든 것이 죄’라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은 제가 부인합니다. 할 수 있으면 밝혀보라고 하십시오. ... ‘죄악된 육신’이라고요? 청컨대 이러한 표현이 얼마나 애매하고 모호한 것인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그 말은 성서에 근거가 없습니다. ‘죄악된 몸’이란 말은 거기서 결코 찾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전혀 비성서적인 것처럼, 그 말은 명백히 터무니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육신도, 어떤 종류의 물건도 ‘죄악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오로지 영혼만이 죄의 자리입니다.454) 두 번째로 웨슬리는 계시되어지고 성문화되어진 하나님의 율법의 관점에서 죄를 정의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문화되어진 율법이라기보다는 그 율법의 정신, 즉 하나님 형상의 완벽한 그림자로서의, “지고의 변하지 않는 이성”455)으로서의 도덕법이다. 즉 무의지적으로 죄를 지었을지라도 그것이 사랑의 법인 도덕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죄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단 한번이라도 의도적으로 도덕법을 위반한 것은 죄를 지은 것이며 그 죄에 대한 죄책이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원한 사망에 대한 책임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있다. 죄에 대한 형벌로서의 사망은 죄에 대한 인간 자신의 의지적인 참여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연약성으로 기인한 무의지적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위반에 대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혈이 필요없는가?라는 물음이 대두된다. 웨슬리는 이 물음에 “인간은 모든 상태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필요로 한다.”456)라는 아주 명쾌한 해답을 내린다. “소위 말하는 죄라 불러 마땅한 죄(즉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고의적 위반)뿐만이 아니라 죄라고 부르기 부적절한 죄(알던지 혹은 모르던지 간에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무의지적인 위반) 모두 다 속죄의 보혈을 필요로 한다.”457) 완전을 경험한 자들도 여전히 자신들의 육체의 연약함으로 기인한 무의지적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위반, 즉 그들의 태만과 부족함 그리고 판단 및 행실의 잘못과 여러 가지 결함들 때문에 여전히 그리스도의 대속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도 하나님의 완전한 율법(perfect law)에서 보면 빗나간 것들458)이기 때문이다. 웨슬리가 이렇듯 의지적인 죄와 무의지적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위반을 나누고, 그 자신이 소위 무의지적인 죄를 실제적인 죄와는 구분하여 복잡하게 설명한 것은 다음과 같은 경향들을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완전법에 비추어보았을 때 부적절하지만 소위 죄인 무의지적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위반을 죄로 여기지 않고 완전 경험 후에는 중보자 없이 무한하신 공의 앞에 자신들이 설 수 있다고 믿었던 조지 벨과 토마스 멕스필드같은 현실 세계에서의 완전 경험을 극단적으로 끌고나간 열광주의자들을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두 번째는 인간의 연약성에서부터 기인한 무의지적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위반을 의지적인 죄와 동일시하여 인간은 죄악성의 깊이에 눌려 살수밖에 없기에 이 땅에서의 완전이 불가능하다고 보았던 모라비안과 칼빈주의자들을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3. 죄책과 죄의 힘, 죄의 현실성(guilt, power of sin and being of sin) 웨슬리는 “신자 안의 죄에 관하여(On Sin in Believers)”라는 설교에서 죄책, 죄의 힘, 죄의 현실성을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복잡하게 죄에 관해서 설명한 것은 의인과 거듭남 후에 기독자가 의와 화평과 희락을 얻지 못했을 경우에는 이러한 확증이 그에게 올 때까지 조용히(stillness) 있어야 한다며 정숙주의적 경향에 빠졌던 모라비안들과 인간의 죄악성에의 절망과 하나님의 성도 견인의 예정으로 인한 율법폐기론적 경향을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실제에 있어 어떤 교파들은 이것(인간 본성의 부패성)을 너무 지나치게 다루어 이 신자의 마음의 부패를 설명할 때 그리스도인이 이것을 극복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도리어 신자가 이것에 얽매여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그들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거의 구분할 수 없게 만듭니다. 이런 극단을 피하려는 나머지 많은 선량한 사람들, 특히 고(故) 진젠돌프 백작의 지도하에 있던 사람들은 또 하나의 극단으로 흐르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모든 참다운 신자들은 죄의 지배(dominion of sin)에서 구원받았을 뿐 아니라, 외적인 죄뿐만이 아니라 내적인 죄의 현실성(being of inward sin)에서까지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죄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많은 영국 사람들은 약 20년 전에 그들로부터 그러한 견해를 받아들여,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본성의 부패성조차도 이미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459) 모라비안들은 신자, 거듭남, 의로움을 같은 말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신자가 모든 죄에서 자유함을 받기에 그 마음속에 아무 죄도 없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모라비안들에게는 성화의 과정이 무시되어질 수 있는 위험이 있었다. 그러나 웨슬리는 칭의를 통해 자범죄의 죄책이 사함을 받고 죄의 힘이 파괴되기 시작하며460) 거듭남의 은총을 통해 손상되어진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기 시작461)됨을 명시했다. 그리고 신자는 내적 죄와 외적 죄를 이길 힘을 가지게 된다.462) 그러나 웨슬리는 사도 바울의 서신들의 견해를 따라 신자 안에 여전히 본성과 은총이, 육과 영이 다 있기에 영적인 싸움이 필요함463)을 말하고 있다. 그러하기에 웨슬리는 신자에게 죄가 없으며 육에 속한 마음이 없고 타락할 경향이 없다는 주장이 하나님 말씀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말이며 율법폐기주의 경향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것464)이라며 모라비안적 경향에 강하게 반박하였다. 신자는 영적이다. 그러나 전적으로 영적일 수도 있지만, 영적이며 동시에 부분적으로 육적일 수도 있기에465) 그는 죄에서 구원을 받았지만 전적으로 구원받은 것은 아니다. 즉 비록 죄가 그를 지배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남아 있게 된다. 모라비안이 죄책과 죄의 힘을 죄의 현실성 자체와 동일한 것으로 본 것에 반대해서 웨슬리는 죄책과 죄의 힘 그리고 죄의 현실성을 각각 별개의 것으로 구별했다. 그리고 이런 구별이 웨슬리로 하여금 무리 없이 ‘신자 안에 남아 있는 죄’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신자들은 성령을 따라 행한다.(로마 8:1) 그리고 하나님의 영은 그들 안에 내주하신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죄책과 죄의 힘에서, 또는 한 마디로 해서 죄의 현실성에서 구원받는다’ 이 말들은 마치 그것들이 동일한 것인 양 겹쳐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들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죄책이라는 말과 죄의 권세라든가 죄의 현실성이라는 말은 각각 다릅니다. 우리 신자들이 죄책과 죄의 힘으로부터 구원받음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들이(신자들이) 죄의 현실성에서까지 건짐을 받았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습니다.466) 죄책과 죄의 힘에 관해서 웨슬리는 후기로 갈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혈이 죄책으로부터 신자를 구원해 주는 것에는 지속적으로 동의하였지만 죄의 힘으로부터의 구원까지를 말하고자 하지는 않았다. 그는 “나는 당신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증언합니다. 만일 여전히 당신이 죄를 지속하고 있다면 그리스도는 당신에게 별반 도움이 되실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당신을 당신의 죄 속에서 구원하시지 않으신다면 그는 당신에게 구원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467)라고 말했다. 이것은 결국 그리스도가 인간들을 죄책으로부터 구원하시지만 죄의 힘으로부터 구원하시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이며 아담의 죄로 인한 죄책은 그리스도의 보편적인 속죄의 보혈로 사함을 받지만 자신의 자범죄에 대한 죄책은 은총에 의한 믿음을 통해서 사함을 받는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칭의와 거듭남 후의 신자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죄의 현실성으로 인해서 죄악성은 우리의 말과 행동에 여전히 효력을 발휘한다. 따라서 신자의 가장 최선의 말과 행동에서조차도 여전히 죄악성이 있기 때문에468) 죄의 현실성에서 해방되지 못한 신자는 여전히 육적인 본성을 향하게 된다. 여기서 웨슬리가 말하는 죄의 현실성은 바로 죄의 뿌리, 내주하는 죄, 육적인 본성, 생래적인 죄, 악의 경향성, 본성의 타락성과 동일한 말이다. 따라서 웨슬리가 여러 곳에서 강조한 것처럼 신자는 죄의 지배로부터는 벗어났음에도 여전히 자신 안에 남아 있는 내적 죄악성으로 인해서 죄책과 죄의 힘이 없는 죄가 발생할 경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469) 이점은 죄책과 죄의 힘에 대한 웨슬리의 구별이 외적이든 내적이든 간에 행위의 죄로서의 개념과 일치하는 것이고 죄의 현실성으로서의 구별은 경향성(disposition)으로서의 죄의 개념과 일치함을 보여주고 있다. 즉 웨슬리는 죄를 상태와 행위로 구별해 이해하고 있다. D. 죄, 자유의지 그리고 은총(sin, free will and grace) 1. 죄와 자유의지(sin and free will) 웨슬리는 보편적인 악의 원인을 초월적인 존재의 자유의 오용으로 보았으며 인간 타락의 원인은 유혹에로의 최초의 인간 자유의 오용으로 보았다. 이렇듯 의지의 자유를 오용함으로서 인간은 전적인 본성의 타락과 부패의 상태에 처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창조시에 인간에게 절대적인 자유를 주셨다. 그러나 인간은 자유의 남용으로 죄를 지어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전적인 타락이라는 것은 모든 인간을 오염시킨 하나의 병이다. 따라서 루터와 칼빈처럼 웨슬리도 전적 타락후 인간 본래의 자연적인 자유의지는 결코 하나님을 향할 수 없다는데 동의를 한다.470) 즉, 은총을 받지 못한 자연적인 인간은 하나님의 빛이 비추더라도 전혀 그것을 지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가망이 없는 죄악 그 자체의 상태 속에 있는 것이고 영원히 하나님과 떨어져 있는 상태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곧 이어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기초한 보편적인 은총을 통해 초자연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어느 정도의 자유의지가 회복됨을 말하고 있다. 저는 지금까지 자유의지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저는 도덕적인 것으로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인간의 현재의 상태에서의 자연적 자유의지를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단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비추는 초자연적인 빛과 함께 하는 모든 사람에게 초자연적으로 회복되어진 어느 정도의 자유의지를 주장할 뿐입니다.471) 콕스의 지적처럼 웨슬리는 타락한 인간조차도 현재 행위의 계약이 아닌 은혜의 계약 아래에 살고 있다고 본다.472) 모든 인간이 은혜의 계약 아래에 살고 있다는 것은 행위의 율법이 소멸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사실은 우리 구원의 근거인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이 우리 모두를 위해 값없이 임하시고 우리 모두 안에 값없이 거하신다는 의미이다.473)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보편적인 은총에서 배제되지 않는다. 이점은 웨슬리의 은총 이해에 있어서 선재적 은총의 개념과 연결되어진다. 그리고 이 미묘한 차이로 인해서 웨슬리는 구원에 있어서 성서 중심적인 입장에서 종교개혁가들과도 아르미니우스와도 다른 성서적 구원의 길을 추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474) 아우틀러가 지적한 것처럼 아르미니우스는 은총 이전에 자연적으로 인간의 자유의지가 회복되었다고 보아서 세미 펠라기안적인 경향에 빠졌던 반면에 웨슬리에게 있어서 의지의 회복은 성령의 선재적인 활동에 기인한 것이다. 이런 성령의 선행적인 활동이 인간으로 하여금 선을 향해 갈 수 있게 하며 영감을 받을 수 있게 한다.475) 분명 웨슬리는 이점에 있어서 아르미니우스와도 세미 펠라기안과도 또한 종교 개혁가들과도 다른 경향에 서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회복되어진 인간 의지의 자유는 은총에 대한 인간의 응답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하나님의 보편적인 은총으로 회복되어진 이 의지의 자유가 인간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과 인간의 협력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이것은 의지의 능동적인 참여라기보다는 수동적인 참여이다.476) 왜냐하면 인간 구원에 있어서의 우선권은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니(요한 5 : 17) 그러므로 너희도 일하라”는 말씀에는 아무 모순이 없으며, 오히려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즉 이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면에서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첫째로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니 그러므로 너희도 일할 수 있다는 것이요, 둘째로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니 그러므로 너희도 일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 모든 사람은 어느 정도 그 빛을 받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희미하게 빛나는 서광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조만간, 또한 다소간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비춥니다. ... 따라서 어느 누구도 은총이 없어서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받은 은총을 사용하지 않기에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477) 웨슬리는 인간의 죄에 대한 가능성을 육체에 둔 것이 아니라 영혼에 두었다.478) 그리고 의지의 자유에 대한 문제는 영혼의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육체적 연약성에 기인한 수많은 악한 유혹들과 방황하는 생각들에 휩싸이기 쉽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479)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백성을 죄로부터 구원하러 이 땅에 오신 것이지 유혹으로부터 구원하러 오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480) 그러나 의지적으로 그리고 부주의하게 그것들에게 다가가지 않는 이상 우리는 확실히 그런 악한 유혹들과 방황하는 생각들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481) 모든 죄의 원인은 인간 자신에게 있다. 