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에서 며느리감을 뽑기 위해서는 적어도 6개월전에 간택령을 내리는데 이 때 사대부가는 모든 혼사가 금지되고 신부감이 있는 집안에서는 자천 타천으로 사주단자를 왕실로 보냅니다.
간택은 3단계로 진행되는데 초간택은 30명-40명 정도로 면접시험을 보는데 왕비 선택권은 전적으로 대비마마와 중전마마
의 몫이였다. 그러나 실질적인 보조는 궁녀,상선,내시들이 일일이 기록하여 보고를 하는데 그 기준이 다음과 같다고 합니다.
첫째, 신부감의 입술의 색깔이 유별나게 붉거나 자색이면 건강에 이상이 있어 자식을 낳지 못함으로 1차적으로 탈락
둘째, 신부의 목이 굵으면 처녀가 아니므로 탈락,
셋째, 대비마마가 묻는 말에 귀가 벌게지면 소심하기 때문에 탈락,
넷째, 입술을 자주 적시면 욕구 불만이 있으므로 않됨,
다섯째, 양미간이 좁으면 음기가 세어 세자가 잠자리에서 몸을 다치므로 역시 탈락,
여섯째, 젓가슴이 3자 (90쎈치)이상이면 무식함으로 탈락,
일곱째, 주걱턱은 심성이 착함으로 일단 합격,
여덟째, 물에 밥 말아 먹은 신부는 근검 절약 정신이 있어 국모의 자질과 부합되므로 일단 합격
초간택에서 7명으로 걸려서 재간택에 들어가 3간택에서 최종 왕비로 선발되어 궁중생활 교육을 받고 국혼을 치르게 됩니다.
참고로 조선시대 왕비를 많이 배출한 집안은 청주 한씨 6명, 파평 윤씨 3명, 청송 심씨 3명, 안동 김씨 3명입니다.
조선 초에는 주로 훈구파(개국과 세조 왕위 등극에 공헌한 사람)집인에서 왕비를 차지하고 후대로 가면 사림파(과거로 관직에 나간사람) 특히 서인,노론집안에서 독차지 하여 정권 유지의 방편으로 삼았으며 노론의 당론이 1910년 조선왕실 몰락시까지 물실국혼(勿失國婚-국혼을 잃지말자)이였으며 즉 국혼(왕비를배출 하는것)을 빼았기지 않기 위해 치열한 당쟁 차원의 경쟁을 하였읍니다.
그래서 왕비의 운명은 친정 집안의 권력 유지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 친정집이 몰락하면 왕비의 꿈도 물거품이 되니 그
대표적인 사람이 선조의 계비 인목왕후(연안김씨 김제남의 딸)와 숙종비 민비(여흥민씨 민유중의 딸)이니 영화와 함께 비극도 함께하였습니다.
첫댓글 왕비 간택에서 성기 검사는 없었던가? 나는 그 성기 검사가 간택조건에 들어 가는줄 추측했었는데.....
역시 해박한 지식에 감탄을 .... 항상 좋은 글로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시니 복 무지 많이 받으시길
일곱째 부분, 주걱턱이 심성이착해 합격이라... 5공 영부인 이 순자 생각납니다.