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렁이는 억새밭 위의 창공으로 패러글라이더들이 새처럼 날아다니는 능선. 꼭 가보고 싶은 가을 천관산의 정경이다.
“천관산 억새 정말 멋지던데요. 얼른 가 보세요.” “바위 꽃이 삐쭉삐쭉 솟아 임금님 모자처럼 생겼다는 산 말이죠?” “네. 맞아요. 지금 억새가 피어 장관이어요.” 20대부터 전국의 산을 훑기 시작해 환갑이 넘은 지금까지 명산대천을 다니시는 답사 여행사 사장님의 말씀은 늘 정확하고 고맙다.
천관산은 전남 장흥에 있는 바위산이다. 벼가 누렇게 익고 있는 들판을 지나고 탐진강을 건너 관산읍에 이르니 멀리서도 성냥개비처럼 솟은 바위들이 보인다. 한눈에 봉우리임을 알 수 있다.
천관산은 남도 제일의 지리산을 비롯해 아기단풍이 많은 내장산, 바위덩어리 월출산, 처녀림을 간직한 내변산 등과 함께 호남의 5대 명산에 속한다. 길쭉한 바위들이 막대기처럼 솟아 있는 모습이 천자의 면류관을 닮았다 해서 천관산이라 불린다.
정상 능선은 억새가 많이 덮고 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네의 수염처럼 억새가 희다. 환희대와 연대봉을 잇는 1km 정도의 능선을 비롯해 서쪽의 구룡봉에 이르기까지 억새가 폭넓게 군락을 이루고 있다. 10월 중순, 하순이 절정이다.
일렁이는 억새밭 위의 창공으로 패러글라이더들이 새처럼 날아다닌다. 다도해에 면한 가을 천관산의 정경이다. 바위들은 수석전시장처럼 무리 지어 솟아 있다. 남도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전망은 사나이에게 활력과 기개를 불러 넣어 주는 풍경이다.
천관산 억새풀은 장흥이 낳은 소설가 한승원에게 많은 영감을 주기도 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는 청년 시절 천관산 자락에 있는 천관사에서 글 공부를 할 때 들었던 슬픈 억새 소리를 생각하며 쓴 소설이다.
등산은 장천재 코스가 대표적이다. 장천재는 조선시대 실학자 존재 위백규 선생이 학문을 가르치던 곳이다. ‘재(齋)’는 고개가 아니라 제사를 올리기 전에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다는 뜻이다. 원래 조선시대 위씨 성을 가진 한 하급관리가 이곳에 모친의 묘각을 세우고 제사를 지낸 데에서 장천재라 했지만 훗날 위백규의 연구소 겸 강의실로 쓰였다.
장천재에는 범상치 않아 뵈는 소나무가 삐뚜름히 서 있다. 주민들은 이 나무가 우는 소리로 날씨 예측을 했다고 한다. 600년이 넘은 소나무다. 체육공원을 지나면서 본격 등산이 시작된다. 활엽수림과 조릿대숲을 지나 40분쯤 오르니 전망이 확 트인다. 회진포도 시야에 들어온다. 그런데 계곡 아래에서 밀고 올라오는 바람 소리가 마치 용의 포효처럼 굉장했다. 떡갈나무 잎은 고물상 집 녹슨 지붕처럼 이울고 있고, 바람은 계속 원시 울음을 울어대는 산길, 먹장구름이라도 끼면 너무 슬플 것 같다.
노승봉에 이를 즈음 신기란 바위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대세봉에 이르자 육중한 바위들이 장수들처럼 무리 지어 서 있다. 군기가 바싹 든 군인들의 기세다. 정상에 가까워지자 한승원 작가의 가슴을 절절이 울렸던 억새가 천지사방에 깔려 하염없이 나부낀다.
환희대에 오르면 고생 끝이다. 환희대(720m)는 대장봉의 다른 이름으로 모든 것을 성취하고 환희를 얻게 해 준다는 평평한 바위다. 환희대에서 정상인 연대봉(723m)까지 1km 가량 고운 억새길이 열려 있다.
▶산 소개 산의 대부분이 바위로 이루어져 봉우리마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천관산은, 지리산, 월출산, 내장산, 내변산과 함께 호남의 5대 명산 중 하나이다. 천관산은 뛰어난 산세 때문에 지제산(支提山), 천풍산(天風山), 풍천산(楓天山), 신산(神山)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왔다. 천관산은 바위전시장으로 불릴 정도로 갖가지 형상의 바위가 널려 있는데, 아기 모습의 아기바위, 사자바위, 종봉, 천주봉, 관음봉, 선재봉, 대세봉, 석선봉, 돛대봉, 구룡, 갈대봉, 독성암, 아육탑 등을 비롯 수십 개의 기암괴석과 기봉의 꼭대기 부분에 비죽비죽 솟아 있는데, 그 모습이 주옥으로 장식된 천자의 면류관 같다하여 천관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산의 규모는 월출산 보다 작지만 월출산에 버금갈 정도로 기암괴석이 많은 산이다. 산 중턱에는 신라 애장왕 때 영통화상이 세운 천관사가 있었으나, 현재는 법당, 칠성각, 요사 등이 남아 있으며, 천관사 삼층석탑(보물 795호), 석등(전남 유형문화재 134호) 및 오층석탑(135호) 등 많은 문화유적들이 남아 있다. 정상부근에는 억새 밭이 5만여 평이 펼쳐져 장관을 이루고, 정상에 서면 남해안 다도해, 영암의 월출산, 장흥의 제암산, 광주의 무등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매년 가을 이곳 천관산 정상 연대봉에서 산상 억새능선 사이 약 4km 구간에서 "천관산 억새제"가 개최된다. 천관산은 가을억새로 유명하지만 봄철 산행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4월이면 정상인 연내봉에서 장천재로 내려서는 구간이 온통 진달래꽃으로 뒤덮이기 때문이다. 천관산의 진달래 능선은 천관산에서 장천재에 이르는 구간과 천관산 정상인 연내봉의 북쪽 사면과 천관사에서 천주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4월 중순이면 진달래가 만발한다. 봄에는 천관사 주변의 동백도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