바로 하나님께서 회복시켜주신 양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 자신의 의지를 오용함으로서 죄악에 빠지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죄를 범하는 것은 그에게 은총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은총을 활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칭의와 거듭남 후의 신자에게는 여전히 내적 죄악성 즉 죄의 현실성이 남아있고 여러 유혹이 그에게 다가오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의지로 악과 죄로의 경향성을 선택하여 자범죄를 다시 선택할 수도 있다. 이런 까닭에 웨슬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의 위대한 특권(The Great Privilege of Those Who Are Born of God)”이라는 설교에서 타락의 가능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웨슬리는 여기서 우리 영혼이 하나님께 반응을 보이지 아니하면 하나님도 우리 영혼 속에서 계속 행동하지 않으시며, 또한 우리 영혼이 하나님을 향하여 호흡하지 아니하고 그분께 우리의 사랑과 감사와 기도를 돌리지 아니하면 하나님도 우리 영혼을 향하여 계속 호흡하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경고한다.482) 또한 웨슬리는 신자가 은혜로부터 죄인의 상태로 떨어지는 단계를 설명하고 있는데,483) 이러한 타락 과정의 뚜렷한 특징은 신자의 타락에 원인이 결국에는 자기 자신의 의지의 오용에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지의 자유가 자기 자신의 행동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자신이 져야하는 결과를 만든다. 2. 죄와 은총(sin and grace) 웨슬리에게 있어서 죄의 본질은 불신앙이다. 즉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성의 타락이다. 그리고, 이러한 타락의 결과는 육체적 죽음의 언도와, 영적인 죽음이다. 여기서 영적인 죽음이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성의 단절을 의미하는 죽음이다. 그리고 도덕적 형상이 전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인간만의 노력으로는 하나님께 응답할 수 없게 되었다. 웨슬리는 원죄로 인한 결과에 있어서는 종교개혁의 전통 위에 서서 ‘전적인 타락’을 말하고 있다. 아담 이후에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인간 자체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에 희망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웨슬리는 어거스틴이나 종교개혁자들과 함께 ‘은총으로만’이라는 입장을 취하게 된다.484) 그러나 동시에 종교 개혁가들과 웨슬리 사이에는 미세한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은총의 개념이다. 웨슬리 자신이 “하나님의 은총이 어떻게 역사하느냐의 문제에서 머리털 두께 만한 차이가 있을 뿐”485)이라고 말하고 있다. 웨슬리는 전적타락이라는 말을 단지 자연적 인간에게만 사용한다. 즉 하나님의 은총의 단비를 만나지 못한 존재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용어가 전적 타락이다. 그런데, 웨슬리는 실질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의 단비를 만나지 못한 자연적 인간(natural man)은 없다고 말한다. 인간들의 모든 영혼들이 본질적으로 죄 속에서 죽어 있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어떤 누구도 정죄를 면케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단지 자연적인 상태에 있는 인간은 없기 때문입니다. ... 살아있는 인간은 ‘자연적 양심’이라고 불리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선재적인 은총’이라고 불리는 것이 더욱 적절합니다.486) 인간은 세상 속에서 자연적인 인간(natural man)으로 있을 수 없다. 또한 우리 인간에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긍정적 모습은 결코 인간 자신의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전적타락에 대한 웨슬리의 확고한 믿음은 분명 그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한편으로는 그와 이 교리를 공유했던 개신교 신학자들은 그가 동의하지 않았던 제한된 속죄론과 무조건적인 선택의 교리를 이 개념으로부터 끌어왔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동방전통의 신학자들과 로마 카톨릭은 타락 후에도 하나님의 형상이 기본적으로 남아서 이것으로 인해서 구원에 관한 주체는 하나님이 아닌 인간이라고 보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웨슬리는 양쪽편의 어떤 주장에도 동조할 수 없었다. 전자는 하나님의 회복시키시는 은총의 비공로적인 특성을 위험하게 했고, 후자는 원죄의 위험성을 과소평가 하게 한다. 그러하기에 웨슬리는 인간의 자연적 특성은 분명 가능성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비로운 사랑에 기인한 하나님의 보편적인 은총으로 인간에게 가능성이 회복되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은총을 통해 모든 인간은 아담의 죄에 대한 죄책으로부터 자유해졌고487) 단지 그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담 이래로 인간의 타락하고 손상된 본성의 문제와 자신의 타락한 본성과 유혹으로부터 기인한 자범죄의 죄책뿐이었다. 그러나 자범죄의 죄책과 타락한 본성의 문제도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로 해결 가능해졌기에 인간 구원의 길에서 인간의 응답 가능성이 생겼다고 보는 웨슬리의 신학적 통찰력은 아주 놀라운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웨슬리는 현 상태의 인간 타락의 심각성을 주장하였고 인간 본성의 부패성이 어떻게 전가되느냐에 있어서 생물학적 유전설, 영혼 창조설을 거부하고 영혼 전이론적인 입장을 그의 말년에 피력한 것이다. 죄에 대한 입장 차이를 가지는 동방 신학과 서방 신학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인다. 서방의 신학은 그들의 속죄에 대한 법정적인 관점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그리스도를 통한 인간의 죄책에 대한 무조건적인 용서로 보았다. 반면에 동방의 신학은 하나님의 은총을 기본적으로 하나님과의 연합을 통한 우리의 손상되어진 본성을 치유하는 권능으로 보았다. 그러나, 종합주의자인 웨슬리는 은총을 용서와 동시에 권능의 의미로 파악했다.488)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슬리의 은총이해는 시기별로 그 강조점을 다르게 가진다. 초기의 웨슬리는 은총을 기본적으로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치유시키며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덕 속에서 자라게 하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웨슬리에게 있어서 1738년의 개신교 전통의 법정적 의인화에 대한 깊은 감명과 경험은 은총의 개념을 무조건적인 용서의 개념으로 바뀌게 한다. 그러나 기독자의 삶에 대한 정숙주의와 열광주의의 오류는 웨슬리로 하여금 은총을 용서의 개념과 함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되어짐으로서 책임적인 기독자의 삶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권능으로 규정하게 한다.489)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인간에게 요구하지 않는, 공로 없이 얻은 긍휼로 이해되어야만 합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죄인인 나는 그리스도의 공로로써 이제 하나님과 화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것을 차라리 “우리 속에서 활동하셔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우리에게 의욕을 일으켜 일하게 하시는”(빌립보 2:13) 저 성령이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전자의 의미에서, 그의 용서의 사랑)이 우리의 영혼에서 확증되어질 때마다, 하나님의 은총(후자의 의미에서, 그의 성령의 권능)이 그곳에서 발생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인간에게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에 의하여 실행할 수가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행동을 바르게 정돈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강하게 하시는 저 사랑의 빛과 능력에서 모든 것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 “하나님의 모양대로”(창세기 1:26) 영혼을 갱신하는 성결, 하나님의 영광에 부응하도록 우리의 모든 발언과 행위를 인도하는 하나님의 진실, 이런 것들을 하나님은 내 안에 느끼게 해 주십니다.490) 위의 인용에서 알 수 있듯이 웨슬리에게 분명한 강조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 ‘하나님의 모양대로’ 영혼의 갱신이다. 따라서, 두 가지 차원의 은총 이해(용서, 치유와 회복)에 있어서 용서에 대한 강조는 치유의 권능이라는 보다 큰 주제에 통합된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용서는 우리의 타락한 본성을 치유하는 도구인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491) 따라서, 웨슬리에게 있어서 은총은 죄와 마찬가지로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적인 차원에 있는 것이며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 삶 속에 인격적으로 현존하시는 것이다. 은총이 우리를 깨우시고 우리에게 가능성을 제공해 주신다. 웨슬리는 은총을 저항할 수 있고 협력 가능한 것으로 이해했다.492) 결국 하나님의 은총이 인격적이며 협력 가능한 자비로운 권능이라면 그것은 확실히 점진적인 특성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웨슬리는 은총의 정도와 구원의 정도에 대해 말할 수 있었고 점진적인 성화를 강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은총에 의해서 아담 안에서 모든 것을 잃은 인류는 그리스도 안에서 잃은 것 이상으로 회복될 수 있게 된다. 웨슬리의 은총 이해는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역할을 강조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그러나 인간의 역할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은총의 사역에 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인간 본성의 전적 타락성으로 인해 인간 자체만으로는 결코 가능성이 없어졌기 때문이며 구원의 시작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고 엄밀히 말하자면 인간의 참여 또한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총에 의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웨슬리의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이 믿음을 가지기 이전에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그 모든 것들도 사실은 은총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믿음과 믿음의 열매인 선행 또한 은총에 의해 가능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그 자신의 구원을 향한 인간의 노력도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의 사역의 한 부분이 된다. 이러한 은총의 상실이 인간을 전혀 가망성 없는 존재로 만든다. 결론적으로 웨슬리는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의 죄에 대하여 집단적인 접근 방법과 동시에 개인적인 접근 방법을 택하고 있다. 즉 죄인의 상태를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고 있는 실존적인 인간으로 묘사하고 있다.493) 인간의 실존과 하나님의 은총은 동전의 양면처럼 웨슬리의 신학에 있어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웨슬리는 인간의 현실의 제반 문제, 특히 구원의 문제를 목회적이고 실천적 차원에서 인간의 실존과 하나님과의 살아 있는 관계 속에서 심도 깊게 다루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웨슬리 신학을 이해함에 있어서 인간 현실의 이해와 그에 따른 하나님의 은총의 사역의 측면의 고찰이 핵심적인 사항이다. A. 선재적 은총494)과 죄 치유와 용서의 가능성 현대의 웨슬리 신학자 중에 매덕스와 아우틀러는 웨슬리의 선재적 은총의 개념을 광의와 협의의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다.495) 그들이 말하는 웨슬리의 선재적 은총의 두 가지 측면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협의의 개념은 의인화와 성화 은총을 앞서는 은총으로서의 선재적 은총이다.496) 여기서 선재적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결과로서 발생하는 죄인의 일반적인 계몽뿐만이 아니라 성령의 사역으로 인한 죄의 확신을 포함하는 것이다.497) 이 개념은 당시의 영국 국교회와 부흥운동 진영 내의 칼빈주의자들과의 논쟁 속에서 발전하였다.498) 두 번째 광의의 개념은 회개부터 완전에 이르는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모든 구원적 행위와 덕들은 하나님의 은총의 선행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즉 구원 사역에 있어서 하나님 사역의 우선성과 모든 은총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라는 측면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협력을 강조하는 관점에서 은총의 선행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콜린스(Collins)는 선재적 은총이라는 개념을 은총의 보편적 특성인 선행성까지 의미를 넓히기보다는 웨슬리 구원의 순서의 시작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협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고 있다.499) 왜냐하면 선재적 은총, 확신 은총, 의인화의 은총, 성화의 은총, 영화의 은총의 구별이 결국에는 사랑을 통해서 두려움과 무지로부터 승리케하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보다 깊은 발전적 관계를 나타내고 있으며 웨슬리가 선재적 은총의 개념을 그의 작품 속에서 사용한 것은 거의가 다 협의의 개념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재적 은총 자체를 은총의 선행성으로까지 그 의미를 넓힌다면 웨슬리 신학의 두 축 중에 하나인 ‘거룩한 삶(holy living)’500), 즉 은총으로부터 은총으로 성장해 가는 신자들의 삶 속에서 질적인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의 중요성이 평가 절하될 위험성이 있다는 점에서 콜린스의 비판은 의미가 있다. 웨슬리가 영국 국교회로부터 많은 빚을 지고 있는 부분이 선재적 은총(prevenient grace)의 개념이다. 당시의 영국 국교회 신학은 선재적 은총을 강조하고 있었고, 웨슬리는 이러한 국교회의 신학적인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선재적 은총은 39개조항 중 10조 “우리를 선행(先行)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하나님의 은총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만한 선행(善行)을 할 힘을 가지지 못한다”501)에 나타나 있다. 기독자를 갱신시키기 위해 주어진 도움과 신적인 에너지로서의 선재적 은총에 대한 강조는 공동 기도서의 예식문에서도 볼 수 있다. 39개조는 인간으로 하여금 은총을 돕고 선행(善行)을 가능하게 하는 선재적 은총을 의인화되고 거듭난 사람에게 부여되어진 신적인 선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영국 국교회는 선재적인 은총의 통로와 근거를 세례와 성만찬과 같은 예식으로 보았다. 