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에드거 앨런 포를 만난 것은 여고 때 ‘애너벨 리’ 라는 시를 통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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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아주 오래전
바닷가 한 왕국에
한 소녀가 살았어요
애너벨 리라면, 당신도 알지 몰라요
이 소녀는 날 사랑하고 내 사랑을 받는 것밖엔
딴생각은 아무것도 없이 살았어요
나도 어렸고 그 애도 어렸죠
바닷가 이 왕국에서
하지만 우린 보통 사랑 이상으로
사랑했어요, 나와 애너벨 리는
하늘의 날개 달린 천사들이
그녀와 나를 시샘할 만한 사랑으로
- 중략 -
그래서 나는 밤새도록
내 사랑, 내 사랑, 내 생명, 내 신부의 곁에
눕는답니다
그곳 바닷가 무덤
파도 철썩이는
바닷가 무덤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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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읽으며 애너벨 리라는 아름다운 소녀를 상상했고
시를 통해 그들의 사랑을 동경했으며, 막연히 이런 비극적 사랑을 꿈꾸기도 했다.
그 후 까마득한 세월이 흐르고 나는 시 한줄 모르는 남자와 결혼을 했으며
비극적 사랑은 개뿔, 안온하고 안락한 사랑에 안주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여인이 되어 있었다.
지난 수요일(31일)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한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를 만난 건
애너밸 리를 써내려가던 내 마음 속 순수 청년이 아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스릴러·추리·공포 장르의 창시자였으며
19세기 영미문학사에 큰 자취를 남긴 천재 작가였다.
한 가지 기억만을 가지고 한 사람의 일생을 마주한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
포의 작품성향과 비참하게 마감한 생애처럼 무대 역시 음산했고 그로테스크했다.
철제로 만들어진 대형 날개는 한 때는 잘 나갔지만 더 이상 날지 못하는 상징처럼 묵직하고 차가웠다.
어린 나이에 겪어야 했던 어머니의 죽음, 첫사랑과의 아픈 이별,
아내의 죽음, 그의 천재성을 질투하는 목사겸 비평가인 그리스월드의 시기와 질투를 보여주며
에드거 앨런 포의 생애와 업적을 따라가게 한다
당시 세인들에게 칭송받던 천재작가의 말로는 알콜과 함께 비참하고 우울했다.
불행했던 어린 시절부터 아픈 첫사랑, 그의 천재성을 시기한 사람들과의 대립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이번 뮤지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한 천재작가의 일대기를 그렸다는 점과 강렬한 캐릭터와 음악, 그리고
역동적인 안무를 꼽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앙상블이 연출하는 군무가 인상적이다.
이들은 까만 옷을 입은 까마귀로 분장을 했다.
까마귀는 포의 대표적 시에서 연유한다.
실제 무대에서도 까마귀라는 시가 발표될 때
청중들이 환호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몸동작은 웅장했으며 때로는 기괴하며 어떨 땐 발랄하기까지 하다.
록을 기반으로 한 오케스트라 연주에 맞게 리드미컬한 움직임으로
풍성한 볼거리를 만들었다.
배우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내가 끊임없이 눈길을 준 건
무대 아래 지휘자였다.
극에 긴장감을 주는 가장 큰 요소가 음악에 있기 때문에
자연히 눈길은 극을 따라가면서
나도 모르게 무대 아래로 향하곤 했다.
이번 공연 포 역에 정동하가 분했으며 그를 질투한 목사이자 비평가엔 정상윤이 분했다.
이들의 노래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관심 가져주셔서요^^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 ! 그대의 필력이 참으로 부럽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어쩜 에드가와 같지 않을까요?^^ 좋은 밤~~
옆구리 찔러 절받기 ㅋ
잘 가고 계시겠지요?
공연도 같이 보고 석촌호수길도 같이 걷고
내내 즐거웠습니다
비극적 사랑은개뿔. 이 글을 읽다가
웃으이 빵 터졌습니다 고상하고 예쁜 평론가의 이미지에서 순간 혼돈의 경지에 이르는 글솜씨가 압권입니다 결혼은 현실에서 서로
보완되고 돕는 배필로서 역할이 필요하지만 전인격적인 영혼의 동반자가 행복한 짝이 될것이라 생각합니다 비극적인 사랑도 죽음으로서 영원히 내 마음에 살아있는 애절한...
혼돈의 경지까지나요 ㅎㅎ
그만큼 제가 순수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슬픈 현실이기도 합니다
일요일 북촌길에서 반갑게 뵙겠습니다 탐구님^^
실감있는 후기글로
뮤지컬 감상하고 갑니다~
눈으로 보셔야 더 실감나는데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