이와 같은 관점의 영국 국교회 39개조항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의인화의 믿음을 가지게 되는지, 혹은 선재적 은총이 인간에게 믿음과 의인화를 어떻게 가능하게 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답하지 못한다.502) 영국 국교회의 선재적 은총이해가 이와 같았던 반면에 시간에 따라 웨슬리의 선재적인 은총 이해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초기 웨슬리는 영국 국교회처럼 세례와 같은 은총의 수단들을 선재적 은총의 통로로 보았다.503) 그러나 중기에는 선재적인 은총과 회개를 밀접하게 연결시켰으며, 후기에는 선재적인 은총을 전체적인 구원의 순서에 한 부분과 관련시켰다.504) 이점이 웨슬리의 선재적 은총과 영국 국교회의 선재적 은총과의 폭에 차이이다. 인간의 전적 타락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웨슬리는 루터나 칼빈 같은 종교 개혁자들과 분명한 일치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은총이 역사하는 방법에서의 차이가 웨슬리와 종교개혁자들이 구원의 길(via salutis)을 추구하는 데에 있어서 시작부터 다른 길을 걷도록 한다. 루터와 칼빈이 성화의 은총을 불가항력적인 은총이라고 보아 구원의 예정을 주장한데 반해서, 웨슬리는 구원의 시작인 선재적 은총(prevenient grace)을 불가항력적 은총으로 보았다. 이점으로 인해서 웨슬리안의 구원론과 칼빈주의자들의 구원론은 엄청난 차이를 가지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은 많건 적건 이 선재적 은총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은총은 인간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관계없습니다.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인간은 누구든지 선행을 행하려는 의욕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록 이런 선행의 의욕이 인간의 심층을 찌르기 전에 그리고 좋은 열매를 맺기 전에 없애 버리는 사람이 많다고 하여도 이 선행의 의욕은 모든 인간에게 있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조만간 어느 정도 자기를 비추어 주는 빛, 즉 희미하기는 하여도 반짝이는 광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만약 귀가 화저로 지져 마비된 양심을 가진 극소수의 사람에 속하지 않는다면 양심의 빛을 거역했을 때 다소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505)
결과적으로 웨슬리에게 있어서 전적으로 타락한 상태에 있는 ‘자연적 인간’이라는 것은 하나의 추상적인 개념이다. 따라서, 원죄의 효력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더 이상 전적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생래적 죄의 죄책은 인간이 태어나자마자 제거되었기”506)때문이다. 결국 이것은 선재적 은총의 특권으로서 원죄의 죄책에 대한 용서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은총은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값없이 임하는 것이다. 특히 웨슬리는 “값없이 주시는 은총(Free Grace)”이라는 설교의 마지막에 배치한 찬양시 “보편적 구속(Universal Redemption)”에서 더욱 은총의 보편성을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한결같이 모든 것을 증거하는 사랑스러운 속성을 찬양하라. 주님의 값없는 은혜의 영광, 보편적인 사랑을 소리치며 천지의 기쁨과 긍휼하심을 노래하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가진 모든 죄인들이 발견하는 긍휼이, 주님 손으로 만드신 무한하고 크신 긍휼이, 모든 인류를 끌어안으심이 모든 역사를 통하여 드러나도다.507) 선재적 은총으로 인해 인간은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사역과 우리의 요구를 감지하고, 그 요구에 응답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타락한 본성과 능력이 부분적으로 회복되어진다. 첫 번째로, 선재적 은총에 의해 우리의 이해력이 회복되어진다. 이해력의 회복은 하나님의 기본적 지식의 회복을 의미508)하며 인간의 마음판에 새겨진 도덕법의 회복으로 인해서 선과 악의 구별이 가능해 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509)이다. 두 번째로 선재적 은총에 의해 회복되는 것은 자유 즉 의지의 자유510)이다. 선재적 은총으로 회복되어진 의지의 자유는 종교 개혁자들이 주장할 수밖에 없었던 무조건적인 선택과 불가항력적 은총에 대한 웨슬리의 대안이었다. 웨슬리로 하여금 결정론적 구원관을 벗어나게 해준 것이 선재적 은총으로 회복된 의지의 자유라는 개념이다.511) 세 번째는 양심이다. 양심은 모든 사람 안에서 발견되어진다는 것 때문에 자연적인 것이라고 불려지지만, 사실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선물이다.512) 따라서, 선재적 은총의 사역으로 인해 현재 인간의 타락한 상황에 대한 책임성은 우리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회복의 사역에 대한 우리의 거부에 있는 것이지, 결코 인간의 생래적 죄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떠한 인간도 그가 은총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은총을 활용하지 않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다.”513) 그러하기에 계속 죄에 거하는 자들이 우리를 일으키실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니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되살릴 수가 없습니다라고 변명하면서 그 책임을 창조주께 전가할 수 없는 것이다. 영혼이 자연적으로 죄악에서 죽었다는 것을 용인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변명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단순히 자연 상태에 머물러 있는 인간(a state of nature)이란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514) 결국 웨슬리는 선재적 은총을 타락한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최초의 사역으로 보았다. 타락한 본성의 회복은 인간 자신만의 힘으로는 결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아담의 원죄로 인해 전가되어진 모든 인류의 죄책은 하나님의 선재적 은총을 통해 즉 모든 이에게 보편적으로 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덕으로 인해 제거되었다. 동시에 회복의 영으로서의 하나님의 최초 사역은 우리가 하나님께 응답하거나 그분을 지각할 수 있을 정도로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부분적으로 회복시키신다. 부분적으로 회복되어진 인간의 능력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 가능해진다.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선재적인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의 보편적 구속의 은총으로 인간은 아담의 원죄로 인한 죄책으로부터의 사함을 받고 손상되어진 하나님의 형상이 부분적으로 회복되어진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하나님께서 앞으로 지속적으로 부어주실 은총에 응답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선재적 은총에 의해서 응답의 가능성이 열린 인간은 현재 그들의 상태, 즉 그들 자신의 죄책에 대한 용서와 타락한 본성의 치유가 필요함을 자각하게 된다. “병들어 있음을 알고 전적으로 그것을 자각하고 있는 자들만이 의사에게 갈 수 있기에”515) 웨슬리는 구원의 여정의 시작 부분에 영적 자각(awakening)이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웨슬리는 비극과 자연적 재앙들(무서운 섭리), 영적 자각을 일깨우는 설교와 대화 혹은 성령에 의한 직접적인 설득을 통해 자신이 죄인이라는 영적인 자각이 발생한다고 말했다.516) 영적 자각 혹은 죄에 대한 확신은 성령의 사역으로서 매우 다양한 방법의 역사를 통해서 일어나게 된다. 웨슬리는 이러한 성령의 사역이 말씀 듣기와 대화, 좋은 책읽기, 그리고 묵상 등을 통해서 발생한다고 보았기에 이러한 것들을 중요시했다.517) 그 중에서 설교가 “사탄의 왕국을 흔들”518)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강조하고 중요시하였다. 영적인 각성은 죄인으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상태를 인식하게 하고 율법의 내적, 영적 의미를 자각하게 한다. 또한 죄의 값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의지를 떠난 삶은 의미가 없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영적 자각은 확신의 은총에 의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망의 그림자 속에, 어두움 속에 잠자고 있는 그의 마음을 어루만지십니다. 그분(하나님)은 그의 잠을 흔들어 깨우십니다. 그리고 그의 위험을 자각하도록 하십니다.”519) 웨슬리는 처음으로 영적 자각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도구로써 도덕법을 말하고 있다.520) 도덕법은 지고의 변하지 않는 이성으로써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는 하나님 형상의 그림자이며, 또한 성령의 중계를 통해서 죄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죄책과 공포를 확신케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에 선과 악을 구별하게 한다.521) 그리고 결국에는 죄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에게 향하게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영적 자각은 회개와 매우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웨슬리는 의인화와 거듭남 이전의 회개를 “죄인으로서 자기 자신을 자각하는 것”522)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회개를 단순히 칭의 이전의 회개에만 국한시키지 않았다. 웨슬리는 두 종류의 회개가 있음을 주장하였다. 첫 번째 율법적인 회개(legal repentance)는 영적 순례의 시작으로서의 죄에 대한 확신을 포함한다. 즉 율법적인 회개는 성령에 의해서 자신이 죄인임을 자각하는 것으로 확고한 결심과 신실한 의도를 가지고 삶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향하도록 하는 첫 번째 동기523)이다. 웨슬리는 율법적 회개를 영적 삶의 첫 번째 단계인 영적 자각으로서 ‘종교의 현관(porch of religion)’524)이라고 말하고 있다. 두 번째 종류의 회개는 복음적 회개(evangelical repentance)로서 이것은 모든 죄로부터 성결로의 마음의 변화525)를 포함한다. 복음적 회개는 신자의 삶 속에서의 회개로서 의인화와 거듭남 이후의 회개이다. 율법적 회개가 행위의 죄와 관련이 있는 것이라면 복음적인 회개는 영적인 성숙의 과정 속에서 생래적 죄 혹은 원죄, 죄의 본질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확신의 은총과 죄의 자각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율법적 회개만을 고찰하도록 하겠다. 웨슬리는 율법적 회개를 구성하는 요소가 단지 한 가지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1)죄의 이유에 대한 슬픔, (2)하나님의 장중에서의 굴욕, (3)죄에 대한 증오, (4)죄의 고백, (5)신적 자비에 대한 진중한 기도, (6)하나님에 대한 사랑, (7)죄를 중단하기, (8)새로운 순종에 대한 확고한 목적, (9)악하게 발현된 선들의 복구, (10)우리에게 잘못한 우리의 이웃들에 대한 용서, (11)선행과 자선의 열매들526) 위의 인용을 통해 콜린스(Collins)는 웨슬리가 율법적 회개의 세가지 주요 원칙, 즉 1) 확신, 자기 인식 2)영의 곤궁 3) 자기 의와 자기 의인화의 거부에 강조점을 두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527) 율법적인 회개를 한 자는 종의 영을 가진 자로서 그에게 하나님의 율법의 내적이며 영적인 의미528)가 빛을 발하기 시작하여 그는 자신의 심령의 상태가 죄 중에 있음을 깨닫는다. 이 때부터 죄와 투쟁하기 시작하지만 죄가 더 강성하기에 그는 여전히 죄 중에 있게 된다. 그는 계속해서 죄 짓고 회개하고 또 죄 짓고 회개하고를 반복한다.529) 웨슬리는 종의 영을 가진 자들은 의인화의 준비 단계에 있는 사람들로서 ‘율법적 상태(legal state)’에 있는 자들로 ‘유대적 기질을 가진 자’들이고 ‘종의 신앙’을 가진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530) 분명히 율법적인 회개는 은총 속에서의 실질적이고 중요한 성장의 표징이지만 이 성장은 사랑의 심령으로의 거룩한 기질로의 변화까지 이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슬리는 율법적 회개에도 내적 참회와 은총의 외적인 표현인 그에 합당한 열매가 있어야 됨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열매는 형제용서, 악을 중단하고 선을 행하며 하나님이 정하신 바를 따르는 것이고 마지막으로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받아들이는 은총의 척도들을 따라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531) 그리고 중요한 점은 의인화 신앙의 전주곡과 같은 은총의 역사로서의 회개와 그에 합당한 열매가 하나님의 더 깊은 은총들을 부여받기 위한 우리의 준비됨의 표징이라는 사실에 있다.532) 즉 회개는 인간이 먼저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자각 속에서 하나님의 선행(先行)하는 은혜로운 확신 은총에 대한 응답이다. 웨슬리가 신도회를 만든 목적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런 회개, 즉 죄인들로 하여금 다가올 하나님의 분노로부터 자유케하기 위함이었다.533) 따라서, 이점을 통해 웨슬리가 구원의 여정의 시작부터 개인 신앙 생활만이 아닌 공동체의 신앙 생활을 중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은총 속에서의 성장이 친밀한 관계 속에서 서로를 돌보고 관심을 가질 때 가장 바람직하게 이루어진다고 보았기에 웨슬리는 일반적인 기독자들의 모임과 같은 그룹으로 만나는 모임을 참된 은총의 수단들로 보았다.534) 그래서, 웨슬리는 목회적 차원에서 그의 감리교 신앙 공동체 안에 신도회(Society), 연합 신도회(The United Society), 속회(Class), 밴드(Band), 선발 신도회(Select Society), 참회자반(Penitents)과 같은 많은 신앙 공동체들535)을 만들었다. 그리고 웨슬리는 이러한 신앙 공동체들이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루게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보았기에 “속회 모임에 참석하지 않은 자는 우리와 함께 할 수 없다”536)라며 말하기도 하였다. 초기 감리교 신앙 공동체 안의 모든 사람들은 공동체를 통해서 마음과 생활 방식, 도덕을 개혁하고 성결을 이루었다. 확신의 은총에 의한 자기 자신의 죄에 대한 영적 자각과 그 자각을 통한 회개, 그리고 그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마음의 거듭남, 즉 인간 안의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은 아니다. 따라서 성령의 치유의 현존을 통해 확신의 은총 속에 거하는 자들은 그들 자신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는 은총에까지 이르러야만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확신의 은총 속에 있는 인간은 단지 자기의 죄만을 인식했을 뿐이지 그 죄에 대한 용서를 받은 것도 아니고, 그의 타락하고 손상된 본성을 치유 받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회개가 죄의 인식을 통한 우리 영의 필요에 대한 인식이라면 의인화는 그 필요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공급이라고 할 수 있다. 웨슬리의 관점에서 의인화 은총과 죄의 용서에 대한 관계를 알아보기 전에 전통적으로 로마 카톨릭과 종교 개혁자들, 그리고 영국 성공회의 의인화 개념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웨슬리는 그의 실존적 삶 속에서 이들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런 경향들을 가진 사람들과의 논쟁을 통해 그의 의인화에 관한 교리를 확립했기 때문이다. 종교 개혁자들에게 대응하기 위해 트렌트 공의회는 인과 관계의 학문적 원칙에 의거해서 의인화를 분석했다. 그 내용은 의인화의 최종 원인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영광과 영원한 삶에 있고, 공덕적인 원인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는 십자가에서의 거룩한 수난으로 우리를 위한 의인화의 공덕이 되었고 우리를 대표해서 하나님 아버지에게 성화되었다. 그리고 효과적 원인(자극, 동기)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자비이며, 그 제도적인 원인은 세례이고, 형식적인 원인은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주입한 하나님의 의에 있다는 것이다.537)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의인화의 형식적인 원인이다. 트렌트 공의회는 ‘주입되어진 의’를 의인화의 형식적인 원인으로 봄으로써 하나님께서 죄인을 어떻게 공의롭게 받아들이실 수 있는가를 설명하고자 했다.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신자들에게 의를 주입하셨기 때문에 칭의보다 성화가 앞서게 되어 인간 자신의 의가 중요하게 되어버렸다. 이에 반해서 종교 개혁 전통의 신학자들은 의인화의 형식적인 원인을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보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의인화시에 우리에게 덧입혀지는 그의 완전한 능동적이고 수동적인 의의 전형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의 구원의 값이 아니라 그 자체가 우리의 구원이다. 이러한 주장의 필연적인 결과가 바로 예정과 제한된 속죄의 강조이다.538) 중용(via media)을 신학적 특성으로 하는 영국 국교회는 의인화의 형식적인 원인을 모든 신자들에게 자비를 가지시는 하나님의 계약적인 원칙으로 보았다. 하나님의 계약적인 원칙을 의인화의 형식적인 원인으로 보게되면 그리스도의 죽음의 역할은 공덕적인 원인으로 국한되어버릴 가능성이 발생한다. 이점이 믿음의 행위가 어느 정도 인간의 ‘공덕’이라는 주장에 대한 여지를 남겨놓게 한다.539) 그러나 분명히 영국 성공회의 39개 신조는 11조항에서 우리의 의인화(Justification)의 가능성은 인간의 공덕이 아닌 믿음에 의해서라고 밝히고 있으며, 12조는 믿음에 의한 행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밝히고 있다.540) 로마 카톨릭이 성화를 의인화 앞에 위치시켰고, 종교 개혁가들이 의인화 안에 성화를 내포시켰다면 영국 국교회, 특히 1690년대의 조지 불(George Bull)은 의인화 이전의 성결한 삶에 의존하지 않는 ‘처음 의인화(initial justification)’와 성화 안에서 열매를 가지는 의인화의 신앙에 의존하는 ‘최종 의인화(final justification)’를 구별하였다.541) 영국 국교회와 신비 영성가들의 충실한 신봉자였던 올더스케잇 체험 이전의 웨슬리는 의인화와 성화를 종종 혼동했다. 1730년에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웨슬리는 “복음 안에서의 죄의 용서가 성화입니다.”542)라고 쓰고 있으며 당시의 자신이 ‘의인화의 본질과 조건’에 무지했음을 나중에 고백하고 있다.543) 그리고 1738년 이후 종교 개혁가들의 오직 믿음으로만의 구원에 강하게 영향받은 웨슬리는 성화가 의인화를 앞선다는 카톨릭의 오류를 확신하게 된다. 또한 부흥운동 초기에는 성화와 의인화의 매우 미묘한 관계를 설명하고자했던 조지 불의 시도에 강한 반감을 나타내기도 했다.544) 그러나, 종교 개혁자들의 의인화에 내포되어버린 성화의 빈약성 때문에 웨슬리는 후에 조지 불이 시도한 ‘처음 의인화’와 ‘최종 의인화’의 구별과 동일한 것을 주장하였고, 조지 불을 “기독교 교회의 위대한 빛”545)이라고 칭송하기도 하였다. 이 과정 속에서 웨슬리는 의인화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의 덕으로 우리를 용서하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은총을 강조한다.546) 1738년 5월 28일 런던의 롱 아크레(Long Acre) 채플에서 처음 설교하고 1742년 엡워드의 아버지의 묘비석 위에서 행했던 설교인 “믿음에 의한 의인화(Justification by Faith)”547)에서 “의인화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그는 부정의 방법을 통해 의인화를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로 의인화는 실질적인 의와 정의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성화이다. 사실 그것은 어느 정도 의인화의 즉각적인 열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인화는 하나님의 구별적인 은총이다.548) 두 번째로 의인화는 “우리를 율법에 의한 우리에 대한 고소로부터 무효하게 하지는 않는다.” 세 번째로 의인화는 “하나님께서 그가 의인화시킨 사람들에게서 속임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내포한다.549) 이 모든 것들은 의인화가 하나님과의 관계적인 변화임을 말해주고 있다. 웨슬리는 이 설교에서 명확하게 의인화의 성서적 개념이 용서, 즉 죄에 대한 용서임을 말하고 있으며 그 죄에 대한 용서란 생각, 말, 행동에 있었던 그의 모든 과거의 죄책의 사함550)임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의인화란 아들의 피로 인하여 된 화목제를 통하여 과거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심으로 자기의 의(자비)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시는(로마 3 : 25) 하나님 아버지의 행위이다.551) 사망의 선고를 받고 있는 죄인을 생명으로 옮겨놓는 하나님의 선언이다.552) 하나님 아버지의 전적인 은총이다. 나는 의인화에 있어서 다음의 세 가지 요소가 관련된다고 믿는다. 즉 하나님에게서는 그의 위대한 자비와 은혜, 그리스도에게서는 자기의 몸을 바쳐 피를 흘리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시킨 대속 그리고 우리에게 있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는 참되고도 산 믿음, 이 세 가지가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이다.553) 의인화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관계성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직접적인 관계성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화목제의 중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죄인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죄인이 의인(義認)이 되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 믿음이 바로 그 조건이다.554) 믿음은 “구원의 유일한 수단555)과 조건556)”이며 동시에 “의인화의 필수 조건”557)이다. 여기서의 믿음은 성서가 확증하는 것에 대한 동의와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신뢰(fiducia)를 의미하며558) ‘마음의 기질(disposition of the heart)’559)을 의미한다. 하나님과의 관계 변화인 의인화의 죄책에 대한 용서라는 측면은 과거의 죄책의 힘에서의 해방을 의미하며 비록 죄인이지만 의롭게 여겨진 신자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풍성히 향유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복구되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런 칭의의 결과는 평화와 기쁨이다. 칭의 후에 인간은 비록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소망을 향유하게 되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책과 죄의 힘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이것이야말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입니다! 이는 현세에서도 얻을 수 있는 구원입니다. 죄로부터의 구원과 그 죄의 결과에서의 구원을 일컬어 종종 칭의(Justification)란 말로서 표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광의(廣義)의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지금 그를 믿는 죄인에게 이뤄지는 죄책과 형벌에서의 해방을 뜻하며 또한 그 신자의 맘속에 형성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의 힘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합니다.560) D. 치유의 영으로서의 은총과 죄의 치유
1. 거듭남의 은총과 죄의 치유 전형적인 영국 국교회의 신학자들인 리챠드 후커(Richard Hooker)와 란셀롯 엔드류(Lancelot Andrewes)와의 비교를 통해 웨슬리의 의인화에 대한 교리 연구를 학위 논문으로 쓴 발커(Walker)박사는 의인화를 용서와 참여의 관점에서 보고 있다. 그는 ‘신앙 의인화’에, 관계적이며 치유적인 면과 주관적이며 법정적인 면이 동시에 있다고 주장561)하고 있다. 그 근거로 발커 박사는 “믿음에 의한 의인화(Justification by Faith)”라는 설교에서 말한 의인화의 결과 혹은 특징으로서 죄책에 대한 용서, 하나님의 호의에 대한 회복, 영적 삶에 대한 우리의 죽은 영혼의 회복562)과 동시에 치유자로서, 심판자로서의 하나님의 상징563)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전형적인 종교 개혁자들의 입장에서 웨슬리의 의인화에 관한 교리를 이해하고 있다. 웨슬리를 연구하는 현대의 학자들 중에서도 의인화와 거듭남과의 관계에 대한 문제에 대해 혼란을 야기하는 경우564)가 종종 있다. 그러나, 웨슬리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의 위대한 특권(The Great Privilege of those that are Born of God)”이라는 설교에서 의인화와 거듭남565)의 관계를 분명히 설명하고 있다.
칭의와 거듭남이 시점에 있어서는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이 둘은 쉽게 구별되는 것입니다. 이 둘은 동일한 것이 아니요, 대단히 다른 성질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칭의는 단지 관계적인 변화를 의미하며 거듭남은 실제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우리를 의롭다 하심으로써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시지만 우리를 새로 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일을 하십니다. 전자로 말미암아 우리의 하나님께 대한 외적인 관계를 변화시키고 그로 인하여 원수였던 우리가 자녀들이 되는 것입니다. 후자로 말미암아 우리 영혼의 깊은 속이 변화되어 그로 인하여 죄인이었던 우리가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전자는 하나님의 호의에, 후자는 하나님의 형상에 우리를 복귀시켜 줍니다. 전자는 죄책을 제거하는 일이요, 후자는 죄의 힘을 제거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둘은 시점에서는 함께 결합되어 있지만 전연 별개의 성질의 것입니다.566) “믿음에 의한 의인화(Justification by Faith)”를 처음으로 설교했던 1738년 직후에 웨슬리는 넓은 의미에서 의인화 속에 죄사함과 거듭남 그리고 성화를 다 포함시켰던 경향이 있다.567)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웨슬리는 의인화와 거듭남을 구분568)하기 시작한다. 칭의와 거듭남, 그리고 그 결과로서 하나님의 양자됨이 시간적으로는 동시에 발생하지만 논리적으로는 차이가 있다. 칭의가 거듭남에 앞서며 칭의와 거듭남 후에 신자는 하나님의 양자가 된다. 이것은 결국 한 사건의 다른 측면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거듭난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죄책을 용서받으며, 동시에 하나님의 은총을 통해서 죄책과 죄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어 결국에는 하나님의 자녀로 양자(adopted)되어 하나님의 상속자 곧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상속자가 된다.569) 조종남 박사는 거듭남과 양자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reconciliation)의 측면으로서 의인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고 해석하고 있다.570) 의인화는 우리 죄를 용서하심으로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우리를 위한(for us) 위대한 사역이며, 거듭남은 우리의 타락한 본성을 새롭게 하시는 우리 안에서(in us) 하나님께서 하시는 위대한 사역입니다. 시간적인 순서로 본다면, 어느 것도 다른 것에 우선되지 않으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하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순간, 역시 우리는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사고의 순서로 본다면, 말의 표현에 있어서 칭의가 거듭남에 앞서는 것입니다.571) 의인화가 상대적인 변화를 의미한다면, 거듭남은 실제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의인은 하나님을 향한 외적 관계에서 죄책의 해결을 통하여 지금까지의 원수 관계였던 것을 올바른 관계로의 변화라면572) 거듭남은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모든 덕의 열매들을 심어주심으로서 “은총 속에서 자라나는”573) 것을 가능케 한다. “거듭남(New Birth)”이라는 설교에서 웨슬리는 거듭남의 근거로서 “우리 본성의 완전한 타락”574)을 들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죄 안에서 죽은 존재이기에 다시 태어나야만 하기 때문이다. 결국 완전히 타락한 우리의 본성은 절대적으로 거듭남을 필요로 한다. 의인화와 거듭남을 경험한 하나님의 양자575)된 기독자는 주님의 사랑의 빛을 보고, 주님의 목소리를 내적으로 들으며, 성령의 역사를 느끼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며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된다.576) 왜냐하면 거듭남의 은총의 본질이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 안에서 일하시는 위대한 변화라는 점이기 때문이다.577) 거듭남의 시점인 칭의의 순간에 모든 그리스도의 덕으로 씨앗이 영혼 속에 심겨지며 그때부터 신자는 점진적으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은총 속에서 성장하게 된다.578) 즉 거듭남의 시점은 도덕적 형상 회복의 시점이기에 거듭남 후에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해 죽어있던 신자의 영적 감각이 다시 살아나게 된다. 또한 영적 감각을 살아나게 하는 거듭남의 본질은 부분적인 변화가 아니라 전적인 변화이다. 거듭남이 전적인 변화이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본성이 완전히 타락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권능의 영이 전적으로 행하시는 것이다.579) 여기서 전적인 변화는 성화의 완전성 즉, 거듭남에 완전의 의미를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성화의 시작으로서의 철저함과 완전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듭남이라는 초자연적인 변화는 바로 ‘성결과 성화의 입구이며 일부분’580)이다. 즉 거듭남으로부터 치유의 은총으로서의 성령의 점진적인 역사가 시작되며 이 거듭나게 하시는 영이 인간으로 하여금 그 자신의 내적 죄악성을 극복하게 한다. 그러므로 성결은 선재적인 은총이나 확신의 은총이 아닌 거듭남으로부터 시작된다. 웨슬리는 거듭남을 내적 성결로 보았으며 그 특성을 순간적이고 전적인 하나님의 사역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거듭남 이후 성화의 외적인 성결의 측면 즉, 하나님의 지속적인 성화의 영을 받기에 합당하게 하는 자비와 경건이라는 인간의 응답적인 행위를 포함한다는 측면581)을 고려하면 웨슬리의 구원론의 큰 특징을 알 수가 있다. 성화는 과정성과 순간성582)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왜냐하면 거듭남은 성화의 과정 속에 포함되어지기 때문이다. 웨슬리는 우리의 마음판에 새겨진 성결의 회복과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마지막으로 이 세상에서의 행복을 위해서 거듭남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583) 그리고 거듭남의 표징은 믿음, 소망, 사랑이다. 이것들 중에 거듭남의 표징으로서의 “믿음은 단지 사변적이거나 관념적인 믿음 혹은 동의가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난 이해의 행위로서의 동의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속에서 역사하시는 내적 경향(disposition)”584)을 말한다. 이러한 내적 변화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고한 신뢰로서의 믿음이다. 믿음에는 열매가 있다. 그것은 죄의 힘으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것과 하나님의 자비와 의가 나타나심으로 오는 평안이다.585) 이 믿음의 즉각적이고도 항상 있어야하는 열매, 곧 믿음과 잠시라도 결코 나눠질 수 없는 열매는 바로 죄를 이기는 힘입니다. 첫째로는 모든 외적인 죄를 이기는 힘인데, 모든 악한 말과 행실을 이기는 힘입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죽은 행실로부터 양심을 깨끗하게 하도록”(히브리 9:14) 어디에서나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는 내적인 죄를 이기는 힘입니다. 믿음은 모든 불경건한 정욕과 성정(性情)으로부터 마음을 정결케 하기 때문입니다. ... 너희가 과거에는 죄의 종이었으나 이제는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음”을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말입니다.586) 거듭남의 두 번째 표징인 소망은 그리스도의 내주하심으로 오는 결과로서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에서 오는 확신이다.587) 결국 이 소망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확신의 교리와 동일한 것이다.588) 세 번째 표징인 사랑은 “우리에게 주어진 성령에 의해서 우리의 마음에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589)이다. 이 사랑으로 사랑의 이중 계명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가능해진다. 사랑의 은총으로 거듭난 자는 하나님의 의지와 계명에 순응하고 순종할 수 있게 된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은총은 하나님의 생명을 죽은 영에 불어 넣어주시는 은총이며, 병든 인간의 본성을 정화시키고 치유하시는 은총이다. 갱신과 관련된 이러한 성령의 권능은 우리가 하나님과 영원을 향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본성의 전적인 타락이 우리로 하여금 죄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을 향하게 했다면, 거듭남의 은총은 우리로 하여금 순종과 성결을 향하게 한다. 왜냐하면 거듭남의 은총을 통해서 거듭난 신자는 타락한 본성이 치유되어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그에게 하나님의 치유의 영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응답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의 심령이 실질적으로 변해가는 과정 속에 있게 된다. 당신의 병을 아십시오! 그리고 이 병의 치료법을 아십시오. 그러므로 여러분은 다시 나야 합니다. 하나님에 의해 태어나야 합니다. 날 때부터 당신은 전적으로 부패하였습니다. 이제 당신은 은혜로 말미암아 다시 온전히 새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당신은 모두 죽었고 두 번째 아담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살아나게 됩니다. ‘여러분은 죄 중에서 죽었지만 그리스도께서 살려주신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삶의 원리, 곧 당신을 사랑하셔서 당신을 위해 자신의 몸을 주셨다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주신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 당신의 모든 병이 치료되고, 모든 마음속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온전히 품을 때까지 믿음에서 믿음으로 나아갑시다.’590) 의인과 거듭남의 순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덧입혀 주시고 또한 심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591)를 통해 하나님의 도덕적 형상이 회복되어져 마음의 습관적인 기질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또한 이러한 마음의 습관적인 기질의 변화는 의도적인 죄와 외적인 죄를 짓지 않게 한다.592) 그러나 성서의 예를 보면 분명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임에도 죄를 범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신자가 자범죄에 빠지는 이유는 거듭난 자의 마음속에 비록 지배는 받지 않지만 내적 죄가 남아있기 때문이다.593) 즉,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도 모든 악의 씨앗인 생래적인 죄, 악의 경향성, 본성의 타락성이 남아 있기에 죄를 지을 가능성이 남아 있게 된다. 거듭난 후의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 어린이로서 비록 성화 되었을지라도 부분적으로 성화된 것이기에 온전한 성화를 향해 점진적으로 성장해야 하며 육, 세상, 악에 대하여 깨어있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는 그 순간 우리는 갱신되어지고 깨끗해지며 정결해지고 성화 되었을지라도 동시에 우리는 아직 온전히 갱신되어지고 온전히 깨끗해지고 온전히 정결해지지는 못한 것입니다. 육과 악한 성질이(비록 정복은 되었지만) 아직도 남아 있어 영과 더불어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다 더욱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움에 있어서 모든 근면함을 사용합시다. 그 만큼 더욱 우리는 안에 있는 원수에 대항하여 깨어 기도하되 간절히 합시다. 그럴수록 더욱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 우리가 혈과 육과 싸우고, 또한 정사와 권세와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과 싸울지라도 이 모든 것을 다 이룩하면서 이 악한 세대에서 견디어 굳게 설 수 있도록 하십시다.594) 거듭남 후에 기독자는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회복은 완전한 회복이 아니기에 성결의 과정이 필요하다. 거듭남은 지속적 성화라는 보다 큰 과정의 시작을 의미할 뿐이다. 성화는 하나님 형상의 온전한 회복 과정이다. 웨슬리는 감리교 역사에 있어서 성화의 교리를 감리교 교리의 중심에 위치시킨다. 그래서 그는 회개는 종교의 현관(porch)이고, 믿음은 종교의 문(door)이요, 성화는 종교 자체(religion itself)라고까지 말한다.595) 치유와 정화의 성화 은총은 신자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한 회복을 향해 나아가도록 한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 형상의 회복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 없으면 발생할 수 없다. 선재적 은총이 양심, 자유의지와 같은 인간 능력 회복의 불가항력적인 은총이라면 성화의 은총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응답을 필요로 하는 하나님과 인간의 협력(Divine-human cooperation)을 요청하는 거부 가능한 은총이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서 일하시기에 여러분이 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일하시지 아니하면 인간이 자신의 구원을 이룩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 둘째로,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서 일하시니 그러므로 여러분도 일해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고후 6:1)이 되어야만 합니다(이것이 사도 바울이 한 말 그대로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일하시기를 그만 두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총을 주시되 “무릇 있는 자는 더 받게 되고 없는 자(이미 있는 은총을 키우지 않는 자)는 있는 것도 빼앗깁니다.”(마태 25: 29) 이것이 하나님의 일하시는 원칙입니다. 이러한 교리와는 반대되는 쪽으로 기울기를 좋아하였던 성 어거스틴은 심지어 Qui fecit nos sine salvabit nos sine nobis라고 하였으니 이 말은 “인간 없이 인간을 만드신 분께서는 인간 없이 인간을 구원하시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596) 웨슬리는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인간의 응답적 협력을 중시했다. 그리고 성화의 은총 역시 하나님의 현재적 선물이기에 신자들이 지속적으로 부어주시는 은총에 응답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도 은총을 부어주시는 일을 중단하신다. 따라서 웨슬리는 “완전을 향해 지속적으로 나아가지 않는 한 성결이 유지될 수 없다”597)고 하였다. 그러하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은총이 크면 클수록 이 은총을 활용해야할 의무가 더욱더 커지게 되기 때문에 결코 머물러 쉴 수가 없게 된다.598) 성화란 타락한 피조물이 창조주와 교제 가능한 실존으로 회복되는 것이며 원창조시의 청지기로서의 삶을 회복하는 것이다. 성결을 증가시킴으로서 하나님과 다른 피조물들과의 관계를 더욱 더 강건하고 통전적으로 만들어 가는 삶이 성화이다.599) 칭의 후에 자범죄와 죄책에서 자유하게 되고, 거듭남의 순간 내적 죄악성이 파괴되기 시작함으로 죄의 힘으로부터 구원받았다 할지라도, 내적 죄악성이 계속 남아있기 때문에 신자들은 그들 자신이 이따금씩 자만, 고집, 이 세상에 대한 사랑, 분노, 탐심, 불신앙600)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이런 내적 죄악성의 확신이 성령으로 하여금 신자의 마음에 도덕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의 완전한 구현을 시도하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도덕법) 여전히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용법(이로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여전히 마음과 삶 속에 남아있는 죄를 확신시킵니다. 그리고 그런 까닭에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에게 가깝게 다가가게 해서 그의 피가 우리를 매순간 정화시킵니다. 두 번째로 그것은 우리의 지성(Head)으로부터 힘을 이끌어냅니다. 세 번째로 그것은 우리가 그(그리스도)의 약속들을 실질적으로 완전히 소유할 때까지 은총 위에 은총을 수여 받는 것과 그것이 명령한 것이지만 아직 우리가 획득하지 못한 것에 대한 우리의 소망을 굳건히 합니다.601) 하나님의 빛과 그림자인 성령과 도덕법을 통해서만이 신자들은 자신 속에 남아 있는 부패성을 볼 수 있고 죄의 힘으로부터 자유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남아 있는 내적 부패성 혹은 죄악성으로 인하여 믿음을 상실 할 수 있고, 타락의 경향성에 굴복할 수 있으며, 결국에는 다른 사람처럼 자범죄를 범할 수도 있다. 따라서, 웨슬리는 스스로 섰다고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하며, 우리의 품속에 누워 있는 드릴라에 대항하여, 악한 본성에 대항하여,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602) 그러하기에 신자들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603)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마음속에 남아 있는 모든 죄악성으로부터 깨끗하게 되고, 우리의 말과 행동이 모든 불의로부터 깨끗하게 된다. 우리 영혼을 사랑하시는 위대한 의사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깨끗케 하실 수 있다. 때문에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믿는 우리의 믿음과 지속적인 회개를 통해서 성결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604) 회개와 믿음은 구원의 출발일 뿐 아니라 구원의 계속적인 성장에 필요한 것으로, 하나님 나라로 이르게 한다. 그러므로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이 시작되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완성된다. 따라서 온전한 성화를 죽기 전에 이루었다고 할지라도 계속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혈을 필요로 한다. 그리스도의 의로움과 거룩함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계속적인 회개와 믿음이 요청된다.605) 우리가 칭의 후에도 우리의 죄과(罪過, demerit)-어떤 의미에서는 죄책이라 할 수 있겠지만-를 깊이 깨닫는 것은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깨달음으로써 우리는 대속하시는 보혈의 참 가치를 볼 수 있게 되며, 이 보혈은 우리가 전에 필요하였던 것과 같이 지금 의롭다 하심을 입은 후에도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와 같은 깨달음이 없이는 우리는 이 언약의 보혈을 단지 하나의 보통 것이라고, 즉 우리의 과거의 모든 죄는 도말된 것을 알고, 지금은 별로 필요치 않은 어떤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만약 우리의 마음과 생활이 이와 같이 깨끗하지 않다면, 여기에는 우리와 순간순간 관계되어 마침내는 우리들로 하여금 순간순간 새로운 정죄를 받게끔 하는 어떤 죄책이 있는 것입니다.606) 칭의 후에도 필요한 지속적인 회개가 바로 복음적 회개로서의 신자의 회개이다. 복음적인 회개는 은총 안에서의 성장과 지속을 위해서 필요한 것으로 “죄로부터 성결로의 마음의 변화인 내적 변화”607)를 의미한다. 칭의 후의 지속적인 회개는 남아 있는 죄에 대하여 깨닫는 것이고 우리 마음에 고집, 우상숭배, 불신앙이 남아 있다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제사장과 왕으로 삼아 동행하지 않을 때의 자신이 무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608) 온전한 성화 이전에 필요한 회개(복음적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있는데 그것은 성화의 과정에 필요한 일종의 인간의 응답적 선행(good works)인 경건의 선행(all works of piety)과 자비의 선행(all works of mercy)이다.609) 먼저 경건의 선행은 은총의 수단들을 말하는 것으로 공적 기도(대중기도), 가족기도, 골방기도, 주의 만찬에 참석하는 것, 성경 말씀을 듣고 읽으며 명상하면서 하는 성경 연구, 또는 몸의 건강이 허락하는 대로하는 금식, 절제 등을 말한다.610) 웨슬리에게 있어서 은총의 수단은 신자들에게 성화의 은총을 전달하는 공식적 매개체이었기에611) 그는 은총의 수단을 통해 그를 따르는 신앙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기독자의 훈련을 시켰다. 또한 진정한 기독자의 삶 즉,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그리스도가 걸으셨던 그 길을 그대로 걷도록 엄격한 규율을 적용시켰다. 이것은 웨슬리가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신학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신학과 신앙에 있어서 철저하게 목회적이며 실천적인 면에 관심을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김진두 박사는 웨슬리의 은혜의 방편을 웨슬리 목회 자체로 보았으며 웨슬리가 교회를 이 은혜의 방편을 실행하는 거룩한 기구로 보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612) 온전한 성화 이전에 필요한 회개의 두 번째 열매는 자비의 선행이다. 이 자비의 선행 역시 “경건의 열매와 마찬가지로 은총의 참된 수단”613)으로 죄인들의 일시적인 요구와 영적인 요구를 충족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웨슬리는 또한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매여 있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고전 9:19)라는 사랑의 종노릇에 대한 바울의 고백을 배고픈 자를 먹이고, 헐벗은 자를 입히며, 병든 자와 갇힌 자를 방문하고, 눈먼 자에게 눈이 되어 주며, 고아에게 아버지가 되어 주고, 과부에게 남편이 되어 주는 것이라고 아주 구체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일들은 사람의 육과 영에 관계된 것들입니다. 굶주린 자를 먹이며, 헐벗은 자를 입히고, 나그네를 대접하며, 감옥에 갇힌 자나 병든 자나 여러 가지로 어려움 있는 자들을 찾아보는 일들입니다. 또한 무식한 자를 가르치며, 어리석은 죄인을 각성시키며, 뜨뜻미지근한 자에게 활기를 주며, 흔들리는 자를 견고케 하며, 마음이 연약한 자를 위로하고, 시험받는 자를 구조하는 것 혹은 죽어 가는 영혼들을 구원시키고자 하는 방법에 자신을 헌신하는 것과 같은 것들에 애쓰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요, 회개에 합당한 열매이며, 온전한 구원에 필요한 것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명하사 완전한 구원을 기다리게 하시는 길입니다.614) 자비의 선행이라는 성화의 측면은 성화에 있어서의 사회적인 면을 보여준다. 웨슬리는 동생 찰스와 함께 1739년에 출판한『찬미와 성시집』(Hymns and Sacred Poems)의 머리말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회적이지 않은 종교를 모른다. 사회적 성결 아닌 성결을 모른다”615)라고 하였고 또 산상 수훈에 관한 설교에서는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종교입니다. 기독교를 고독한 종교로 바꾸는 것은 참으로 기독교를 파괴시키는 것입니다.”616)라고 힘주어 말하며 단지 세상을 떠나 자신만의 내적 성결에 함몰어버린 신비주의자들과 모라비안들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왜냐하면 웨슬리는 사랑을 활동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이웃으로 더불어 자신의 활동적인 관계성 안에서 대응하는 변화 없이는 ‘내면적인 사랑’ 또한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617) 그가 사회적 성결, 즉 이웃 사랑의 실천을 중시했다는 예들은 그의 인쇄된 설교문 151편 중 13편이 산상수훈 강해 설교였고618), 브리스톨에서 처음 옥외 설교할 때(1739) 예수님이 옥외 산상에서 설교하셨듯이 웨슬리도 옥외 탄광 지역에서 산상수훈 강해 설교를 시작했다는 점619)에서 알 수 있다. 이런 까닭에 김홍기 박사는 루터에게 있어서 종교개혁의 교과서가 로마서라면, 웨슬리에게는 산상수훈이었다라고 말하고 있다.620) 웨슬리는 그의 평신도 지도자들을 교육시킬 때, 평신도 설교가들을 세우시는 하나님의 목적이 “어떤 새로운 종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민족을 개혁하는 것(to reform the nation), 특별히 교회를 개혁하는 것, 그리고 온 땅에 성서적 성결을 널리 퍼트리는 것”621)이라고 말하였다. 따라서 웨슬리는 이런 성화의 사회적인 특성에 집중하여 구제 기금 조성과 구제 사업, 고아와 과부들을 위한 고아원과 구빈원(The Poor House) 설립 운영, 교도소 목회, 병자 간병인과 무료 진료소 설립 운영,『원시 의학』(Primitive physics)의 저술, 노예 해방 운동과 같은 박애 운동을 펼쳤으며, 킹스우드에 학교를 세움으로 교육 사업을 펼쳤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성화 신학이 구체적이며 실천적이고 목회적인 특징을 가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칭의 후에 회개(복음적 회개, 신자의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다름 아닌 성결의 삶, 즉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삶이다. 그러나, 웨슬리는 이것들이 완전한 구원(full salvation)에 있어서 믿음과 같은 의미로 혹은 같은 정도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구분하고 있다.622) 복음적 회개와 그 열매가 우리의 성화를 위해 비록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지만 우리를 성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성화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는 단지 믿음뿐이다.623) 다소간의 회개를 통해서 그 회개의 열매가 있든지 없든지 간에 믿음으로 성화(온전한 성화)624)되는 것이다. 신자의 성결이 가능해지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완전을 향해 나아가는 점진적인 성화의 은총을 통해 죄인을 치료하시는 위대한 의사인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을 믿는 신자의 믿음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신자의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있는 내적 죄악성을 소멸시키시며 타락하고 병들어 있는 본성을 치유시키시고 손상되어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더욱 큰 의무가 발생하게 된다. 선재적 은총으로부터 확신의 은총, 의인화의 은총, 거듭남의 은총으로 점점 더 은총의 무게가 더해질수록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부요하신 은총의 역사를 더욱 풍요하게 할 책임이 있다. 하나님이 더 많은 은총을 우리에게 부어주실 수 있는 우리 자신의 그릇을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다. 즉 우리는 더욱 우리 자신의 내적 성결(하나님 사랑)과 사회적인 성화(이웃 사랑)을 증가 시켜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병자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병을 낫고자 노력하면 할수록 자신의 병이 빨리 치유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치유의 영이 우리의 본성을 치유하실 때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우리의 응답적인 노력이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의 온전한 회복의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3. 온전한 성화(완전)의 은총과 죄의 치유 웨슬리는 온전한 성화625)를 위해 회개와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그것들이 우리의 완전을 이루는 것은 아님을626) 말했다. 믿음을 통해 받아들이게 되는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의 온전한 성화를 가능하게 한다. 단지 하나님만이 우리를 전적으로 성결시킬 수 있다. 웨슬리는 그의 설교 “구원에 이르는 성서적 길(The Scripture Way of Salvation)”에서 죄로부터 구원받고 사랑 안에서 완전해 지는 우리의 온전한 성화를 위해 필요한 믿음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다. 성화에 필요한 믿음은 성서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에 대한 신적인 증거와 확신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할 수 있으며, 이 약속을 하나님께서 현재 이행하시고 있다는 신적인 증거와 확신이다.627) 따라서 성화가 과정적이라면 온전한 성화 즉 완전의 체험은 순간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웨슬리가 이해한 완전의 상태는 완전해진 완전(perfectio; perfected perfection), 즉 성취되어진 상태로서의 완전인 천사 같은 완전(angelic perfection)이 아니라 과정적인 완전(teleiotes; perfecting perfection)으로서 “모든 사랑의 충만을 위한 끝이 없는 열망”628)이다. 완전 경험은 순간적이지만 그 순간 전과 후는 점진적이다.629) 바로 이점이 완전에 대한 웨슬리의 반대자들과 심지어는 추종자들까지 웨슬리가 말하고 있는 완전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켰다.630) 웨슬리는 완전을 경험한 이들도 무지로 인해 지식에 있어서 완전하지 못하고, 실수, 연약함과 유혹에 있어서 자유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이 땅에서의 완전은 상대적인 완전으로 절대적인 완전은 현실에서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631) 그리고 성도들은 오히려 이러한 육체적 연약함, 아픔, 고난 속에서 그리스도의 은총이 강해지고 완전해짐을 경험한다.632) 이러한 무지, 연약, 실수와 유혹으로부터도 자유함을 얻고, 무의식적인 죄에서도 성결함을 받는 것은 죽은 후 영화의 단계에서나 가능한 것이다.633) 완전 사랑의 은총을 경험한 성도도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속죄 은총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온전한 성화에 이른 성도도 의식적인 죄는 범하지 않지만, 무의식적으로 하나님의 법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634) 그러나 분명 웨슬리의 목회 전 기간에 걸쳐서 그의 사상 중에 가장 일관된 단일한 주제는 ‘거룩한 생활’ 즉 ‘완전’이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완전은 성결한 사랑이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는 상태 속에서의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완전 사랑이며 죄 없음의 완전 성결 상태이다.635) 그리고 웨슬리가 기독자의 완전을 말할 때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유아적인 기독자(babes in christ)’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장성한 분량의 기독자(adult christian)’636)를 지칭하는 것이었다.637)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의 ‘유아적 기독자’조차도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기에 죄를 범하지 않을 정도로는 완전하다638)고 웨슬리는 그의 설교 “기독자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에서 말하고 있다. 웨슬리가 말하는 죄 없음의 완전 성결 상태는 완전의 소극적인 의미로서 기독자를 타락(backsliding)하게 만드는 자만, 고집, 이 세상에 대한 사랑 등과 같은 거룩하지 못한 기질들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즉 죄 없음의 완전 성결 상태란 죄의 뿌리로부터의 구원을 말하는 것639)이며 죄에 대하여 완전히 죽는 것640)을 의미한다. 결국 완전을 경험한 사람은 성령의 온전한 성화의 은총의 현존을 통해 그의 생래적인 죄(inbred sin)로부터 정화되어진다. 그의 타락한 본성이 완전히 치유되어진 상태에 있게 된다. 이러한 상태는 완전 경험을 한 성도의 죄의 뿌리까지 뽑히는 것을 뜻하며, 행위적인 죄들뿐 아니라 내적인 죄까지도 그에게서 근절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죄의 지배를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죄가 남아 있지도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대신하여 자기 몸을 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갈 2: 20) 이 말씀은 외적인 죄와 함께 내적인 죄에도 구원받은 것을 명백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소극적으로도 표현되었고 또한 적극적으로도 표현되었습니다. 소극적으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라”고 하였으니 이는 나의 악한 성질 곧 죄의 몸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는 말씀과 “내가 산 것이 아니라”는 말씀은 분리시킬 수 없도록 결합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신자들 사이에 살고 있는 사람은 믿음으로써 그의 마음이 정결하여질 것입니다. 이는 “영광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신 사람은 그의 깨끗하심 같이 자신을 깨끗케 하기”(요한 일 3: 3)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마음이 겸손하였기에 그는 교만으로부터 깨끗함을 받습니다. 완전한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뜻과 욕망으로부터 깨끗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시고 그의 사업을 이루시는데 전심하려 하셨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그리스도인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성냄(분노)으로부터 깨끗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온유하시고 점잖으시며 인내하시고 오래 참으시기 때문입니다. ... 허물에 대하여는 노하시고 기뻐하시지 않으셨으나 허물을 저지른 사람에 대하여는 불쌍히 여기신 것입니다. 그 일에 대하여는 연민과 사랑으로 대하셨습니다. 완전한 이들이여! 가서 이와 같이 행하십시오. 분노하더라도 범죄하지는 마십시오. 하나님을 거역하는 모든 죄에 대하여는 분노를 느낄지라도 거역하는 사람만은 사랑하고 따뜻하게 동정하여야 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그 백성들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십니다. 외적인 죄에서만이 아니라 마음의 죄로부터도 구원하십니다. 악한 생각으로부터 그리고 악한 성품으로부터 구원하시는 것입니다.641) 완전을 경험한 사람은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거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총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실천에 아무런 제약도 거리낌도 없게 되고 그의 영혼에 이러한 사랑과 반대되는 어떤 나쁜 기질도 남아있지 않게 됨으로 그의 모든 생각들과 언어들, 그리고 행동들은 온전한 사랑에 의해 지배받게 된다.642) 이것이 바로 완전의 적극적인 의미인 완전 사랑이다. 이런 상대적인 완전이 지상에서 가능한 것은 아르미니우스에 의해서 영향을 받은 은총의 낙관주의(optimism of grace)643)에 의해서이다. 우리의 죄악성의 깊이로는 불가능하지만, 그러나 은총의 높이가 크시기에 그 크신 은총으로 가능하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웨슬리에게 온전한 성화의 상태도 역시 정착된 상태가 아닌 과정으로서의 상태이다. 내적인 죄까지도 사함 받는 것이 완전이지만, 웨슬리는 완전을 경험한 성도도 다시 죄 중에 빠질 수 있음을 그의 목회적인 경험을 통해서 말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은총을 유지하는 것이 그것을 얻는 것보다 더욱 어려우며, 세 명중에 하나도 이것을 하기 힘들며 이것은 완전한 사랑을 경험한 이들에게서도 나타난다”644)라고 말하고 있다. 웨슬리는 온전한 성화 은총의 상실의 가능성 때문에 완전한 사랑을 경험한 신자라도 지속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마음의 순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645)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가 여전히 완전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도 필요한데 이것은 단지 생래적 죄와 실제적 죄가 그들에게 다시 출현하지 못하게 하는 데에 필요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태만, 단점, 판단과 실행에 있어서의 실수, 여러 가지 모양의 결점들을 위한 속죄”646)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웨슬리는 혹여 은총의 상실을 경험한 이들에게 교만, 열광주의, 율법폐기론, 태만, 분열에서 벗어나 하나님만을 추구하고 모든 일에 남의 모범이 될 것을 충고하고 있다.647) 특히 웨슬리는 결국 생래적 죄와 외적 죄의 재출현 가능성과 유혹648), 혹은 인간의 연약성으로 인한 무의지적인 하나님의 율법의 위반 등으로 온전한 성화 은총 상실의 가능성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지속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혈이 필요한 것이다. 결국 웨슬리가 죄없는 완전이라는 구절을 사용했을 때, 그것이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던 간에 사랑의 완전한 이중 계명의 어떠한 위반으로부터도 자유하다는 의미에서는 결코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완전을 죄로부터의 구원의 의미에서 사용했다.649)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 없는 완전이 가능한 것은 웨슬리가 이해한 죄에 대한 개념으로부터 가능하다. 그것은 웨슬리가 인간의 유한성으로 인한 무의지적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위반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죄로 보기에 부적절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4. 영화의 은총과 죄에 대한 완전한 승리(mortification) 웨슬리는 죄의 치유적 강조점과 일관해서 기독자들이 죄의 본질로부터의 자유의 그 궁극적 상태인 영화 되어지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의도하는 마음과 삶의 성결을 회복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650) 그러나 이것은 웨슬리가 죽음 이전에 전적으로 성화되었던 이들의 최종 의인화(Final Justification)를 제한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보다는 하나님께서 은총 안에서 신실하게 장성한 자들 모두가 어느 정도 종말(eschaton) 이전에 기독자의 완전을 획득할 수 있다는 확신의 반영이다.651) 콜린스는 구속의 순서에서 웨슬리가 목적한 것은 완전이라기 보다는 구원의 영원한 목적 즉, 영원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652) 웨슬리는 그의 전 생애를 거쳐 온전한 성화를 넘어서서 영원으로의 구속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653) 그러나 그의 가장 흥미로운 주장 중에 하나는 완전히 적합치 못한 이들은 그들이 최종적인 종말을 기다리는 동안 낙원에서 ‘원숙의 과정(ripen)’을 지속한다는 것이다. 현재 아브라함의 품에, 낙원에 있는 이들-태초부터 지금까지 육체로부터 해방되어진 모든 거룩한 영혼들은 세상의 근본으로부터 그들을 위해 준비되어진 그 왕국을 받기 전에 끊임없이 하늘에 적합하도록 원숙되어지고 있고, 영속적으로 더욱더 거룩해지고 행복해질 것입니다.654) 이러한 주장은 참으로 흥미로운 것으로서 대부분의 서구 기독교 전통은 이 낙원을 새 하늘과 새 땅의 궁극적 상태를 단지 기다리는 축복된 휴식을 의미한 반면 웨슬리는 그곳을 은총 속에서의 성장의 장소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사실 웨슬리는 완전이란 낙원의 상태를 뛰어넘어 은총 속에서 영원으로의 성장을 의미하였다.655) 지상에서 경험되어지는 완전은 상대적이지만, 천상에서 경험되는 영화는 절대적 완전의 상태를 의미한다. 이 영화라는 구원의 마지막 단계는 종말론적인 의미와 연관이 있다. 그런데 의인화가 죄책으로부터의 구원이요 성화는 죄의 본질로부터 구원이라면 영화는 다름 아닌 죄의 현실성으로부터의 구원이다. ‘그는 그가 의롭게 한자들을 영화롭게 하십니다.’ 이것이 마지막 단계입니다. 그들을 빛의 성도들의 상속자들의 참여자들이 되도록 적합하게 한 그는 그들에게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그들을 위해 준비되었던 그 왕국을 주십니다.656) 당신은 마지막 날에 누구의 의로 서실 것입니까? - 누구의 공덕으로 당신은 하나님의 영광 속으로 들어가실 수 있겠습니까? 저는 주저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의(righteousness) 덕택이라고 대답합니다. 단지 그의 공덕만을 통해서 모든 신자들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즉 죄책으로부터 구원받는 의롭게 됨, 죄의 본질로부터 구원받는 성화됨, 그리고 하늘로 들리어 올리는 영화됨.657) 영화는 의지적인 죄뿐 아니라 무의지적인 죄까지도 사함 받는 상태이다. 또한 무지, 실수, 연약함, 유혹에서마저도 자유함을 얻게 되는 것이다. 죽을 몸이 죽지 아니할 몸으로,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할 몸으로, 병드는 몸이 병들지 아니하는 몸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의 몸처럼 다시 신령한 몸으로 사는 것이다. 실수, 고통, 그리고 모든 육체적인 연약함이 중단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죽음에 의해서 파괴되어집니다. 그리고 인간의 ‘최후의 적’ 죽음 자체는 부활에 의해서 파괴되어 질 것입니다. 우리가 천사장의 목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를 듣는 그 순간 ‘성서의 예언이 완성되어 질 것입니다. 죽음은 승리에 삼킨 바 되었습니다. 이러한 부패한 육체는 썩지 않게 됩니다. 이러한 죽을 몸은 영원함의 옷을 입게 됩니다.’ 그리고 하늘의 구름 속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악마의 마지막 이 일(인간성에 기인한 연약성)을 파괴합니다.658) 웨슬리는 영화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의심할 것 없이 그리스도의 의이다. 어떠한 영혼이라도 영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의가 필요하다. 더불어서 웨슬리는 개인적인 성결 역시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의 없이 우리는 영화에 대한 권리가 없으며 성결 없이 우리는 영화에 적합할 수 없다.”659) 영화를 위해 필요한 그리스도의 의와 우리의 성결에 대한 핵심적인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믿음이다. 웨슬리는 그의 생애 마지막 설교 중 하나인 “믿음에 관하여(On Faith)”에서 믿음을 영적 세계와 관련하여 표현하고 있으며 낙원의 구원 상태를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웨슬리는 그의 설교 “성서적 구원의 길(The Scripture Way of Salvation)”에서 강조한 구원의 현재적 성격과는 대조적으로 구원의 미래적 초월적 성격을 강조한다.660) A. 요약 웨슬리는 평생에 걸쳐서 자신이 추구하였던 ‘참 기독교’를 위협하는 많은 요소들과 논쟁했다. 그 요소들은 모라비안의 정숙주의,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의 율법폐기론적 경향, 자신의 신도회 내의 극단적 열광주의와 당시 영국 사회 전반에 걸쳐 퍼져있던 이신론적 경향들이었다. 그리고 죽음이 임박한 말년에 웨슬리는 낭만주의자들과 합리주의자들 그리고 계몽주의자들의 인간 이성의 극대화에 대한 경향을 경계하였다.661) 이러한 극단들과의 논쟁 속에서 웨슬리가 항상 근거를 두고 힘을 얻었던 신학의 근원은 성서, 특히 신약성서였다. 웨슬리는 그 자신이 신약 학자로서 성서에 계시되어진, 특별히 신약 성서에서 계시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모든 경향들을 경계하고자 하였다.662) 본 논문에서 고찰한 죄 이해의 문제도 이런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지며 다음과 같은 변천 과정을 가진다. 전형적인 영국 국교회의 아들이었던 초기의 웨슬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경향은 로마 카톨릭과 신비주의, 영국의 경건주의 그리고 초대 교부들의 저작들이었다. 이들의 영향을 받은 웨슬리는 타락에 기인한 인간의 현 상황을 철저하게 질병 가운데서 파악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병들어 있는 본성의 치유와 부패한 기질의 정화였다. 이러한 인간의 가장 심각한 질병의 치료약은 믿음이다. 인간은 이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의 덕인 믿음, 사랑, 겸손, 소망을 회복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 또한 인간을 건강과 자유로 회복시키시는 것에 있다. 따라서 초기의 웨슬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있어서 치유자로서의 사역에 집중하였다. 그러므로 웨슬리는 치유의 과정 속에서 자비와 헌신의 활동들로 특징지어지는 훈련된 삶의 방법들을 활용하고 중시하였다. 이점은 당시의 웨슬리가 치유의 과정으로서 ‘거룩한 삶’에 집중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초기 웨슬리에게 나타나는 한계를 보여주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 한계는 비단 웨슬리 자신만의 것이 아닌 당시 영국 국교회의 한계였다. 당시에 영국 국교회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적인 측면보다는 이성주의의 영향 속에서 인간 자신의 실질적인 문제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따라서 웨슬리의 죄 이해에 있어서 속죄의 법정적인 측면의 결여와 속죄의 치유적인 측면의 강조가 이 시기의 특징이다. 구원의 확증의 문제로 고민하던 중기 웨슬리는 올더스케잇 거리에서 하나의 커다란 충격적 체험을 하게 된다. 신대륙의 조지아 선교 후에 모라비안과의 보다 긴밀한 접촉을 통해 웨슬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이라는 기독교의 핵심적 진리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는다. 이 만남으로 웨슬리는 종교 개혁적 전통과 접촉하게 된다. 그들을 통해서 웨슬리는 자신이 고민했던 구원의 확증이 결국은 용서의 확증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종교 개혁전통과의 만남의 충격 속에 있었던 중기 웨슬리는 속죄의 법정적인 측면에 관심을 집중하게 된다. 올더스케잇 체험 이전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던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한 관심과 죄책에 대한 용서가 올더스케잇 체험 바로 후의 설교들의 중심 주제가 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웨슬리는 구원의 유일한 필수 조건인 믿음이 동의(assentia)에다 심정적인 신뢰(fiducia)를 수반함을 확신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모라비안의 정숙주의와 신앙제일주의에 기인한 율법폐기론적 경향은 웨슬리로 하여금 ‘거룩한 삶’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하게 한다. 이점으로 인하여 웨슬리는 칼빈주의자들과도 논쟁하게 되었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에 동의한 웨슬리는 한가지 문제에 봉착한다. 그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신자에게 남아 있는 죄인 죄악성의 문제였다. 이 문제에 대한 종교 개혁의 해결책은 ‘의인인 동시에 죄인(simul justus et peccator)’인데 이것은 죄의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신자나 불신자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지 차이는 인간이 아닌 하나님께 있다. 구원받은 인간은 실질적으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책임을 물으시지 않으시고 자신의 진노를 거두신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인간에게는 가차없이 책임을 물으시고 그를 분노 중에 놓으신다. 이러한 종교 개혁의 전통적 견해는 웨슬리 평생의 관심사인 ‘마음과 삶의 성결’의 배양과 상충되는 것으로 정숙주의와 율법폐기론적 경향에 빠질 가능성이 있었으며 당시 영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경향들이 팽배했었다. 이러한 종교 개혁의 해결책은 하나님의 은총조차도 인간의 실질적 문제인 인간 본성의 타락성을 현실에서는 어찌할 수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웨슬리는 신자 안에 남아 있는 죄에 대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고심한다. 이러한 고민 중에 있던 웨슬리는 또한 당시의 이신론자인 테일러 박사와의 논쟁 때문에 확고한 원죄론을 펼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슬리는 아담의 원죄로 인해 모든 인류의 본성이 전적으로 타락했다는 전통적인 견해에는 동의를 하지만 그리스도의 보혈의 구속에 있어서는 종교 개혁적 전통과는 그 궤를 달리한다. 웨슬리는 보편적 구속(universal redemption)을 믿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혈의 공로가 만인에게 미치기에 원죄의 죄책으로부터 모든 인류는 해방되었다. 그러하기에 인간에게 있어서 실질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자범죄의 죄책의 문제와 아담의 죄로부터 기인한 유전되어진 본성의 부패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웨슬리는 원죄(original sin)라는 단어보다는 ‘생래적 죄(inbred sin)’, ‘내재적 죄(inbeing sin)’, ‘타락한 죄악된 본성(corrupt sinful nature)’, ‘육욕의 사람(carnal mind)’, ‘내적 죄(inner sin)’, ‘태생적 죄(birth sin)’등과 같은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중기 웨슬리가 씨름하였던 신자 안에 남아 있는 죄의 문제는 다름 아닌 인간 본성의 부패성인 ‘생래적 죄(inbred sin)’의 문제였다. 또한 웨슬리의 신학과 실천적인 목회에 있어서 죄와 관련하여 속죄의 법정적인 특성과 치유적인 특성이 긴장관계에 있음을 보여주는 사실 또한 죄의 남음의 문제였다. 신자에게 남아 있는 죄의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서 웨슬리는 성서에 근거해서 죄에 대한 구분을 세밀하게 시도한다. 웨슬리는 죄에 대하여 내적죄와 외적죄, 의지적인 죄와 무의지적인 죄, 죄책과 죄의 힘 그리고 죄의 현실성 등으로 구분하여 논의한다. 이러한 죄의 구분은 모두 모라비안의 정숙주의, 극단적 칼빈주의의 율법폐기론과 웨슬리 자신의 신도회 내부의 극단적 열광주의를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모두 웨슬리가 평생을 통해 강조하였던 완전 사랑의 온전한 성화의 현실성을 거부하거나 혹은 오도하여 완전 경험 후에는 중보자 없이 자기 자신의 의(righteousness)만으로 하나님의 공의 앞에 설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이었다. 중기 웨슬리는 종교 개혁적 전통의 죄와 속죄에 대한 법정적 이해의 강한 충격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충격으로 기인한 죄와 속죄의 치유적 특성과 법정적 특성의 긴장 관계 속에 처한다. 죄와 관련하여 속죄의 법정적 특성과 치유적 특성의 긴장 관계 속에 있었던 웨슬리는 후기에 들어서면서 통찰력 있는 은총 이해를 통하여 죄와 속죄의 특성간에 긴장 관계를 해소시킨다. 루터식 모라비안의 정숙주의, 극단적 칼빈주의의 율법폐기론적 경향, 극단적 열광주의적 경향들과 지속적으로 논쟁하였던 웨슬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과 그 열매인 ‘거룩한 삶’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웨슬리는 1765년부터 일련의 저작들을 통해 인간 현실의 제반 문제인 죄의 문제와 그에 따른 은총 이해와 관련하여 심도 깊은 구원의 과정(ordo salutis)을 정립하기 시작한다. 웨슬리는 은총이 단지 용서만의 의미, 혹은 치유만의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용서의 은총은 타락한 본성 치유의 도구가 된다고 본다. 결국에는 이 은총 안에서 인류는 아담 안에서 잃은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잃은 것 이상의 것으로 회복될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이런 기본적 은총 이해를 가지고 웨슬리는 인간 현실의 제반 문제 속에서 구원의 과정에 대해 서술한다. 아담의 타락으로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여 아무 가능성도 없게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부어주시는 선재적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의 보편적 구속으로 말미암아 가능성이 생기게 되었다. 모든 인간은 원죄의 죄책으로부터 해방되어졌고 선재적 은총으로 인한 본성적 형상과 정치적인 형상의 부분적인 치유는 형이하학적으로 밖에 될 수 없었던 인간에게 하나님을 향해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확신케 하는 은총을 사람들에게 부어주기시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영적 자각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은 칭의와 신생 이전의 회개인 율법적 회개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확신의 은총 속에 있는 인간은 단지 자범죄의 죄책과 죄악성만을 인식했을 뿐이지 죄책을 용서받은 것도 아니고 타락하고 손상된 본성을 치유받은 것도 아니기에 하나님의 용서와 치유의 권능을 지속적으로 받아야 될 필요가 있다. 자기 자신의 죄책과 죄악성을 인식한 인간은 의인화의 은총에 의한 믿음을 통해서 자범죄의 죄책으로부터 구원받게 되고 그와 동시에 거듭남의 은총에 의해서 병들어 있는 자신의 본성이 치유되기 시작됨으로 죄의 힘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칭의와 거듭남 후의 신자 안에는 여전히 내적 죄악성 즉, 죄의 현실성이 남아 있다. 그러나 내적 죄악성 자체는 죄가 아니다. 그것은 죄에 대한 경향성이다. 그러므로 칭의와 거듭남 후의 신자는 죄의 지배로부터는 벗어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죄가 남아 있게 된다. 즉 거듭남 후의 기독자는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기 시작함으로서 자신의 내적 죄악성이 치유되어지기 시작하지만 완전한 치유와 회복이 아니기에 성화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환자가 의사의 치료에 적극적으로 동참했을 때 그 병의 치유가 더 빠르고 온전하게 이루어지는 것처럼 인간에게는 하나님께서 부요하게 부어주시는 은총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응답해야 하는 필요성과 당위성이 있다는 사실에 있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온전한 성화를 지향해 나아가는 과정인 점진적 성화의 과정에 신인 협력(Divine-human cooperation)이 필요한 것이다. 죄의 뿌리인 남아 있는 내적 죄악성의 치유를 위해서 점진적인 성화의 과정을 지속해야만 한다. 이러한 과정 중에 하나님께서 온전한 성화의 은총을 인간에게 부어주셔서 인간의 내적인 죄악성을 온전히 치유하신다. 이 경험이 완전한 사랑의 경험인 온전한 성화의 경험이다. 완전 경험 후의 신자는 그의 심중이 하나님의 성결한 사랑으로 가득차게 되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롭게 주신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데 어려움이 없게 되며 기독자를 타락하게 만드는 자만, 고집, 이 세상에 대한 사랑 등과 같은 거룩하지 못한 기질들로부터 자유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는데 그것은 웨슬리가 말하는 지상에서의 완전은 완전해진 상태로서의 완전이 아닌 과정으로서의 완전이라는 점이다. 영원 속에서 하나님을 향유해가는 과정의 하나로서의 완전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완전 사랑을 경험한 신자도 그 자신의 육체적 연약성과 유혹으로 인하여 온전한 성화의 은총을 상실할 수도 있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의 보혈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이점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바로 토마스 맥스필드와 조지 벨과 같은 극단적 열광주의자들이었다. 온전한 성화의 은총을 경험한 기독자들도 그 자신의 육체적인 연약성에 기인한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무의지적인 위반을 하게 된다. 즉 소위 말하는 무의지적인 죄를 범하게 된다. 이 무의지적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위반으로부터 벗어나 죄의 현실성 자체로부터의 구원이 가능해지는 것이 바로 영화이다. 이런 구원의 과정에서 강조되어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편적이고 지속적인 속죄의 보혈과 의의 덧임혀짐과 심겨짐이다. 우리의 중보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혈과 의와 믿음은 선재적 은총부터 영화까지의 전 구원의 과정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들이다. B. 종합 분석 우리가 흔히 웨슬리를 연구할 때 당연히 여기지만 동시에 간과하고 넘어가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웨슬리가 부흥운동가이며 영국 국교회 사제이자 동시에 신약학자였다라는 사실이다. 웨슬리는 일평생 성서, 특히 신약성서 속에서 그가 추구하였던 ‘참 기독교’를 찾고자 했으며 그가 걸어갔던 ‘참 기독교’에 대한 여정을 방해하였던 많은 오류들에 대해 성서가 증언하는 참 진리 가운데서 해결점을 찾고자 했다. 웨슬리의 죄 이해 또한 이러한 기본적인 틀 속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 그의 죄 이해는 철저하게 성서에 근거해 있으며 그의 은총 이해와 관련된 구원 이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특히 그가 한 평생 ‘참 기독교’의 지표로 삼았던 성결,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기독자의 완전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손수 그 방법(천국에 이르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하여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바로 이 목적을 위하여 그는 천국으로부터 오셨습니다. 그는 한 책에 그 사실을 쓰셨습니다. 오 그 책을 저에게 주십시오! 어떤 값으로 제가 그 책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 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저를 위한 풍부한 지식이 있습니다. 저로 하여금 한 책의 사람(homo unius libri)이 되게 하십시오. 저는 여기서(성서 속에서) 인간의 분주한 방법과 멀어집니다. 저는 홀로 앉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여기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의 임재 속에서 저는 천국에 이르는 길을 찾고자 하는 목적을 위해서 성서를 열어 읽습니다.663) 이것은(기독자의 완전) 제가 1725년부터 줄곧 목표로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성경 외에는 비교적 아무 책도 중요시하지 않는 한 책의 사람(homo unius libri)이 되고자 했던 1730년부터는 더욱 명확해졌습니다.664) 역사적인 고찰을 중심으로 수행되어진 웨슬리의 죄 이해에 대한 종합 분석 및 전망은 다음과 같다. 첫째, 웨슬리의 죄 이해는 철저하게 성서의 죄 이해, 특히 신약의 죄 이해에 근거해 있다. 신약성서의 죄 이해는 매우 다양하다. 그리고 죄에 대한 명확한 정의보다는 죄의 특성으로서의 법정적인 면과 치유적인 면의 극복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죄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않고 있다는 것은 죄를 의미하는 어근이 여덟 개나 신약성서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665) 웨슬리도 죄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는데 노력하기보다는 자신의 목회적인 상황 속에서 유동적인 죄의 특성과 구분에 관심을 집중한다. 이러한 노력은 자신과 자신의 감리교 운동이 직면한 위험요소들에 대한 대응과 관련이 있다. 즉 웨슬리는 자신의 목회적이고 실천적인 상황에 따라서 죄 이해를 하고 있다. 초기의 웨슬리는 속죄의 법정적인 면에는 거의 무지하였던 것처럼 보일 정도로 속죄의 치유적 특성에만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모라비안들의 순간적인 회심과 연관된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이라는 거대한 충격은 웨슬리로 하여금 속죄의 법정적 특성에 관심을 집중하게 한다. 그러나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극단적 강조는 ‘거룩한 삶’이라는 놓칠 수 없는 주제를 간과하게 하며 종교개혁의 전통적 해결책은 ‘신자의 남은 죄’에 대한 적절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기 못하기에 중기 웨슬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과 ‘거룩한 삶’이라는 기독교 신학과 삶의 두 가지 축을 조화시키고자 한다. 웨슬리는 이러한 조화의 노력 속에서 죄에 대한 복잡하고 정의 내리기 어려운 미묘한 구분과 설명, 그리고 그에 따른 지속적으로 부어주시는 은총의 역할들을 숙고한다. 따라서, 중기 웨슬리의 죄 이해는 속죄의 법정적 특성과 치유적인 특성의 긴장 관계 속에 있다. 그러나 1765년 이후의 보다 세분화되어지고 명확해진 은총 이해는 웨슬리로 하여금 속죄의 법정적 특성과 치유적인 특성의 긴장관계를 해소하게 한다. 이 시기의 웨슬리는 용서로서의 은총 이해를 치유의 권능이라는 보다 큰 주제에 통합시킨다. 선재적 은총은 용서와 치유의 가능성을 의미하고, 확신케하는 은총은 영적 자각, 의인화의 은총은 용서, 거듭남과 과정적 성화, 온전한 성화 그리고 영화의 은총은 치유와 관련이 있다. 이러한 죄와 은총의 관계 이해의 역동성은 서방교회의 전통과 동방교회의 전통을 성공적으로 포괄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그의 죄 이해가 우선적으로 성서를 근간으로 형성되어졌음을 보여준다. 둘째, 웨슬리는 악의 원인과 인간 타락의 원인을 의지의 자유의 오용으로 보고 있다. 악의 원인을 초월적인 존재의 자유에 대한 오용으로 본 점은 서방교회 전통과 다른 동방 교회적인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리고 웨슬리는 첫 인간의 불순종으로 인한 결과로 ‘전적 타락’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지 못한 ‘자연적 인간(natural human)'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향할 수 없다는 웨슬리의 주장은 종교 개혁의 주장과 전적으로 동일한 주장이다. 반면에 이점은 동방 교회의 전통과는 다른 인간 이해이다. 셋째, 원죄의 유전 문제에 있어서 웨슬리의 관점은 시기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 초기의 웨슬리는 생물학적 전이론의 입장을, 중기의 웨슬리는 영혼 창조론적 입장을, 후기의 웨슬리는 영혼 유전 전이설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리차드 톰슨이 웨슬리에게 원죄가 생물학적으로 유전된다면 죄에서 완전히 자유해진 양친으로부터 아이가 태어났을 때 어떻게 부패한 본성을 가진 아이가 태어날 수 있겠는가라는 물음을 던졌을 때 원죄의 유전에 있어서 생물학적인 전이론은 그의 완전 교리와 상충되는 점을 노출시켰다. 그리고 중기의 웨슬리가 염두에 두었던 영혼 창조론적인 입장은 ‘죄된 육체’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었다. 따라서 영혼 창조론적인 입장은 죄의 자리를 육체에 두었기에 이 입장에서는 지상에서의 완전이란 불가능한 것이었다. 따라서, 후기의 웨슬리는 원죄의 유전 문제에 있어서 ‘죄악된 육체’의 개념과 무관하며 죄의 가능성을 영혼에 두는 영혼 전이론적인 입장을 피력한다. 이 영혼 전이론적인 입장은 웨슬리가 일관되게 주장한 지상에서의 상대적인 완전 가능성에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 입장이었다. 넷째, 죄와 관련된 웨슬리의 은총 이해는 하나님의 보편적인 은총의 우선성이 특징이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보편적인 선재적 은총으로 아무 능력이 없었던 자연적 인간에게 가능성이 생겼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보편적인 구속(universal redemption)으로 아담의 불순종으로 기인한 원죄의 죄책이 사해졌다고 보았다. 따라서, ‘자연적 인간(natural man)’은 웨슬리에게 있어서 논리적인 추상이며 인간에게 남아 있는 실질적인 문제는 자범죄에 대한 죄책과 인간 본성의 타락과 부패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웨슬리는 ‘원죄(original sin)’라는 용어보다는 ‘생래적 죄(inbred sin)’와 ‘내재적 죄(inbeing sin)’라는 용어를 쓴다. 그러나 웨슬리는 이러한 ‘생래적 죄’와 자범죄의 죄책에 대해서 인간 자체만의 노력으로서는 철저하게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오직 하나님께서 값없이 부어주시는 은총(free grace)에 힘입을 때에만 인간에게 가능성이 발생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하는 의지에 자유의 회복이라든가 성화의 과정 속에서 주님의 사랑의 계명을 준수할 수 있는 가능성의 회복은 모두 은총에 의한 것이기에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할 수 있는 것조차도 모두 은총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섯째, 웨슬리는 죄의 자리를 육체에 두지 않고 영혼에 둔다. 웨슬리는 바울의 몸에 대한 관점을 그대로 수용한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서 인간은 필연적으로 연약성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몸을 지니게 되었지만 그 연약성 자체가 악이나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서방 교회의 전통은 육체를 악한 것으로 보아 지상에서의 완전이 불가능하며 인간은 필연적으로 죽기 이전에는 죄에 눌려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로 보았다. 반면에 웨슬리는 그와는 반대되는 개념, 즉 인간의 육체적인 연약성은 악이나 죄가 아니고 단지 악과 죄에 책임이 있는 것은 영혼이라는 사실을 성서 속에서 찾음으로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의 풍성한 은총 아래에 있는 인간이 보다 긍정적이고 역동적으로 현실에서의 구원의 여정에 참여 할 수 있게 하였다. 이 사실이 웨슬리로 하여금 죄로부터의 완전한 구원으로서의 완전이 지상에서 가능함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게 하였다. 바울의 관점에 의하면 죄로부터의 구원이란 믿음에 의해 가능한 현실의 삶 속에서 약속되어진 특권이다. 여섯째, 웨슬리의 죄의 구분과 정의는 종교 개혁의 구원 이해보다 더욱 세밀한 구원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웨슬리는 죄책(guilt), 죄의 힘(power of sin), 죄의 현실성(being of sin)으로 죄를 나누어 설명함으로서 행위로서의 죄와 상태로서의 죄를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으며, 내적 죄와 외적 죄, 의지적인 죄와 무의지적인 죄를 말하고 있다. 특히 죄에 대한 정의에 있어서 웨슬리는 의지적인 죄를 적절한 의미의 죄, 무의지적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위반을 소위 부적절한 의미의 죄로 설명한다. 종교 개혁의 죄 이해는 죄책과 관련해서 인간의 연약성에 기인한 죄, 즉 무의지적인 죄를 의지적인 죄와 동일한 견지에서 이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을 죄에 눌려 살 수 밖에 만들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신자로 하여금 쉽게 종교적 우울에 빠지게 하였다. 반면에 웨슬리의 죄에 대한 미묘한 구분은 신자로 하여금 보다 긍정적으로 구원의 순례에 대한 과정을 지향할 수 있게 하였다. 특히 웨슬리의 죄 이해의 관점에 의하면 하나님의 자녀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지속적인 속죄의 보혈과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 신자는 진정한 의미의 성도가 되며 지상에서 주님의 참된 자녀로 살아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무의지적인 죄 또한 하나님의 완전한 율법에서 보자면 빗나간 것이기에 그리스도의 대속의 보혈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며, 온전한 사랑을 경험한 사람도 온전한 성화의 은총을 상실 할 수 있기에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걸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웨슬리는 초대교부, 경건주의와 신비 영성가들의 영향으로 평생을 죄와 유혹과 싸움하는 자기 검증의 삶을 살았다. 하이젠레이터가 지적한 것처럼 옥스퍼드 시절의 웨슬리에게 있어서 로욜라의 이그나시우스의 영신수련과 같은 자기 검증의 영적 분투가 그의 삶에 중심이었다. 이런 영적인 분투가 비단 초기 웨슬리만의 특징은 아니었다. 웨슬리는 평생을 통해 자신의 목회와 삶의 지표로 삼았던 ‘참 기독교’를 찾는 여정에서 자기 검증적인 영성 생활의 중요함을 주장하였고 자신의 삶과 공동체에서의 적용을 통해 실제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러한 목적으로 웨슬리는 자신의 감리교 운동에서 은총의 수단을 끊임없이 강조하였다. 이점이 지금의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바는 실로 크다 할 수 있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1970년대와 1980년대의 갑작스런 양적 증가와 더불어 질적인 하락의 현실에 처해 있으며 아직까지 내세적이며 동시에 현실에서의 기복적 신앙 강조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삼풍사건, 옷로비 의혹 사건, 근래의 일련의 신용금고 사건들의 중심에는 항상 소위 교인이라는 사람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현재 한국 기독교인들의 영적 상태를 알려준다. 현재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자기 검증 없이 단지 내세적이고 기복 중심적인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의 한국교회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자기 검증 가운데서 내적 죄악성 및 외적 유혹과의 싸움을 중시하는 초대 교회의 수도 운동과 중세의 신비 영성, 종교 개혁 후의 경건주의 운동 그리고 웨슬리의 준 수도주의(semi-monastic)와 같은 교회 전통의 회복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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